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 길에서 만나는 강화도 읍내 해발 100m 남산에 자리한 호텔 에버리치를 뒤로 강화읍 생태체험숲인 사랑의 숲으로 오른다. 사랑의 숲에는 라벤더, 금당화, 은방울꿏 등등의 달콤한 꽃들이 가득하여 연인들을 위한 사랑과 추억을 기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숲속 쉼터가 마련되어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잠시 예전으로 돌아가 원범과 봉이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고즈넉한 산길을 한차례 올라서면 능선길이 마중 나온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잠시 더 올라서면 사적 제132호로 지정된 강화산성 남장대 정상이다. 남장대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이 남다르다.
강화산성 남장대는 조선 시대 서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허물어진 것을 2010년 복원했다. 고려 고종 대 쌓은 강화산성은 이후 여러 차례의 파괴와 개축을 거쳐 1711년 조선 숙종 때 약 7.1km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남장대를 뒤로 나들길은 아름다운 길인 잣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6월의 보는 잣나무 숲길은 겨울철의 잣나무 숲과 달리 조금은 을씨년스럽다. 군데군데 전망데크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명상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다. 강화산성 암문이다. 남장대 오르는 성벽에 누 없이 만들어 놓은 문이다.
성곽으로 통하는 문은 여러 곳이 있으나 모두 적이나 일반인들에게 노출된 문이다. 하지만 암문은 성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어 사람과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도록 했다. 전시 상화이 되면 군수물자를 조달하거나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암문을 뒤로 조금은 거친 자락길을 걷다보면 거북바위가 마중 나온다. 원범이 왕이 되어 떠난 후 봉이는 새벽마다 거북바위 앞에 약수를 떠 놓고 무엇인가 간절하게 기도하였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거북바위에서 조금 내려서면 청하동 약수터다. 원범이 강화도에서 5년간 귀양살이할 때 강화도 처녀 봉이와 처음 만난 곳으로 두 사람의 애틋한 추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 약수터에서 남장대를 지나 숲길을 걸어 찬우물 약수터까지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1849년 6월 열아홉 살 원범이 왕이 되어 한양으로 떠나던 날 아침,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봉이는 이곳에서 봉영단의 행렬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청하동 약수터를 뒤로 건강의 숲길을 따라 내려선다. 예전에 정오가 지나며 얼었던 길이 녹아 진흙길로 고생 고생하던 나들길의 추억거리를 생각하면 걷는다. 마을길로 내려선다. 합일총등학교 담장을 따라 남산길로 내려서다보면 예전 길동무와 쉬어가던 한옥관광안내소가 반갑다.
나들길은 남산길을 따라 강화읍의 중앙시장을 둘러보며 강화대로를 가로지르면 북문길이다. 거리의 시설물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용흥궁 공원이다. 이제 발걸음은 용흥궁으로 향한다.
응흥궁은 강화도령 철종 임금이 강화도 유배시절에 살았던 잠저다. 조선시대 잠저는 인조, 철종, 고종처럼 정상적으로 왕세자를 거쳐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국왕이 후사가 없거나 반정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왕위에 오른 왕이 민간인 시절 살았던 집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태조의 함흥본궁, 인조의 저경궁, 영조의 창의궁 등이 있다.
잠저라지만 사실 이 집에서 철종 임금이 살았던 것은 아니다. 원래 초가집이었던 것을 철종 즉위 후 4년째 되던 해에 강화유수 정기세가 현재와 같은 기와집을 짓고 임금이 나온 궁이라는 뜻의 '용흥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집 앞에는 강화유수 정기세가 집을 새로 지었다고 기록한 비석이 남아 있다.
용흥궁은 전형적인 조선말기 서울 양반집 형태다. 외벽을 겸한 행랑채와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를 가리는 안담이 있고 안담을 돌면 작은 마당이 있는 사랑채와 그 뒤로 안채와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강화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에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기는 순간이다. 점심은 철종이 봉이 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가끔 사람을 보내 찬우물 물로 빚은 막걸리와 순무 김치 그리고 젓국갈비 등을 궁궐로 가져와 강화도와 봉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하는 젓국갈비를 먹는다.
젓국갈비는 고려가 몽골군을 상대하려 강화도로 천도하였을 때 임금과 귀족들에게 진상했던 강화도 토속음식이다. 당시 임금에게 무엇을 진상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강화도에서 나는 채소와 고기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해 진상했다고 한다. 후에 명맥이 끊어졌는데 강화의 한 식당에서 복원하여 레시피를 공개하면서 강화도 대표 토속음식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추억을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 길에서 남기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