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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쉼터 스크랩 이종격투의 유래와 역사 (1) -그리스 시대의 `판크라티움`
손영복 추천 0 조회 146 06.05.05 07: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대 그리스 시대의 격투시합 '판크라티움'

[사진] 판크라티움을 묘사한 그리스 조각들

격투기(格鬪技)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말 그대로 '싸우기 위한 기술' 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격투기는 언제부터, 왜 생겨났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도 간단하다. 격투기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으며 그 필요 목적이란 전투와 체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투란 살인을 위한 군사적인 투쟁을 의미하고, 체육이란 놀이와 운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육성시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격투기는 인간의 역사가 생겨난 것과 동시에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예로써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레슬링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이나, 4000년전 이집트 묘지벽화에서 발견된 342가지에 달하는 격투기술에 대한 묘사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종격투의 역사도 인류의 격투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일까?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 전에 이종격투(異種格鬪)의 의미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MMA(Mixed Martial Arts), NHB(No Holds Barred), Vale Tudo(발리 투도). 이종격투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이 단어들의 뜻은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격투' 내지는 '서로 다른 종류의 기술이 혼합된 격투'라는 뜻이다. 즉, 격투기처럼 싸우기 위한 기술이라기 보다는 여러 스타일의 격투를 포용하는 경기 내지는 환경을 의미한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격투기술이, 자유롭게 겨룰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이종격투는 등장할 수 없다. 따라서, 이종격투의 유래와 역사는 발레 투도(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뜻의 포르투칼어)나 NHB(무제한 무규칙)이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고대의 격투시합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의 격투 방식 판크라티움(PANKRATIUM 혹은 PANKRATION). 모든것을 의미하는 판(PAN)과 힘을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라는 말이 합성된 이 시합이야 말로 오늘날 이종격투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는 서양문화의 기초가 된 문명임과 동시에, 현대 체육과 이종격투의 근원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 조각예술, 체육, 이종격투 시합 마저 고대 그리스 문화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새삼 놀랍다. 더구나 금년에 제 28회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개최되어 더욱 그 연관성을 찾게 한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격투가 발달하여 이종격투의 뿌리가 되는 판크라티움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 실체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右.고대그리스의 코린트식 투구)

앞에서 격투기가 전투와 체육의 목적으로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얘기가 나왔듯이, 고대 그리스의 격투기도 군사훈련과 심신의 건강을 돕기 위한 체육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리스 체육을 대표하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성향을 볼 때, 전기를 대표하는 스파르타의 체육은 전차경기, 권투, 레슬링, 달리기, 창던지기, 장애물 뛰어넘기, 원반 던지기, 활쏘기등  오로지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체육이었다. 반면, 후기를 대표하는 아테네 체육은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한 운동뿐 아니라  건강한 정신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오늘날 스파르타식 훈련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스파르타의 교육은 엄격했다. 그것은 소수의 자유민들이 다수의 노예를 지배하고, 다른 도시 국가와 싸워 국가의 정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강한 신체와 정신력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통제와 군대교육 성격의 리쿠르구스(Lycurgus, B.C 850~800) 헌법을 만들어서, 모든 시민을 강인한 신체와 정신을 소유한 전사로 양성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일례로 스파르타인들은 남아(男兒)가 출생하면 곧바로 신체검사를 실시해, 신체 건강한 아이는 양육되고 허약하거나 불구자인 경우에는 검사관인 노인들에 의해 아포테에테(Apothetae)는 타우게토스산 근처의 동굴에 버려 늑대의 밥이 되게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스파르타의 소년들은 일곱살이 지나면 집에서 나와 아고개(Agoge)라는 단체 교육시설에 들어가 체육, 즉 격투 훈련을 받게 된다. 이들은 체조로부터 시작하여, 달리기, 뛰어 오르기, 권투, 레슬링, 수영, 사냥, 등산, 생존훈련등 성년이 될 때까지 철저히 군사훈련을 받는다. 교사들은 승부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동료들간에 싸움을 부추겼으며 전쟁시 식량부족을 대비해 도둑질까지 장려했다고 한다. 훈련소 소년들은 입소하자 마자 머리를 박박 밀고 겨울에도 알몸으로 지내며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내야 했다. 이러한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끝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된 자는 스스로 절벽에 뛰어내리길 강요받았다.

여담이지만 일본 격투 단체인 '판크라스' 에서도 입소때 머리를 박박 깎는데, 스파르타와 비슷한 것 같아 재미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판크라스의 훈련방식도 스파르타식 그 자체라고 한다.

스파르타에선 고된 훈련을 겪고 12세가 넘으면 외투 한장씩 지급받는다. 그리고 점차 훈련량을 늘려가 성인에 가까워 지면 권투, 레슬링, 그리고 이종격투인 판크라티움을 본격적으로 익힌다.

권투와 판크라티움은 나이 어린 스파르타인들에게는 금지된 항목이다. 레슬링을 연습하는데 치명적인 부상의 위험은 없지만 권투와 판크라티움을 체계가 잡히지 않은 소년들이 연습하고 겨루다간 큰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파르타식 판크라티움은 지금의 종합격투보다 더 룰이 자유로워서 타격과 관절기, 조르기뿐 아니라 물어뜯기나 눈을 후벼파는 행위도 용납되었다. 그 때문에 실제로 경기 중 손가락에 의한 할퀴기 기술에 의해 상대의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는 기록이 있고, 어떤 올림피아 판크라티움의 챔피언은 손가락으로 황소의 옆구리를 관통했다는 전설도 있다. 마치 가라데의 관수기술을 연상시키는 얘기인데 수백년간 성행하며 발전되어온 판크라티움 기술의 무서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左.로마시대 권투사 조각상)

스파르타인들이 7세 부터 피와 땀을 흘려가며 단련한 육체능력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운동경기인 올림피아에서 그 능력이 발휘되었다. 기원전 720년 아칸투스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이후 1세기 반 이상 올림픽 우승 기록 81개 가운데 46개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권투와 판크라티움 같은 경우 스파르타인들이 명예와 직결시키는 매우 중요한 종목이었기 때문에, 패배란 용납될수 없어 아예 출전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 인들이 얼마나 판크라티움을 용사로서의 명예와 전투 능력의 기준으로 삼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예이다.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경기는 전차경기와 격투시합이었다. 이것이 그대로 로마로 전수되지만, 로마시대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격투기가 융성했다면 고대 그리스는 맨손 격투기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융성하고 장려되었던 시대다. 기원전 천년경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권투와 레슬링이 첫 언급된 이래, B.C 700 년부터 기원후 393년 기독교에 의해 금지될때까지 지속되었으니까 천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권투, 레슬링, 판크라티움이  훈련되고 시합이 행해져 왔다.

[사진] 레슬링 시합에서 상대를 메치는 것을 묘사한 그리스 시대의 그림

그리스 맨손 격투술은 현대 이종격투의 근원뿐 아니라 레슬링과 복싱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레슬링은 가장 먼저 올림피아 종목에 채택되었다. 레슬링에는 오소파리, 아린딧시즈, 아크로치리스모스 라는 세 가지 방식이 있었다. 첫 번째의 오소파리는 현재의 프리 스타일 레슬링과 같은 것으로 상대를 어떤 방법으로든 쓰러뜨리는 기술이었고, 두번째 아린딧시즈는 굳히기 위주의 방식이며 항복을 의미하는 탭 아웃(tap out)까지 허용되었으며, 마지막 아크로치리스모스는 상대를 세번 바닥에 넘어뜨리면 이기는 방식이었다. 즉 그리스 레슬링은 현대의 그레코로망과 자유형, 서브미션 그래플링 시합을 전부 아우르는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권투는 레슬링과 더불어 기원전 천년 경부터 그리스에서 훈련되어온 격투기로, 아폴로 신이 아레스 신과의 싸움에서 승리 한데서 유래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복싱이란 말 자체도 그리스의 PUXOS(상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스 인들은 로마인들과는 달리 특별히 글러브를 사용하지는 않았고 대신 얇은 가죽끈을 동여매어 사용했다. 고대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외과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뼈가 부러지거나 광대뼈가 주저앉으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시합자체도 느리고 방어적인 경향이 강했고 훈련도 코치 밑에서 엄격하게 수련되었다. 그러나 호전적인 그리스 전사들은 가죽이나 상자형 헤드기어를 착용해서 시합하고 안전하게 시합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종종 방어구 없이 맨 얼굴에 펀치를 받으며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 로마시대의 직업 권투사의 얼굴은 흉하기로 유명했는데, 루실리우스라는 고대 복서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복서들은 나르시스처럼 샘물 가까이 다가서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서이다. 만약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비춰본다면 험악해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당신 자신을 미워하며..”  

이처럼 고대의 권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른 투기에 비해 사망률이 높은 격투기였다. 시합중에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잦았으며, 기원전 496년 올림피아 경기에선 상대를 잘못 쳐서 치사케한 권투선수가 우승이 취소된 경우도 있었다.

[사진] 현대 권투경기의 한 장면

또한 그리스 시대에는 오늘날 존재하는 대부분의 격투시설과 장비가 발명되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짐나지움, 팔래스트라는 현대의 체육관의 기원이고, 아카데미와 스타디움은 서양의 학교와 경기장의 어원이 되었다. 또한 그리스 시대에는 놀랍게도 헤드기어와 펀칭볼,샌드백까지 발명 되었고 심지어 마우스 피스까지 존재했다고 하니 현대의 격투가 이천칠백년전의 그리스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놀랍다.

그리스의 격투술과 이종격투시합은 수 백년간 융하며 많은 격투 영웅을 배출하게 되는데, 역사상 최강의 격투사라고 불리는 타소스 태생의 데오게네스는 75회 올림피아에서 종합격투 판크라티움에서 우승, 76회 77회 권투와 판크라티움 우승이라는 그리스 올림피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목숨을 건 검투시합도 즐겨 했는데 날카로운 못이 박힌 장갑을 착용하고 선수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묶인 상태에서 싸우는 데스매치(Death Match)등의 그야말로 무규칙 격투 시합을 통해 1425명이라는 선수를 사망케 했다고 한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데오게네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절대로 깨지지 않을 시합기록 이라 하겠다.

인류 역사상 군사훈련과 체육의 목적으로 격투기를 행한 나라와 민족은 많았지만, 고대 그리스 만큼 격투기가 융성하고 또 이종격투 시합이 지속된 나라는 없다. 그것에 대한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소크라테스의 말로 당시 그리스에서 격투기가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옅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시민은 운동의 문외한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신체가 가장 바람직한 상태가 되어야 정신적으로도 안정되며 유사시 국가의 부름에도 기꺼이 응할 수 있게 된다. 육체의 미(美)와 힘은 단련에 의하여 얻어진다. 강해지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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