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부터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서는 꾸준히 생활 체육을 육성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 왔습니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가는 상황이기도 했고 실제 각 종목별 아마추어 동호인들의 수요를 국가 인프라가 받쳐 주지 못한다는 볼멘 소리도 줄곧 있어 왔거든요
기초 운동의 대표 주자인 육상과 수영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만 아쉽게도 육상의 경우엔 저변이 너무 적고 수영은 초등학생과 실버 스포츠 성격이 강한 관계로 대중화되기 어려웠죠 그래서 가장 인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축구를 중심으로 시범 사업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4강 특기생 제도 폐지와 초중고 주말리그제 도입 그리고 전국 학교 운동장에 잔디 구장 1000개 살포 사업이었죠 이 사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문체부와 대한 체육회는 여타 구기 종목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봅니다만 축구만큼 성공하진 못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꼽는 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축협은 기본 철학이 유소년 육성에 목숨을 거는 조직입니다
협회 예산 1000억 가운데 매년 250억-300억을 유소년 지원금으로 배정해 놓아요 국대부터 각급 연령별 대표팀까지의 지원과 거의 맞먹는 금액입니다 협회가 이런 사업을 시작한 것이 02월드컵 이후 부터이니 지금까지 20년간 500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이 유소년 육성에만 들어간 셈입니다
둘째 국제 대회가 잦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관계로 자연히 협회 재무나 행정이 타 조직에 비해 상당히 선진적입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축협은 국회 국정감사를 2번이나 받은 조직입니다 행정이 자연스레 투명해 질 수밖에 없죠
세째 축구 자체의 국제적 인기가 높은 관계로 스폰이 잘 붙고 국대 관중 동원력이 넘사벽입니다 자연히 축협 예산 역시 1000억원에 육박하므로 위의 두 가지를 뒷받침할 재원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협회는 02월드컵 이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통합 축구협회를 통한 디비전 시스템 구축을 시도해 봅니다
사실 한국 축구가 유럽과 같은 선진 축구 시스템을 가지기 위해선 k-디비전시스템을 가져야 한다는 건 모든 전문가들이 지적한 부분이었지만 아래에 언급했듯이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k-디비전시스템을 만든다는 건 축구협회와 전국 생체연합, 내셔널리그와의 통합을 의미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간 한국 축구는 엄밀하게 말하면 엘리트 축구를 관장하는 축구협회, 생활 체육을 담당하는 전국 생체연합, 그리고 아마 축구(구 실업 축구)리그인 내셔널리그로 분리되어 다른 유럽 축구 선진국처럼 일관된 축구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분리된 시간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각 단체의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했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정치 세력까지 가세하여 한국 축구의 통합은 요원해 보였죠
근데 이게 몇 가지 우연과 우연이 거듭되면서 통합에 물꼬가 터지게 됩니다
저간의 사정을 지켜 본 입장에선 '와 이렇게도 되는구나'라는 식이었죠
2017년 축구협회와 전국 생체가 통합하게 되었고 그 결과 k7, k6, k5리그가 순차적으로 구축됩니다 끝까지 반대하던 내셔널리그조차 이러한 축구계 안밖의 통합 요구를 거스를 수 없었고 20년 k3리그로 합류하며 완벽한 통합 축구협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죠
(현재의 축구 협회는 엄밀하게 말하면 통합 축구협회라고 불러야 합니다)
k-디비전 시스템이란 k7-k5의 아마 축구와 k4-k3의 세미 프로, k2-k1의 프로팀을 하나로 묶는 개방형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bottom up방식이란 점과 개방형이라는 점이죠
우리말로 하면 풀뿌리 축구라고 번역해 볼 수도 있겠네요
일반적으로 외국 투자자가 분데스리가나 epl에 투자를 할 때 보통 최상위 리그의 수준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국가가 가진 축구 총량이라는 기본 베이스를 깔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건 쉽게 잊어버리죠
중국 프로리그가 망한 가장 큰 이유가 기초인 풀뿌리 스포츠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최상위 리그에만 돈을 뿌려대 선수 수급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선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게 되고 구단이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 한 측면도 있거든요
통합 축구협회의 등장이 의미하는 건 유럽 축구 선진국과 같은 생활 체육과 아마 축구, 프로 축구가 연결되는 디비전 시스템의 탄생이며 이는 자연스레 축구 산업 자체가 성장할 기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웃 일본이 90년대 초반에 출범시킨 J리그가 급격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탄탄한 생활 체육과 JFL이라는 아마축구 리그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같은 시스템을 가질려야 가질 수가 없었죠
202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은 유럽 축구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기반을 갖게 된 셈입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죠
단계적인 디비전 시스템 구축은 거의 끝난 상태이고 25년 이후에는 아마도 k4와 k5사이에 전면 승강제가 이루어질 걸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때부터가 본격적인 k리그 전국 리그화의 원년이 될 걸로 예상되네요
여기에 기존에 있었던 물적, 인적 인프라가 놓여지게 된다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축구 산업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는 국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게 될 겁니다
이미 통합 축구 협회는 기존의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스몰사이드 축구와 저연령 리그제를 도입하는 등, 각급 연령별 유소년들에게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축구 철학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19년 u20월드컵 준우승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죠
통합 축구협회 출범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축구 시계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시작은 느리나 한 번 갖춰지면 빠르게 결과물을 얻어내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특징 상, 조만간 축구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리라 기대됩니다
첫댓글 지도자가 문제에요. 어렸을 때 실컷 주도적인 축구해봤자 프로오면 몇 팀 빼곤 수비축구하게됨.
지도자와 관련된 이슈는 몇 편의 글을 써야 할 정도로 복잡합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서요
그래도 님께서 지적하신 문제 의식에 대해선 동의해요 지도자 문제 진짜 중요하죠
국정감사를 2번이나 받은 축협이 이정도면 타종목 협회는 어느정도 개판인지 궁금하네요
솔직히 축협과 타 스포츠 협회를 비교하는 건 축협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