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식의 주위로 공장장과 일꾼들 모인다.
상만, 쭈르르 달려가 준식의 옆에 선다.
광철, 안타까운 눈빛으로 준식의 모습을 본다.
은행직원들 난처한 얼굴로 현승을 본다.
씬3 경성은행, 은행장실(아침)
용호와 치성, 서류를 서류가방에 챙겨 넣으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용호: (시계를 보고) 원산비료 공장일은 거의 정리가 됐겠군.
치성: 예.
용호: 일단 잠잠해 질때까지 기다렸다가 매각절찰 밟는게 좋겠어.
주위 이목이 있으니까 한 한달은 저 상태로 그냥 두게.
치성: 인수자한테 그렇게 말해 두겠습니다.
용호: 명목상 인수자란걸 분명히 하게. 나중에 원산비룔 차고
앉겠다 나서면 시끄러워지니까.
치성: 걱정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용호: (고개 끄덕이고) 잠시 집에 들렸다 출발하세.
씬4 용호의 집, 마당
용호, 담배를 피우면서 재훈을 기다리고 있다.
현관문 열리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재훈, 나온다.
그 뒤를 따라 나오는 정자와 희경.
정자: 낼 모래 시험 볼 애를...그 멀리까지 꼭 데려가셔야 해요.
용호: (묵살하고) 다녀오리다. 밤까진 돌아올 수 있을꺼요.
정자: 다녀오세요...
재훈, 희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재훈: 오빠, 금방 갔다오께. 잘 놀구 있어.
희경: ... (옷자락을 잡는다)
정자: (못마땅해서) 누가 구박하는것두 아닌데...눈치나 살곰살곰
보면서, 왜 저렇게 곰살 맞은데가 없나 몰라... 재훈이 뒤만
쫄쫄거리구...이리와.
희경: ...(여전히 재훈의 옷자락을 잡고 있다)
용호: 거...엄비가 세웠다는 유치원엘 보내던가.
정자: 나이가 되야...보내죠...
용호, 마음이 무거운 표정으로 희경이를 지긋이 쳐다본다.
희경, 재훈의 옷자락을 놓고 눈을 내리깐다.
씬5 용호의 차 안
경성을 빠져나가 한적한 길을 달리고 있다.
치성, 운전하고
뒷좌석에 재훈과 용호 앉아 있다.
재훈, 문제집을 보면서 중얼중얼 외우고있다.
일본역사다. 리듬을 맞춰서 일본천황이름들을 외우고 있다.
'스이제이~ 안네이~ 이토쿠, 고쇼~ 고안, 고레이~ 고겐~ 가이카~ '
용호: (혼잣말로 농담처럼) 불손한 녀삭일세, 천황이름을 친구처럼
불러제끼니.
재훈, 그래도 중얼중얼 '스진. 스이닌~ 게이코~ 세이무~ '
용호: 쇼화 17년...앞으로 십오년 후에는 무슨 일이 생기겠냐?
재훈: (무슨 말인가 싶어 보면)
용호: 바로 우리 시대의 경제 흐름...그 큰 줄기를 바꿀 네가 은행
역사상 최연소 은행장으로 취임하게 될 해다.
재훈: ...
용호: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 때를
기억하게 되겠지.
재훈: 원산엘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용호: 네게 줄 선물이 있다. 거기에.
재훈, 답답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한 번 보고, 문제집으로 시선 돌린다.
씬6 원산비료, 마당(오후)
광철과 상만, 주전자를 가져온다.
원산비료 식구들과 경성은행 직원들 여기저기 모여있거나,
앉아서 준식과 현승쪽을 바라보고 있다.
준식과 현승, 마당 한 쪽에 놓여진 평상에 앉아 있다.
광철, '여기요. 사장님' 주전자를 가져와 평상에 놓는다.
광철과 상만, 주전자를 놓고, 조금 떨어져 쭈그리고 앉는다.
준식: (현승의 사발에 막걸리를 따르려고 하면) 한잔 하시오.
현승: 일과시간이라... 제가 한 잔 올리지요.
현승, 주전자를 들어 준식의 사발을 채워준다.
준식, 단숨에 잔을 비운다.
준식: 그간 경성은행에 신세 안졌다고 할 순 없소.
돌아가신...은행장님 아니었으면 지금의 원산비룐
없었을테니까...
현승: (고개를 끄덕인다)
광철, 경성은행과 병익의 이야기가 나오자 움찔한다.
준식: 그래도 이건 아니잖소? 키워 잡아 먹는 것도 아니고...
장사하는 사람에겐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은행은
은행이 도의가 있는 거 아니오?
현승: 은행장님이 곧 도착하실 겁니다. 두 분이 서로 마음을
열고...입장을 나누다 보면, 합치점이 생기질 않겠습니까.
씬7 길(오후)
원산비료의 모습이 보이는 곳.
용호의 차, 서 있다.
용호와 치성, 원산비료를 바라보고 있다.
재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변을 보고 옷 추스리고 다가온다.
용호: (재훈에게) 잘 봐둬라.
재훈: (용호의 시선을 따라가, 원산비료를 바라본다)
용호: 원산비료다. 아버지가 네게 주는 첫 선물이지.
재훈: 제게...선물이에요?
용호: (고개 끄덕이고) 네가 이 시대의 돈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데 그 받침이 되어줄 회사다. 그 첫삽을 뜨는데
주인공인 네가 없어선 안되지. 그게 원산에 데려온 이유다.
재훈: ...
재훈, 멀리 원산비료공장을 본다.
씬8 비료공장 마당(오후)
용호의 차, 들어온다.
경성은행 직원들, 현승에게 '은행장님 오셨습니다'하고 차쪽으로 간다.
차, 멈추고 직원1, 뒷좌석의 문을 연다.
다가온 현승과 준식.
광철과 상만을 비롯한 비료공장 일꾼들, 호기심으로 쳐다본다.
차에서 내리는 치성.
광철, 치성을 알아보고 놀란다.
용호, 내린다.
현승: (고개 숙이고) 오셨습니까?
용호: 수고가 많군.
뒤이어 내리는 재훈.
광철: ! (놀라서 즉각적으로) 재훈아!
재훈: (눈이 휘둥그래져서) ! 광철아!
두 아이, 서로를 향해 달려가서 안는다.
반가워하는 광철과 재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용호와 치성의 당혹스러운 표정.
용호: (아이들에게서 시선 들리고, 공장 주위를 둘러본다)
씬9 비료공장 마당, 일각(오후)
광철과 재훈,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조금 떨어져서 보인다.
용호, 현승을 힐난하고 있다. 그 옆에 치성
용호: 자넬 경성의 대출 책임자라 할수 있나!
현승: 원산비료의 입장도 이핼 해주셔야 합니다.
용호: 그렇게 객관적인 시선유지가 안되나?
현승: ...
용호: 그게 안되면, 경성은행을 위해 어떤것이 최선인가 그것만
생각하게!
현승: 원산비료가 이윤을 내도록 돕는것이 결과적으로는 우리
은행의 이익이 됩니다.
용호: 이쯤에서 손을 떼게! (돌아선다)
현승: 은행장님!
용호: (차갑게 돌아보고) 올라가서, 사사분기(4/4) 감사준빌 돕는게
낫겠군. 먼저 경성으로 돌아가게.
용호, 몸 돌려 마당쪽으로 뚜벅뚜벅 걷는다.
씬10 비료공장, 마당(오후)
용호와 준식, 서 있다. 그 옆에 치성.
용호, 준식과 이야기 하면서도 시선이 자꾸만
재훈과 함께 있는 광철이에게 박힌다. '그랬구나...그래서 경성에 안왔구나.../
응' 이런 이야기들 나누는 아이들. 치성, 아이들의 이야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
용호: 원산비료 매각에 동의할 수 없다면, 두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준식: 그게...뭡니까?
용호: (회중시계를 꺼내보고) 오늘 은행마감까지 대출금 전액과
연체이자를 상환하는 방법이 있고.
준식: 불가능합니다. 아시잖습니까!
용호: 평화적인 수순을 거부하신다면, 결국 법에 의해
해결해야겠지요. 필요하시다면, 절차를 밟겠습니다. 그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씬11 비료공장 마당, 광철 있는 곳(오후)
광철과 재훈, 용호의 말이 들리자 용호쪽을 바라본다.
씬12 비료공장 마당, 용호 있는 곳(오후)
준식: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 붙여야합니까... 은행장님 눈에는
이게 그냥...돈덩어리로 보이나 몰라도... 적어도 여기에 열
사람이 밥줄을 매고 있습니다.
용호: (고개 끄덕이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심정. 다만 저로서도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우리 경성의 사백명 식구를 생각치
않을 수 없군요.. (치성에게 눈짓한다)
치성: (경성은행 직원들에게) 시작하게.
직원들, 우르르- 재작업을 시작한다.
현승, 착잡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보다 차 타고 출발한다.
용호, 재훈에게 다가간다. 광철, '안녕하세요...' 쭈빗거리며 인사하고.
용호, 가볍게 일별하고 재훈에게
용호: 들어가자.
용호, 앞서서 공장쪽으로 향하고
씬13 비료공장, 사무실(오후)
용호와 준식, 치성, 준비해 온 서류를 보면서 계산한다.
재훈, 한쪽에 앉아있다.
(인서트) 서류.
원산비료 대출금현황
치성: 지난해 이월 오일 평양지점을 통한 단기대출까지 대출금
전체가 백팔십삼만원. 맞습니까?
준식: 그렇소.
치성: (고개 끄덕이고) 오늘까지 미납된 연체이자까지 총
삽십팔만칠천육백오십원입니다. 합해서,
이백이십구만칠천육백오십원이고. 원산비료공장, 기계, 그에
딸린 부지...비료생산기술이전비까지 합해서 총 자산이
이백이십만원으로 평가됐습니다.
준식: 허... (허탈한)
재훈, 준식의 모습을 보다 슬며시 일어선다.
재훈, 문쪽으로 나간다.
용호, 아들의 모습을 본다.
씬14 비료공장, 사무실 앞(오후)
재훈, 공장안으로 나왔다.
공장의 기계와 한쪽에 쌓여있는 비료에
'경성은행의 직인이 찍힌 차압'딱지가 붙어있다.
재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용호, 재훈의 뒤를 따라나왔다.
재훈: (용호를 돌아보고) 전... 이런 선물 싫어요.
용호: (보면)
재훈: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 아저씨껄 뺏어서 꼭 저한테
이런거 안주셔도 되요.
용호: 나라고 마음 아프지 않은게 아니다.
재훈: 근데...왜요?
용호: 경젠 흐름이다. 누가 주인이냐..그게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걸 잘 활용해서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흐름을
만드느냐...그게 선인거야.
재훈: ...
용호: 값싼 동정이나...유약함은 세인들에게 좋은 사람이란 평가는
줄지 모르겠지만, 경제의 거대한 흐름에 하등 도움 되는게
없다. 들어가자.
재훈: (잠시 생각하다) 광철이한테 갈래요.
재훈, 몸 돌려 문쪽으로 간다.
용호, 그 모습을 본다.
씬15 비료공장 마당(오후)
원산비료 트럭과 리어커에까지 '경성은행 차압딱지가 붙어있다'
일꾼1, 공장장에게 '이제..우린 어떻게 되는겁니까...' 한탄하듯 묻는다.
상만, 자신의 리어커에 붙은 딱지를 경성은행 직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슬며시 잡아 뗀다. 붙은 풀자국에 잘 안떨어지자 침 발라서 문지른다.
광철, 그 모습을 보다가 착잡하게 돌아선다.
씬16 비료공장, 시험재배장(오후)
'천연비료시험재배장' '인공비료시험재배장'이라고 붙어있는 푯말에까지
차압딱지가 붙어있다.
광철, 그 딱지를 손으로 만져본다.
광철, 안타까운 얼굴이다.
씬17 비료공장, 사무실(오후)
준식, 치성이가 내민 서류에 투박한 글씨로 이름을 쓴다.
막도장을 꾹 눌러 찍고, 치성에게 내민다.
(인서트) 포기각서
'원산비료 대표, 최준식은 아래와 같은 조건에 의해 원산비료의 모든 권리를
경성은행에 양도한다.' 등의 글귀가 적혀있고,
그 아래 원산비료에서 대출한 상환금, 일시와 연체이자,
현시가계산이 붙어있다.
준식: 됐소?
치성: (꼼꼼히 훑어본다)
준식: 그럼, 내가 이제 경성은행에 빚진 구만칠천원만 주면
끝나는거요?
용호: (품에서 봉투를 하나를 꺼내 내민다) 약소하지만 그간 우리
경성은행의 고객이었던 원산비료에 대한 성?畇求?.
준식: (차갑게 보다, 받는다) 고맙단 말은 않겠소.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의 일부라고 생각하니까.
용호: (미소)
준식: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소.
용호: (보면)
준식: 우리...직원들..공장장을 비롯해서...애들까지 그냥 여기서
일하게 해주시오.
용호: 새로운 인수자한테 그런 부담까지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건
그 분 마음이겠지요.
준식: ...
치성: (서류를 가방에 집어 넣고) 다 끝났습니다. 명시한데로
일주일 내로 공장을 비워주십시요.
준식: ...
용호, 치성과 함께 차 앞에 서 있다. 주위에 준식과 원산비료 일꾼들 있다.
경성은행 직원들이 탄, 트럭 출발하고.
치성: 제가 찾아 보겠습니다.
용호: 아니.. 됐네. 내가 찾아보지.
용호, 재훈을 찾기 위해 공장 뒤쪽으로 간다.
씬20 비료공장, 시험재배장(오후)
광철과 재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철: 나...너한테 부탁이 있어. 음..너네 아버지한테 부탁해야
하는건데.
재훈: (보면)
광철: 사장님 디게 좋은 분이야. 잘 말씀드려서...그냥...이 공장
사장님이 하면 안될까? 돈은 나중에 꼭 갚음 되잖아. 그치?
재훈: ...
광철: 전에말야... 은행장님이 그러셨어. 동경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무 걱정없이 열심히 장사하게
도와주구...공장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물건 만들게
도와주는게 은행이라고...지금은 너희 아버지가
은행장님이잖아. 그러니까...우리 사장님을 도와줘야 하는거
아냐?
재훈: (생각한다)...
씬21 용호 있는 곳(오후)
용호, 텃밭근처로 온다. 재훈과 광철의 모습이 보인다.
용호, 재훈을 부르려는데 재훈의 목소리가 들린다.
(재훈의 소리) 광철아...난 은행가가 될꺼야.. 아마 그렇게 될꺼야.
용호, 재훈의 말을 듣고 아들을 부르려던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선다.
씬22 비료공장, 시험재배장(오후)
광철과 재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철: 그럼 바이올린은?
재훈: 이젠 못해... 아버지가 나더러 돈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야한다구 했거든...우리나라와 일본을 통틀어서 제일
힘있는 은행가.
광철: (본다)
재훈: 아버지가 나더러 자꾸 은행가가 되라구 그러는건 싫지만.
그래두 우리 아버지가 좋은 은행가라는 생각은 해.
광철: 어째서? 이게..좋은 은행가야?
재훈: 아버지두 좋아서 그러는게 아냐. 넌 사람들한테 욕먹구
싶어?
광철: 아니.
재훈: 응. 나두..싫어. 아버지두 싫을꺼야. 그렇지만.. 은행을 위해서
할 수 없는거야.
광철: 재훈아...
재훈: 희경이 아버지.. 먼저번 은행장님. 무지무지 좋은 분인거
알아. 그렇지만..나두 들어서 아는건데, 그 아저씨가 계속
은행에 계셨음 경성은행이 망했을꺼래. 아까..아버지가
그러셨잖아...경성은행에는 직원이 사백명이라구.
광철: ...
재훈: 그러니까 그러시는거야...내가 꼭 은행가가 된다면....
광철: ...
씬23 용호있는 곳(오후)
용호, 담배를 피우면서 재훈의 말을 흐뭇하게 듣고 있다.
(재훈의 소리) 난 우리 아버지같은 은행가가 되구 싶어...
더 큰걸 생각하구...더 많은 걸 생각하는 사람.
용호, 미소를 띄우면서 돌아선다.
씬24 비료공장, 시험재배장(오후)
광철과 재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철: (고개 끄덕이고) 그래.. 넌 아마 그렇게 될 수 있을꺼야.
그렇지만..내가 은행가가 된다면 지난번 은행장님같은 사람이
되구 싶어.
재훈: 그것두 좋겠다. 그치? 우리 둘다 은행에서 일하는거. 그럼 덜
심심할꺼야.
광철: (웃고) 시험공부나 잘해.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구.
재훈: 응~
씬25 비료공장, 마당(오후)
용호, 내려온다.
치성: 재훈인 못찾으셨습니까?
용호: 좀 기다려보지. 중요한 이야길 하는것 같으니까.
치성: (의아한듯) 예?
용호: (차압딱지가 붙은 트럭을 보다 준식에게) 기동력이 떨어지면
불편할테니까 트럭을 그냥 쓰도록 하십시요.
준식: ...
용호: 이미 생산된 비료도 갖으시구요.
준식: ...
용호: 아...아까보니, 배출 기르셨더군요. 그것도 가져가십시요.
준식: 아주 고맙습니다.
재훈, 차에 올라탄다.
용호의 차, 이내 출발하고 광철, 재훈을 향해 손을 흔든다.
차 뒷유리창에를 보면서 재훈을 향해 손 흔드는 재훈의 모습이 멀리 사라진다.
씬28 용호의 차 안(밤)
재훈, 용호의 무릎에 기대 세상 모르고 곤하게 잠들어 있다.
용호: 자네... 딸 이름이...?
치성: 주영입니다.
용호: 그래. 주영이. 딸은 키울때 재미가 있다지? 잘 크나?
치성: (미소) 한참 재롱을 떨 나이지요. 말도 곧잘 하고.
용호: (고개 끄덕이고, 재훈이를 내려다 본다) 아들이라는게
이런거군.
치성: (룸미러로 보면)
용호: 누구보다 든든한 동반자... 이 아이를 위해선...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이라고 할까.
용호, 잠든 재훈의 머리칼을 쓸어준다.
씬29 비료공장, 마당(밤)
광철, 평상에 앉아 준식을 기다리고 있다.
준식, 술에 취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들어온다.
광철: 사장님. (일어나서 쪼르르 달려가, 준식을 부축한다)
준식: 오.. 아직 안잤구나.
광철: 자리 펴드릴께요. 얼른 들어가세요. 추워요.
준식, 두어발 걷다 평상에 앉는다.
광철, 그런 준식을 바라본다.
준식: 의사만...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하는게 아니지.
광철: (보면)
준식: 은행도 그렇구나. 사람 목숨줄을 쥐었다. 놨다.
광철: ...
준식: 중학교에 간다구 했지?
광철: 예. 배재중학에요.
준식: 그래. 난 중학 문턱에두 못가본 사람이다만, 많이 배우는건
좋은 일이지.배재중학두 가구...경성제대두 가구.. 열심히
공부해서...은행가가 되면 좋겠다.
광철: (준식을 본다)
준식: 우리같은 사람들.. 잘 두덕여주고... 살려주는 그런 은행가.
광철: 예...
준식, 평상에 벌렁 눕는다.
광철, 그 옆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Dis)
씬30 경성은행, 내부(아침)
아직 개점이 되지 않은 상태.
은행직원들 정기조례를 하고 있다.
용호, 한쪽에 서 있고 치성, 은행직원들에게 조례내용을 말하고 있다.
치성: 우선 제일 업무는 사사분기 정기감사 준비에 있습니다.
고객들의 사사분기 이자결산과 업무만으로도 바쁘겠지만,
감사 준비에 만전을 기해주십시요. (용호를 보고) 은행장님.
용호: 부족한 내가 은행장이라는 중임을 맡은지 한달이
넘었습니다. 여러분들중에는 내 경영방침에 불만을 갖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현승: ...
용호: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분기내에
불입자본금을 채워야 한다는 산이 남아있고...그 산을
넘어서기 전에는 한숨도 쉬어갈 수가 업습니다.
행원들: ...(듣는)
용호: 특히...대부계의 업무가 막중한 시깁니다. (현승을 보면서)
개인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우리 경성을 살린다는 신념으로
업무를 수행해 주기 바랍니다.
용호, 직원들에게 고개 숙인다.
직원들 용호에게 마주 인사한다.
씬31 경성은행, 앞(아침)
수위, 경성은행의 문을 열고 있다.
예금출납을 하기 위해, 서 있던 고객들 은행 안으로 들어온다.
그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스즈끼 은행장과 그의 비서가 들어간다.
용호,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간다.
용호, 책상위에 놓인 어음종이에 사백육만이천원이라고 숫자를 기입한다.
발행인, 이용호. 직인찍고.
용호, 스즈끼에게 어음을 내민다.
용호: 이율은 미쓰이은행의 사규에 근거해 계산했습니다.
스즈끼: (어음을 받아 본다) 경성은행의 사세가 날로 번창하는것
같아 보기 좋군요.
용호: (미소) 불입자본급을 채우자면...발로 뛰어야 되서, 제가 좀
바쁘군요.
스즈끼: (일어선다) 김병익선생 사건의 추이가 궁금하지 않소?
용호: (보면)
스즈끼: 아무래도 사고사로 보기엔...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다는게
동경청의 생각인듯 합니다. 재수사를...진행하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 같던데 말이오.
용호: 잘 됐습니다. 안그래도 우리 경성은행에서 재수사를
강력하게 요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스즈끼: (알듯말듯한 미소를 짓고)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기억해주시오.아직... 수사가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럼.
너무 늦지 않게 또 봅시다.
현승의 지휘아래, 대출계 행원들, 서류정리로 정신이 없다.
장부를 보면서 부기와 주판을 하는 여행원의 모습도 보인다.
수많은 원장들과 대출서류들이 쌓여져 있다.
'그거 이쪽으로 보내봐요/ 여??습니다./
행원1, 서류 한 장을 들고 머리를 갸웃한다.
현승, 행원1을 본다.
행원1: 일성상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현승: 일성상사... 글쎄...
행원1: 들어도 못 본 회산데...어떻게 이 큰돈을 단기대출
해갔을까요...
현승: 이리줘보게.
현승, 행원1에게서 받은 서류를 살펴본다.
(인서트) 서류
대출양식에 맞게 꾸며진 서류. 일성상사, (주소)
소화2년, 1월 25일자로 단기대출4백만원.
10월 8일자로, 전액상환.
대출승인자에 한치성과 이용호의 수결이 되어있다.
씬34 경성은행, 은행장실(밤)
현승이 내민, 서류를 보고 있는 용호, 그 옆에 치성.
현승: 전부터 저희와 거래를 텄던 기업도 아니고... 어떻게
이사회도 거치지 않고무담보로 4백만원을 대출해갔는지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용호: (잠시 생각하는척 하다) 그때 아마..자네가 전은행장님을
수행하고 중국안동지점에 출장을 나갔던 것 같군.
현승: 예.
용호: (고개 끄덕이고) 은행장님께서 직접 전화로 지시하셨네.
장래성이 있는 회사니 서둘러 대출을 승인해주라고.
현승: 은행장님께... 그에 관한 말씀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용호: 안동지점 습격사건으로 정신이 없으셨던거지. 상환까지
끝났는데.. 뭐가 문젠가?
현승: 아닙니다.. 그저 조금 걸려서요.
용호, 서류를 돌려준다.
현승, 서류받고 고개 숙이고 나간다.
용호와 치성, 현승을 불안한 듯 바라본다.
준식, 광철의 도움을 받아 용호가 준 돈을 분배하기 시작한다.
출근장부와 봉급계산장부를 보고 준식, 돈을 세고.
광철, 봉투에 일꾼들의 이름을 쓰고 있다.
광철, 준식이가 준 돈을 봉투에 넣는다.
준식이의 손에는 이제 십원짜리 몇장만 남는다.
씬37 비료공장, 마당(아침)
일꾼들, 보따리와 가방을 들고 준식에게 밀린 봉급을 받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광철.
준식: 큰김씨.
일꾼1: (민망한듯 받고) 죄송합니다, 목구멍이 웬수라...염치없이
받긴 받습디다만..
준식: 별소리.. 그간 애썼네.(어깨 두들겨 주고)
공장장: ...
공장장: 사장님...
준식: 내가...자네한테 이러면 안되는건데...퇴직금 한 푼 없이...자넬
이렇게 보내는구만.
공장장: ....다..은행놈들 농간이지요...
준식: 잊지 않음세...자네들. 하나 하나...(둘러보고) 언제 다시 우리
여기서 꼭 만나세... 그때까지 이 악물고...네 자네의 도움...맘
깊이 새기두지.
공장장: (울먹인다) ... 사장님.
준식, '어디가든 잘살게' 어깨 두덕여 준다.
일꾼들과 공장장, 사장들 안타깝게 작별한다.
광철,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씬38 비료공장, 숙소
상만, 짐을 챙기고 있다.
광철, 보따리에 책을 챙기고 있다.
상만: 씨이...진작 그때 보따리 쌀걸 그랬잖아.
광철: 또 왜?
상만: 맘 아프잖아. 임마.
광철: ...
광철과 상만, 울쩍한 심정으로 보따리를 싼다.
문, 열리고 준식 들어온다.
광철과 상만, '사장님'하고 일어난다.
준식: 그래. 광철이랑 상만이... 어디 갈덴 있고?
상만: (고개를 젖는다)
준식: (고개 끄덕이고) 그러면 말이다. 나랑 같이 있자. 비료도
팔아야 되고..배추도 뽑아야 하고.. 니들 도움이 필요하구나.
상만: 정말요?
준식: 그럼.
상만: 봉급두 주실껀가요?
준식: 하하- 부자 망해두 삼년 간단 말 안있더냐? 설마. 내가 니들
봉급 떼 먹겠냐.
광철: 전... 경성으로 가야해요. 내일이 시험이거든요.
준식: 아.... 이런, 정신이 없어서 깜빡 했구나. 시험 끝나구야
어떡하든, 얼른 가야지.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지.
씬39 원산역앞(오후)
경성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준식의 트럭이 서 있다.
광철, 보따리를 들고 서 있고 준식, 표를 들고 나온다.
준식: (표를 내밀며) 생각 같아선 따라 가주고 싶다만... 정리할게
많아 그럴 수가 없구나.
광철: (웃으며) 괜찮아요. 낼 시험 끝나자마자 금방 올껀데요. 뭐.
준식: 그래. 자- 얼른 들어가야지.
광철: 상만이가 어디갔나 안보여서요.
광철과 준식, 두리번 거린다.
상만, 손에 종이봉지를 들고 뛰어온다.
상만: 광철아- (헉헉)
광철: 어디갔었어?
상만: 자- 이거 (봉지에서 엿을 하나 꺼내 광철의 입에 물린다) 꼭
붙어야 해. 알았지?
광철: (우물거리며, 미소 짓는다) 고마워.
준식: 얼른 들어가라. 기차 올 때 다됐다.
광철: 다녀오겠습니다~
광철, 엿봉지와 보따리와 표를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준식, '차근차근 잘해라-' 크게 외치며 격려한다.
광철, 돌아보고 미소짓고 간다.
씬40 기차 안(오후)
광철, 창가에 앉아있다. 광철, 자신이 만든 요점정리를 보면서 공부한다.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광철, 보면, 상만 밖에서 웃고 있다.
광철, 마주보고 웃는다.
상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준다.
광철, 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기차, 천천히 출발한다.
상만, 펄쩍펄쩍 뛰면서 머리 위에서 손을 좌우로
교차하는 모습이 광철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씬41 배재중학교, 운동장(밤)
캄캄한 학교 안.
광철, 학교건물을 떨리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광철: ...
발자국소리 나면서, 손전등의 불빛이 광철에게 쏟아진다.
광철,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본다.
수위, 광철의 모습을 보며
수위: 넌 누구야? 이 시간에?
광철: 안녕하세요- 전요. 음.. 내년부터 여기 다닐 신입생이에요-
수위: 녀석.. 비웃살도 좋다. 시험에 붙어야 신입생이 되지.
광철: 꼭 붙을꺼거든요.
수위: (웃고) 얼른 가. 문 닫을 시간이다.
광철: 예. 안녕히계세요- 내일 뵐께요-
수위: 오냐. 또 보자.
광철, 보따리를 맨채 배재중학교 앞에 서 있다.
광철, 배재학당이라고 쓰인 현판을 보고 미소 짓는다.
씬43 경성여인숙, 전경(밤)
경성여인숙이라고 쓰인 등이 밝혀져 있다.
씬44 경성여인숙, 한 방(밤)
사람들, 서로서로 낑겨서 자고 있다.
그 한쪽에 광철, 초 한자루를 켜놓고 마지막 공부를 하고 있다.
광철, 주머니에서 수험표를 꺼낸다.
(인서트) 수험표.
수험번호와 박광철, 이라고 쓰여있는 수험표.(배재학당이라고 적혀 있다)
광철, 소중한 듯 수험표를 만져본다.
씬45 용호의 집, 재훈의 방(이른 아침)
재훈, 책가방을 챙기고 있다.
용호, 책상에 놓인 재훈이 수험표를 본다.
(인서트) 재훈의 수험표
수험번호와 이재훈, (배재학당)
용호, 수험표를 본다.
용호: 꼭 수석입학을 해야한다. 알겠지?
재훈: 열심히 할께요. 아버지.
용호: 아버진 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재훈: (보면)
용호: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는 것. 언제나.. 넌 최고가 되야한다.
재훈: 예.
용호, 재훈에게 수험표를 건넨다.
재훈, 용호에게서 수험표를 받아 책가방에 챙겨 넣는다.
씬46 용호의 집, 주방(아침)
정자, 유모와 함께 재훈의 도시락을 싸고 있다.
재훈, 가방 들고, 용호와 함께 들어온다.
정자: (용호에게) 재훈인 제가 데려갈께요. 출근하셔야죠.
(재훈에게) 다 됐다. 이제.
재훈: 엄마, 나 도시락 두 개 싸주세요.
정자: 응? 시험 볼 때 많이 먹음 졸릴텐데 두 개 씩이나 뭐하게?
재훈: 그게 아니구요. 친구가 시험보러 올꺼에요. 멀리서 오니까..
아마 도시락 못싸올꺼에요.
정자: (의아해서 보고) 친구 누구?
재훈: 광철이요.
용호: (표정이 굳어진다)
정자: 아... 원산에 갔다가 또 만났단 그애.
재훈: (고개 끄덕이고) 싸주실꺼죠?
정자: 알았다.
재훈: 그리구요. 광철이 중학교 시험 붙으면, 아니 꼭 붙겠지만요.
나랑 같이 우리집에서 있게 해주세요. 그럼 같이 공부하고..
같이 학교가구..더 열심히 공부할 거 같아요.
용호: (재훈을 본다)
정자: 그런 이야긴 차차 하자.(용호에게) 출근 안하세요?
용호: (잠시 생각하다) 음...재훈인 내가 데려다 주지. 조금 있다
같이 나가겠소.
용호, 재훈이를 바라본다.
씬47 경성여인숙, 마당(아침)
광철, 세수를 하고 대충 물기를 닦는다.
광철, 툇마루 끝에 놓인 책보따리를 들고,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넣어 둔 수험표를 확인한다.
씬48 배재학당 앞(아침)
교문에 '제00회 배재중학교 입시고사'라고 쓰인 방이 붙어있다.
(인서트) 방
시험보러 온 학생들과 따라온 부모들로 시끌벅쩍하다.
용호의 차, 와서 멈춘다.
가방과 찬합 도시락보자기를 든 재훈, 용호, 치성, 내린다.
용호: 얼른 들어가라.
재훈: (두리번 거리면서) 광철이 왔나 보구요.
용호: 왔으면, 시험장에서 만나겠지. 시험 볼 녀석이 다른데 신경을
써서 되겠냐.
재훈: 예...
용호: 나중에 집에서 보자.
치성: 시험잘봐라.
재훈: 고맙습니다. (용호에게) 다녀오세요.
재훈, 인사하고 교문 안으로 들어간다.
재훈, 들어가면서도 돌아보면서 광철을 찾아본다.
씬49 배재학당, 조금 떨어진 곳(아침)
학생들 시험을 보기 위해 학교로 향하고 있다.
그 중에 광철, 연습장에 깨알같이 쓴 문제
(상만과 함께 풀던) 한 장을 들고 중얼중얼 거리며 간다.
씬50 용호의 차 안(아침)
용호와 치성, 학교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광철을 기다리고 있다.
용호, 학생들을 보면서
용호: (표정 바뀌고) 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네. 재훈일
위해서두 난 그 둑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야. 감으로
넘겨짚는거라 해도 스즈끼의 협박 역시 묵살할 수 없는
일이야.
치성: ...
용호: 나는...왠지 광철이, 그 녀석이 불길해... 그 애 아버지.. 그
녀석...왜 자꾸 우리와 이렇게 얽혀드는건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재훈이 옆에서 그 녀석을 떼내야만 하네.
치성: 알겠습니다.
용호와 치성, 무거운 표정으로 창 밖을 살핀다.
씬51 배재학당, 근처(아침)
광철, 중얼중얼 소리내면서 걸어오는데,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
광철, 올려다 보면 치성이다.
치성: 네 아버진 어딨냐?
광철: (돌아본다. 불안한 얼굴이다)
치성: 지금. 너희 아버지 경성에 있냐?
광철: 아뇨. 몰라요.. 전 잘...
치성: 넌 알고 있을꺼야. 아들이 아버지 있는 곳을 모른다는건
말이 안되지.
광철: 정말이에요. 잘 몰라요.
치성: (쏘는 듯한 시선으로 광철을 본다)
광철: 저...시험보루 갈께요..
광철, 돌아서는데 치성, 광철의 앞을 막아선다.
광철, 불안스러운 표정으로 치성을 본다.
치성: 모른다?
광철: (고개 끄덕이고, 학교쪽을 보며) 이젠 진짜 가야되요.
치성: 너는 잘 모르겠지만...나는 너희 아버지를 만나야 할 일이
있다. 지금 어딨지?
광철: ! (치성의 말에 겁이 난다)
광철의 머릿속으로 순간 여러컷이 지나간다.
(인서트) 진태가 병익을 살해하는 장면
광철: ... 부산 아니면....오키나와.... 아마...거기 계실꺼에요.
치성: 아냐.. 그럴리가 없어..
광철: 정말이에요. 전 몰라요! 이제 그만 보내주세요!
광철, 앞을 막아선 치성을 주먹으로 쿵쿵 친다.
광철: 아저씨! 비켜주세요! 아버진 정말 어딨는지 몰라요! 시험봐야
된단 말에요!
치성: 중학굔... 꼭 여기 아니라두 많다.
광철: (보면)
치성: 두 번 다시 재훈이 앞에 나타나지 마라..
광철, 불길한 눈으로 치성을 보다 있는 힘을 다해 치성을 밀치고 뛰어간다.
치성, '네 아버지한테 전해. 내가 찾고 있다고' 광철의 뒷모습에 소리친다.
광철: ... (돌아보고 뛰어간다)
씬 53 배재학당 가는 길(아침)
광철, 있는 힘을 다해 뛴다.
그 위로 치성의 말이 들린다.
(치성의 소리) 넌 잘 모르겠지만... 나는 너희 아버지를 만나야 할 일이 있다.
광철, 순간적으로 발을 멈춘다.
(인서트)용호와 치성이 경찰과 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광철: ...
씬54 배재학당, 운동장(아침)
수험생들 입실하고 있다.
재훈, 광철을 기다리느라 초조한듯 교문쪽을 목을 빼고 바라본다.
씬55 배재학당, 근처 언덕(아침)
광철, 언덕에 앉아 학교를 내려다 보고 있다.
광철,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쥔다.
씬56 배재학당, 운동장(아침)
수험생들의 입실을 알리는 예비종이 울린다.
(소리) 예비종.
운동장에는 이미 학생들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재훈, 종소리를 듣고, 교문쪽을 한 번 본 다음, 어쩔 수 없다는 듯
교사쪽으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긴다.
씬57 배재학당, 교실(아침)
칠판에 '제00회 배제중학교 입학고사'라고 쓰여있다.
시험관 출석을 부르고 있다.
재훈, 자신의 책상에 연필과 지우개를 꺼내 놓고 앉아 있다.
재훈이 왼쪽 가슴에 수험표가 달려있다.
책상 한쪽에는 재훈의 시험번호와 이름이 불어있다.
시험관: 이두용
학생: 예
시험관: (확인하고) 이재훈
재훈: 예.
시험관: 박광철.
광철의 책상이 비어있다.
시험관: 박광철
재훈: 선생님. 광철이가 아직... 못왔나 봐요..지각인가 봐요.
시험관, 재훈을 한 번 힐긋 보고 광철의 빈 책상으로 다가와서 확인한다.
(인스트) 광철의 빈 책상에 붙어 있는 시험번호와 이름.
시험관, 확인하고 교탁으로 간다.
시험관: 자. 그럼, 첫교시는 역사 시험이다.
시험관,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고친다.
재훈의 앞에 놓이는 시험지.
재훈, 안타까운 표정으로 광철의 빈 책상을 한 번 보고,
시험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씬58 배재학당, 교문앞(아침)
광철, 달려와 교문 앞에 선다.
수위, 교문을 닫으려다 광철을 본다.
수위: 너, 어제밤에 게지?
광철: (수위를 본다)
수위: 이제 막 시작했을꺼다. 얼른 들어가봐. 선생님한테 잘 말씀
드리면 시험 볼 수 있을꺼야.
광철, 교문쪽으로 한 걸음 다가간다.
(인서트) 진태의 모습, 재훈, 병익, 치성의 모습이 어지럽게 교차된다.
치성이 광철에게 던진 말들이 울린다.
(치성의 소리) 두 번 다시 재훈이 앞에 나타나지 마라.
네 아버지한테 전해, 내가 찾고 있다고.
광철, 발걸음을 멈춘다.
수위: (의아한듯 보며) 시험 안봐?
광철: 저... 수험생 아니에요.
수위, 고개를 갸웃하고 광철을 보다 교문을 닫아 버린다.
광철, 닫히는 교문을 바라본다.
광철의 눈에 고이는 눈물.(Dis)
씬59 비료공장, 마당(오후)
준식과 상만, 공장 안에서 비료푸대를 들고 나와 낑낑-
거리며 트럭에 싣는 일을 한다.
광철, 풀이 죽어 터덜터덜 들어온다.
상만: 어! 광철아- (뛰어온다) 시험 잘 봤어?
준식: 어떻게 된거냐? 이렇게 일찍? 밤기차루 올 애가.
광철: ...
준식: 광철아?
광철: (애써 웃는다) 시험...안봤어요...
준식과 상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광철을 본다.
광철, 힘없이 숙소쪽으로 발을 옮긴다.
씬60 비료공장, 숙소(오후)
광철,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
문 빼곰히 열리고, 상만과 준식 들여다 본다.
광철, 인기척에 눈을 감는다.
준식, 가만히 방문을 닫아준다.
씬61 배재학당 앞(오후)
시험을 끝낸 학생들 나온다. 학부모들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을 반기고.
한쪽에 용호의 차 서 있고, 정자와 용호 재훈을 기다린다.
재훈, 아이들 틈에 섞여 나온다.
정자: (재훈을 발견하고) 재훈아!
재훈: (엄마와 용호를 보고, 다가온다)
용호: (웃으며) 시험 잘 봤냐는 말은 안물어도 되겠지?
재훈: (고개 끄덕인다)
용호: 애썼다.
정자: (재훈에게서 도시락반합을 받아들며) 어.. 무겁네. 밥
안먹었어?
재훈: 시험두 끝났구, 원산에 갔다 올께요.
정자: 원산에?
재훈: 광철이가요. 시험보루 안왔어요. 무슨 일이 있는지.. 가서
만나봐야겠어요.
용호: 음...자기 그릇을 자신이 아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재훈: (보면)
용호: 사람이 평등하단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되고.
그앤.. 너와 애초에 타고난 품격이 다른 아이다. 다시는
그애와 어울리지 마라.
재훈: 아버지.
용호: 너 혼자 원산에 내려가봐도 소용없다. 이미. 공장은 아무도
없이 다 떠났다.가자, 오늘 시험도 끝났고, 청진루에서
아버지가 청요리를 사주마.
재훈: ...
용호, 차에 올라탄다.
정자, 재훈을 데리고 차 쪽으로 간다.
씬62 비료공장, 마당(저녁)
광철, 마당 한 쪽 평상에 앉아있다.
준식의 트럭, 들어와 선다.
준식과 상만, 내린다. 상만,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있다.
광철, 일어난다.
상만: 사장님이 저기 너 두루치기 해주신다구 돼지고기 사셨어.
광철: (미소)
준식: 그래, 푹 잤니?
광철: 예.
준식: (평상에 걸터 앉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으마..
이미 지난일이고.. 지난 일은 되새겨 봤자.. 힘만 들 뿐이지.
광철: ...
준식: 그래. 이젠 어쩔셈이냐? 어디 근처 중학교에라도 시험을
쳐봐야지.
광철: ... (잠시 생각하다, 상만을 본다) 상만이....큰 북 칠때, 전
작은북치구..동동구리무 장사 해두 좋구요..
상만: (눈이 휘둥그래서)너. 진짜야?
광철: (고개 끄덕이고) 아님.. 종축장 형이 저한테 잘해주시니까..
돼지 키우는 일해두 좋을 것 같구요.
준식: 학교는 안가겠다는거냐?
광철: ... 예
준식: (잠시 생각하다) 음... 니가 무슨 일을 정말 하고 싶은지..
결정할때까지 같이 있도록 하자.
광철: 예...
준식, 일어나며 '슬슬- 밥을 지어볼까' 중얼거리며 숙소쪽으로 간다.
상만, 광철을 잠시 보다, 광철의 무거운 표정에 말 붙이지 못하고
준식의 뒤를 따라간다.
광철, 답답한 심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다.
씬63 어느 초라한 가게 앞(저녁)
현승, 주소를 들고 여기저기를 찾는다.
현승, '일성상사'라고 쓰인 작은 간판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하듯 들고 있던
주소와 확인한다.
현승: ...
씬64 경성은행, 외경(밤)
오가는 사람 없는 캄캄함 어둠.
경성은행, 환하게 불 밝혀져 있다.
씬65 경성은행, 내부(밤)
행원들, 정기감사 준비로 야근을 하고 있다.
한쪽에서 도시락을 먹는 행원들, 피곤해서 관자놀이를 누르며,
장부의 수치를 맞추느라 여념이 없다.
그 중에 현승, '일성상사' 대출서류와 원산비료 서류를 놓고 생각에 잠겨 있다.
행원1, 외부에서 들어온다. 행원1, 손에 서류를 들고 있다.
행원1: 계장님.
현승: 어. 어떻게 됐나?
행원1: 지금 안성에서 바로 올라오는 길입니다. 여기. (서류를
내민다)
(인서트) 서류.
안성군 안성읍 건지리 산12번지 임야 3.5정보(34,710,9m2) 매각.
11월 10일자로 소유주 김희경에서 정충섭에게로 소유권이전됨.
양도인 김희경의 후견인 이용호라고 적혀 있다.
현승,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씬66 경성은행, 은행장실(밤)
용호와 격노한 현승, 격돌하고 있다. 그 옆에 치성, 있다.
현승: 고인이 되신 은행장님의 뜻을 받들겠다는 것이 우리
경성은행을 고리대금업자로 떨어트리는 겁니까!
용호: (차갑게) 경성을 살리는 길이라면, 고리대금업자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되야겠지.
현승: 원산비료. 진성양행. 강일탄광. 유성상회. 청진상사. 한달도
못돼 은행장님 손으로 쓰러트린 회사가 얼만지나 아십니까!
이러고도 우리가 은행입니까!거래 기업의 숨통을 끊는
은행도 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겁니까!
용호: 유비서!
현승: 게다가. 일성상사는 또 뭡니까? 대체...사백만원을 어떻게
유용하신겁니까!
용호: 말조심 하게! 유용이라니! 무슨 근거로?
현승: 근거라면. (용호와 치성을 번갈아 보면서) 은행장님과
한계장님이 더 잘 아시는 일이겠지요.
용호: 무슨 소릴 하는지 알 수가 없군. 굳이 궁금하면, 돌아가신
은행장님께 여쭤보게. 무엇때문에 일성상사의 대출을
허락하셨는지.
현승: ...안성 땅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엄연히 희경이
몫입니다.
용호: 불필요한 땅을 팔아 적절한 곳에 투자하고, 재산을
증식시키는것은 후견인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물세.
현승: 은행장님!
용호: 사감이 앞서는군,자넨 지금. 내 경영방침이 싫다면...
어쩌겠나.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떠나야겠지.
현승, 용호를 노려보다 문 열고 나간다.
그런 현승을 바라보는 용호와 치성.
씬67 용호의 집, 마당(아침)
유모, 문을 열어주면 현승이다.
유모: (반색하며) 오셨어요?
현승: 희경인요?
유모: 벌써 일어나서 놀아요. 도련님이랑.
씬68 용호의 집, 거실(아침)
용호, 실내복 차림으로 신문을 읽고 있다.
재훈과 희경, 거실 바닥에 앉아 실뜨기를 하고 있다.
문, 열리고 현승 들어온다.
희경: 아저씨!
희경, 벌떡 일어나 현승에게 안긴다.
현승, '어디보자- 우리 희경이. 잘 있었어? 희경이를 한 번 안아준다.
용호, 그 모습을 보다가
용호: 이렇게 일찍 왠일인가?
씬69 용호의 집, 서재(아침)
용호와 현승, 서 있다.
용호: 좀 앉지 그러나.
현승, 말없이 사직서를 내민다.
(인서트) 사직서
용호: 성격두 급하군. 은행에서 처리해도 될 문젤 집까지 들고
오다니.
현승: 희경이는 제가 데려 갑니다.
용호: (놀라서 보면)
현승: 돌아가신 은행장님께서는 이전무님을 잘 모르셨던 겁니다.
용호: 무슨 방법으로 데려가겠단 건가? 은행장님께서 후견인으로
지목하신건 자네가 아닌 나야.
현승: 서류가 갖춰지는 데로 법원이 탄원서를 넣겠습니다.
이전무님이 희경이를 돌 볼 자격이 없다고,
후견인적부심사를 신청하겠습니다.
용호: ! (놀라는)
씬70 용호의 집, 거실(아침)
현승, 희경이의 손을 잡고 현관쪽으로 성큼성큼 간다.
정자와 재훈, 어쩔줄을 모른다.
용호: 유비서!
현승, 용호를 한 번 싸늘하게 쳐다보고 희경이를 데리고 간다.
씬71 용호의 집 앞(아침)
현승, 희경이를 데리고 나온다.
재훈, 따라 나온다.
현승: (재훈에게) 은행장님 댁에 있을꺼다. 당분간. 그리고 희경일
보러 오너라.
재훈: 예.
현승, 희경이 손잡고 걸어간다.
재훈: 희경아-
희경: (돌아본다)
재훈: 오빠가 놀러갈께- 잘 놀구 있어- 아저씨랑
희경, 웃으며 손을 흔든다.
씬72 용호의 집, 희경의 방(아침)
유모, 정자와 용호의 눈치를 보면서 희경의 짐을 챙기고 있다.
용호, 그 모습을 보면서 골똘한 생각에 잠긴다.
씬73 어느 술집, 한 방(저녁)
고급요정같은 분위기.
용호, 치성과 함께 술을 나눠 마신다.
치성: 후견인적부심사..결과가 만일 은행장님께 불리하게 작용하면...
경성은행은 ...은행장님과 저는 어떻게 되는겁니까?
용호: ...
치성: 아이들은 금방 큽니다. 유비서를 비롯해.. 이사들이 희경이를
내세우면... (답답한듯 고개를 젓는다)
용호: 전은행장의 일도 있고... 나는 말일세, 희경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네. 자넨 안그런가?
치성: 저라고 해서.. 다르겠습니까.
용호: (고개 끄덕이고) 윤리적으로도 그렇고... 희경이가 내 손에서
크는건...천륜을 어기는걸세.
치성: 유비서에게 희경이의 후견인을 넘겨 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용호: (술을 한 잔 비운다) 희경이... 그 앨 위해서 일본으로
보내세.
치성: (무슨 말인가 싶은)
용호: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끔 일본인의 손에
맡겨 키우는게 좋겠어. 그게...저한테도 좋고...우리 모두한테
최선이지. 사람을 한 번 알아보게. 믿을만한 이로.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음 더더욱 좋겠지.
치성: 알겠습니다.
용호: (혼잣말처럼) 이것도...희경이 그 아이 복이겠지.. 내손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낳을걸세.
씬74 어느 술집 앞(저녁)
용호와 치성, 나온다.
용호: 돈은 충분히 주되... 희경이가 여길 찾지 못하도록.. 끈은
틀림없이 끊어야하네.
치성: 알겠습니다.
용호와 치성, 걸어간다.
씬75 비료공장, 시험재배장(다른날, 아침)
광철과 준식, 상만, 열심히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뽑은 아름드리 배추를 몇통씩 포개서 운반하는 광철과 상만의 모습.
씬76 비료공장, 마당(아침)
광철과 준식, 상만 트럭 뒤에 실린 비료푸대를 점검한다.
트럭 뒤에, 비료와 시험재배장에서 뽑은 배추가 잔뜩 실려있다.
준식: (흙 묻은 손을 탁탁 털면서) 준비 다 됐냐?
광철: 예.
준식; 그래. 그럼 가자.
씬77 준식의 트럭 안(아침)
준식, 운전하고 있고 광철과 상만, 그 옆에 타고 있다.
준식: 일단 경성종묘상에서 저것들만 처분이 되면. 한숨 돌릴 수
있을꺼다.
상만: 그 담요?
준식; 그 다음에는 이 최준식이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줘야지.
가게도 얻고..새로 시작할 기반을 찾아야겠지.
상만: 근데...안팔림 어떡해요?
준식: 미리 걱정해서 좋을건 하나도 없다. 안팔리면...팔리게 하면
되는거고. 광철아. 앞일을 내다보지 않고 살면 우왕좌왕하기
싶다만... 너무 그것만 집착하면, 현재가 고달픈 법이다.
알겠니?
광철: 예.
준식: 사정 좀 봐주시오. 강사장. 우리가 어디 한해, 두해 거래하던
사이오.
주인: 글쎄... 아..농사철두 아닌데 뭔 비룔 팔아달라구 그러나.
준식: 그러게 싸게 내놓지 않았나.
주인: 콧구멍한 가게에 쟁여둘때두 없구 난 자신없네, 자신없어.
준식: 그러니 어쩌나. 믿을데가 예 밖에 없는걸.
주인: 직접, 팔아가던지. 건 알아서 하게. 이 말 밖에 대답해 줄
수가 없어.
광철과 상만, 준식의 딱한 모습을 본다.
광철: 저어...저희가 직접 팔아가두 돼요?
주인과 준식, 광철을 본다.
씬79 국밥집
광철, 준식, 상만 국밥을 먹고 있다.
광철: 안내문두 붙이구... 상만인 전에 약두 팔아봤구.. 할 수
있어요.
상만: 난 자신없어. 임마.
준식: (잠시 생각하다) 그래. 한 번 해봐라. 한 홉을 팔아도 좋고.
영 못팔아두 좋다. 니들이 장살 하게 될지. 뭘 하게 될진
몰라도 경험이 되겠지.
광철: 예.
준식: 조금만 내려놓고, 난 그 길로 평양종묘상으로 가야겠다.
니들끼리 원산으로 들어올 수 있지?
상만: 비룐 못 팔아두 그건 할 수 있어요.
준식: (웃으며) 그래. 그럼 밤에 원산에서 보자.
광철: 예.
세 사람, 국밥을 맛있게 먹는다.
씬80 병익의 집, 거실
현승, 후견인적부심사 탄원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인스트) 김희경의 후견인 이용호의 후견인적부 심사건에 관하여...
이런 글들이 쓰여지고 있다.
희경, 한쪽에서 무료한 듯 하품하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문, 열리고 유모와 함께 재훈 들어온다.
재훈: 희경아-
희경: (졸린 눈을 비비며 재훈을 본다)
재훈: 그동안 잘 놀았어?
현승: 어서와라.
재훈: 안녕하세요?
현승: (웃으며) 그래. 잘 왔다. 안그래도 희경이가 심심해서 심술이
났는데.
재훈: 음... 날씨가 따뜻해요. 희경이랑 소풍가두 되요?
현승: 소풍?
재훈: (고개 끄덕인다)
현승: (잠시 생각) 소풍 좋지. 그럼 우리 다 같이 창경원에나 갈까?
재훈: 예!
씬81 창경궁 안
현승,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재훈과 희경, 공놀이를 한다.
두 아이의 즐거운 모습이 보여진다.
재훈이가 던진 공이 희경이를 지나쳐 현승에게로 굴러온다.
희경, 쪼르르- 달려온다.
현승,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희경이를 보고 공을 집어준다.
씬82 창경궁, 치성 있는 곳
치성, 조금 떨어진 나무 뒤에서
예리한 눈빛으로 희경과 재훈, 현승을 지켜본다.
씬83 창경궁, 다른 곳
재훈, 희경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한다.
희경, 손에 솜사탕을 들고 먹으면서 재훈을 따라간다.
씬84 창경궁, 화장실 앞
남녀, 화장실이 구분되어 있다.
희경의 목에서 목도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지나가던 행인, 희경이의 목도리를 실수로 밟고 간다.
희경: 잉...
희경, 인상 쓰면서 짜증 부린다.
재훈, 목도리를 집어서 턴다.
재훈: 괜찮아. 얼른 갔다와. 오빠가 잘 털어주께.
희경: ... (뾰루퉁하다)
재훈: 너.. 그러다가 오줌싸개 된다~ 빨랑 변소 안가면.
희경: (인상 쓴다)
재훈: (희경이를 보다가, 자기 목에 두른 목도리를 푸르며) 그래.
그럼 잠깐만 오빠꺼랑 바꿔. 그럼 됐지?
희경: ...
희경,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재훈, 희경이의 목도리를 본다.
희경의 목도리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재훈, 손으로 털어보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씬85 창경궁, 남자 화장실 안
칸칸이 화장실이 있고, 한쪽에 수도꼭지가 있다.
재훈, 희경이의 목도리를 잡고 더렵혀진 부분을 빨고 있다.
씬86 창경궁, 여자 화장실 안
치성, 안으로 들어온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만 다행히 사람없다.
문, 열리고 희경 나온다.
치성, 희경을 바라본다.
희경, 치성을 빤히 본다.
치성, 희경이를 답싹 안아 옆구리에 끼듯하고 화장실을 재빨리 빠져 나간다.
씬87 창경궁, 화장실 근처
치성, 희경이를 안고 이목을 피한채 빠르게 움직인다.
씬88 창경궁, 남자 화장실 안
재훈, 만족한 듯 희경이의 목도리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씬89 창경궁, 화장실 앞
재훈, 희경이를 기다린다.
한참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여자화장실 입구쪽을 본다.
씬90 창경궁, 여자 화장실 안
재훈, 희경이를 부른다.
재훈: 희경아- 어딨어?
안에서 아무 소리도 없다.
재훈: (문에 일일히 노크해보고 소리 없자 열어본다) 장난 치지
말구 빨리 나와.희경아-
재훈, 마지막 화장실 문까지 열어 봤지만, 희경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재훈, 고개를 갸웃하다 밖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씬91 창경궁, 현승 있는 곳
현승, 책을 접고 생각에 잠겨 있다.
멀리서 재훈, '희경아-' 부르면서 뛰어온다.
현승, 무슨 일인가 싶어 본다.
재훈: (둘러보고, 숨을 헐떡 거리면서) 희경인요?
현승: 너랑 같이 있었잖아.
재훈: 으아! 희경이가 없어요. 화장실에두 없구.. 오는 길에두 없구.
현승,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씬92 창경궁 몽타쥬
재훈과 현승, 창경궁 안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두 사람 애타게 '희경아- 희경아-' 부르며 찾고 있다.
화장실 근처, 솜사탕 파는데, 식물원...
재훈과 현승, 갈라져서 희경이를 찾는 모습.
어느새 해가 오후로 기울어 간다.
재훈, 울쌍이 되어 희경이를 목이 터져라 부른다.
씬93 어느 시장 일각(오후)
치성과 희경, 서 있다.
희경, 많이 울어서 눈물로 얼룩이져있다.
치성, 희경이 손에 과자를 쥐어주지만, 희경 안 잡으려고 뿌리친다.
가능하면 '싫어!' 이런 말 정도 하면 좋겠다.
치성: 희경아...
희경: ...
치성: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기있으면..재훈이 오빠가 데리로
올꺼야. 알았지?
희경: ..
치성: 자- (과자를 내밀며) 이거 다 먹기 전에 오빠가 올꺼니까
착하게 가만히 있어야 해.
희경: (과자를 손에 받는다)
치성: 가만히 있을 수 있지? 오빠 올때까지?
희경: 응.. (고개 끄덕인다)
치성, 잠시 희경이를 본다.
치성, 마음이 안좋은 표정으로 희경이를 잠시 보다
머리를 쓸어주려고 손을 뻗는다.
치성, 생각바꿔 손 거두고 재빨리 사라진다.
씬94 근처 찻집(오후)
치성과 일본인 앉아 있다.
치성, 봉투 하나를 내민다.
치성: 공부시키고...결혼까지 시킬 수 있는 액수요.
일본인: (봉투를 본다)
치성: 약속대로.. 그 아이는 친딸로 키우시오. 결코...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모르게... 경성이니. .조선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리시오.
씬95 어느 시장, 희경 있는 곳(오후)
희경, 과자를 빠작빠작 깨물어 먹고 있다.
사람들 비를 피해 뛰어 다니기 시작한다.
(소리) 둥둥둥둥- 멀리서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희경, 소리나는 쪽을 흘깃 보다 소리나는 쪽으로 한걸음을 떼어 놓는다.
씬96 경성종묘앞(오후)
사람들 모여있다. 경성종묘상 주인까지 구경한다.
상만, 북을 치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광철, 쌓아놓은 배추를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비료를 설명한다.
한쪽에 쌓여있는 비료, 멍석에 풀어놓은 비료를 되로 달아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