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축복사역 / “성령의 숨쉼은 곧 영성입니다!”
+ 본 문 : 창 세 기 2장 1절 - 3절 (구약성경 2쪽)
마태복음 11장 28절 - 30절 (신약성경 18쪽)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의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멘!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의 가정과 생업,
사랑하는 모든 자녀 손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축복한 대로 됩니다.”
오늘은 창세기 2장 1절 - 3절, 마태복음 11장 28절 - 30절 말씀을 가지고
‘성령의 숨 쉼은 곧 영성’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도에서 휴가를 보내던 한 지혜자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돌아오는 한 어부를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그 지혜자와 물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어부가, 이런 식으로 계속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지혜자가 먼저 어부에게 말했습니다. “참 좋으시겠습니다! 또 물고기 잡으러 가실 거지요?” “예!”
“또 물고기 잡으러 가서 뭐하시게요?” “그야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물고기 많이 잡아서 뭐 하게요?” “잡은 물고기를 팔면 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돈이 생기면 뭐하게요?” “그래야 작은 배라도 한 척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배를 사서 뭐하게요?” “그래야 부자가 되서 잘 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돈 많은 부자가 되서 뭐하게요?” “그러면 그때는 편히 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지혜자가 그 어부에게 의미 있는 말을 던집니다. “쉬는 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쉼은 돈이 많아야, 일의 성취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쉬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왜 쉬지를 못합니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빠서 못 쉰다.” 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람들이 바빠서 쉬지 못하는 게 아니라, 쉴 줄 몰라서 쉬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대문명의 한 가지 분명한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피드 - 빠름’ 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만 해도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정보를 볼 수 있는 어플이 커지고, 그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볼 수 있느냐 하는 속도 때문입니다.
어떻든 오늘날 우리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전 세계를 접속하여 엄청나게도 빠르고 신속하게,
온 세계 속의 정보들을 검색하고 공유할 수 있는 ‘스피드 - 빠른 정보시대’ 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 속담에 "백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말에서 '백리' 는 아주 먼 길을 표현하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100리, 곧 40km는 자동차로 단 20분이면 갈 수 있는 빠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성과 영성” 이라는 책으로 잘 알고 있는, 이대 교수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씨가 쓴 글에 “한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빠르고 바빠졌느냐? 그것은 라면이,
나온 때부터라.” 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소위 일회용 인스턴트 문화가 출현한 때부터,
사람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가 즐겨 먹는 라면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었지만,
라면의 종류와 맛을 다양화시킨 것은 물론 세계인들을 푹 빠지게 한 것은 바로 우리 한국입니다.
그래서 요즘 가게에서 '라면 주세요.' 하면 주인으로부터 ‘이 사람 북한에서 왔나?’ 의심받게 됩니다.
라면 이름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일 일번지라면. 이 이백냥 라면. 삼 삼양라면. 사 사발면.
오 오뚜기 라면, 육 육개장 라면. 칠 칠보면. 팔 팔도라면. 구 구구면. 열 열라면.” 그뿐입니까? “짜장 라면, 짬짜면, 우동 라면, 컵 라면, 값이 비싼 신라면, 쌀라면, 후루룩 라면 ... 등등."
이렇듯 현재 판매되는 라면의 종류가 200여 종류가 넘고, 수출품까지 합치면 5백여 종류나 되어,
라면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자기 회사에서 생산되는 라면 이름을 다 모를 정도입니다.
라면이 식탁을 점령하고,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잘 된 것은, 그만큼 빠른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취업 차 들어온 외국근로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 입니다.
해외에서도 한국 손님을 맞는 외국인들조차도 "빨리 빨리" 라는 말을 제일 먼저 배운다고 합니다.
이처럼 일터에서, 식당에서, 무슨 일에도, 우리 한국사람들은 빨리 빨리를 외치고, 정말 빠릅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생각의 속도" 란 책을 통해서 앞으로의 시대는 속도가,
그 사람의 삶의 성패와 운명을 좌우한다고 했는데, 이 문제엔 우리 민족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 정보기기를 사용하는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이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핏속에는, 빨리 빨리의 유전인자가 빠르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 년 걸려야 건축하는 집을, 우리는 3개월이면 충분히 다 짓고도 남습니다.
십년 걸려야 놓을 수 있는 다리를 우리는 3년이면 됩니다. 그러다 꽝하고 무너지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뭐든지 빠른 것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민족이,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빨라진 결과로 우리나라는 G 20에 속한 나라가 되었고, 삶은 많이 편리해 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이 빨라짐과 동시에, 우리 인간들의 삶도 함께 더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도 최장 베스트셀러였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의 저자 피에르 상소가,
지적하듯 "현대 속도문화의 가장 큰 비극은, 안식의 상실" 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돈 버는 것도 빨리 빨리 하다보니 로또복권이 나왔고, 부부가 일하고 돈을 법니다.
권력 잡는 것도 빨리 빨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손에 가지려다가 쇠고랑 찹니다.
이 외에도 결혼도 빨리, 이혼도 빨리, 애 낳는 것도 빨리 빨리, 그래서 혼전 임신, 제왕절개수술,
자동차 속도도 빨리 달리다가 사고내고, 이렇게 쉼 없이 달리다 보니, 피곤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문화를 구원하고,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쉼의 회복입니다.
권투경기 선수들이 3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싸웁니다. 그리고 1분 휴식을 취합니다.
선수들은 이 짧은 1분 동안, 한 라운드를 전력을 다해 싸우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합니다.
권투경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런 의미 있는 말도 있습니다.
“돈 관리인 재테크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관리인 시테크이고, 시테크보다 중요한 것은,
쉼의 관리인 쉼 테크이다.” 쉼 테크 - 쉼도 관리해야 건강한 몸과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쉼은 빈둥거리는 게으름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분전환을 위해 신나게 노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쉼은 일상의 힘든 삶 후에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이지,
게으름이나 기분전환을 위해 정신없이 먹자판, 술판, 죄 짓는 놀이나 하면서 노는 쉼은 아닙니다.
그래서 쉼은 노동 후에 갖는 여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쉼은 노동 후에 갖는 참 평안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여름 휴가, 아이들 방학 기간에 휴가를 얻어 쉼을 찾아 집을 떠납니다.
가족단위로 떠나기도 하고, 친지, 직장 동료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도 어울려 떠납니다.
하루 잠깐 짬을 내서 가까운 곳에 다녀오는 분들도 있고, 맘먹고 다녀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휴가를 다녀왔든지 휴가 다녀오신 분들에게 “휴가 잘 다녀오셨어요.” 하고 물으면,
“좋았다.” “재미있었다.” 그 다음 뭐라고 말합니까? “집 떠나면 개고생이죠.” 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 휴가는 쉼이 아니라, 개고생을 할 만큼 피곤한 휴가입니다. 그런데도 갑니다.
원래 휴가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일로부터 벗어나 쉼을 가지자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쉼을 통해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는 확 날려버리므로 새 힘을 얻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휴가라는 말을 영어로 ‘바캉스(vacance)’ 라고 하는데, ‘비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가득 찬 피로와 스트레스를 완전히 비우고, 새로운 힘으로 재충전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휴가는 완전히 비우고, 새로운 힘으로 재충전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더 많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충만히 채우고 돌아오는 휴가입니다. 그래서 휴가 후유증이 큽니다.
휴가를 또 다른 말로 ‘레저(leisure)’ 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여가를 즐긴다.’ 라는 뜻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일 이외에 활력을 주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그 무엇인가에 몰입하면서,
그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을 누리는, 보다 차원 높은 쉼을 레저 - 우리말로 여가라고 말합니다.
요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여가 생활을 잘 활용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오락과 스포츠에 몰입해,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새 삶의 활력을 찾습니다.
또는 취미생활을 하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봉사활동에 참여하므로 삶의 가치를 높이려 합니다.
우리에겐 일이 아닌 이런 가치 있는 여가생활을 통해, 부족한 내 삶의 가치로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가생활을 통해 내가 존재하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그것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캉스라는 휴가보다, 여가를 즐기는 레저라는 휴가가 더 의미 있는 쉼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사람들의 휴가를 보내는 것을 보면, 바캉스와 레저를 통한 쉼도 없고,
새 힘으로 재충전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무조건 떠나 먹자판 벌이는 무질서와 무례한 행동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휴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쉼이 있는 휴가는, 무조건 떠나고, 먹자판 벌이는 무질서와 무례한 행동이 아닙니다.
진정한 쉼이 있는 휴가는, 아름다운 찬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잠시 숨쉬는 쉼표와 같습니다.
찬양에는 높낮이가 있고, 멜로디가 있고, 강약이 있고, 길고 짧음이 있고, 빠르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곡조사이에 반드시 쉼표가 있어, 들이 쉬고 내 쉬는 숨의 조절이 있습니다.
찬양을 하다보면, 날숨뿐만 아니라 날숨을 할 수 있는 들숨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들숨이 날숨을 살리고, 날숨이 들숨을 살리는 쉼표가, 아름다운 찬양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귀에 들어오는 것은 음이지만, 음과 음 사이에 쉼표가 없다면 찬양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쉼표도 찬양의 일부이고, 하나의 곡조입니다. 쉼표 없이 숨이 차도록 부르는 찬양자는 없습니다.
이처럼 쉼표는 단절이 아니라, 마디마디 끊어진 것들을 이어주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그래서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숨이 완성되면 찬양도 완성된다.” 는 말을 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도 쉼표가 있는 찬양과 같습니다. 사이사이 쉬어가는 쉼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좋은 음악에는 적절한 쉼표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좋은 삶에는 반드시 적절한 쉼이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는 휴가는, 정말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내는 많은 쉼표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휴가가, 먹자판 벌이는 무질서와 무례한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도가 가져야 할 쉼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이 쉼을 우리는 흔히 “영성”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억하기 쉽도록 요약합니다. “쉼은 곧 영성입니다. 그래서 쉼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놀라운 사실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창조과정 첫째 날에서 셋째 날까지 빛, 궁창, 바다와 육지를 만들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또 넷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 해, 달, 별, 새, 물고기, 짐승 등 자연만물과, 사람을 만드신 후에,
반드시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하나의 자연의 질서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안식 - 곧 쉬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7일째 되는 날 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곤해서 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쉼을 창조하셨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쉼을 창조하시기 전까지는, 모든 창조세계에 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쉼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쉼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쉼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의 결론을 크게 나누면, 하나님의 창조는 이렇게 ‘나눔, 채움, 쉼’ 이라는 세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날 수가 6일입니까 7일입니까? 7일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절, 2절 말씀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의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일곱 째 날에 쉼을 창조하시고, 모든 천지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제 칠일에 창조하신 안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메누하’ 인데 행복, 평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창조하신 천지만물, 그리고 당신의 형상으로 우리 사람을 만들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쉼을 창조하심으로, 6일간의 모든 창조물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곱 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쉼을 ‘영성’ 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성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제 칠일인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날이고,
흙으로 지음 받은 우리 사람에게는 하나님 형상, 곧 하나님의 영으로 숨쉬는 생령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제 칠일인 안식일에 하나님의 영을 받아 생령이 되어 영으로 숨을 쉬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 백성들이 성전에 모여 거룩한 하나님의 영으로 숨 쉬는 날입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안식일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으로 숨 쉬는 날이기에,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일곱 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0장 8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고 명령하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히브리서 4장 11절을 보면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우리는 안식과 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예비하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 사람들이 알아서 스스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여가도 스스로 만들어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안식, 생령이 되는 하나님의 숨은 인간 스스로 쉴 수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직 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허락하실 때만이, 맛볼 수 있는 것이 안식이요. 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하므로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안식과 쉼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안식과 쉼을 잃어버림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생령이 되는 하나님의 숨도,
쉴 수 없고, 하나님의 숨을 쉬지 못한 인간들은 살아 있으나 사실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나님의 숨을 쉬는 날인 안식일에 숨 쉬지 못하는 인간들이 모이니, 안식일은 형식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안식과 쉼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숨을 쉬게 하는 안식과 쉼을 주시는 예수님이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오늘 분문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부터 30절 말씀까지입니다. 우리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멘! - 참 안식과 쉼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안식과 쉼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지금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린 스스로 사할 수 없는 죄 짐을 지고 괴로워합니다. 실패의 짐을 지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염려의 짐을 지고 신음하고, 절망의 짐을 지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짐들은 잠시 쉬는 휴가로 해결될 수 없으며, 여가생활을 즐긴다고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잠시 잊고 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도피일 뿐, 그것들은 참 안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아 생령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숨 쉬게 하려고, 우리로 숨 쉬지 못하게 하는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아,
생령이 되도록 새 창조를 하시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숨 쉬는 안식과 쉼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잃어버린 안식일을 회복시키셨는데, 그날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안식일, 바로 주님의 날인 주일에 이렇게 하나님 영으로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 주일을 지킨다는 말은,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숨을 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숨, 호흡’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우리가 성령으로 숨 쉬는 시간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으로 숨을 쉼으로 생령이 되어, 주님 안에서 참 안식과 쉼을 얻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시간, 지치고 곤한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되고,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무너진 평안을 되찾게 되고, 거기서 참된 쉼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인 성도 여러분! 오늘 거룩한 성일인 이 주일 날에,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하고,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품은 소원인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심령의 문을 열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성령으로 숨 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드림으로 성령으로 숨 쉴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새 힘을 얻고, 삶이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 날 숨 쉬는 영적 호흡이 없으면, 6일간의 나의 수고는 생명이 없는 죽은 것들이 됩니다.
그러나 주일에 숨 쉬는 영적 호흡이 있으면, 6일간의 나의 수고는 생명이 있어 형통하게 됩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의 책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에서 병든 사람의 삶의 증상을,
두 가지로 말하는데, 첫째는 목적이 없이 그냥 뭔가에 쫒기듯이 바쁘게 살아가는 분주한 삶이며,
둘째는 하나님 묵상함으로 자신의 영혼을 관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빽빽한 스케줄입니다.
자칫 급한 일들과 분주한 스케줄에 쫓길 수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으로 숨 쉬는 쉼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지금 우리가 성령으로 숨 쉬는 쉼이 곧 영성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숨 쉬는 쉼으로, 우리의 영성을 키우는 특별한 날이 주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의 몸 된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시간은, 성령으로 숨 쉬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주일만 되면, 모든 하던 일을 잠시 쉬고, 성령으로 숨 쉬러 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숨 쉬는 쉼의 영성이 있어야, 영혼도, 범사도 잘 되고, 육신도 강건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함께 다시 한 번 큰소리로 따라 합시다. “쉼은 곧 영성입니다. 그래서 쉼은 축복입니다.”
이 시간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성령으로 숨 쉬는 쉼의 영성으로!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아울러 범사가 형통하고, 삶에 지친 우리의 육신도 강건해지시기를,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주시고, 우리에게 참 쉼을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