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하여
무녀독남으로 태어나 자라는 동안에도
나는 외로움의 체취를 잘 알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많이 외로웠고
어머니도 떠나시니 더 깊숙이 외로워졌다
오늘 아내가 다시 외손주 봐주러 올라가고 나니
저기, 부우연 산 마을의 등불들 한층 가깝구나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것은 고요의 바다로 가는 길목에 앉아
내게 이별주를 권하는 늙은 꽃샘바람이 아닌가 싶어
일껏 치워놓은 술상을 듬성듬성 되짚어 챙겨놓고는
다락방 한구석을 뒤져서 묵은 술 한병을 꺼내왔다,
내일은 올해의 마지막 꽃샘바람이 온다고 하니.
(2024.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