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인 더 스카이
박귀용
“어떻게 이럴 수가? 이게 현실이고 사실 맞아? 정말 이럴 수가 있어? 양지야, 우리 만나자. 아, 내가 네 집으로 갈게.”
울음이 터져 나올 갓만 같았다. 양지는 잠시 멈칫 하면서 오른쪽 손가락 하나로 자판을 길게 그으며 폰을 닫았다, 양지와 진희와의 통화가 끊겼다. 진희는 양지의 심정이 어떠할지 생각 못하고 치명적인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양지는 ‘아무 것, 아무 일도 아니야.’ 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견뎌 낼 수가 없었다.
양지는 바로 찾아 입어도 될 옷을 마구 흐트러뜨려놓는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옷을 찾아 갈아입는다. 간편한 차림, 진 바지와 면 티를 입었다. 백 팩을 등 뒤 양 어깨에 메고 가만히 방문을 열었다. 방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이던 엄마가 그만 팍 넘어졌다. 양지는 ‘엄마 미안해요’ 소리도 못하고는 빨리 현관문을 그냥 나와 버렸다.
“양지야, 인휘 씨 딸이 시집간데, 나랑 같이 그 결혼식에 안 갈래?”
초등학교 때부터 진희는, 엄마 친구 딸이기도 하고 물론 나와도 아주 가까웠다. 인휘는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친했다. 진희보다 인휘가 훨씬 먼저 양지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가 관심 공통분야가 있어 친구가 됐다. 순하고 커다란 눈이 날씬한 몸매에 인휘는 매력이 있었다. 양지와는 이야기의 주제도 흥미도 관심도 잘 맞았다. 인휘 부모는, 그들을 인정했다. 물론 그들의 미래가 행복하리라 그들도 열심이었다. 둘은 글도 잘 쓰고 미술도 잘 그려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회에 나가 상을 타 학교를 빛냈다. 음악 감상하는 레벨도 비슷해 그래서 먼 훗날에는 모두 훌륭한 가정을 꾸미면서 자식도 잘 낳아 행복하리라 믿었고 응원했다.
어느새 구정을 쇠고 정월 대보름까지 지났을 뿐인데 양 볼에 닿는 바람의 촉감이 부드러웠다. 참새 떼가 나무 가지에 마른 풀밭에도 내려 지저귀다가 훨훨 멀리 날아갔다. 깡마른 나무 가지들이 생기가 돋나 싶더니 2월이 가고 3월이 새순이 돋아 나와 있었다. 매화가 봉오리 오르나 싶었는데 연두, 연노랑 산수유와 맞잡고 연분홍 꽃을 피워 봄의 향연에 신호를 터트렸다. 4월이 되니 목련이 활짝 웃었다.
그러나 양지는, 인휘 딸 결혼 소식을 안들은 거로 무시하기로 했고, 마음도 냉정했다. 그랬었는데 막상 당일이 되자 그녀는 밤새 뒤척이다가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가득한데 거실 커튼 밖 창문이 환했다. 웬 전기 불? 하며 밖을 내다보니 달빛 이였다. 달이 양지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었다. 옷이 가득한 방에 들어가 머플러도 고르면서 양지는 자신도 모르게 옷차림새를 고민했다.
양지는 밖으로 나왔다. 호수를 따라 가로수가 울창한 길은, 쭉 길게 뻗어 있었다. 기다랗게 이어져 돌고 돌았다가 다시 또 이어졌다. 사람들이 옛 고향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처럼 그 기분 낭만으로 거닐 수 있도록 여러 장소가 곳곳에 이어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각종 그룹들이 곳곳의 야외 공연장 무대에서 이름을 걸고 열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나무길 따라 가까운 곳 호수에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 가지가 미풍에 흔들린다.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마다 아기손톱만큼 연두색을 보이고 있었다. 양지는 혼자,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여기저기 풍경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예식장을 갈까 말까 번민한다. 양지는 예식장이 가까울수록 한참을 되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서다가는 결국은 예식장을 향해 걸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거위 무리가 보인다. 호수를 벗어나 언덕위에서 졸졸 호수로 흐르는 습지를 따라 열두 마리의 거위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양지는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위들은 뒤뚱거리며 올라 오르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는 행렬을 하듯 고개를 연신 절구질하며 풀밭을 헤치며 열심히 뜯어 먹고 있었다. 저쪽에서 젊은 남녀 한 쌍이 곁으로 다가가 거위들을 만지려했다. 하지만 냅다 도망친다. 또 다른 이들도 시도했지만 거위 꼬리잡기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 다른 거위 한 마리가 앙상하지만 가지마다 새싹이 돋은 작은 나무 숲 아래 물웅덩이로 가 혼자 즐기고 있는 걸 양지는 바라본다. 그녀는 벚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결혼식이 치러지는 장소로 들어선다.
양지는 다시 먼 옛날을 회상한다. 인휘 아버지가 떠오른다. 갑자기 왜 그 생각이 났을까. 인휘가 결혼한 후 인휘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가 첫 손녀도 제 엄마처럼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양지는, 그 때 여자 친구들로부터 인휘가 몹시 아파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 양지는, 돌연 부모에게 문자를 보내고 휴대전화도 끄고 제주도로 도망가 한 달을 숨었다. 인휘가 너무 가여웠다. 그러나 인휘는 죽지 않고 살았다. 건강하지는 못해도 지금까지 나름대로는 잘 살고 있었다.
아는 지인들과 남녀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이 신부 측 식장 앞쪽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보며 양지는 안심했다. 진희도 있었다. 그녀는 가끔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살피는 것 같았다. 안지는 몸을 숨기며 식장 안을 둘러본다. 웨딩 길 따라 많은 전구 문양의 촛불이 켜진 채 흔들리고 있었다. 촛불은 진짜처럼 너무 흡사했다. 여러 종류 생화가 많이 장식 돼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결혼식 시작되었다. 신랑입장에 이어 신부 입장이 막 끝나고 있었다.
한복 입은 신부 어머니 뒷모습이 우아하고 예뻤다. 처음 인휘가 양지 앞에 그 여자를 소개 할 때 친척 여동생인가 생각했다. 아름다웠지만 함께 이야기하면서 장애가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몹시 수줍어했다. 산만하고 마구 말을 쏟아내는 장애인을 경험해 본 양지는 ‘그 보다는’하며 좋게 여겼었다.
신부 아버지가 나와 하객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마이크 앞에 서서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양지는 들키지 않으려고 하객들 속에서 더 조심했다. 변한 게 없었다. 신부 아버지는 여전히 깔끔했고 키 크고 날씬했다. 늘 변함없는 큰 눈, 선하고 순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내 남자라고 믿었던 남자에게 선택된 그 여자의 장애까지 너무 시기심과 질투로 양지는 몸살을 얼마나 앓았던가! 시퍼런 칼날처럼 그 기운이 솟구쳐 양지 자신도 무척 놀랬다. 예식장 안은 지금 평안하다.
신부 아버지가 인사말을 다 마치고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연주자들에게 우리 가곡 ‘그네’를 주문했다. 드디어 연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된다. 양지는 신부 아버지가 휘파람도 기가 막히게 잘 분 것을 생각해 낸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바람결에 나부끼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 더 라
신랑 측 하객 중 한 중년 여자가 곁에 남자를 붙들고 말을 했다.
“유명한 소아과 의사래요. 너무 상냥하고 친절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네요.”
인휘 딸 돌잔치에 다녀 온 친구들이 양지에게 말했었다. 영어로 ‘튀윙클, 튀윙클, 리틀 스타 하우 아이 원더 핫 유 아. 업 어브 월드 쏘우 하이. 라이크 더 다이아몬드 인더 스카이.’ 전곡을 부르는데 너무 감동이 됐었단다. 그게 벌써 이십 년도 넘었다.
양지에게 다정했던 인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다가와 울려서 눈물이 솟구치게 한다. 끓는 용암처럼 뚝뚝 뜨거운 것이 눈 밖으로 나와 턱 밑까지 흘러, 주르르 미끄러졌다. 양지는 가방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눈꺼풀을 꾹꾹 누르며 멈추려 애써도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흘렀다. 참고 싶어도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양지는 흐릿한 물안개 눈으로 인휘를 계속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