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훈 목자(UBF 대구Ⅰ Ⅱ부 인턴)
서 론
Ⅰ. 머리말
1. 연구의 필요성
2. 연구의 전개방향
Ⅱ. '이단'에 대한 기본적 이해
1. 이단의 정의
2. 이단 발생의 원인
3. 이단 분별의 기준
4. 이단의 공통점
Ⅲ. 이단 정명석(JMS) 집단과 30개론 비판
1. 생성배경
⑴ 교주 정명석(JMS)의 약력
⑵ 정명석 집단의 연혁
⑶ 캠퍼스 조직
2. 교리 및 주장
⑴ 입문
① 성경을 보는 관
⑵ 초급
⑶ 중급
⑷ 고급
Ⅳ. 정명석 교리에 대한 올바른 대응 : 정통기독교적 교리에 의해
1. 올바른 성경관에 의한 대응
⑴ 오직 성경
⑵ 올바른 성경해석
⑶ 신약저자들의 성경해석
2. 올바른 메시아관에 의한 대응
⑴ 참 하나님,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⑵ 예언의 성취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⑶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사역
⑷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3. 올바른 역사관에 의한 대응
4. 올바른 종말관에 의한 대응
⑴ 종말에 대한 예수의 당부와 예언
⑵ 잘못된 종말론의 역사와 정명석
⑶ 사이비 종파와 정통파의 종말론 비교
⑷ 종말에 대한 성경의 권위
⑸ 올바른 말세관
5. 기독교가 비과학적이라는 데 대한 대응
Ⅴ. 맺음말
Ⅰ. 머리말
1. 연구의 필요성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실 때 '자칭' 그리스도라는 자가 나타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약 2천년이 지나는 동안 실제로 '자칭'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도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가 이끄는 이단 집단들의 활동은 심각할 정도이다. 그 중에서 정명석(JMS) 집단은 주(主)활동무대를 캠퍼스로 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대학생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일 것이다. 대학생들은 사회 모든 분야에 그들의 사상을 전할 수 있고, 앞으로 한국 사회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자원이다. 경북대학교의 경우 한 때 '물꼬', '한울회'라는 이름으로 봉사분과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BOB'(Best Of Bes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총동아리 연합회 종교분과에 속하여 환경운동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영동교회', '수성교회'란 이름으로 캠퍼스에 광고를 내어 학생들에게 접근한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접근하여,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문제 중심으로 교리를 전한다. 이 집단에 들어간 사람들은 30개론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고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때문에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빠져 나온다 해도 진리에 대해 회의를 갖기도 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캠퍼스 이단 중 가장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정명석 집단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하겠다.
2. 연구의 전개방향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갖고 있더라도 정명석 집단의 논리가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만큼 이들의 주장은 논증의 가치도 없을만큼 신앙적, 역사적, 지성적 기초가 없다. 이제까지 정명석 집단에 대한 연구는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 의해 연구되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연구는 정명석 집단의 교리(특히 30개론)에 대한 기본적인 비판 중심이었고 30단계를 모두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정통기독교 사상에 의해 정명석 집단의 모순점을 비판하며 대응방안을 설명하였다. 정통기독교 정신만이 올바로 이단을 분별하고 대응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진짜 지폐를 많이 만져야 위조지폐를 쉽게 분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료가 부족한 2개 단계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으로 비판하려고 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먼저 '이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설명하여 정명석 뿐만 아니라 다른 이단들을 분별하는 기준과 능력을 갖도록 했다. Ⅲ장에서는 정명석 집단의 생성과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치는 30개론을 분석하고 비판하였다. Ⅳ장에서는 이런 이단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정통 기독교적 입장에서 제안하였다.
Ⅱ. '이단'에 대한 기본적 이해
1. 이단의 정의
'이단'(異端)이란 용어는 헬라어 'haireses'에서 파생된 것인데 영어로 Heresy, 독일어로 Ketzrei, 라틴어로 Haeresis, 희랍어로 Hairesis라고 쓰여진다. 본래 뜻은 '선택박은 자, 뽑힌 자'로서 처음에는 어떤 특출난 철학적 학파를 지칭하였다. 그러나 점차 신학적 오류를 지닌 분파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초대교회에서는 일반적인 교회의 교리와 다른 주장 교리를 내세우는 개인 집단을 지칭할 때 사용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변질된 신앙의 도전으로부터 정통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이단과 싸웠다. 그런데, '이단'의 한자적 의미는 '끝이 다르다'는 뜻으로, '처음은 같으나 끝이 다른 것이 이단이다'라는 해석이 나오게 된다. 이는 성경에서 본래 말하는 'Hairesis'라는 단어의 뜻과 다르다. 따라서 '이단'을 '이설'로 이해하면 더 쉬울 것이다. 또한 이단은 불신앙이나 비신앙, 의심이나 회의를 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기독교 진리의 일부분을 오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이단과는 다른 개념이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의나 교리를 부인하면 이단인 것이다. 정통의 기준에서 위배되는 것이 이단이라고 할 때, 이단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정통진리의 기준이 먼저 세워져 있어야 한다. 정통진리 없이 이단이 존재할 수는 없다.
2. 이단 발생의 원인
첫째, 이단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말세의 징조이다(마24:3-51). 이단이 일어나는 것은 성경말씀의 성취인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재림에 대하여 잘못 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아시고 경고하셨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다. 거짓 선지자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한 부류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다른 부류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이 자기가 깨들은 것이 참이라고 잘못 믿고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는 사람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거짓선지자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당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4-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마24:11)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26)
둘째, 기성교회의 제도적인 부패와 타락이다(하나님의 교회 그 자체는 타락하거나 부패할 수 없고 다만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를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들은 기성교회의 제도적인 결함과 부패를 공격함으로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해방 후 국토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가운데서 교회는 가운데서 하나로 단합하여 민족을 위로하고 소망을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교회는 분열과 분쟁 속에 휘말리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민족적 절망과 역사적 암흑기에 절실한 종말의식이 싹트게 되었고 사람들은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 어딘가로부터 구원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때 기성교회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으므로 여러 사이비 종파들이 생겨나 신비적인 능력과 구원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잘못된 길로 오도하고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 일어난 박태선의 전도관운동, 문선명의 통일교운동(정명석은 이 운동의 한 분파라고 할 수 있다)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3. 이단 분별의 기준
첫째, 정통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도리를 믿는데 반해 이단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단들은 십자가를 저주와 실패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통일교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초림주로서 인류를 구원하러 왔으나 완전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십자가로 인하여 인류의 원죄를 청산하고 구원을 이룬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십자가로 인해 구원에 실패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구원실패의 상징이다."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의 결과이며 십자가 죽음에서 영적 구원만을 이루고 육적구원은 실패했다."({원리강론}, p. 222, 148, 156)
둘째,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여부를 가지고 이단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기독교회는 그 많은 교파에도 불구하고 모두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단들은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셋째, 성경관을 보고 판별할 수 있다. 정통기독교회는 성경 66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믿는다. 반면 이단들은 신구약성경의 권위보다 그들의 다른 복음(갈1:7-8, 고후11:4)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계속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신구약성서에서 끝맺음을 나타내고 있다. 더 이상 특별계시의 계속성을 주장한다면 이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특별계시를 하게 한 성령의 영감은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계22:18,19). 성령께서는 세상의 죄와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에 대해서 바로 깨우쳐 주시고(요16:8),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하지 않고 들은 것만 전해주신다(요16:13). 예수의 것을 가지고 오시기 때문에(요16:14) 성경에 기록된 말씀 외에 더 첨가하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이 모든 내용은 우리에게 계시하길 원하시는 전부이며, 성령께서는 임의대로가 아니라 이 내용을 조명을 통해 다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넷째, 이단들은 마24:24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들인 기성교회를 대상으로 미혹한다.(벧후2:1)
다섯째, 이단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신격화한다. 존경과 신격화는 다른 것이다. 이단집단의 지도자는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재림의 예수', '말세 마지막 종', '하나님의 어린양', '선지자', '보혜사 성령', '심판주 하나님', '새하나님', '하나님의 부인', '하나님의 둘째 아들' 등 갖가지 신격화된 명칭으로 불리운다.
여섯째, 이단들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의 온상에서 독버섯처럼 발생한다. 기독교는 온통 신비로 가득찬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그 신행(信行)의 내용이 될 수 없다. 흔히 이단자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불건전한 신비체험을 마치 진리인양 주장하고 있다. 자기만이 '하나님과 직통한다', '직접 계시를 받았다', '예수를 직접 만났다', '환상을 보았다', '두루마리를 삼켰더니 성경을 100% 통달하게 되었다'는 등의 주관적인 신비체험을 객관화시키려 한다.
일곱째, 성경해석에 있어서 이단들은 오류를 범한다. 개혁자 루터는 성경의 가장 정확한 주석은 성경이라고하여 원리적인 해석(Principle Interpretation)을 주장했으나 이단자들은 대부분이 은유적인 해석(Allegorcal Interpretation)을 시도한다. 이것이 지나쳐서 성경해석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또 자신들만이 성경을 100% 통달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
4. 이단의 공통점
첫째, 이단들은 세계의 종말이 눈 앞에 다가왔다고 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절박한 의기의식에 빠지도록 한다. 무시무시한 세상의 종말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 이단들의 공동체에 가담해야 된다고 쇠뇌시킨다.
둘째, 이단들은 그리스도 중심적이 아니고 자기 중심적이다(롬3:9-20). 이단의 교주들은 모두 자기에게 충성하고 복종하기를 요구한다. 자기의 명령은 신의 '명령'이거나 '계시'라고 주장한다.
셋째, 이단들은 자신들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고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신격화한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보자로서 나선다. 하나님 말씀에 의한 객관적인 인증도 없이 자기 주관적인 계시나 환상 등 신비체험을 네세워 신도들을 설득한다.
넷째, 이단들은 자기네들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 때 환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극단적인 선민의식(예:여호와의 증인)을 가지고 있다. 환상속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이단들은 가시적인 생전(生前)에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지상천국을 내세운다. 그들의 힘으로 지상천국이나 환란날에 안전한 피난처를 건설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섯째, 그들은 외부와 단절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등 폐쇄성을 가지고 있다.
일곱째, 대부분의 이단들은 윤리성이 결여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비윤리와 부도덕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Ⅲ. 이단 정명석(JMS) 집단과 30개론 비판
1. 생성배경
⑴ 교주 정명석(JMS)의 약력
애천 교회의 교주인 정명석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정팔성 씨의 4남 3여 중 3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신비적인 현상에 관심이 커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김천 용문산 기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약 20년 동안 산사람처럼 살며 젊음을 불태웠다. 정명석은 오랜 기도생활 중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나이 마흔 정도에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그가 하산 후 찾아간 곳이 고향의 통일교였고, 얼마 후 그는 통일교 기관인 국제승공연합 강사 요원으로 2정도 활동했다. 1980년 3월 그는 통일교를 떠나 기도원에서 키웠던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신촌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할 동지 규합에 나섰다. 얼마 후 젊은이 5인(정명석, 김기희, 안구현, 서인순, 김형만)이 '신촌5형제'란 이름 아래 생사고락을 함께 할 것을 다짐하고 '애천교회'를 조직하였다.
⑵ 정명석 집단의 연혁
1980년 조직된 '애천 선교회'는 주로 교회에 다니고 있는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접근하여 포교활동을 벌였다. 교세가 차츰 확장되자 본격적으로 캠퍼스 내에 침투하여 서클을 조직하는 등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교세확장을 해 나갔다. 1982년에는 대한예수교 연합회 예감(선교)에 가입하여 '애천 선교회' 간판 대신 '대한예수교장로회 애천 교회'란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983년 11월 26일에는 예수교 대한감리회(웨슬레신학교측)에서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핵심 간부 6명과 함께 웨슬레신학교 교장인 박용식씨에게 상당한 금품을 주고 선 안수 후 교단가입의 조건으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1983년 6월에는 대한예수교 감리회 '애천교회', 그후 잇달아 예수교 감리회 '영동교회', 예수교 감리회 '낙성대교회', 그리고 '서울교회'…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982년 6월에는 처음으로 권사 1명, 집사 11명의 제직과 중고등부 교사 3명, 고등부 교사 4명을 임명하여 교회조직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이어 구역, 캠퍼스 선교의 조직과 활동을 점차적으로 강화시켰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MS회원들의 강사화를 시도하여 각 대학에서 활동하게 하므로 1982년 1월 동안에 교세를 크게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지방대학에는 1983년 2월 28일부터 3일간 대전에서 수련회를 개최한데 이어 동년 3월 5일부터 2박 3일간 일정으로 제주도 전도여행을 가졌다. 여름방학 기간에는 대전, 광주, 춘천, 군산, 수원, 부산, 대구, 전주 등의 순회집회를 통하여 80여명의 결신자를 얻는 등 전국적인 포석과 조직을 해 놓았다. 애천 교회에 소속된 청년 대학생들은 1983년 '세계청년대학교 MS연맹'을 출범시켜 매년 각종 행사를 통해 회원의 단합과 사회 홍보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한국대학생들을 중심으로 MS선교회를 설립했는데, 각 지방별로 대단한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정기모임으로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 장년 성경공부, 토요 신입회원 말씀공부, 직장인 토요모임, 매일 개인별 성경공부,매일 아침 기도와 말씀공부등의 모임이 있다. 수시 모임으로는 강사훈련세미나, 수양회, JMS강사 수련회, 애천 하기 수련회 등이 있다.
그들은 포교활동을 할 때 주로 기성교회에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기성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문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함에 따른 결과라고 원인을 규명해 주고 애천 교회의 이념과 교리에 대해서 소개한다. 이럴 때에 만약 기성교회에 대해서 평소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던 사람들은 쉽게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1989년 MS선교회에 소속된 교회의 이름을 각 지방별로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성내교회, 부산:초량제일교회, 인천:주안교회, 대구:영동교회, 수성교회, 광주:문화제일교회, 강화:강화교회, 강릉:강릉교회, 경주:금성교회, 경기:안산교회, 경북:의성교회, 공주:공주교회, 군산:군산 교회, 대전:중앙제일감리교회, 마산:수원:수원교회, 순천:순천제일교회, 울산:청산교회, 완도:완도교회, 충북:옥천교회, 전남:장성교회, 조치원:교동교회, 전주:전주교회, 제주:제주교회, 진주:진주교회, 춘천:춘천교회, 충주:충주교회, 천안 ; 원성동감리교회, 천원:광동중앙교회, 청주:금성교회, 포항:용흥교회, 대만교회,일본교회, 브라질교회, 미주지역교회, 독일교회, 아르헨티나교회
⑶ 캠퍼스 조직
처음에는 서울 시내를 4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에 챔임자 겸 강사요원을 두어 동부는 한양대를 중심으로, 서부는 연세대를 중심으로, 남부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북부는 고려대를 중심으로 할동하게 했다. 점차 인원이 늘어감에 따라 조직을 확대하고 각 대학별로 학생 중에서 캠퍼스 리더를 1인씩 임명하여 학교별로 MS동아리를 조직 운영토록 하고 있다. 수시로 입회되는 신입회원에 대한 교육과 기도회, 말씀공부, 세미나, 강연회, 환경운동, 봉사활동 등을 자치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2. 교리 및 주장
정명석의 교리는 '정명석이 구세주이다'는 대전제 아래 교리를 주장한다. 이들은 이 대전제 아래서 성경을 해석하고 교리를 내세우기 때문에 성경적 근거나 역사성, 합리성이 결여되는 것이다. 정명석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기독교는 이미 하나님이 떠난 엘리 제사장과 같고, 기독교 교리는 빛을 잃은 구시대의 산물이 되고 말았으므로 새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이 시대의 중심인물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1999년 7월 14일, 내가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한다. / 성경에는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인 하와를 창조했다고 하나 사실은 정자와 난자로 창조되었다. / 당신도 천사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는 신구약 성서를 1천독하여 성서를 통달하였다. /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1천여명의 천사로부터 호위를 받았다. / 하나님은 진노하였고 나더로 세상을 구제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구세주이다. / 내가 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시키는 것과 같으니 나를 섬기고, 일하고, 공경하고 받들면 신앙의 병이 안든다. / 나태병, 해이한 병 등 본인은 모르나 내가 보면 광선이 스치듯 다 알게 된다..."
정명석 집단의 이러한 사상은 교주 정명석이 만든 '30개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정명석의 교리는 대부분 통일교의 '원리강론'을 표절, 수정한 것이다. 정명석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성서의 모든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비유로 보고 현대인들의 사고에 맞게 해석하여 그 내용을 집단의 교리로 삼고 있다. '30개론'의 교과과정은 총 4단계(입문, 초급, 중급, 고급)로 구분되어 있다. 이 교리를 학습시켜 공부가 끝나면 시험을 치루며 합격하면 고유번호를 주어서 정회원의 자격을 준다. 반복교육을 통해서 완전히 세뇌시켜 그들의 주장에 몰입하게 된다. '30개론'을 단계별로 보고 모순점을 간단히 언급하겠다.
⑴ 입문
① 성경을 보는 관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비유를 잘 풀어야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늘의 비밀과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더 나아가서는 인간 삶의 목적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성경을 시대성이나 과학성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또는 교리에 얽매어 획일적으로 해석하는 등 성경을 보는 관이 잘못되어 있어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된 성경을 바로 풀수가 없다."
정명석이 성경을 보는 관을 30개론의 첫관문으로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명석은 자신이 구세주라는 대전제를 세웠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상관없이 원하는 구절을 취사선택하기 위해 성경을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자체서는 어떤 부분도 정명석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Ⅳ장 참조).
② 태양아 멈추어라(수 10:12)
"현대인들에게 태양이 도는가 지구가 도는가 하고 물어보면 누구나 지구가 돈다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므로 교회에서나 신학교에서나 태양이 멈추었다고 되어 있으니 지동설 시대에 천동설 해석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이 딱하다."
정명석은 "태양아 멈추어라"는 표현은 천동설 시대의 표현이므로 현대인에게는 지동설에 맞게 가르쳐야 하는데 기독교는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 역시 정명석을 구세주로 보는 대전제 하에 성경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한 합리화 작업이다. 천동설 시대에는 공중 재림의 메시아를 기다렸으나 지동설 시대에는 지상재림, 즉 지상천국을 이룰 메시아를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 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동시에 그는 이 논리를 내세우며 현기독교가 매우 비과학적이며 성경해석을 잘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명석 자신이 당시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해보라. 당시 사람들의 상황에서는 "태양아 멈추어라"는 말이 가장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는 "태양아 멈추어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Ⅳ장 참조).
③ 엘리야 까마귀 밥(열왕기상 17:1-7)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물어 줬던 고기와 떡은 깨끗한 것이 아니고 실은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에게 제사 드렸던 것으로 심정 괴로운 음식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사르밧 과부 집에서의 기적도 사실은 엘리야가 말씀과 법칙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주니까 다른 사람들이 과부집에 가루를 갖다 준 것이다. 결국 기적과 이적은 법칙과 진리다."
이 단계 역시 ①, ②단계와 같이 정명석을 구세주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열왕기상 17:1-16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호하시기 위해 그릿 시내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명하여 떡과 고기를 먹이셨다. 그러다가 시내물이 마르자 이번에는 사르밧으로 보내시고 과부를 명하여 공궤를 하시되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셨다. 이 내용은 어떤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이므로 억지로 풀어야 할 이유가 없고, 특별한 해석을 가할 필요도 없다. 비록 까마귀가 우상의 제물을 물어다 주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것, 하나님께서 깨끗다 하신 것이므로 부정하다고 할 수 없다. 정명석 자신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건은 기적의 사건이지 정명석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켜주는 법칙이 아니다.
④ 7단계 법칙
우주가 7가지 법칙에 의해서 창조되었으므로 모든 것은 이 법칙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1단계 : 광물계(광맥을 찾지 못하면 광물을 캐내지 못한다) / 2단계 : 생물계(생리에 맞지 않으면 썩는다) / 3단계 : 물질계(물리적 조건에 맞지 않으면 썩는다) / 4단계 : 땅(지리적 조건에 맞지 않으면 지진, 폭발, 해일 등이 일어난다) / 5단계 : 우주(원리에 맞지 않으면 균형 파괴와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 6단계 : 인간(심리가 맞지 않으면 미움, 시기, 분쟁 등이 일어난다) / 7단계 : 하나님과 인간(진리에 어긋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죽는다)
이 법칙들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그리고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내용을 교리화해서 가르치는 것도 정명석 자신을 구세주로 만들기 위해 유치하고 인위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⑤ 삼분설
"영과 혼과 육을 말하며 첫째 사망은 영, 육, 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며 둘째 사망은 영과 하나님과의 수수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삼분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말세의 심판(둘째사망)을 부정하고 자신이 말씀으로 심판한다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아마도 정명석 자신이 심판을 행할 능력이 없으므로 둘째 사망을 관계성 파괴 정도로 주장하는 듯 하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첫째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져 있는 죽음이다. 둘째 사망은 심판 때 받게되는 불과 유황 심판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⑵ 초급
⑥ 비유론
"성경은 절대적으로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그 비유를 알아야만 성경을 바로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당시 그의 뜻이 이루어졌으면 비유가 필요 없었고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정확히 알았더라면 비유가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그 시대의 중심 인물만이 상징과 비유로 인봉된 말씀을 바로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말로 일반적으로 하나의 진리를 가르치거나 하나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사용되는 직유나 짧은 이야기이다. 예수께서는 비유를 사용해서 친숙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와 개념을 적절하고 친숙한 표현으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에 의해 밝혀진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며 '새로운 시대'가 임했음을 알리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지막 날까지 기도하고 이웃을 섬기도록,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쉽게 알려주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그의 뜻이 이루어졌으면 비유가 필요없었다'는 논리는 비성경적이다. 그리고 이 비유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그 시대의 중심 인물만'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를 누리지 못하고 죽은 부자 이야기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비유이다. 자연(마13:24이하)과 일상생활(마13:13)에 관련된 비유들은 듣는 청중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하기 위함이지 후세의 중심인물을 위해 남겨준 비밀이 아니다. 비유는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겸손하게, 그리고 성령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항상 열려있는 말씀인 것이다.
⑦ 불의 개념(벧후3:8-13)
"불이란 개념부터가 하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달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현 기독교에서는 재림 예수가 오시면 불로 심판한다고 철통같이 믿고 있다. 여기서 철통같은 고정관념을 깨 부셔야 한다. 그럼 불은 과연 무엇인가? 성경을 알아보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약3:6),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렘5:14), '내 말이 불 같이 아니하냐'(렘23:29), '입에서 불이 나와'(시18:8),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계11:5) 위의 성경 구절에서 불이 말씀이라고 했다. 곧 진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라 하였듯이 예수께서는 진리의 불로 심판하셨는데 멍청한 유대인들이 몰랐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불을 잘못 인식하므로 언제 가는 지구가 불에 타서 사름을 당할 것으로 알고 있다. 종교와 과학이 풀어져야 한다. 두 개의 납덩어리가 녹아야 하나로 되듯 진리의 불로 녹여야 한다. 말씀으로 모든 게 풀어지게 되어 있다.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의 세계를 매듭 진다."
물론 약3:6과 렘5:14에서 말하는 불은 상징적인 것으로 실제의 불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모든 불이 상징적인 불은 아니다. 장차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불은 실제의 불이다. 불과 유황에서의 불은 실제 불이지 다른 무엇을 상징한단 말인가? 정명석은 자신이 재림주라 하고 있으나 실제 불로 세상을 심판할 수도 없고, 1999년 불이 임하지 않으면 거짓이 탄로나기 때문에 말씀이 불이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⑧ 말세론
"기독교의 종말관은 오직 믿는 자만 천당가고 지구는 멸망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러나 말세는 멸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말세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데서 오는 잘못이며 천동설 시대의 말세관이므로 현대에서는 지동설적인 말세관을 가져야 한다. 역사의 동시성이나 지동설적인 입장에서의 말세는 보다 새로운 차원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계8:13을 보면 화, 화, 화가 있으리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3차 대전을 뜻한 예언이다. 그러나 지구의 멸망은 아니다(화(과거) : 1차대전, 화(현재) : 2차 대전, 화(미래) : 3차 대전). 구약시대의 말세관도 똑 같은 말세는 끝이 올 줄 알았다. 역시 신약시대의 현 기독교인들이나 믿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구약의 말세도 예수님이 지구의 끝을 맺지 않으셨고 신약 역시 마찬가지다."
기독교적 역사관은 정명석이 자주 사용하는 '천동설 시대'나 '지동설 시대'에서도 변화되지 않는 직선적 역사관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에서 발하는 역사의 종말은 반드시 임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갈4:4;히9:26)이 이루어졌으며,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마24:1-51), 죽은 자의 부활(고전15:51-58;살전4:13), 세상나라의 멸망(벧후3:10-13),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계21:1-8)도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말한다(Ⅳ장 참조).
⑨ 무지 속의 상극세계(역대하 35:18-26)
"애굽의 느고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려고 하는데 유다의 요시야 왕이 무지하여 느고를 방해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어겨 죽고 결국은 세나라가 바벨론에게 모두 망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시대적 배경을 깨우치기 위한 것인데, 애굽은 통일교요 유다는 기독교이며 갈그미스는 북괴요 바벨론은 애천교회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기독교인들이 정교주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훌륭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사람이 택함을 받는데 예수님 역시 더 똑똑한 사람이 많았지만 예수님을 택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유대 민족이 왜 예수님을 죽였는가 욕만 하지 말고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유대교는 율법의 실패지만 기독교는 영적인 실패이다. 성약시대는 성령의 실패이다. 유다는 현 기독교, 애굽은 통일교, 갈그미스는 북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최고 소망은 정치보다 통일에 있다. 1974년을 중심한 해가 유다의 유월절과 같은 것이다. 엑스폴로 74, 이 기간에 얼마나 기도한지 모른다. 그렇게 하자 하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환상 가운데 보여 주었다. 예수님이 손수 제주도부터 백두산까지 성경을 놓은 환성을 본 것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참으로 유치한 말이다. 위에 언급된 구약성경을 반복해서 읽어보라. 북한에 대한 적용이 어떻게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라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다. 우리 인간을 위해 성육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는 율법의 실패가 아니며 기독교는 영적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 기독교인의 머리되신 예수께서 사단의 권세를 이기셨는데 누가 기독교회에 실패를 준단 말인가?
홍수심판
홍수심판에 대해 전체 심판이냐 부분심판이냐 하는 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대 부분 심판이란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노아시대는 지금으로부터 4,300년전에 있었던 일인데 당시 복음이 메소포타미아지방만 전파되고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전파되지 않았는데 복음을 주지도 않고 어떻게 심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또 에베레스토 산정까지 물이 차려면 지구에 있는 물의 8배가 있어야 되는데 물이 어디서 나느냐는 것이다.
"… 또 전체 심판을 하는데 물은 어디서 났느냐, 물은 지구에서 수증기로 올라가는데 지구 전체를 다 덮으려면 지구에 있는 물의 8배 이상이 있어야 한다. … 또 지질학적으로 볼 때 퇴적층이 메소포타미아 지역만 몽게져 있다. 퇴적층은 수천년, 수만 년이 가야 형성되는데 지구 덩어리가 6천년밖에 안되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 이렇게 볼 때 지역적인 심판이지 전체 심판이 아니다. 이것은 과학자도 모른다. 또 5개국을 돌아다니며 물어 봐도 홍수 심판에 관한 근거가 없었다. 성경 해석하는 것이 눈먼 봉사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죽어. 지구 덩어리에 있는 과학자들 다 오라고 그래. 내가 다 공부 가르쳐 줄 테니까. 세계적인 과학자, 박사, 회장들도 와서 공부하라고 그래."
창 7:11에 언급되어 있는 '큰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 위에 존재했던 물이 터졌다. 이 샘들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흘렀던 4개의 강(창2:10)들의 물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깊음의 샘들이 노아 홍수 시 150일간의 물 공급의 중요한 근원이었다면 이 샘들은 광대한 양의 물을 함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창일했던 물은 창8:1 "바람이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에 의하면 수면 위의 큰 바람은 증발을 일으켜 물이 감했다. 또한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시작된 급격한 온도 강하는 극지에 방대한 규모의 빙하를 형성시켜 물의 감소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퇴적층을 관찰해 보면 대홍수가 있은 이후 전세계에 걸쳐 조산운동이 있었음을 지질학적 증거로서 알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토 정상에서 물고기 뼈와 대합조개 등의 화석이 발견되는데, 이는 에베레스토 산이 홍수 이전에는 바다로 덮여 있다가 그 후 융기했다는 성경말씀을 증거한다(시104:6-9). 다음은 노아의 홍수가 세계적 홍수였음을 증명하는 몇가지 사실을 간추려 본 것이다.
1) 홍수의 기간과 물의 깊이 : 성경에 의하면 대홍수로 인해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으며, 홍수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
2) 방주의 규모와 그 필요성 : 방주의 규모는 한 지역에 분포된 동물만을 싣기에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만일 지역적 홍수였다면 동물들은 고산지대로 피하든지 이웃지역으로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40,000㎥의 용량을 가진 방주를 축조한 이유가 단순히 여덟 명의 사람과 몇 마리의 짐승을 태워 '지역적 홍수'를 피할 목적에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3) 지질학적 증거 : 지구 표면 중 75% 이상이 물 속에서 침전 작용에 의해 생긴 것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화석이 발견된다. 특히 모든 주요 산맥들에서 바다 생물 화석이 발견된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라는 표현은 '지역적 홍수'개념과는 모순되는 광대한 지질학적 대혼란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특히 이 혼란이 5개월간 계속되었음을 뜻한다.
4) 세계적인 홍수 전설 : 모든 고대 문명의 역사에서 홍수에 대한 전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니느웨에서 발견된 바벨론의 길가메수 서사시 석판이나 미숙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인디언의 석판 그림 등은 노아의 홍수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세계에 걸쳐 이런 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5) 인구통계학 : 홍수 이후 8식구로 시작된 세계 인구는 통계학의 눈으로 볼 때 오늘날의 인구와 잘 들어맞는다. 만일 인구의 연간 증가율이 0.5%만 되어도 현재 세계 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4,000년이면 충분하다. 이는 세계 인구 증가율의 1/4에 불과하다.
6) 예수와 사도들의 증언 : 베도로(벧후2:5, 3:6)와 바울(히11:7)은 물론, 예수께서도 대홍수가 온 인류를 멸망시켰다고 증언했다. 예수께서는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눅17:27)라고 말씀하셨다.
7) 40일간 내린 비에 의한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갔을텐데 성경은 방주가 북쪽에 있는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 이를 위해서는 해저가 솟아오르거나 대륙이 가라앉는 지각변동이 일어나야만 한다. 즉,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현상은 홍수가 전세계적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외에도 세계적인 홍수임을 증명하는 기록들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 있다. 따라서 정명석의 논리에 있는 퇴적층, 지구나이, 물의 양 등은 과학적 무지를 자랑하는 꼴이 되었다.
이단의 개념(요12:22)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단의 개념도 모르고 이단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단의 개념은 시대, 역사, 장소에 따라 틀리며 과거의 이단이 현재에 정통이 되기도 하고 미래에는 다시 이단이 될 수도 있으므로 누가 더 주님과 가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함부로 이단이란 판단을 하지 말라. '그 시대에 보냄 받는 자를 안 믿으면 이단이 되고 죄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를 영접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이단이 된다. …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대로 올 줄 알고 있다. 하나님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형제 가운데 보내 준 예수님을 몰라보고 이단시하다가 결국은 죽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를 믿고 있으므로 예수님이 그대로 오실 줄로 알고 있다. 옛날 유대인과 똑 같은 인식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시 오시지 않는다. 예수께서 보낸 자가 다시 온다. 예수님이 그(정명석)의 몸에 오셔서 보낸 자(정명석)를 통해 재림 예수의 일을 하신다."
Ⅱ장 '이단에 대한 기본적 이해'에서 보았듯이 정명석 집단은 모든 면에서 이단적이다. 정명석 집단은 통일교의 주장과 같이 유대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단이었고 카톨릭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개신교가 이단이었으나 그리스도나 개신교가 이단이 아닌 것처럼 오늘날 카톨릭이나 개신교에서 볼 때는 정명석이 이단일지 모르나 결국 이단이 아닌 때가 온다는 묘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정명석 집단은 성경의 근본교리에 있어서 명백하게 이단이므로 시간이 흘러도 이단일 수밖에 없다. 정명석이 구세주라는 주장은 성경에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발견할 수 없는 주장이다. 따라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단으로 정죄받을 수밖에 없다
예정론
하나님의 예정을 '절대예정'과 '상대예정'으로 나누고 있는데 절대예정은 칼빈의 주장을 말하고 상대예정은 인간의 믿음이나 하나님과의 계약이행을 요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1) 전역사(1954-1978) : 문선명의 재림주로서의 공생애 기간. 2) 후역사(1978. 6) → 정명석의 공생애 시작, 1999년 → 말씀선포, 1999-2023년 → 인봉. 3) 영적전쟁(아마겟돈 전쟁) 기독교와 통일교, 기독교와 정명석.
예정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정명석 자신이 메시아임을 예언의 성취로 내세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정명석과 심판의 날짜에 대한 예언은 없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5-36)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1:7)
⑶ 중급
중심인물론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중심인물을 선택하심에 있어서 먼저 지구를 선택하시고 다음 한 민족을 선택한 다음, 다시 한 가문을 또 한가정을 선택하신 다음 그 가정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하도록 하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에 당신의 종을 세우시고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그러나 이러한 구속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철저히 성경에 기초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오직 성경에만 기록하셨고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명석의 중심인물론은 자신을 메시아로 주장하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다. 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심인물이라면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 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경륜과 오히려 대적적 행위를 하고 있다. 적그리스도적 행위를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중심인물로 세우시겠는가? 그는 중심인물이기는 하지만 사단이 세운 인물인 것이다. 사단의 대리자적 행위를 한 뱀을 천사라고 했으니까?
부활론
"아담과 하와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과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구약시대는 종으로 부활되는 역사였다. 예수께서는 종을 아들로 부활시키려고 오셨던 것이며 또 영적 죽음의 상태를 회복시키려고 오셨다. 예수께서는 육은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셨다(벧전3:18). 재림주가 오셨을 때의 죽은 자들의 부활도 육이 아닌 영적 부활이다. 입신할 때 살아서 믿는 자의 부활을 중생부활이라 하고 옛날의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재림부활이라 한다."
예수께서는 영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예수께서는 모든 죽은 자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고 선악간에 심판하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이 영육의 부활임을 나타내기 위해 제자들 앞에서 떡과 생선을 잡수셨다(요21:13). 도마에게는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하셨다. 이 사건들은 예수의 부활이 영만의 부활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셨다. 이 두 사건은 죽은 자의 부활을 보여주는데 분명히 육체가 살아난 사건이었다. 육이 죽어 있는데 동생들과 부모가 그렇게 좋아했을리 있겠는가.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우리의 원수인 죽음에 대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바울을 만날 수 있다. 본문에 나오는 사망은 육적인 죽음이다. 우리에게 슬픔을 안겨다 주는 이 육적인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승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예수께서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의 영을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살리신다. 이것이 영혼의 구원이다. 이제 예수께서 오시면 우리는 변화산에서 변형되신 예수의 모습처럼 찬란하게 변화될 것이다.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여기서 '썩지 아니할 것'이란 죽으면 썩게 되는 육체를 의미한다.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석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석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나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15:52-57)
사탄론
직접 주관 → 욥, 간접 주관(자체 주관) → 노이로제, 자신의 생각
가인의 성격
"가인의 성격이 악했었으므로 교만, 시기, 질투 증은 가인의 성격과 같은 것이다."
영계론
"영계는 지상 영계, 천상 영계, 선영계로 이루어져 있다. 1) 지상 영계는 선영계(구약, 이방의 양심 구원자들이 가는 곳)와 음부(구약, 이방의 심판 받은 자들이 가는 곳)로 2) 천상 영계는 낙원(그리스도:초림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른 성도들이 들어가는 곳), 무저갱(예수를 믿고 배신 타락한 영이 가는 곳), 천국(재림 섭리의 구원자들이 가는 곳), 지옥과 불바다(재림섭리의 심판자들이 가는 곳)로 되어 있다. 3) 선영계는 이방의 양심 구원자들과 함께 타 종교를 믿었거나 선행을 한 사람이 가는데 석가모니도 자신이 뿌려놓은 씨 때문에 낙원에 갈 자격은 있으나 선영계에 오는 불교인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선영계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영계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 영들을 찍어보면 구름 같이 형태가 명확치 않은 영도 있고 또 형체만 있는 영이 있고 형체급 영은 완전히 만져지는 영이다. 부활 후의 예수의 영도 형체급 영이어서 만져 볼 수가 있었다. 죽을 때 몸이 쑤시고 아픈 것은 영이 몸에서 빠져 나가기 때문이며 오랜 금식기도 중에도 영은 먹고 있고 영계에도 시간과성장이 있다. 영계는 직접 가봐야 확신할 수 있으므로 애천교회 교인들은 많은 사람이 영계 견학이나 입신을 통해 영계를 직접보고 있다."
"성부, 성자, 성신은 각위로서 하나가 아니다. 삼위가 일체라면 하나님이 마리아의 뱃속에 들어갔다는 것인가? 말도 안된다. 이것은 아이 같은 생각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릴 때 마리아에게 많은 혼났다. 하나님이 여자에게 혼이 나고 돌아다녀서야 되겠는가? 문자 그대로 풀면 웃기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이다. 삼위일체인데 어찌해서 자가가 자기를 몰랐는가? 그것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성신님을 가르친 사람은 없다. 성부, 성자, 성신은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똑같다. 삼위일체는 몇초면 타다닥 되는데 2천년을 끌고 오다니 무겁지도 않은가? … 나같이 머리가 총총해야 한다. … "
"갈빗대를 분질러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갈빗대로 사람을 만든다. 유전자로 만든다. 뼈에는 칼슘과 인이 꽉 들어 있다. 정자는 칼슘과 인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이 중성인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 병신인가? 재미가 없어서 어떻게 살아. 상대성이 없으니 병신이다. 하나님을 중성으로 봤다. 그럼 중성님, 중성님 하지 왜 하나님 아버지라 그러는가? 중성이 아니다. 똑똑히 가르쳐 줄테니까 똑똑히 배워서 똑똑히 외쳐라."
"기독교에서 성령 받으라 그러는데, 왜 하나님 받으라 하지 삼위일체라면 똑 같은데 왜 성령받으라 그러는가? 앞뒤가 안맞고 어폐가 있다."
위에 나오는 영계에 대한 용어들은 원리강론에서 도용한 것이다. 영계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라. 기독교 진리가 굿하는 무당을 위한 종교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은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에서 벗어나, 석가가 낙원에 갈 자격이 있다거나 영계에서 예수를 믿으면 낙원에 갈 수 있다는 논리는 비성경적이다. 자유롭게 영계 견학을 할 수 있는 것은 강신술 등을 이용한 방법이지 이것은 메시아적 사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또한 삼위일체론은 기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지켜 온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다.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 역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어릴 때 어머니에게 혼이 났다는 말이나 예수께서 자신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정명석은 삼위일체론을 이해할 수 없어 성자 하나님이 어떻게 어머니 배속에 들어갈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가 탄생되는 것은 성경의 예언이다. 정명석 자신이 예수의 성육신의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이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갈빗대는 정자가 아니라 갈빗대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 의해 지배되지도 남자를 지배하지도 않는 동역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 성령 하나님의 주사역이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성령의 사역은 삼위 하나님의 결정에 의한 것이며 성령을 받으라는 말에 어떤 어폐도 있을 수 없다.
계시론(마11:27 암3:7)
특별계시 : 음성, 말씀, 성경, 자연계시 : 만물계시(롬1:20), 실체계시(요4:6-12), 초자연계시 : 꿈, 환상, 비몽사몽, 이상(기독교계에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눔)
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을 떠나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달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오도(誤導)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광란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중략)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무슨 유익이나 만족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성경에 유의해야만 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중략)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두고 다른 교리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영이 있다고 하면 이는 마땅히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의심을 받아야 한다(갈1:6-9). 그것은 어떻게 해서 그런가?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고후11:14)하기 때문이다. (중략) 성령은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 가장 분명하게 우리에게 지시되었다."고 말했다. 계시가 성령의 조명에 의해 나타난 것이라면 모두 성경에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정명석이 받고 있는 계시는 성경과 일치를 보이지 않으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가르쳐 주는' 성령의 주사역에 정면 위배된다. 성령의 사역은 오직 성경에 의해 인정되는 것이다.
메시아 자격론
"하나님과 심정일체된 자, 죄의 문제 해결을 주는 자, 진리를 아는 자, 창조 목적을 가르치고 이루는 자 등 메시아 자격 요건을 30가지로 규정해 놓았다."
피조물이며 죄인인 인간이 '메시아 사역'이면 몰라도 '메시아 자격'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분의 주권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명석이 규정하는 메시아 자격론을 보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임의로 선정한 것이다. 자신이 메시아임을 나타내기 위해 비성경적인 논리를 편 것이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이신가?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수맥과 같이 줄기차게 흐르는 메시아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 메시아가 와서 그 백성들을 모든 불행에서 구원해 주시고, 사랑과 평화로 다스려 주신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는 예수의 물음에 '주는 그 그리스도'(You are the Christ)라고 했다. '그 그리스도'는 바로 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임을 말한다. 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이어야 한다(창3:15;마1:23;사7:14).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다(창12:2,3;22:18;눅1:32,33;삼하7:16). 이 약속대로 예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아브라함의 후손 유대인에게서 나셨으며, 다윗의 자손 요셉의 아들로 나셨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처음에 이사야 61:1-4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감당할 메시아 사역이 무엇인가를 밝히셨다(눅4:18-19). 예수께서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의 포로가 되고, 마귀의 권세 아래 눌리고 고통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 온 천하 만민을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시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 예수께서 오실 당시 민중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며,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행1:6).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는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야 죄와 사망의 고통에 사로잡힌 인생들을 근본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를 위하여 이땅에 오신 것이다(요12:27). 결국 이 땅에 성육신하셨다가 대속의 죽음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그리스도이시다.
지상천국론(계20:4)
"또 그때는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면서 올라간다고 하고 있으나 그건 성약의 복음이 동방에서 서방으로 가는 것이고 또 144,000명이 휴거되어서 올라가고 나머지는 불심판해서 죽는다고 하는데, 이건 재림주를 따르는 무리를 말한 것이다. 앞에서 들림과 구름의 개념, 땅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재림주가 오시면 구름같이 깨끗한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 이상적인 세계에서 주를 영접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는 성약시대,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을 말하는 것이다(지상천국)."
정명석은 성경에서 땅은 영원하다고 하였으므로 결국 새 하늘과 해 땅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거기서 지상천국을 이루어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약의 복음이란 있을 수 없다. 성경에 나타나는 복음은 완성된 것이며, 성경 외의 또다른 복음은 없다.
⑷ 고급
엘리야과 예수님의 재림승천 실상 비교
"엘리야 → 승천 → 재림 = 세례요한에게 영이 강림, 예수님 → 승천 → 재림 = JMS에게 영이 내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 예수님의 영 강림의 날"
예수께서는 엘리야가 왔으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다(막9:13)고 하심으로 세례요한이 말라기서(말4:5)에 기록된 엘리야임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엘리야가 세례요한으로 재림한 것은 아니다. 엘리야의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따라서 엘리야가 재림하여 세례요한이 되고 예수님이 재림하여 정명석 자신이 재림예수가 되었다는 논리는 잘못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승천하신 그 '모습' 그대로 오신다(행1:11).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관계사명
"세례요한은 주의길을 예비하러 왔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닌데 세례요한이 의심과 시기로 인해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므로 예수님이 속히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또 영 육 중 영만 구하고 돌아가셨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려는 자는 오라했고 예수께서는 회개한 자는 오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과연 세례요한의 모함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인가? 복음서를 보면 세례요한은 공공연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외쳤다.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36) 구약의 희생제물은 황소나 염소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셨다. 구약의 제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once and for all)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히9:28) 사도 베드로는 말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 2:24)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의 죄와 자신을 동일시 하셨던 것이다. 그는 우리의 속성을 입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죄악까지도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으심은 성경에 예언된 것이며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영과 육 모두 구원하시는 진정한 구원자이시다. 세례요한의 모함에 의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세례요한이 말한 그 메시아, 어린양은 20세기가 아닌 20세기 전에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는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즉 세상죄를 없이하는 어린양이었다. 죄를 없이하려면 죄가 없는 흠없고 점없은 어린양이어야 한다. 제사에 사용되는 어린양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붉은 대 속의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해야 한다. 예수, 그는 바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죽은 메시아, 시험은 받으시되 죄는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인 것이다. 정명석은 자신의 부모가 죄없었다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죄있는 자의 후손, 죄를 가진 자이다. 죄를 가진 자로서 만인의 죄를 없이할 자격이 있는가? 죄를 가진 인간으로서 메시아의 자격을 규정할 수 있는가? 과연 성경 어느 부분에서 명확하게 자신을 재림주라고 명하고 있는가? 그가 메시아라면 적어도 자신을 높일 것이 아니라 말죽통에서 태어나 새파란 젊음을 기꺼이 던진 나사렛의 예수처럼, 그와 같은 희생을 할 수 있노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 죽을 수 없는 자에게 내가 왜 내 인생을 던지겠는가? 그가 메시아라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 비교
"초림 예수와 재림예수가 구름타고 오시리라는 것과 종말에는 불심판이 있을 것과 부활 때는 육신으로 부활한다는 생각과 믿음이 유대교와 기독교가 같으므로 기독교는 현대의 유대교라 할 수 있다."
23 단계에서 정명석은 자신이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합리화한다. 정명석은 유대교를 이단으로 보고 있다. 이 유대교와 교리가 같으면 기독교도 이단이며, 기독교는 이단이므로 정명석 집단을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동일하게 신약성경에도 나타남을 믿고 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이 그 모체이며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에 의해서 완성되어졌으므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현대의 유대교가 아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냐에 따라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유대교는 유대인들만의 종교였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유대민족과 국경을 넘어 모든 족속의 하나님으로 믿는 종교이다.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계11)
"아담-하와, 이스말엘-이삭, 에서-야곱, 11형제-요셉, 루터-칼빈, 성부-성신, 전역사인물-후역사인물, 시대의 사명자들이 두 사람씩 나타난다."
이 단계도 정명석 자신이 메시아라는 대전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운 논리이다. 시대의 사명자들이 2명씩 나탄다는 논리를 통해 자신이 시대의 사명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모든 역사에 두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역사를 오용해서는 안된다.
한 때 두 때 반 때
668+1260 = 1948(이스라엘 해방, 즉 제 1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해방), 668+1290 = 1978년(제 2 이스라엘 민족(현 기독교인)의 영적해방, 영적지도자 바뀜), 668+1335=2023(정명석의공생애 기간이 끝나는 1999)
위의 산출 근거는 단12:7, 25 계12:14와 단12:9-13(멸망케 할 미운 물건, 1290일, 1335일) 겔4:5(1일 이일년), 계11:2, 13:5(42달), 계11:3, 12:6(1260일) 등의 숫자를 인용했고 668이란 숫자는 '멸망케 할 미운 물건' = AD668년에 회교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졌다는 것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통일교가 세워진 1948년과 정명석이 문선명으로부터 재림주권을 이어받았다는 1978년을 성서적으로 합리화시켜 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논리는 이장림의 '다미선교회'사건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은 시와 때에 대해 임의 추정하는 것이므로 잘못되었다.
창조목적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최대의 법이었다. 이것을 풀지 못하면 성경을 풀 수가 없다. … 금단의 열매는 하와인데 여자가 선악과이다. 남자의 중앙은 생명나무이며 여자의 중앙은 선악과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6천년 동안 가지고 계시다가 지금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동산 주변의 나무실과는 먹을 수 있으니 동산 중앙의 나무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갈빗대 하나로 인간을 만들 수 없다. 남자가 번식하는 것이 갈빗대를 부르뜨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갈빗대는 정자를 말하는 것이다. 왜 갈빗대로 표현했는가? 이는 정자는 뼈를 만드는 사명을 하므로 갈빗대로 표현했다. 난자는 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선생님(정명석)께 가르쳐 준 것이다. 인간의 핵은 정자와 난자다."
"흙으로 인간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아담과 하와의 부모가 따로 있다. 어머니 유전자와 아버지 유전자가 부딪힐 때 한 존재의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한 유전자만 가지고는 사람이 안된다.… 하나님은 두가지 성품을 갖고 계시다. 육신이 태어나듯이 하나님도 그 상대자와의 생명의 파장으로 생명이 시작된다.
"부부 일체를 만들어서 개인천국, 가정천국, 민족천국, 세계천국을 똑같이 하나가 되게하여 지상천국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창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을 통해 잘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다. 이들이 첫 인간이다. 죄없이 온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했을 때, 첫째 아담은 죄가 없으며 그가 죄없이 창조된 첫 인간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정명석은 성경을 인용한다고 하지만 흙으로된 인간의 존재를 자신의 논리에 맞지 않아 부인하는 등의행위를 한다. 실제로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다. 또한 갈빗대가 정자라는 말이나 동산 중앙의 실과를 여자의 성기로 보는 것은 삼류만화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다.
타락론
"선악과는 하와이다. 나무열매는 번식을 의미한다. 이는 곧 하와의 생식기이다. 먼저 사단의 상징인 뱀이 하와를 범함으로 사단의 피를 전했고(영적타락 : 하와와 천사-뱀-와의 불륜의 타락을 말함) 하와는 아담과 성행위를 함으로써(육적타락 : 하와가 타락후 아담과 부부관계를 맺음으로) 사단의 피를 전했다. 그리하여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시키지 못하고 사단의 악의 혈통을 번식시켰다. 인간의 더러운 피를 깨끗이 하는 데는 피가름이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영혼만 구원 하셨기에 육신을 구원할 재림주가 다시 오신다."
"뱀을 기독교에서는 사탄이라고 풀고 있다. 만약 뱀이 인간을 꼬였다면 오늘날 뱀을 잡는 땅꾼들을 하나님께서 상주셔야 한다. 그들은 천당에 가야 할 것이다. 창조 목적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동물은 사람을 꼬일 수 없다. 천사들은 자기를 사랑하던 하나님이 그의 자녀인 인간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질투하고 시기하였고 또 하와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 사랑의 욕정을 참지 못하고 하와의 선악과를 범하여 타락하게 했던 것이다."
창세기 3장에 나타난 아담의 타락 이야기는 죄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것은 배신이었다. 모든 것이 풍부한 곳에서, 아담은 감사보다 불신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순종이 타락의 시초였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다. 바울도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가르친다(롬5:19). 아담은 아내와의 불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인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배반한 것이다. 또한 통일교에서는 문선명이 깨끗한 피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혼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저들에게는 구원에로 입문하는 의식인 것이다. 정명석은 통일교의 타락론과 구원론을 받아들였지만 아직 은밀히 자신이 재림주라고 말하여 드러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위의 이 논리대로라면 자신이 피가름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는 이 집단이 매우 음란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성경은 뱀이 천사이며 하와와 불륜의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뱀은 마귀를 상징한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9)." 또한 천사들이 질투하는 등의 이야기는 고대신화와 같은 우스운 내용이며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구원론
"일반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천국가고 안믿으면 천국가고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관이고 인식관이다. 이런 식으로 안다면 내가하나님은 나쁜 하나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도 타락한 경로와 어떻게 타락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구원을 시킬 수 있는지? 안다고는 하나 아는 사람은 기독교인 중에는 없다. 예수께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 일반적으로 옥을 음부라 한다. 그곳은 중간 영계다. 영들끼리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영적 구원을 다 이루려고 오셨는데, 세례요한의 잘못과 유대종교인들의 잘못으로 영적인 구원이라도 시켜야 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육이 곤고함을 말했다. 또 예수님이 결혼을 하지 않고 육신으로 번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의 자식을 번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육적 구원을 하려고 오신다. 영계에도 육과 같이 메시아를 기다린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를 믿는 데 있다. 요3:16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엘리야적 사역을 잘 감당하였고 예수께서도 그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자라고 칭찬하셨다. 세례요한의 말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셨다. 이 십자가 사랑을 믿으면 누구다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믿지 않고 죽은 자도 영계에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정명석 자신이 지어낸 얘기일뿐이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것과 선의 자식을 낳은 문제가 예수의 메시아적 사역의 완성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수께서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는 성경적 근거가 어디에 있으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말인가? 세례요한은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고 했지 보통 '양'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재림론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공중으로부터 육신으로 구름타고 오신다고 믿고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엘리야의 영이 세례요한에게 재림하고 모세의 영이 예수님에게 재림하듯 재림주는 부활승천하셨던 예수님이 육신으로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인 가운데서 시대적 중심인물을 선택하여 그에게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하여 협조하므로 재림 예수의 사명을 하게 하신다."
이제까지 정명석의 논리가 결론을 맺는 것 같다. 시대의 중심인물인 자신이 재림주임을 비성경적 논리로 주장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 때 천사 둘이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가지고 재림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신자들에게 상을 주시기 위해 속히 오리라고 하셨다(계22:12).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다(계22:13).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 분,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 분, 바로 그 분이 마지막날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 나타난 내용 외에 덧붙일 필요가 없다. 다시 오실 그 분 예수를 기다릴뿐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돋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슴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Ⅳ장 참조)
역사 (A,B,C)
화(계8:13) |
화 |
화 |
사생애 |
공생애 |
부활생애 |
(소생기) |
(장성기) |
(완성기) |
이제 마지막 단계에서 정명석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사역을 말한다. 우리는 29단계까지의 내용을 보면서 정명석은 한국에서 태어나 사단의 괴수 노릇을 하는 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마지막 30단계에서 그를 메시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공생애를 살았다면, 이단집단의 우두머리의 공생이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부활할 수 없다. 정명석이 마지막날 부활한다면 그것은 불과 유황불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일뿐이다. 여기서 여인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통해 정명석의 공생애와 예수님의 공생애와 비교하려고 한다. 87년 6월호 영레이디에 폭로된 한 역대생의 체험수기에는 교주 정명석이 처녀들을 농간한 일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피해자가 '하나님의 사명자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자 정명석은 자신이 이 시대의 재림주이므로 아무 것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애천교회에 다니다가 탈퇴하면 못살고, 형벌을 받게 되고, 교통사고가 나서 병신이 된다고 공갈협박을 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여자에게 참빛이 되시며, 인생의 목마름을 채우다가 5번의 이혼경력을 갖고 동거하고 있던 여인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신 예수님의 인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Ⅳ. 정명석 교리에 대한 올바른 대응 : 정통기독교적 교리에 의해
Ⅰ-Ⅲ장에서 정명석 집단의 이단성과 교리, 그리고 30개론에 대한 분석을 했다. 이제 본 장에서는 이러한 이단 집단에 올바로 대응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정통기독교의 교리를 주제별로 연구하였다.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정통기독교에 대한 바른 인식이야 말로 날로 성행해가는 이단집단을 분명하게 분별하고 올바로 대처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1. 올바른 성경관에 의한 대응
⑴ 오직 성경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캐논(Cannon:正經)이라고 지칭하며 신구약성경 66권을 들고 있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 속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성서는 신약성서 속에 나타난다'는 말처럼 구약과 신약은 서로 연결되며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서 씌여졌다.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대원칙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오직 성경'을 의미한다. 성경에 근거한 인간의 구원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은혜뿐(Sola Gratia)이다. 이 '뿐'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⑵ 올바른 성경해석
그런데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성경이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이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성령께서 조명하시는 말씀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겸손함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경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겸손하게 귀기울여야 한다. 또한 시대성과 역사성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결코 역사책이 아니다. 성경은 신앙의 기록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정명석의 주장처럼 역사속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교리에 얽매여 획일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또한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므로 그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메시지에 집중하여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경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교리에 얽매여 과학성없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해서도 안된다. 이처럼 성경은 정명석 집단의 교리적 잣대로 판단되어질 수 없으며, 교리를 미리 설정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시녀가 되어서도 안된다. 성경은 성경으로서의 독자적인 권위와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⑶ 신약저자들의 성경해석
신약의 저자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구원의 새시대를 여셨다는 구원사적 계시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구약 인용은 '문자적' 성취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로서 구약을 인용했다(고전15:3-4). 그들은 독자에게 믿지 못할 것을 믿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확실한 증거(행1:3)를 제시하며 복음의 진정성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정명석 집단과 같이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기심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오석(誤釋)해서는 안된다. 겸손하고 신실한 말씀의 종이라면 역사적 정통 기독교가 고수해온 '성경의 영감(권위)'에 기초해서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을 고려해야 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성과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오직 유일한 절대권위인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겸허하게 자신을 비워야 한다. 날마다 성령 안에서 겸허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과 섬김의 능력을 지닌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셨고 성령께서 조명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이지 '미완성의 복음'은 아닌 것이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저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
2. 올바른 메시아관에 의한 대응
⑴ 참 하나님,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 우리를 위하여 성육신하셨기 때문에 인성으로는 우리와 동질(同質)지만 신성(神性)으로는 성부(聖父) 하나님과 동질이다. 성자는 성부와 동질이므로 그의 선재성(先在性), 전지전능, 영원성, 거룩하심, 사랑하심, 의로우심, 진실하심에 있어서는 성부하나님과 같으며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역할을 갖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완전한 인간이 되시어 하나님의 계획을 인류에게 전하셨으므로 예언자적 역할을 하셨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우리 인류의 죄를 속량하셨으므로 대제사장적 역할을 하셨다. 장차 다시 오셔서 사탄을 멸망히키고 죄인을 심판하며 모든 권세를 발아래 두시므로 만왕의 왕의 역할을 갖고 계신다. 기독교의 이단은 대부분 삼위일체론과 거기에 따르는 메시아관에서 벗어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정명석 역시 마찬가지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요일1:1)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5-16)
⑵ 예언의 성취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24:44) 예수께서는 히브리 성경의 세 부분이 모두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으며 그들의 죄를 처리하기 위해 제자제도와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직을 마련해 주셨다. 이것은 죄는 희생제사와 중재하는 제사장 직분 없이는 사해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 중 이사야는 남은 자인 '여호와의 종'에 대해 예언했는데, 그 종은 순종하여 백성의 죄를 지고 죽는 자이다. 성문서에서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다니엘서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을 위해 나라를 얻는 '인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단7장). 이처럼 구약은 구속, 희생제사, 제사장 직분, 구원, 새언약, 다윗의 아들, 메시아, 고난받는 종, 인자에 대한 것이다. 이들 중 어떤 것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언급했을 수도 있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부분적으로 성취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위대한 일이 예언되어 있었다. 구약은 이미 '복음의 씨앗'을 그 내부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씨앗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구속사이다.
베드로전서 2장과 이사야 53장을 통해 본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베드로전서 2 장 |
이사야 53장 |
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
53: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
53: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
53:12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2:24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53: 6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
53: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
⑶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사역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다. 성경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신 일들을 선포한다. '죄로부터의 구원' 이것은 죄로 인해 막힌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담이 허물어진 것을 의미한다. 죄로 인해 생긴 막히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을 한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서. 사도바울은 예수의 일을 '화목하게 하는 직책'으로, 그의 복음을 '화목하게 하는 말씀'으로 묘사했다(고후5:18-19). 또한 그는 이 본문에서 이 화목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화목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화목의 실행자는 그리스도시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고후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19)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원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 가운데 있던 것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19-20)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인자의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1:15)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요일4:14)
⑷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JMS나 통일교 문선명의 주장대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역에 있어서 실패의 상징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메시아 사역을 알았으며 완성했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철저히 버림받음으로 말이다. 성경이 주는 메시지에 겸손하게 귀기울일 때 고난과 죽음의 예수를 만날 수 있다. 만일 구약성경의 제사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가시적으로 예시한 것이라면, 예언자들과 시편 기자들도 역시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했다. 우리는 시편 여러 부분에서 부당하게 핍박받는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후에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스가랴서에는 매를 맞는 목자가 나온다. 그 목자의 양떼는 흩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찾아볼 수 있다(슥13:7, 비교 막14:27). 다니엘서에 나오는 '왕'과 '끊어져 없어질',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통해서도 이를 볼 수 있다(단9:25-26). 무엇보다도 이사야서 후반부에서 우리는 메시아가 누구인가를 심정적으로 만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고난당하는 종으로 멸시를 받는다. 그는 사람들의 모든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위해 찔리고 다른 사람의 죄악을 위해 상하며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끌려간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지는 자로 묘사된다(사53). 그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 그의 죽으심은 예언의 성취였던 것이다.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기록되었으니"(눅24:46-47).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셨을 때 자신의 운명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는 성경이 자기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는 것과 사람들의 기대가 자기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어 있음을 아셨다. 그의 사역의 전환점인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직후, 주님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막8:31)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는 "해야 한다(must)"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십자가에서 가장 처절한 고난을 받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죽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대신한 메시아에 대한 벌이요, 인간을 위한 해방이었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예수의 십자가가 '실패'와 '미완성'의 상징인가?
성경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찬양한다.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히 9:26)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 여기서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양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어린양'에게 모든 찬양과 영광의 단어를 사용하여 높이고 있다. 실패의 십자가를 진 자에게 이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인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 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은 것이다.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transfiguration)되는 것이다. 어떠한 죄나 간사함도 없는 예수께서 모욕을 당할 때, 그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의 손에 맡기셨다. 그래서 기독인들은 이 예수의 '십자가'를 신앙의 푯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⑸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메시아 사역
십자가의 죽으심은 구원의 완성이었다. "다 이루었다"(요19:30) 예수께서는 자신이 성취하려고 했던 구원을 달성했던 것이다. 세상의 죄는 십자가에서 담당되었다. 이제 이 구주를 믿고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은 성전의 휘장을 찢어진 사건을 통해 증거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과 인간의 벽을 상징하는 휘장이 필요없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천국 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양으로서 우리를 위한 희생이 되신 것이다(고후5:7). 만일 정명석의 말대로 예수가 세례요한의 모함에 의해 죽었다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하나님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정명석을 통해 이루어 주소서"
3. 올바른 역사관에 의한 대응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므로 우리가 현재를 바로 알기 위하여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듣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신념들은 하루아침에 생성된 것이 아니다. 2천년 동안의 긴 역사 속에서 생성된 것이며 성경에 의해 검증된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사상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약점과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만날 수 있다. 역사의식에 있어서 한 부류는 거울을 보듯하며, 다른 부류는 창문을 보듯한다. 거울은 보는 사람은 찌그러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다. 그리고 역사에서 단지 일정한 기간과 인물들을 발췌하여 연구함으로 그들 자신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과거를 재창조한다. 정명석은 바로 이경우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창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창문을 통해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고 긴 역사 선상에서 차지하는 나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2천년동안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역사 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역사의 선에서 많은 이들이 그릇된 논리를 내세워 복음의 순수함을 흐리게 했다. 자아도취되어 이상한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시켜 나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창문을 통해 역사를 볼 때, 우리는 감히 정명석이 이 땅의 메시아임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메시아 예수께서는 2천년에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20세기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 것이다. 구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줄기차게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구체적으로 하셨다. 무한정한 미래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성취를 선포하였다. 그 성취는 이미 이루어졌다. 아직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충성을 다했던 사람들이 가졌던 미래는 헛된 것이란 말인가? 성취될 가능성이 없는 미래에 무슨 희망을 걸겠는가?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실패라면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이 실패했단 말인가? 그 하나님이 과연 사랑이시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결코 후회하심이 없는 분이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계획을 세웠는데, 세례요한 때문에 계획을 수정한다면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인가? 정명석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만 구원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 소수를 살리기 위해 이제까지 하나님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았던, 비교할 수도 없는 사람들을 못본척한 분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는 약속의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위에서 시작했다.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이 예수의 길을 걸어갔다. 기독교는 피의 역사요 피의 종교인 것이다.
4. 올바른 종말관에 의한 대응
⑴ 종말에 대한 예수의 당부와 예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날의 징조들을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 /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5)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11) /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23)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24)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25) /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26)"
이 말씀을 하신 예수께서는 그래도 불안해서 재차 다짐한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5-36)" 이러한 예수의 다짐 때문에 예수의 말을 진실로 믿었던 사도들은 종말이 곧 오기를 바라면서도 절대로 속단해서 종말론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재림에 대해 잘못 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아시고 경고하였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였다. 열렬히 그럴듯하게 자기들의 주장을 편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당부하셨다.
⑵ 잘못된 종말론의 역사와 정명석
기독교 역사를 보면 종말에 대한 지나친 속단을 내린 무리들이 많이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비정상적인 종말사상은 초대교회 때부터 나타난 몬타니시트(The Montanists)들이 대표적인 무리들이다. 1950년이후에 이후죽순처럼 등장한 한국의 이단 종파의 특색은 바로 이러한 극단적인 종말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임박한 종말을 강조한여 신도들의 신앙을 가열시킨다. 정명석은 1980년대의 종말론자이다. 정명석은 자신을 문선명 교주의 대권자로 부각시키면서 말세의 종말론적 의미를 삭제하고 새하늘과 새땅이 이 지상에 이루어지는 지상천국론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을 육체적 재림으로 인식하지 않고 영적 재림으로 믿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육신으로 재림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인 가운데서 인물을 선택하여 그에게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그 중심인물로 부상시켰다. 그는 정통기독교의 종말견해가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하는데서 오류 발생된다고 주장하면서 천동설 시대의 말세론을 버리고 지동설 시대의 말세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동설적인 말세관은 정교주를 중심한 지상천국론을 의미하는 것이다.
⑶ 사이비 종파와 정통파의 종말론 비교
이 둘의 공통점을 보면, 정통파의 종말론이나 사이비파의 종말론은 대동소이하게 열정적이다. 그리고 긴박성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둘 다 사회, 정치, 국가적인 불안정 속에서 잉태된 시대적 산물이다. 그리고 신앙의 구심적인 역할을 종말론에 두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즉 종말이 신앙의 최고의 목적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차이점은 이미 날짜, 장소 등에 대한 예언 여부에 있다. 그리고 특정인을 재림주로 삼는 여부에 차이가 있다. 또한 성경에 대한 영적인 해석으로 인한 많은 이질적인 종말론을 가져오고 있다. 지상천국론 주장 여부도 이들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극단적이고 환상적이고 계시적인 속단 때문에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정통기독교는 재림에 대한 동일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의 경고에 신뢰성을 보였던 사도들처럼 종말에 대한 환상적이고 계시적인 예언의 속단을 회피하였다. 그러나 사이비종파는 끊임없이 주관적인 속단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⑷ 종말에 대한 성경의 권위
이단은 개인적 신비체험을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에 두고 성경을 그 주관적 계시에 맞추어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격하시키거나 무시한다. 성경말씀에서 바른 종말관을 가지기 위해서는 겸손함으로 성령을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귀납, 연역, 유추 및 비교에 의한 논리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물론 성경과 성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독교 역사의 조류를 알아야 한다. 자기 개인의 해석만이 옳고 이제까지 2천년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성경계시보다 더 진전된 계시로 새 계시가 주어졌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오늘날에는 성경만을 유일하고도 필요충분한 계시로 인정하는 견해와, 성경계시만은 부족해서 계시가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정명석은 후자에 속한다. 성경은 이들에게 경고한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로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⑸ 올바른 말세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옳게 믿는 사람은 그가 오시는 날짜에 관심을 두거나 그날을 점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진실하게 전파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세상을 도피하게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더러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깨어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증인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7-8)고 말씀하셨다. 일을 맡기고 떠난 주인이 언제 돌아올 것인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거나 눈치를 살피는 종은 약은 일꾼이든지 문제가 있는 일꾼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천년 만년이나 살 것처럼 살아서도 안될뿐아니라 이 땅이 영구하게 있을 것처럼 살아서도 안된다.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왔다가 가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유일한 위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로 말미암아 얻는 영생하는 구원이다. 종말을 향하여 줄달음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위로요 희망이다. 그가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교회를 온전케 하신다. 새하늘과 새땅으로 새롭게 창조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기다린다. 기다리며 성실히 살려고 한다.
5. 기독교가 비과학적이라는데 대한 대응
현대인이 성경을 잘 못받아들이는 데는 두가지의 오해가 있는데 하나는 자연과학에 대한 오해요, 또 하나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이다. 성경이 핵심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들이 과학과 충돌을 일으킬 아무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명석처럼 근거도 없이 상징적인 해석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옛날 사람들을 교훈하실 때, 그들의 지식 수준에 맞춰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실 필요도 있었다. 훌륭한 교육은 피교육자의 수준에 맞춰서 피교육자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신학자 칼빈은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말을 더듬으신다'고 하였다. 즉 우리의 수준에 맞추어 낮추시기도 한다는 뜻이다. 구원의 길, 올바른 삶의 길을 가르치기 위하여 사용한 사실들이 과학적이냐 아니냐 하고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마치 '아침에 해가 뜬다' '저녁에 해가 진다'는 우리의 일상적인 표현이 비과학적이라고 시비를 거는 것과 비슷하다. 해가 뜨거나 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니 그 표현은 엄격하게 따지면 비과학적이지만, 그 표현은 과학적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삼지 않는다. 성경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표현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자체로 과학적 지식이 그 주된 관심사도 아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책이고 그런 목적에 관한 한 오류가 없는 것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 성경의 가르침이 모두 비과학적이요 사실과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 과학적이고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으나 후에 오히려 정확하다는 것이 밝혀진 것도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정명석은 '홍수는 지역적인 것이다', '태양아 멈추어아' 등의 단계에서, 성경본문에 나오는 사건들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이므로 상징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비과학적이므로 상징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고 했던 사건들은 과학적인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 부분들은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Ⅴ. 맺음말
이상에서 우리는 이단에 대해 살펴본 다음, 정명석의 이단성과 30개론에 대한 분석을 했다. 그리고 정통기독교 신앙에 의해 대응방안을 찾아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단집단에 대해 분명한 비판을 하고 그들에게 잡혀 있는 양들을 이끌어야 하겠다. 또한 우리가 포도원이라고 부르며 열심히 전도를 하듯 이단들도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들의 일을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신의 도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성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이라는 책에서 말했다. "이 두 도성은 최후 심판에서 서로 분리될 때까지 이 세상에서는 서로 섞여 있고 또 꼬여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면서 세상 사람과 어울려 살고 있다. 우리는 구원받은 신자인데도 이단들과 함께 캠퍼스를 밟고 있다. 이 세상, 이 캠퍼스는 바로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서로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최후 심판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세상에서 선인과 악인에 관계없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대한 자세의 차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도성의 영원함을 믿고 동시에 캠퍼스에 난립하는 이단들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보라보고 이 세력들을 이겨나가야 한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은 이미 성경이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을 바르게 분별하여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신앙관을 가져야 한다. 특히 성경에 기초한 신앙관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열심히 성경을 묵상하고 나의 것으로 영접해야 한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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