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요새 판터전차에 대해 자료수집 중 입니다. 얼마전에 올린 셔먼전차와 더불어 요새 한참 필 받아 있는 2차 대전 당시 활약한 독일전차 이지요
5호전차 판터는 정말 독특한 매력이 있는 넘 같습니다. 쭉 뻗은 주포와 균형 잡힌 포탑과 차체 마치 잘빠진 미들급 선수를 보는 기분 이지요… 실제로 중장갑 중무장의 티이거보다 공수의 균형이 잘 잡힌 판터전차가 전차 전문가들이 뽑은 최고의 전차로 선정되기도 했으니까요..
판터 전차는 현용전차의 기틀을 확립한 전차로도 유명합니다. 소련군의 T-34 전차에 충격을 받은 독일수뇌부가 급히 개발하게 된 새로운 전차가 바로 5호전차 판터지요… (T-34의 강력한 무장과 방호력에 충격을 받은 독일군은 오죽하면 이를 그대로 카피해서 사용하자는 주장까지 있었답니다.)
T-34 에서 배운 경사장갑을 적극 도입하여 티이거처럼 중장갑을 하지 않으면서도 놀라운 방호력을 보여주었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중장갑을 하지 않으니 엔진출력에 무리도 적었고 특히 티이거에서 자주 보이던 서스펜션 및 동력계통에 오는 무리도 적었다고 합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판터전차를 노획한 소련군은 독일군 전차의 최대 약점을 서스펜션 계통이라 평하기도 했습니다. 수백킬로를 자력으로 이동해도 문제없는 소련전차와는 달리 독일군의 현가장치류는 고장이 빈번했고 교체시기도 짧았습니다.)
특히 대전중반부터 개발완료 된 라인메탈사가 개발한 70구경 75mm 전차포 KwK42를 장착하였으며 이 주포는 1941년 7월 18일 자의 개발요구에 따라 거리 1,000m에서 140mm의 관통력을 가지도록 하라는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강력한 주포였습니다.
KwK42는 당시 Tiger-Idl 장비한 88mm KwK와 함께 최강의 전차포였습니다. Pzgr39/42 철갑탄(탄약중량 14.3kg, 탄환중량 6.8kg, 포구 초속 925m/초)을 사용할 경우 1,000m에서 111mm, 2,000m에서 89mm의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탄두에 텅스텐 탄심을 적용한 Pagr40/42(탄약중량 11.5kg, 탄환중량 4.75kg, 포구 초속 1,120m/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1,000m에서 149mm, 2,000m에서 106mm를 관통할 수 있었습니다.
판터전차는 대전중반에 개발되어 종전시까지 다양한 버전이 개발되어 총계 6천대 이상이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차대전동안 2만대 이상의 연합군의 전차나 장갑차량을 격파하여 명실공히 독일전차군단의 주력전차로 불리기에 충분한 전차 였습니다.
여기저기 판터전차 관련 자료를 찾다가 빅 스케일 전차 모형 제작으로 유명한 최진환 님의 홈페이지 (http://www.maus120.com/) 에 잘 정리된 자료가 있어 퍼왔습니다. 좋은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Panzerkampfwagen V
Panther
Sd. Kfz. 171
version 2
주) 다음은 scale81님으로부터 받은 자료이며, 수정없이 그대로 입력한 것으로 A4 로 23장 분량임.
원래 전차개발사는 모형을 제작하면서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하고 정리를 시작 한 것인데, 이번 자료는 이러한 근본 취지에 어긋나게 양이 많군요. 정도를 벗어나면 곤란한데....
러시아의 T34와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최고의 전차로 손꼽히고 있는 전차가 바로 Panther이다. 독일전차 기술의 극치라고도 불리는 Panther는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 연합군에게 독일 기갑부대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으며, 전후 레오파트 시리즈로 이어지는 현대전차의 원조가 되었다
Panther는 5,000대 이상이 생산되어 1943년말부터 독일전차부대의 주력이 되었으며, 러시아전차보다는 못하지만 독일의 다른 전차들에 비해서는 생산가격도 낮았고 그에 비해 성능은 측면의 장갑 방어력을 제외하고는 Tiger-II와 동등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Panther의 평가
전차는 지상의 왕자라고 불리우지만 강철의 괴물같은 이미지를 가졌던 2차 세계대전 초반을 지나 중반 이후에는 전차도 무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공격력과 방어력, 기동력의 3박자를 균형있게 갖춘 전차가 요구되게 되었고 2차 대전 중 이런 3박자를 가장 잘 갖춘 전차로 독일의 Panther, 러시아의 T34 전차가 꼽히고 있다. 전장에서의 1대1 대결에서는 Panther 전차가 우위에 있었음은 명백하지만 그대신 T34는 대량생산에 아주 적합하여 Panther 1대가 공장에서 나오는 동안 T34는 5대 이상 나오고 있었고 당연히 Panther는 물량작전에 압도되어 제2차 대전 최우수 전차의 왕관을 T34에게 넘겨주게 된다.
이처럼 공수주를 모두 갖춘 Panther 전차였기에 Tiger처럼 특정 전투에서 일방적으로 적을 두둘겨 부수었다는 전투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적의 세력에 압도되어 참패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면장갑은 80mm로 강력하지만 측면장갑은 40mm(G형에서는 50mm)로 그리 두텁지 않고 비교적 취약한 차체 앞부분 옆에 탄약이, 그리고 후부에 연료탱크가 배치되어 있어 피탄될 경우 화재를 일으키고 연료와 탄약이 유폭되는 경우도 많았다.
중장갑과 강력한 화력을 앞세워 싸운 Tiger-I과 비교해보면 실은 아주 우수한 기술을 집약시키고 있으면서도 가격은 절반 이하,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도 적어 결과적으로 생산성은 Tiger-I의 4배 이상에 달했다. 이른바 관급품으로 취급되는 무장과 엔진, 변속기, 무선방비 등을 제외한 차량가격이 당시 117,100 라이히스마르크(RM)로 3호 전차의 96,163RM, Tiger-I의 250,800RM과 비교하면 Panther의 가격은 예상외로 낮다는 것을 알수 있다.
수량적으로는 4호 전차보다 적게 생산되었지만, 실질적으로 T34를 격파할수 있는 장포신 75mm포를 장비한 4호 전차와 비교할 경우 Panther와 생산수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1943년 중반부터 등장한 Panther이기 때문에 그 이후의 생산수를 비교한다면 명백히 Panther는 주력의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때문에 항상 선두에 서서 전투를 전개했고 그에 따라 격파된 전차들도 많았을 것이다.
Panther의 손실은 1943년 12월 1일부터 1944년 11월 30일 까지 동부전선에서 2,116대, 서부전선에서는 1944년 9월 1일부터 11월 30일 까지 613대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43년 7월부터 1945년 1월 까지의 총 손실대수는 3,548대로 기록되고 있다. 그 이후 손실수는 불명이지만 아마도 등장이후 4천 수백여대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공장 등에서 폭격으로 파괴된 것 까지 합하면 5천대 가까이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Panther를 약한 전차라고는 할 수 없다. Panther가 격파한 연합군의 전차대수는 집계된 것이 없지만 아마도 손실대수 이상 격파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Panther는 주력전차로서의 임무를 다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은 1943년 한해동안 전차 6,363대를 상실했고 러시아군은 22,400대를 상실했다.
1944년에는 독일군이 6,434대, 러시아군이 16,900대였으며, 1945년에는 독일 7,382대, 러시아 8,700대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Panther가 격파한 대수는 불분명하지만 러시아 전차상실대수의 절반이하라고 하더라도 약 2만대에 이르고 아주 낮게 생각해도 1만대 이상은 격파했을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 서부전선에서의 전과를 더하면 Panther는 생산대수의 수배의 전과를 올린 것이 분명하다. Panther를 전사에 남는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Panther의 개발
1939년 9월 독일군의 일방적인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의 막이 올랐지만, 독일군은 이보다 앞선 1938년 주력전차로서 3호 전차와 지원전차인 4호 전차를 하나로 통합한 장래 전차의 개발에 착수했다. 여기에는 VK20.01의 명칭이 붙었는데, 여기서 VK는 장궤식 차량을, 20.01은 20톤급 차량의 제1안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다른 설계의 차량이라도 이 번호에 이어 명칭이 부여되도록 되어 있다.
구체적인 개발요구가 처음으로 나온 것은 1939년 10월의 일로 다이믈러 벤츠사가 선정되어 개발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크룹사도 독자적으로 4호 전차의 발전형을 계획했지만 전격전의 결과에 따라 계획을 포기, 새로 20톤급 전차를 VK20.01(K)의 명칭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양사에 이어 MAN사도 20톤급의 신형전차의 개발을 시작했지만 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장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참고로 이 20톤급 전차에 대한 기본적인 요구사항은 1)대구경 보기륜을 장비하고 상부 지지륜은 폐지, 2)토션바식 현가장치를 채용, 3)소형에 출력이 큰 신형엔진 장비, 4)동력으로 작동되는 반자동 변속기 채용, 5)신형조향장치의 도입 등이 었다.
이미 3/4호 전차를 재갑한 경험이 있는 다이믈러 벤츠와 크룹사가 토션바를 채용하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었다. 벤츠사는 3호 전차에서 토션바를 채용했지만 차내 용적을 감소시키고 교환이 힘들며, 사격을 위해 정지했을 때에도 미묘한 진동이 남아 조준을 방해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반대이유로 했다. 한편 크룹에서도 차내용적의 문제와 선회 포탑용 엔진과 탄약고의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 역시 비슷한 이유로 반대를 표명했다. 하지만 역시 토션바를 채용하지 않고 스프링식을 채용한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연구와 개발이 진행되는 도중 러시아는 노도와 같이 진격해 가던 독일군의 앞에 전혀 새로운 전차 T34가 나타나 독일군을 공황상태에 빠뜨리자 이 신형전차에 대한 연구도 일시 중단되고 만다. 독일군은 기술자를 동부전선으로 파견시켜 노획한 T34를 철저히 검사하도록 했다. 그 결과 독일군 전차들은 보다 강력한 화포와 장갑을 가지지 않으면 이 전차에 대항할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 졌다. 이 때문에 이제까지 진행되고 있던 20톤급 전차의 개발계획은 급거 30톤급 전차인 VK30.01로 변경되게 된다. 한편 1941년 7월 18일 라인메탈사에 대해 신형 전차포와 그 포를 장비할수 있는 포탑의 개발이 지시되었다.
이 30톤급 전차의 개발은 벤츠와 MAN사가 담당하게 되었지만 요구사항은 예전보다 훨씬 구체화 되었다.
최대폭 3.15m, 최대차고 2.99m, 최저 지상고 50cm, 엔진출력 650-700마력, 전면장갑은 35도 경사에 60mm, 측면장갑은 50도 경사에 40mm, 차체 상부는 16mm, 초호능력 80cm, 최대속도 55km/h, 작전시간 5시간 이상 등이었다.
이러한 기본요구에 대해 양사는 개발에 착수. 그러나 이러한 사양으로는 중량증가가 불가피하여 1941년 12월 9일의 회의에서 중량을 36톤으로 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와 함께 공병들이 사용하는 전차교가 16톤까지 밖에 견디지 못하므로 잠수장치의 도입도 요구되었다.
벤츠사는 VK30.01(D), MAN사는 VK30.02(M)으로 개발을 진행시켜 양사의 안 모두 독일전차로서 한획을 긋는 스타일이 되었고, 특히 벤츠의 안은 T34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했다. 벤츠에서는 시제차량 5대를 1942년 6월말까지 완성하도록 계획을 진행했으며, 이 가운데 1대는 MB507 디젤엔진을, 1대는 MB503 엔진을, 나머지 3대는 마이바하 HL210(뒤에 HL230으로 변경)을 장비할 계획이었다.
한편 MAN의 계획은 그때까지만해도 가솔린 엔진 장비, 스프로켓을 전방에 배치한 형태라는 점 이외에는 나머지 세부 계획이 확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가솔린 엔진의 장비라는 점은 당시 MAN사가 공랭식 디젤엔진을 개발했다가 실패하고 육군에서도 서로 다른 8종의 디젤 엔진을 각 메이커에 개발하도록 요구했지만, 결국 독일군은 대전이 끝날 때까지 우수한 디젤 엔진을 개발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MAN사는 가솔린 엔진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개발이 계속 진행되어 1942년 3월 6일 히틀러가 벤츠사의 VK30.01(D)의 채용을 결정하고 200대를 발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육군 병기국에서는 MAN사의 모델을지지, 다시금 5월 11일자로 양사에 최종설계안을 제출토록 했다. 한편 이보다 조금 앞선 5월 2일에는 이 신형전차에 5호 전차 Panther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양사의 안을 검토하는데 있어서 주안점은 1943년 여름 이전에 전선에서 운용에 들어갈수 있도록 1942년 12월 부터는 양산에 들어갈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양산의 안은 항속거리에서 MAN사의 차량이 약간 우수할 뿐 동일한 장갑, 전차포,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다만 벤츠의 안에서는 포탑이 작았다.
포탑이 작다는 점은 피탄확율이 낮다는 장점은 있지만 거주공간이 좁고 피탄시 승무원에 미치는 위험이 크다 하여 일단 소형포탑안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포탑링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MAN사의 포탑을 벤츠의 차체에 탑재할수 없었고 더블 토션바를 장비하는 MAN사의 현가장치가 스프링식의 벤츠안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되었다.
한편 잠수장치 부분에 있어서도 벤츠안은 수중냉각이 불가능했던 반면 MAN사의 안은 라디에이터 부분에 물이 스며들도록 하여 저연 냉각 효과를 기대할수 있었다. 이 때문에 수중 주행시간도 벤츠안은 10분이었던데 비해 MAN안은 제한이 없었다.
5월 13일 양사의 안 모두 장갑이 빈약하다는 점을 짖거하고 조속히 양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지시가 나온 다음날 MAN사의 안이 Panther로 정식 결정되었다. 벤츠의 안은 2대의 시제차량이 거의 완성될 즈음 폐지되고 만다. 하지만 그 가운데 1대는 시험용으로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MAN의 설계안이 결정됨에 따라 이제 MAN을 필두로 벤츠, 헨셀, MNH 각사에서 관계자들이 모여 Panther의 양산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회의에는 참가한 각사에서 Panther의 생산을 분담하여 MAN사가 시제차량을 9월까지 완성시키고 1943년 4월까지 MAN에서 84대, 벤츠에서 91대, 헨셀에서 26대(뒤에 66대로 변경), MNH에서 71대를 각각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시제차량은 예정대로 1942년 9월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차량에는 아직 포탑이 적재되지 않고 있었고 중량을 맞추기 위한 모의포탑이 탑재된체 주행테스트부터 시작했다. 10월경에는 정식 포탑을 탑재한 시제 2호 차량이 완성되어 시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두 대의 차량 모두 잠수장치는 장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11월에는 아이제나하에서 공개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이 공개 테스트에는 MNA사의 Panther 이외에 헨셀과 포르쉐 양사의 Tiger, 벤츠의 VK30.01(D), RSO, 러시아의 T34 등 여러 가지 차량이 참가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군수장관 슈페어는 Panther에 1시간 이상 탑승하여 주행하는 등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진적인 외관
독일의 유명한 Tiger-I은 1942년말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처음으로 실전 투입되었고, Panther는 1943년 7월 쿨스크전이 돼서야 데뷔하게 되는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Panther의 개발기원은 193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고, Tiger는 비록 실전 데뷔는 빨랐지만 대 러시아전 이후 새롭게 개발이 시작된 전차였기 때문에 Panther가 5호, Tiger가 6호 전차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Panther의 외관이다. 1호 전차부터 4호전차 그리고 6호 Tiger에 이르는 대부분의 독일전차들이 수직면을 많이 사용한 장갑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대 러시아전 개시후 T34와 대결하고 보니 경사장갑의 유효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즉 T34의 정면장갑 두께는 불과 45mm였지만, 상당한 경사가 져 있어 관통이 어려웠고 당시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37/50mm 포로서는 정상적인 교전거리에서 격파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Panther는 T34를 많이 연구하고 그 장점을 받아들인 전차라고 할수 있다. 1941년 개전 당시 T34가 독일군의 전차에 비해 확연하게 달랐던 점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었다.
1)경사장갑을 도입하여 같은 장갑 두께에서도 3배 이상의 높은 방어력을 발휘한다.
2)대구경 보기륜을 장비하고 폭 넓은 트랙을 채용하여 러시아의 야지에서 기동성을 충분히 살리도록 한다.
3)장포신 주포를 장비. 이 주포는 그 포구 끝 부분이 차체 맨 앞 부분보다도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위의 세가지 점을 잘 생각해보면 그때까지 독일군이 사용하던 4호전차 까지는 이 장점들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고 반면 Panther는 위의 세가지 점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처럼 독일군은 Panther에 T34의 장점을 대폭 도입하였으며, 이들 장점들을 더 발전시켜 T34를 능가하는 성능을 가진 전차로서 재탄생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남는 의문은 독일군이 왜 T34를 카피 생산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포나 총 같은 경우에는 적의 우수한 것을 완전히 그대로 카피 생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였기 때문에 독일군이 T34에 그토록 놀랐다면 그 간단하고 단순한 전차를 카피 생산 못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두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한가지는 독일 기술자의 자존심 문제이고, 두 번째는 디젤엔진의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군은 대전 내내 제대로된 디젤 엔진을 가지지 못했고, T34가 비록 단순한 전차이기는 하지만 디젤엔진에 있어서는 독일 기술자들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우수한 기술력을 보여주어 독일이 이를 그대로 만들기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Panther의 차체 구조
Panther의 차체 구조는 3호 전차 이후의 독일전차와 같은 구조로 차체 전면 좌측에 조종수, 우측에 무선수, 중앙의 포탑 바스켓에 전투실 차장과 포수, 탄약수가 배치되고 그 뒷부분에 기관실이 배치되고 있다.
Panther의 개발 자체가 T34를 강하게 의식하고 그 장점을 대폭적으로 받아들인 만큼 독일전차로서는 처음으로 경사장갑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이 때문에 나쁘게 표현하여 Panther를 T34-75, Tiger-II를 T34-88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사각도는 차체전면이 33도(두께 80mm), 측면 40도(두께 40mm, G형에서는 30도 50mm), 후부 30도(두께 40mm)로 수직장갑판으로 환산한다면 차체 전면장갑 두께는 140mm에 필적한다. 이 때문에 적의 전차가 정면에서 사격하여 정면장갑판을 관통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할수 있으며, 실제로 격파된 Panther전차들은 측면에 명중탄을 맞거나 항공기의 공격으로 격파된 것이 많고 사진에서 보는 한 정면장갑판이 완전히 관통된 것이 거의 없다.
조종실의 바로 위에는 각기 조종수와 무전수의 독립 해치가 있으며, D형과 A형에서는 일단 위로 한번 들어올린 뒤, 옆으로 슬라이드 시켜 여는 방식이였지만, G형에서는 힌지를 이용하여 한쪽으로 열어 젖히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발달형인 F형에서는 이 해치가 옆으로 밀어서 여는 슬라이드 식으로 변경된다.
한편 변속기의 정비와 교환을 위해 조종수석과 무전수석의 천정이 볼트를 풀면 분리될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기관실은 중앙에 엔진 점검용 해치가 있고 그 좌우에 흡기 및 배기용 덕트가 있다. 이것은 라디에이터로부터의 열기를 차외로 배출하는 냉각팬의 힘으로 외부 공기를 라디에이터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며, 기본적으로 레이아웃은 각 형식 공통이지만 G형과 F형에서는 엔진과 라디에이터의 냉각 능력 향상이 이루어진 결과 덕트 개구부의 면적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 조치로 적의 화염병 등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도 강화되었다.
Panther의 장갑판은 압연강판이 사용되었으며, 독일에서 생산되지 않아 스웨덴 등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니켈, 텅스텐 등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때문에 Panther의 장갑판에는 니켈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른 강도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천연 가스나 산소를 이용한 용접화염으로 표면 강화작업을 실시하였다. 이 방식은 미국의 하베이사의 기술을 기본으로 하여 독일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Ohtlr이라 불리우며, 100mm까지 경화작업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방식에 이어 장갑 두께에 따라 고/저주파에 의한 전류를 흘려 표면경화를 시키는 고주파 표면경화방식도 실용화되어 이 두가지 방식을 조합하면 희소금속 없이도 충분한 강도를 가진 장갑판을 제작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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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D형의 큐폴라 구조도 |
이들 장갑판은 용접방식에 의해 접합되지만 용접부를 "ㄷ"자 형태로 만들어 맞물리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여 용접 시간을 단축하고 충분한 강도를 얻을수 있게 했다. 일부 차량은 용접 방식이 아닌 인터 록 방식이 사용되었다. 한편 대전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자재에 문제가 많아 장갑판 자체의 강도는 상당히 저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차제 전면에는 D형의 경우 좌측에 개폐식의 조종수용 바이저가 있고 우측에는 무전수가 사용하는 기관총 발사용 4각 포트가 설치되어 있다. 조종수는 주행시 바이저를 닫고 조종석 위에 있는 2개의 페리스코프를 사용하지만 이 페리스코는 무전수석에도 장비되고 있다.
한편 조종수용 바이저의 내측부분의 차내는 방탄 유리가 장비되어 있는데, 그 강도는 소총탄 정도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강력한 것이었다.
또한 페리스코프에는 글래스 블록 90이라는 적층 방탄 글래스가 수납되어 있다. 최전부와 최후부에는 4mm 두께의 크리스탈 글래스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20mm 두께의 글래스 3매가 배치되며, 각 글래스 사이에도 얇은 글래스들이 샌드위치 되어 있다. 거기에 뒤쪽에는 10mm 간격을 두고 10mm의 이너 글래스가 장비되어 이들을 모두 합치면 글래스의 두께는 90m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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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A/G형의 큐폴라 구조도 |
D형에 이어 생산된 A형에서는 당초 D형과 마찬가지의 4각형 기관총 포트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1943년 11월-12월 경부터 벤츠가 개발한 80mm 장갑판용 볼 마운트가 장착되었다. 이 볼 마운트는 기관총 조준용 TZF12a 조준기가 장비되어 있어 이전에 비해 대보병 사격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 볼마운트의 채용으로 무선수용 페리스코프는 폐지되었다.
한편 G형부터는 전면장갑의 방어력 향상을 위해 조종수용 바이저가 폐지되었다. 그 대신 조종수용 해치 전방에 선회식 페리스코프가 장비되었으며, 좌전방의 폐리스코프 역시 폐지되었다.
PantherG형 후기 생산형부터 도입된 소염식 배기관 |
조종실 중 포신의 바로 아래에 해당되는 부분은 단순한 환기용 개구부가 설치되어 있고, 그 바로 위에 주포 고정용 트래블링 록이 설치되었다.
리어 패널의 좌우에는 잡물상자가 장비되며 배기관 사이에 엔진 점검 해치가 있고 그 해치 중앙부에 강제 시동용 크랭크를 삽입하는 구멍이 있다. 그리고 해치의 우측에는 관성식 스타터의 개구부가, 우측에는 냉각수 난방용 개구부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이들 개구부의 우측에는 아이들러의 전후 위치를 조절하는 조절부가 있고 이 부분에는 장갑 커버가 씌워져 있다.
엔진 점검 해치의 바깥쪽에는 잭이 옆으로 장착되어 있지만, D형의 생산도중 양쪽 배기관 사이에 세운 상태로 장착되도록 변경되었으며 A형의 생산도중 좌측의 배기관 좌우에 공기흡입관이 함께 설치되었던데 비해 G형에서는 냉각계통의 개량으로 공기흡입관이 폐지되고 좌우 1개 파이프의 단순한 형태로 변경되었다.
한편 G형 후기부터는 대형 원통형의 소염식 배기관이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장비한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
기관계통
Panther의 개발과정에서 여러 가지 엔진이 검토되었지만 결국 양산형에 채용된 것은 마이바하 HL210P30이었다. 이 엔진은 독일 전차용 엔진으로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냉 V형 12기통으로 배기량은 21,350cc, 회전수 3,000rpm에서 650hp를 발휘했다. 이 마이바하제 엔진의 수자가 배기량을 나타낸다.
그러나 생산이 진행되고 나서 한단계 더 출력이 높은 HL230P30이 등장하여 이 엔진이 장비되게 된다. 이 신형엔진은 기본적으로는 HL210의 발전형으로서 경합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량은 약 350kg 증가하여 건조중량이 1,200kg에 달했다. 이 때문에 출력은 50hp 정도 증가하여 700hp가 되었디만 차량의 주행 성능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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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G형 후기형에 채용된 전투실내 난방 장치 &HL210 P30 엔진 |
엔진의 전고는 1.19m, 전장의 91%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Panther의 차고는 불가피하게 높아진다. 이 엔진 바로 위에 점검 해치가 있고 엔진 바로 밑에 토션바가 있어 그 이상 차고를 낮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엔진의 좌우에는 냉각장치가 각기 독립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이들 냉각장치는 각기 전후 독립된 라디에이터와 중앙에 있는 16매 날개의 배기용 강제 팬으로 구성된다. 좌우의 라디에이터는 파이프로 연결되고 엔진실 후부의 냉각수 주입용 탱크에 접합되어 있다.
냉각수 주입 탱크의 옆에는 연료주입구를 가진 연료탱크가 있다. 이 부분을 통해 주입된 연료는 배관을 통해 좌우 각 2기씩 독립되어 설치된 연료탱크로 보내진다. 연료탱크는 총 5개소로 연료 탑재량은 합계 약 760 리커가 된다. 이 가운데 130리터는 예비연료로 규정되어 있다.
운용상으로는 도로주행시 시속 25km로 주행하여 약 260km의 항속거리를 발휘하고 있으며, 예비연료를 사용하면 항속거리를 약 45km 연장할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연료탱크는 수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 화재사고가 다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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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의 연료탱크 배치도 (각형 공통) |
이것은 우선 연료탱크의 용접이 불량했기 때문에 약간의 틈새가 생겨도 기화가스가 새어나와 공기보다 비중이 무거운 가스가 기관실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높아진 엔진 배기관의 열과 접촉하면 불이 붙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료탱크에 환기용 파이프를 추가하고 연료탱크 자체도 개량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 문제는 G형에 이르러 엔진 냉각기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실시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이것은 시험기간이 충분했다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쿨스크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실전화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Panther에는 설계당초부터 엔진실내에 자동소화장치가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장치는 연료 펌프, 캬프레이터, 스타터의 3개소에 온도측정 장치와 소화액 분출 노즐을 붙여 온도가 160도를 넘으면 작동, 자동적으로 7초 동안 소화액을 뿜어내는 장치였다. 이 소화액은 세차례 분사가 가능하게 되어 있으며, 뒤에 같은 장치가 Tiger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자동소화장치는 온도측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장치도 오작동하는 예가 많아 격벽에 새로 수동식 소화기가 추가되게 된다.
잠수장치는 당시 독일군 공병이 사용하는 돌격교가 16톤을 넘는 물체가 통과할수 없었으므로 개발중 40톤이 넘을 것이 확실시되었던 Panther에 스노켈을 이용한 잠수장치 도입이 추진되었다. 이 장치는 Tiger 계열에도 채용되었으며, 당시 독일 중전차들의 경향이었다고도 볼수 있다.
Panther에 처음 채용된 엔진 자동 소화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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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노즐의 정비장치
잠수장치의 채용으로 개구부가 되는 부분, 즉 각 해치, 포탑링 등에는 수밀기구가 장착되었고 기관실 후부에 세워지는 스노켈 파이프에 의한 엔진에 대한 흡기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부분은 물이 스며들도록 하여 잠수전에 강제 냉각 팬을 정지시켜도 냉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장비로 수심 4m 까지 잠수도하가 가능하였다. 이 스노켈 장비차는 기관실 후부에 전방을 지지점으로 열리는 커버가 설치되어 있어 식별이 용이하다.
하지만 조속한 실전화의 부작용으로 초기생산형은 잠수장비가 적용되지 않은 채 완성되었으며 실제로 장비가 개시된 것은 1943년 6월 이후였다. 그러나 실제로 Panther를 운영해본 결과 16톤 돌격교를 통과할수 있었기 때문에 8월에 잠수장치의 폐지가 결정되고 따라서 이 잠수장비를 완전히 갖추어 완성된 Panther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조종수석과 무전수석 사이에는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전달받는 변속기와 동력을 기동륜에 전달하는 파이털 드라이브가 있다. 변속기는 명문 ZF의 AK7-200이 사용되었으며, 1942년 2월부터 설계되어 8월에 시제품 2기가 완성되었다. AK7-200은 싱글 메시식의 전진 7단 후진 1단의 수동식 변속기로 3,000rpm시 1단으로부터 시속 4.1km, 8.4km, 13.3km, 20.8km, 30.8km, 42.5km, 55.5km로 되어 있고 이 경우 선회에 요하는 반경은 1단부터 각기 5m, 11m, 18m 30m, 43m, 61m, 80m 였다. 따라서 이론상 7단의 최고속도로 달리고 있는 Panther가 선회하려면 160m의 원을 그린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그때까지 650hp의 엔진에 사용하는 변속기는 처음 개발된 것으로 역시 문제점이 많이 발생했지만 G형에 이르러서는 거의 극복되게 된다. 이는 데뷔전인 쿨스크전에서 200대가 참가한 Panther D형이 5일후인 7월 10일 각종 기계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가동전차가 겨우 10대까지 줄어들었음에 비해 1944년 12월 15일 시점에서 동부전선 전체가 보유한 737대의 Panther 가운데 가동수가 500대를 넘었다는 사실이 입증해 준다.
변속기와 함께 연결되는 조향변속기는 MAN에서 개발한 것으로 단일 반경 방식이 채용되었다. 당초 계획으로는 최초 100대에는 제작기간 단축을 위해 종래대로 클러치와 브레이크 방식을 채용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이방식으로 완성된 것은 겨우 23대 였고, 이들도 뒤에 단일 반경 방식으로 개수를 받게 된다. 한편 Tiger는 2단 반경식을 채용하고 있었지만 이 방식은 조종은 쉽지만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주력전차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선회하는 측의 기동륜의 회전수를 떨어뜨려 선회를 하고 작은 반경으로 선회하는 경우에는 선회측의 기동륜을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선회를 행하였다. 하지만 좌우의 조향 레버를 이용해 조작하여 선회하는 방식을 승무원들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했다. Panther에서 Tiger로 전환하는 것은 쉬웠어도 그 반대는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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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슬슬 시작되는군요 . 정말정말 알고싶은것들이 많았는데 ㅎㅎ 감사합니당~~
지금 판터 D 형 제작중인데 제작의지가 후끈 달아오르는군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