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 여신은 많은 영웅들과 올바른 사람들을 도와주었지만, 교만하거나 약자를 괴롭히거나 정의 롭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용서하지 않고 징계의 벌을 내렸다.
아테나와 겨룬 아라크네
아테나(미네르바)는 지혜의 처녀신이었다. 그녀는 전쟁도 잘했지만 기예(技藝)의 수호신이기도 하였다. 기예의 수호신으로서의 면모는 실용적인 생활부문을 관장함으로써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아테나는 전쟁의 신이면서도 침략이나 폭력을 좋아하는 아레스와는 본질 자체가 달랐으며 아테나가 그녀의 도시인 아테나이(아테네)를 차지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여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아테나 여신은 알고보면 부드러운 여신이었던 것이다.
아테나의 가장 거룩한 성역은 아테나이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다. 아테나 여신은 자신의 도시로서 아테나이를 선택했는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 역시 아테나이를 원했으므로 경합이 붙게 되었다. 여러 신들은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선물을 준 자가 그 도시의 주인'으로 결정하기로 하였는데, 포세이돈은 인간에게 잘 달리는 말을 주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주었다. 아테나이의 시민들은 아테나의 선물, 즉 올리브가 더 유용하다고 판정함으로써 그 도시는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아테나이)라고 불렀다.
포세이돈과의 경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인간이 아테나에게 도전하였다. 앞에서 필자는 아테나 여신이 기예의 수호신으로서 실용적인 생활부문을 관장하였다고 하였는데, 농업과 향해술 등을 남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며 실 만들기와 베짜기, 옷 만들기 등 패션기술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번에 자신의 위엄에 도전하는 당찬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아라크네'였다. 기가 막힌 아테나 여신은 이를 두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보람을 느껴야할 지, 아니면 건방진 계집의 겁없는 도전인지를 두고 생각해보았다. 꼭 끼고 가르쳐야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것인가? 정말 많이 컸다. 커도 너무 컸다. 기예의 불모지인 인간의 땅에 온갖 기술을 가르쳐주고 단순하게 먹고사는 문제에서 탈피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었건만, 이제는 상투까지 잡아당기는 오만한 생각까지 품게되었다.
과연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에게 도전할 만큼 뜨개질과 길쌈과 자수의 대가였다. 그녀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작업을 할 때면, 지나가던 남정네들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면서 문틈 사이를 엿보았고, 근처의 요정들까지도 그들의 거처를 떠나서 솜씨를 보러 왔을 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원정견학을 올 정도였다.
아라크네는 원래 리디아 태생으로 코로폰의 염직물(染織物)의 명인인 이드몬의 딸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계통에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베를 짜고 그 위에 수를 놓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테나가 직접 그녀를 끼고 가르쳤기 때문에 신의 경지에 가까운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흥! 내 실력이 아테나 여신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아니, 그 이상이야."
오만해진 아라크네는 누가 자신을 가르쳤다는 말에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스스로 깨우친 자신만의 노하우에 대해서 누가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그녀의 교만심에 비추어 용납되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초라한 차림의 노파로 변장하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쓸데없는 자만심은 자신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게 할 뿐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만으로 닫혀진 마음은 자존심과 자만심을 구별하지 못하는 독선으로 변하여 노파로 변장한 아테나의 말을 듣던 아라크네는 충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손을 멈추고 노기를 띈 얼굴로 째려보면서 아테나 여신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난 여신도 두렵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도 '아무개가 나를 가르쳤네 어쨌네'하는 루머 때문에 잠도 오지 않을 지경이예요.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밝히고 싶어요. 어디 자신이 있으면 여기서 나하고 솜씨를 겨루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말로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아테나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쾌히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기술을 너무 믿었던 까닭에 아라크네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향해 가미가제식 돌진을 하고 말았다. 마치 폭탄을 탑재하고 거대한 항공모함으로 곤두박질을 치듯 말이다.
아테나 여신과 아라크네는 기술경쟁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각자 자리를 잡고 베를 짰다. 천이 완성되자 여신과 여인은 그곳에 수를 놓기 시작하였는데 아테나 여신은 인간의 오만함과 그에 따른 운명을 주제로 한 반면에, 아라크네는 신들의 불미스러운 연애이야기 등을 주제로 삼았다. 즉 아테나 여신은 감히 신들과 경쟁하려 드는 건방진 인간들에 대한 신들의 노여움을 그림으로 상징하는 여러 사건들을 그림으로써 '까불지마! 다쳐'라는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신과의 경쟁은 무모하다는 경고였지만 아라크네는 신들의 과오를 조롱하듯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제우스의 연애행각을 주제로 택했던 것이다.
아테나 여신도 아라크네의 솜씨에 탄복하였다. 여신과 여인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솜씨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신들을 모욕하는 인간의 불경스러운 마음에 치가 떨렸다. 아테나 여신은 분한 마음에 직물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베틀의 북으로 아라크네를 치니 아라크네는 자기의 죄에 대한 수침심을 느끼고 목을 매어 죽으려 하였으나 아테나 여신은 그녀를 '아라크네'라는 이름이 뜻하는 거미로 모습을 바꾸었다. 거미가 아라크네와 마찬가지로 직물의 명인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튀데우스를 벌한 아테나
칼리돈의 영웅 튀데우스는 그의 숙부 아그리오스가 튀데우스의 아버지, 즉 오이네우스의 왕위를 찬탈하고 튀데우스를 살인혐의로 칼리돈에서 추방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튀데우스의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추방된 튀데우스는 아르고스의 아드라스토스 왕의 궁전으로 망명하였는데, 그곳에는 이미 또 한사람의 망명객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오이디푸스의 아들이며 형 에테오클레스로부터 도망친 폴리네이케스였다. 둘다 고국을 떠나 아르고스의 식객이 되어 망명지에서 다투게 되었는데, 아드라스토스 왕은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면서 '딸을 사자와 멧돼지와 혼인케 하라'는 신탁에 따라서 딸 데이필레와 아르게이아를 두 사람에게 주어 결혼시켰다. 전설에 따르면 데이필레는 멧돼지 가죽을 몸에 걸치고 있었고 아르게이아는 사자 가죽을 입었다고 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 두 짐승을 방패의 문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라 전해지고 있다.
당시 아르고스의 왕은 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 왕위를 회복하도록 하였는데, 튀데우스는 빼앗긴 칼리돈의 왕위를, 폴리네이케스는 테바이의 왕위에 복귀시키고자 하였다. 우선 부마가 된 폴리네이케스의 왕위회복전쟁에 튀데우스을 참전케 하여 테바이로 진군케 하였다. 군대가 아소포스강에 도착했을 때, 튀데우스는 테바이 사람들과의 협상을 위해서 파견되었는데 결국 화의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협상기간 동안에 많은 운동경기에서 테바이 사람들을 패배시켰기 때문에 그들의 질투심을 불러 아소포스강의 본진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오십여 명의 테바이 매복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그들을 전멸시킬 수 있었으며 그때 마이온이라는 자는 죽이지 않고 '이 사실을 너희 테바이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살려 보냈다.
아테나 여신은 테바이를 포위한 튀데우스로 하여금 혁혁한 공로를 세우게 하였으며 자신의 신전에서 불경스럽게도 페리클리메노스와 성관계를 맺은 이즈메네를 신전모독죄로 다스려 튀데우스에게 그녀를 죽이게 하였다. 자신감에 넘친 튀데우스가 프로이티다이 성문을 공격하여 적장 멜라니포스와 맞싸웠으나 두 사람 모두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튀데우스를 사랑한 아테나 여신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는 그에게 다가와서 불사의 몸으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여신의 뜻을 알아차린 암피아라오스는 아드라스토스를 설득하여 실패할 원정을 감행한 튀데우스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멜라니포스의 목을 베어 튀데우스에게 던졌다. 이에 반응하는 그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튀데우스는 적장 멜라니포스의 두개골을 부수어 해골을 파먹는 것이 아닌가? 이 광경을 본 아테나 여신은 역겨운 그의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하여 얼굴을 돌려 버리고 떠나버림으로써 튀데우스는 그대로 한많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아테나는 잔인한 행동을 한 인간에게는 아무리 자신이 아꼈던 인물이라도 한순간에 안면을 몰수하고 그에 대한 징계를 서슴치 않는 여신이다.
파리스를 벌한 아테나
앞에서 우리는 아테나에게 도전하여 거미로 변한 아라크네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오만에서 야기된 여신의 분노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아라크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가 신의 경지를 능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아테나 여신에게 도전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게 되었다.
여기서 이야기할 '파라스에 대한 복수'는 여신에게 도전한 댓가가 아니라, 여신의 자존심을 송두리채 무너뜨린데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에리스의 사과사건'에서 비롯된 미의 여신 경연대회에서의 패배가 그녀의 유일한 패배였다.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으로서 사려깊지 않은 행동으로써 '에리스의 사과사건'에 연루됨으로써 이미지가 실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소위 올림포스의 '미녀경연대회'에서 헤라와 함께 아프로디테에게 패배함으로서 자존심이 구겨지고 말았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 때 초청을 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분에게'라고 씌여진 사과를 세 여신은 서로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게 되었고 결국 아프로디테의 '미녀 로비'에 넘어간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넘겨 주었다.
아테나 여신은 이러한 판정에 대한 보복을 결심하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같은 처지의 헤라와 함께 그리스편에 서서 파리스의 조국인 트로이아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헬레네는 일찍부터 많은 남자로부터 구혼을 받았다. 남편감이 너무 많아서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나 메넬라오스를 선택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를 유혹하여 고국 트로이아로 데리고 감으로써 트로이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메넬라오스는 그리스의 여러 왕들에게 '헬레네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녀를 위하여 복수한다'는 오디세우스의 서약안의 이행을 촉구함으로써 그리스 연합군이 결성되었는데 이는 유부녀인 헬레네를 유혹하여 도피행각을 벌인 죄를 묻는다는 명분 이외에도 아테나 여신의 개인적인 원한도 개입되어 있었다.
그동안 필자가 여러번 트로이아 전쟁에서의 아테나 여신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가 있으므로 되풀이하지는 않겠지만, 결론적으로 아테나 여신은 전쟁의 원인 제공자이며 아테나에게 원한을 산 파리스를 필로크테테스가 쏜 헤라클레스 화살에 맞아 죽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목마를 만들게 함으로써 아예 트로이아를 함락하고 초토화 시켜 버렸다.
처녀신 아테나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원정군을 격퇴시키고 전제적인 동방군주제로부터 서방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은승리를 안겨준 아테나를 기리기 위해서 위대한 순결의 처녀신에게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을 지어 바쳤다.
아테나는 아르테미스와 헤스티아처럼 처녀신이다. 그러나 평생 동정인 아테나 여신은 어떨결에 애엄마가 되었는데, 그 사연은 ...
애엄마가 된 아테나 여신
물론 아테나가 자의에 의해서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다. 아테나 역시 영원히 처녀성을 지키면서 살 것을 허락받는 처녀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본의아니게 아이를 얻게 되었다. 직접 몸 안에 임신하여 정식으로 낳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올림포스 최고의 미녀임을 파리스를 통하여 공인을 받은 아프로디테(베누스=비너스)는 원래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이지만 워낙 바람끼가 많아서 한 남자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온 몸이 뜨거운 여신이었다. 파리스의 미녀 판정이 없었더라도 그녀의 미모는 신들과 인간 세계을 넘나들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런 자유부인을 아내를 둔 헤파이스토스는 아내의 남성편력에 불만이었겠지만, 묵묵히 올림포스의 대장간을 지키면서 장인으로서의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아내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눈이 맞아 그와의 사이에서 하르모니아를 낳았고, 그 하르모니아가 카드모스와 결혼할 때에도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 신부 하르모니아에게 선물하는 태도를 보였다(우리의 정서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
어느날 아테나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 무기제작을 부탁하기 위해서 찾아갔을 때 헤파이스토스는 그만 착각하고 말았다. 아테나 여신이 자기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온 것으로 생각하고 분위기를 잡더니 덤벼들었다. 물론 아테나 여신도 헤파이스토스로부터 여러가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올림포스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이며 가구 등 모든 것이 헤파이스토스의 손을 거쳐 생산되는 걸작품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과 그를 격려하는 눈빛를 보냈고 특히 전쟁의 신으로서 무기제작은 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으므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것을 헤파이스토스는 착각도 자유라고 사랑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갑자기 자신에게 덤벼드는 헤파이스토스를 밀치고 얼른 몸을 피하였으나 워낙 달아오른 헤파이스토스는 이미 사정하고 말았다. 헤파이스토스의 정액은 대지에 떨어져 남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상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하체는 뱀의 모양을 한 괴물이 나왔다.
하마터면 헤파이스토스에게 성폭행을 당할뻔했던 아테나 여신은 대지(가이아)로부터 이 아이를 넘겨받아 양육하게 됨으로써 졸지에 처녀 엄마가 되고 말았다. 이는 아마 처녀의 몸으로 자기자신의 아이를 가짐에 있어서 이것이 가능한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테나는 그 아이에게 '에리크토니오스' 즉 '양털-대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헤파이스토스가 아테나 여신의 대퇴부에 사정했을 때, 당황한 여신이 근처에 있었던 양털로 닦아내고 그것을 대지에 버린데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아테나는 그 아이를 바구니에 넣어서 아테네의 왕 케크로프스의 세 딸에게 맡기면서 안을 절대로 들여다보면 안된다고 엄하게 일러두었다. 하지만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임을 어찌하리요? 호기심이 발동한 케크로프스의 두 딸 판드로소스와 헤르세, 그리고 케크로프스의 아내 아그라울로스가 그만 아테나 여신의 명령을 어기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 안을 들여다본 그녀들은 아이의 흉칙한 모습을 보고 질겁한 나머지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로 투신자살하고 말았으며 이를 보고 있었던 아테나 여신이 아크로폴리스를 더 높이려고 가져오던 바위를 그 자리에 떨어뜨리고 말았는데, 그 바위가 바로 아테네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리카베토스(뤼카베토스) 언덕이라고 한다.
아테나는 별 수없이 그 아이를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그녀의 신전으로 데려와서 키웠는데, 전설에 의하면 성인이 된 에리크토니오스가 클라네오스로부터 아테나이의 왕위를 빼앗은 암피크티온을 쫓아내고 아테나이의 왕이 되어 아크로폴리스에 올리브 나무에 조각한 아테나 여신상을 세우고 그녀의 주요제례의식인 판아테나이아 제전을 만들어 아테나 신앙을 더욱 고취시켰다고 한다. 흉칙한 그 모습이 나중에 고쳐졌는지, 아니면 그 모습 그대로 그런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신화는 신화! 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다양한 신격의 소유자 아테나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아테나의 성격을 규정한다면, 뭐라고 꼬집어서 이것이라 하기에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녀는 못하는 것이 없었다. 제우스의 분신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전쟁과 지혜의 신이며 각종 문명을 인간에게 전해준 신이었기 때문이다.
문명의 창시자
아테나 여신은 아테나이(아테네)를 자신의 도시로 삼은 과정에서 포세이돈과 경합을 벌인 바가 있었다. 포세이돈 역시 아테나이를 자신의 도시로 삼고자 하는 욕망은 아테나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 가운데 가장 강력하며 농업국가인 스파르타와는 달리 해양국가로서의 아테네를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은 자신의 영향권내에 두고 싶었을 것이다.
제우스는 이 두 경쟁자에게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지시하면서 아테나이 시민을 위해서 유익한 선물을 주는 쪽에게 그 소유권을 인정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들어 땅을 내리치니 그것으로부터 샘이 솟아났고 아테나는 그 옆에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그때까지는 이 지구상에 올리브 나무가 없었으나 아테나가 올리브 나무를 심음으로써 그리스의 주요 농산물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였다. 이것을 본 신과 아테나이 사람들은 올리브를 준 아테나 여신의 소유권을 인정하였다. 샘이란 수맥을 찾아서 뚫으면 되는 것! 올리브 나무가 유용하다는 판정을 했던 것이다.
아테나이의 소유권을 놓친 포세이돈은 그러한 판정에 불만을 느끼고 심술을 부렸다. 화가 치민 포세이돈은 그때까지 아테나가 살던 아르카디아 지방에 홍수를 일으켜서 휩쓸어버렸지만 아테나는 그것을 계기로 아예 아르카디아를 떠나 아테네로 거처를 옮겼다. 포세이돈은 판정에 불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아테나 여신에게 심술을 피운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테나 여신은 아테네의 수호신으로서 지역 주민들에게 다양한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여러가지 문명의 창시자로서 기예(技藝)는 물론, 실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기술을 개발하여 보급시켰다. 아테나 여신은 아르고스 원정대를 위해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예언능력을 지닌 성스러운 도도네의 숲에서 자란 떡갈나무로 배의 선수(船首)를 만들어 주어 항법(航法)의 효시가 되었고, 젤레로폰에게 천마 페가소스에게 재갈을 물리게 함으로써 야생의 여러 짐승들을 길들여 부릴 수 있는 기술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아테나 여신은 전법상으로도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중무장 보병이 중심이 되는 중무장 밀집부대형(Phalanx)으로는 트로이아의 성벽을 공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목마를 만들게 하여 전술상의 일대 전환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힘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원시적인 전술에서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전법을 구사하기도 하고 적을 교란시키는 심리전도 가르쳐 주었다. 전쟁에 나서는 전사들이 전의를 북돋우고 용기를 내기 위한 춤을 추는 것도 아테나 여신이 가르쳐 주었다. 일종의 마인드컨트롤을 통해서 전쟁의 두려움을 없애고 사기를 높이는 방법이었다. 즉 여신은 전쟁에서 전술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존재였다는 말이며 전술의 변화는 각종 무기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아테나는 전쟁의 신으로서 각종 전술과 무기를 발명하였으나, 평화시에는 가정과 도시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그때에는 전쟁의 신에서 지혜의 여신으로 보직을 바꾸어 길쌈과 방적기술을 발명하였는데 그것은 여신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앞에서 오만하게 신에게 도전했다가 거미로 변한 아라크네의 이야기도 길쌈과 방적을 주관하는 아테나 여신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화에는 아테나 여신이 손수 옷을 지어 판도라에게 선물하고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예복을 만드는 등, 옷을 선물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팔라스는 아테나를 가리키는 별칭이기도 하다. 잠깐 팔라스의 설화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아테나는 한때 바다의 신 트리톤에게 양육된 적이 있었다. 트리톤에게는 '팔라스'라는 딸이 있었고 두 여인은 언제나 무술을 겨루면서 놀았다. 동갑인 그녀들은 서로 라이벌 의식을 느꼈기 때문에 둘은 심하게 다투었다. 어느날 두 사람은 생사를 걸고 싸우게 되었는데, 아테나가 위기에 빠진 것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제우스가 팔라스를 막는 사이에 역공을 하여 팔라스를 죽이게 되었다. 싸우면서 정이 든 친구를 죽인 아테나는 슬픔에 빠져 비록 실수이지만 그녀를 죽게한 죄책감에 견딜 수 없었다. 아테나는 그녀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팔라스의 모습을 조각해서 제우스의 방패인 아기스 한 복판에 매달았는데, 이것을 언젠가 제우스가 땅으로 내던졌다는 '팔라디온'이다(팔라디온이 트로이아에 있는 한, 함락되지 않는다고 하는).
즉 아테나 여신이 팔라디온을 손수 조각하였다는 말은, 처음에는 나무와 돌을 다듬는 목공과 석수 등 수작업을 통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호신임을 뜻하였으나 문명이 발달함으로써 나중에는 청동과 금속을 다루는 모든 기술자에까지 개념이 확대되었었으며 대지의 흙을 이용하여 토기와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의 수호신이기도 하였다.
아테나 여신은 이와 같이 눈으로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유형적인 문명의 토대 위에 정신을 퓽요롭게 하는 각종 문화와 학문의 창시자가 되었다. 시인과 철학가, 예술인의 수호신으로서 그녀의 신격이 규정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모든 지적활동을 주관하는 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주의 지배자 제우스가 사려와 지혜의 여신 메티스를 삼켜버림으로써 제우스의 두개골에서 튀어나온 딸이 '아테나'이니만큼 그녀가 지혜의 여신으로 숭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테나 여신은 사회에서 필요한 여러가지 법제를 만들어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아닌 법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 엣날 아테나이를 놓고 포세이돈과 갈등을 일으켰을 때, 전쟁의 신 아레스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무공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지만 제우스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분쟁을 조정할 수 있다는 시범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은 결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존재가 아니라 상호간의 분쟁과 갈등을 조정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특히 재판제도를 창시하였다. 어느날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딸 알키페를 아테나이의 아크로폴리스 부근에서 성폭행하려던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를 죽이는 바람에 아레스와 포세이돈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 아테나 여신이 그 분쟁에 개입하여 '아레이오스 파고스', 즉 아레스의 바위에서 세계 최초의 재판을 열어 딸의 강간을 묵인할 수 없었던 아비로서의 정당성을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법정의 공정성이 널리 신들과 인간 사이에 알려지게 되어 자신들의 분쟁을 이 법정에서 판결받기를 원했는데, 그 예가 아버지 아가멤논의 복수를 위해서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 오레스테스를 기소한 에리니에스의 재판을 주관한 곳도 아레이오스 파고스였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의 그리스 대법원을 '아레이오스 파고스(Areios Pagos)’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