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정말 모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세대, 10대. 이들의 곁에서, 그것도 ‘십말이초’ 래퍼들 옆에서 소통을 시도하는 EBS <배워서 남줄랩>의 김훈석, 김민지 PD를 만났다.
요즘 콘텐츠 시장은 10대가 가장 뜨겁다. 지난해 시작한 Mnet <고등래퍼>부터 교실 속 아이들의 목소리를 힙합으로 듣는 SBS <방과 후 힙합>, 10대 댄서들의 서바이벌 KBS <댄싱하이>, 14~19세 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MBC <언더 나인틴>까지 10대들이 즐기는 문화에 주목한 프로그램이 연잇고 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10대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은연중 어른과 꼰대의 시점에서 아이들을 바라본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몇 달 전 시즌 1을 마치고 방송연예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EBS 프로그램 <배워서 남줄랩>은 10대의 시선을 그대로 담으려 애쓰는 프로그램이라 더욱 특별하다. “통일을 왜 해야 해요?” “어른들이 살았던 시대를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죠”처럼 10대 래퍼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치열한 배틀 없이 아이들은 몰랐던 지식을 배워 랩으로 표현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어른은 으름장 놓는 훈계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10월 말 시즌 2를 준비하는 두 제작자를 만나 곁에서 지켜본 10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연들만 비추는 대본 속에서 어른들을 비유하자면 꼰대 작가 정도
시급이 올라도 변하는 건 없고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은 어딜 가나
법칙 문드러져 가는 교실 속 학생들은 지쳐 하나둘씩 책을 덮지
침묵에 대해 뭐라 하기 전에 혼자 떠들기만 하던 자신을 반성해
– 래퍼 샌디 하선호의 잔소리 랩 중
10대들이 힙합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훈석) 속엣말을 뱉어내는 자유로운 느낌과 해방감 아닐까 싶어요. “미래 인재가 되길 바라면서 최소 세 명의 애를 낳길 강요당하지,” 가장 화제가 됐던 랩이에요. 17세 선호가 뱉어내는 랩을 들으며 전율이 돋았죠. 저렇게 모순을 표현하고 말할 수 있구나 하고요. 랩의 힘이죠.
통일, 젠더 등 논의하기 만만치 않은 주제 같아요.
(김민지) 어른들이 알려준 적 없지만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문제들을 다루다 보니 어려워하죠. 돈과 욕망, 젠더 의식, 세대 갈등은 나이를 불문하고 중요한 이슈니 꼭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전 인터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시즌 1 종방연 때 아이들이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주제를 배워보겠나’고 하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민지) 윤병호라는 친구가 대놓고 자기는 부모 세대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춘기가 시작됐는데, 그 예민한 시기에 선생님께 이유 없이 머리를 맞은 적이 있어요. 어른 세대에 대한 반감을 느껴봤기에 병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공감이 됐어요. 그때 노명우 교수님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하며 이야기를 잘 풀어가는 모습에 감동받았죠.
좋은 어른의 모습을 봤고, 그런 어른들이 10대의 주변에 많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질타하기가 쉬운데,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고 고민할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10대를 위한 콘텐츠 제작자로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쉽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훈석) 우려된다고 하면 꼰대처럼 보일 것 같네요. 하하. 요즘 10대들은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주는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점에 익숙할 수밖에 없죠. 추천 알고리즘 덕에 a를 보면 a-1, a-2… 끊임없이 접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을 알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는 인상을 받기도 해요. 프로그램을 통해 그런 모순을 깨주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내 10대 시절과 차이가 있다면요.
(김훈석) 신기하고 흥미로웠던 건 학교 밖에 있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배우는 모습. 스스로 아티스트라 생각하는 자율적인 모습이에요. 저희 때는 가수가 되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죠. 남들의 생각, 시선에 매어 있지 않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힙합은 거친 문화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김민지) 대중매체의 잘못이 커요. 무조건 욕설 배틀을 하고, 남을 디스하고. 힙합을 그런 식으로만 소비하니 대다수 어른들은 유해하다고 생각하죠. 아이들도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쟁하는 데에 지쳤기에 저희는 함께 꾸리는 공연을 중심으로 하고 경쟁 구도는 없앴어요.
시즌 2에서는 뭐가 달라지나요?
(김훈석) 여자 출연진이 늘어나고, 아이들이 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에요. 첫화 주제는 ‘꼰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요즘 사회 전반에 갑질과 꼰대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잖아요. 어른들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주제니까요.
(김민지)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자해가 유행이라고 해요. 점점 삶을 비관하거나, 무기력해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습득하는 나이대가 어려지고 있는 거죠. 저희 때는 중·고등 시절에 하던 생각을 이제 초등학생까지도 공유하더라고요. 10대 때는 늘 관심을 받고 싶고, 또래 사이에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사회나 어른들이 관심을 안 주니 벌어지는 현상이 아닌가 싶어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그래서 조금 더 사회와 직접 맞닿은 주제도 심도 있게 다뤄볼 생각이에요.
I 세대를 이해하는 키워드 5
2000년대 이후 출생한 I세대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란 세대다. ‘십말이초(10대 말 20대 초)’보다 더 어린 요즘의 ‘구말십초’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맘들이 숙지하면 좋을 다섯 가지 키워드.
- 아이돌 앱 아이돌이 관심사의 전부인 시기,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내려받을 수 있는 앱인 포토카드와 15초 짧은 클립 뮤직비디오를 주고받을 수 있는 틱톡은 10대 여자아이들이 유튜브 다음으로 자주 접속하는 앱.
- 모바일 게임 요즘 10대는 PC방에 자주 가기보단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 특히 100명 중 1명이 살아남는 경쟁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인기가 대단한데, 이와 비슷한 ‘프리파이어’ ‘듀랑고’ 등의 인기도 높다.
- 슬라임 카페 학교, 학원 외에 함께 놀 공간이 부족한 초등학생 사이에 각광받는 핫플. 각양각색의 점성을 띤 슬라임을 원 없이 만질 수 있는 곳으로 청담 모듈팟, 홍대 니블리에 이어 전국 곳곳에 생겨나는 중이다.
- 대박자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는 충격적인 가사로 초등학생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노래. 극단적인 콘텐츠가 밈처럼 퍼지는 현상에 사회적 우려가 많다.
- 에이틴 최근 막을 내린 10대들의 갓띵작. 미디어 제작사 ‘플레이리스트’에서 10대를 타깃으로 제작한 웹 드라마로 10대의 고민과 감성을 담았음에도 네이버 영상 TOP 100에서 전 연령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