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4
삶과 복수에 대한 고민은 오필리아에게 화살이 간다.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이나 가버리라고, 결혼한다면 ‘저주’를 결혼 지참금으로 주겠다는 가혹한 말로 상처를 준다. 오필리아를 향한 마음을 접고 정을 떼기 위한 햄릿의 말은 독설이 되어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
햄릿은 연극을 공연하는 당일 친구에게 숙부인 클로디어스 왕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 잘 관찰하라고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듯이 아버지를 독살했다면 표정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상한 대로 왕은 공연을 보다가 부들부들 떨다가 나가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햄릿은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하였음을 확신하고 복수를 다시 한번 결심한다.
그날 밤 홀로 회개의 기도를 하는 숙부를 살해하려고 했으나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 회개의 기도를 한 사람은 죽어서 천국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숙부를 죽이면 육신에는 복수를 할 수 있으나 영혼에는 복수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햄릿은 숙부가 또 다른 죄를 지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하고 복수를 미루게 된다. 이 장면 때문에 햄릿은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우유부단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신중한 성격이 아닐까? 숙부인 클로디어스를 죽이면 왕실과 덴마크 전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햄릿에게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연극이기 때문에 독백이나 방백이 대사로 모두 드러난다. 드라마나 영화는 행동이나 표정으로 묘사가 되지만 연극은 아니다. 그래서 희곡의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우유부단해 보이지 않았을까?
‘결정 장애’는 넘쳐 나는 정보들과 수동적인 생활 습관들로 인해 결정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햄릿도 아버지의 복수를 결행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고민과 고뇌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 장애를 ‘햄릿 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햄릿 증후군은 살아오면서 어떤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해 본 사람들, 반대로 햄릿처럼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누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성취감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결정 장애를 겪는다. 생각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할 수 있으나 행동으로 옮기는 결정은 감정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감수성에 민감한 사람이 결정 장애를 겪는다고 할 수 있다.
햄릿은 우유부단하기보다는 신중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으로 아버지의 살해를 확신하고 복수를 결심하지만 기도를 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뒤로 미루는 것은 우유부단이 아니라 클로우디스의 영혼마저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 의도였다.
괴테는 우유부단한 햄릿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서 “햄릿은 너무나 고결하고 도덕적이어서 복수를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햄릿은 우리 인간처럼 감성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복수할 수 없는 사람이 복수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고 했다. 또 “아주 작고 예쁜 화분 속에다가 커다란 참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햄릿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해답도 제시한다. 여기서는 복수지만 “어떤 일을 할 때 명분과 의지와 능력과 상황이 맞아야 한다.”고 하며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완전하지 않은 복수라고 생각한다. 햄릿의 이 말은 인생의 체크리스트로 삼을 정도로 완벽한 대사이다. 햄릿은 이 목록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다. 따라서 햄릿은 이 네 가지를 맞추기 위한 것이지 우유부단은 아닌 것 같다.
첫댓글 햄릿에 대한 평가에 공감합니다. 저도 햄릿이 우유부단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