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 광개토대왕~장수왕(391년~491년)
우리나라가 가장 강했던 시기중 하나다.
"차라리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은 한국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떡밥 중 하나다
광개토대왕의 강력함때문에 신라는 알아서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다.
신라는 왜구의 침략에 시달리던 약소국이었는데, 마침 이때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고구려 vs 백제+일본(왜)+가야 연합군 사이에 유명한 대결이 펼쳐지지만
이들은 고구려 하나를 당하지 못해서 무너졌다.
특히 가야는 이때 내려온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금관가야가 거의 멸망할 지경에 이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 시절이 되면 고구려가 더욱 강해져서 중국 왕조들도 고구려를 함부로 침략할 생각을 못했다.
장수왕 시절에는 속국이던 신라가 배신해서 백제와 그 유명한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저항했지만 역시나 고구려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고구려의 파죽지세로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붙잡혀 살해당하고 수도인 한성(서울)까지 빼앗기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고 만다.
2. 고구려 영양왕(598년~614년)
그 유명한 을지문덕과 살수대첩이 등장하는 시기가 바로 이 때이며 이 시절 고구려를 이끈 왕이 바로 영양왕이다.
이 시기에 고구려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은 상황이었다.
바로 중국이 수나라라는 하나의 거대한 나라로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장수왕 시절 고구려가 클 수 있었던것은 중국이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이 때쯤되면 중국이 수나라로 통일되서 고구려의 근심은 매우 커졌다.
오죽하면 영양왕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평원왕은 수나라의 침략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하고 걱정하다가
마음의 병을 너무 심하게 앓아서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구려는 598년~614년까지 수나라의 4차례에 걸친 공격을 모두 막아내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특히 폭군으로 유명한 수양제는 113만명이라는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지만 고구려의 성하나 뺏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30만명의 별동대를 평양성으로 보내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을지문덕의 고구려군은 수나라의 30만 별동대를 살수에서 전멸시켰다.
이 때 살아돌아간 수나라 군대는 2700명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고구려는 비록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 때 받은 타격이 너무 컸던 나머지
결국 신라와 연합한 당나라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멸망당했다.
3. 발해 선왕(818년~830년)
발해의 영토는 고구려보다도 컸던것으로 유명한데, 발해의 리즈시절을 이끈 왕이 선왕이다.
당나라 사람들은 이 시절의 발해를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라는 뜻으로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선왕 치세의 발해는 정치, 경제, 문화, 학문적으로 매우 찬란했다.
선왕은 당나라와 교류를 맺고 적극적인 정복활동을 통해 영토를 크게 넓혔는데,
지도에 나오는 저 영토가 선왕 시절에 완성된 것이다.
또한 교과서에 나오는 5경 15부 62주 제도를 마련한것도 선왕이다.
그러나 발해는 선왕이 죽은후 100년도 안된 926년 거란족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그리고 발해의 인구는 오히려 고구려보다도 적었다는건 함정..
4. 고려 성왕~숙종(991년~1105년)
영토는 조선보다도 작은 고려였지만 이 시절 고려는 국제적 위상이 엄청났다.
중국(송나라)과 대등한 입장에서 지낸 거의 유일한 시기이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약체로 꼽히긴 하지만, 이 당시의 고려도 싸움좀 하는 강국이었다.
당시 북쪽의 강국이던 거란과의 3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그 유명한 강감찬의 귀주대첩도 바로 이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송나라는 고려가 거란과 연합해서 자신들에게 쳐들어올까 걱정해서 고려에게 최대한 굽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실제로도 고려는 송나라에게 매우 높은 대우를 받았다.
오죽하면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가 고려 사신들의 거만한 태도에 정나미 떨어졌다고 할정도로 오히려 고려가 송나라에 갑질을 한적도 있던 시절이다.
5. 조선 세종(1418년 ~ 1450년)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주이자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워낙에 유명한데다가 업적은 말하려면 입아플정도로 많다.
정치, 경제, 문화, 국방, 천문학, 문학, 농사, 의학, 음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우선 우리가 쓰는 한글이 이 때 만들어졌고, 과학기술도 이 때는 최고수준으로 발달하였다.
측우기를 발명한걸로 유명한 장영실도 세종때 활약했다. 혼천의, 간의, 앙부일구도 이 때 만들어졌다.
한번 쯤 들어본 책들도 세종때 많이 저술되었다.
'훈민정음', '농사직설', '삼강행실도', '향약집성방', '용비어천가', '칠정산내외편' 이런 책들이 세종때 만들어졌다.
전왕조인 고려에 대한 예우(?)로 고려의 역사도 편찬하였다.
그리고 국방에서도 당시 조선을 괴롭히던 여진족을 공격해서 4군6진을 만들고 대마도를 공격해서 왜구를 혼내주었다.
번외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고도비만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폐속에서 보는 세종의 모습은 매우 날씬하게 나온편이다.
그리고 책읽는것을 너무 좋아해서 눈병이 심했으며 고혈압, 당뇨와 수전증을 앓는 등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이었다.
독서를 너무 많이 하다보니 배고파져서 고기를 많이 먹었을수도 있다.
거기에 운동하는걸 별로 안좋아했다고 하니 살이 찔 수 밖에 없다.
첫댓글 진심으로 궁금한건데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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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진짜 너무 궁금함..
66 ㅇ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냥 너무 궁금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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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는 좀 잘못 알려져있음 우린 거란을 물리쳤다기보다는 거의 군신관계였음 여진과 그랬듯이
발해가 갑자기 짧은 시기로 망한이유가 백두산의 화산폭발이 있었다는 썰이 있음 그 폭발이 너무 커서 일본에 화산재가 남아있었다는 그런 추측이 있음 발해가 해동성국이라 불릴만큼 큰나라여서 거란의 침입으로 저렇게 금방 망할수가 없다는..
엇ㅋㅋㅋㅋㅋㅋ 큰별쌤이 하신 말이다
@황 승 언 맞앜ㅋㅋㅋㅋㅋ공무원 준비로 듣고있거든
세종때 가뭄,홍수 연달아 터지고, 먹을거 없고 살기는 힘들었다고 들었음ㅜㅜㅜ 물론 저때 허수아비거왕이거나 폭군왕이거나, 탐관오리들 판쳤으면 망했겠지만.ㅋ 어쨌든 세종대왕님 하트뿅♡♡
킹..세종..더..그래이트..예..스..
우리 역사쌤은 고구려가 삼국통일은 했다면 이라는 말은 입에도 담지말라고 하셨음 역사에는 만약이라는게 없다라고하심.. 아마 지금 우리한글은 없을거고 중국어를 사용했을수도 있다고 하시긴했는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