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편에 나오는 강권의 <열병> 뮤직비디오.
#46
나를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세준이...
후... 뭐냐.....
세준이의 따뜻한 온기... 세준이에게 미안하여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동안... 계속 세준이 피했는데... 모르는 척하고 싸늘하게 지나치고 그랬는데... 세준이는 맞고 있는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세준이를 이 순간에 만났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만감이 교차된다.
병신같이 왜 맞고만 있어!!!
.......
숨이 멈출 듯이... 호흡곤란이 왔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조금 더 진정을 해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괜...찮아....
겨우... 꺼낸 말... 정말이야. 괜찮아. 아프지도 않았어. 다만 조금 힘들었을 뿐이야.
괜찮기는.
내 볼로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세준이. 세준이의 손가락은 차갑다.
얼마나 다친 거야? 병원가야 되겠다.
세준이는 나의 몸을 가뿐히 들어올린다.
여기저기 몸이 아프고 말을 듣지 않는데 세준이의 도움으로 일어났다.
괜...찮아... 나... 그만 가볼께...
세준아... 안돼.. 나 너한테 더 이상 도움을 받으면 정말로 권이한테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야. 차마 이 말까지는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도로 쏘옥 들어가버린다. 나는 세준이를 향해 웃어보였다. 아까 얻어맞은 뺨이 얼얼하지만 빙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세준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이 몸으론 못가. 병원부터 가.
아냐... 아냐... 나.. 나... 가야돼..
가야된다. 권의 공연을 보러 가야돼. 내가 맨 앞자리에서 응원해 주지 않으면 그 아이도 약해져버려. 그 아이도 힘들단 말야. 나 그 아이한테 너무나 미안한 것들이 많단 말이야. 세준아... 더 이상... 더 이상은 잡지 말아줘... 세준이가 잡아준 손을... 또한번 거세게 뿌리치곤...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은 멀쩡해 보이겠지만... 지금... 온몸이... 아프다.
우리 끝이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세준이의 목소리에 세준이의 말한마디에 눈물이 한방울. 움찔하고 떨어진다. 우는 목소리가 나올까봐... 나는 뒤를 돌지 않고 고개를 아래 위로 세차게 흔들어 주었다... 그리곤 소각장을 빠져 나왔다. 슬프다. 세준이의 말한마디에 눈물이 난다.
약속했어... 권이랑 약속했으니까 난 지킬 거야, 세준아.
강당가까이에 가자,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쿵쾅대는 음악사운드가 귓가를 때린다. 강당 밖에까지 아이들이 빽빽이 차있다. 모두 들어가려고 발버둥이다. 나도 그런 아이들 틈에 끼어 조심조심 강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아픈 몸을 질질 끌고 강당에 들어서자, 화려한 조명 아래...
무대 위에 있는 권의 밴드 hero가 보인다.
찢어질듯한 아이들의 환호성과... 음악반주... 그리고 권의 목소리가 한대 어우러진다.
권의 감미로운 보이스가 들린다... ♪.....♪.........
가까이... 가까이... 좀더 다가갔다. 소이슬에게 맞아서 아픈 건 아무렇지가 않다.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권의 목소리가 들리니 안심이 되는 것인지. 눈물이 물밀 듯이 흘러버린다. 가까이가서 보니 권은 나를 찾고 있었다. 권의 초롱초롱한 눈은 비어있는 내 빈자리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자리로 발을 옮겼다. 발을 뗄 때마다 몸이 욱신거렸지만.. 꾸욱 참고 내 자리로 갔다.
아영아!! 여태 뭐하다 온거야?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는 미연이. 다행히 그녀의 큰목소리는 음악소리에 묻혀 새어나가진 않았다.
응. 좀 늦었지..
뭐야. 화장실에 왜이렇게 오래 있어? 너 혹시..
응?
눈치빠른 미연이가 소이슬한테 맞았다는 걸 눈치 챌 까 숨을 졸이고 있는 가운데... 미연이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큰 일 봤구나? 허허허.
미연이는 나를 자리에 앉혔고 나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몸이 아프다. 열도 나는 것 같구.. 여기저기 쑤시고 안 아픈 곳이 없다. 맞을 땐 안 아팠는데.. 오히려 맞고 나서가 아프구나. 권은 금새 내가 온 걸 보고는 환하게 미소짓는다. 그 미소에 여자애들 여럿 쓰러진다.
강권이 니 빈자리만 쳐다보더라. 내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미연이는 귓속말로 나에게 주저리 주저리 모두 이야기 해준다.
오프닝이 얼마나 멋있었는데!!! 진짜 죽였어! 노래 정말 좋다. 강권이 다 만든 거라며?
응.
저 촐싹이도 좀 멋있드라.
미연이는 하루를 빼꼼 쳐다보며 괜히 얼굴을 붉힌다.
강한 펑크사운드가 귀를 쩌렁쩌렁 울린다. 수려한 외모에 실력까지 갖춘 hero...
여자애들이 열광할만하다. 저렇게 열정적인데.. 사람들한테 인정받지 않을 수 없다. 소이슬이 권이와 하루, 태훈이를 가수 시키고 싶어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힘껏 도와주고 싶다. 권이 가수가 될 수 있게... 몇 번이고 말했었다.
권아. 너 가수 하고 싶어? 너 노래할 때만은 정말 딴 사람같아. 난 너가 가수가 된다면 적극찬성이야.
하지만 권은 가수는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인의 연인이 되기 싫다나.. 나만의 연인이 되고 싶다는 닭살스러운 말까지 했었다. 난 그가 가수가 되고 안되고를 떠나 인정한다.
어느 덧 한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소개된다.
[강한 비트의 곡입니다. 리더 강권의 작사, 작곡인...... hero의 열병..............................]
드럼비트가 탁..탁.. 들어가며... 기타와 베이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탠딩마이크를 한 손에 잡은 권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굉장히 달라진 눈빛.... 전혀... 다른 색깔의 모습이다...
Live...
......
...
.
이제는 너밖엔 안보여
많은 사람들 틈에도 항상 내 눈은 너를
가장 먼저 찾아내지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난 널 찾아 낼 수 있어
이젠 너만 내 눈에 보여
내 심장이 너만 찾아내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네 목소리 네 향기 네 숨결까지
너를 찾아내게 만들지
천번을 말해도 만번을 말해도
아깝지 않은 말
너를 사랑한다는 말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영원히 함께 하자는 약속은
나에겐 소중한 희망이야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일어나면
언제나 너가 있다는 것
항상 같은 아침을 맞이하자는 약속
잊지 않길 바래
그 약속만은 잊지 않길 바래
그 약속이 영원할꺼라 믿어
나에게로 와
나에게로...
항상 웃는 모습으로 맞이할께
정리가 되어 돌아올 때 쯤은
우리 웃기만 하는 거야
애써 웃는 모습이 아닌
진심어린 웃음이 필요해
기다릴께
항상 너의 뒤에서 지켜줄께
늦지 않게
힘들지 않게 돌아와
울지말고 웃으면서 달려와 안겨
나에게로 와.....
..............................♬.................................................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권. 그의 진지한 눈빛. 참 오랜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권의 목소리.
권아영. 사랑한다.
...............
..........
주르륵... 흐르는 눈물은 그냥 두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 들려...? 내 심장이 두근거려. 권아, 고마워. 나같은 애 좋아해줘서.. 나같은 애 믿어주고 사랑해 주고 아껴줘서... 고마워...
...
...
성공적으로 권의 무대가 끝이 났다. 미연이는 무작정 내 손을 이끌고 강당을 빠져나왔다. 아이들도 권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강당을 마구 빠져나기 바쁘다.
후아. 사람 짱 밀려. 아영아, 넌 내 손만 꽉 잡아. 무슨 애들이 개떼들같이.. 얍!!! 비켜!!!비켜!!!
미연이의 큰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다 멈춰 우리를 바라본다. 그 사이 우리는 마구 뛰어 강당을 빠져나왔다.
미연아. 힘이 아주 세다. 너..
나? 헤, 힘밖에 없잖우. 그나저나, 얘들이 있을 대기실로 가보자!!
등나무 벤치에서 기다리기로 했어.
그래두! 나 밴드애들 다 만나봐야 겄어! 어쩜. 진짜 멋있더라. 특히, 눈 부리부리하니 기타치던 놈!! 꺄! 빨리 가자. 빨리.
미연이는 내 손을 이끌었다. 그 순간, 아까 맞았던 통증이 아려왔다.
아아...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고, 들떠있던 미연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 바쁘다.
왜그래, 아영아? 왜그래?
어... 아니...
아파?
아니..
뭐야...? 어디 아픈데? 배?
응...
.......진짜?
미연이는 의심스러운 듯 쳐다보다... 내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미연이한테는 말하면 안된다.. 소이슬과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굉장한 다혈질의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미연이에겐 알리지 않는 것이 피차 편하다... 미연이와 대기실 쪽으로 가다... 그쪽 건물에서 우르르 여자애들에게 둘러쌓여 빠져나오고 있는, hero 밴드 애들이 보인다. 권이는 다 귀찮다는 듯, 신경도 안쓰고 바쁘게 빠져나온다. 그와는 달리, 하루는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헤헤거리고 있다. 미연이가 약간 마음이 상한 모양이다.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해...
권아!
여!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오는 권이. 내 옆에 착 달라붙는다.
뭐야 뭐야. 어디 갔었어?
화장실.
우리 마누라가 안보이니까 목소리가 안나오더라. 어찌나 목이 콱콱 막히는지...
잘했다던데, 뭐.
에이. 그거야, 서방님이 실력이 되니까~
권이는 고른 하얀치아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고, 나도 함께 웃었다. 권이 옆에서 웃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아이가 옆에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
그 순간
피유융. 펑--- 팡--- 팡----- 팡!!!!
축제의 하이라이트 불꽃..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 수놓는 불꽃들.. 별이 총총히 박힌 검은 하늘 위로 퍼져가는 불꽃방울들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화려한 불꽃이 찬란하게 빛이 나며 터진다. 펑펑.. 터지는 불꽃이 아름답다.
와.. 이쁘다..
넋을 놓고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나...
와...
권은 내 손을 꽉 잡아준다. 따뜻한 그의 온기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사랑해.
쪽-. 불꽃이 또 한번 피융 올라가 하늘에 퍼질 때, 권은 내 볼이 입을 맞췄다. 귀엽게 웃으며 나를 자신의 품안에 쏘옥 안는 권이. 따뜻하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아이. 누구보다 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아이. 권이가 내 남자친구야. 사랑해... 나도 사랑해라는 말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권아. 아직은 미안해. 고마워. 좋아해...... 아주 많이.....
#47
뒷풀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걸 축하하는 의미에서 이런 날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SIREN이라는 술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권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따라들어갔는데...
밝은 곳에서 권은 나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 진다...
왜그래, 권아? 나, 뭐 묻었어?
.....너......
응?
.....뭐야.. 어떻게 된거야...!!!
응?
갑작스런 권의 외침에 나는 놀라 눈이 똥그래졌고, 밴드부 아이들도 갑자기 모두 나에게 집중하더니, 권이와 같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미연이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어머. 아영아! 너 어디 다쳤어? 옷이..
그제야... 아까의 일이 기억나고.. 흙투성이 일거란 걸 몰랐던 나는 그 순간 많은 생각이 겹쳤다. 그리고 일부러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하...하하...하..... 이게.. 이게 말이지..
.............
넘어져서.. 그만...
아용이 바닥에서 뒹군거여?
하루가 큰 눈을 껌뻑거리며 나에게 대뜸 물었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려 버렸다. 바닥에서 뒹군 건.. 뒹군 거니까..
넘어졌는데.. 계단있지!! 계단!! 계단에서 삐끗해서 넘어진 거야. 그래서... 옷이.....
.............
자신감없게 말꼬리를 흘리며 말했다. 자꾸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권의 눈 때문에 나의 거짓말이 어설펐던 것인가.. 권의 다갈색눈은 계속 나를 응시한다. 나의 눈을... 나는 권의 눈을 슬쩍 피하며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분명 아까 옷 잘 털었는데... 나는 재빨리 옷을 털어댔다..
그거 말고.
열심히 옷을 이리저리 털고 있는 나에게 권이 말했다..
응?
얼굴말이야. 얼굴.
어?!
뭐냐구.. 빨갛게 부었어
아... 아까... 소이슬한테 뺨맞았지... 그걸 어떻게 알았지..?.. 권이는 싸움을 많이 하니까 이런 상처쯤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걸까...
누구야.
권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까 강아지마냥 애교를 피워대던 권의 눈빛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고한다면.... 생각해도 싫다. 그냥 이 선에서... 여기서 멈춰야 해... 권이가 누구와 싸우지 않도록... 권이가 나 때문에 싸우면 안되기에... 나는 거짓말을 했다...
바닥...
여기저기서 박장대소를 터트리기 시작한다. 태훈이와 하루는 낄낄거리며 박수를 쳐댔다.
가게 안에 있는 손님들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하고... 권은 천장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나에게 눈을 맞춘다.
바닥이 널 어떻게 때려..
내가 바닥에 부딪친거야. 권아. 진짜루. 나 괜찮어. 멀쩡해.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앉자!!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좋은 날에 좋은 일만~ 응?
말할 때까지 나 꼼짝 안할 거야.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아용이가 바닥이래잖오. 그러지말고 빨리 술마시자! 술고파!
하루와 태훈이가 권이를 질질 끌어 자리에다 앉혔고... 나도 바로 권이 옆에 앉았다. 이원이와 태훈이가 술을 시켰고, 그렇게 술파티가 시작됐다. 권이는 계속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계속 바닥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두사람은 참 끈질기다. (둘이 똑같애.)
누구한테 맞은 거야 이건.
맞긴 내가 누구한테 맞아..
내 눈 백만불짜린 거 알지?
아니래두. 오늘 넘어져서..
너 뺨은 억만불짜리야.. 누구야..
나는 권이에게 그냥 말없이 웃어주었다. 시킨 술과 안주가 나오자, 미연이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안주만 먹는다. 후배들이 술을 따라주는 대도 못 먹는다며 빼고 있다. 권이는 나에게 쥬스를 주고는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고... 하루와 태훈이는 둘이 노래를 부르겠다며 일어섰고.. 후배들은 그런 둘을 말리느라 정신없고.. (우리말고도 가게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나는 권이를 설득시켜 놓았다. 끝까지 바닥이라고..
형님, 원샷!!!!!
오냐.
이원이가 권이에게 술을 따라주며 외치자, 권은 한번에 술을 들이켰다. 원샷..
오늘 공연 정말 좋았다. 모두가 열심히 연습한 댓가다. 다음에 있을.........
권은 특유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껏 자아내며 나에게 눈을 마주치고 얘기했다.
전국 고교 락페스티벌에서 대상먹자!
예!!!
오케!!!이!!!
얍얍얍!!!!!!!!!!!!
후배들의 기합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메우고 사람들 시선은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아이들. 권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팀명대로 무대에서는 히어로가 되보자!!
옛썰!!
권과 아이들이 모두 술을 들이키고는 밝은 모습으로 서로를 토닥거려 준다. 오늘 정말 잘했다고... 멋진 무대였다며... 서로가 서로를 격려한다. 모두가 조금씩 취해갈 때즈음 가게문이 열리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우연히 얼굴을 돌린 곳을 보니 세준이와 그의 친구 몇이 들어왔다. 들어오는 세준이와 눈이 마주친 난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여버렸다. 권의 무리보다 한층 높은 소리로 떠들며 들어와 바로 우리 앞에 앉는 세준이의 무리들.. 권이도 봤는지 얼굴색이 안좋다. 자신의 목소리보다 시끄러운 무리를 돌아보던 하루가 세준이를 알아보곤 아는 척을 한다.
넌? 넌! 이 자식!
세준이에게 달려드려는 하루를 한손으로 막는 태훈이.
상대하지마. 저런 새낀.
또다시 미안함이 몰려온다. 태훈이랑 하루, 권이랑 세준이 구했었지. 세준이 도와주러 갔었지. 그래서 많이 다쳤구. 나는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그 땐 내가 몸이 좀 안좋아서 그냥 암말안하고 넘어갔는데! 오늘은 원수를 갚아주겠다! 내 어깨에 상처보이냐 새캬! 잘난 얼굴 밴드붙이고 다녀서 완전 팬들 나가떨어진 건 아냐고!
야야. 진정해. 넌 떨어져 나갈 팬도 없잖아. 그리고 저 놈하고 말하지 말라니까! 은혜를 모르는 놈하고는 얘기하지마!
할꺼라고! 넌 좀 빠져! 그리고 나 팬있다.
웃겨, 거 다 내 팬이잖아.
허!! 그게 어떻게 니 팬이야!! 내 팬이지!! 나줄라고 꽃사들고 온거였잖아!!
그거 나한테 전달하라고 그런 거잖아. 중간에서 띵깐 주제에 말이 많네?!
두 사람의 유치한 싸움을 보고만 있던 권이 나서서 중재를 했다.
허구헌 날 싸워. 창피하다. 창피해. 꼴통들 둘다 조용히 해.
누구보고 꼴통이래!
꼴통들. 쉿.
이걸로 유치한 하루와 태훈이의 싸움은 일단락 지어졌다. 하루도 태훈이도 권이도 입을 굳게 닫았다. 세준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세준이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시끄럽게 떠드는 세준이의 무리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세사람은 조용히 술만 마신다. 나도 괜히 오렌지쥬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쥬스를 마시다 자연스럽게 세준이에게 눈이 가고.. 나를 쳐다보고 있던 세준이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나는 쥬스를 테이블에 내려놓다 컵을 엎질러 버렸다.
앗-
남아있던 오렌지쥬스가 테이블에 쫘악.. 쏟아지고.. 오렌지빛 액체가 테이블위에 넘실거린다.
권은 재빨리 물수건으로 테이블을 닦는다.
미안! 손이 미끄러져서... 권아! 내가 할께..
내가 해.
권이 들고 있는 물수건은 점점 주황빛으로 물들어간다. 나는 가만히 권의 손을 쳐다보았다. 나보다 더 예쁜 손가락.. 길고 하얗다. 작품이다. 여자인 내가 봐도 부러울 정도. 권의 잘 뻗은 네 번째 손가락에는 우리의 커플링이 끼워져 있다. 핫! 커플링! 휑- 비어있는 내 네 번째 손가락. 권이가 볼까 황급히 손을 등뒤로 감췄다. 커플링.. 얼마 전에 잃어버리고 못찾고 있다. 대체 어디간건지.. 분명 샤워하기 전에 빼논 것 같았는데 이것이 어디로 사라져 버린건지. 권이에게는 미안해서 말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네 번째 손가락의 끼워져 있던 반지가 그립다. 나는 아무생각없이 앞을 쳐다보았고, 그러다 또다시 세준이와 눈이 마주쳤다. 짙은 두 눈이 나를 보고 있다. 나도모르게 세준이를 쳐다보게 된다. 나도모르게 세준이가 신경쓰인다. 하지만 세준이가 어떤 눈빛인지는 모르겠다. 차갑고 짙은 눈... 차갑기만 하다.
빼. 지금…. 니 눈에 박혀있는 거 빼.
권의 낮은음성이 들리자마자 바로 옆을 쳐다봤다. 술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느끼고 있지 않을꺼라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나보다. 내가 세준이를 보던 것처럼.. 권이도 아까 전부터 나만 보고 있었던 거다.
니 눈엔.. 나만 박아..
나는 권을 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짙은 쌍까풀.. 매력적이다.
그거야..
……?
물수건을 한쪽으로 치우며 권은 나를 보며 말했다.
“그거..”
.......?
지금 니 눈이 보고 있는 거. 그게 정답이야.
정답. 내가 강권을 보고 있는 건 정답... 내가 이세준을 보고 있는 건 오답...
권아, 너만 볼게. 너만 생각할게. 그런데.. 권아.. 자꾸만. 누가 보인다...
나도모르게... 나도모르게... 내 눈이 따라간다.
....
....
나는 조용히 눈길을 안주접시로 돌렸다. 땅콩마저 우울해 보인다. 한참을 땅콩에 시선을 던져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낯익은 발소리가 들리고, 하루와 태훈이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와 권이 앉아있는 자리에 약간의 어둠이 그늘지는데......
#48
다름아닌 세준이였다. 내 눈은 커졌고, 권은 피식 한번 웃더니, 표정을 굳히며 세준이를 쳐다봤다.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병원 데려가.
아.....! 세준이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던 이유. 이제야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간다. 세준의 말한마디에 권의 눈썹은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병원가야돼.
무슨 소리야.
빨리 데려가. 많이 맞았어. 여기저기 아플꺼야.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는데... 그랬는데... 권의 슬픈 눈을 보자마자 그냥 바보같이 눈물방울을 흘려버렸다. 흔들리는 다갈색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권이.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왜 너가 더 아파해, 권아...
누구야.
권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고 주체할 수 없는 흥분된 마음을 억누르며 말하는 듯했다.
누구냐고 묻는 권의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화난 모습인데 너무나 아픈 모습인데...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 대신 세준이가 말해버렸다.
얼굴 까맣고. 코에 피어싱 했어.
소이슬!!!
권은 세준이 인상착의를 말하자, 바로 소이슬이란 걸 알았다. 이제 어떡해..
난 더 이상 일이 커지질 않길 바라는데...
챙-
꺄!!! 권..권아...!!!!!!
“강권!!!!!!!!!”
형!!!!!!!!!!!!
권이 유리컵을 한 손으로 깨버렸다. 권의 손에선 붉은피가 뚝뚝 떨어진다. 나는 너무 놀라 손을 덜덜 떨며 권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새카매져버렸다. 서있던 세준이도 놀란 듯 권을 보았고.. 태훈이와 하루, 한영이, 후배들까지 모두 놀랐다. 몇 명은 약국으로 달려나갔고, 나머지 아이들은 동그래진 눈으로 어쩔줄 몰라하며 권을 바라만 본다. 권이 이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다. 처음이야.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누가 좀 알려줘.
강권. 흥분하지마.
태훈이의 놀람을 감춘 목소리.
임마. 너 피. 아후!
태훈이는 신속하게 권의 손에 찔려져 있는 유리조각을 빼내고는 피로 얼룩진 손을 하얀물수건으로 닦아낸다. 꽈악.. 잡고 지압을 한다. 난 그런 태훈이와 권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언제나 태훈이는 침착하다. 그와는 반대로 난... 바보같이 울기만 한다. 덜덜 떨리는 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야. 너 꺼져.
태훈이의 위협적인 말투. 세준이에게 말했다.
빨리!!
태훈이 급하게 소리를 질렀고, 세준이는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바보같이 앉아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만 했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괜찮아 이 한마디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약국을 다녀온 후배아이들에게 건네받은 구급약품을 가지고 태훈이는 능숙하게 권의 손을 치료했다. 피가 새어나오는 손을 압박붕대를 감는 것을 끝으로 치료는 끝났다.
깡. 다 됐으니까, 너 빨랑 가. 아영아, 너 병원가야되지? 내가 데려다 줄까? 얼마나 다친 거야? 몰랐는데.
나... 난 괜찮아!
괜찮긴. 이제야 너 아픈 게 보인다.
태훈이와 말하고 있는 사이... 권은 다치지 않는 왼손으로 내 손을 잡았고, 나를 이끈다.
......가자...
...으응!
다시 한번 떨어지는 눈물을 떨구고, 권의 손을 꽉 잡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제야 긴장이 풀리며 터져나오는 울음...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들.
권아.. 권아....... 괜찮아... 흐흑...... 괜찮아...?......
......................미안..
흐흑....흑........권아.....
울지마... 아무것도 아니야.....
.....흐흐..흑........
미안...
으흐흑..... 너가... 너가 왜.....
미안해...
권아......권....
많이 아팠지... 미안.... 미안.... 어디야.... 어디 어디 맞았어?
권아... 나 안 아파. 별로 맞지도 않았어. 너가 아픈 것보단 덜 아파. 내가 너 정말 아프게 했잖아. 너보단... 아니야... 이런 것쯤은 참을 수 있어. 나 너한테 잘못한 거 있어서 벌 받은 거야.. 하나도 안 아파..
어디야.. 얼마나 맞은 건데..
진짜 안아파... 그러니까 이렇게 걸어다니지...
정말이다. 조금 아프긴 한데.. 죽을만큼 아픈 건 아냐. 정말 힘들었던 건 숨이 멎을만큼 심장이 아팠다는 거. 그땐 그게 더 두려웠어. 그 사이에 세준이가 구해줬구.. 아프지 않아..
"나한테 왜 말 안했어. 나한테 왜! 왜... 너 맞을 동안 병신같이 난 아무것도 몰랐잖아.. 하.. 어떡하냐.."
"권아.. 난 괜찮아.."
"빨리 병원가자. 걸을 수 있어?"
"(끄덕끄덕)......권아... 소이슬말이야..."
"소이슬. 절대 용서못해.."
"권아!! 소이슬한테는 아무말도 하지마. 그렇게 해줘. 응?"
나 때문에 누군가가 아픈 건 싫다.
..........
약속해. 권아. 소이슬한테 아무짓도 안하겠다고... 그냥 여기서 멈추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못해. 약속.
해. 약속. 소이슬 건들이지 않는다고.
못해.
권아.
어떻게 내가 가만히 있어?! 참으면 병신이지!!!
날 위해서. 날 위해서 참아줘. 소이슬 때문에 참는 게 아니라, 날 위해서. 한번만 참아. 나 괜찮아. 정말로...
..........
권은 오른손을 꽈악 쥐었다. 새어나오는 피.
권아! 권아! 제발!!!!!
..........
강권!!!!!!!!!
나는 권의 손을 얼른 잡아 감싸쥐었다. 서서히 풀리는 주먹.
권아. 참아. 참아야 돼.. 내가 그러길 원하잖아.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병원가자.
병원 안가도 돼.. 너가 약속만 하면 나 안아파..
...........못한다고 하잖아...
날 위해서 해줘! 내가 널 떠나도 좋아?! 그럼 그렇게 해! 너 마음대로 해!!!!!
처음이다. 권에게 윽박을 질러보는 건. 권의 눈동자는 아까와같이 심하게 흔들렸고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다.
........그냥 넘어가는 거야. 더 이상 아무일도 없이. 조용히... 약속해줘..
.........
권의 짙은 눈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똑바로 마주칠 수 없어 시선을 피했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냥... 무작정 걸었다.
권아영!!!!!!!!!
...........
뒤에서 들려오는 권의 목소리를 무시하고는 그냥 걸었다. 권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곧 내 앞을 가로막는 권.
떠나지마. 나한테서 등보이지마!!!
아이같이... 바보같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눈으로 나를 보며 얘기한다.
참아.. 참을께.. 참는다구... 됐지. 응?
.....(끄덕끄덕).....
참아. 하... 참는다고...
한순간에 화를 억누르며 말하는 권이. 너무나 안타까워 난 눈물만 흘렸다. 눈물의 연속이다.
#49
아영의 번외.
<엇갈린 운명>
.....#.....
내가 세준이를 왜 좋아하게 된 줄 알아...?
추운 겨울 날이었어. 눈이 많이 내리던 날.
그 날 나는 빙판에 넘어져서 데굴데굴 굴렀지.
심하게 다쳐서 정신을 못차렸었어.. 아무도 없는 곳이었고...
아무도 날 구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그 때... 따뜻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면서...
그 누군가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어...
“이런데서 자면 입돌아가는데..”
낑낑대며 쓰러져있는 내 몸을 들어 자기의 따뜻한 등에 날 업는 거야...
너무 따뜻하고... 너무 편안했어... 넓고 따뜻한 등이... 너무도 편했어...
차가운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너무 추워서 난 그 편안한 등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버렸지... 살았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
...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땐.. 내 방 침대였어...
깨어났을 땐 가족들이 내 옆을 지키고 있었어..
오빠는 그 때.. 날 업고 온 아이가 누구냐며 호들갑을 떨었었지.
자기보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얼굴이 반반했다고. 오빠 허락받기 전엔 남자친구는 안된다구 난리였지.
“엄마. 나 구해준 애는..?”
“금방 갔어. 너 눕혀놓고 가기 바쁘더라. 따뜻한 코코아 한잔 주려고 했는데.”
“그래?”
“인물이 훤칠하던데. 귀엽게 생긴데다 눈이 참 예쁘더라. 아, 그 애가 떨어뜨리고 간 물건 책상에 올려놨어.”
...
...
내 책상에 올려진.. 무언가... 나를 구해준 아이의 물건...
내 책상에 놓여져 있는 물건은... 노랑색 이름표였다.
아마도 나를 방에까지 데려다 주면서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이...세...준...?...”
이세준..
이세준....
내 머릿속에 꽈악 들어차는 이름 석자...
고마운 마음과 함께 왜 눈물이 나와버린 걸까...
나는 한참을 울었어... 모르겠어... 그 때 왜 울음이 났었는지...
몰랐었어...
그런데... 그런데.....
아주 먼 훗날에.....
아주 많이 세월이 지난 다음 알았어...
그 때 왜 눈물이 났었는지...
나는 바보같이 몰랐었던 거야...
아무것도 몰랐었던 거야...
그냥 그대로... 보는대로 믿어버리고...
감추어져 있는 건 보지 못했던 거야....
난 바보였던 거야...
...
...
그 다음 날부터야. 세준이를 매번 찾아가게 된 건.
이름표를 주려고 몇 번을 찾아갔었어.
용기를 내서 주려고 했는데 워낙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직접 주지 못하고... 세준이의 사물함에 넣어두었어.
그리고 시작됐어. 첫사랑.....
바보같은 일방적인 첫사랑이...
자꾸만... 자꾸만... 생각나는 거야...
이름표에 적혀있는 검은글씨...
이세준. 이세준. 혼자 불러보기도 하고 그러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그 아이를 몰래 훔쳐보게 되고... 그 아이의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게 되고...
권아영의 바보같은 첫사랑은 그렇게 엇갈리게 시작된 거야.......
엇갈린 첫사랑을 바로잡기도 전에 시작되어 버린 거야...
- 슬픈 엇갈림. 아영이의 작은 번외 끝 -
***
하루 내리 잠만 잤다. 아침에 한번 깨고, 다시 잠이 들은 후, 저녁까지 잠을 잤다. 그 사이, 권이가 왔다갔고, 죽을 끓여놓고 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죽을 오빠랑 엄마가 한숟갈, 두숟갈 떠먹다 결국 다 먹어버렸단다.
미안. 그냥 맛만 보려고 했는데. 권이가 너무 쪼끔 끓여왔더라!!
......
맛있었어. 아영아.
오빠는 그 말만 남기곤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
전화기를 들기 조차 힘이 빠져있다.
여보세요?☞그래도 받았다.
-응.
권이야?
-죽 먹었습니까?
음. 못먹었어.
-어! 왜?
엄마랑 오빠가 다 먹었어!
-장모님이랑 형님이? 그럼 내가 다시 죽만들어다 줄까?
왠지 죽을 만들어 오고 싶어하는 권의 목소리.
내가 '응'이라고 대답하면 당장이라도 달려올 아이다.
“아니, 먹은 걸로 해. 배불러.
-그래두.
"엄마가 맛있는거 해준대."
-그래. 몸은 괜찮아? 아파? 많이 아파?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여러개 마구 쏟아버리는 녀석. 나는 단번에 안아프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안아파.
-아프지..
안 아파. 정말루. 좀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다 풀려. 권이 넌 손 어때?
-아무렇지도 않아. 태훈이놈이 어찌나 붕대를 험하게 갈던지. 손가락 부러질 뻔 했어.
태훈아, 그래도 너 뿐이구나. 권이나 나나 병원가자고 해도 죽어도 안가는 이상한 커플. 나는 옛날부터 병원을 너무 들락날락해서 이골이 난 것이었고, 권이도 병원이라면 질색. 왠지 닮은 우리 둘이다. 닮은꼴 커플이라고나 할까. 하하.
-내일 학교 하루 쉬어. 너희 교장선생님 여자니까 내가 잘 말해줄께! 서방님만 믿으라구!
.......괜찮아. 안 아파. 내일 학교갈 수 있어.
-안되는데. 나 그럼 내일 너네 학교로 등교할래.
권아. 제발. 안아프고, 혼자 학교 갈 수 있어.
-안심이 안되는데?
혼자서도 잘해. 나 믿지?
-응! 그럼 내일 학교에서 봐. 사랑해.
뚜 뚜 뚜 --- 항상 대답은 잘해. 하지만 전혀 맞지 않는 대답을 한다는 게 문제다. 학교오면 안되는데.
그 날 밤, 욱신거리는 몸을 가누고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 간만에 폭 잠이 들었고. 꿈에 권이 나왔다. 우리학교 교복을 입고는 많은 여자애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그런 꿈.
다음 날. 학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미연이는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왜그래, 미연아?
괜찮아? 기지배야..
미연이는 눈물을 글썽글썽.
왜그래? 응?
그 날, 술집에선 미연이가 취해서 상황을 잘 몰랐었는데. 하루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루와는 언제 연락을. 흠..)
소이슬 이 미친뇬, 내가 대신 아직내줄께! 오늘 학교끝나고 죽었어!
아악! 미연아. 그러지마. 권이한테도 말했어. 더 이상 일 크게 벌리지 말자구. 소이슬하고 이젠 엮이고 싶지 않아.
무슨 소리야. 본떼를 보여줘야지!!! 다시는 안그러게!!!
됐어. 다시는 안당해. 그 날은, 나도 정신이 없던 터라..
얼굴엔 상처하나 없이... 어머.. 여우같은 년들!
미연이는 손가락을 우드득 소리를 내며 꽈악 쥐었고, 뭐라뭐라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소이슬과 그 무리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알아듣기 힘든 욕.)
간신히 미연이를 진정시키고 있었는데.......
아영아! 너! 허헉!!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냐?
허겁지겁 뛰어들어와 헉헉거리는 소라. 그런 소라를 쳐다보며 말하는 미연이. 소라는 숨을 한번 돌리곤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말하기 시작한다.
너. 너너.
나?
이세준이랑 사겨?
응?
으유. 난 또 뭐라구.
아 넌 좀 빠지구!! 아영아, 이세준이랑 사겨? 응?
아니. 왜?..
이세준이랑 네 사진 학교게시판에 쫙 떴어!! 벽보붙었다구!!
소라의 말에 의하면 세준이와 나의 사진이 학교게시판에 붙었다는 것이다.
'권아영이 양다리를 걸친다'는 내용의 벽보란다. 세준이와 나의 사진이 게시판에 도배가 되어 있다고. 미연이와 소라와 서둘러 벽보가 붙었다는 게시판으로 달려갔다. 세준이랑 내 사진이 어째서.. 무슨사진이...? 많은 궁금증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벌써 아이들이 몰려있는 게시판 아래.
비켜, 비켜봐!!!
미연이는 몰려있는 아이들을 밀쳐내고 그 앞을 뚫었다. 엉겁결에 그 속으로 퐁당 들어가 벽보를 찬찬히 살펴보게 된 나. 벽보엔 축제에 관한 내용 가득이었고 그 옆엔 더 크게, 나와 세준이의 사진이 여러장 붙어있고, 나에 대한 내용이 한가득 써있었다.
이거..
세준이에게 안겨있는 내 모습. 얼굴이 정확하게 보이진 않지만 나다.
세준이와 내가 담겨있는 사진들과 함께 빨간글씨로 크게 써져있다.
< 권아영 두 남자를 꼬신 백여우 >
권아영. 3학년 5반. 도광고의 'hero' 밴드 리더, 강권과 우리학교 이세준. 두 남자를 꼬시는 백여우다. 현재 강권과 사귀고 있음.
쭈욱- 나에 대한 나쁜 얘기들이 써져있는 벽보.
...........
누가 이런! 하!
미연이는 벽보를 뜯어버렸다. 나 대신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미연이.
다혈질의 그녀는 화가 잔뜩 났고. 나도 물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전에, 마음이 더 떨렸다. 머리카락이 쭈빗쭈빗 서는 그런 느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만든 사람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해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마구 욕을 퍼부어 줄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을 것이다. 권아영이란 아이는 그렇게 약하디 약한 존재다. 입술을 꾸욱 깨물고 찢어진 벽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딴 걸 누가 만든거야!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미연이는 분노를 마구 폭발시켰다.
아이들은 모두 우리를 보며 수군거렸고.. 미연이는 그 애들에게 소리치며 가라고 떠밀었다.
“뭐야, 쟤가 권아영이야?”
성질 되게 드럽네.
뭐?! 이것들이 선배한테!
미연이가 돌아보자, 1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애들은 도망가기 바쁘다. 나는 미연이가 찢어버린 벽보를 주워들었다.
........
누구야... 누가 이런 짓을 한거야. 덜 뜯어진 벽보를 깨끗이 뜯고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곤 손을 탁탁 털어버리고 교실로 발을 돌렸다. 미연이와 소라가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 붙는다.
아영아!
괜찮아?
괜찮아 보이냐! 아영이 얘가 마음이 얼마나 여린데, 안 쓰러진 것만 해도 다행이지. 야! 내가 더 울화가 치밀어! 누구야 대체!
..........
누구지... 누가 찍은 걸까. 어떻게 찍은 거지. 세준이랑 같이 있던 거 까지 누구지. 이런 걸 만든 사람이 누굴까. 나를 미행까지 했던 거다. 세준이와 있는 걸 찍은 거 보면 작정한 거다. 소이슬? 아님 다른 누구.
#교실
교실 밖엔 복도엔 이미 나를 보려고 몰려든 아이들로 가득했다.
쟤야?
어떻게 꼬셨대?
별론데.
왠일이야. 남자친구 불쌍하다. 걔 진짜 잘생겼든데.
맞아. 노래도 잘해!
복도에서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아이들에게 왁! 소리를 질러준 미연이 덕분에 아이들은 모두 바람같이 사라졌다.
하.. 누구야 대체. 복잡해. 알수가 없으니까 더 답답해.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꽉 막혀버린 목구멍에선 떨려서 더이상 소리가 나오질 않아.
그 생각에 수업도 집중되지 않고 선생님은 보고 있지만 선생님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
쉬는시간마다 찾아오는 아이들. 벌써 소문은 전교에 쫙 퍼졌는지 아이들이 더 몰려든다.
딱 2시간 째. 막 3교시가 지난 쉬는 시간.
버글거리는 아이들을 미연이 위협을 하여 보내고, 조금의 평화가 돌아왔을 때였다. 갑자기 우리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복도. 여자아이들의 간간히 들리는 비명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옆반이고 어디고 갑자기 운동장을 향해 외치는 여인네들의 함성. 나는 운동장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미연이는 바로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운동장에는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영아! 강권 아니야? 강권이야!"
나는 창문에 붙은 미연이에게 다가가 운동장을 내다봤고 그 운동장을 뒤흔든 주인공들을 곧 만날 수 있었다. 권이와 하루, 태훈이가 버젓이 우리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고개를 한껏 숙인 소이슬과 그 날 나를 때렸던 나머지 아이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어머어머!
미연이는 어머를 연발했고, 나는 어쩔줄 몰라하며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나를 발견한 권이 큰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준다.
꺄악. 오빠!
오빠!
창문에 붙어있는 여학생들의 외침에 권이는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하루와 장난을 친다. 그리곤 나에게 옥상으로 오라는 듯한 손짓을 해보이곤 내 시야에선 사라졌다.
뭐지.. 어떻게 된거지?
뭐긴! 응징하려고 데려온거겠지! 가자! 얼른!
나는 가고 싶지는 않은데.
무슨 소리야! 일어나! 소이슬 머리채를 훽- 잡아서!
나를 막무가내로 끌어당기는 미연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결국 옥상으로 가고 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골치아픈 것들이 머릿속을 짓누른다. 벽보도 그렇구... 복잡해.
그.런.데..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옥상을 올라가려는 계단은 다른 누군가의 담배연기로 통로가 뿌얗게 변해있었다.
어푸... 담배냄새.
..........
"누구야, 대체. 켁켁."
#50
계단을 오를 수록 진해져오는 담배향. 미연이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계단을 올랐다.
담배연기의 주인은..
"세...준아.."
세준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벼끈다. 세준이도 벽보를 봤을까... 봤겠지... 그랬겠지... 어떻게 생각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세준이가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세준이는 내 앞에 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로막았다.
"들어가지마."
"응?"
대뜸 들어가지 말라고 내 앞을 가로막는 세준이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들어가지마."
들어가지말라는 말에 굉장한 힘이 실려있다...
".....세준아.."
"상처도 받지마."
"....상처 안받아..."
"상처받을거야. 난 너 상처받는 건 못봐."
"세준아.. 상처받지도 않았고 받을 일도 없어."
상처는 아프지만 금방 아물면 아무렇지도 않대. 그런데, 오히려 내 첫사랑인 너는 너무 아프다. 아물지가 않는다. 세준아. 권이도 나도 아파하는데, 이거 금방 아물수 없는 상처 맞지. 아까 전에 그 사진들을 보고도 나보단 널 더 걱정했는데... 나보단 너 걱정이 먼저 되던데.. 너가 그걸보면 어떨지.. 슬플지.. 웃음이 나올지.. 짜증날지.. 너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게 되던데.. 권아영이란 바보같은 사람은 정말 너가 많이 좋은 가봐.
세준이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피해버리며 베시시 웃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 내가 권이랑 약속한 거. 세준이에겐 이것뿐이다. 피해버리는 거. 세준이를 피해, 계단 하나에 발을 옮기는 순간,
"너 강권한테는 못맡기겠다."
"!!!"
갑작스런 세준이의 말한마디에 나의 눈은 물론, 미연이의 눈까지 휘둥그레 졌다. 피했던 눈을 다시 세준이의 눈으로 돌렸다. 세준이는 담배를 꺼내려다 나를 한번 보더니 다시 주머니로 넣는다.
"........."
"강권한테는. 못보내."
"........."
"정말로 못보내겠다.."
세준이의 진한 검은 눈동자가 내 눈에 와 박힌다.
그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음성이 내 귀를 간지럽힌다.
"안보내."
"..........."
"강권 버리고 나한테 와."
세준이의 목소리가 내 귀에 정확하게 들어올 때였다.
'덜컹!'...
갑자기 옥상문이 누군가의 발로 인해 활짝 열렸다.
"이 씨$#2@놈아.."
무시무시한 욕을 하며 옥상문을 차고 나온 강권.
"꺄!!"
어느 새 권이 세준이 앞에 나타났다. 두 눈이... 얼어있다. 무섭다.
"진짜 죽어볼래."
권의 낮은 음성이 싸늘하게 느껴진다.
권은 세준이의 멱살을 잡아끌고는 옥상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권아!"
"어떡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두 눈뜨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세준이와 권이 옥상으로 들어가자, 나는 소리치며 얼른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 순간, 태훈이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옥상문은 무겁게 닫히고.
"태훈아! 비켜."
"누구편인데?"
"무슨소리야."
"아휴. 미치겠다. 뭐가 뭔지... 암튼 못들어가. 못들여보내."
"태훈아."
"싸나이끼리 볼일도 있는 거야. 치고박고 싸우든 뭐하든 권이한테 다 맡겨."
"태훈아!!"
다시 내 앞을 가로막는 태훈이. 벌써 옥상에선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더 마음은 조급해져 온다.
"태훈아. 비켜줘. 내가 말려야 돼."
"쟤들 둘 문제야. 지들끼리 해결보게 냅둬."
"이건!! 내 문제야. 권이랑 세준이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구. 내 마음이.. 내 마음이 문제라구.."
절박한 내 심정을 느꼈는지. 내 눈을 보던 태훈이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하나만 물을께.
....?
강권편이지.
......
태훈이의 눈빛과 말투 또한 방금의 나만큼 절박해 져있다.
하. 내 질문 왜이러냐. 강권편이겠지. 강권편이지, 누구 편이겠냐. 그치? 근데, 아영아. 오늘은 권이한테 다 맡겨라. 오늘만.
......안돼...
결국 앞을 막고 있던 태훈이를 밀치고 옥상문 앞까지 올라갔다. 문고리를 훽 돌렸다.
철컥. 옥상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햇살. 눈부신 햇살이 내 앞을 가리는데.. 쨍쨍한 햇빛이 내 시야를 가리다, 금방 걷혔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보이는 건... 처음으로 보이는 건 옥상난간에 기대어 고개를 돌리고 있는 권이. 난장판이 된 옥상 분위기.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는 하루. 그리고 소이슬의 무리는 한쪽으로 몰려 앉아있다. 세준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난 제일 먼저, 쓰러져 있는 세준이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루와 소이슬의 무리들이 쳐다보고 있는데도..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세준이를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가장 먼저 세준이에게 달려갔다.
세준아! 괜찮아? 응? 괜찮니?
세준이의 입가엔 피가 맺혀있었다.
후련해.
...........
나는 세준이를 일으켜 주었고 권을 돌아봤다. 어이없는 표정인 권. 모든 걸 잃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다. 오늘 그는 내가 여지껏 본 중에 최고로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야!! 권아영!! 내가 너라면 안그래!! 둘이 싸운거야! 권이도 맞았다고!
나를 째려보며 내 앞으로 돌진해 오는 소이슬. 그녀는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오는 소이슬을 보고 위축되어 있다가 내 시야를 가린 건, 권의 등이었다. 성난 소이슬의 얼굴이 아닌 익숙한 권의 등이 내 눈앞에 있다. 바로 안심이 되어버렸다.
소이슬.
강권 이 병신아! 넌 화도 안나?!
화나.
화나면서 왜 가만히 있어!! 왜 아무 말도 못하고 병신같이 서있어!! 내가 좋아하는 강권은 이러지 않잖아!! 아침에 나한테 길길이 날뛸 때는 언제고. 저년한테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깨부술 때 그 기세는 어디간거야! 너 왜 저년한테만은 꼼짝도 못해?!! 왜!! 지금도 머리끝까지 화났으면서 감춰? 왜 감추냐고! 강권답지 않게!!
........잃어버릴까봐.
..........
..........
다리에 힘이 풀린다. 권의 등이.. 이 아이의 뒷모습이... 슬프다. 아프다. 소이슬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왜 난 안돼..?... 왜 안되냐구... 솔직히 나 저년보다 못한 거 하나도 없잖아. 난 바람도 안펴. 양다리 안걸쳐. 난 내 남자만 봐. 난!!! 너만 볼꺼라고. 권아... 이래도 안돼...?...
........안돼.
왜..
넌 소이슬이지. 강권이 사랑하는 권아영이 아니니까.
권아.. 나 안 미워..? 지금도 이렇게 너 아프게 하는데... 세준이를 좋아하는 내 마음 때문에, 너가 아픈데도 나 안 밉니...? 그 때였다.
권아영.
옥상의 분위기는 굉장히 싸늘했다. 추운 겨울도 아닌데, 한기가 느껴질 만큼 추웠다. 소이슬이 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권이 사랑해?
사랑...
아님. 이세준 사랑하니?
사랑... 사랑이란 거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 없는데. 사랑이란 단어가 이렇게 어려운 거 였나. 내 머리가 이해가 안될정도로 어려운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
왜 대답 못해?
순간.. 저번에 말한 권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권을 보고있는 게 정답이라는 거. 정답.
정답...일까?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모두가 숨죽이고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옥상문이 열렸다.
모든 시선이 옥상입구로 돌아갔고 옥상문이 열리며 태훈이의 귀를 잡아당기며 옥상 안으로 들어오시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보였다.
이시키들이, 여기서 다 뭐하노?! 니들 저번에 그 노마들 아이가!
갑자기 등장하신 학주선생님과 귀를 잡힌 태훈이.
아아- 샘. 아픕니다. 귀는 놓아주시죠.
잔말이 많타. 이시키야. 누가 신성한 학교에서 담배나 짝짝 피라고 하드나. 단디 걸렸어. 딴 핵교놈들이 여기는 와 쳐들어 왔는데? 쌈질했나? 안되겠네, 이 놈들. 다 따라온나!!
아 귀 뜯어지겠네!!요!!!
뭐라코? 시끄럽다, 임마야. 내가 타이슨이가? 니 귀를 뜯어먹게. 야 임마들아, 퍼뜩 다 따라와.
학생부. 학생부는 금새 왁자지껄 시끄러워 졌다.
이선생님, 이 애들 다 뭐예요? 어머. 도광고의 hero 애들 아니예요?
히? 히 뭐예?
왜 축제 때 공연했던 도광고 히어로라고, 밴드부요.
예? 이 놈들이 갸들?
네
노래 잘하든 그 노마들? 맞나?
네.
태훈이가 대답했고, 조금 놀란듯한 학주선생님의 표정.
여기는 왜 왔노?
선생님.
내 옆에 서있던 권이 입을 열었다.
와?
저만 잘못했습니다. 얘네들 잘못없어요. 다 돌려보내 주세요.
뭐?
싸움도 제가 했구요. 시비도 제가 먼저 걸었구요. 우리애들 끌고 온 것도 저구요. 우리 아영이 불러낸 것도 저구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저 혼자 벌받을께요.
혼자 벌받겠다 이 말이가?
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다 돌려보내주세요. 제가 다 벌 받겠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우리 다 같이 벌받겠습니다.
의리있는 태훈이가 소리높여 말했고, 하루도 그러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니들이 다 벌을 받겠다면 할 수 없제. 그라몬, 셋만 남고, 나머지는 다 돌아들 가라.
학주선생님이 고개를 끄덕거리시며 말했고 이어 세준이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같이 싸웠습니다. 같이 벌받겠습니다.
첫댓글 꺄세주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