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고전독서-시카고플랜] 사회계약설 - 홉스, 로크, 루소
홉스의 《리바이어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결말에서, 형사는 자신의 수사가 잘못됐다는 의심을 한다. 그러나 수사 결과를 번복하지는 않는다. 왜곡된 신념으로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기에 이른다. 그토록 성실히 지켜 온 커리어를 여기서 무너뜨릴 수는 없다. 형사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고 간 용의자를 진범이라고 믿기로 한다. 홉스는 인간에게서 왜곡된 신념이 발생하는이유를 인지적 부패로 설명한다. '공공의 선'이라는 가치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홉스는 이런 인지적 부패를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이 지니고 있던본능이라고 말한다. 《걸리버 여행기》의 <휴이넘> 편에 등장하는 '야후'의 습성을 예로 들 수 있다. 소설에서 야후 종족은 태초의 인류에 대한 설정이다. 모두가 나누어 먹기에 충분한 양의 먹이가 있어도, 그것을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야후들의 습성, 스위프트는 홉스의 가설을 지지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유명한 '만인에 대해 늑대'인 상태이다.
홉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과학혁명의 여파로, 역사에 등장한 모든사유에 대한 분명한 논거와 증명을 필요로 하는 풍토였다. 자연과학의 명확한 방법론을 중시했던 홉스의 성향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집필을 도왔던 개인 비서의 이력으로 대변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어떤 정치적 목적보다는 인류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다.
그가 너무 인간의 이기심만을 강조했다는 반박들도 있었고, 절대군주정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그의 정치철학을 전제주의로 규정하는 해석들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인문학사적 의의는 그가 국가의 본질을 '개인주의'와 '계약론' 관점에서 해명하려 했던 최초의 근대 사상가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는 평등하다. 평등한 조건 안에서 한정된 재화를 두고 다투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갈등과 반목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홉스는 모든 인간이 지닌 일반적인 성향에 의해 시기와 증오가 만연하게 되어 전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에 들어간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싸움 혹은 전투 행위의 존재 유무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란 '시간' 개념으로서 일정한 기간에 걸쳐 전투의지가 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다.
홉스는 이런 '전투의지'의 시간을 자연 상태로 전제하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가 없다. 하여 각자가 자기 보존의 권리인 '자연'을 추구하게 되고, 평화에 대한 욕구는 인간들로 하여금 이성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인간의 일반적인 성향을 감안한다면 자기 보존을 위한 자연권조차 이기적으로 남용할 가능성이 있기에, 사회의 합의로 이끌어 낸 결과물이 자연법이다. 그리고 이 '이성이 찾아낸 일반적 원칙'의 집행기구가 바로 국가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통치자에게 권리를 이양하고 자신들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하며, 통치자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홉스는 지배자에게 절대적 권력이 부여되지 않으면, 질서가 유지되기 힘들고 사회는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갈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절대적 권력을 상징하는 '리바이어던' 개념을 들어 쓴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욥기》에 등장하는 거대한 수중괴물로, 홉스는 이 강력한 괴물을 국가에 비유한다.
그렇다고 홉스가 국가라는 권력을 노상 두둔한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의 온갖 자만과 교만을 압도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리바이어던을 불러내어 이를 다시 거만(pride)의 왕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란 구절로 유추할 수 있듯, 그 거만으로 인간들의 오만을 중재하는,불가피한 존재라는 입장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홉스의 전제는 군주의 권한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왕권신수설과 상충하는 주장이기에, 당연히 당대 기득권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타당성이 어떠하든, 결국 리바이어던의 비유가 절대 군주제를 옹호하는 입장이기도 하기에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도 못했다. 권력자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시민들의 자유는 얼마든지 박탈당할 수 있다. 개개인의 안전을 위한다던 사회계약이 되레 구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역설, '감옥 속의 안전도 안전인가'라는 루소의 질타는 이런 모순을 향한 것이었다.
로크의 《통치론》
국가 기원에 관한 설은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는 맥락에 관한 가정이다. 중세 영국에서는 국가 기원에 관한 여러 학설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먼저 국가의 기원을 가족에서 찾는 가부장권설은 가장의 지배권이 군주권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주장이다. 왕권신수설은 신이 왕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했다는 명분으로 전제적 군주정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반면 사회계약설은 국가 기원을 계약론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계약 이전 인간은 '자연 상태'에 놓여 있었고, 자연법에 따라 시민들 사이의 계약으로 국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사회계약설에서는 국가를 개인 상호 간의 계약에 따라 왕에게 권력이 이양된 형태로 보고 있다. 존 로크가 사회계약의 담론을 보다 논리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저작이 바로 《통치론》이다. 《통치론》은 왕권신수설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다. 로크는 종교와 권력의 견고한 결합을 와해시키고, 더 나은 정치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통치론》 제1권에서는 신이 아담의 후손인 지상의 통치자들에게 신민과 영토를 부여했고, 피통치자들은 그런 통치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왕권신수설을 반박한다. 로크는 계약론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한다. 통치자의 권위는 그 모두가 아담의 후손인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체결한 사회계약에서 비롯된 것이며, 재산권 또한 공유재산인 자연의 일부에서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기에 어느 누구의 승인도 필요없다.
또한 로크는 '왕이 권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경우, 그는 더 이상왕이 아니기에 저항할 수 있다'는 저항권 사상을 명시한다. 아직까지 절대 왕정 체제가 무너지지 않은 중세 사회에서 로크의 주장은 신성모독의 죄가 될 만큼 크나큰 파장을 불러왔다. 당시로서는 꽤나 급진적이었던 사상이었던 터라, 로크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됐던 네덜란드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계약론 기저의 '자연 상태'에 대한 홉스와 로크의 해석은 판이하게 다르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은 그 어떤 통제도 없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따라서 혼란의 태초에서 벗어나고자 한 개인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절대 왕권에게 이양했다는 것. 반면 로크는 이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였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자연 상태에서의 개인들이 보다 건설적이고 조화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각자의 권리를 통치자에게 위임했다는 것. 따라서 기본적으로 권력은 계약의 주체인 개인들에게 있다.
인간은 본래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떤 인간도 자신의 동의 없이 이러한 상태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정치권력에 복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시민사회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도는 재산을 안전하게 향유하고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좀 더 많은 안전을 확보하면서, 상호 간에 편안하고 안전하며 평화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결성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로크가 살았던 당시의 영국은 암흑의 시대에서 여명의 시대로의 전환기를 겪고 있던 차였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로크는 내란의 홍역을 겪었고, 청교도 혁명을 통해 국왕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변혁과 올리버 크롬웰의 독재체제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독재체제도 오래가지 않아 무너졌고, 다시 왕정복고의 시도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그가 깨달은 사실은 결국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단순한 이치였다.
로크의 사상을 보다 공고히 한 건, 바로 의회와 왕권의 오랜 대립이었다. 하지만 결국 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최종적으로 의회가 승리하면서, 영국은 비로소 세계 최초의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한다. 한 세기 가깝게 이어졌던 정치 투쟁은 결국 새로운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산고였던 셈이다.
명예혁명의 결과로 성립된 입헌군주제는 로크에게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보였다. 그는 이 입헌군주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하며, 또한 입법부가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행정부로의 '권력분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권력 분립의 아이디어는 이후 프랑스 법학자 몽테스키외에게 큰 영감으로 작용한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학문과 예술의 발달이 풍속을 순화시키는 데 기여하는가?'라는 아카데미 현상 논문 공모전에, 루소는 학문과 예술의 발달이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킨다는 내용으로 당선이 된다. 이 논문에서 쓰인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문구는 그를 파리 사상계의 유명인사로 만든다. 이후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발표하여 사유재산제도를 비롯한 당대 사회제도 전반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17세기 과학혁명을 겪으며 자연에는 일정한 질서와 조화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이후, 인간 사회에도 그런 자연적 질서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이 확산되고, 이는 결국 18세기 계몽혁명의 기폭제가 된다. 이런 자연법과 자연권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성을 통해 인식된다. 그 자연적 권능을 토대로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성취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게 된다는 주장이 홉스와 로크, 루소에게 이어지며 체계화되어 간다.
홉스의 가정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불안에 놓여 있기에,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서로 계약을 맺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한 방향성이었다. 계약의 방식은 자연권을 전면적으로 국가에 양도하는 것이었다. 로크와 루소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평화로움으로 가정했다는 면에서는 같은 입장이지만, 로크는 통치자와의 사회적 합의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간의 계약으로설명한다. 반면 루소에게선 원천적으로 모든 인간이 동등한 입장에서맺는 계약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어떠한 이유 하에서도 다른 사람을 그의 승인 없이 복종시킬 수 없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 인간 사이의 갈등은 사회화가 되었을 때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적인 상태의 사람은 본래 이웃이나 친구를두지 않고,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며,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비로소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가 형성된다. 실상 '인간(人間)'이 고립된 채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은 아니지만, 개인이 지닌 생각과 행동에 제약이 없는 자유를 강조하고자 외부변수를 배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루소는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 평등이 보장되고, 자신의 개인 의지를 마음대로 표출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던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사회 계약도 이 연장선에서 자연 상태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성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그 정체(政體)를 실현하기 위한 동력이 '일반의지' 개념이다.
모두의 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후자가 대상으로 주의하는 것은 공동 이해인 반면, 전자는 사적 이해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는 사실 개별의지들의 합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개별의지들에서 서로 상쇄하는 상대적 차이들을 제하면, 이 차이들의 합산의 결과로서 남는 것이 일반의지이다.
루소가 말하는 사회계약은 개인의 의지가 아닌 일반의지로 구성된다. 일반의지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들이 모여진 형태가 아니라, 모두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에 대한 합의점이다. 국가와 통치자는 이 일반의지를 행하는 집행 기구이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결국엔 민주주의의 정의이기도 하다. 일반의지의 결정권은 국민 개개인이 지닌다. 이는 결코 통치자에게 양도될 수 없는, 국민이 행사해야 하는 주권이다.
주권은 일반의지의 행사일 뿐이기에 결코 양도할 수 없으며, 집합적인 존재인 주권자는 집합적인 존재 자체에 의해서만 대표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권력은 물론 이양될 수 있지만, 의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모든 개인의 의지는 개인이 행사하고, 일반의지의 합의점을 찾을때도 모든 개인의 만장일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만장일치를 통한 공공선의 채택은 불가능한 일이다. 루소 자신도 프랑스와같은 대국보다는 작은 도시국가 정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