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개신교인 862만명...' 발표 전하는 소식
2006/05/26 10:27
통계청 “개신교인 860만”… 교계 반응은 “갸우뚱”
통계에 의문 제기 “현실 받아들이고 자성하자” 의견도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인구부문)’에서 우리나라의 개신교인이 86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내세워왔던 ‘1200만 성도’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해석과 반응이 분분하다.
또 이번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각 종교별 신자수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순으로 10년 전과 변화가 없지만, 불교와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폭 하락한 반면 천주교의 비율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이번 발표에 따르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약 4천7백만명의 한국인 중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2천497만명(53.1%)에 달했다. 총인구 중 불교 인구가 22.8%(1,072만)로 가장 많았고 개신교 18.3%(861만), 천주교 10.9%(514만)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불교가 0.4%, 개신교가 1.4% 감소했고 천주교는 4.3% 증가했다.
그러나 이번 통계청 조사결과를 접한 교계 지도자들은 모두 예상 밖의 수치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기총 직전회장 최성규 목사(순복음인천교회)는 “교회가 보다 성숙했기에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기준을 교회 출석여부에 두지 않고 제자훈련을 비롯한 실질적인 신앙생활의 수준에 따라 응답한 것 같다”며 기독교인 수가 급속히 하락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또 최성규 목사는 “지금도 주변에서는 교회의 성장이 멈췄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으나 오히려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바른 인식”이라며 “교회 건물을 채우는 단순한 숫자개념에서 벗어나, 진정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고 있는 단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오덕교 총장(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도 통계청 결과가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독교인의 분포와는 다소 다르다고 말했다. 오덕교 총장은 “통계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기독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반해 이번 통계청 조사는 매우 낮은 수치로 나타났다”며 “매년 교회수가 늘고 있고 특히 대형교회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기독교인 숫자는 보다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덕교 총장은 “본인이 나름대로 접하는 통계를 볼 때 기독교인의 숫자는 1천만명을 훨씬 상회한다”며 “정부가 기독교와 가깝지 않아 다소 낮은 수치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KNCC 박경조 회장은 “통계를 절대적인 지표로 삼을 수는 없으나 기독교인의 숫자가 준 것으로 나타난 것은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교회가 이번 통계청 발표를 계기로 더욱 자성하고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6. 5. 26. 크리스천투데이 / 김대원,류재광 기자)
한국 기독교인 1300만이 아닌 862만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발표…기독교는 15만 줄고, 가톨릭은 300만 늘어
2005년 11월 현재 종교인은 249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3.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인구부문 전수집계결과'에 따르면, 이 중 기독교 인구는 전체 861만 6000명(18.3%)으로, 불교(1072만 6000명, 22.8%)에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일부 보수교계가 한국 기독교 인구를 1300만 명이라고 밝힌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한편 직전 조사(1995년 11월) 때의 결과(876만 명, 19.7%)보다 15만 명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집계돼 기독교 교세가 하락세로 접어들었음을 드러냈다.
한편 가톨릭은 514만 6000명(10.9%)으로 나타났고, 뒤이어 원불교 13만 명(0.3%), 유교 10만 5000명(0.2%) 순으로 조사됐다.
성별 종교인구를 살펴보면, 여성이 56.4%로 남성(49.7%)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여성은 60~70대, 남성은 50~60대 계층이 가장 많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의 수직성장 "눈에 띄네"
이번 통계 결과,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가톨릭 신자 수이다. 기독교가 하향세인 반면, 가톨릭은 지난 10년동안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1월 1일 현재 천주교 인구는 514만 여 명. 10년 전인 1995년보다 295만여 명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체 인구에서 천주교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10.9%로 조사돼, 10년전의 6.6%에 비해 4.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와는 불과 8% 격차이며, 신도수로 봤을 때에도 350여만 명 차이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 신자수가 줄어든 배경에 가톨릭의 성장이 여파를 미쳤는지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6. 5. 25. 뉴스앤조이 / 김용민 기자)
“기독교, 새롭게 거듭나라”
통계청 발표에 충격 받은 교계를 향한 진언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 (인구부문)’는 교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개신교 인구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그간 가졌던 통상적 이해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에 교계는 이번 통계 결과가 시사하는 바의 의미를 잘 깨달아, 그간의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계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 정도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기독교(개신교) 인구는 861만6천명으로 10년 전의 876만명보다 14만4천명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교계는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긴 하지만, 10년 전보다도 줄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 인구를 1200만 또는 1300만이라 외치며 그 ‘세’를 자랑하던 이들에게 있어 ‘860만’이라는 숫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천주교) 인구가 10년 전의 295만1천명보다 무려 219만5천명이나 늘어난 514만6천명으로 집계된 사실도 교계가 받은 충격을 보태는 데 일조했다. ‘정체 상태’로 여겨왔던 천주교의 성장세에 대한 교계의 통념이 여지없이 무너뜨려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일부 인사들은 통계의 의미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까지 나타냈다.
한 인터넷 신문 기사에 의하면 순복음인천교회 최성규 목사는 “교회가 보다 성숙했기에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기준을 교회 출석여부에 두지 않고 제자훈련을 비롯한 실질적인 신앙생활의 수준에 따라 응답한 것 같다”며 “기독교인 수가 급속히 하락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모 신학교의 총장은 “(종교 관련)통계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기독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데 반해 이번 통계청 조사는 매우 낮은 수치로 나타났다”며 “정부가 기독교와 가깝지 않아 다소 낮은 수치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심지어 이번과 같은 충격적 조사결과가 있게 한 원인을 ‘출산률 감소’에서 찾으려는 목소리마저도 들렸다.
모 신학교의 총장은 “산아제한에 동참했던 기독교계에 비해 낙태를 반대하는 천주교는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 통계의 결론”이라며 “기독교계가 출산문제를 좌시할 경우 천주교에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가 여타의 어떤 통계보다 신뢰할만한 것이기에 이번 통계가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를 잘 깨달아서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원대학교 김성건 교수는 “보통의 통계들은 표본추출방식에 의한 것으로 표본의 크기가 클수록 신뢰도 또한 높다”며 “현 시점에서 ‘2005 인구주택총조사’야말로 가장 신뢰할만한 통계”라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한국교회는 이번 통계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 근본적인 것부터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은준관 총장도 “통계란 것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이번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한국교회는 이번 통계청의 발표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김 교수는 자신도 “한국갤럽이 지난해 5월 발표한 ‘200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에 관한 조사 결과, 2004년의 천주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6.7%로 나타났는데 어떻게 1년 사이에 10.9%로 증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겼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갤럽 정지영 차장은 “종교에 관한 각종 통계를 3개월마다 내고 있는데 천주교는 기독교나 불교보다 모집단 수가 적어 대개 6-11% 사이의 수치를 나타낸다”며 “따라서 전체 인구에서 천주교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8-9% 정도로 추정한다”고 해명했다.
버릴 것 버리고, 취할 것 취하고, 본질에 충실해야
특히 이번 기회에 천주교와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냉철히 분석하고 그 원인을 밝혀, 본받을 것은 본받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신앙의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원규 교수는 “한마디로 이번 결과는 ‘기독교의 전통적 선교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기복신앙ㆍ물량주의ㆍ개교회주의ㆍ열광주의’ 등과 같은 부정적 요소들은 모두 내버려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이 교수는 “천주교가 사회로부터 어떻게 ‘정의 구현ㆍ사회봉사ㆍ사회에 대한 포용성ㆍ말보다 실천’ 등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들을 얻게 됐는지를 잘 살펴, 본받아야 할 것은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건 교수도 “갤럽이 개방형 질문을 통해서 2004년을 기준으로 주요 종교에 대한 건의사항을 수집하였던 바, 그 중 공통적인 것으로서 많은 응답자들이 ▲종교는 교세 확장의 수단으로 헌금이나 시주를 강요하지 말고 ▲사회봉사와 이웃 사랑을 실천해 주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 사회에서 여러 종교들 중 천주교가 이러한 기대감에 가장 잘 부응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왜 기독교가 종교를 찾는 사람들의 해답이 되지 못하는 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토했다.
은준관 총장 역시 “그동안 교회성장이니 뭐니 하며 개신교가 난리를 쳐왔는데 결과적으로 얻은 게 무엇이냐”며 “수평이동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을 통해 개별적으로 성장한 교회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선교라는 차원에서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오히려 ‘시간과 돈, 에너지, 이미지’만 잃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은 총장은 “이번 일을 통해 ‘성도들의 온전한 신앙을 키워주는 일에만 전념하면 비록 시간은 걸릴지라도 전도는 자연히 되게 돼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성건 교수는 “원불교가 비록 아직은 교세가 작은 종교이지만 (2005년 기준 130만 신자로) 최근 10년 사이에 무려 49.6% 나 증가하게 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원불교의 성장 원인도 천주교의 성장 원인들과 거의 비슷하리라 본다”고 밝혔다. (2006. 5. 27. 구굿닷컴 / 이병왕 기자)
개신교 인구 감소 원인을 찾아서
최근 통계청의 발표가 개신교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려하고는 있었지만 개신교 인구가 급속히 감소 추세에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개신교 인구의 감소를 단순히 종교에 대한 시대적 현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동일한 기간에 천주교와 불교, 원불교는 모두 성장했기 때문이다. 개신교 인구가 지난 10년동안 14만4천명 감소하는 사이에 천주교는 219만5천명, 불교는 40만5천명, 원불교는 4만3천명이 성장했다.
한국 개신교가 정체 상태라는 위기감은 10년 전부터 일부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이 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체가 아니라 급락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장로교에서 가장 큰 교회, 감리교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는 한국,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송한 한국의 개신교가 이젠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통계에 대해 교계에서는 교회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어 버렸다, 교인들이 성숙해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 통계에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대중집회를 통한 대량 전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티기독교 때문이라는 등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기간,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천주교가 성장한 원인은 개신교의 감소 원인을 가장 정확하게 반증해 준다.
1960년말 개신교 인구는 대략 225만, 천주교 인구는 80만이라고 추정된다. 1985년이 되면 개신교는 649만, 천주교는 186만이 된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때이다. 한국전쟁, 독재 치하에서 고통받던 한국인들에게 교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당시 종로 5가와 명동성당은 민주인권운동의 산실이었다. 당시 교회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는 선지자적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시대의 혼란기를 지나 1995년까지 개신교는 계속 성장해 876만, 천주교도 295만이 된다. 그런데 이후가 문제다. 그전까지 개신교와 천주교는 비교적 비슷한 성장율을 보이지만 1995년도부터 2005년까지 개신교는 14만이 감소하고 천주교는 이전보다 더 높은 성장율을 보이며 219만이 증가했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한국 개신교는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 천주교가 중앙중심적 시스템과 권위를 갖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 문제에 참여해 갈 때, 한국교회는 개교회 성장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이미 사회 속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되어 버린 마당에 불신자들의 마음 속에서 개신교회는 이미 떠나 버렸다.
일부 사회 참여적인 개신교회들이 있었지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대처는 커녕, 토론조차도 제대로 못했다. 근간에 발생한 배아복제 등 생명윤리문제, 사학법, 북한인권문제가 비근한 예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한국교회의 역사는 “사회문제에 적극 뛰어들어 민중의 고통을 함께 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개신교가 자기 교회 성장에만 급급하고 서로 싸우기에 바쁠 때, 천주교는 일관된 목소리를 유지하며 사회문제에 참여해 민중의 교회로 성장했다.
리더십도 그러하다. 개신교가 한창 성장할 때에는 한경직 목사 등 위대한 지도자들이 많았다. 천주교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민주화를 외치며 명동성당에 모인 학생 시위대를 경찰이 강제진압하려 할 때,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은 역사적으로 회자된다. “경찰은 성당에 오면 가장 먼저 나를 만날 것이고 그 이후엔 신부와 수녀를 만날 것이다. 당신들이 찾는 학생들은 그 뒤에 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와 신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 이날 이후 결국 6.29 선언이 발표됐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독재정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는 불안하고 사람들은 진리를 찾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개신교에는 한경직 목사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헌신적 어른을 찾기 어렵다.
또 천주교는 중앙협의체에서 사제를 파송하고 교회 건물이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사제에게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리가 적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단도 개교회의 재산을 간섭하기 쉽지 않으며 적절한 법적 장치가 없어 비리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 또 비리가 발생할 시 은혜로 덮고 사랑으로 품고 무조건 용서한 관례가 오히려 신실한 회개의 가능성까지 막아 버렸다. 이제 교회의 비리가 사회에서도 지탄받는 형편이다.
무엇보다도 천주교는 숫자에 있어서 솔직하고 전략적이었다. 개신교가 속으론 병을 앓으면서도 겉으론 성장 성장을 외치는 동안 천주교는 교세 감소 문제를 적극적,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성도 증가율을 점검하며 대책을 세워왔고 사제 양성에도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불신자들을 적극 전도함과 동시에, 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잃어버린 양’에 해당하는 냉담자들을 다시 교회로 회복시키는 일에도 적극 관심을 가졌다. 개신교가 당장 눈에 보이는 양적 성장만 추구할 때, 천주교는 질적인 내실을 기한 것이다.
개신교는 일단 교적에 등록만 되면 그 후에 그가 교회에 나오건 안나오건 성도 수로 집계해 교세를 부풀린다.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이 이중교적을 갖고 성도 수가 부풀려졌다는 숫자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적에 대한 무관심한 관리는 그 신도가 냉담자가 되었을 때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커녕 그가 어디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게 만드는 현실적 영혼 구원의 문제다.
결국 거품이 빠진 한국교회는 1천3백만 성도에서 860만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통계는 교회의 전체적인 사회참여, 리더십, 교회 개혁과 구령에 있어서 실제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런 통계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회개나 통감, 대책 없이 여전히 거품 속에서 허우적거린다면 한국 개신교계는 내년에 더욱 충격적인 통계에 경악하게 될 지 모른다. (2006. 5. 30. 크리스천투데이 / 사설)
한국교회, 미래는 있다
인구 조사 결과에 대한 개신교 관점의 분석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통계청은 2005년 11월 1일부터 15일까지 15일에 걸쳐서 실시한 인구주택 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 중 교회의 관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을 중심으로 개신교에 대하여 갖는 시사점을 따져보고자 한다.
이농 현상 심화로 농촌 목회 위기…도농 통합 네트워크 목회 모델 필요
통계청의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2005. 11. 1 현재 우리나라의 총 조사 인구는 4,728만 명으로 2000년(4,614만 명)에 비해 114만 명(2.5%) 증가, 연평균 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0년 전인 1955년(2,153만 명)보다 2.2배 증가한 것이다. 또한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인구는 2,277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8.2%를 차지하며, 2000년보다 141만 명(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인구의 수도권 편중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동 지역이 4.8%, 읍 지역이 5.0% 증가한 반면에 면 지역은 14.3%가 줄어들어 여전히 도시 지역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읍 지역의 인구증가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이고 청장년층은 감소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농촌 인구의 고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것은 갈수록 농촌 목회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농촌 교회에 대한 지원과 함께 농촌 교회들 사이에 연합 활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도농 교회들 사이에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를 해결할 도농 통합의 네트워크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노년인구 크게 증가…노인 상대 목회 모델도 필요
다음으로, 연령별 인구구조는 30대, 40대 인구가 가장 많으며, 유소년 인구가 감소하고 노년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항아리형’ 인구피라미드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계층별로 보면, 유소년 인구는 1970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고, 청장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증가율이 둔화되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71.6%)이 2000년(71.7%)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65세 이상 노년인구는 1995년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2000년의 300만 명 대 진입에 이어 5년 만에 400만 명대로 진입하였으며, 노년인구의 비중이 9.3%로 2000년의 7.3% 보다 2.0%p 증가하여 인구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경이 주를 이루었던 전통 사회에서는 노인을 포함한 대가족이 생산 활동에 참여했고 이러한 상황은 생산 활동의 주체이자 가산의 대표인 노인이 가장 존경받고 중시되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리고 농촌 사회를 토대로 한 유교 사상은 예로부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통합시키는 중요한 종교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유교가 그 사상의 토대를 상실한 현대 산업사회는 이에 걸 맞는 새로운 종교 이념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개신교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의 개신교가 근대화와 산업화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 하는 것은 많은 반성을 필요로 한다.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소외 계층으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층에 대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의 태도로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 출산은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의 산물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와 함께 최근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저 출산 문제이다. 이번 조사에서 유소년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을 봐도 저 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저 출산과 관련된 최근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임신기피의 첫째 이유는 경제적 이유 곧 양육비 부담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경제주의식 사고방식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문제를 지나치게 돈 문제로 귀결시키는 경향이 짙다.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중대한 사안을 문제시하는 것도 국가 경쟁력 약화라는 경제주의식 사고이고,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도 경제주의식 발상인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산아제한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아기를 많이 낳는 것이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하며 강요하다시피 주도하여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정부나 국가 기관에 의해 출산을 강요한다면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중심주의 인식에서 벗어나 출산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귀한 일임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공공성을 지진 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의 연구 결과, 남성중심의 사회일수록 저 출산이 심각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면서 직장이 중시되고 가정은 소비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출산과 육아는 사사로운 개인의 일이며 하찮은 일로 인식되어 왔고, 특히 출산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돼 왔다. 그러나 대부분 산업 사회의 경제는 가사 노동이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서는 어떠한가? 한국에서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일수록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이 강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당회나 기획위원회에 대한 기회는 여성들에게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교회에서 여성들은 대개 주방일이나 행사 동원 등과 같은 보조 업무를 맡고 있다. 교회 안에서 양성평등의식을 높임과 함께 가부장식 교회 구조에 대한 개선이 절실하다 하겠다.
교육은 입신출세를 위한 것? 기독교인 부모의 문제의식 절실
다음으로 교육 상태별 인구를 보면 초?중?고, 대학 등 정규학교 졸업자의 학력별 분포는 초등 및 중학교 졸업자는 750만 명(24.5%)이며, 고등학교 졸업자는 1,263만 명(41.2%), 대학 졸업 이상은 1,050만 명(34.3%)으로 조사됐다. 특히 우리나라 30세 이상 인구의 평균 교육열 수는 11.01년으로 2000년(10.24년)보다 0.77년 증가하여 고학력화 경향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교육열이 교육을 받는 당사자인 학생들의 교육열이 아니라 교육을 시키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입신출세를 위한 교육이 되지 않도록 교회 차원의 지도가 필요하리라고 생각된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최고가 되라고 가르치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고 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고 약한 사람을 배려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산업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고학력화가 진행될수록 혼인 시기는 더 늦춰지는 것이 보통이다. 교육을 마치고 결혼이 가능한 시기가 그만큼 더 늦춰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는 연령별 혼인상태가 2000년과 비교하여 미혼자 비중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서 10%이상 증가하여 늦은 결혼과 독신주의 경향을 나타냈다. 또한 이혼자의 비중은 2000년 총 조사 대비 1.1%p 증가한 것으로 조사돼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점은 이제까지 이혼에 대하여 가져온 교회의 관점을 바꾸어야 함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해 지나치게 편견을 가지고 바라봐왔다. 이혼을 한 사람은 뭔가 정상이 아니고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온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초혼자에 한해서 목사님이 주례를 해준다고 정해 놓음으로써 재혼자(이혼자)의 결혼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혼을 함으로써 가정의 소중함이 깨져버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혼은 ‘가정을 버리는 것’? 교회부터 인식의 전환 필요
그러나 이혼을 한다는 사실이 가정을 소홀히 하거나 가정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정이 소중하기 때문에 불행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혼을 권장한다거나 쉽게 이혼을 결정하라고 부추기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늘어나고 있는 이혼자에 대해 이제는 교회에서 포용력 있게 품어주고 소외되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종교에 대한 조사이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2,497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53.1%이며, 1995년에 비해 1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것을 종교유형별로 보면 전체인구 중 불교인구가 22.8%로 가장 많고, 개신교 18.3%, 천주교 10.9% 순으로 나타났으며, 3대 종교 중 불교는 3.9% 증가했고, 천주교가 74.4% 증가한 반면에 기독교는 1.6%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실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기독교 인구가 1,300만 명이라고 이야기돼온 것은 실제보다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 인구가 부풀려지는 과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대개 교회에서 교인 수에 대한 통계는 출석 교인수가 아니라 재적 교인수에 기초하고 실제로 출석을 안 한지가 오래 되어도 여전히 재적 교인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한 교회를 떠난 교인이 다른 교회에 출석을 할 경우, 그 교인은 이전 교회에서도 재적 교인수로 잡히고 옮긴 교회에서도 재적 교인수로 잡히기 때문에 교인수가 부풀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인이 또 다른 교회로 몇 번 옮길 경우에는 세 개 또는 그 이상의 교회에서 재적 교인으로 잡히기 때문에 실제 교인수보다 훨씬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교세를 과시하기 위해 재적 교인수 자체를 부풀려 보고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가정하면 기독교 인구는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각 교단에서 보고하는 교인 수를 다 합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다고 하는 웃지 못 할 얘기까지도 나오는 것이다.
기독교만 줄어들고 다른 종교 상승한 배경은?
이번 통계청의 조사를 전제로 할 때, 종교 인구에 대한 조사 결과는 한국 기독교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의 기독교가 7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기독교 인구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불교와 천주교 인구 역시 대폭 증가하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에서 보는 대로 불교와 천주교 인구는 여전히 증가했는데 유독 기독교 인구만 감소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미준과 한국갤럽이 2005년에 공동 조사한 내용을 통해서 보면, 과거에 종교를 가졌지만 현재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 가졌던 종교로 3대 종교 중 기독교가 62.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불교: 21.1%, 천주교: 16.7%). 반면에 종교인 중 개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개신교에서 12.2%로 가장 낮게 나타났고, 천주교에서는 18.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천주교인 중 과거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에 개신교로부터 개종한 사람이 57.1%로 나타났는데, 이는 98년도의 52.9%보다 다소 증가한 수치이다. 물론 이 조사에서 과거 종교를 가진 천주교인이 20여명에 불과해 일반화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흡인력이 가장 부족하고 이탈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개신교가 사회에서 공신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개신교 관련 조사에서 개신교가 공신력을 잃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원인은 개신교 지도자를 포함한 개신교 구성원들의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못하고 있으며 조직으로서의 한국 교회도 사회에서 기대하는 올바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교인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가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교인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교인 수가 아무리 많은들 성서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정신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교계 내의 반목과 갈등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흔히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지만, 보수와 진보라는 것도 역사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세속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성서라고 하는 절대성을 지닌 기준에 터하여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비판할 수 있는 초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인구 총 조사는 한국 교회에 대하여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가 사회에서의 공신력을 회복하고 올바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영합하지 않고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현실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예언자의 기능과 함께 세속 사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삶의 틀과 규범을 제시하는 사제의 기능을 충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2006. 5. 30. 뉴스앤조이)
정재영 교수
연세대학교 종교사회학 박사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최근 정부 통계청이 발표한 종교현황을 보면 불교가 1,072만 6천 명으로 전체 인구 비중의 22.8%를 차지하고 있고 다음으로 개신교가 861만 6천 명으로 18.3%, 천주교는 514만 6천명으로 10.9%, 원불교는 13만 명으로 0.3%, 유교는 10만 5천 명으로 0.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개신교 인구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불교와 천주교 신자는 크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져 개신교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이번 조사를 보면 개신교는 지난 1995년 11월 876만 6천 명보다 오히려 14만 4천명이 줄어든 반면 불교는 10년 전 1032만 명보다 약 40만 명 늘었고 천주교는 10년 전 295만1천 명보다 무려 219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개신교가 이단시 하고 있는 천주교의 비약적인 성장은 ‘놀람’ 그 자체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불교도 적지 않은 성장세를 보인 반면 오직 개신교만이 성장보다 오히려 줄어든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위기에 대한 경고로 보여진다. 개신교는 한국 최대 종교로 자부하면서 성도 1천만 시대를 넘어 1,200만을 외치던 것이 바로 어제 일이 아니던가. 그러던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은 순전히 자만에 빠진 결과이며 특히 숫자에 대한 허구를 믿고 복음전도를 등한시 하고 현재에 안주하여 편안한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확한 성도 숫자를 파악하기보다 교단마다 성도 수를 부풀려 교세를 내세우려는 교만함이 드러난 셈이다.
이 통계 자료가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국교회 허구성이다. 반면 성도가 무려 219만 명이나 증가한 천주교 경우, 사회봉사에 대한 많은 투자로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써 신앙의 순수성과 경건함을 유지하여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신뢰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끊이질 않는 목회자 지도자들의 부패한 모습과 교회의 물질적인 추구, 성적타락은 물론 세속적인 삶이 교회의 불신을 불러왔고 성도들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이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지 않았을까. 비리와 부패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어느 교회 장로 혹은 집사가 연루되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도 한국교회의 부패상을 말해 준다. 잇따라 매스컴을 통해 폭로되고 있는 목회자들의 성 스캔들이나 헌금횡령,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는 한국교회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 현실을 입증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성도는 타종교로 빠져 나간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대형교회도 텅텅 비게 될 날이 곧 올지 모른다. 교회연합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연합사업에는 협조를 하지 않은 이중성도 교회를 약화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이웃교회를 형제자매의 우애로 생각하기보다 경쟁자로 여기고 비방과 모략, 그리고 중상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이단으로 몰아 도태시켜 버리는 형상이 오늘 한국교회를 위기로 몰고 간 이유일 것이다. 사실 800여만 성도 가운데 이단 교회 성도를 빼면 실질적인 정통 교회 성도는 600만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복음전도는 멈춰있고 목회자들의 잇따른 부도덕한 행위가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2006. 6. 5. 크리스찬신문 / 사설)
통계숫자의 현실
한국교회 교인 수는 얼마나 될까, 한 1천여만명 정도, 그러지 말고 1천2백여만 명쯤으로 해두자. 언제부턴가 1천2백만 명은 이미 공식(?)화된 통계쯤으로 알고 또 그렇게 통용하고 있는 숫자다. 전체인구의 4분의 1정도라고 말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다종교국가에서 개신교인수가 이 정도면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개신교인수가 861만 6천명으로 지난 10년간 14만4천명이 줄었다고 밝혔다. 타종교(천주교, 불교 원불교 유교 등)가 한 자리 수 이상으로 성장한 반면, 개신교만이 유일하게 하향곡선을 그렸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천주교의 경우 10년 전보다 무려 74%(현재 514만6천명)의 증가추세를 보여 개신교와 대조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교인수 1천2백만명은 그동안 버블(거품)에 불과했던가. 아니면 희망숫자였던가. 무엇보다 861만 6천명 수치가 향후10년 간 어떻게 변해갈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상향, 하향 중 하나 일게 분명하다.
지금상황에서 섣부른 진단이겠지만, 숫자증가를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에 드러난 중진목회자의 도덕적 타락실태, 해외선교사의 성 추태, 부자교회 목사의 횡령사건, 목회세습 등 일련의 사태만 보더라도 쉽게 감지된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반성하고 회개하기보다는 발뺌을 하거나 감추기에 급급해 한다는데 있다. 걸핏하면 교회에 덕스럽지 않은 일이니 덮어둬라, 심지어 전도의 문을 닫게 하려는 악한세력의 음모니 귀담아 듣지 말라, 라고 밀어부치는 데에 원인이 있다.
현재 처지에 뼈아픈 회개와 자성을 갖지 않으면서 한국교회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냉철하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관심 없는 척 하지만 꼭 지켜본다. 그리고 평가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불미스러운 일이 터질 때마다 대개 감추거나 우물쭈물 넘기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누구하나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이가 없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목회자는 많지만, 불미스런 일에는 나 몰라라 등한시했던 게 사실이다.
체면세우기 좋고 얼굴 내밀어 인기 끄는 자리는 남에게 뒤질세라 뻔질나게 다녔던 것 부정할 수 없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한 복음의 소리는 결국 내부문제에 얽혀 힘을 잃은거나 마찬가지다. 복음에 무슨 설득력이 있고 어떤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기독인수 감소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오죽하면 정부여당이 당사를 찾은 기독교대표 인사에게 푸대접했겠는가.
노선과 정책사안이 다르다고 그렇겠는가. 그래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목사들인데.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것은 이미 기독교계를 별볼일 없는 종교단체로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이렇게 외면당해야 하는 것인가. 변화와 개혁, 환골탈태한다는 각오가 없으면 기독교가 추락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따르지 못한다면 먼 훗날 사회로부터 하나의 종교기관쯤으로 기억될 게 뻔하다. 한 예로 천주교의 폭발적 성장 배경에 대해 한 학자는 대표적으로 천주교의 조직력, 청렴성, 결속력과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갖춰 사회적으로 집중된 힘을 발휘했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타종교에 대해 열린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젊은층으로부터 큰 호감을 얻었다는 평도 있었다. 이에 비해 기독교(개신교)는 조직력, 청렴성, 결속력 부분이 미약한 수준이다. 통계숫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인수의 감소는 기독교를 평가하는 사회의 바로미터일 수 있다. 그만큼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861만여명의 성도를 지키위해서라도 한국교회가 다시한번 살을 도려 내는 아픔의 개혁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 (2006. 6. 5. 크리스찬신문 / 전용관 부장)
종교인구 변화에 대한 개신교의 대응 가능성
천주교는 가지고 있고 개신교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세 가지
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지난 5월 26일 ‘인구주택총조사’라고 하는 통계청에서 행한 인구 Census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조사는 매 5년마다 대한민국의 전 주택과 인구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조사인지라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가 불교, 천주교를 포함한 대한민국 3대종교 중에서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다. 2005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10년 전인 1995년도와 비교해볼 때 개신교는 1995년 876만 명으로 인구구성비에서 19.7%였는데 2005년도에 861만 1000명으로 절대적 인구에서 14만 4000명이 줄어들고 1.6%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러므로 현재 개신교는 인구구성비에서 18.3%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인구구성비에서는 23.2%에서 22.8%로 0.5%로 감소하기는 했으나, 절대숫자에 있어서는 1072만 6000명으로 40만 5000명이 증가하였으며, 천주교는 놀랍게도 295만여 명에서 514만여 명으로 219만 5000명이 증가하여 74.4%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현재 천주교는 10년 전 인구구성비 6.6% 수준에서 10.9%로 급하게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우리들에게 적지 아니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우리 개신교가 지난 몇 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간 적응되어왔기 때문에 개신교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통계는 그렇게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동안 같은 기독교 뿌리에 있는 천주교가 급격하게 성장을 하였다는 사실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우리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통계수치는 전체 종교인구의 증가이다. 지난 10년간 종교인구구성비는 50.7%에서 53.1%로 절대인구수치로 237만여 명이 증가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로 우리들에게 의미를 던져준다. 첫째는 전체 종교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개신교인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그 증가 숫자의 대부분이 천주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탈세속화이론, 교회 출석은 줄었지만 종교적 성향은 줄지 않아
지난 몇 년간 개신교인의 감소에 대해서 사람들은 몇 가지 막연한 추측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세속화 이론에 근거한 ‘종교이후기’를 주장하는 측이었다. 서구사회에서 교회가 비어가는 모습 속에서 학자들은 그간 현대사회가 종교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다. 즉 사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탈세속화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교회에 사람들이 참석하는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그들의 종교적 성향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여기에 더해서 스포츠나 연예활동과 같은 대체종교의 출현이나 명상이나 뉴에이지 같은 신흥종교의 출현은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통계는 이러한 사람들의 이론이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간 우리가 추측했던 대한민국 사회가 ‘종교이후기’로 넘어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이해임이 이 통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개신교인이 줄어들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절대적 종교 인구는 적지 아니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즉 종교를 찾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는데, 개신교만이 그들을 받아들이지도 흡수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증가인구의 대부분이 천주교로 찾아가고 있는데 우리 개신교는 그러한 유인 원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목회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간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교회주의라고 하는 한국교회 특유의 교회구조를 통하여 이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종교적 필요들에 대해 적절히 잘 대응해온 결과라고 본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으로 인해서 개신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좋은 이미지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고 그러한 영향은 개신교회 특유의 열성과 결합하여 70~80년대 급격한 성장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천주교는 현재 개신교회가 주고 있지 못한 선한 이미지를 이 한국사회에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개신교회는 그러한 장점들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찾아가는 이유
물론 관점에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세 가지 정도의 원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천주교는 종교적 색채를 가지고 있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엄숙한 의례는 오늘날 쉼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멈추어 설 수 있는 존재의 공간으로서 비쳐졌을 것이다. 더구나 결혼도 안하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살고 있는 성직자들의 모습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삶과는 다른 종교의 영역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찾고 있는 종교성은 이와 같이 영적가치를 전해줄 수 있는 구별되어진 곳이다. 천주교는 이러한 이미지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천주교가 가지고 있는 봉사적 이미지이다. 자주 언론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천주교 성직자들의 헌신적인 봉사의 소식들은 천주교가 많은 봉사를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록도에서 평생을 헌신했던 오스트리아 수녀의 이야기라든가 마더 테레사의 전적 헌신의 봉사 이야기는 천주교가 이러한 이미지들을 구축하는 데 큰 목을 담당하였다고 본다.
셋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미의 추구이다. 조용한 장소로서의 천주교회와 그 의례는 오늘날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무언가 사색이 가능한 곳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쉼이 있고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는 여가화 사회에 들어선 현대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삶의 성찰과 존재 의미의 추구 가능성은 그 무엇보다도 큰 선택요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어쩌면 개신교회와 비교한 특징일 수 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들의 장점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 적지 아니한 교회들이 이러한 반성에서부터 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타난 영성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복지관 등을 통한 봉사체제의 구축, 그리고 다양한 성인교육 프로그램들이 그러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 특유의 구조적 유연성은 이제 이러한 현대사회의 요구들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바라는 것은 한국교회가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방향으로 선회되는 것이며, 또 이러한 일들이 사회적으로 선한 이미지를 구축해서 전도의 문을 열어가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2006. 6. 1. 뉴스앤조이)
조성돈 교수는 실천신학에 사회학적 방법론을 빌려온 목회사회학이라는 학문분야를 한국에서 개척하여 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특유의 목회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번 통계청에서 나온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인구의 변화를 가지고 나름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한국교회 '성장 마이너스' 시대
통계청 2005년 인구 조사 결과 발표 "기독교인 - 1.6%"
'교세 감소'라는 한국교회의 위기 의식이 사실로 확인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함이 지적됐다.
통계청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인구부문)에 따르면 한국 사회 종교인구는 증가한 반면 3대 종교 중 기독교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발표된 종교유형별 인구 추이를 보면 총 인구 4천7백4만1천 명 중에서 종교인구는 2천4백97만1천 명으로 10년 전인 1995년에 비해 10.5%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는 8백61만6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3%를 차지해 10년전 8백76만 명에 비해 1.6%가 감소한 14만4천 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천주교는 지난 10년동안 74.4%라는 수직 증가율을 보여 기독교와 대조를 보여 한국교회의 위기감이 증폭됐다.
이번 조사 결과 불교는 10년 전에 비해 40만5천 명이 증가한 1천72만6천 명으로 나타나 종교 인구 중 1위를 기록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우려 했던 교세 감소가 현실로 드러남에 따라 교세 침체와 감소 현상의 원인을 다각도로 연구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수직 성장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아 왔으나 90년대 이후 성장률이 급감하면서 정체를 보여왔다.
그동안 기독교계는 통계청의 조사 결과와는 별도로 교단별로 집계한 자체 통계에 따라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되는 1천2백만명에서 1천5백만명을 교세로 집계해왔으나 이번 통계청 조사 결과 전체인구의 20%선을 넘지 못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2006. 6. 1. 한국기독공보 / 박만서 기자)
"교회 분열, 투자없는 미래가 자초"
가톨릭 74.4% 급성장과 대조, 전체 인구의 18.3%만 기독교인
한국 교회 '마이너스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인구부문)는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급성장을 보이며 양적인 면에서 탄탄대로를 달려 왔음을 자부했던 한국교회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이 조사 결과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종교인구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성장률 '-1.6%'를 기록했다. 불교는 3.9%로 소폭 증가했으며, 가톨릭은 지난 10년 사이에 74.4%라고 하는 급 성장을 한 것으로 보고됐다.
인구로 보면 우리 나라 전체인구는 1995년에 4천4백55만4천명에서 2000년에 4천6백13만6천명으로 증가한데 이어 2005년에는 2.5%의 증가율을 보여 4천7백27만9천명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 종교인구는 1995년에 2천2백59만8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50.7%를 차지했으나, 2005년 조사 결과는 2천4백97만1천명으로 인구 자연 증가 범위를 뛰어 넘어 전체인구의 53.1%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0년 사이에 10.5%가 증가한 수치이다. 최근에 사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원불교의 경우도 49.6%의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기독교(개신교) 인구는 10년전인 1995년까지 성장세를 보여 전체인구의 19.7%인 8백76만명을 기록했으나, 이번에 발표된 조사 결과에서는 8백61만6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8.3%로 14만4천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증감률로 보면 -1.6%를 기록했다. 이 결과는 인구 자연 증가분과 함께 분석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번 결과에 대해 기독교계는 일단 충격과 함께 그동안 한국 교회가 사회적으로나 교회 내적으로 홍역을 치뤄 온 결과로 예상된 것이라 분석했다. 90년대부터 사회적 변혁기를 지내 오는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함께 곤혹을 치뤄 왔다. 교회적인 부흥을 지향하며 7, 80년대의 성장을 주도해 왔던 보수적인 교회는 일반인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했으며, 사회 참여를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 왔던 진보 그룹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채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결국 양적인 성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지 못함으로써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90년대부터 사회적으로 강조된 사회복지 분야에서 교회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아 왔다. 이같은 원인은 결국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병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기독교란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회복지 사업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회의 공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일화 된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함으로 대외적인 홍보 활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가톨릭의 사례에서 역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이 지난 10년간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외적 신임도를 꼽고 있다. 대외적인 홍보활동을 단일화 함으로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이미지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교단 차원의 활동이 체계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교회는 최근에 대사회적인 활동에서 극우 성향을 보임으로써 젊은층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마이너스 성장의 또 하나의 이유로 꼽고 있다. 서울시청앞에서 진행된 기도회가 극우 성향과 함께 친미 성향을 보이면서 교회 내부에서 조차 비난을 받아 왔으며, 교회에 대한 안티 그룹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 교회는 극우 집단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이밖에도 성장을 겸험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부족했다는 비난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는 지난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세를 보여 왔음도 불구하고 차세대 그룹을 양성하지 못했다. 교회학교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의 지적에 의하며 한국 교회는 해외 선교 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반면에 미래의 일꾼을 키우는 투자에는 인색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가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면서 인력의 재생산 구조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정확한 통보를 확보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교단별로 조사한 내용 등을 근거로 전체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특히 교회내 통계에서 수평적 이동을 교세 집계에서 생각하지 않아 교회내 통계에는 상당수의 교인이 2중 3중의 교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조사 결과를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한국 교회는 지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006. 6. 1. 한국기독공보 / 박만서 기자)
2006년 통계청 숫자와 하나님 나라 운동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개선 없이 교세 확장은 없다
임희모 교수 (한일장신대학교)
통계청이 2006년 5월 25일 보도 자료를 통하여 밝힌 통계에 의하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한국교회 교인 수는 약 862만 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일부 교인들에게 충격을 준 모양이다. 먼저 교인수의 감소에 따른 충격으로 보이는데, 2005년에는 한미준이 갤럽과 공동으로 조사하여 발간한 『한국교회 미래리포트』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 수는 약 1,3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통계상의 차이가 큼에 따른 허세의 논란인데, 아마도 조사방법상 통계청의 숫자가 더욱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놀람은, 일부 교인들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한국교회(개신교)의 교인 수가 불교나 천주교에 비하여 증가가 되지 못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숫자만 보더라도 개신교는 숫자나 비율 면에서 떨어진데 반하여 불교나 가톨릭은 신도 수와 비율이 오히려 늘어났다. 이에 대하여 실망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2003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년에 3~4회도 아니고 불과 1~2회 정도 불교 절이나 천주교 성당이나 개신교 교회에 나가면서 신도라고 응답한 수는 총 신도수의 각각 33,1%, 7,2%, 2,8%이고, 아예 1년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 불참자도 각각 22,1%, 26,1%, 11,7%이다. 다시 말하면 각 종교 신도 수에 허수가 있는데, 불교의 경우 33,1%, 가톨릭은 26,1%, 그리고 개신교는 11,7%가 명목상의 신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계청 자료에 나타난 종교별 신도 수가 늘고 안 늘고를 따지자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논자들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하고 대안이라고 하는 것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주로 종교사회학적 접근을 통한 것인데 여기에 신학적 혹은 선교신학적 접근이 덧붙여진 총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인은 몇 년 전에 이것과 관련하여 예장(통합) 선교정책협의회에서 발제한 바가 있는데 교인 수 증가와 관련된 부분만 요약하여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교세 확장 보다는 대외적 이미지 개선이 시급
우선 생명살림의 하나님 나라라는 틀에서 민족복음화를 추진할 것을 강조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교인 수를 증가하는 전도운동이 포함된다. 교인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큰 명분이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생명살림의 민족복음화 혹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교인 수 증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한국교회의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교인 수 증가는 하나의 수단이거나 과정일 뿐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교인 수에 관심하는 전도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다양성을 이해하되 그 중점을 교인 수 늘리기와 전도에 두는 운동이다. 교인수를 늘리는 전도는 여러 부문에서 협조를 받는 총체적 입체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 선교가 여러 각도에서 진행되는 것과 같다. 생명은 다원성과 총체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생명을 구원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복음화 운동은 다원적인 선교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방법론적으로 사회봉사적 접근도 필요하고, 사회비판적 예언자적 선교도 필요하다. 시대의 징조로서 드러나는 민족 평화와 통일 선교, 지구시장화 상황에서의 선교, 생태계 보전의 선교 등이 강조되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개척교회 세우기, 특수전도, 장애인 전도만을 통하여 생명살림의 민족복음화를 실현하려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교인 수 증가를 강조하는 전도는 잃은 양 찾기 운동과 새신자 찾기 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다. 새신자 끌어들이기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고 잃은 양 찾기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2005년 한미준 통계에 의하면 개신교인의 12,2%가 과거 타종교를 믿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18,9%와 77.9%가 각각 가톨릭과 불교에서 왔다. 그러나 천주교인의 18,8%는 타종교에서 왔는데, 그 중에서 57,1%가 개신교에서 왔다는 것이다. 즉 가톨릭교인 (515만 명, 통계청 자료) 중 약 55만 명이 개신교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비종교인의 33,7%가 과거 타종교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62,2%가 과거 개신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2005년 통계청 자료의 비종교인 2,200만 명 중 대략 460만 명 정도가 과거 개신교인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비종교인의 460만 명은 한국교회에 대한 내부적 불만으로 인하여 교회를 등지고 아예 종교를 떠난 경우이다. 이것은 소위 잃은 양으로 전락한 경우인데 이들을 끌어오기 위한 전도 전략을 짤 것이 요청되고 한편으로 교회내부갱신이나 개혁이 절실히 필요함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준 통계와 별로 차이가 없는 1997년 갤럽조사 통계는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좋은 일보다는 나쁜 측면에서 영향을 더 준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교파분열이 많고, 사이비 종교성이 심각하고, 헌금의 강조와 재산다툼을 한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시대변화에 적응을 잘하여 세속적임을 보였고, 참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교세확장에 앞섰고, 지나치게 헌금을 강요하고, 믿지 않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해주지도 않고, 지켜야 할 규율을 너무 엄격히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타종교에 비하여 사회적 역할은 하지 못하고, 지도자 자질이 가장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조사통계는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이미지를 제고시켜야 할 것을 주문한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비기독교인들로부터 경원시 당하고 배척당한다면, 새신자들이 교회에 오기가 어렵고 따라서 교회가 성장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닌 소속돼 있음 직시해야
여기에서 개신교의 교회 갱신의 과제가 심각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교회 내부적 문제로서 교회갱신은 시급한 것이다. 교회가 더 이상 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교회 안의 갱신과제가 많다. 예배갱신의 문제, 설교의 질적 수준 향상의 문제, 설교의 내용의 문제, 교육과 목양(상담)의 문제, 삶과 윤리의 문제, 헌금의 문제, 목회자들의 자질과 지도력 문제 등이다.
교회의 이러한 내부적 문제들과 더불어, 교회의 구조가 선교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사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개념적 변화와 교회구조의 변화가 없다면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개신교 교회 역시 토착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토착화운동은 교회 외적 내적 갱신의 운동이다. 근본적으로 한국교회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서의 뿌리에 그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국화된 한국교회가 되지 않고는 결코 한국사회에서 다수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화 되지 못하여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다수가 된다면 한국민족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하나님 나라는 한국민족의 생명을 발현시키는 것인데, 오히려 민족의 생명 발현을 저해하거나 억압한다면 교회성장이 도대체 한국민족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자기 민족의 생명을 발현시키기보다는 생명을 억압하는 서구문화적 한국교회에 그 생명의 의지를 억지로 맞춘다면 우리민족에서 하나님 나라가 건강하게 꽃피겠는가? 한국교회는 한국 토양에서 한국민에 의한, 한국민을 위한, 한국민의 교회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따져보면 한국교회는 한국에 존재하는 미국교회 혹은 유럽교회처럼 보인다. 너무나 낯설어 보이는 이러한 한국 개신교 교회를 향하여 한국인들이 제 발로 찾아들겠는가?
끝으로 가톨릭교회의 성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분명 한국교회에 몇 가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천주교회는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교회성장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천주교회는 단일 교회이고, 대사회적 공신력이 높고, 토착화에 대한 노력이 개신교보다는 훨씬 앞서 있다. 같은 기독교이지만 개신교와 다른 모습을 지닌 천주교회라는 사실이 비신자 혹은 개신교신자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교인 수는 1976년 100만, 1985년 200만, 1992년 306만, 2000년 말 4,071,560명 이었다 (2001년 6월 28일자, 평화신문). 군부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와 인권과 정의와 평화 문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던 한국 상황에서 특히 1985년 이후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대거 천주교인으로 개종함으로서 7년 만에 106만 명이 늘었다. 사회적 공신력 확보가 교회성장에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2006년 통계청은 515만 명의 가톨릭교인 수를 공표하였다. (2006. 6. 6. 뉴스앤조이)
기독교인 감소, 올 것이 온 것인가!
정영택 목사(경주제일교회)
2005년도에 전국 인구주택 통계조사가 있었고, 그 결과가 지난달에 발표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종교인구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종교인구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의 교세를 가리키는데 불교, 천주교는 증가했음에도 기독교는 14만여 명이 감소된 통계가 나왔습니다.
드디어 교회 성장 감소의 위기, 올 것이 이미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무엇이 한국교회를 감소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고민, 그리고 대안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북이스라엘 왕국이 여로보암 2세 때에 큰 번영을 누렸지만 영적으로 어둡고 사회정의가 무너진 시대로 되어진 것처럼, 70~80년대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의 성장을 이루어온 한국교회가 오히려 영적으로 어둡고 황폐해진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인 감소의 위기를 여러 가지로 진단할 수 있으나 다음의 몇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복음에 대한 열정, 특히 복음 전파의 열정이 식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의 성장은 자연적 성장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저출산 시대이기에 자연적 성장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최근의 교회성장은 많은 경우 교인의 이동으로 인한 수평적 성장인데 이는 성장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한 영혼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전도의 열정을 많이 상실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전도의 열정을 잃으면 교회의 모든 능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둘째, 아무래도 교회의 공신력의 추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비관적 표현보다는 그렇다고 인정하고 뼈를 깎는 자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난 수년 동안 한국교회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사회 속에 많은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것이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고, 그것들이 매스컴을 통하여 공개되고 하는 과정 속에서 기독교에 대한 실망과 회의를 대중들로 하여금 갖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새로 일어서는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사회정의, 역사의식에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흔히 교회는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든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도들에게 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말씀에 근거한 기준을 주어야 하고, 그러한 책임 있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지만 지금 이 땅 위의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서 외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복음에 입각한 정의로운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지도할 책임이 교회와 그 지도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는 ‘교회 성장 감소’라는 것이 위기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이런 위기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무감각한 지도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침 1907년 한국교회 부흥운동 백주년을 맞이해서 여러 가지 행사들이 준비되고 진행되는데 여기에 발맞추어 다시 한번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위기를 맞이하고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정의 회복과 도덕성의 회복,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목회의 역량을 집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순교적 신앙의 유산으로 이러한 것을 되살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교회여!
다시 부흥을 일으킵시다!
다시 뜁시다!
다시 일어납시다!
(2006. 6. 8. 교회와 신앙)
정영택 목사
'교회와 신앙' 주필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교육목회실천협의회 운영위원장
경주제일교회 담임목사
기독교인 비율 ‘서고동저 현상’ 뚜렷
인구총조사 결과, 전북 가장 높고 제주 최저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비율은 전라북도가 26퍼센트로 가장 높고, 제주도가 7퍼센트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호남, 충남, 수도권에 비해 영남, 충북, 강원지역의 기독교인의 비율이 낮은 기독교인의 ‘서고동저 현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인구총조사 결과에서 서울시 기독교인 수는 9백76만여명중 2천2백28만31명으로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전인 1995년 1020만명중 270만명(26퍼센트) 보다 3퍼센트 포인트 줄어든 수치이다. 경기도의 기독교인 수는 1030여만명중 226여만명으로 22퍼센트를 차지했다. 경기도의 기독교인 수는 1995년 764만명중 181만명(24퍼센트) 보다 2퍼센트 포인트 줄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 수의 분포는 ‘서고동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울과 경기를 비롯해 인천(22%), 충남(20%), 대전(20%), 광주(20%), 전남(22%), 전북(26%)지역은 상대적으로 기독교인 수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경남이 304만여명 중에 23만여명으로 9퍼센트를 차지했고, 부산이 351만명 중에 36만명으로 10퍼센트선에 그쳤다. 천주교 수는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서울의 천주교인 수는 138만명으로 14%를 차지, 1995년 9% 보다 무려 5포인트나 상승한 결과를 보였다.
인천은 35만명(14%), 경기는 129만명(12%)로 나타났다. 천주교 역시 동부지역에서는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낮은 수치를 보였다.
반면 불교인 수는 기독교나 천주교와 반대로 ‘동고서저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불교세가 가장 강한 지역은 경상남도로 304만여명 중 122만여명으로 40퍼센트를 차지했다. 또 전통적으로 불교세가 강한 영남지역 중 부산이 138만명으로 39%, 대구가 82만여 명으로 33%, 울산이 42만여 명으로 40%, 경북이 88만명으로 34%로 나타났다.(2006. 6. 8. 기독교신문)
김진홍 목사 “교회성장 정체, 대형교회들 회개해야”
“바른 가치관·신앙관 운동 못 펼쳐 오늘의 현상 맞아”
통계청 조사결과 한국교회의 성장이 정체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김진홍 목사(두레교회)가 한국교회의 재도약을 위해 먼저 대형교회가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홍 목사는 14일 13만 회원에게 보내는 아침묵상에서 “한국 개신교가 지금에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철저한 자기 회개와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며 “누구보다 대형교회가 앞장서서 회개와 정화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홍 목사는 “지금처럼 한국교회의 대국민적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지게 된 원인은 첫째는 대형교회들에서 비롯됐다”며 “가톨릭교회가 사제의 질을 높이는데 정성을 쏟고 복지와 사회참여 활동 등 대사회적 이미지를 높여 나가는 일에 집중해 성장했던 비결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홍 목사는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시기에 한국교회가 ‘바로 살기 운동’을 펼쳤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김진홍 목사는 “1970년대 온 나라가 ‘잘 살아 보세’를 노래하던 시대에 교회만큼은 ‘바로 살아 보세’ 를 외쳤어야 했다”며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장기적 안목이 없어 바른 신앙, 바른 가치관, 바른 정신을 교육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상을 있게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6. 6. 14. 크리스찬투데이 / 김대원 기자)
2010년이면, 천주교가 개신교를 압도할 가능성 있어
교회성장에 가장 걸림돌은 대형교회의 비상식적인 목회자들
황규학 (교회법률상담소)
2010년에 천주교가 개신교를 압도할 가능성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집계현황을 보도한 바 가톨릭은 약 520만명, 개신교 약 860만명으로 이제 거의 340여만명 정도로 차이로 줄어 들었다. 개신교는 성장이 둔화되더니만 이제는 감소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981년도 당시 카톨릭 약 130만명, 개신교 약 800만명이었고 91년도서부터는 빠른 속도로 카톨릭인구가 증가하고 개신교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을 볼 수가 있었는데 급기야 이런 수치까지 오게 되었다. 이미 2000년도 당시의 추세를 보면 2010년 경이면 우리나라의 가톨릭인구가 개신교 인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 되고 있다.
교회의 하나됨의 모습이 어필
이런 현상에 대해서 다각도로 접근을 해야 한다. 그 중의 하나는 카톨릭의 신학이 대중에 어필한 것이다. 카톨릭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 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점이 새롭게 종교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카톨릭의 하나됨과 보편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는 개신교 교회론이기도 한다. 개신교 역시 교회의 하나됨과 보편성, 사도성, 거룩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신학적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실제로 개신교는 다양한 교파로 난립되어있어 하나됨과 보편성, 사도성이 일반대중들이나 교인들에게까지 호소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천주교의 사회참여가 성장에 큰 역할
또 다른 이유는 천주교의 사회 정의와 참여이다. 천주교는 독재정권시절, 정의사제 구현단을 조직하여 독재정권에 정면에 맞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식이나 국가관, 민족관이 투철한 젊은이들은 개신교보다는 천주교를 택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독재정권의 시녀역할을 했고, 독재자들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기도 하여 독재정권에 편승했던 것이다.
천주교는 헌금 강요하지 않아
세 번째, 천주교는 헌금을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감사헌금, 십일조 헌금등 다양한 명목을 갖고 push를 하지만 천주교는 월정 헌금 정도만을 강조한다. 특히 부흥강사들은 너무나도 많은 헌금을 강조한다. 건축을 하는 교회는 건축헌금을 강조하여 성도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천주교는 목회윤리에 있어서 한단계 우위
네 번째, 천주교는 목회윤리에 있어서 엄격하다. 우선 세습이 없다. 일단 신부들이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습을 할 수가 없고, 성공회처럼 결혼을 한다하더라도 구조적으로 세습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세습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세습과 관련해서는 왕조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에 현대의 상식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특히 요사이 벌어지는 성추행과 교회 재산 횡령등은 더더욱 많은 불신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천주교의 질적인 성직자 교육
다섯번 째, 무분별한 교단과 신학교의 난립이다. 은혜라는 미명하에 무자격 목회자를 마구 양산한 것이다. 카톨릭은 정상적인 대학을 마치고 신학을 3년 이상 공부를 해야한다. 그러나 개신교의 군소교단은 무인가 신학교 4년만 졸업하면 교단에서 안수를 준다. 목회자의 무분별한 양산이다.
그러다보니 질적으로 하락하게 된 것이다. 은혜로 무돈 것을 밀어부치게 된 것이다. 이는 제 2차 대각성 운동이 무디를 비롯한 미국부흥사들의 영향을 받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값싼 복음이 들어온 것이다. 기독교의 문화보다는 기독교의 영성과 축복, 은사, 은혜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개신교, 교회성장 영성 및 자본주의적 영성....부흥회식의 값싼 영성
이런 면에 있어서 값싼 은혜나 영성, 자본주의적 영성, 교회성장적 영성으로 성장한 대교회와 목회자들은 막판에 비복음주의로 전락한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다. 자신들의 교회는 성장시켰지만 그 교회로 인해 전체 기독교가 가져다 주는 파장은 엄청난 손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교회 목회자들은 비복음주의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교회의 교인수를 1-2만, 70만으로 만들었지만 한국기독교 전체는 수백만명이 천주교로 이동하거나 개신교를 찾지 않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기독교를 변질시킨 것이다. 기독교를 세습교, 기득교, 횡령교로 변화시켰다는 말이다.
개신교는 일부 대교회 목회자들의 정년연장, 세습, 성추행, 횡령, 사치, 억대연봉이 악재
따라서 세습, 정치적 청빙, 성추행, 횡령, 호화, 사치, 억대연봉과 관련한 교회와 대교회 목회자들이 복음전도에 가장 큰 장애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한국강단에서 아직도 활보하고 있는 한, 한국기독교의 내일은 없는 것이다. 더 이상 대형교회가 선호되는 사회가 되지를 말아야 한다. 물질이 있는 곳에, 조직과 제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부패해왔음은 교회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역사성과 사회성, 정의, 평화, 헌금강조, 성직자의 자격과 질, 신학과 교회론, 사회봉사, 상식, 종교성 등에 있어서 우위론을 차지하는 천주교가 당분간 더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6. 6. 27. 에클레시안)
"기독교인 개종자 중 57%가 가톨릭으로"
통계청 조사, 과거 기독교인 47% '현재 비종교인'
교회 떠나 비종교인으로 살아가는 ‘냉담한 기독교인’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종교인 숫자는 증가했지만 상대적으로 기독교인이 감소한 결정적인 이유라는 점에서, 한국교회가 선교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 중 53.1%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 10년 전인 지난 1995년의 50.7%에 비해 2.4%로 증가했다. 반대로 기독교인과 불교인은 1.4%와 0.4로 각각 감소했지만 가톨릭인은 4.3%로 성장했다. 이는 과거 기독교인이었다고 응답한 57%의 기독교인이 가톨릭으로 종교를 바꿨기 때문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이런 현상은 ‘비종교인의 종교성향’에서 확인되고 있다. 비종교인이라고 응답한 46.9% 가운데 과거에 기독교에 속했던 사람이 절반 이상에 이르고, 다른 종교에 한 번도 속해본 적이 없는 순수한 비종교인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독교에 속했던 비종교인들은 자그마치 2/3에 이른다. 이는 과거에 기독교인이었다가 비종교인이 된 사람이 현재의 기독교인 숫자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이다. 불교와 천주교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46.9% 비종교인 중 2/3, “한 때 기독교인이었다” 폐쇄적, 비합리적인 조직, 권위적인 태도가 ‘원인’
가장 공격적인 선교전략을 가지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회성장을 자랑해 왔던 한국교회가 왜 감소세로 들어섰을까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기독교만큼 사회에 많은 봉사 기관을 가진 종교가 없다.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조건 속에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매력을 상실했다.
이번 통계는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놀라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신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즉, 한국교회가 누구를 대상으로 전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기독교인이 교회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기독교는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비종교인이 된 이유로 한국교회의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 구조, 권위적인 태도, 시대에 뒤떨어진 성도들의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한국교회가 매주 동일한 교리를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을 뿐 삶의 수준은 다른 종교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즉, 외형적인 성장만을 강조했지 내적인 성장에 미흡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수의 삶에 비추어 오늘 우리들 삶의 문제를 중심 화제에 올리지 못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결국 교회안에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기독교인은 사람으로부터 또는 교회행정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교인을 전도하기 보다 이들을 전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국교회가 이성과 신앙 중 하나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갈 때에 교회 문 앞에서 이성의 보따리를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것. 만약 이성의 보따리를 교회로 끌고 들어가게 되면 교회로부터 배척받기가 쉽고 비신앙적 행위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이승구교수(국제대학원대학교)는 “과거에 기독교에 속했든 속하지 않았든 오늘날의 비종교인들은 학력수준이 높아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이성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머리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가슴이 신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제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도 이제는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성과 신앙이 예수에 기초를 둔 기독교적 삶을 사는 일에 있어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기독교에서 떠난 비종교인은 자꾸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경하 감독회장도 “한국교회가 수억원의 헌금을 사용하여 전도에 열을 올렸지만 가톨릭은 조용한 자세로 사람들을 기다렸을 뿐인데 결과는 상반되게 나타났다”며 “교회만이 간직한 거룩함과 정직함을 갖고 있는지 냉철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6. 7. 13.. 아이굿뉴스 / 송영락 기자)
기독교 인구 감소, 대외이미지 실추가 가장 큰 원인
한목협 설문조사 결과, 대안으로 ‘교회개혁’ 꼽아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기독교의 대외이미지 실추를 기독교 인구 감소의 가장 주된 이유로 생각하고 있으며, 개혁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교인 감소에 대한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옥한흠 목사, 한목협)가 제8회 한목협 전국수련회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인감소 현상에 대한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185명의 목회자들 중 25.41%가 최근의 통계청 조사에서 발표된 기독교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기독교의 대외 이미지 실추’를 꼽았으며, 뒤이어 ‘교회가 사회 변화를 인식하지 못함’ 21.62%, ‘각 교단의 교세보고의 거품’ 11.35%의 순으로 나타났다. 목회자들은 근래 한국 교계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로 인해 기독교의 이미지가 많이 손상된 것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사회의 변화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기독교의 경직성도 주된 이유로 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목회자들은 또 최근 통계청의 종교인구 발표에 대해 58%가 ‘염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31%는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는 반응을 보여 상당수가 이미 기독교 인구 감소를 기정사실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목회자들은 교인감소에 대한 ‘한국 교회가 가져가야 할 대안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개혁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15.32%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고, ‘교회 이미지 회복’ 14.23%, ‘기독교 사회복지, 사회정의 실현의 관심’ 12.07%의 순서로 나타났다. 한국 교회의 대안으로 개혁을 위한 노력을 첫째로 꼽은 것은 지금의 교회의 모습에 대해 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기독교 사회복지, 사회정의 실현 등 그동안 한국교회가 무관심했던 사회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기독교의 감당할 몫이라는 목소리도 높게 나타났다.
목회자의 대안을 묻는 질문에는 ‘영적 리더십’을 31.38%로 가장 높게 꼽았다. 이어 ‘도덕성 회복’ 24.74%, ‘말씀의 능력’ 16.58%로 나타났다. 말씀의 능력보다 도덕성 회복이 높게 나타난 것은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이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월 26일~27일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열린 한목협 제8회 전국수련회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응답자의 성별은 남성이 86%, 여성이 14%, 응답자 연령대는 20대 2%, 30대 16%, 40대 38%, 50대 36%, 60대 8%로 40,50대가 주를 이루었다. 직분별로는 담임목회자가 66%, 부교역자가 25%, 그 외 사모와 기관 사역자, 선교사, 기타가 각각 4%, 3%, 1%, 1%로 나타났으며, 교단별로는 진보적 성향의 성공회와 기장, 기감을 비롯해서 보수적 성향의 예장합동과 고신 등 총 13개 교단의 목회자들이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했다.(2006. 7. 21. 뉴스파워 / 조준영 기자)
언제까지 이미지 타령인가?
교인 수 감소, 남 탓하지 않는 자기 성찰 필요
김기현 목사(부산 수정로침례교회)
통계청이 지난 5월에 발표한 종교 인구 동향이 우리 기독교계 내에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876만 4000명이 기독교인라고 합니다. 1200만 신자, 적게는 1000만 신자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얼마나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가톨릭과 불교는 같은 기간에 늘어난 반면에 유독 기독교만이 줄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이 통계가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은 각 교단과 교회의 출석 교인 보고는 뻥튀기가 많았고 교계 내외의 뜻 있는 인사이 한국교회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경고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무조건 비관적으로 전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자입니까>의 저자인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는 ‘저자의 말’에서 부임한 후 2년 동안 극성스러운 조직과 전도 덕분에 184명에서 600명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급격한 성장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그는 2주간의 말미를 얻어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던 중,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과 교회가 200명에서 600명이 된 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간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도 자란 것이 아니라 살이 쪘던 모양입니다. 그 살이 빠지는 것이라면 이 조사가 한국 기독교의 우울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기독교만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가톨릭의 경우, 외관상 신자 수는 증가했지만, 실제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 ‘무늬만 신자’가 169만 명으로 전체에서 36%를 차지하고, 10년 새 두 배나 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그렇지 불교는 더 심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일 년에 겨우 사월 초파일 하루 정도 절에 들르는 신자가 부지기수인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그것도 하지 않는 불자들도 허다하다고 보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닐 듯합니다.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입과 말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중시하고, 게다가 정기적인 모임을 강조하고, 다른 어떤 종교보다 공격적인 전도와 선교 활동을 펼치는 기독교로서 신자 감소는 이만저만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타종교야 그들의 문제라고 간단히 넘기더라도 현재 한국교회 상태가 다이어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고, 식습관을 중심으로 생활 자체의 개선이 있다면 그것은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음식량을 줄인 것도 아닌데, 그리고 더 살이 찌기를 바라서 계속 식사를 더 많이 하는데도 이상하게도 살이 계속해서 빠진다면, 그것은 이상 징후일 것입니다. 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목협의 8차 전국수련회’ 참석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는 현재의 위기를 바라보는 교회, 특히 목회자들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연합뉴스>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응답자들은 기독교인의 감소 이유로 '대외 이미지 실추'(25.41%)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이어 '교회가 사회 변화를 인식하지 못함'(21.62%), '각 교단의 교세 보고의 거품'(11.35%)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보도한 <국민일보>에 따르면 한목협은 “기독교 이미지가 많이 손상된 것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고 대부분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통계청의 결과를 수용하는 입장이”이라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으나 그것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채 부정적인 면만 부각된 것도 이미지 실추의 주요인이라는 목소리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문 조사에 나타난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처방 또한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이 하는 일이 크게 두 가지라고 합니다. 진단과 처방입니다. 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환자와 그의 질병에 맞는 처방·곧 약·수술·운동 등을 처방하여 병을 낫게 합니다. 하지만 병의 원인 자체를 잘못 진단한다면, 소 뒷걸음하다가 쥐 잡은 격으로 우연히 나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리고 증세와 상관이 애초에 없었으니 큰 탈 없이 넘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병명을 나중에서라도 올바로 찾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을 도리어 악화시키기 일쑤일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설문 조사 결과 분석
왜 진단이 잘못되었을까요? 이 설문 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한 3개항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선, 각 교단·교회의 교세 보고 거품은 한국교회의 부정직·물량주의·성공주의를 반영합니다. 이는 익히 논의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와 신자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보다는 외적인 화려함을 쫓습니다. 거품과 뻥튀기가 일반화 되었습니다. 표면적 신자는 신자가 아니며 이면적 신자가 참 신자입니다.(롬 2:28~29) 그러니까 이면적 신자, 즉 경건의 모양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훈련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사회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조사에 응한 분들이 말한 사회적 변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의식의 변화인지, 사회적 환경의 변화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어쨌든 양자 모두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옛 습관과 고루한 전통에 얽매이다보니 변화에 민감하지 못했다는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교회의 위기가 사회 변화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선결 과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성입니다. 신약은 우리를 일컬어 제자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에 비해 제자라는 명칭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제자의 진정성은 스승을 본받고 따르는 것입니다. 제자의 성공과 실패는 얼마나 스승을 본받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건강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의 교회다움은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길에 철저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신자 수가 급감하고, 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한 달란트 교회가 되는 것은 우리가 복음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교회를 사용하시고 때로는 거부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예민하게 응답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구약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이 주변의 당대 문화를 기웃거린 것을 그들이 심판받은 이유라고 말합니다. 신약 역시 우리가 이 세상을 본 받거나, 사랑하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여, 급변하는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한 원인일 수 있으나, 부차적인 요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암묵적 전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전제란, 순수한 복음을 너무 완고하게 붙잡느라 세상의 변화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의 말처럼 한 손에 성경을, 다른 한 손을 신문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성경만 냅다 읽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분별조차 하지 못했다는 듯이 들립니다. 제가 보기에 정 반대입니다. 성경을 너무 안 읽고 신문만 읽었거나, 성경을 읽었지만 신문 같지 않은 신문을 탐독했기 때문입니다. 제 지도 교수가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을 해서 다들 크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목사들은 한 손에 성경을, 다른 한 손에 <조선일보>가 있다고.
재벌들이 공적인 재산을 사유화하여 자녀에게 대물림하듯이 교회도 세습을 일삼았고, 언제부터인가 목사를 목자가 아니라 CEO가 되었고, 교회는 목양이 아니라 경영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학법이나 <다빈치 코드> 영화 상영과 같은 일에 순교의 각오로 싸우는 것은 조잡한 이기주의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열 손가락으로 다 헤아리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변화를 안 따라간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따라간 것이 문제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 했습니다. 그러고도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세상을 쫓아가야 그만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이미지 실추 문제입니다. 교회 이미지, 더 정확히 말해서 실체와 별반 상관없는 부정적인 이미지 탓에 교인 수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원인을 차지했다고 하니 실로 답답했습니다. 한 마디로 실체는 그렇지 않는데 홍보를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원인으로는 첫 번째이고, 해결책으로는 두 번째를 차지했습니다. 전혀 수긍 못할 바도 없습니다. 예컨대, 영화 <다빈치 코드>를 상영 반대하는 데 특정 단체의 입장이 너무 부각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일부 물의가 빚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회봉사와 구제에 어느 종교 단체보다 기독교가 앞장 서는 것이 여러 가지 데이터가 입증해 줍니다. 그러니 억울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그 이미지는 실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타당합니다. 한국 개신교는 복음의 본연에 충실하게 살았지만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는 바람에 세상이 영 몰라주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한국 개신교는 사회적 이미지가 실추될 만한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이 나빠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다른 점을 교회 자신도, 세상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로날드 사이더가 쓴 <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은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비복음주의 교회·비신자를 상대로 한 윤리 의식과 행태에 관한 조사를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폭력, 이혼, 가정불화, 인종차별 등과 관련해서 미국의 신자들은 불신자들과 하등 다른 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가 이혼이 되었든, 물질주의, 무절제한 성생활, 인종차별, 결혼 생활에서의 신체적 학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의 부재가 되었든 여론 조사 결과는 소위 복음주의자이자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성경의 명백한 도덕적 요구에 뻔뻔스런 불순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통계 수치들은 정말 충격적이다.’(<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 18쪽)
이 결과를 미국과 전혀 다른 정황인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얼마간의 무리가 따르겠지만,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에 그리 큰 문제는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이 미국 개신교보다 낫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미국의 뒷북을 치는 경향을 살펴 보건대, 곧 따라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뚜렷한 도덕적, 윤리적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매일반이라는 것은 오늘 우리의 위기가 이미지 실추가 아니라 본질 자체가 근원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가 사과를, 무화과나무가 올리브를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주님의 말씀입니다.(마 7:17~19, 12:33~35) 주님은 우리더러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마 5:14) 빛은 어둠 가운데 찬연하게 드러나기 마련이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동네는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고, 우리의 착한 행실은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결과로 예상했던 대로 교인의 수가 급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여전히 육신의 정욕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진 것입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말입니다. 실력이 빼어난 사람은 주머니 속의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이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성령과 은혜가 충만하다면, 절로 불신자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홍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속은 비어 있는데도 이미지 타령만 한다면, 그것은 회칠한 무덤이 되는 길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예수님은 경건에 극히 중요한 세 가지 요소인 기도와 헌금, 금식을 가르치면서 누차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 하셨습니다.(마 6장) 하나님 아버지가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미지 개선한다고 교회가 부흥하고 역사가 변혁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예쁘고 아름다운 고급 페인트로 아무리 칠을 하려는 이미지 타령은 그만하고, 내 송곳을 열심히 갈아야 하겠습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내실을 튼튼히 다져야 하겠습니다. 이미지를 탓하거나 홍보 부족을 아쉬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절로 좋은 열매를 얻게 됩니다.(2006. 8. 4. 뉴스앤조이)
[출처] 통계청, '개신교인 862만명...' 발표|작성자 정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