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zabeth Louise Vigee Le Brun, 1791, Marchioness Wellesley.
Baron Francois Pascal-Simon Gerard, 1799,
La Contesse de Morel-Vinde and Her Daughter.
Jacob and Rachel at the Well ,1680, Johann Karl Loth, 2
Jan Fyt, 1650, Fruit and Game.
Adoration of the Golden Calf, 1660, Nicolas Poussin.
Aristide Maillol, 1921, Torso of l'Isle de France.
Auguste Rodin, 1880, The Three Shades.
Benvenuto Cellini, 1550, Cosimo 1 de Medici, Grand Duke of Tuscany.
Caude Monet, 1874, Sailboats on the Seine.
Claude Monet, 1908, Grand Canal, Venice.
Claude Monet, 1917, Water Lilies, 2.
Claude Monet, 1926, Le Gorge de Varengeville.
Giovanni Battista Tiepolo, 1743, The Empire of Flora.
John Martin, 1840, Assuaging of the Waters.
Jean Barthold Jongkind, 1859, Le Pont de la Tournelle, Paris.
Jens-Frans van Dael, 1789, Flowers Before a Window.
Antoine-Louis Baryl, 1880, Theseus and the Centaur.
Rodin, The Kiss
Auguste Rodin, Eve, Plaster, 1881
신나는 Classic의 반란!
지루하고 엄숙한 classic은 가라!
Classic을 재미있고 신나게 편곡한 Adya 연주
캘리포니아 리전 오너 미술관 - 김 현 돈 -
언덕 위의 하얀 궁전, 캘리포니아 리전 오너 미술관(California Palace of the Legion of Honor)은 1924년 종전일을 맞아 알마 드 브레뜨빌 스프레컬 여사에 의해 1차 대전에서 희생당한 캘리포니아인들을 기리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헌정되었다. 금문교와 태평양을 굽어보는 링컨 공원 언덕바지에 자리 잡고 있는 리전 오너는 골든 게이트 공원 내에 있는 'de Young'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미술관(FAMSF)이라 불린다. 파리의 레지옹 도뇌르 궁을 모델로 세워진 미술관은 미음 자 형태로 그리스 신전 양식을 차용하여 출입구 정면과 좌우 회랑을 이오니아와 코린트 양식의 열주들이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다운타운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취약한 점이 있지만 나지막한 산등성이의 하얀 대리석 ‘궁전’이 하늘과 바다, 주변의 수목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만 같다.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 이집트 미술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82000 점의 컬랙션을 자랑하고 있는 리전 오너 미술관은 수장품 가운데 5% 미만 밖에 전시를 못하지만 모든 수장품을 데이터 베이스화 하여 미술의 공공성을 높이고 있다. 주 출입문을 들어서면 바다와 마주 보고, 검은 브론즈로 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하오의 명상을 즐기고 있다. 시름에 잠긴 듯도 하고, 깊은 철학적 사색에 침잠한 듯도 하다. 이 작품은 원래 로뎅이 단테의 ‘신곡’을 테마로 한 ‘지옥의 문’ 윗부분에서 생각에 잠겨 아래의 인간 군상을 내려다보는 시인의 형상이었다. 로뎅은 1888년 이를 대형 석고상으로 확대하여 독립된 작품으로 1904년 살롱에 출품했고, 로뎅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작품을 복제했는데, 리전 오너 미술관의 ‘생각하는 사람’도 현재 전 세계에 있는 17개 복제품 가운데 하나다. 복제품이라고 하나 원형의 틀로 정교하게 주조했기에 원본과 거의 차이가 없다. 원판으로 프린트 한 판화나 사진에서 원본과 복제품의 차이를 가리기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상층과 테라스층 25개 갤러리에서 고대로부터 중세에서 근대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신고전주의, 후기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시대순을 따라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관에서 5관은 중세 미술에서 근대 미술로의 이행을 살펴 볼 수 있다. 종교화가 지배하던 중세 시대의 세속화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타피스트리 ‘담비와 함께하는 토끼 사냥’은 당시 서민의 생활상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신성의 위엄으로 도배된 성화에 반해 속화가 주는 소박함과 정겨움이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초기 우골리노와 드 시엔나, 라파엘리노, 델 가르보, 프라 안젤리코의 ‘성 프란시스와 성 도미니크와의 만남’(1430년) 등 회화와 조각, 첼리니와 만네리즘기 엘 그레꼬의 ‘세례자 성 요한’(대략 1600년)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을 두고, ‘그리스 사람’이란 뜻의 ‘엘 그레꼬’로 더 많이 불려졌다. 어둡고 칙칙한 색조에 인물을 길쭉하게 왜곡한 엘 그레꼬에게서 이미 현대의 앙포르멜(비정형)이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엘 그레꼬의 그림 앞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비례와 균형을 강조한 르네상스 미술의 답답함을 해소한다.
2대 8 가르마를 포마드 기름으로 발라넘기고,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한 험프리 보카트의 꽉 짜인 젠틀함보다는 반항하는 눈빛에 청바지 차림을 한 제임스 딘의 흐트러진 멋이 더 좋다. 내가 르네상스나 고전주의 미술보다는 바로크를 더 선호하는 이유다. 얀 베르메르나 렘브란트 같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을 보라. 빛과 그림자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인간 영혼의 깊이를, 색채의 마술로 인물의 고요한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그림을 만나면 가슴 속에 자르르한 전율이 인다.
6, 7관에서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고전적 양식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프레티와 라토르, 클로드 로랭, 와토의 ‘4인조’(1713), 티에플로의 ‘플로라의 황제’(1743) 등의 회화, 그리고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장식 미술로 마호가니제의 럭셔리한 장식장과 탁자, 책상, 의자 등의 가구와 은제 용품과 자기 등을 볼 수 있다. 9, 11관에도 귀족 계급의 고상한 취미를 반영한, 은제 샹들리에 등 당시의 호화 생활용품이 전시돼 있다.
8, 10, 12관은 로뎅의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다. 로뎅의 걸작, ‘지옥의 문’의 일부로 고안된 ‘세 유령’ ‘이브’ ‘키스’ ‘탕아’ 등이다. 섬세하면서도 꿈틀거리는 근육의 역동성에서 로뎅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들이다. 전시 작품 외에 리전 오너는 ‘다리를 뻗은 누드’ ‘빅톨 유고’ ‘푸루스트’ 등 64점의 드로잉과 손, 발 등 석고 소품 등 모두 100 여 점의 로뎅 작품을 수장하고 있다.
13관은 19세기 영국 미술의 면모를 보여준다. 레이놀즈와 레번의 초상화, 게인즈버러의 풍경화를 볼 수 있다. 14, 15관은 17세기 독일과 플랑드르 회화를 전시하고 있다. 17세기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플랑드르는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미술의 중심지였다. 17~18세기 바로크 미술은 르네상스의 정형화된 고전적 양식과 16세기 만네리즘의 작위성에 반발하여 자연스러운 분방함을 추구하고, 빛과 색채를 통한 인물 내면의 깊이와 운동감을 창조했다. 렘브란트의 ‘선장의 초상’(1632), 루벤스의 종교화 ‘헌금’(1612), 그리고 반 다이크와 스토머, 스틴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6관에서 19관까지는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신고전주의 미술에서 후기인상주의 미술 까지 폭넓게 전시돼 있다. 고전 고대에 대한 숭배로 18세기 말에 급속히 전파된 신고전주의 회화는 다비드와 고야, 르노아르, 드가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에 일어난 급진적인 사회, 정치적 변동과 맞물려 미술에서 이룩한 조형상의 획기적인 변혁은 마네와 세잔, 쉐라 등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갤러리에서는 20세기의 여명기에 예술의 형식과 내용, 예술의 기능에 대한 전통적인 전제에 도전한 예술가들의 작품 경향을 모네와 피카소를 통해 보여준다.
아래의 테라스층에선 17세기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클로드 로랭(1604/5~1682)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푸생과 더불어 신고주의 풍경화가의 대표자인 로랭, 100 여 점의 전시작품 가운데 85점이 드로잉이다. 작가 경력의 상당 부분을 로마에서 보낸 로랭이 조화로운 구성에 섬세하고 정밀한 필치로 로마 교외의 지세와 독특한 분위기를 살린 드로잉이다. 신고전주의는 고전적인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수학적인 비례와 질서, 조화로운 형식을 추구했다. 다분히 정신적, 도덕적인 내용을 주제에 담아 이상적인 미의 구현을 목표로 했다.
철학적, 도덕적 주제가 많이 담긴 푸생의 풍경화보다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시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로랭의 서정적 풍경화가 더 마음에 끌린다. 성경과 신화에서 주제를 많이 빌려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부차적이고, 빛과 색이 충만한 시적 분위기의 자연이 그의 진정한 주제였다. 엄격한 좌우 대칭보다는 자연스런 균형의 조화를 중시했고, 화면의 하단은 주로 목초지와 땅으로, 상단은 머언 산과 하늘로 이어지는 구성 방식을 택했다.
로랭의 고전적 풍경화는 18세기 영국의 픽처레스크(picturesque) 취미를 유행시켰다. 로랭 사후 영국에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로랭의 그림에 따라 실제 풍경을 보고, 찬미하여 소풍을 가거나 공원이나 정원을 ‘그림 같은’ 인공적인 소자연으로 가꾸는 취미가 유행했다.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림 같은 정원을 가꾸며 한 백년 살고 싶은 게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보편적인 꿈이었나 보다.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자연이 예술을 모방하는 단계로 옮아갔다고 할까. 아무튼 로랭의 풍경화는 게인즈버러의 픽처레스크 풍경화와 더불어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의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