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터미널에서 부영아파트 단지에 이르는 조양동 7번 국도의 옛 모습이다.
이 사진의 왼편에 보이는 소나무 뒷마을이 온정리 마을이고
멀리 울산바위와 함께 보이는 왼편 마을이 논산리다.
논산리의 순박한 주민들이 부영아파트 건축으로 땅을 팔게돼
한순간에 돈벼락을 맞기도 했다.
온정리 마을도 주공4차 아파트가 들어오는 바람에 상전벽해가 됐다.
60년대말 온정리와 논산리 일대에 산재한 실개천을 따라
산대를 메고 미꾸라지를 잡으러 다니던 시절이 그립다.
당시 온정리 실개천에 철로 교각이 있었는데 이곳이 너무 깊어
물고기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너무 아쉬운 것은 경관형성을 위해 고층아파트 건축을 규제하고
미관이 중시된 아름드리 집들을 건축했으면
명실상부한 관광지 속초가 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또 지난 99년 관광엑스포를 위해 도로 확포장을 하면서
중앙분리대 만큼은 화분으로 만들어 지금과 같은 삭막감을 없앴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리어카와 자전거가 교통의 중요 수단이었던 이 시절! 순박한 교통수단만큼이나
속초사람들은 순박한 인간적 교유를 했지만 이젠 고층아파트벽 색깔처럼 너무 창백하다.
도로 양쪽에 신축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지금
속초의 새로운 중심지로 도약할 조양동의 위세가 무섭다.
이 사진을 보면서 이래저래 아쉬운 행정이다.
설악중학교와 옛 속고(지금의 속중)와 지금의 교동초교로 올라가는 추억의 언덕길이다.
70년대 동명동, 영랑동, 장사, 중앙동쪽 학생들은 공설운동장을 지나 등하교를 했지만
교동과 청학동 학생들은 이 길을 뻔질나게 오르내렸다.
겨울에 눈만 오면 대나무로 스키를 만들어 언덕위에서 신나게 내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교동3거리 초입에 큰 벽돌공장이 있었고 교동사택들이 많아
당시 많은 선상님들이 이곳에서 살아 교육1번지라고도 불렸을 정도다.
이 인근에 두부공장이 있었는데 그 집 아들이 수재라고 소문나기도 했다.
우리보다 1년 후밴데 춘고를 나와 서울법대를 3등으로 입학한 수재였다.
짜슥이 우리 친구들을 동네친구 대하듯 해 혼쭐을 내준 적도 있는 것 같다.
가가 서울법대 대학원까정 나와 사시공부를 오랫동안 했는데 결국 낙방하고
지금은 속초와 서울을 오가면서 유명한 개인과외 선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비보다.
유난히 단독주택이 많아 당시 부촌이라고들 했다나?
교동기업사 물탱크가 보이는구나...
좌측언덕밑에 있는것이 교육청 관사였는데 일본건물이었다.
이 언덕을 쭈욱 따라 가다 오른편에 미진이발관이 있었지.
학교에서 머리 찝히면 빠지게 뛰어 내려와 머리를 밀고 가던곳 기억 하는가?
맞어! 미진이발관 아저씨가 참도 야속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머리 못깎는 분이었어.
아무리 까까머리라도 좀 폼나게(?) 깎아주면 어디 덧나나?
보광자전차점 아저씨, 아줌마 얼굴이 생생하다.
이 길에서 대나무 스키 안타봤구먼!
내 기억엔 대나무 스키와 전기통신공사 케이블 매설작업을 위한 매설구 파기가
찐한 기억으로 다가 오누만!
대나무스키 절대 만천동 사람들에게 자랑마라.
이젠 4차선 대로가 됐고 여전히 차가 오르기엔 가파른 길이라 동절기
눈이라도 올라치면 가장 먼저 염화칼슘이나 모래를 뒤집어 쓰는 도로다.
속초교육의 1번지답게 아직도 학교와 교육청, 학원들이 즐비하다.
현 뉴욕제과 앞이 옛날엔 벽돌공장이었다.
공설운동장을 지나 동명동 시외터미널로 가는 우렁골 근처다.
오른쪽 담이 지금은 옹벽처리를 했고 도로포장이 된 정도로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다.
일복문화관에 공부하러 갈 때면 지나가던 길이라
비만 오면 수렁으로 변하는 이 길에 나도 애환이 좀 있다.
속여고를 지나면서 혹시나 하며 껄떡거리던 그 시절을 아시나요?
이 길을 따라 등하교를 했을 많은 동창들이여! 와 이런거 어디서 구했노?
언젠가 성북동의 <명랑이발관>편을 봤는데......
가난한 시절의 삶의 모습과 인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사진&글)이
참 재미도 있고~ 알지요?
무릎을 깁고기워 입은 바지와 찔떡거리는 검정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이
삶은 감자를 뺏고 뺏기는 이발소의 풍경이란.... 야 정말 훌륭한 자료다.
내 소아시절 생각이 억수로 납니다.
중앙국교 시절 연모씨(흥모 행님)로 부터 1:1대치 상황 장소가 보입니다.
여러분 연모 바위를 아십니까?
1972년도 척산로 입구 사진이다.
지금은 전광판이 서 있다.
쌍다리를 지나면 바로 농협연쇄점인가 농기수리쎈탄가 하는 밋밋한 건물이 있었는데.
멀리 옛 철도교각이 보이죠? 옛날엔 청초천에 수중보가 설치돼 있었다.
그때부터 여름이면 이 교각근처에서 수영을 지쳤다. 교각근처는 수심이 무척 깊어
사지를 활발히 움직여야 제대로 헤엄을 칠 수 있었다.
옛 철길이 양양 남대천 하구에서 이곳을 지나 고성 동광농공고 옆 교각을 거쳐
금강산을 통해 원산까지 갔으리라! 동해북부선 철길이 복원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지금은 길 양옆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지만 예전엔 이 길 오른편은 논밭이었다.
엑스포행사땜에 속초시에서 진짜루 허겁지겁 확장한 기념비적 도로다.
역대 최단기 도로 확장공사로 아마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우측에 있는 건물이 쌀집과 이발소였다. 농협창고는 다리 건너 아직도 창고가 있다.
포장되기 전의 이 길. 자전거 드라이브 코스였지.
학창시절 여학생과 청초천변(일명 쌍다리)을 호젓이 걷던 아스라한 옛 추억이
소록소록 피어 나누만. 교련복 입고 모의총 메고 행군도 가끔하던 길이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집이 모씨의 돼지농장이었다.
############ ( 옛 속초초교 뒷 길 )지난 1981년도 속초초등학교 뒷길 모습이다.
23년이란 세월이 지나 지금의 번영로라는 이름의
4차선 도로가 시원히 뚫려 있다.
그 옛날 그러니깐 1970년대 초중반에 속초초등학교 뒷편 마사토 절개지가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다. 또 그곳에서 해골이 출토돼 모골이 송연한 적도 많았다.
노가리촌과 이어지는 길목이라 덕장이 많았다.
학교 다닐 때 미나리밭이 있었는데 겨울만 되면
물을 대 스케이트와 빙구를 타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철사빙구와 칼날빙구가 겨루면 누가 빠른가 내기도 해보고
하루종일 빙구장에 사는 바람에 어른께 무지 혼났지만 그만 중독돼
야단도 아랑곳않고 장작불을 태워가며 얼음을 지친 기억이 있다.
속초초등학교에 개문이란 뒷문이 있었는데 그 개문이 이젠 어엿한 정문행세를 하고 있다.
만천동이다.
옛 속초교육청 뒷길로 지금은 대로가 뚫려
옛 흔적은 옛 속초교육청 건물만이 남아 있다.
옛 철도부지와 교동성당 가는 길 오른편 어귀에
조그마한 슈퍼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카다란(?) 슈퍼와
세련된 건물들이 들어섰고 그 유명한 교동3거리로 변모됐다.
만물상(고물상)이 몇해전까지 있었는데 이젠 반듯한 건물이 대신 들어섰고
교동성당옆 달동네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다.
단지 도로옆에 가려있을 뿐이지.
코드가 맞는 친구들과 유난히도 뻔질나게 돌아다닌 길 중의 하나다.
이 길로 인해서 많은 친구들을 알았다.
왜냐면 성당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예부터 이 동네에서 수재(?)들이 많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조훈외과 자리! 그 자리가 우리 친구의 집이었다는데.
전봇대 뒤로 보이는 두번째 기와지붕이 가게 "번영상회".
지금은 "번영슈퍼"(?)다.
반듯한 길을 내기전까지는 보도가 없었고,
교동성당 종탑이 보여야 되는데......좌측 자동차 뒤의 집이 좀 이상하고.????
지금은 없어진 옛 속중 담벼락이다.
담 타 넘다 혼난 눔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지금 이 자리에 문우당이 신축됐고
우체국 연수원, 피자헛, 데이콤 건물 등이 들어섰다.
7번국도와 인도사이에 이발관 표시등과 비슷한 철책이 쳐져 있는데
이름하여 군사정권 시절에 나온 가두리 정책에서 비롯된
시대적 산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 오른쪽은 우리 동넨데 진짜 변한게 거의 없다.
건물들도 대부분 그대로고 단지 좀 변화가 있다면
점포들이 하나둘씩 입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을 보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미친개 선상님이다.
옛 속중 정문앞에 청초문구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시내에 학교가 있으면 상권발달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옮겼는지는 잘 모르지만
시내 한국통신도 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점포들이 들어서면
속초시내가 한층 밝아지고 활기를 찾을텐데 안타깝다.
행인의 모습 등에서 우리시대 이전 사진같이 느껴짐....
한때는 매일같이 이 길로 리어카를 끌고 밀고 다녔었는데...
아! 말할 수 없다. 나도 부월리 조선소에서부터 교동 우리집까지
나무를 리어카에 잔뜩 싣고 이 길을 무수히도 다녔다.
쪽팔림도 무릅쓰고 리어카를 끌던 때가 있었다.
우리 시대의 사진임은 틀림이 없다. 보차도를 구분한 포스트가 그 증거다.
그림자로 보아 분명 정오에 가까운 때인데 저렇게 거리가 한산할 수가?
북한같아. 이 사진은 별로 오래된 것이 아니다,
증거로 보건소 자리,동사무소 자리가 업어졌으니...
리어카 끄는게 무슨 창피. 그 때 다 끌었다. 보건소자리 옆으로 들어가면
배 들어 오던 곳이 있는데 그곳까지 돼지밥 가지러 리어커 끌고
꽤나 다녔는데. 돼지밥 가지러 가던 가게집에 2년쯤 선배가 있었는데
세무서에 전에 근무했었는데. 속중앞 보건소는 까마득한 옛날인데......
서양식 비늘벽의 목조건물, 마당에는 우물도 있었던것 같은데......
리어카 하면 겨울철 명태덕장에 명태를 실어 날러 용돈을 충당했지.
청호동 구 동사무소 자리 근처면 가격이 얼마이고, 학교 근처이면 얼마이고,
공동묘지 근처이면 얼마다 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속중앞 보건소가 아니고 교동 동사무소다.
동사무소는 마당이 있고 보건소는 마당이 없어.
이 사진으로 보면 오래된 사진은 아니고 우리 고등학교때 사진 아닌가 싶다.
. 옛날에는 속중정문이 보건소 앞에 있었다...
길 왼편의 청초문구사 미술선생 박재혁(?)의 횡포가 기억난다 .
공설운동장과 반공, 승공, 멸공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65년 3월23일 중국 핵개발 반대 시민궐기대회를 필두로 무장공비 침투를 규탄하는 속초시민 승공대회가 69년 6월10일 김일성 화형식과 함께 공설운동장에서 있었다. 북괴만행 규탄 궐기대회 (동해안 군사분계선 남방에서 우리 경비정 제863호를 격침시킨 사건)가 74년 6월29일 역시 공설운동장에서 열렸고 육영수여사 저격사건 규탄 대회가 74년 8월28일 있었다. 같은 해 9월13일 2천여 재향군인들이 공설운동장에 모여 일본의 용공정책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가졌다. 75년 4월12일 시내 중고등학교 학생과 시청, 경찰서, 사회단체 등 5백여명이 공설운동장에 모여 퇴폐풍조 추방 궐기대회를 갖고 장발 없애기 가두캠페인과 시가행진을 벌였다. 75년 6월27일 학도호국단 발단식이 공설운동장에서 있었다. 82년 7월19일 제5마산호 납북 규탄 범도민 궐기대회가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86년 11월26엔 강산댐 구축 흉계 규탄 속초시민 궐기대회가 공설운동장에서 있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반공궐기대회와 시가행진이 동보극장과 대원극장, 제일극장과 시내에서 열렸음은 아마 그 당시에 학교 다닌 대부분은 직접 동원됐으니 잘 알것이다. 특히 교련검열대회라고 오전수업만 하던가 아니면 아침부터 교련복을 입고 공설운동장 땡볕에서 집체훈련을 하던 생각만 하면 울화통이 치민다. 연모바위있는 공설운동장 본부석옆에서 혈서를 쓰던 반공투사들은 요즘 다 뭐하는지 몰라? 한편의 코미디같은 씁쓸한 추억이 서린 공설운동장 다중집회 사진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혈서^^생각나는군.....엄청난 동원이었어~
공설운동장 본부석이 동쪽으로 옮기기전엔 서편 연모바위쪽에 있었다. 연모의 짱돌앞에 피를 흘리며 마지막 주고간 말 "연모새끼 가 ㅣ새끼"
동명동 영금정 가는 오른편 해안가가 수심도 그리 깊지않고
미역이 많이 몰려와 유년시절 물놀이하러 교동에서 원정을 다니던 곳이다.
영금정 오리바위를 몇번 왕복했노라는 영웅담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해변에서 물질하는 낙으로 걸어서 동명동을 익혔으니 말이다.
지금은 모두 매립돼 확장도로와 금강산과 백두산을 오가는 국제 여객터미널로 변했지만
그때 그 시절이 더 좋았던 것 아이가? 해일과 태풍만 오면 이 도로가 범람해
유실되는 바람에 그 당시 속초시가 안고있던 몇 안되는 재해지구였다고 하누만.
금강산 뱃길은 끊겼지만 아직 여객터미널 건물만 조립식으로 남아있다.
특히 수복탑 밑 백사장에서 젊음을 논하며 밤새껏 술을 먹다
일출을 보곤 했던 추억이 있는데 이마저도 매립돼 수복탑만 덩그라니 남아있는 형국이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던 포장마차의 추억과
무자비한 포장마차 철거작업의 비극이 오버랩된다.
#####################( 부월리 68 건조단을 아십니까? )68년 1월부터 4월까지 강우량이 불과 19미리밖에 안되는 극심한 가뭄이 계속됐다. 이 때문에 식수고갈과 농작물 미발아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안개가 자주 끼는 등 이상기후가 계속됐다. 68년 9월엔 속초항에 수십년 동안 보기드문 심한 간만의 차가 나타나 부두와 어판장이 바닷물에 침수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 해 초부터 심상치않은 이상기후가 지속되더니 결국 68년 10월24일 사상 최대의 대해일이 속초를 엄습해 3일동안 속초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68년 10월24일 새벽부터 시작된 폭우가 폭설로 변하며 폭풍과 해일을 동반한 60년이래 기상이변이 발생했다. 속초시내 1백50여채의 가옥이 침수돼 5천9백여명의 이재민을 낳았고 많은 어선들이 침몰하면서 어부들이 익사했고 곳곳의 교통과 통신이 두절돼 마비됐고 시중 쌀값이 1만2천원까지 폭등하는 등 대혼란을 겪었다. 폭풍과 해일 피해는 파손된 어선이 2천8백79척에 달했고 침몰어선 중 1백15척을 인양하기도 했다. 유실된 어선을 새로 만드는 신조작업이 68년 11월16일 조양동 청초호변 부월리에 어선건조단을 설치했다. 10톤급 동력선 1백96척과 15톤급 동력선 12척의 재해 복구어선 건조작업이 시작됐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도 어마어마한 신조작업이라 전국 각지, 특히 포항과 울산, 통영, 부산 등지의 배목수들이 대거 속초에 유입돼 결국 제2의 고향으로 속초에서 정착하게 된 계기가 바로 68해일때문이었다. 어선건조 작업이 끝난 후 이 곳은 유휴지로 전락해 한동안 쓰레기장화했다. 지금은 엑스포행사로 모두 매립돼 옛 모습은 전혀 찾을 길이 없다. 기막힌 이야기다....... 당시, 초등학교 때였는데....... 갑자기 당시의 우리반 친구가 생각나는군........ 68년이면 난 송정리(거진 부근)에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속초는 먼 거리에 있는 도시였어. 당시의 재해는 실감하지 못했고 70년대에 대해일이 더 있지 않았던가? 부월리 건조단이라! 금시 초문인데 정말 대단하군. 건너편이 청호동인가? 자료를 보니 대해일이 끊이지않고 일어났더군. 70년대도 해일피해가 극심했다. 건너편이 청호동 맞다. 이재민 돕기로 편지봉투에다 쌀을 담아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으론 68년이 가장 심했어요.......그해에 양미리가 엄청나서 여기저기 썩는내가 진동했었는데...... 68년엔 눈도 무지하게 왔다. 철둑길은 쌓아올린 눈이 처마보다 높았다. 허름한 집은 지붕도 무너저내리고...... 68해일때 목수들이 배 건조사업으로 재미가 좋았다더군. 요즘도 청학동에 그런 배 공장이 아직 있나? 그 해가 이승복 죽은해며, 내가 청호학교 다녔는데 부월리로 피난가기도 했었다. 당해 보지 안은 사람은 잘 모를 거다. 이 때에 새마을 주택이 생겨났구, 조양동에 과부촌이 생겨났지... 정확히 알고 있군. 청호동에 까만데가 연탄공장이다. 니들은 어려서 잘 모를 거다... 청호동에서 68해일을 맞은 산 증인이다. 새벽에 누나, 형과 같이 피난을 갔다. 금호동 이모댁으로, 피난가는 도중 옛 청호동사무소쪽을 지나는데 냄새가 엄청나서 겨우 지나간 기억이 있다. 재래식 화장실이 넘쳐 냄새가 진동. 또한 하꼬방집 부엌으로 바닷물이 엄청. 해일 이후에 동명동길이 파도에 절단 난 모습이 생각난다. 우린 바다가 놀이터 였었지.
###########################( 구 , 중앙극장 - 현, 중앙극장은 아님 )
옛날 중앙극장은 그래도 꽤 재밋는 영화를 상영한 것으로 기억된다.
극장 좌우측 벽면에 다음 프로에 대한 흑백사진들이 가지런히 배치돼있어
고거 보는 맛도 짭짤했다. 고등학교땐가 KBS라디오에서 각 학교를 탐방하면서
지금의 도전! 골든벨을 울려라와 비슷하게 좌담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이계진아나운서가 사회를 본 행사를 중앙극장에서 한 기억이 가물거린다.
물론 퀴즈프로는 아니었고 아마 내가 알기로는 이계진 아나운서가 KBS에 입사한 후
첫 출연 프로가 바로 속초고교 녹화였다는 후문임.
캬! 그때 초짜배기 아나운서가 세월이 흐르니 국회의원으로 나오니 거참!
유수같군! 인생무상이다. 중앙극장 앞에 전당포가 있었는데
부친 시계(아마 금장 로렉스였을 걸?)를 전당포에 저당잡히고 돈을 빌었는데
그때 꽤나 잘먹고 중앙극장서 영화 한편 때리고 했는데. 근디 시계를 찾았는가 몰러?
심야의 결투도 봤는데..."바람과 함께 사리지다"를 상영한 명문 극장이지.
당시 녹음한(녹화가 아니다) 방송 타이틀이 생각이 안나는데, "우리들 세계"는 아니다.
그건 TV 방송이었어. 방송 주제는 "우정"이었는데 좌담자 가운데 누가
"우정"이란 말은 "울정"과 "웃정"에서 자음 탈락된 말이라고 하던 생각이 난다.
기억력이 탁월하다못해 경탄할만하다. 와! 어찌 그때 일을 그리 생생히 기억한단 말인가?
그 방송 시작하기 전에 관동대학교 음악대학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었다.
곡목은 오펜 바하의 "천국과 지옥" 더 똑똑하지? 중앙극장에 중학교때 영화구경 갔다가
기술선생(성함 생각안남, 객관식세대라 이런 경향이 높음, 최진철선생님은 아님)한테
걸린 적이 있음. 당시 기술 선생님? 1학년 때는 분명 박승희 선생님. 최진철 선생님이
아니면 최형구? 이형구? 별명이 "못난이"가 아니었던가?
덕장들이 즐비한 이곳을 지나노라면 생선냄새가 진동을 했지. 멀리 속초초등학교 건물이 보이고 교동성당 종탑도 희미하게 보이는구나. 이 일대가 개발돼 도로는 물론 대형 마트와 아파트촌이 들어서 상전벽해를 이루고 있다. 덕장을 엮은 저 비계목을 "고랑떼"라 했지. 우측에 뒹구는 건 연탄재가 아닌가? 맞어 고랑때와 연탄재가. 원래 이 지역이 좀 지저분한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세히 보니 멀리 얼룰 얼룩 한 것이 구름이 아니라 설악산이로군. 정말 대단한 산이야! 노가리촌 골목길로 걷다보면 발아래로 깔려있는 아스라한 집들도 많았었는데...... 중학교 때는 중앙시장에서 반찬장사 하시던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ㅇㅇㅇ 친구네 집에 자주 들렀는데 이름도 기억 못하겠네....
1966년5월9일 금호동 482-18번지에 설립된 대원극장.
HID대원들이 빨간 배레모를 쓰고 집단적으로 입장하면
그 순간 대원극장안은 온통 공포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극장주위에 스텐드빠도 있었다.(그냥 있었다구요)
지금은 대원마트에서 다른 이름의 마트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얼마전 동보극장 건물이 헐림으로서 이제 옛 극장건물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됐다.
제대로 된 극장 하나가 아쉬운 속초다.
얼마전 대원 한아름마트가 부도처리되면서 지역경제에 주름살을 한꺼풀 더 덧씌웠다.
고등학교 2학년(77년) 7월경 토요일 방과후 자습할 때
땡땡이 쳐서 대원극장에서 벽과벽 사이(정영숙주연)를 관람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한데......
명화의 전당이었지."벤허"를 여기서 봤지?
지금 속초에는 극장이 없나? 허름하고 너무 초라하기만한 소극장인 중앙극장이
중앙시장 초입에 1개 있지. 이 건물은 옛 조명상회집 주인이다,
17회에 윤양균 선배집이기도 하지...그러나,쫄라당~~~ .
대한뉘우스와 월남뉘우스를 보던 생각이 난다.
근래에 월남을(사이공에 있는 전쟁박물관.구찌터널등)가 보니
승전국답게 미국과 우리를 쪽 팔리게 만들더군.
예부터 비만 많이 오면 미꾸라지 잡으러 개울가를 이잡듯 뒤졌다.
글구 추어탕 한따까리하면 몸보신에 최고였다.
쬐꾀만게 그때부터 보양식을 밝혔으니 음....
암튼 이 개울도 우리 사정권내에 있던 몸보신의 충분한 공급처였다.
허나 이를 어쩌랴! 85년 2월2일 교동 택지 진입로(만천로) 개설공사로
이 개울은 영원히 우리곁에서 작별하고 말았다.
복개가 됐는지 아님 모두 매립을 시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청계천 복원사업을 보면서 이 개울에 대한 향수가 절로 나는건 무슨 연유일까?
연장 4백50미터 너비 25미터 도로로 개설돼 지금은 속초학생체육관과 아남프라자 사이를
관통하는 속초의 주요 도로중 하나가 됐다.
내 기억으론 이 하천이 비만 많이 오면 범람해
이 일대 침수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 곳은 늪지로 지대가 워낙 낮아 침수를 막을 방법이 없는 곳이다.
지금도 비만 오면 도로에 빗물이 흥건히 괴어있다.
유일택시와 현대정유 사이 연결되는 개울도 현대정유에서 복개해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이 길은 당초 엑스포장과 직선길로 예정돼있었으나 주유소측의 반대로
지금과 같은 기형적인 지그재그식 길이 되고 말았다.
미꾸라지보다 온고지가 더 많았다.
좌측 건물이 체육관인가? 그렇다면 이 개울이 그 시절의 "작은 다리"가 아닌지?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70년 중반 경의 사진같은데......
그래 맞고 ,맞고요~~체육관 부지를 우리가 메우고 ,사역을 했는데 밀가루는 안주더라...
맞아 이런 시절이 있었어. 이길로 나는 쌍다리 콩나물집에 새벽으로 콩나물 사러 갔었다.
우리집이 조그만 구멍가게 하던 시절에 말야. 그 콩나물 공장에 나도 갔었지.
거기서 너도 봤다. 콩나물아저씨, 얼마전에 돌아가셨다 . 그랬구나.
그 콩나물 집에 1년 위인 키 작은 선배놈 하나 있었고, 그 위에 3년쯤 위인 형도 있었어.
맞냐? 그래 ,막내가 속초 하나은행에 근무한다.
#################################### (동 보 극 장)
동보극장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찌린내다.
화장실이 부실했는지 아님 진짜루 아그들이 극장에 들어와
오줌을 아무데나 갈겨댔는지는 알길이 없으나
그 시대상황을 보면 후자쪽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동보극장은 영화프로도 극장냄새에 어울리는
꾸리한 프로를 가져다 상영한 것으로 기억된다.
개구멍을 통해 무료입장을 시도하던 친구들이 아마 많을 것이다.
특히 동명동 역전패들이 역전의 용사 기질을 그대로 발휘한 건 아닐까?
동보극장은 원래 현대극장에서 출발해 속초에서 제일가는 극장이었으나
제일극장과 중앙극장, 그리고 대원극장이 등장하면서 점차 경쟁에서 밀려
종국엔 3류극장으로 전락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얼마전까지 그 자리에 볼링장과 나이트클럽이 명맥을 유지했지만
이마저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
시네마천국을 보면 옛날 현대극장에서 벌어진 일과 흡사한 일들이 많았어.
추억이 주마등처럼 내 마음속에서 흐르더구먼.
그 찌린내의 요인은 부모들이 같이 댈고 온 아들을 그냥 그 자리에서
볼일을 보게한거 때문이고, 또한 자주 소독작업을 안 한 까닭이다.
기억할런지... 바다쪽으로나가면 조그만 개구멍이 있었지.
개구멍을 통과하면 바로 무대 끝 몸 하나 빠져 나가면
바로 앞 좌석 휘장을 걷고 나가는 순간 붙잡혔지 얼마나 꽁자
동명동 영금정 초입의 옛 모습이다.
지금은 동명동 앞바다가 매립돼
4차선 도로와 주차장, 국제여객터미널 등이 들어서있지만
옛날에는 영금정오리바위갈려면 이길을 경유했다.
80년대 초까지도 별 변화가 없엇던듯 함.
옛날 이동네가 일구 였죠.
중앙시장은 3구시장, 청학동 시장은 6구시장이라 불렀지.
1구, 2구, 3구.....당시도 속초시였던가?
1구,2구 이런 명칭은 일정시대에 행정편의를 위해 불렀던 잔재.
1구는 영랑초등학교 근처를 가리킨 것 같음.
그땐 속초특별시였지. 몇십년전에 벌써 구가 여러개 있었쟎아.
(구청장은 공석이었음)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80년 중반에 조개구이 맛있는 집 있었단다
1구는 눅거리,2구 현대극장,3구는 중앙시장,4구는 판장,5구는 청호동,6구는 청학시장 부근이다...
3구시장과 6구시장에 있는 술집이 죽이는 집이었다.
일명 시악시집, 지금도 철둑길에는 잔재들이 남아 있지...
6구시장에 방석집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다.
40계단 길에 즐비하게 들어섰던 방석집들이 철거되고 이 보상금으로 대거 육구시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특히 옛 해경대 주변으루.... 일구 이구는 등대를 경계로 분리...
산넘어 바다쪽은 이구,영랑동,동명동 그렇게 분리 되거든...
그 앞바다에 조개가 엄청 많거든,
배 위에서 다이빙을 해서 조개를 잡고는 다시 배 위로 올라가던 그 시절
수영을 조금은 하지... 속초의 1번지가 어디게?
첫댓글 옛사진들은 속초문화원이 발행한 책자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혀주십시오. 옛사진 소장자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게재해도 무방하나 저작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수정했습니다 . 하여튼 감사합니다.
하여튼 잘봤습니다^^ㄳㄳ
고추 빨갈때 수복탑앞에서 해수욕하고 도루묵알 주워서 먹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십 중반이 넘고 옜날이 그립읍니다!!!!!!!
다시 정리 하셨네여..고생하셨어염 선배님!!!!
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이사진을 보니 ^^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고생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