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인천교구 설정 30주년을 기념해 1991년에 출간된 ‘인천교구사’는 한국천주교회의 역사 속에서 인천교구가 걸어온 길을 9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에 담고 있다. 조선 중기부터 전래되기 시작하여 수많은 선교사들의 갖은 수난 속에서도 포교를 멈추지 않았던 한국천주교회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을 통해 포교의 자유와 함께 거주의 자유를 비로소 획득하게 된다. 대원군의 시대인 1866년과 1871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을 때마다 천주교도들은 주요한 표적이 되어 처참한 박해와 수난을 겪어야만 했는데, 인천 지역에서도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이러한 희생을 딛고 인천에 최초의 천주교 본당이 건설된 것은 1889년 초대 신부로 빌렘 신부가 부임하면서부터이다.
오늘날 답동에 부지를 마련하고 본당 업무를 시작한 인천의 천주교회는 이후 미국의 감리회, 영국의 성공회와 함께 경쟁하면서 선교활동과 함께 인천지역에 근대적인 사회복지의 씨앗을 뿌렸다. 그 당시 조선교구를 관장했던 선교회가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였기 때문에 프랑스의 선교사들이 제물포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전교활동을 펼쳤고, 1893년에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인천수녀원이 설립되어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료봉사 활동을 비롯하여 1894년부터 시작된 해성보육원의 보육 사업과 고아원 운영, 1899년에 시작된 여자기술학교의 운영, 그리고 1901년에 드뇌 신부의 주도에 의해 설립된 인천항사립박문학교(현 박문초등학교)의 운영 등, 프랑스 천주교회는 제물포 개항장에서 커다란 생활세계의 변혁을 일구었다.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권위를 갖고 있는 한국교회사연구소와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가 공동으로 엮어낸 ‘인천교구사’는 1961년 인천대목구의 설정과 함께 그 전사와 본사, 그리고 각 본당사와 기관·단체사까지 망라한 책이다. 인천의 근대사와 함께 한 인천교구의 전사만이라도 인천시민들이 보기 쉽게 출간된다면 여러 모로 유익할 것이다. /이희환 인하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