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아등바등 거리면서 사는 세상
우리의 생명이 유한하지만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짧은 시간을 서로 다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거리면서 살고 있지만 정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 분명히 죽는다는 것이고 누군가 대신할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죽음 앞에서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자별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는 것을 보면 정말 허무하게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감정이 북받쳐 서럽고 섭섭한 많은 것들로 가슴을 채우고 살아도 결국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못내 사그라질 인생입니다. 바람에 억새풀이 서로 비벼대면서 울어도 그 소리는 잠시의 울음이고 곧 가지가 꺾이고 이파리들이 부서지고 바람결에 슬그머니 소리마저도 사라질 것입니다.
어제 내린 비로 더욱 많이 낙엽을 떨구고 외로이 서있는 빈 나무를 보면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은 인간이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1분 1초도 생명을 연장할 수 없으며, 죽음에서 도망갈 틈은 그 어느 곳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본시 하늘이 무너지면 모두 죽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 하늘이 무너졌을 때 솟아날 구멍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죽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말 같지만 사실은 불공평하고 이론상 맞지 않습니다. 본래 이 말은 <하늘이 무너져도 효자 날 구멍 있다.>라는 말이랍니다. 우리말에는 구개음화(口蓋音化)현상이 있어서 ‘형’을 보고 ‘성’이라고 하고, ‘효자’를 보고 ‘소자’라고 발음합니다. 그래서 ‘효자 날 구멍 있다.’를 ‘소자 날 구멍 있다.’로 발음하고 어떤 사람들이 이런 것 저런 것 잘 모르고 솟아날 구멍 있다고 말이 와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면 태양도 별도 모두 제 궤도를 잃어버리고 우주가 개벽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홍수가 날 수 있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불에 전부 태워질 것이니 이 지구는 가루가 될 것이지만 살아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자(孝子)만큼은 살려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효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불효자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한 점 부끄럼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친구, 아름다운 친구, 형제, 아들과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살아온 부끄러운 불효자이기에 얼굴을 들고 하늘을 쳐다볼 수도 없고, 고개를 숙이고 이웃과 사람들을 대할 면목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맹자(孟子)는 그의 진심편(盡心篇)에서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락(一樂)은 부모구존 형제무고 (父母具存 兄弟無故) :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이락(二樂)은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仰不傀於天 俯不澤於人) :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삼락(三樂)은 득천하영재 이교육지(得天下英才 而敎育之) :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군자의 삼락은 곧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는 날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나는 효자로서 그날을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심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으로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나 대죄로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심판자로 오시는 주님의 준엄하심을 그렇게 표현하십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고, 그간의 행실로 주님을 뵙기가 점점 두려워지면서 무서워지고, 이웃과 형제들에게 부끄러운 자책이 늘어 갑니다. 어떤 분은 나보고 왜 그렇게 자책이 심하냐고 묻지만 이제는 자책마저도 위로가 되고 주님의 사랑을 더욱 청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가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의 신앙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채점해보니 감점요인만 많아서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급해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총으로 기쁘고 즐거운 나날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지만 주님께서 은총으로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3,1-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6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또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축일 11월 17일 성녀 엘리사벳 (Elizabeth)
신분 : 왕비, 3회원
활동 지역 :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 1207-1231년
같은 이름 : 엘라,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엘리제, 이사벨, 이사벨라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1207년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Pressburg)에서 국왕 앤드레 2세(Endre II)와 왕비 제르트루다(Gertruda)의 딸로 태어났다. 튀링겐(Thuringen) 영주 헤르만 1세(Hermann I)는 정략적 이유로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성녀 엘리사벳과 자신의 맏아들 헤르만과의 정혼을 제의했다. 그 후 그녀는 어린 나이에 튀링겐의 궁정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생활했다. 궁정의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생활 속에서도 성녀 엘리사벳은 자주 기도하며 경건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고자 했다. 1213년 어머니가 헝가리 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1216년 12월 31일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헤르만이 사망하는 등 어린 나이에 시련도 계속되었다. 헤르만 1세는 자신의 둘째 아들 루트비히와 그녀를 다시 약혼시켰다. 튀링겐 궁정에서 많은 사람의 시기를 받으며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지만, 약혼자 루트비히는 그녀를 보호해주었고 시어머니가 될 소피아도 친어머니처럼 성녀 엘리사벳을 돌보아주었다.
교회를 등지고 정치적 야망을 좇던 헤르만 1세가 1217년 사망하고, 1221년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루트비히 4세는 그 해에 성녀 엘리사벳과 결혼했다. 신랑의 나이는 21세, 신부는 14세였다. 그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모범적인 부부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자선활동과 기도 생활을 열심히 했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존중하고 옹호해주었다. 그들의 집은 아이제나흐(Eisenach) 근교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있었고, 자녀는 세 명을 두었다. 맏아들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딸에 이어 셋째 아들은 남편이 사망한 몇 주 후 유복자로 태어났다.
1221년 작은 형제회가 독일에 정착하면서 성녀 엘리사벳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작은 형제회의 첫 독일인 회원인 로데거(Rodeger)가 한동안 그녀의 영성 지도를 담당하면서 성녀 엘리사벳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에 대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작은 형제회가 1225년 아이제나흐에 수도원을 세우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1227년에 루트비히 4세가 풀리아(Puglia)로 출정하는 십자군에 가담했다가 9월 11일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이 죽은 후 두 자녀는 다른 곳으로 보내지고 성녀 엘리사벳은 자신의 유산인 헤센의 마르부르크(Marburg) 성에서 쫓겨났다. 친척의 도움으로 밤베르크(Bamberg)의 주교인 숙부 에크베르트(Eckbert)에게 가서 어느 정도 지냈다.
로데거에 이어서 마르부르크의 콘라트(Conrad)가 그녀의 영성 지도를 맡았다. 그는 매우 금욕적이며 엄격한 사람으로 성녀 엘리사벳에게 수도자와 같은 삶을 요구했다. 남편의 유해와 유품을 튀링겐의 가족무덤에 안장한 후 성녀 엘리사벳은 콘라트의 도움으로 남편의 유산을 정리해 자녀들을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나머지 상당 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았다. 그리고 1228년 성금요일에 콘라트가 있는 아이제나흐로 가서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마르부르크에 ‘성 프란치스코의 자선 병원’을 세우고 스스로 병든 자, 특히 가장 혐오스러운 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성녀 엘리사벳은 콘라트에게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성덕을 위한 자아 포기의 길에 헌신했다. 누구나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싸주었다. 그녀는 선종하기 4년 전에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마르부르크 성으로 돌아올 허가를 받았고 또 그녀의 아들에게 백작을 승계시킬 수 있었다.
여왕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직접 음식을 날라주고 옷을 지어 주는 것 등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성녀 엘리사벳은 독일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다. 그녀는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1231년 11월 17일 마르부르크에서 선종했지만, 오늘날 작은 형제회 재속 제3회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선종 다음 해에 그녀의 영성 지도신부였던 콘라트는 자신이 쓴 편지에서 성녀 엘리사벳의 영적 풍요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여인만큼 관상에 깊이 젖어 들어간 이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수사들과 수녀들이 여러 번 목격했듯이 그녀가 기도의 은밀함에서 나올 때 그 얼굴은 광채로 빛나 그 눈에서 태양 광선과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성녀 엘리사벳이 선종한 후 그녀의 무덤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시성 절차가 빠르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선종 4년 후인 1235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는 그녀를 성대히 성인품에 올렸다. 그녀에게 봉헌된 마르부르크의 성당 기초가 그해에 놓였고, 1249년 성녀 엘리사벳의 유해가 성당에 안치되면서 순례자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1474년에 성녀의 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수록되면서 그녀의 성덕은 더욱 널리 퍼져나갔다.
14세기 이후 교회 미술에서 성녀 엘리사벳은 망토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몰래 빵을 감추고 나가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그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빵 제조업자와 빵집 그리고 자선사업 기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그녀는 헝가리 또는 튀링겐의 엘리사벳이나 이사벨라(Isabella, Isabel)로도 불린다.
오늘 축일을 맞은 엘리사벳 (Elizabeth)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