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IBLI STUDIO는 일본의 가장 위대한 제작자인 미야자끼 하야오에 의해 이끌어지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다.
GHIBLI의 뜻은 사하라 사막을 통해 불러오는 뜨거운 바람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세계 2차대전동안 이탈리아 정찰 비행기들에서 사용된 것으로 미야자끼는 비행기와 이탈리아를 좋아해 그것으로부터 스튜디오의 이름을 따왔다.
미야자끼와 지브리의 영화는 어린이, 성인을 구분하지 않고 사랑받고 있다. 지브리는 1985년에 라퓨타: "THE CASTLE IN THE SKY"를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 스튜디오의 시작은 토구마 쇼튼이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제작하기로 결심한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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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발전 지브리만의 특징 성공과 미래
1. 시작과 발전 top
지브리의 출발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소속사인 텔레콤에서 신인을 양성하는 일과 몇편의 작품에서 부분적인 활동을 하면서 휴식기간을 가졌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2년부터 출판사 토쿠마쇼텐에서 발간하는 월간 [아니메쥬]에 신작 만화를 연재하게 되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편집자들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쳐서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연재시 이색적인 소재와 독특한 그림 스타일로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많은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당시 미야자키라는 이름은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았고 토쿠마쇼텐은 에니메이션에 대해서 어떠한 노하우도, 작업할 스튜디오도 없었다. 또한 작업을 지휘할 감독인 미야자키는 있었지만 그를 충분히 뒷받침해 작업할 스텝들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톱크래프트의 하라 토오루와 스즈키 토시오,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등을 메인 스텝으로 하여 "대외 지향적으로 에니메이션을 발전시키자"는 장가적인 안목을 갖고 만들어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내용면으로나 흥행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우시카]의 성공후 [천공의 성 라퓨타]의 기획이 한창이던 1985년 토쿠마쇼텐이 중심이되어 마침내 멘처 성격(자본금 500만엔)을 지닌 에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설립된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양 감독체제를 구성하여 극장용 위주로 에니메이션을 만들어 가게 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이어 86년에 발표한 [청공의성 라퓨타]도 일본내에서 8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고 높이 평가를 받는다. 또한 1988년에 [이웃의 토토로], [반딧불의 무덤]을 미야자키와 타카하타가 감독을 맡아 제작하게 된다. 스즈키 토시오의 제안으로 추진된 이 계획은 당시 지브리의 상황으로는 큰 모험이었다.
이 두 작품은 영화 비수기인 4월에 개봉되어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작품성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웃의 토토로]는 그해 실사 영화를 합쳐 일본내 모든 상을 휩쓸었고 [반디불의 무덤] 역시 문예 영화로서 큰 호평을 받게 된다. 지브리가 흥행면에서 처음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은 89년에 만든 [마녀의 특급배달]에서였다.
1차 배급에서만 2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그해 일본 방화 흥행 1위라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이후 미야자키는 '스텝의 사원화, 고정급 제도의 도입과 신인 정기 채용,육성'의 2가지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1991년에 개봉된 타카하타 감독의 [추억은 방울방울]은 흥행관계자들의 불안과는 달리 그해 일본 영화 중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2배 임금 지급과 신인 채용이라는 미야자키의 소망이 이뤄진다.
91년 [붉은 돼지]의 개봉 직후 지브리는 미야자키 본인이 스스로 구상한 스튜디오의 설계대로 도쿄 부근의 코가네이시에 지어 놓은 새 건물로 이사하게 된다.
93년 지브리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2대의 대형 촬영기를 도입하여 촬영부를 신설, 분업화를 이루어 작품의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같은해 지브리는 처음으로 TV용 장편 에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를 제작한다. 당시 20-30대의 젊은 스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이 작품은 '신속, 저렴, 양질'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70분 짜리 TV스페셜 판으로 제작되어 예산을 크게 초과하여 지브리에게 적지않은 부담으로 남게된다. 그러나 지브리의 장편 히트는 계속 이어진다. 94년 타카하타 감독의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 폼코코]가 디즈니의 [라이온 킹]을 누르고 흥행 1위를 하여 일본영화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1995년 지브리는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주로 담당했던 콘도 요시후미가 감독한 [귀를 기울이면]을 제작 공개한다.
미야자키는 그해 프로듀서, 각본, 콘티를 맡아 일하는 것과 동시에 단편인[On Your Mark]를 감독한다. 이와함께 [원령공주] 의 제작에도 발동을 걸기 시작한다. 그후 3년이라는 긴 세월을 걸쳐 만들어진 미야자키 감독의 [원령공주]가 97년 여름 개봉되어 [잃어버린 세계]를 누르고 개봉 두달만에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하는 대열풍을 일으키며 연말까지 장기 상영하게 된다.
2. 지브리만의 특징 top
지브리가 타제작사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작가중심'으로 제작과 운영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이웃의토토로]라는 작품을 미야자키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지브리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지브리라는 제작사보다 미야자키라는 작가가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로 외부하청을 주지 않고 제작의 중심이 되어 감독의역량이 다른 제작사들보다 매우 크고 강하게 작용하는 '작가 중심 체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작가 주의는 지브리의 모든 애니메이터들을 일하는 노동자가 아닌 한 명의 장인으로 대접하게 만든다.
또한 미95년 기준으로 지브리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작화 46명, 채색 8명, 미술 12명, 촬영 4명, 연출 및 제작 12명, 출판 및 상품 개발 부문 5명, 사무 관리 및 기타 12명으로 모두 합해 99명이다. 전체 직원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작가 주의의 소산으로 재능 있는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신중을 기하기 때문이다.야자끼는 "나우시카", "라퓨타", "토토로", "키키-마녀택급편", "홍돈", "ON YOUR MARK", "모노노케 히메"를 감독했다.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는 그의 오랜 동료이자 지브리의 또다른 핵심인물인 이사오 다카하다에 의해 감독하였다. 미야자끼는 "추억은 방울방울"과 "폼포코"를 제작하였다. 지브리는 미야자키와 다카하다외에 다른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도록 하여왔다.
"귀를 기울이면"는 요시후미 콘도가 감독했으며 그는 지브리의 최고 애니메이터 이어왔다. (슬프게도 그는 1998년 1월에 작고 했다). 미야자끼는 각본과 구성을 썼으며 "귀를 기울이면"은 제작하였다. "바다가 들린다"는 토모미 모치추키가 감독했다.(그는 오렌지 로드 영화를 감독했다)그는 지브리의 멤버는 아니다.
지브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설립되었다.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은 타이트한 일정과 예산하에 만들어 진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고품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지브리는 일년에 거의 한 개의 영화만을 제작할 수 있으므로 한영화의 실패는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대단히 위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전략은 지금까지 대가를 지불해 왔다. 한예로 지브리는 젊은 스탭를 기용해 TV와 TV영화, "바다가 들린다"에 노력해 보았지만 이는 예산과 일정에서 많은 손실을 받고 말았다.
미야자끼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컴퓨터의 사용은 부정적이어 왔다. 그는 언젠가 "손으로 할 수 있는데 왜 컴퓨터가 필요하냐"라고 말한적이 있다. 지브리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처음 사용한 것은 폼포코(도서관장면)에서였다. "귀를 기울이면"은 환타지 장면에서 디지털 합성을 사용했다. "ON YOUR MARK"에서는 약간 컴퓨터적 이미지를 사용했고 "모노노케 히메"는 컴퓨터를 더 확대해서 사용했다. 지브리는 몇 개의 실리콘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을 구입했고 컴퓨터그래픽 부서를 신설했다. 이는 지브리가 앞으로 디지털적인 면이 많아질 것이다.
미야자끼는 은퇴설이 있었지만 그는 또다른 영화를 만들 것이라 공언해 왔다. 토쿠마 쇼튼사의 회장인 토쿠마는 일본 신문과의 회견에서 미야자끼의 다음 영화는 21세기에 나올 것이라 애기한 바 있다. 그에말에 따르면 그 영화는 환경문제나 테러리즘에 관한 것을 다룰 것이라 한다 그리고 모노노케 히메보다도 더 많은 예산을 들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야자끼 본인는 그가 다음에 무엇을 만들지 아직까지 아무것도 말한 것이 없다.
미야자끼는 과거 기자회견에서 모노노케 히메가 자신의 마지막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를 감독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작업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애기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을 위한 일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는 지브리를 떠날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제작이나 극본을 쓰는 것등은 도울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슬프게도 콘도에 대한 그의 찬사에서 판단하건데, "귀를 기울이면"에서 그가 한 것과 같이 콘도가 감독한 작품에 극본을 쓰거나 제작을 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식적으로 1998년 1월 14일 지브리를 떠났다(그는 아직도 아주종종 지브리를 방문한다). 그는 은퇴후 휴식처로서 지브리옆에 "SENIOR GHIBLI"란 새로운 스튜디오를 만들고 있다. 그는 아직 거기에서 무엇을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3. 성공과 미래 top
1996년 7월 지브리는 디즈니와의 배급 및 업무 제휴를 맺으면서 전세계 애니메이션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서양을 대표하는 디즈니와 동양을 대표하는 지브리의 협력은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거대한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대사건으로 배급망이 취약한 지브리로서는 최강의 디즈니 배급망을 타고 전세계에 자신들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97년에는 토쿠마 그룹이 지브리를 포함한 3개의 자회사를 합병하였다. 출판위주에서 음반, 게임, 영상 등 멀티미디어 지향으로 사업 방향을 바꾼다는 계획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함께 디지탈 위성 방송인 디렉 TV는 이런 토쿠마 그룹에게 경영 참여를 요청, 받아들여졌다.
"작품 제일주의만이 우리의 살길이다"라는 미야자키의 구호아래 좋은 작품 만들기에 힘쓴지 어언 15년이 지난 현재 지브리의 미래는 한동안 밝으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