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간 고등어
넘실대던 깊고 푸른 바다에 시퍼렇게 물든 얼룩얼룩한 등살. 맑은 바닷물에서 살아서인지 뱃살은 티 없이 희었다. 두 겹 동그라미로 부릅뜬 눈. 입을 약간 벌리고 있는 걸 보면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뜻일까. 진공포장 비닐에 싸인 살집을 눌러보니 포동포동하였다. 태평양을 누비고 동해까지 펄떡펄떡 뛰어온 힘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리운 고향의 맛을 간직하고 싶어 고등어 두 손을 샀다.
벼르고 벼르다가 서둘러 고향에 간 것은 아들들이 곧 개학을 하기 때문이었다. 팔월도 벌써 하순에 접어드니 길가 들풀 익는 냄새를 앞세우고 가을이 가까이 왔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한낮을 보내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발길은 안동민속촌으로 향했다. 강변을 따라초가을 해처럼 붉게 핀 경쾌한 가로수 백일홍 꽃. 오가며 그늘 아래 쉬었던 법흥교 옆 길가 회화나무 자리엔 큰 그루터기만 남아있었다. 어릴 적 동화에서 읽었던 아흔 아홉 칸 집인 임청각 앞으로 예처럼 시원하게 낙동강이 흘렀다.
백여 년 전까지 김해 앞바다에서 안동으로 낙동강 칠 백리를 거슬러 소금배가 들어왔던 시절, 이곳은 배를 대는 포구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 시내로 진학한 후부터 나는 주말이면 이 길로 자전거 타고 시골집을 다녀왔었다. 강변길을 따라 있었던 옛 지명을 떠올려 보았다. 모래톱이 길어서 진(긴,長)모래, 길 좁은 강변 마을 돗질(돼지 길이란 뜻), 수 십 길 낭떠러지 고바우(코처럼 생긴 바위), 논골재(다락 논이 층층 있어서), 새고개(새도 쉬어간 재), 배나들(배가 나드는 곳) 등 지금은 호수 속에 묻혀서 갈 수 없는 정겨운 이름들. 다리가 없어 자전거를 메고 낙동강을 건너, 두어 시간 후면 시골집에 닿을 수 있었다. 손자가 반가운 할머님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 간 고등어구이를 마련해 두고 계셨다.
가을은 고등어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헛제사밥 전문식당에서 식사와 고등어자반구이를 시켰다. 노르스름하게 변한 얇고 희던 뱃살이 먹음직스러웠다. 고등어등껍질에는 열을 받아 반쯤 터진 봉긋봉긋한 기포가 돋아 있었다. 어릴 적 할아버님께서 내 밥에 고등어 흰 살을 놓아주시던 일이 생각났다. 장대한 풍모와 인자하신 미소에 앞가슴을 다 덮었던 우리 할아버님 수염. 가지런하게 잘 빗은 할아버님의 수염은 어릴 적 친구들에게 내 자랑거리였다. 그 수염처럼 풍성한 사랑을 고등어 살에 담아 주셨으리라. 젓가락으로 살을 갈라 아들 녀석들 밥에 올려놓아주었다.
안동지방에는 유난히 고등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고등어가 많이 잡히는 강구항이 속한 이웃 고을 영덕 부자가 허구한 날 고등어껍질로 쌈을 싸먹다가 살림살이가 망했다는데, 그만큼 껍질이 맛있다는 말도 되고 맛있는 것만 쫓아 먹으며 살림이 거덜 난다는 뜻도 될 것이다. 또 “구운 고등어대가리 눈 위로 아홉 번 베어 먹으면 부자 된다”는 속담도 있다. 쳐다보기만 하라는 자린고비에 비하면, 고등어의 입부터 눈까지의 그 좁은 부위를 쪼개서 먹으라는 것이니 인심을 더 베푼 것일까? 또한 옛날에 새 며느리가 부엌에서 고등어 대가리를 굽다가, 자글자글 기름이 돌며 짭조름하게 익어가는 눈깔 한 개를 몰래 빼먹고는 친정으로 쫓겨 갔다고 한다. 고등어대가리 굽는 냄새 또한 어두일미였을 것이다. 어른 허락 없이 함부로 반찬에 손대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내륙인 안동에 간 고등어가 생산되는 데는 지리적 역사적 배경이 있다. 강구항 등에서 잡히는 풍부한 동해 해산물은 소비지가 마땅찮았다. 가까운 소비지로 백두대간 꼬리인 황장재를 넘으면 관찰사급 대도호부가 있었던 안동에 닿을 수 있었다. 강구항에서 고등어를 등에 지거나 달구지에 싣고 왔었다. 하루쯤 지나 고등어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배를 갈라 가장 먼저 상하는 내장을 버렸다. 하루쯤 더 지나니 살코기도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 제서야 부랴부랴 소금이라도 쳐서 본전이라도 찾으려는 장사치들의 다급한 심정이 노상에서 소금 간을 하게 되었다.
고등어 소금 간을 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는 고등어를 잡자마자 배에서 하는 것을 제자리간이라 한다. 둘째로 포구에 도착하여 간을 하는 방법이 있다. 소비지역까지 운반 하여 나중에 한 번 더 간을 하는 덧간이 셋째 방법이다. 이 중 안동 간 고등어는 두 번째에 세 번째를 더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생선은 본래 상하기 직전에 나오는 효소가 맛을 더 좋게 한다. 이렇게 염장을 하면 고등어가 부패할 때 생기는 효소와 묘한 조화를 이루어 그 맛이 향상된다. 고등어를 잡은 후 이틀 정도 운반하면 상할랑 말랑 하는 상태가 되는데, 이 때 왕소금 간을 하면 가장 맛있는 간 고등어가 된다.
이런 오랜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다 보니, 지금도 안동시내 큰 시장에 가면 간잽이라는 직업이 있다. 겉으로는 단순히 매우 빠르게 고등어에 소금을 대충 흩뿌리는 것처럼 볼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고등어를 손에 잡자마자 무게에 따른 정확한 소금의 량으로 간을 한다. 오랜 경험이다 보니 다른 지역 사람들은 따라 배울 수도 없어 억대연봉이다. 안동 간 고등어의 맛의 비결에 간잽이의 오랜 경험도 한 몫 하는 것이다. 생선 뱃속에 간을 한 고등어를 또한 간잽이 고등어라고도 한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고등어는 단백질, 지방, 칼슘, 인, 나트륨, 칼륨과 비타민도 A, B, D가 모두 풍부하다. 구하기도 쉽고 요리도 쉬운 편이다. 고등어에 함유된 EPA와 DHA 성분은 고혈압, 당뇨병,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HA는 특히 성장기 아동의 뇌 발달에 아주 중요한 성분이다. 그 옛날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가 아시아나 유럽으로 퍼져나갈 때 주로 해안으로 이동했다는데, 그 과정에서 해산물의 DHA가 두뇌를 발달시킨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 내륙지방인 안동에서 고등어는 머나먼 바다에서 왔으니 귀한 생선이었을 것이다. 안동 간고등어는 불리한 자연조건을 역이용한 획기적인 산물이었다. 부산이 고향인 한 친구는 내륙지방인 안동에서 간고등어를 특산품화 하여 수출까지 한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안동에는 민물 고등어가 나는지, 내가 안동 간고등학교 출신인지 등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안동에는 예로부터 퇴계(退溪) 이황 선생 같은 거유(巨儒)와, 임청각 주인인 석주 이상용 선생 같은 독립지사가 많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간고등어를 많이 먹으면 적당히 간이 되어 사람이 변절하지 않았고, 두뇌발달을 촉진시키는 DHA를 많이 섭취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나도 엉뚱하게 대답을 했다.
수 백 년 동안 선인들의 지혜가 소금 간처럼 배어있는 안동간고등어. 신선도를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짭조름한, 흉내 낼 수 없는 천하일미는 바다와 육지의 조화로 만들진 것이었다. 바다는 모든 생명의 고향이다. 향후 현대과학을 이용한다면 더 발전된 바다와 육지의 조화로운 산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대로 아들들에게 DHA가 듬뿍 든 간고등어를 자주 먹이고 싶다.
첫댓글 신 원장은 참 글을 잘 쓴다.. 황변이 <군인은 전투로 말한다. 의사는 의술로 말한다> 했다.. 의사는 詩人이 되기 어렵다 하더라.. 삶과죽음의 갈림길에 놓여진 환자를 돌보자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하더라.. 어제 부산갔다가 내과원장인 매제를 만났는데 정서는 매말라가고 환자만 상대하니 스트레스가 많다하더라..더구나 사돈어른이 뇌졸증으로 사경을 헤매니 더욱 힘들다 하더라..그래서 일욜날은 그림을 그린다 하더라..자네는 한국의 슈바이쳐가 되시게..의대를 나와 신부가 되어 수단에서 휴머니즘을 실천하다가 올해 작고 하신 아까운 이태석 신부 처럼..
평소 같으면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을 텐데 시국이 시국인 만큼 우리 동기들이 조용한 마음의 시간이 없나 보다..우리 고향 안동은 간고등어만 아니고 문어 돔배기등 제사음식이 유명하다..문학에 등단한걸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재능을 널리 발휘하시게..
자네는 예지력이 있어! 문어에 대하여 썼지! '동해용왕국 예부상서'라는 제목으로 별주부전을 패러디하여. 해양수산부에서 실시하는 해양수필문학상에 출품하여 결선에 진출하였으나 해양선원이 쓴 수기에 밀려 대상을 놓쳤지. 그러나 심사평에서 문학성이나 발상에서 최고의 작품이나 공모의 취지에 밀렸으니 미안하다고 '해양문학'이라는 잡지에 공식으로 언급이 있엇네. 그래서 내년부터는 수필부분과 해양수기를 분리하겠다고 공고를 했더군. 등단 첫 해인 내게는 과분한 칭찬이었네! 그러나 너무 안타까워 작품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네!
난 이과출신이라 글을 잘 모르지만 읽어보니 참 부드럽다.
법대 나오신 분이 그렇게 말하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