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교회 60년 약사(略史)
-옛날을 기억하라.역대의 년대를 생각하라.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네 어른들에게 물으라.그들이 네게 말 하리라. (신32:7)-
(중요한 주제별로 스토리화 해서 이해를 쉽고 편하게 또 간략하게 적는다.)
▷시작-교회의 출발이다.1957.7.20
의정부 제일교회에서 제2교회로 가능동731번지 천막교회를 설치 유백근 전도사와 10여명의
성도로 개척하다
(이때의 기도와 수고와 땀을 후세는 잊지 않고 있다)
▷성령운동-홍신균목사(2대,4대)의 뜨거운 기도와 성령운동으로 교회는 급속한 성장을 갖고 성전건 축과 교회일꾼을 세운다.이 기간은 1958년부터 1970년까지 13년간이다.
회개의 기도와 믿음의 역사와 기적이 마치 초대교회와 같았다.
홍신균목사의 강력한 영적지도력은 그 시대에 맞는 목자상이었다.
(홍신균목사는 1919년 9월19일 평안북도 의주군 우하면상단동98번지에서 출생
1955년 고려신학교졸업,1966년 용천노회장.1985년 평북노회장을 역임하였다.
연신교회에서16년간 봉직후 은퇴하시고1998년 6월13일 소천하심)
▷성전건축-문춘운목사(5대)는 홍신균목사의 요청으로 가능교회에 부임하고 성전건축을 하다.
홍신균목사는 기도하며 무원고설교로 하였다면 문춘운목사는 철저한 원고에 설교를 준비
하며 새로운 목자상으로 목회에 전념하시면서 1972년에는 240평의 벽돌스라브로 새성
전을 1973년 11월준공하였다.당시 총건축비용은 1100만원정도였는데 450만을 문목사님
사재를 털어 헌금하시었다.그 당시에는 지역에 제일 크고 멋진 교회였다.
▷최초 지교회설립-문춘운목사의 변화된 목양으로 교회가 안정되고 부흥되는 가운데 1971년에
호원동에 호성교회를 개척 설립하고 자신이 교회를 임시 섬기다가.얼마후 제2대교역자로 서기원전도사(현 의료원 원목)로 부임케 하며 그 지역복음화에 앞장서게 하였다.
▷연단과 분리-1974년 1월첫주일에 일어난 사태는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사탄의 궤괴였다.
그때의 당회는 5인이 있었는데 1973년 년말 당회시에 문춘운목사는 사임하고 원주교회로
이주하고 가능교회는 젊고 유능한 새교역자를 모시는 일에 합의했다며 이를 교회앞에
공표하는 것이었다. 이는 성경적으로나 교회윤리로나 상황적으로 맞지 않았고 엄청난
교회의 저항과 당회(장로측)불신으로 이어지며 2년여기간 지역은 물론 노회와 총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드디어는 교회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는 중에 불가피 하게 이탈교인
중심으로 새로운 교회가 하나 더 세워지게 되었다. 현 가능제일교회이다.
( 이 사실은 아프지만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연약성을 깨닫는 교훈으로 족하다.지금은
아주 가까이 형제같이 지내니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의종-문춘운 목사는 진실로 하나님의 종이었다.다시 안정을 회복하고 교회부흥에 전력하는
중에 모든 성도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행복한 교회생활,행복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그러나 문춘운목사는 심각한 충격속에 결국엔 중증당뇨가 발견되고 치료에 전력하였으나
1991년 1월8일 향년67년의생애를 마감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문춘운목사는 별명이 엘리야이시다.인간적사욕이나 재물과 명애를 탐하지 않으셨다.
먼저하나님,먼저교회,먼저 양들을 생각하시고 열심히 심방하시며 교회생활도 철저히
경건생활로 본을 보이셨다.늘 화장실 갈 힘만 있으면 새벽기도나와야 된다고 강조하시고
잘때도 머리는 교회방향로 하라시고, 교회안에서는 큰 목소리로 웃거나 말하지 말고
조용 조용하라 가르치셨다.심지어는 침을 밷지도 말라시는 모습이었다. 통일은 물론
북녁의 자식소식도 모른체 일생을 사시면서 눈물과 기도로 밤을 지새우시는 모습을
보이며 사랑과 은혜의 목자상을 끝까지 유지하셨다.
(문춘운목사는 1923년 4월5일평북 정주에서 나시어 1.4후퇴시 남한으로 피난, 목포에서
전도사로 교회를 개척,부산 고려신학교를 졸업하시고 여러교회를 목회하시다가 가능교회
에서 20년 시무하시고 원로목사로 추대받으시었다.외동녀 문성혜집사는 미국 택사스
에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교회봉사(오르간반주)하며 은헤중에 지내고 있다.)
▷새시대의 개장-1990년 4월 이명일(6대)목사부임은 가능교회의 새로운 바람을 불게했다.영국에서
개혁선교신학을 공부한 엘리트목사를 증경노회장(백낙기목사)의 추천으로 모시게 되었고
신선한 설교와 치밀한 목회행정에 교인들은 전적으로 따랐다. 아울러 밷엘성서대학개강에
40명정도가 동참하여 즐겁게 공부하고 수료하는등 교회의 내적자질향상도 눈에 보이게
나타나 보였으나 개인사정으로 급작히 미국에 선교학박사취득차 이주하게 되었다.
그의 재임기간이 불과 일년반도 안되는 기간속에 개장된 새시대의 문은 결국 닫히고 만다.
▷예비된 새얼굴-1991년 하반기 긴급 후임교역자 청빙은 절차를 따라 수개월만에 새얼굴을 만난다.
곧 김상기목사이다.1991년10월 세계, 표준되는 키에 스포츠인 같은 강인하며 성령충만한
모습의 김상기목사는 부임후 곧 경로대학과 어린이 집을 개설하는등 시대가 요구하는 새
스타일의 목회여정을 시작한다.교회의 역사와 전통은 물론 은혜로운 교회라 바로 위임목사
기 되도록 했으며 그의 첫설교데로 가나의 혼인잔치집 같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교회를
주창했고 온 성도는 그렇게 화답했다.
▷엑소더스의 기쁨-액소더스는 출애굽을 말한다.가능동 45년을 뒤로하고 용현동 새시대를 여는
기쁨은 비할바 없었다.개인의 이사도 힘들지만 공교회가 뜻을 같이하여 일사분란하게
교회이전을 결정하고 새성전을 신축(550평)했다.가능교회대지 450평이 용현동2500평의
새부지로 옮겨지며 더 없이 온 교회는 기뻐함은 마치 종살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통치에서 벗어나 조국 가나안으로 입성함에 비유되는 것이다.
이같은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요,김상기 담임목사의 강력한 지도력이며, 당회와
온 교우들의 합심협력 덕분인 것이다.
▷교회창립50주년-어느해인들 기념주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그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며 축하하는 잔치를 갖는다. 그러나 희년을 맞는 50주년은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두고
기도로 준비하며 행사를준비했다.50년사 발간,음악회,바자회,홈커밍데이와 30년이상 근속
자 표창등 여러가지의 이벤트를 가지면서 교회의 정체성확인, 미래의 새비전 설정,일치와 연합
을 유도하는 50주년 맞이 행사인 것이다.
▷행사,행사 또 행사-호산나 교회하면 특별한 좋은 소문이 하나 있다.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친절히
대접 잘 하는 교회라고~~~.그래서인가 년중 행사가 수없이 많이 있었고 그때마다 대접에
최선을 다했다.주방팀 10여명의 변함없는 희생과 봉사덕분이었다.
이 모든 내부,외부행사들은 교회환경과 시설,특히 200여대의 주차장 확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또 김상기 목사의 사랑의 베픔은사는 모든이들의 공통된 답변이다.개인적인
제공도 잘하시지만 지역과 상회기관의 요청도 항시 쾌히 승낙하시므로 교회도 기쁘게
수용하는 은혜가 있었다.
대표적 행사는 노회2회개최(2003년,2007년),여전도연합회의 작은자 음악회10여회,노회족
구대회,노회 테니스대회15회,의정부 기독교연합회 행사.기도동지회,CTS행사,남선교회
순회예배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연이어 발생되며 모든 치러내는 저력있는 교회이다.
▷새 이름은 호산나-2009년1월1일부로 교회명칭변경을 하였다.우리 교회가 이제부터는
"가능교회가 아니고 호산나교회라고"부르고 사용하시라고 공포하는 것이다.
호산나(HOSANNA )는 주여!구원하소서의 뜻이다. 여러 의미를 갖는 복음적
명칭인바 전교우들로 공개 응모해서 채택했는데 요인은 가능동지역에서 용현동
으로 이전하면서 지역적 정서상 선교를 위해 불가피하게 개명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21세기 사는 목회자 -그는 김상기 목사이다.두세기를 동시대에,동일교회를 섬기는
우리들은 이제 수개월만 지나면 함께할 수 없게 된다.목사정년은퇴(70세)의 명예로운
절차를 따르게 된다.자애로우신 이정례사모와 아들(김진국목사)과 두 딸을 두신 목사님
과 생사고락간,희비애락을 함께 하며 26년간의 세월로 막을 내리고 후임 담임교역자를
청빙하는 싯점이다.
김상기목사의 목회비전은 객관적인 조명으로는 건강한교회,행복이 넘치는 교회를 지 지향하는 목자상이다.
사실로 교회는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이시대 많은 교회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병들고 세속화 되어가는 것이다. 갈등과 분열의 고통을 모두
안고 있는데 우리 호산나교회처럼 평안한 교회는 잘 보이지 않는다.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부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는 다틈과 분열이 없는 평안한 교회가 우선이다
이뿐인가?아니다.화통소리 같은 뜨거운 기도자,음정 박자 정확한 찬양가,모든 운동 다
잘하는 만능 스포츠맨,대 소단체의 수장(용천노황,의정부기독교연합회장 등) 역활을 잘
감당하는 특출한 리더싶의 소유자,해외선교열정(대만,인도네시아,중국,러시아,남아공등)
을 갖고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닮기 원하는 목사이다.
하나님앞과 교회앞에 최선의 최선을 다한 김상기목사와 그 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세세토록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드디어 60주년-회갑(回 甲)을 맞은 호산나교회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알파와 오메가 되셔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믿음과 순종
으로 받아 드린다.60년의 역사(歷史)속에서 기도와 충성을 다하여온 신실하신 교역자와
모든 성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60주년 특별사업으로
*사랑의 헌혈운동,*행복한 가정 만들기 3주 세미나,60주년 기념식 및 홈커밍데이,*평양예술
단 초청공연,*국내 특별선교로 아웃리치봉사활동(속초 대포동교회)등이 있다.
강단의효율성을 높이는 리모델링과 사택도 새단장을 한다.
특별한 역사적 일은 현 담임목사의 은퇴와 제8대 담임목사 청빙이 있다
60주년의 금년(2017년)은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해이다.
호산나교회 50년역사의 현장을 지킨
초대 원로장로 김 유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