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오래된 벽
강 혜 규
차고 무거운 공기가
등을 밀어낸다
눅눅한 벽에 기대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어깨가 들썩이며 우는 흐느낌 같기도 한
어룽어룽 눈물 자국이 길게 꼬리를 물고
긴 못 작은 못 상처가 많은 벽에
고단한 가장의 어깨가
비스듬히
걸려 있다
생의 속도 내려놓고 주인마저 떠난 빈 방
문밖 세상을 향해 무너진 좁은 틈으로
초겨울 매운 바람만 안부를 묻고 있다
<당선소감>
제 시조 한 줄에 목이 메었으면
강 혜 규
유리창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꽃이 피었습니다. 모든 것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겨울밤에 온 힘을 다해 실가지를 키우고 꽃이 피었습니다. 꽃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깥은 겨울인데도 참 따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실린 정완영 선생님의 시조를 읽다가 울컥 목이 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씨앗을 참 오래 품고 살았습니다. 이 다음에 누군가가 제가 쓴 시조 한 줄에 목이 메어 시조를 꽃씨처럼 품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는 내내 큰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은 정완영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덜 여문 씨를 꽃으로 피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말 안 해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계실 ‘나래시조’ 식구들께 큰절 올립니다.
<약력>
*1962년 김포 출생
*2003년 ‘한국문인’ 신인상
*2005년 ‘나래시조’ 신인상 수상
*현재 충북 진천 덕산중학교 교사
<심사평>
농촌 현실 드러낸 사회성 돋보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일곱 사람의 35편으로, 5편 모두 고른 수준을 갖춘 경우와 한두 편이 뛰어나고 편차가 심한 경우로 대별됐다. 이 두 경향에 대해서 수준이 고른 응모자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적 표현이 우월한 작품을 뽑자는 데 심사위원들이 합의했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됐던 작품은 〈낙화〉 〈귀성길〉 〈연해주의 가을〉 〈오래된 벽〉 등 네 편이었다. 〈낙화〉는 시조 형식을 부리는 노련함이 있었지만 제목의 진부함과 나머지 작품들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귀성길〉 역시 시조 창작에 대한 연륜이 느껴지지만 나머지 작품과는 편차가 컸고, 5편 중 2편에 부제를 달았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을 찾기 어려웠다. 〈연해주의 가을〉은 그 힘찬 음보가 시를 읽는 데 힘을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시적 표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따라서 당선작으로 〈오래된 벽〉을 뽑기로 합의했다. 당선 작품은 화자의 고향집일 수도 있는 농촌의 빈집을 찾아간 감회를 읊은 것이다. 농촌 현실을 드러내는 사회성과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각, 상징적 의미를 살리는 재능이 돋보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리며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들에게 분발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 한분순 . 문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