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떨어졌는데 분양가가 왜이래?” 사전청약 포기하는 당첨자들

[김종범]

집값 오를땐 신청 몰렸지만 시세와 비슷, 역전되자 외면
작년 400대 1까지 육박한 경쟁률
올해는 40%나 계약 철회한 곳도

지난달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작년 사전 청약을 했던 ‘인천검단AA21블록’에 대한 본청약을 실시했다. 사전 청약 당첨자 811가구는 신청만 하면 당첨이 보장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320가구(39.5%)가 본청약을 포기했다. 앞서 LH가 본청약을 실시한 ‘파주운정A23블록’(당첨자 835가구)과 ‘양주회천A24블록’(612가구)도 각각 50가구, 145가구의 본청약 포기 물량이 발생했다.

당첨 포기 속출하는 사전청약자

정부가 무주택자들의 주거 불안을 완화하려 도입한 사전 청약 제도가 최근 부동산 침체기와 맞물려 수요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집값 하락세로 추정 분양가가 높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본청약일과 입주 예정일도 줄줄이 미뤄지자 무더기 청약 포기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윤석열 정부가 도심 공급을 늘리겠다고 선언해 사전 청약 당첨자들의 포기 사례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입지가 좋다고 평가받는 3기 신도시도 사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당초 예상보다 인기가 저조할 수 있다”고 했다.

◇집값 하락에 외면받는 사전 청약

사전 청약은 통상 착공 시점에 하는 청약을 1~2년 정도 앞당겨 하는 제도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에 도입했다가 흥행에 실패하며 폐기된 제도였는데 문재인 정부가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영끌’ 수요를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로 2020년 부활시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당장 주택을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동산 민심을 달래려 도입한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 같은 비판에도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추정 분양가를 책정한 덕분에 사전 청약은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LH는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약 4만가구의 사전 청약 당첨자를 뽑았는데, 작년 7월 1차 공공 사전 청약 때는 최고 경쟁률이 381대1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올 들어 전국적으로 집값이 하락하면서 일부 사전 청약 단지에서 추정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높아지는 역전 현상까지 발생했다. 아파트 값이 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시세를 기준으로 추정 분양가를 책정한 탓이다.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인천계양의 지난해 사전 청약 당시 추정 분양가는 전용면적 59㎡ 기준 3억5000만~3억7000만원이었지만 비교 단지로 꼽히던 박촌동 한화꿈에그린 59㎡ 급매물의 시세가 최근 3억9500만원까지 내려왔다. 추정 분양가가 6억7000만원대로 책정된 성남복정1 59㎡도 주변 단지인 ‘가천대역 두산위브’ 급매물이 6억5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가격 매력이 떨어졌다.

남양주 진접읍에 공급된 남양주왕숙B2 84㎡의 추정 분양가는 4억8000만원으로 책정됐지만, 인근 남양주더샵퍼스트시티 84㎡는 올해 4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작년 7월 이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5억9580만원이었다. 84㎡형이 3억7000만원에 공급된 화성태안3도 현재 주변 단지 같은 평형 호가가 3억6000만~3억900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사업 지연에 당첨 포기 계속될 듯

시세 역전도 악재인데, 본청약과 입주 예정일까지 줄줄이 연기되고 있어 앞으로 사전 청약 이탈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LH에서 받은 ‘사전 청약 공급 현황’에 따르면, 올해 본청약을 하는 사전 청약 택지 8곳 중 양주회천A24∙파주운정A23 블록을 제외한 6곳의 본청약이 당초 예정일보다 연기됐고, 입주 예정일은 8곳 모두 늦춰졌다. 파주운정A23블록의 경우 입주 예정일이 2024년 10월에서 2026년 2월로 1년 4개월이나 늦춰졌다.

입주 때까지 무주택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 사전 청약 당첨자들은 입주 예정일이 미뤄지면 자금 조달과 임차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사전 청약 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명박 정부 때도 사전 청약에서 본청약까지 최장 8년이 걸려 절반이 넘게 입주를 포기했다”며 “사전 청약과 입주까지 간극을 줄이지 않으면 결국 실패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