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나타 형식(Sonata Form) (일명 소나타-알레그로 형식)
소나타 형식은 기본적으로 제시-이탈-복귀로 이루어진 3부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수 십 세기를 소비하고 발견한 이 간단한 틀은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등 서술구조를 가진 모든 장르의 예술에서 발전을 포함하면서도 앞서 제시되었던 주제의 원형이 다시 돌아옴으로서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감을 주는 완벽한 형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1) 정의와 유래
* Sonata는 라틴어로 [악기를 울린다]라는 뜻을 지니고 이태리어로는 [연주하다]의 과거 분사 여성형을 말한다.
* 16세기경에 기악음악을 소나타라 불렀는데 이는 성악음악인 칸타타와 건반음악인 토카타와 구분하기 위한 일반적인 명칭이었다. 당시에는 어떠한 특별한 구조적인 내용을 의미하기보다는 단순히 기악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 1700년경에 와서 소나타는 일반적으로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곡을 의미하지만 각각의 악장의 성격이 평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나타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 18세기에 작곡된 많은 소나타가 실은 모음 춤곡(소나타 다 카메라 Sonata da camera:실내 소나타)으로 2부분형식의 다 악장 곡이며 다른 종류의 소나타로는 빠르고 느린 속도의 변화를 주며 구성된 다 악장 작품(소나타 다 키에라 Sonata da chiesa : 교회 소나타 : trio sonata)이 있다.
* 1750년경부터는 주로 3-4악장으로 구성된 다 악장 형식의 작품에 소나타라는 명칭이 사용되어 진다. 이 시대의 악장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1악장 : 빠르고 극적이다. 느린 도입구를 갖는 형태도 있으며 소나타형식을 취하고 있다.
2악장 : 느리고 서정적이다. 가곡형식(겹두도막)이나 또는 주제변주곡일 수도 있다. 1악장과의 대조형으로 조성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장, 단조 사용, 딸림조, 나란한조)
3악장 : 겹세도막 형식을 취하는 데 원래 미뉴엣으로 쓰였으나 베토벤 이후 스케르쪼가 됨. 생략되는 경우도 있으며 2악장과 바뀌는 경우도 있다. 1악장과 같은 조성을 취하는 것이 상식이다.
4악장 : 대개 경우 1악장과 같은 조성을 유지하며, 빠른 형태의 진행이 대부분이다. 론도나 론도소나타, 소나타, 변주곡형식을 취할 수 있다.
* 명칭에서도 피아노나 또는 피아노와 단선율 악기를 위한 다악장 곡엔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클라리넷 소나타,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고, 두 개의 악기 이상이 사용되어지는 다악장 형식의 곡엔 소나타란 명칭대신 연주자의 숫자를 명시해주는 3중주, 4중주, 5중주 등의 명칭이 소나타 대신해서 쓰였다.
다시 말해서 '3인의 주자를 위한 소나타', '4인의 주자를 위한 소나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향곡이란 '관현악을 위한 소나타'라 할 수 있으며, 협주곡은 '관현악과 독주자를 위한 소나타'라고 말할 수 있다.
2) 소나타형식의 구성
* 제시부 ------------ 발전부 ----------- 재현부 ------------ 종결부
(Exposition) (Development) (Recapitulation) (Coda)
3) 제시부의 구성
때때로 느린 서주를 갖기도 하는 제시부는 일반적으로 대조적인 두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곡의 기본은 조성을 확립하는 제1주제 혹은 여러 주제나 동기들이 모인 첫 번째 주제그룹은 경쾌하고 활발한 경향이 있으며, 제2주제 혹은 두 번째 주제그룹은 대조적으로 서정적이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지닌 것으로 제1주제의 버금 딸림조로 소개되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다. 일단 두 주제가 제시되고 나면 발전부로 들어가기 전 마무리를 지어주는 작은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작은 코다라는 의미에서 코데타라고 부른다.
① 서주 : 제1주제의 암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② 제1주제 : 주제에는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이 들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리듬이나 음형이 자주 바뀌는 주제일수록 좋다. 1주제는 2주제와 그 성격이 대조적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극적, 남성적, 도약진행적, 리듬적이다.
③ 연결 1 : 새로운 동기나 1주제에서 파생된 것으로 제2주제의 조로 조바꿈하는 것이 상식이다.
④ 제2주제 : 1주제와의 대조형으로 서정적, 여성적, 순차진행적, 선율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곡의 성격이나 작곡가의 작품성향에 따라 1주제와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⑤ 연결 2 : 새로운 동기나 2주제에서 파생된 것이 일반적이나 조바꿈 할 필요가 없다. 서주나 연결 2는 생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⑥ 작은 종결 : 제시부의 일단 끝맺기 위한 것이므로 마침을 나타내기 위해 간단한 종지형(마침꼴)을 취하고 있거나 혹은 새로운 동기를 줄 수 있다.
4) 제2주제의 조성관계
* 제시부와 재현부에서의 제2주제 조성이 다르다.
* 예외적으로 관계조가 아닌 조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예) 베토벤 소나타 Op. 13 비창이나, Op. 53 발트스타인 등이 있다.
* 조성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제시부에서는 제1주제와 제2주제의 조성이 반드시 다르기만 하면 된다.
5) 주제의 발전법
* 주제를 여러 개의 요소로 나누어서 그 원형을 반복 진행시키는 방법이나 주제요소를 전위형, 축소형, 확대형, 역행형 등으로 반복 진행시키는 방법
6) 발전부(전개부)
발전부에서는 주제가 조를 바꾸거나 리듬을 바꾸어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등장하기도 하고, 주제는 잘게 나뉘어 동기 (주제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로만 그 정체를 식별할 수 있게되기도 하고, 점점 부풀려 전 관현악이 동원되는 풍성한 모습을 갖추기도 한다. 때에 따라 제1주제의 리듬을 바탕으로 제2주제가 노래되는 등 두 주제가 서로 결합하는 것도 발전부의 방법중 하나이다. 두 주제로서 만들 수 있는 모든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발전부는 음악을 얼마나 긴밀하고 능숙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작곡가의 능력을 가늠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시부의 두 주제를 아름답게 쓰는 일은 가곡 작곡가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발전부를 다양하고 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슈베르트의 경우 9번 교향곡이 '그레이트'라는 제목답게 악상도 거대하고 관현악의 규모도 더 크고 길이도 더 길지만, <미완성>교향곡 쪽이 훨씬 극적으로 들린다. 발전부의 탄탄한 갈등 때문이다. 1악장도, 마지막 악장의 발전부도 모두 싱거운 <그레이트>교향곡에 비하여 <미완성>교향곡 1악장의 발전부는 음악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비슷한 느낌으로 두 주제 사이의 탄탄한 갈등과 발전을 지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향곡을 추천할 수도 있다.
* 여러 개의 조로 변화되기도 하며 제시부에서 나타난 주제의 동기나 단편들을 음악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확대, 발전시키는 부분으로 작곡가의 기량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 발전부의 특징은 으뜸조 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조가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성이 있고 논리적인 조바꿈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강한 긴장감과 갈등감을 고조시켜 의도적으로 절정(클라이막스)을 만든 후 본래 시작했던 으뜸조로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하여 재현부로 연결한다.
* 발전부의 길이는 역시 특별한 규칙이 있지는 않지만 제시부와 거의 비슷한 길이가 일반적이다.
7) 발전부의 기법
① 조옮김 : 주제 그대로 조옮김하는 방법
② 조바꿈 : 장조를 단조로, 단조를 장조로, 조바꿈하는 방법
③ 속도, 박자, 리듬, 화성, 강약, 반주형, 조성을 변화를 주는 방법
④ 삽입구를 사용하여 새로운 멜로디를 부여하는 방법
⑤ 주제의 단편에 의한 개별적으로 발전하는 방법
⑥ 대위법적인 수법인 모방, 카논, 푸가토, 푸가, 2중대위법 등을 사용하는 방법.
8) 재현부
* 소나타 악장의 제3부분(재현부)은 본질적으로 제시부의 반복이며 구성요소도 같다. 그렇지만 재현부에서는 제2주제와 제3주제(Codetta)가 제시부에 있어서의 제1주제의 으뜸조에 대한 딸림조이었던 것이 으뜸조로 된다. 따라서 재현부에서는 딸림조의 조바꿈이 없기 때문에 제1주제에서 제2주제로의 연결은 제시부 때와는 다르게 되어야 할 것이다.
* 재현부에서 제1주제가 단조일 경우는 대개 제2주제는 같은 으뜸음조로 즉 장조로 조바꿈하거나 그냥 같은 단조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 일반적으로 발전부에서 제시부의 으뜸조로 나오는 경우 재현부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나 예외적인 면도 있다. 이는 곡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주어 더 흥미 있게 만들려는 효과에서 나온다.
9) 종결부 (Coda)
* Coda라 함은 소나타 악장의 끝 또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악곡 형식의 끝에서 짧거나 길게 부가되는 부분을 말한다. 그러나 생략되는 경우도 있다.
(예 : 베토벤의 작품 22, 49등은 Coda가 부가되어 있지 않다.)
* 일반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Coda에는 2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비교적 짧은 Coda 는 흔히 악곡의 끝에서 주요주제를 한 번 더 복귀시켜, 이것을 약간 복잡한 방 법으로 취급하는 경우와 비교적 큰 Coda는 새로운 하나의 발전부(전개부)로서 소나타형식의 한 부분을 맡고 있다.
2. 바로크 소나타
1) 개요
17세기는 바로크 시대로부터 시작된 소나타라는 명칭은 기악곡의 한 명칭으로서 당시의 칸초나라고 불리우는 대조되는 리듬과 빠르기를 갖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기악 형식이 발전된 것이다
이 세기 초엽의 용어는 주로 성악 작품의 기악 서주나 간주곡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점점 독립된 기악 작품을 칭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17세기초에 '소나타'라고 불리우던 곡들은 한 두개의 선율악기(대개는 바이올린)와 지속 저음에 의한 것일 때가 많았다. 17세기 중엽에 들어오면서 두 가지 형태의 소나타로 구분되기 시작하였는데, 첫째로 교회에서 사용될 목적으로 쓰여진 느린 악장과 빠른 악장으로 구성된 교회 소나타 ( sonata da chiesa ) 와 또 하나는 각 악장들이 뚜렷한 춤 리듬이나 춤 이름을 갖는 실내 소나타 ( sonata da camera )로 구분되었다. 이들은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 배치가 표준이 되었으며, 실내 소나타는 독일 무곡인 알르망드, 프랑스의 쿠랑트, 스페인의 사라반드, 이탈리아(영국)의 지그로 무곡적인 특성을 대조적으로 배치하였다.
보통 이 시대의 소나타는 두 대의 바이올린과 지속저음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트리오(삼중주) 소나타라고도 불렸다.
후기에 들어와서는 곡의 규모도 커지고 곡의 분위기도 점점 부드러워졌으며 소나타 형식을 예고하는 2중 주제도 예고된다. 이 시기에 들어오면 많은 작곡가들이 소나타 형식을 애호하는데 이탈리아의 알비노, 비발디, 마르첼로, 타르티니, 코렐리, 프랑스의 쿠프랑, 영국의 젠킨스, 독일의 북스테우데, 푹스, 그라우프너, 헨델, J.S.바흐 등이 있는데, 그 중 바흐의 소나타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소나타(sonata)는 주로 합주용 음악이었지만 소수의 작곡가들은 독주용 음악으로 하프시코드나 드물게는 오르간을 위해서 소나타를 썼다.
쿠나우(Johann kuhnau, 1660~1722)의 「Neue clavier-Ubung」(1692)의 제2권은 하프시코드 소나타 모음집이다. 그밖에도 쿠나우는 기악합주 소나타를 독주 건반악기 음악으로 옮겼으며 2개의 하프시코드 작품집 의 6개 의 각 소나타에는 성서적인 표제가 붙어 잇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다윗이 음악으로 사울을 치료함
야곱의 결혼
병에서 회복한 예제키엘(Hezekiah)
이스라엘의 구세주 기드온(Gideon)
야곱의 죽음과 매장.
2) 합주 소나타
바로크 시대의 합주음악에 관한 용어들도 완전히 정립되지 않아서 다른 음악에 같은 용어가 사용되거나 부정확하게 사용되는 일이 흔했다 가장 자주 사용된 합주음악 용어로는 소나타(sonata), 신포니아(sinfonia), 콘체르토(concerto) 등이 있다. 17세기초에 신포니아는 일반적으로 성악음악의 전주곡이었으나 간주곡의 역할도 하였고, 보논치니(Bononcini)의 와 같은 작품에서는 무용 모음곡의 한악장의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초기 신포니아는 독립적인 기악음악으로서의 역할이 미비하다가 바로크 시대 후기에 가서야 점차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소나타는 1572년에 비첸티노(Vicentino)가 기악적 노래에 칸초나 다 소나르(canzona da sonar)를 사용한 것처럼 소나타와 칸초나는 별다른 구분없이 사용되었다. 바로크 소나타의 형식은 칸초나의 부분(section)들이 길어지고 독립화 되면서 만들어진 음악형식이다. 어원적으로는 소나타는 '소나레(sonare:울리다, 연주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칸타타와 대조되는 기악곡을 의미하였다. 소나타는 점차 독립적인 기악곡으로 사용되었으나 17세기 중엽까지는 의미가 일관되지 않았다. 주로 미사의 일부분이나 악장 사이의 간주음악, 그리고 예배의 전주곡으로 사용된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와 궁정의 오락용 음악이나 사적인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로 분류되었다.
3) 실내소나타/교회소나타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는 표준화된 춤곡 악장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서 실내 소나타는 각 악장이 춤곡으로 된 모음곡이라 할 수 있다.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에도 춤곡 악장이 있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느림 - 빠름 - 느림 - 빠름의 속도 표시에 따른 악장 구조였다.
4) 트리오 소나타
1700년 사이에는 대부분의 소나타들이 콘티누오 반주가 붙은 주로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음악이었다. 이러한 음악을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라고 한다. 2개의 바이올린과 콘티누오로 구성되었다고 해서 트리오 소나타라고 하지만 콘티누오에 2명의 연주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트리오 소나타의 연주자는 4명으로 구성된다.
5) 솔로 소나타
솔로 소나타(solo sonata)는 1700년 이후에야 대중화되었다. 솔로 소나타는 일반적으로 바이올린이나 플루트가 독주를 하고 콘티누오는 저음악기와 건반악기가 연주하게 된다. 따라서 독주 소나타는 3명의 연주자가 필요하였다. 이와 같은 앙상블 소나타는 신포니아와 구조적으로 연주방법에 있어서나 유사하여 별다른 구분이 없었다.
18세기 벽두에 이르면 이탈리아의 음악적 우위는 프랑스의 클라브상 연주가들과 북부 독일의 오르가니스트들의 업적에 의하여 도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와 칸타타, 그리고 기악 실내 음악의 영역에서는 이탈리아인들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대가들이었고, 유럽의 스승이었다. 클레모나의 위대한 바이올린 제작자들, 아마티(Niccolo Amati; 1596~1684),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 구아르네리(Giuseppe Bartolomeo Guarneri; 1698~1714)의 시대는 또한 이탈리아의 위대한 현악 음악의 시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소나타"라는 말은 17세기 전체에 걸쳐서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악보의 표지에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세기 초엽에는 이 용어는 (나란히 쓰인 신포니아라는 말과 함께) 주로 성악 작품의 기악 서주나 간주곡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1630년 이후에도 이러한 뜻으로 계속 사용되었지만, 소나타와 신포니아라는 말은 갈수록 독립된 기악 작품을 지칭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게 되었다.
바로크 시기의 독립된 기악 소나타라고 하며 지속 저음을 포함한 소수의 악기군(대개 둘에서 넷)을 위한 작품으로서, 대조되는 빠르기와 짜임새를 잦는 여러 부분, 또는 악장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대개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온갖 다양한 형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1660년경 이루부터는 두 가지 주된 형의 소나타가 분명히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소나타 다 키에사(Sonata da chiesa; 교회 소나타 대개 그냥 “소나타”라고만 불려진다)의 각 악장들은 뚜렷한 춤 리듬이 아니며 춤 이름도 갖고 있지 않다. ‘소나타 다 카메라’(Sonata da camera; 실내 소나타)는 양식화된 춤의 조곡이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 두형이 뒤섞이는 일이 흔하였다. 많은 교회 소나타들이 한두 악장의 춤곡으로 끝나는가 하면(이때 꼭 춤 리듬이 붙여지는 건 아니었지만), 많은 실내 소나타들이 춤곡이 아닌 첫 악장을 갖는 것이다. 1670년 이후에 교회 소나타건 실내 소나타건 간에 가장 흔한 악기 편성은 두 개의 높은 음 악기(대개 바이오라 둘)와 베이스 그리고 화성을 채워 넣는 지속음이었다. 이렇게 쓰여진 소나타는 트리오 소나타라고 하지만, 네 사람의 연주자를 필요로 한다(지속 저음은 바이올린첼로 같은 악기로 중복되고 합시코드나 오르간으로 화성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트리오 소나타로 대표되는 짜임새, 즉 두 개의 높은 음 선율선과 베이스는 바로크 음악의 많은 다른 형에도 자주 나타나며, 바로크시대 이후까지도 지속되었던 것이다.
17세기 트리오 소나타보다 그 수가 적었지만, 1700년 이후에는 그 수가 많아지는 것이 독주 바이올린(또는 플롯 또는 감바)과 지속음에 의한 소나타이다(독주 소나타라고 부르다). 여섯에서 여덟 악기와 지속음을 갖는 소나타도 바로크에서 사용되었고, 반주 없는 독주 현악기를 위한 소나타(또는 다른 명칭을 갖지만 이와 비슷한 곡들)도 더러 있었다.
외적 형식의 면에서 볼 때, 17세기에 칸쪼나에서 소나타로의 발전은 악장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각 악장의 길이가 갈수록 늘어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악장의 순서는 17세기 말경 이전에는 표준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특별히 애호했던 것이 독주 소나타가 아니라 트리오 소나타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트리오 소나타의 악기 편성은 서정적성율과 청명한 다성음악을 위한 이상적인 균형을 가능케 하였다. 두 개의 높은 음 바이올린은 노래하듯 대위법적 음형으로 얽혀 들 수 있으면서도(여기에 베이스가 멀리서 참여할 수도 있다). 짜임새는 이 대위법을 방해하지 않는 합시코드의 화성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충분히 개리 되어 각 성부가 무시되거나 음향이 둔화될 위험이 없었다. 또한 독주 소나타가 과도한 기교의 과시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던데 반하여, 트리오 소나타는 각 성부의 힘을 규제하여 합주로 규합시킴으로써 음악적 관심을 전시효과보다는 음악적 내용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크의 음악 예술의 청정하고 고전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가장 완벽한 예는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이다. 그의 작품들은 트리오나 소나타, 독주 소나타와 협주곡들이 있다.
코렐리는 그의 트리오 소나타에 17세기 말 이탈리아 실내 음악의 모든 업적을 요약하였다. 그런가 하면 그의 독주 소나타와 협주곡으로써 그는 향후 50년 동안의 발전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작곡가 중에서 그는 어떤 형태의 성악 작품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는 이탈리아 국민의 경향을 노래로부터 바이올린으로 옮겨 놓았다. 바이올린은 인간의 목소리가 갖는 서정적이고 표현적인 특질에 가장 가까운 악기이다.
코렐리의 음악을 통 털어 한 가지 기본적인 기교는 연쇄(sequence)이다. 바로크작곡가 중에서 이 구성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한 사람중의 하나인 코렐리가 쓴 음악이 교회 선법의 자취를 털어 벌리고 장조·단조 조성을 완전히 들려준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연쇄는 한 조 안에서 온음계적으로 사용되든지, 또는 5도 연쇄로 하향 전조되게 사용되든지 간에 조성을 확립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의 하나인 것이다. 코렐리의 한 악장 안에서의 전조(속조로, 단조인 경우에는 관계장조로의 전조)는 언제나 논리적이고 명료하다. 그는 다음 세대의 헨델, 비발디, 바하, 기타 모든 작곡가들이 수식하고 확장하게 되는 조 주축의 원리를 확립하였다. 코렐리의 음악은 거의 완벽하게 온음계적이다. 반음계는 몇 개의 감 7화음, 그리고 종지에서 이따금씩 상주음을 반음 낮추는 것(나폴리 6도)만으로 국한되어 있다.
코렐리의 트리오 교회 소나타의 4악장은 당시 칸타타 4악장 순서의 유형을 따라 느림-빠름-느림-빠름의 순서로 된 것들이 많다. 같은 순서를 17세기말과 소나타의 표준형이라고 간주한다. 같은 순서를 17세기말과 18세기초의 작곡가들도 자주 썼기 때문에 어떤 음악 사가들은 이것을 바로크 소나타의 표준형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이 일반적인 규칙에 대한 예외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것은 속단이라 할 것이다. 코렐리의 트리오와 독주 실내 소나타들은 프렐루디오(preludio)로 시작되어 조곡에서 통상 쓰이는 둘이나 셋의 춤곡이 위의 순서로 나타난다. 마지막 지이그는 가보트로 대치될 때도 있다.
코렐리의 대부분의 트리오 소나타에서 모든 악장들이 같은 조로 되어 있는 것은 17세기의 한 전형이다. 그러나 그의 후기 작품들은 그렇지 않다. 독주 소나타에서 장조로 된 것 (11개 중에서 8)은 모두 관계 단조의 느린 악장을 하나씩 가지며, 합주 협주곡들은 모두 대조되는 조에 의한 느린 악장의 음악적 전개를 위한 주제는 단번에 뚜렷한 종지를 갖는 완결된 형태로 주어진다. 그 뒤에는 연쇄 처리법, 가까운 조로 종지되는 짧은 전조, 그리고 매혹적이며 미묘한 분절법으로 이 주제는 끊임없이 확장되어 펼쳐진다. 한 주제가 계속해서 펼쳐지는 것, 또는 "실 뽑기"(독일인들은 이것을 포르트슈피눙(Fortspinnung)이라고 한다)는 바로크 말기의 한 두드러진 특징이다.
코렐리의 독주 소나타들은 같은 형의 트리오 소나타들과 악장의 순서와 성격이 같지만, 그의 독주 소나타에는 짜임새가 대조되는 빠른 악장이 하나 추가되어 다른 두 개의 빠른 악장중의 하나와 짝을 이룬다. 자연히 독주 소나타는 트리오 소나타보다 화성음악적 악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코렐리의 가장 뛰어난 혁신은 바이올린의 기교적 처리이다. 제 3위치 위는 결코 사용하지 않지만 어려운 이중음, 삼중음, 빠른 달림음, 아르페지오, 카덴짜, 그리고 모토 페르페투오에 의한 연습곡적인 악장들이 있는 것이다.
종합해 보건대, 이 독주 소나타들은 코렐리가 그의 학생들에게서 어떤식의 기교를 기대했던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가르침은 18세기의 대부분의 바이올린 악파의 기초가 되었다. 그가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끼친 영향에 못지 않았다. 그의 동시대인과 추종자들 중에는 브라부라(bravura)의 면에서 그를 능가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악기에 부여한 칸타빌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활의 기법에 관한 한)음악적 내용에 합당치 못한 기교주의의 과시를 피한 그의 높은 감각을 따르지는 못하였다.
바로크시대의 연주자들은 항상 작곡가가 기록한 악보에 여러 음을 추가하여야했다. 예를 들어 숫자 붙은 베이스의 연주는 연주자의 손에 달려 있었다. 성악이든 기악이든 독주 선율선은 연주자의 기교, 감각, 경험에 따라 장식음을 적당히 써서 완성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장식음은 어떤 경우에나 즉흥연주에서 기원하였던 것 같다. 그것이 후에 와서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기보 되던가 또는 특별한 기호로 지시되었지만 항상 어떤 즉흥적인 색채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장식음"이라는 말이 잘못 인식되어, 선율에 대해서 본질적이 아닌, 피상적인 또는 없어도 좋은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바로크의 관점은 그렇지 않았다. 장식음들은 단순한 장식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감정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표현적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나아가서 흔히 쓰이는 장식음들, 특히 트릴과 전과음들은 악보만으로는 잘 알아차릴 수 없는 우연한 불협화음의 맛을 더해 주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어떤 선율선을 장식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1) 작은 선율 규칙 : 악보의 어떤 음에 붙은 작은 선율 음형(트릴, 회전음, 전과음, 하회전음 따위), 이들은 거의 언제나 특별한 기호로 지시되었다. (2) 긴 장식에서 선율의 어떤 음을 여러 작은 음으로 부서뜨려, 악보상의 선율을 자유스럽고 정교하게 해석하는 것. 긴 장식음들은 말할 것도 없이 느린 선율에 적합하였다. 코렐리의 독주 소나타의 느린 악장들에 대한 그레이스들이 18세기 사본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탈리아에서 흔히 쓰이던 즉흥 장식음이 기록된 드문 예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코렐리 자신의 것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바로크 말기에 실제로 행해지던 이러한 선율 장식의 대체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임을 의심할 나위가 없다.
바로크시대의 연주자들은 이와 같이 작곡자가 쓴 악보에 음을 추가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그들은 음을 더러 빼던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 것을 변형시킬 자유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오페라에서 어떤 아리아를 빼던가, 도카타를 오르가니스트 마음대로 줄이든지, 아무데서 끝내도 좋도록 허락하였다. 변주곡, 조곡, 소나타의 작곡가들은 연주자들이 그 중에서 몇 개의 악장들을 마음대로 생략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기악 합주 모음집의 표지에는 다른 악기편성으로 해도 좋다는 것을 밝힐 뿐 아니라, 그 대안까지도 지시한 것이 아주 많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과 지속 저음을 위한 소나타는 "필요하다면" 한두 개의 바이올린을 추가해도 좋다는 식이었다.
이탈리아의 트리오 소나타는 다른 모든 나라의 작곡가들에 의해 모방, 또는 채택되었다. 1683년과 1697년에 퍼어셀은 트리오 소나타 작품집을 발간하면서 "가장 유명한 이태리의 대가들을 그대로 모방하려 노력하였다"고 하였다. 그의 리듬과 선율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지만 많은 악절들은 극히 영국적이고 피어셀적이다. 헨델의 트리오 소나타들은 거의가 코렐리의 그것과 같은 4악장 형식이며, 양식도 가장 중요한 트리오 소나타를 쓴 사람은 꾸우쁘랑이었다. 이 작품들 중에는 작곡 연대가 16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측되는 것들이 있지만, 출판연대는 훨씬 늦다.
「레 나씨옹」(Les Nation) : 「Sonadeset Suites de Simphonies en Trio」라는 제목의 1726년의 모음집에는 4개의 오르드르가 포함되어 있는데, 각각 여러 악장의 교회 소나타(sonade) 뒤에 춤 조곡(suite de simphonies)이 뒤따르는 것이었다. 소나타의 양식은 코렐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영향이 분명히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꾸우쁘랑의 클라브상 곡을 특징짓는 세련된 선율이나 뛰어난 감각의 장식음을 갖고 있다.
독주 바이올린 소나타는 시초부터 특별한 운궁법, 복합음, 기타 온갖 종류의 어려운 기법을 실험하는 제일의 매체가 되어왔다. 초기 바로크의 이러한 전통은 독일에 살아 남았으며, 1676년에 스케르찌(Scherzi)라는 제목으로 출판돈 발터(Johann Jakob Walther; 1650∼1717?)의 12개의 소나타 모음집은 기법의면에서 그때까지 알려져 있었던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기교파 연주자이면서 보다 폭넓은 관심을 가졌던 작곡가는 비버(Heinrich Ignaz Franz Biber)였다. 비버는 교회음악과 기악 합주작품도 썼지만, 그가 주로 기억되는 것은 1675년경에 작곡된 15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생애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바로크 표제 음악의 이 특출한 예는 스코르다투라(scordatura), 즉 특정한 화음의 연주를 쉽게 하기 위한 바이올린 현의 비정상적인 조율을 상당히 많이 쓰고 있다. 비버의 성서 소나타 모음집의 말미에 첨부되어 있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싸칼리아는 아마도 바하의 위대한 D단조 샤콘느를 예시한 가장 중요한 작품일 것이다. 비버와 발터 이후의 독일 바이올린 작곡가들은 거의가 이탈리아 악파의 영향 아래로 들어갔으며 이를 기초로 국제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코렐리의 또 다른 제자 제미니아니(Francesco Geminiani; 1687∼1762)는 런던에서 기교파(virtuoso)로서, 작곡가로서 오랫동안 활약하였다. 그는 거기서 1751년에 바이올린 교본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18세기초의 코렐리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대가들이 가르쳤던 기본적인 기교의 원칙들과 그 해석을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미니아니의 독주 소나타와 합주 협주 등은 코렐리의 양식에 기초를 두고 그 위에 보다 진보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기교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타르티니(Gieseppe Tartini;1692∼1770)였다. 그러나 그의 독주 소나타와 협주곡들은 이미 18세기 중엽의 고전 이전 양식이 지배하고 있다.
트리오와 독주는 바로크시대에 가장 널리 쓰인 매체였지만, 소나타(또는 다른 이름의 이와 비슷한 곡)에 채용된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오반니 가브리엘리의 시대로부터 17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지속 저음 외에 셋 이상의 선율악기에 의한 칸쪼나, 춤 조곡, 소나타, 신포니아 등이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기악 합주를 위한 소나타, 특히 조곡은 독일에서는 특별히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 샤인의 「반케토 무지칼레」(Banchetto musicale) 이후 이 형식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가장 전형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1670년에 출판된 로젠뮐러(Johann Rosenmuller; 1620경∼84) 의 실내 소나타들이었다.
6) 합주음악 작곡가들
① 마리니
성 마르크 성당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일했던 마리니(Biagio Marini, ca. 1587~1663)는 소나타 작곡가로도 유명하였다. 그의 작품은 22권이 출판되었지만 7권은 분실되었다. 마리니가 가장 재능을 나타낸 분야는 기악이다. 다양한 기악작품들 중에서도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들과 2, 3성을 위한 연주자용 소품, 그리고 현악기용 기악작품들이 중요하다. 그의 작품 중 "Affetti musicali, op. 1(음악정감, 1617)"에는 무용곡, 칸초나, 신포니아, 바이올린이나 코넷을 위한 소나타들이 실려 있다. 이 작품집에서는 1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신포니아로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마리니는 신포니아와 소나타라는 명칭을 구분 없이 사용한 것 같다. Op. 1 중 는 칸초나 형으로 다른 빠르기를 갖는 여러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이나 코넷을 위한 독주용 음악으로 적합하였다. 3개의 독주 신포니아인 와 로마네스크 선율과 베이스 선율에 기초한 한 세트의 콘티누오가 딸린 독주 바이올린 변주곡 형식인 이 있고, 에서는 소나타를 신포니아보다 길고 변화 있는 구조를 가지게 함으로써 신포니아보다 길고 변화있는 구조를 가지게 함으로써 신포니아와 구분하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가 있다.
② 카자티
사제,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출판인이었던 카자티(Maurizio Cazzati, 1620~1677)는 성 페드로니오 성당의 악장으로 재직하였다. 현존하는 66권의 작품 중 10권이 기악작품들이다. 두 개의 트럼펫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이외에도 많은 소나타가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다. 카자티의 트럼펫 소나타들은 토렐리의 소나타와 협주곡의 모델이 되었다. 카자티는 그의 소나타에서 단일 주제를 반복할 때 경과구를 사용하는가 하면 여러 개의 주제가 나올때는 악장을 둘로 나누었고 두번째 부분은 V화음으로 시작한다. 카자티가 봉직했던 성 페트로니오 성당에는 비탈리(G. B. Vitali)와 코렐리(Arcangelo Corelli)가 대를 이어 일하면서 기악음악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③ 비탈리
카자티의 제자인 비탈리(Giovanni Battista Vitali, 1632~1692)는 카자티의 뒤를 이어 성 페트로니오 성당에서 악장으로 일하였고 후에는 프란체스코 궁정에서 일했다. 교회와 궁정을 위해서 많은 성악곡을 작곡하였지만 기악음악으로 더욱 이름이 알려졌다. 특히 트리오 소나타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의 소나타에는 대위법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푸가적인 악장이 삽입되어 있으며 또한 동일한 선율을 리듬만 바꾸어 전개시키는 기법도 사용하고 있다. J. S. 바흐의 의 선례가 되는 비탈리의 는 60곡의 기악 카논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육적인 작품이다.
④ 도메니코 가브리엘리
D. 가브리엘리(Domenico Gabrieli, 1651~1690)는 뛰어난 첼로 주자였으며, 첼로 소나타를 작곡한 최초의 작곡가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첼로를 다른 악기를 위한 소나타의 대체 악기로도 사용하고 있으며 콘티누오가 딸린 트럼펫과 첼로를 위한 트리오 소나타를 만들기도 하였다. 소나타는 4~6악장으로 느린 악장과 빠른 악장이 교대된다. 가브리엘리는 많은 성악곡에 첼로를 오블리가토(obligato)로 사용하였고, 오페라의 아리아에서도 첼로나 트럼펫을 반주에 덧붙였다.
⑤ 토렐리
바이올린 주자이자 작곡가인 토렐리(Giuseppe Torelli, 1658~1709)는 합주 협주곡과 독주 협주곡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협주곡을 포함한 100곡 이상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 이 중에는 트럼펫과 현악기를 위한 레퍼토리와 교회 소나타 형식의 트리오 소나타, 다양한 춤곡 악장으로 구성된 실내 소나타, 콘티누오 베이스가 없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2중주곡 등이 있다. 토렐리의 독주 협주곡은 대부분이 빠름 - 느림 - 빠름의 3악장으로 되어 있어서 바로크 독주 협주곡의 정형을 보여 주고 있다.
대표적인 프랑스 건반악기 작곡가인 쿠프랭(Francois Couperin)은 건반악기 작품은 물론 현악기를 위한 실내악의 발전에도 공헌하였다. 르클레르(Jean Marie Leclair, 1697~1764)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창시자이자 가장 초기의 바이올린 주자이다. 이들의 음악은 코렐리의 영향을 받고 이탈리아적인 양식과 프랑스적인 양식을 조합하고 있다. 륄리(Lully)의 전통적인 프랑스 양식은 게오르크 무파트(Georg Muffat)등에 의해 독일어로 전해졌다. 쿠서(Kuser)가 도입한 프랑스 서곡은 독일의 관현악 모음곡으로 이어지면서 텔레만과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의 모델이 된다. 독일의 비버(Ignaz Franz von Biber, 1644~1704)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스코르다투라(scordatura)기법을 사용하여 바이올린 연주기법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파사칼리아>는 바흐의 의 모델이 된다.
3. 전고전 소나타
1) 전고전 시대의 음악형식
전고전주의 시대에도 바로크 시대의 음악형식은 새로운 음악형식들과 한동안 같이 사용되었다. 오페라 분야에서도 몇몇 독일 작곡가들이 다 카포(Da capo)부분을 없애고 대신에 카바티나(cavatina)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다 카포 아리아도 여전히 널리 사용되었다. 기악작품에서 전고전주의 작곡가들은 2부분 형식을 사용했으나 수정되거나 확장되었고, 2부분 형식은 소나타 형식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도 이러한 형식에 대한 명칭은 없었고, 19세기에 들어와서 이론가들에 의해 소나타 형식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소나타 형식은 고전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기악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조적 설계가 되었다. 전고전 시대에 와서 단순한 2부분 형식 구조로 되어 있는 작품은 첫째 부분(A)은 으뜸조에서 시작해서 딸림조나 다른 관계조로 전조된 후 종지로 이어진다. 둘째 부분(B)은 바뀐 조로 시작해서 한동안 진행하다가 원조로 전조해서 으뜸음으로 끝난다. 전고전주의 작곡가들은 B부분의 끝에서 으뜸조로 마감할 때 자주 작품의 시작 마디를 중복하거나 A부분의 끝부분도 B부분처럼 원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B부분의 끝에서 처음 부분이 돌아오는 2부분 형식을 순환 2부분(rounded binary)형식이라 불렀다. 반복이 사용된 이러한 2부분 형식의 구조는 AABABA가 된다.
소나타 형식에도 실질적으로 이러한 순환 2부분 형식의 B부분에서 주제적 자료를 다룰 때 성립된다고 하겠다. D.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와 C. P. E 바흐의 건반악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소나타 형식에는 뚜렷한 발전부가 없이 주제 재료들을 조합한 형태가 나타난다.
2) 전고전시대의 소나타 형식
'소나타 형식(sonata form)'이라는 용어는 혼란을 일으키기가 쉽다. 다악장 형식의 작품을 소나타라 하고. 알레그로(Allegro) 빠르기로 된 제1악장을 가리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하므로 혼돈을 갖게 한다. '소나타 형식'은 악장의 구조적 원칙을 가리키는 것이고, 다악장 형식의 기악 작품은 '소나타'라고 한다. 따라서 소나타 형식과 소나타는 음악구조와 음악장르로 엄격히 구분되어진다. 소나타 형식과 유사한 구조적 형태는 바로크 시대가 끝나기 전부터 이미 사용되어 왔지만 소나타 형식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없었다. 독일 작곡가 코흐(H. C. Koch, 1749~1816) 역시 소나타 형식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논문 「작품에 대한 논문 3편(Versuch einer Anleitung zur Composition)」에서 소나타 형식에 대한 구조적 원칙을 순환 2부분 형식구조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논문이 소나타 형식에 대하여 설명한 최초의 논문으로 알려진다.
전고전주의 작곡가들과 18세기 이론가들의 소나타 형식에 대한 구조적 원칙은 순환 2부분 형식(rounded binary form)이며 다음과 같이 요약되고 있다.
(a) 처음 부분은 으뜸조로 시작해서 딸림조나 다른 관계조로 전조된 후 종결된다.
(b) 둘째 부분은 딸림조나 다른 관계조로 시작해서 먼 조로 전조된다.
(c) 둘째 부분은 다시 강하고 명확하게 으뜸조로 돌아와서 종결된다.
이상의 규칙이 일반적인 골격이었으나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18세기의 작곡가들은 이와 같은 형식을 그들의 작품에 자주 사용하였지만 이들 역시 이러한 형식을 소나타 형식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소나타 형식,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와 같은 용어들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전고전 시대의 다악장 기악음악의 모체라고 볼 수 있는 바로크의 교회 소나타는 점차 사라져 갔으나 고전주의 시대에도 계속 존재하였다. 글룩(Giuck)이나 하이든도 교회 소나타 형식의 작품을 썼다. 바로크의 솔로 소나타(soio sonata)는 피아노 3중주(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나 현악 3중주(바이올린I, 바이올린II, 첼로)등의 3중주(trio)로 변화되었고,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는 고전 시대에 와서 피아노 4중주나 현악 4중주로 대체되었다. 독주 건반악기를 위한 전고전중의 시대의 소나타는 D. 스카를라티에 의해서 크게 발전하였다. D. 스카를라티는 이러한 소나타를 '연습곡(ess-ercizi)'이라고 불렀다. D. 스카롤라티 이외에도 소나타는 D. 알베르티(D.Alverti), C, P, E. 바흐 등 이탈리아와 독일 작곡가들에 의해서 더욱 발전되었다. 스카를라티와 알베르티는 소나타를 2악장으로 썼지만 C, P, E. 바흐는 3악장으로 썼다. 1740년 이후부터는 이탈리아 서곡의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 구조를 선호하여 3악장의 구조가 일반화되었다. D. 스카를라티의 <연습곡(Essercizi)>과 안(Thomas A. Arne)의 <레슨(Lessons)> 등과 같은 건반악기 소나타들은 교육을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전고전주의 소나타들은 궁정이나 공공의 연주회 또는 가정의 오락을 위해서 연주되었고, 특히 여러 악기를 위한 소나타들은 교향악적 흥미를 갖게 하여 고전 교향곡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의 아들로 태어난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 는 전고전 시대의 가장 뛰어난 건반악기 작곡가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1720년경 포르투갈의 궁정으로 가서 일하게 되었고, 1729년에는 포르투갈 황녀를 따라 다시 스페인궁정으로 가서 남은 생애를 그곳에서 봉직하였다. 550여 곡에 이르는 소나타들은 대부분 하프시스코드를 위한 작품이지만 K.287, K288, K328은 오르간을 위한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번호는 L. K. P. G. 등으로 다양한데 L.은 편집자 롱고(Alessandro Longo)의 분류이고, K.는 키르파프릭(Ralph Kir-Patrick), P.는 페스톨리(Giorgio Pestolli), G.는 길버트(Kenneth Gillbert)의 분류에 따라 붙여진 번호들이다. D.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은 대에로 기교적으로 어렵다. 손이 교체되는 음형과 빠르게 반복되는 음, 건반 전체에걸쳐 확대되는 아르페지오 음형 등은 상당한 기교가 필요하다.
음악 구조는 바로크 말기의 2부분 형식(Binary form)이지만 소나타의 조성체계를 갖고 있다. 두 부분은 각각 반복되며 첫 부분은 딸림조나 관계장조로 종지되며, 둘째 부분은 각각 반복되며 첫 부분은 딸림조나 관계장조로 종지되며, 둘째 부분은 먼 조로 전조되었다가 원래의 조로 돌아온다. 두 부분은 각기 반복을 하지만 소나타 형식에서 볼 수 있는 재현부는 없다.<소나타 K.159>는 발전부의 형태도 갖고 있어서 고전 소나타 형식의 초기 단계를 느끼게 해 준다. 1745년 이후의 소나타들은 두 곡이 한 쌍으로 이루어져서 실제로는 두 악장으로 된 하나의 소나타 형태로 되어 있다.
4. 고전 소나타
1) 개요
보통 소나타라고 하면 이 고전 소나타를 지칭하는데, 바로크 소나타가 고전파에 이르면서 크게 피아노 독주용과 독주악기와 피아노용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3중주 이상의 곡에는 소나타와 같은 형식을 취하더라도 소나타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보통 4악장으로 구성된 고전 소나타의 제1악장에는 소나타 형식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형태는 독주곡뿐만 아니라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등에도 사용되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제1악장 : Allegro 알레그로, 소나타형식
제2악장 : Andante, Adagio 안단테 또는 아다지오, 가요(세도막) 형식
제3악장 : Menuett, Scherzo 메뉴에트 또는 스케르초, 트리오 형식
제4악장 : Allegro, Presto 알레그로 또는 프레스토, 론도 형식
이 4악장 구성은 하이든(285곡 작곡)에 의하여 완성되어 모차르트(90곡 작곡)와 베토벤(55곡 작곡)을 정점으로 하는 빈고전파에 의하여 더욱 풍성하게 종합된다. 특히 베토벤의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구약성서'라고 불리우는 J.S. 바흐의 평균율과 비교하여 음악의 '신약성서'라고 불릴 만큼 표현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낭만주의의 경향이 강한 베토벤의 후기 작품은 2, 3, 4악장 구성을 갖기도 하였는데, 그 후 하나의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낭만주의에 들어오면서 소나타의 악장 배치는 2악장이나 1악장 등으로 매우 자유스럽게 되었다. 또한 현대에 들어오면서 소나타는 고전적 의미와는 달리 단순히 (기악곡)의 의미로만 쓰여지고 있다.
소나타 형식이 서양음악사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대체적으로 18세기말이며, 교향곡이라면 하이든의 음악에서 불완전하지만 이미 소나타 형식이 사용되고 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이르면 이미 제 모습을 갖춘 소나타 형식을 발견할 수 있고, 베토벤은 더 나아가 발전부의 기능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이 형식이 지닌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소나타 형식의 구조를 다룬 첫 세 문헌의 저자, 안토닌 라이하(1826), 아톨프 베른하르트 막스(1845), 카를 체르니(1848)등이 모두 동시대인으로 베토벤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었다는 점 역시 베토벤 시대에 이르러 이 형식이 기본 패턴을 갖춘 작곡의 중심형식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이 중 소나타 형식이란 용어 자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막스다. 이후 소나타형식은 독일 음악은 물론 19세기의 서양음악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다양하게 응용되어 간다. 위에서 설명한 기본적은 골격을 바탕으로 발전부의 새로운 소재가 제시부의 주제와 더불어 진지하게 다루어지거나(멘델스존), 세 번째 주제를 등장시켜 발전부에서 함께 이용하는 (브람스)등 다양한 실험이 가해졌고, 말러에 이르러서는 이 형식이 거의 모든 가능성이 탐구되는 듯하다.
기악 소나타나 교향곡 안에서의 이 형식은 1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서 사용되면서 중심골격을 이룬다. 가끔 마지막 악장에서 한 주제가 새로운 주제 사이에서 되풀이되며 나타나는 론도 형식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물론 예외도 있어, 대표적으로 합창이 등장하며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되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나, 변주곡이 활용되는 베토벤의 3번 교향곡, 브람스의 4번 교향곡(파스칼리아 역시 변주곡의 일종이다.) 등을 들 수 있다.
1770년대에 많은 작곡가들이 쓴 독주 악기를 위한 소나타(sonata)는 첼로 또는 피아노를 위한 것들이었다. 초기에는 하프시코드가 바로크 시대에 이어 계속 유행됐으나 1785년 이후부터는 피아노가 하프시코드를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18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반주가 딸린 건반악기 소나타가 인기가 있었는데 반주 악기는 주로 바이올린이었다.
2) 모차르트의 소나타
모차르트의 현존하는 독주 건반악기 작품으로는 18개의 소나타와 17세트의 번주곡 그리고 몇 편의 환상곡이 있다. 이들 작품들은 3악장 구성으로서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서정적인 아다지오(Adagio)나 안단테(Andante), 제3악장은 카덴차가 있는 경쾌한 론도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1774∼1775년에 잘츠부르크와 뮌헨에서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K.279∼284는 하이든과 C. P. E 바흐의 영항을 받은 작품으로 갈랑 양식이 뚜렷이 나타난다. 1777∼1778년에 만하임에서 작고된 K.309와 K.311은 기교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곡으로 화려한 알레그로와 우아한 안단테 악장으로 되어있다. 778년에 파리에서 작곡된 K.310과 K.330∼333에는 널리 알려진 곡들이 많다. 특히 K.331은 유명한 <터키 행진곡>이 포함된 인기있는 곡이다. <작은별>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동요에 의한 변주곡인 K.265를 포함한 피아노 변주곡들도 1778년 파리에서 작곡되었다. 연주곡들은 대부분이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 작곡되었다. 1788년에 빈에서 출판된 c단조 소나타 K.457과 K.475의 첫머리에는 '환상곡(Fa-ntasia)'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 작품들은 연속적으로 연주된 것 같고 이러한 작품의 예는 C. P. E 바흐에게서도 발견된다. K.457은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에 영향을 미쳤다. 1789년에 작고된 마지막 소나타 D장조(K.576)는 알베르티 베이스 대신에 다른 종류의 분산화음을 사용하고 있으며 제1악장에는 대위법이, 3악장에는 장식적인 음형이 들어 있어 연주하기에 대단히 난해한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35곡에 이른다. 초기의 작품은 피아노가 중심이었고 바이올린은 임의로 삽입되는 형태였다. 이러한 작품들을 보면 바이올린은 바주의 근에 머물렀으므로 피아노 소나타로 불리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 했다. 그러나 1777∼1778년 사이에 만하임과 파리에서 작고된 e단조(K.304)와 빈 시대에 작곡된 Bb장조(K.454), Eb(K.481), A장조(K.526) 등에서는 바이올린이 피아노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면서 고전주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3) 베토벤의 소나타
32개의 소나타 중 1∼20번까지는 대단히 다양한 형식구조로 되어 있다. 10곡(1, 2, 3, 4, 7, 11, 12, 13, 15, 18번)은 4악장, 2곡(19, 20번)은 2악장, 나머지는 3악장 구조로 되어 있다. 이들 중 13곡(1∼11번과 19, 29번)의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마지막 악장은 다양한 형태의 론도가 일반적이다. 소나타 제 12번은 소나타 형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고전주의의 미뉴에트 악장은 베토벤에게 이르러서 변화되었다. 미뉴에트를 사용하더라도 고전주의와 같은 우아한 미뉴에트는 아니었다. 소나타 제2번과 3번에서는 미뉴에트 대신 생동감 넘치는 스케르초를 사용하였고, 소나타 제5, 6, 8번에서는 미뉴에트와 스케르초를 모두 생략하였다. 그런가하면 4악장으로 된 소나타 제 18번에서는 스케르초를 2악장에, 미뉴에트를 3악장에 쓰고 있다.
1780년대에 빈에 머무르는 동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 영향을 준 작곡가들은 클레멘티(Muzio Clementi, 1752∼1832), 하이든, C. P. E. 바흐, 두세크(Jan Ladisav Dysda, 1760∼1812)들이다. 클레멘티와 두센크가 선호한 기법이었던 한 악장 내에서의 장·단조 병행이동은 베토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미뉴에트가 C장조이면 트리오는 c단조가 되는 조성진행이다) 그밖에도 두세크의 풍부한 화성진행, 변화화음, 비화성음, 빠른 음계, 먼 거리의 전조 등과 같은 기법도 베토벤의 음악에 반영이 되었다. 클렌멘티의 소나타 제6번 op.10, f단조는 1790년대 중반 이후의 베토벤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작곡가들의 작곡 기법들은 언제나 그대로 인용되지 않고 그의 독창적인 창작기법에 융화되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op.2의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하이든에게 헌정 되었다. 제1번 op. 2-1번 f단조는 8분음표와 16분음표의 셋잇단음표로 시작되고 알베르티 베이스를 사용한다. 제2번 op.2-2번은 2, 4악장이 론도이고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이다. op.2중에서는 제3번이 가장 화려하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분산 옥타브, 아르페지오, 알베르티 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소나타 제4번 op.7번 Eb장조는 이전의 작품에 비하여 우수하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다양한 주제가 반복되고 코다는 전에 비하여 대단히 길어졌다. 2악장은 라르고,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이고, 4악장은 론도이다. 1796∼1798년 사이에 작곡된 op.10.의 3개의 소나타(제5∼7번)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소나타 제8번 op.13 c단조(1798)는 베토벤 자신이 <비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비창>소나타는 3악장 구성인데 1악장은 장엄한 그라베(Grave)의 도입부가 있는 소나타 형식이고, 2악장은 길고 서정적인 아다지오 칸타빌레 악장으로 5부분으로 된 론도 형식이며 3악장은 7부분의 론도 형식이다.
op.27의 2개의 소나타에 베토벤은 "거의 환상곡처럼(Quasi una fantasia)"이라는 지시사항을 붙였다. 이 두 개의 소나타는 1악장이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이 아니라 판타지아(Fantasia)로 된 악장이다. 소나타 형식은 마지막 악장에 사용된다. 제13번 op.27 E장조는 각 악장간에 휴식이 없으며 마지막 악장은 카텐차가 있는 론도 소나타 형식이다. <월광>으로 알려진 제 14번 op.27c#단조(1801)도 처음 두 개의 악장에서는 멈춤이 없다. 이들 작품에 시도된 형식에 있어서의 이탈은 이미 낭만주의 음악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소나타 제21∼27번의 7개의 소나타 중에서는 21번과 23번이 가장 중요하다. 제21번 op53 C장조(1803)는 발트슈타인(Waldstein)백작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발트슈타인>소나타라고 부른다. 원래 이 소나타는 제1악장 Allegro(C장조), 제2악장 Andante(F장조), 제3악장 Rondo(C장조)로 되어 있었으나 곡이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되어 2악장 안단테를 삭제하고 대신 도입부를 삽입한 뒤 바로 마지막 론도 악장으로 넘어가게 하였다.
소나타 제23번 op.57 f단조(1804)는 출판업자가 <열정(appassionata)>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f단조의 제1주제로 시작하는 1악장은 강렬하다. 기본적으로 주제는 Ⅰ에서Ⅴ화음으로 진행되나 반복할 할 때는 Gb장조로 진행한다. 제2주제는 관계장조인 Ab장조로 시작하여 ab단조로 바뀐다. 마지막 악장의 발전부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나타난다.
<열정>소나타 이후 5년이 지난 1809년에 이르러서야 두 개의 소나타 제24번 op.78, F#장조와 제25번 OP.29G장조가 작곡되었다. 이 두 작품은 소나티네(sonatine)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다음 작품은 친구이자 후견인이었던 루돌프 대공(Archduke Rydolph)에게 헌정된 제26번 op.81a Eb장조(1809) <고별> 소나타이다. 이 작품은 루돌프 대공이 나폴레옹군을 피래 빈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에 착안하여 작곡되었으므로 '고별'이라고 부른다. 각 악장에는 '이별', '부재(不在)', '재회'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소나타 제27번 op.90 e단조(1814)는 2악장으로 되어 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e단조의 알레그로이고, 2악장은 론도 소나타 형식으로 E장조의 안단테이다. 소나타 27번과 28번은 유일하게 독일어로 빠르기(tenpo)를 지시하고 있다.
1817∼1822년 사이에는 마지막 5개의 피아노 소나타(제28∼32)가 작곡되었다. 주제의 독창적인 전개, 푸가의 사용, 대담한 화성, 원격 전조, 악장간의 주제 또는 동기의 유기적 관계 등이 두드러진다. 특히 단6도 관계의 전조가 자주 나타나고 원격 전조는 5도로 준비되기보다는 긴 휴지부를 이용하고 있다.
소나타 제29번 op.106 <해머 클라비어(Hammer klavier, 1817>)은 소나타의 이름대로 힘찬 작품이다. 대위법이 많이 사용되었고, 악장간의 주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장엄하고 웅장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대위법적인 발전부가 확장되어 있지만 고전형식을 따른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sostenuto)의 긴 2악장은 f#단조로 명상적인 분위기를 가지며 마지막 악장의 도입부적 역할을 한다. 마지막 알레그로 악장은 3성 푸가 기법에 의해 대위법적이지만 박자와 강세에 변화를 주어 전통적인 푸가 양식과는 다르다.
베토벤의 마지막 3개의 소나타는 전통적인 고전주의의 형식을 이탈하였다. 느린 악장은 생략되고 스케르초와 트리오로 대체됐으며 소나타 형식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소나타 제30번 op.109 E장조(1820)의 제1악장은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고, 마지막 악장은 주제와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소나타 제31번 op.110 Ab장조(1821)는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의 제1악장, 실레지아(Silesian) 지방의 민요 선율과 피카르디(picardy) 종지가 사용된 제 2악장, 3성 푸가로 진행되는 마지막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소나타, 제32번 op.111c단조(1822)는 장엄한 도입부가 있는 c단조의 1악장, 주제와 변주로 된 c장조의 2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다지오(Adagio)의 2악장에서는 코다에서 주제가 재현되고, 크레센도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pp로 바뀌어지고 악상이 나타난다.
피아노 소나타 이외의 소나타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혹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2중주라고 할 수 있는 소나타가 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의 작품을 능가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10곡의 소나타 중 3곡(5,7,10번)은 4악장 구성이고, 다른 곡들은 3악장이다. op.24 F장조 소나타는 제 4번 op.23을 보완해 주면서 서로 연관성을 갖도록 작곡되었다. <봄> 소나타라고 불리는 op.24는 생동감이 넘치는 곡으로 형식감이 뚜렷한 작품이면서도 낭만주의적이다. op.30의 세 곡 중에서 제 7번 c단조 소나타는 상당한 기교를 요하는 장대한 곡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중에서 최고의 걸작은 제 9번 op.47 A장조(1803) 소나타이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협주곡처럼 콘체르탄테(concertante) 양식으로 연주하는 소나타"라고 하였다. 이 작품은 당시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크로이처(Rudolph Kreutzer)에서 헌정 되었기 때문에 <크로이처> 소나타라고 부른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8개가 있다. 프러시아의 왕 프리드리헤빌헬름 2세에게 헌정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소나타(op.5의 제1번,2번)는 첼로가 콘티누오의 저음부 역할의 기능을 떠나 건반악기와 동등한 관계로 작곡된 최초의 작품이다. 제3번 op. 69 A장조 소나타는 느린 악장이 없는 3악장으로 악장은 첼로의 독주로 시작한다. 첼로와 피아노는 이 작품에서 대화를 나누듯이 동등한 관계로 연주된다. op.101.의 두 곡은 대위법의 사용이 증가되었고 형식은 자유로워졌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변주한 op.66의 F장조와 E장조, 그리고 헨델의 오라토리오의 아리아를 변주한 G장조가 있다.
하이든, 모차르트 등에게서 발견되는 고전 소나타들은 (교향곡과 여러 종류의 실내음악에서처럼) 분위기와 빠르기에 있어서 대조를 이루는 세 개, 또는 네 개의(두 개일 때도 있다) 악장으로 된 작품들이다. 첫 악장에 전형적으로 나타나지만 느린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도 자주 사용된 형식은 이른바 소나타 형식, 또는 1악장 형식이라고 하는 형식의 본보기가 되어 주는데, 그 핵심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두 개의 부분으로 분명하게 나눠지며, 첫 부분은 대개 반복되지만 둘째 부분은 꼭 반복되지는 않는다. (2) 첫 부분에서 주조가 확립되고 속조로(또는 관계장조로)전조로) 전조되어 속조의 종지형으로 끝난다. (3)둘째 부분이 시작되면서 전조는 계속되어 이 부분 중간지점 이전까지 긴장이 증가하여 (4) 그 다음에 다시 주조가 강한 인상을 주며 되돌아오는 것은 제 1 부의 첫 소재의 재현(엄격한 재현일 필요는 없지만)이며 이 악장의 주된 절정을 이룬다. 그후 (5) 주조로 제 1부의 소재가 --------"다시 해석" 되어, 마지막 주조에 의한 해결로 이어진다.
소나타 형식의 위와 같은 윤곽은 소위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규정된다. (1) 제시부는 (대개 반족되며) 주조로 된 첫 주제 또는 주제군, 속조, 또는 관계장조의 보다 서정적인 둘째 주제, 그리고 역시 속조 또는 관계장조의 결말 주제들을 가지며, 이 여러 주제들이 변전구(transition)나 연결구(brige)로 연결된다. (2) 발전부에서 제시부의 주제나 동기들이 새로운 면모를 띄거나 다른 결합에 의해 나타나는 동안 비교적 먼 조로 전조될 수 있다. (3) 재현부에서는 제시부에 나타난 소재들이 본래 순서대로 다시 나타나지만 , 주제들은 이번에는 모두 주조로 된다. 재현부에 이어 종지부(coda)가 올 수도 있다.
교과서적 규정은 소나타 형식을 조성 체계, 그리고 선율과 주제적 요소의 면으로만 취급한 하나의 추상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고정 말기와 19세기 상당수의 소나타 악장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여기에 전혀 들어맞지 않거나, 들어 맞는다 하더라도 무리한 것들이 더 많은 것이다.(하이든의 대부분의 것들이 여기 포함된다.), 예를 들면 "주제" 이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한 형식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주제 자체들도 언제나 특정한 윤곽을 갖는 선율들이 아닌 것이다. "제 2주제"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성격에 있어서 "제 1주제"와 다르지 않은 것들도 있다. 새로운 주제들이 아무 때나 도입될 수도 있고, 한 악장의 어떤 부분, 종지부에서 조차 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종지부가 없을 수도 있다. 소나타에서 처음 등장한 소재를 둘째 부분 시작에서 주제로 재현하지 않고 속조로 시작 하는것 (고전 초기의 많은 소나타들처럼), 또는 첫 소재를 공식적으로 재현시키지 않는 것들(스깔라띠의 대부분의 소나타처럼)을 위와 같은 견지에서 불완전하다거나, "미개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18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각각 다른 종류의 음악적 착상들을 가지고 대체적으로 공통되는 이 모형을 사용하였지만, 각자의 창의성과 사용된 음악적 소재의 성격이 요하는 바에 따라서 이 모형을 수정하기도 하고 확장하기도하고, 새로운 것을 덧붙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18세기초의 건반 소나타와 이와 비슷한 형식의 관현악 작품들은 이태리의 오페라 서곡(sinfonia)의 영향을 받았다. 이 이태리 오페라 서곡은 100년경에는 빠름-느림-빠름 순서의 세 악장 구조, 즉 알레그로, 짧고 서정적인 안단테, 미뉴엣이나 지이그 따위의 춤 리듬으로 마지막 악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서곡들은 그 뒤에 올 오페라와 주제적으로나 기타 여러 가지 점에서 연관이 없게 마련이었으며, 그리하여 음악회에서 독립된 곡으로 연주될 수 있었다. 따라서 1730년을 전후하여 이태리 작곡가들이 오페라 서곡의 일반적인 설계에 따라 음악회용 교향곡들을 쓰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이러한 교향곡들 중에서 최초의 것들은 그 구성, 짜임새, 주제의 양식에 있어서 바로크 말기의 협주곡이나 삼중주 소나타의 전통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빚지고 있기도 하다. 첫 교향곡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서 밀란의 사마르티니(G.B Sammartini;1701∼1775)를 들 수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작곡가들이 곧 이탈리아인들의 뒤를 따랐으며, 그리하여 1740년경부터는 교향곡이 합주 기악 음악의 주된 형식으로 서서히 이전의 협주곡을 대치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양식의 실내음악은 18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독립된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였다. 전·고전시대에"삼중주", "사중주"라고 불리우던 많은 작품들이 독주 악기군으로도, 완전 관현악으로도 연주될 수 있었다. 1732∼33년에 페르골레지(G.B. pergoles' 1710∼1736)가 쓴 것으로 생각되는 삼중주 소나타들은 새로운 형식상의 원칙들의 예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바로크 말기의 푸가나 오스티나토 베이스 음형과 나란히 나타난 때가 많다. 선율들은 활발하고 감각적이며, 성악 아리아가 갖는 것과 비슷한 서정적인 성격이 침투되어 있다. 타르티니(Gi-useppe Tartini; 1692∼1770)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들은 18세기 중엽에 있어서도 이러한 옛 작품들에 서서히 새로운 양식이 침투되어 그것을 변형시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후로부터 공공 음악회들이 늘어나는데 힘입은 바도 있어서, 관현악과 실내악양식들은 갈수록 보다 분명하게 구분되게 되었던 것이다.
5. 소나타에 대해
1) 소나타에 들어가며
우리는 클래식음악을 감상하거나 또는 음반을 살 때 혹은 클래식방송을 듣다 보면 제일 많이 듣는 음악 악식 구조로 또는 용어로 소나타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서양음악은 소나타가 대부분의 악곡의 형식을 차지할 만큼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고전음악을 감상할 때 바하,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와 같은 대 작곡가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되듯, 이 소나타 형식은 악곡형식 중에 제일 먼저 접하게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소나타형식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듯 싶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면 서양음악을 들을 수 없다"라는 말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이 말은 전적으로 사실은 아니다. 서양음악이 모두 소나타 형식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전에서 낭만기를 거쳐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서양음악, 그 중에서 순음악 작품들(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삼중주, 세레나데,...)에 있어서는 불행히도 이 말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거나 들으면 위험하다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그 악곡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좁아진다' 또는 '열심히 들어도 반쪽만 들었을 뿐이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소나타 형식은 서양음악에 논리를 제공하는 작곡가와 청중간의 약속이었다. 즉 작곡가는 미리 약속된 형식 안에서 주어진 요소 - 멜로디, 화성, 조성의 규칙 - 로 자기의 작곡기량을 발휘하고, 청중은 그 형식의 범위 안에서 들으며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었다. 청중들은 이 장치로 인해 날마다 바뀌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적응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2) 소나타형식의 아버지는 푸가
소나타 형식이 그 원형을 빌어온 것은 바로크 시대에 완성된 푸가였다. 물론 푸가는 대위법에 바탕을 둔 복잡한 폴리포니 음악이다. 흔히 주제라고 하는 음악의 요소가 대조와 화합의 모습으로 융합되어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 바로 푸가로서, 여기서는 주된 주제들이 각기 다른 성부에서 동시에 울려나오기 때문에 치밀한 구조로 쌓아올려지게 되고, 이는 청중들에게 듣는 부담을 주기에 충분했다. 호모포니 시대로 넘어오면서 작곡가들은 좀더 청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악곡의 형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에 푸가를 평면적으로 해체해 재구성한 것이 소나타 형식이라는 특허품이다. 즉 소나타에서는 주제들이 동시에 얽히며 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제시된다. 그에 따라 희박해 지는 음악의 긴밀감의 해결을 위해 주제의 위상차와 성격차라는 간차를 마련하게 되었다. 즉 제1주제와 제2주제의 조성차 - 토닉과 도미넌트, 이는 역시 푸가에서 따온 것이다- 와 뚜렷이 구분되는 두 주제의 성격의 대조가 그것이다. 그리고 재현부에서 제1주제와 제2주제가 같은 조성으로 울리며 조성적 위상차가 사라진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그에 따라 갈등의 해결과 화합이라는 메시지의 전달이 가능해졌다.
3) 조성적 해결의 설득력
당시의 청중들에게는 물론 토닉-도미넌트라는 조성차가 '토닉-토닉'으로 해결된다는 구조가 상당히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음악대중들 은 바그너와 다조주의, 무조주의 등의 조성적 태동기를 거치며 혹사당한 귀로 복잡한 조성적 구조의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청중들만큼 소나타 형식 내의 '조성적 해결'이라는 장치에 민감하고 순수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즉 오늘날의 청중들은 재현부에서 두 주제가 같은 조로 돌아온다 해도 갈등의 해소와 화합의 쾌감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4) 작곡가들의 실험의 장으로서의 소나타 형식
조성의 해결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구성은 제공한 것은 제1주제와 제2주제의 뚜렷한 성격차이였다. 이 성격의 차이는 두 가지의 대립되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담아내기에 아주 적합했다. 폭력과 평화, 죽음과 빛, 슬픔과 환희 등의 예를 들어보자. 이 단어들의 추상성은 음악의 추상성에 적합하게 적응했고, 이 둘을 주제별로 대립적으로 등장시켜(제시부), 둘의 극한 투쟁을 거쳐(발전부), 해결의 국면으로 들어서는(재현부) 모습은 소나타 형식에 음악적으로 충분히 밀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종교개혁'에서 신교와 구교의 갈등과 그 해소가 나타난 것도 그 한 예이다). 한편 이러한 순음악으로서의 넓은 표현의 폭과 함께 소나타 형식 을 풍성하게 한 것은 작곡가 자신들의 노력이었다. 그에 따라 소나타 형식에서 파생된 수많은 형식들이 실험대에 올랐고 변형과 그에 따른 무수한 시도들.... 발전부는 더욱 확장되었고 치열한 모습을 담게 된다. 특히 소나타 형식을 탄생시킨 푸가는 발전부의 치열한 투쟁 국면을 그려내는 데 가장 적합한 구조로 단골로 등장하며, 그 안에서 자리잡게 되었다.
5) 소나타의 맺음말 - 소나타를 위해
소나타 형식은 소나타 속의 몇 악장에만 적용되지만 악곡 전체에 통일성을 가져오는 기능을 주제적 연관성으로 제공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대별되는 제1주제와 제2주제는 모든 악곡을 꿰뚫으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음악을 들으려면 소나타 형식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말은 결코 과대포장된 빈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