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수필과비평》 2024-06. 제20호
사랑의 자기장 / 남정언
지난겨울 어린 초록보리가 해변공원에 이식되었다. 초록보리는 제 몸을 바람에 싣고 자기 인생을 하늘에 맡겼다. 시간이 흘러 해풍이 보리이파리를 뒤적이고 햇살이 보리를 파고들고 달빛이 바닷물을 쓰다듬어 짙은 청보리로 쑥쑥 자라게 했다. 늦은 봄 다시 만난 청보리는 세상의 어떤 억울함이나 슬픔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우뚝 성장했다. 튼실한 줄기마다 알곡을 매달은 청보리가 되어 머리를 숙이고 있다. 이슬 보듬어 청아한 빛을 발하는 청보리를 보며 또 다른 풍요로움을 느낀다.
초여름의 보리밭이다. 청보리는 파도 소리에 깨어나 그들이 소곤대는 이야기를 들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으로 화답한다. 청보리엔 생명의 환희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 나는 어떤 자기장이 전달하는 짜릿한 전율을 사진으로 저장한 후에 휴대전화 프로필사진으로 선택했다.
얼마 전부터 친구들이 퇴직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퇴직하면 함께 밥을 먹고 여행도 자주 가자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한마디로 여유가 없다. 여유는 은은한 공기처럼 존재하고 아름다운 추억은 이유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 경제의 여유라는 삼박자 여유가 어우러져야 편하게 만날 수 있는데 시간과 경제는 되어도 건강이 나빠서, 마음은 있는데 돈이 없다는 핑계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아야 했다. 누구는 퇴직 후 이직에 성공했고, 누구는 귀한 손주가 태어났으니 아이를 돌봐야 했고, 누구는 병원 출근 도장을 찍고, 누군 집안일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나 역시 문학 공부하고 있으니 자연히 만남의 빈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프로필사진에서 청보리를 보았다며 연락이 오고 있다.
도대체 어느 곳에 있는 청보리냐? 청정해역의 청산도 청보리도 아니고, 유명한 고창 청보리도 아니면서 광안대교가 보이는 청보리라니 믿을 수가 없단다. 나는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모르는 곳인데 광안리 해변공원 청보리밭이라고 말해 주었다.
예부터 청보리는 먹을 게 없던 시절에 보리가 익기만을 기다리며 보릿고개를 견뎠던 구휼의 곡식이자 귀한 먹거리였다. 아이들에겐 주먹 놀이 '쌀밥 보리밥'에서 보리밥은 두 손으로 꽉 잡아야 이기는 놀이였고, 연인들에겐 데이트하기 좋은 은밀한 장소였으며, 정약용의 〈타맥행〉에서 보리타작하는 날은 희망의 노래, 배부른 노래, 걱정 근심이 없는 노래를 불렀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노동의 즐거움을 나누며 낙원이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던가.
청보리밭에서 사랑의 자기장을 느낀다. 일상생활에서 사랑을 받고 싶은 나의 자각, 마찬가지로 타인을 포함하여 길가의 나무도 사랑을 느끼며 갈구한다고 본다. 보리밭에서 증오와 미움의 감정, 힘들었던 과거 시간은 보자기에 싸서 격납시켜 두고 해풍에 익어가는 황금 보리처럼 연결을 잇는 만남이 필요하다.
곧 보리타작의 노래가 들려올 것 같다. 추운 계절을 견디며 성장하여 이제 수확을 앞둔 청보리의 자잘한 사랑을 찾아 전달하고 싶다. 내 주위에 강렬할 필요가 없이 평범하면서 따뜻한 행위, 청보리의 기운을 담은 좋은 바람을 보내고 싶다. 해변공원 청보리밭은 여유로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현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