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는 2차대전을 정점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젠 유럽에서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나 문화가 수입되지도 유럽으로 수출되지도 않게됩니다. 또한 독일에 진주한 러시아군은 반도네온의 명기 Doble A (알프레드 아놀드) 공장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60년대에 들어와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게엄령은 저녁에 사람들의 집회를 금지합니다. 이제 더이상 댄스 모임이나 밀롱가를 할 수 없게 된것이죠. 가끔 다른 문헌에서 탱고가 이시대에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랍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신화에 불과한 것이죠. 금지된것은 밀롱가를 비롯한 저녁의 댄스 파티였습니다. 한때 영화롭던 탱고 카페와 밀롱가들은 점차 문을 닫고 밴드들은 해산하게됩니다. 공산주의자였던 푸굴리에세는 연주회장보다는 감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탱고는 점차 사그러져들어가게 됩니다.
2. 콘티넨탈 탱고와 로큰롤
점차 탱고는 원조 아르헨틴이 아닌 파리에서 또 후에 영국에서 규격화된 콘티넨탈 탱고를 의미하게 되었고, 미국의 아마리칸 탱고가 아르헨틴 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정도였죠. 더군다나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은 탱고를 늙은이들의 문화로 생각하고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게엄이 풀리고 다시 무도장이 열렸으나 거기에 찾아온 젊은 이들은 이미 탱고와 밀롱가 대신 로큰롤과 스윙을 추고 있었습니다. 60년대부터 이어진 계엄과 군사정권, 그리고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미국문화에 의해서 탱고는 거의 사라져 갔습니다. 50년대의 황금시대를 아련히 기억하는 늙은 밀롱게로들 몇과, 여전히 살아남아 탱고를 연주하던 당시의 늙은 거장들.. 사람들은 탱고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3. 탱고의 암살자가 구세주가 되다. 엉뚱하게 구원은 반대편에서 왔습니다. 골수 땅게로들이 탱고를 죽이고 있다고 믿었던 인물들.. 코페스나 피아졸라같은 이들이 80년대에 탱고를 다시 살려낸 것입니다. "나는 과거를 사랑하지 않는다" 매정하게 선언한 피아졸라가 클래식으로 재즈로 또 피아졸라 식으로 새로 해석한 탱고는 전세계로 널리 퍼져나가고 결국 많은 사람들은 탱고 음악으로 또 춤으로 매혹해 들어온 것입니다. 또 코페스와 니에베스의 화려한 무대는 구식이고 볼품없는 것이라고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던 탱고를 미국의 심장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시키며 전세계에 탱고 팬을 심어 놓기 시작했죠. 아마도 어떤 이들은 피아졸라가 탱고를 부활시켰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탱고의 암살자"로 불리는 피아졸라가 말이죠... 하지만 세계 각국의 많은 젊은 탱게로/라에게 왜 탱고를 시작했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 (아마 90퍼센트 정도) "피아졸라를 좋아해서"라고 대답할겁니다. 나 자신도 그랬고, 나의 많은 일본인 친구들도 마찬가지니까요. 물론 우리도 피아졸라 음악은 춤추기 위한 음악은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만약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탱고 춤은 커녕 음악의 존재조차도 몰랐을것입니다.
4. 탱고 쇼의 성공 60-70년대에 이 들을 먹여 살린것은 일본의 탱고 팬들이라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이들 오케스트라들과 댄서들을 불러들여 공연을 하게 해서 말이죠. 70년대 코페즈와 니에베스가 기획하고 당대의 스타들이 출연한 탱고 아르헨티노는 전세계에 큰 성공을 거두며 탱고가 다시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죠. 이때 코페즈는 전통적인 곡 뿐 아니라 피아졸라의 음악도 사용해서 안무된 무대 탱고를 선보였는데, 후일 밀롱게로들의 혹독한 비난을 받게 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연속 오초, 간초, 볼레오의 발동작과 일초에 몇 바퀴를 도는 곡예적 회전들을 선보였죠. 80년대 지속적인 탱고쇼의 성공, 그리고 피아졸라의 성공, 또 처음으로 전문적인 무대 댄서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해내기위해 라울 브라보와 안토니오 토다로가 세운 토다로 스쿨의 기린아인 소토 형제와 밀레나 플렙스, 모라 고도이등의 뛰어난 젊은 이들이 코페스로부터 독립해 만든 Tango X 2 등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쇼는 죽어가던 80년대의 탱고를 다시 살려내기 시작했습니다.
5. 90년대, 화려한 복귀
90년대는 탱고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죠. 많은 유능한 댄서들의 미국과 유럽으로의 이주로 조금씩 탱고가 퍼져 나가고. 인터넷을 통한 전세계 연락망, 위성티브이를 통한 아르헨티나의 탱고 방송, 그리고 새로운 쇼인 Forever Tango의 세계적 성공, "탱고 레슨", "탱고" 등 유명 감독의 탱고 영화 제작.. 작지만 과거에 비한다면 정말 탱고 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탱고들은 거의 보여주기 위한 탱고, 외국인들을 위한 탱고라는 점에서 정통 밀롱게로의 춤과 거리가 있습니다. 안타깝게 피아졸라는 세상을 떠났지만 9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도 그의 음악의 인기는 오히려 높아지기만 하고, "탱고 아르헨티노"를 이어받은 새로운 쇼 "포에버 탱고"가 새로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의 성공은 오히려 "탱고 아르헨티노"를 능가하는 것으로 심지어 이곳 한국에까지 그 열기가 다다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