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관한 시모음 25)
3월의 언어 /홍문표
강물은
때로 호젓한 달빛이 되고
두려운 슬픔이 되고
가느다란 질투가 되고
텅빈 시간의 발끝에 매달려
히죽거리는 넋두리가 되고
흔들리는 갈대 바람이 불면
맨발로 달리는 광기
진창에 잠긴 침묵이다가
지상을 헤집는 불안이다가
거대한 체구의 식욕으로 하여
늘 상 엎드려 허덕이다가
주름진 표피로 시간을 읽고
끈끈한 귀청의 울림으로
의미를 감지하다가
어깨로 넘어오는 삼월의 언어를 줍다가
차가운 바람에 움츠리다가
아무리 이성의 비수를 세워
허무의 다리를 잘라도
아쉬움은 화폭의 여백에 번지고
한 웅큼씩 손에 잡히는
희한한 시간들이 피리를 불며
별빛 머금은 화려한 무도회
그 소란한
축제의 열기에 휩싸이다가
사랑의 연가를 불러보는
코린트식 대리석의 하얀 기둥이다가
가슴에 적체된 천년의 노래가
흔들리는 몸뚱아리
지류한 역사를 뒤척이면서
기다리다가
원망하다가
안단테로 흐느끼는 곡조이다가
3월이 오면 /장수남
아침이슬 여린 꿈
움츠린 삼월의 아기 잎 새
산울림 목멘대요.
넌. 겨울누나.
혼자 봇짐 싸니?! 눈물이
가지에 맺혀있네요.
누부야!
나. 겨울나라 따라갈 거야.
누나 등에 업혀…….
개울가 숲속엔
겨울 새 봇짐 싼대요.
누부야! 나 겨울나라 꼭
따라갈 거야.
버들강아지 눈물이
글성글성 누나 따라간다고
어제밤샘 보챘대요.
3월 /김태인
아지랑이 밟으며
들로 산으로 뛰놀던 개구쟁이 녀석
때 구정물 뒤집어쓰고 코 풍선 불며
탱자나무 둔덕 잔디에 누워 깜빡 잠들고
가시에 찔려 꼼짝 못하고
탱자나무에 걸려 있는 봄볕
가시 하나 뽑아
부풀려진 풍선에 심술
지나던 하늬바람
숨어 있던 풍선 속 겨울을
북쪽으로, 북쪽으로
3월의 마음 /이풍호
꿈속에서
어딘가를 아득히 오고가다
깨어난 새벽
마시면 기침할 것 같은
솔내음
바람에 스며들어
잎새를 돋운다.
촉촉이 젖어오는 땅위를
쉬지 않고 맨발로 밟으면
이 아침에는
생각들이 넉넉해진다.
오직 사랑하므로
살아있음이여
그리움은
그립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다시 삼월에 1 /홍윤숙
내가 어렸을 때
삼월은 봉원사 뒤뜰 깨어진 鐘身에
한오백년 묵은 상처나 슬슬 문지르며
헐벗고 굶주리고 피맺힌 강산에
목소리 죽이고 숨죽이고
버선발로 살얼음판 기어서
울아버지 한밤중 싸리 바자울 아슬아슬 넘어오듯
그렇게 앞뒤 입 막고 귀 막고 숨 터지게 왔어요
할아버지 여덟새 무명 동저고릿바람으로
만주 북간도 피멍 들어 넘나들던
객관의 주막 서러운 봉놋잠 깨울까봐
깨어서 다시 불붙는 통한의 불기둥 될까봐
제국주의 창검 아래 썩둑썩둑 잘리는 생초목 될까봐
할머니 긴 밤 심지불 돋우며
아주까리 기름등잔 바작바작 태우던
근심으로 왔어요, 눈물 한숨 단근질로 왔어요
그때 삼월은
맑은 봄날 /전영애
아직은 차가운 3월
눈부신 청명
흙밑에 엉겨 있는
생명들의 연록빛 꼬물거림이
다 어려 비칠 것 같다
그 청명을
내다본다
헐레벌떡 집 한 채를
겨우 짓고
혹은 그나마 못 짓고
죽을 내가
가는 봄 3월 /김소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설게 이때는 못 잊게,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짇
삼월도 흐른다 /정심 김덕성
냇물은
그렇게 추워 떨면서도
그제나 이제나 임을 찾아 흐른다
꿈을 안고 가면서
반짝이는 햇살이 따스하게
물결위에 내려앉으며
봄을 그린다
냇가 언덕에는
버들개지 피어나 미소 짓고
산수유 개나리 앞 다투어
고운 얼굴 내밀며 꽃 피워
탄생이 된 봄
사랑 비에
봄을 예쁘게 꾸며 놓고
3월은 아쉬움으로 흘러간다
4월에게 봄을 넘겨주고
의젓하게
춘삼월이 오면 /정심 김덕성
여명이
부유스레하게 밝아 온다
물안개 산마루에 피어오른다
들국화 깨어 기지개 편다
간간이 불어오는 찬바람이
휘감기듯이 안기며 속삭이는 솔잎
푸름을 잃지 않는 청청하고
겨울에도 의젓하다
점점 눈을 뜨는 거리
아직 고목은 한산한 옷을 걸치고
화려한 만삭의 꿈을 꾸며
길 떠난 희망의 여정
그 날을 기다리는
지친 영혼들의 한 가닥 염원
춘삼월이 오면
제비가 돌아와 희망의 봄이 올까
춘삼월 시인의 정원 /은파 오애숙
봄, 봄이 문 활짝 엽니다
산과 들녘에 봄이 왔다고
시냇물 산새들 노래 하나
잿빛 하늘속 삶의 쳇바퀴
휘옹돌이에 휩싸이다보니
듣지 못해 외면하고 있어
눈으로 보며 맘으로 듣는
나목의 수액 흐르는 소리에
자판으로 봄을 그려냅니다
시간의 쳇바퀴, 일점 일획도
흐트림 없는 시인의 정원에
물결 쳐 흐르는 생명의 소리
봄, 봄이 왔다고 마음으로
밤새 새봄의 풍경 스케치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네요
나의 하나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이다
3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춘삼월 3 /권오범
배냇적에 귀담아들었을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하늘 우러러 곤댓짓하는
아기 은행나무
겨우내 자잘하하게 접어 쟁여두었다가
오만군데 제살 찢어 밀어내
잼잼 끝에 펼친 저것은
삶의 밑거름인 쥘부채
다시 접는다는 것은 죽음이므로
꽃보라 어수선한 틈타
햇볕이 다정하게 다림질해주자
제법 가문의 티가 나 자랑스럽다
3월 /은파 오애숙
묵직하게 짓누르던
한랭전선 사라지고
봄빛이 윙크하자며
눈웃음 치는 봄이다
기~나긴 삭풍에도
숨 가삐 살아왔었던
한세월도 강줄기로
휘이얼 날려 보냈다
어제 떴던 해 아니고
들녘의 파라란 보리싹
해맑게 생명참의 노래
휘파람 부는 3월이다
3월의 바람속에 2 /이해인
필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는
꽃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
열까 말까 망설이며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쌀쌀하고도 어여쁜 3월의 바람
?
바람과 함께
나도 다시 일어서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
춘 3월 春三月 /未松 오보영
기다렸습니다
내내
당신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오셔야
몸이 회복되고
맘에 생기를 더하니까요
내겐
당신이 꼭 필요하거든요
당신이 있어야
새 힘을 얻게 되고
당신과 함께 해야
발걸음
더 힘차게 내디딜 수가 있으니까요
언땅 한길 /김영랑
언땅 한길 파도 파도
광이는 아프게 마치더라
언-대로 묻어두기 불쌍하기사
봄 되어 녹으면 울며 보채리
두자 세치를 눈이 덮여도
뿌리는 얼신 못 건드려
대 죽고 난 이 3월 파르스름히
풀잎은 깔리네 깔리네
중년의 가슴에 3월이 오면 /이채
꽃은 사람이 좋아
자꾸만 피는가
사람은 꽃이 좋아
사랑을 하네
내 나이를 묻지 마라
꽃은 나이가 없고
사랑은 늙음을 모르지
그러나
꽃의 아픔을 모른다면
사랑의 슬픔을 모른다면
쓸데없이 먹은 나이가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