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트 음악(Independent Music)`의 줄임말, 상업적인 거대 자본과 유통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한 음악이 바로 인디 음악이다. 간섭받지 않는 ‘창작’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통’을 위해 뮤지션들이 선택한 하나의 방법론이 바로 인디 음악인 것이다.
때문에 인디 음악은 지금의 10대 아이돌 스타위주의 한국 음악 시장을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현재 한국에서 ‘다양한 창작’이 가능한 유일한 장소가 바로 인디 음악계이기 때문이다. 2006년, 한국 인디 음악계는 10살을 맞았다. 1996년 실질적인 인디 음반 이 나온 이후로 올해로 10주년이 되는 해. 한국 인디 음악 10년의 역사를 돌아본다.
<홍대 앞 주차장 사거리에서 벌어진 대낮의 펑크쇼> 70,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고향이던 신촌이 점차 상업지구로 변해갔다. 그 모습이 싫어 몇몇 밴드들이 신촌을 떠나 홍대 앞에 정착했다. 그리고 공연을 시작했다. 그들은 신촌을 근거지로 헤비메탈을 하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과는 달랐다. ‘인디’란 말도, ‘라이브 클럽’이란 말도 없었을 때지만 그들은 그 전의 언더그라운드와 다른 무엇인가를 가진 뮤지션들이었다. 그리고 바로1996년 5월, 그들이 일을 냈다.
홍대앞 주차장 사거리 한복판에 그들은 무대를 폈다. 무대에 올라 음악인지도 모를 그런 소음을 내며 소리를 질러댔다. 무대 위와 아래의 경계도 없었다. 관객은 무대에 올라 다이빙을 하고 밴드는 연주를 하다말고 무대 밑으로 몸을 날렸다. 벌건 대낮에 물을 뿌려대고 서로 뒤엉켜 슬램을 벌였다. 이것이 인디 음악 10년의 역사의 시초가 되는 ‘스트리트 펑크 쇼’이다.
이 에너지는 가을로 이어져 1996년 6월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의 합동음반
<인디 음악, 대중적 관심과 열기를 받다> 그 뒤 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은 언론에 의해 다소 변질된다. 1997년 보도 자료를 직접 작성해가며 언론을 이용했던 황신혜 밴드가 인디 음악의 대표적인 ‘스타’로 부각되면서 인디 음악에는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음악보다는 퍼포먼스(적인 특징)로 언론과 사람들은 인디 음악을 바라봤다. 언론은 인디 음악의 본질을 변질시키기는 했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는 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홍대 앞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 거품의 다른 이름은 ‘열기’였다. 인디 음악이 ‘대안’이라 믿은 사람들은 스스로 공연기획자가 됐고 인디잡지를 창간했다. 직접 클럽을 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제의 관객들이 오늘의 밴드가 되어 무대에 섰다. 1997년 강아지문화예술, 인디 등의 인디레이블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인디레이블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1998년 인디 음악은 대중에게, 그리고 뮤지션들에게 정착한다. ‘소란’, ‘자유’, ‘독립예술제’ 같은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끊이지 않고 열렸다. 크라잉 넛, 레이니 썬, 허클베리핀, 미선이의 데뷔 앨범을 포함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디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거대해진 외형에 비해 실속은 그렇지 못했다. 대부분의 무료 공연과 주류 음악과 차별화되지 못한 인디 앨범들은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결국 언론에 의해 생겼던 그 거품들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남은 건 밴드와 클럽, 팬들이었다.
<한국 인디 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 홈레코딩> 이후 초기 인디레이블을 주도했던 강아지문화예술과 인디가 시장의 한계에 부딪쳤고, 그 부진으로 인디 음악은 잠시 과도기를 걷는다. 그 와중에 홈레코딩(home-recording)기술과 관련 소트프웨어, PC(하드웨어) 발전에 영향 받아 인디레이블 자체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스위트피(Sweetpea, 지금의 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가 홈레코딩 위주의 레이블 문라이즈(moonrise)를 만든 2000년 이후로 인디 음악계에는 홈레코딩이 보편화됐다. 자생적인 인디뮤직 바탕이 생긴 것이다. 문라이즈가 내놓은 홈레코딩 앨범들은 인디 음악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뮤지션 자신이 음반제작의 주체가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홈레코딩 앨범들은 인디 음악계에 알려줬다.
이 여파는 2002년 이후로 인디 음악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3년도 한국 음악계를 통틀어서 수작으로 이야기되는 코코어(Cocore)의 , 푸른새벽의 , 참피온스의 와 같은 앨범들이 홈레코딩으로 탄생됐다. 2003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대상격인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더더의 도 기본적으로 홈레코딩 앨범이었다.
<당당히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으로 자리한 한국 인디 음악> 인디적 태도와 정신에 다양한 색채와 표현으로 단단한 모양새를 갖출 수 있게 도와준 홈레코딩으로 인해 한국 인디 음악은 ‘질’과 ‘다양성’의 측면에서 크게 성장해 왔다. 그리고 지금 10주년을 맞이한 인디 음악은 인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언더와 오버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있으며, 인디라 불리는 뮤지션이나 밴드들이 공중파 TV에 출연한다. 또 그들의 음악도 대중들에게 질적 측면에서도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한국 인디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시장에 ‘다양성’을 제시하고, 무한한 창작자의 창구가 되면서 한국 대중음악이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에 일조하고 있다.
<이 기사는 김작가의 ‘인디 10년을 회고함’이란 글과 박준흠의 책 ‘대한 인디 만세, 한국 인디 음악 10년사’(세미콜론)를 참고해 작성되었습니다.> CT뉴스 제공(www.kocca.or.kr/ct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