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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한 명의 마법사가 고래 모양과 흡사한 땅 그린란드로 헤엄쳐 와 이 외진 극지방의 섬에 자신의 마법이 온통 퍼져나가길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온통 울퉁불퉁한 바위로 뒤덮인 그린란드의 한 해변가에 도착했을 때, 마치 하늘에 닿을 듯이 드높은 산들과 매섭게 추운 날씨에 저항하며 섬에 오랫동안 머무르던 영혼들을 느끼고 자신의 계획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린란드의 사람들은 그들의 광활한 영토를 ‘사람의 땅’이라는 의미의 ‘카랄리트 누네아트(Kalaalit Nuneat)’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그린란드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사람들은 4,500년 전 이누이트(Inuit) 족이었다. 하지만 수 천년 전 살인 혐의를 받고 추방당할 처지에 이르러 새로운 땅을 찾고자 했던 붉은 에리크 (Erik the Red)는 작은 그룹의 스칸디나비아인들을 데리고 아이슬란드를 출발해 이곳 그린란드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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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다 본 온통 얼음으로 가득 찬 그린란드 산의 전경
- 그는 982년 콰코르톡(Quaqortok)이라는 땅에 정착해서 얼마간 머물다가 자신이 지닌 살인죄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로 되돌아가 자신이 발견한 큰 땅에 대해 소문을 퍼트렸다. ‘붉은 에리크 연대기’를 읽어보면 그가 자신이 발견한 그 땅을 ‘푸른 땅’, 즉 ‘그린란드’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가 이 척박한 기후의 땅을 그린란드라는 매력적인 이름으로 불렀던 이유는 이런 이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대담한 마케팅은 성공을 거두어 곧 4,000명 이상의 스칸디나비아인들이 그린란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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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노르탈리크 지역의 바위산이 인상적이다.
- 흉포하기로 악명 높았던 바이킹족들은 약탈을 해 나아가면서도 그린란드의 이곳 저곳을 탐험하며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린란드의 남서부 피오르드 해안을 따라 그들은 유럽 대륙에서 데려온 양과 소들을 방목하기 시작했고 그 관습은 오늘까지 그린란드의 주요 산업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바이킹족이 순식간에 사라진 이유는 미스터리
바이킹족은 해안선을 따라 수백 개의 농장을 세웠고, 바다표범의 가죽과 바다코끼리의 상아를 유럽의 철, 목재 등과 교환했다. 붉은 에리크의 아들 레이프(Reif)는 콰코르톡에서 북동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농장을 세웠고 1000년경 탐험 끝에 북미 대륙을 발견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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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를 타고 빙하 탐험을 즐기는 경험은 흔치 않을 것이다.
- 그린란드에 도착한 바이킹족들은 이곳에서 약 4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그들은 이곳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토록 항해 기술이 뛰어나며 거친 선원이었던 그들이 종말을 맞은 이유는 아직도 많은 설명을 요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의한 것이었다는 내용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곳에 예외적으로 온화한 날씨가 시작됐을 때,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다시 그린란드에 정착해 바이킹들이 시작해 놓은 농사를 계속해 나갔고 유럽 스타일의 성당 건축도 시도했다. 1300년경, 그린란드의 날씨는 다시 혹한 기로 접어들어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캐나다 북부에서 출발해 이 땅에 도착한 이누이트족들은 그린란드에 비교적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개 썰매나 카약, 그리고 낚시나 수렵 등에 필요한 도구들을 도입했던 것도 이누이트족들이 이 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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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누이트족이 도입한 개 썰매는 이곳에서 흔한 교통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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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역사가들은 바이킹족이 이곳 정착에 실패했던 요인으로 그린란드에 있는 동식물들로 생계를 이어가려 한 것이 아니라 유럽 대륙의 것들을 도입하려 했던 것을 꼽는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최후의 날들을 보냈던 그때는 폭풍설이 몰아치지도 않았고 기근을 경험하고 있을 때도 아니었다고 한다.
콰코르톡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1408년 9월 14일 토른스타인 올라프손(Thornstein Olafsson)은 시그리드 비욘스도티르(Sigrid Bjornsdottir)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으며 그 결혼식 이후로 바이킹의 기록은 마술같이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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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형색색의 가옥이 인상적인 시시뮤트 마을.
- 남한 면적의 22배에 해당되는 거대한 그린란드의 영토에는 오늘날 5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이누이트족의 후손들이며 18세기 이곳에 도착한 덴마크 출신의 선교사들과 항해자들의 후손들도 흔한 편이다. 그린란드 인구의 대부분은 수도인 누크(Nuuk)와 빙하가 없는 서부 해안선을 따라 정착해 살고 있다. 그린란드 땅의 85퍼센트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 멋진 장관은 배나 헬리콥터 혹은 비행기를 타고 멀리서 바라 보는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 바라본 그린란드는 마치 영화 스튜디오에서 본 공상과학 영화의 한 세트같이 느껴진다. 그린란드 남부의 타세르미유트(Tasermiut) 피오르드는 보는 이의 숨이 넘어갈 만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아주 위험천만한 탐험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면 이곳은 피하라고 하고 싶다. 소름이 끼칠 만큼 가파른 화강암 절벽들과 얼음이 녹아 있는 바닷물, 빙하, 모든 것들이 이곳을 이국적인 여행 장소로 느껴지게 하지만 탐험의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