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3 (일) 맑음 영상의기온 바람없음 (장성-정읍) 54Km
어젯밤은 주말이라 그런지 찜질방에 사람들이 왁짜지껄 붐볐다. 대부분 아주머니들로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밤새 얘기한다. 피곤하고 지쳐서 어제저녁 6시에 TV앞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자다가 새벽 1시에 깨어 일어나보니 온통 여자들 뿐으로 남자는 나 혼자 한가운데 에서 자고 있었다. 물집 생긴 발이 염려가 많다. 내일 정읍까지 가려면 50킬로미터가 넘는거리로 이번 도보여행중 가장 먼 거리이다. 발을 딛기가 너무 아프다. 물집에 실을 꾀어놓았는데 물이 아직 다 빠지지 않았나 보다. 새벽에 출발 할 때는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양 발 바닦에 물파스 잔득 바르고 잦는데 옆에,앞에 여자들 잘 참고 있다. 지방 사람들이라 이해하고 참아주는 것 일게다. 자리를 옮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 몸이 힘들면 우선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생기는것 같다.
5시30분에 일어나 발부터 뜨거운 물에 담가본다. 처음에는 쓰리더니 나름대로 적응 하는것 같다. 바늘에 실을 꽤어 물집에 다시넣고 물파스 바르고 두꺼운 양말 두 켤래 껴 신고 어제 산 건빵과 쵸콜랫 챙기고 완전무장 한체 찜질방을 나섰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오늘저녁 정읍에 도착해서는 수원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계획으로 열차표를 사전 준비하기 위해 역으로 갔다. 정읍에서 탈수있는 좌석이 딱 1석 있단다. 일찍서둘러 오기를 정말 잘했다. 만사가 이렇게 준비성 있는 행동을 할 때에 기회를 잡을 수 있을것이다.
아직 어두운 길, 차량이 나를 보지 못 할까 싶어 아주 가장자리로 가다가 4킬로미터 정도 왔을 때 정읍 49킬로미터 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예상은 했지만 겁이 덜컹난다. 일찍 출발 하기는 했지만 오후3시까지 정읍에 도착 하려면 최소한 시간당 6 킬로미터로 달리다 싶이 걸어야 한다. 애라! 기록은 깨어지라고 있는것! 최악의 상태에서 도전해 보자. 새로 확장하고 있는 도로로 올라갔다. 그러면 차량의 염려는 안해도 되니까...
북하면 도진리 쯤 왔는데 조각카폐가 있다. 철제로 공룡, 로봇등 꾀나 신경 많이 쓰고 건축 및 조경, 작품설치를 잘 한여 아침 안개속에 조금 떨어져서 보니 한 폭의 그림같다. 조금 지나니 기와집 고택에 감을 깎아 곳감을 만들려고 주렁주렁 매달린 노랗고, 연분홍빛 나는 감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인다. 저런 집에서 마음의 여유, 시간의 여유를 갖고 살고 싶어진다. 바로 건너편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처럼 팔을 넓게 벌리고 마을사람을 감싸 안고 있다. 정자와 개울과 나무가 잘 조화되어 운치를 더한다.
흔히 나무와 인간의 생김새와 생리는 정 반대라고 한다. 나무의 뿌리는 인간의 머리털에 해당하고 나무의 꽃은 인간의 생식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나무의 뿌리는 땅 속에 있는데 인간의 뿌리는 하늘을 향해있고, 나무의 꽃은 하늘을 향해 있는데 인간의 생식기는 땅을 향해있다. 나무는 대지에서 물기와 양분을 빨아드려 하늘의 신성을 향해 올리고, 인간은 하늘에서 흡수한 신성을 땅에서 솟구쳐 오른 '기'와 합성한다. 때문에 인간은 나무를 통해 신을 느낀다고 한다. 하긴 인간은 살아야 고작 100년인데 저 느티나무는 300년 이상을 살고 있으니 마을을 지켜주는 신 대접을 받을만 하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아직도 살고있는 아라빌리스 선인장은 혹독한 기후, 즉 건조하고 척박한 사막에서 뿌리를 내려 힘든 인고의 세월을 꿋꿋이 버티고 2000년이나 산다고 하니 신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배낭의 무게와 아픈 발을 견디며 드디어 백양사 입구에 도달했다. 입구에 과일 파는 천막들이 즐비하다. 저마다 화려한 색상의 과일상자 진열경쟁을 하면서,.. 그러나 단풍철이 지나고 있는 지금은 한산하기 이를데 없다.
내장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르막 길을 오르는데 왜이리 높고 긴가, 이를 앙물고 땅만 처다보고 걷는데 관광뻐스는 쿵쾅 쿵쾅 음악 소리를 내며 잘도 올라간다. 되게 부럽다. 만일 이런 때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고 하면 나는 한참 고심하며 갈등 할 것이다. 결국은 정중하게 거절 하겠지만...
드디어 전라북도 경계선을 통과한다. 순창군 복흥면 이다. 이제야 그 기나 긴 전라남도를 벗어났다. 자! 새로운 출발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자!
끝도 없는 한산한길, 차량이 뜸하고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한 길, 그러나 높은 고지대로, 저 아래 멀리까지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길, 전투시에 여기를 점령하면 사방 100여리를 통제할 수 있는 길을 나 홀로 걷고 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 내가 여기를 정복한 것인가? '정복?' 이말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어떤 산을 한 번 오르고 나서 그 산을 정복 했다고 말한다. 바람둥이 남자는 한 여자를 호텔로 데리고 가 하룻밤 몸을 섞고 나서 그 여자를 정복 했다고 말한다. 바람둥이 여자는 미남자를 호텔로 데리고 가 하룻밤을 지낸 다음 자기가 그 남자를 먹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중대한 오해다. 산과 여자가 한 번 오르고 나서 정복될 수 있는 존재들인가, 남자가 여자에게 먹히는 존재인가.
거기에 산이 있어 오르는 것, 한 남성이 한 여성과 사랑하는 것에는 정복과 탐욕스러운 식욕에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산에 들어서려면 산의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앞으로 아무리 넓고, 높고, 험한 산 정상에 오르더라도 절대로 '정복'했다는 건방지고 방자한 말을 쓰지 말아야 겠다.
농암 삼거리를 지나는데 1킬로미터 전 부터 "겁나게 맛나뿌리는 고구마 사려면 쬐끔밑의 삼거리로 싸게싸게 오이소"라는 프랭카드를 보고 궁굼증을 유발시킨 장본인이 어떤 사람일까 하고 도착해보니 젊은 부부가 고구마를 팔고있다. 옆에있는 군고구마 통에서는 작작 타는 연기와 함께 고구마 익은 냄새가 아주 구수하게 풍겨온다. 2000원 어치를 사서 평상에 앉아 먹었다. 노랗고 연시 속 같이 부드러운 군고구마! 그러나 몸이 노무 지쳐서 인지, 아니면 사탕을 계속 먹어서 그런지 별로 달지는 않다. 그리고 주먹만한 고구마 달랑 4개주고 자기들 일만 한다. 프랭카드의 사투리로 유혹하는 문구 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사람과 마주 대하는 상술은 부족해 보이는 것이 아쉽다. 이런 시골에서는 할머니의 정감있는 눈길과 대화가 제격일 것인데, 관광지에서 한번 보고 말 사람 취급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젊은이의 태도와 인상은 좀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추령고개 초입에 있는 전라북도 산림 박물관을 관람했다. 시설도, 내용도, 규모도 아주 알차게 꾸며놓았다. 그런데 배낭이 무겁게 어깨를 누르고 다리가 아파서 관람하기가 편치않다. 시간도 촉박 하고.. 나중에 내장산 등산 올때 다시 한번 와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추령 장승축제 장에서 엿장수의 빠르고 신명 나는 노래소리가 요란하다. 축제기간은 지났지만 설치된 장승은 그대로인 채 손님을 부른다. 그러나 한산하다.
이제 내장산 입구가 얼마 남지 않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는데 추령고개가 그렇게 높은지 미쳐 몰랐다. 고개마루에 오르니 내장산 입구 매표소 있는 곳이 까마득히 보인다 거리상 으로는 6킬로미터인데 워낙 고지이라 꾸불꾸불S자로 계속 내려간다. 사실 올라올 때 보다 내려갈 때가 발이 더 아프다. 몸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어 발의 힘 받는 부분이 지금 물집 생긴 발가락 쪽에 하중이 집중된다.
'여기가 가장 경치 좋은 곳' 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길 옆에는 택시가 10여대 줄지어 서있고 택시 기사는 열심히 설명을 해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뒤늦게 단풍 관광온 사람들이 운전기사의 신호에 잘도 따라 포즈를 취하고 단체사진을 찍는다. 어떤곳을 관광 한다는 것은 그냥 현상적으로 구경한다는 것이 아니라 풍경의 의미와 가치를 다지고 평가해 가면서 본다는 것인데 저 분들 무리지어 휙 왔다가 우루루 사진만 찍고 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드디어 내장산 입구 에 내려왔다. 오늘 일요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붐빈다. 하산한 사람들은 저들마다 끼리끼리 모여 관광뻐스나 승용차를 타고 빠져나간다. 나는 2시간 이상을 걸어야 정읍역에 도달할 수 있는데...
수원으로 가는 열차를 탈수 있다는 기대 속에 정읍시내를 고통과 싸우고, 지루함과 싸우며 정읍역에 도착하니 15시10분이다. 내일은 빨래도 하고 ,일지도 정리하고,사진도 보고, 발도 치료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늦잠도 자고...하고싶은 것 참 많다.
드디어 열차에 올랐다. 아! 천국이다. 내 발로 걷지 않고 내 몸이 이동 돠고 있으니! 약 3시간의 열차 이동이 너무나 심신을 편하게 한다....
첫댓글 건강한 마음과 체력이 부럽습니다.
아픈 발, 맛있는, 늦잠, 하고픈것 다 ~ 하셨나요 ...... 행복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