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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스크랩 심층 구약 읽기 11 - 역대기상하
서용호 추천 0 조회 55 15.04.22 12: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심층 구약 읽기 11 - 역대기 상하

 

1. 내용 및 분해

 

  역대기의 히브리식 이름은 디브레 하야밈으로 그때, 그 사건들이란 뜻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책은 70인역으로는 파라레이포에논이란 명칭을 갖는데, 그 뜻은 생략된 사건들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역대기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후 제롬의 라틴어 번역에서 크로니코롬 리베르’, Chronicles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후부터이다.

 

 ‘생략된 사건들이란 70인역 의미에는 역대기에 대한 역설적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다. 파라레이포에논’, 역대기가 사무엘상하나 열왕기상하에서 다루지 않은 생략된 이야기를 다뤘다는 뜻이라기 보단 열왕기나 사무엘서에서 다루고 있던 과정적 사건들을 생략하고 결과에 해당할 수 있는 사건만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역대기의 내용은 다윗 통치부터 남유다 몰락까지의 역사를 골자로 하고 있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1. 서론: 역대상 1~9

- 족보목록의 모음1:1~54, 각종 이스라엘 지파 인명록2:1~9:1, 예루살렘 거주민 인명록9:2~18, 레위인의 상세한 업무9:19~34, 기브온 거주민 인명록9:35~44

 

2. 본론: 역대상 10~ 역대하 9

- 다윗의 통치대상 10:1~29:30, 솔로몬의 통치대하 1:1~9:31

 

3. 결미: 역대하 10~36- 남유다 왕들의 역사

- 르호보암10:1~12:16, 아비야13:1~22, 아사14:1~16:14, 여호사밧17:1~20:37, 여호람21:1~20, 아하시야22:1~9, 아달랴22:10~23:21, 요아스24:1~27, 아마샤25:1~28, 웃시야26:1~23, 요담27:1~9, 아하스28:1~27, 히스기야29:1~32:33, 므낫세33:1~20, 아몬33:21~25, 요시야34:1~35:27, 여호아하스36:1~4, 여호야김36:5~8, 여호야긴36:9~10, 시드기야의 통치36:11~21, 이후 고레스 칙령36:22~23

 

2. 배경

 

  역대기는 크게 아담 계보부터 시작해 페르시아 고레스 왕 유다포로 귀환령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 저작시기는 최소한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에스라, 느헤미야 활동까지 담고 있으므로 바벨론 포로 후기를 지나 본국 귀환 후 국가재건 시기의 역사적 정황에서 기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쓰인 역대기는 과거 출애굽 이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전으로 전수되어 온 역사적, 신앙적, 기록내용들을 뚜렷한 기록 목적의 바탕 위에서 구성했음을 보게 된다. 그 뚜렷한 기록 목적은 이스라엘 국가재건에 필요한 미래지향적 가치관, 그 중에서도 신전 중심, 예배 중심, 신앙 중심의 회복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하나의 신앙공동체로 규정함으로써 다윗- 솔로몬의 치적 중 특히 성전건축과 성전 중심 예배제도 확정, 제사장인 레위인들의 성전 중심 직무부담, 에스라, 느헤미야의 활동과 성전재건과 율법 재건, 율법의 올바른 시행을 위한 종교적, 사회적 조치들을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신앙공동체로서 지향해야 할 방향성과 가치관을 분명히 제시해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기록목적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의 관점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신앙공동체로 규정한 점인데, 이러한 규정이 정치적 타협과 상호배려의 결과로 보는 해석이다. 정치적 타협의 대상은 단연 포로귀환을 허락한 페르시아왕 고레스다.

 

 서슬 퍼런 다른 열강들의 방법론과 다르게 고레스 칙령으로 알려진 친 식민지주의 정책을 사용한 고레스에 의해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율법학사들이 식민지 민족으로써 정체성을 내세우는 데에는 현실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배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타협은 부정적인 견해로 발전되기 보다는 상호배려의 결과로 집중되는데, 도리어 사무엘서나 열왕기서가 갖고 있는 다윗, 솔로몬의 부끄러운 모습을 철저히 삭제하고 성전, 제의, 율법 중심의 모델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스라엘왕조에 대한 영웅성은 영웅성대로 강조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는 성전이나 제의, 율법이란 종교적 주제로 전환함으로써 식민지 열강과 피식민지민족간의 대립을 피해가는 양동전략의 결과물로 평가받는 것이다.

 

 하지만 심층적 차원, 그리스도론적 차원에서 본 역대기는 성전과 제의, 율법 중심으로의 집중을 사무엘서, 열왕기서에서 나온 사건들을 통해 도출된 통합적 관점integration view으로 다룬다는 점에 그 심층성이 있다. 이제부터 그 심층 차원을 살펴보겠다.

 

3. 역대기 심층 묵상

 

1) 다윗 통치의 심층 - 성전, 제의, 그리고 율법

 

  다윗-솔로몬 통치내용을 기록함에 있어 역대기는 사무엘서에 기록된 다윗-솔로몬 선정 과정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생략했다. 대신에 사무엘서에서는 언급이 없던 내용이 추가되는데, 그것은 성전건축을 위한 다윗의 준비, 성전예배 제도의 기구조직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역대기서에 나타난 다윗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소개되는데,

 

  첫째, 다윗의 인간적 실수, 허물 등은 생략되어 있고,

  둘째, 다윗 왕국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이 된 역사 과정 또한 생략되어 있고,

  셋째, 왕위계승의 특성, 즉 다윗-솔로몬으로의 승계를 매우 자연스럽게,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고 있으며,

  넷째, 다윗 통치의 중심 내용이 종교적 제의제도의 확립, 행정기구의 조직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대기 내용은 앞선 장에서도 밝힌 것처럼 정치적 타협, 상호배려를 통한 이스라엘 민족성의 확립이란 표면적 관점 외에도 심층적 깊이를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합적 관점이라 볼 경우 그것을 사무엘서와 열왕기하에 다루어진 내용들에 대한 결과론적 묵시로 보는 것이다.

 결과론적 묵시란 다윗 왕국을 향한 깊은 향수와 동경, 왕위계승의 무리 없는 이어짐, 그 절정으로 다윗 통치가 종교적 제의제도의 확립에 집중된 것이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서 다뤄진 다윗의 이방적 속성의 드러남을 통한 중심성 도출이란 결과론적 차원의 잠정적 상태가 구현한 상태를 뜻함이다. 다시 말해 역대기의 기록은 단순한 의도적 누락이나 정치적 타협에 의한 생략 등 동일 역사 관점에 대한 의도적 방향 설정이라기보다 잠정적 상태로 부각된 성전 중심, 다윗 통치의 항구적 열정이 한 개인으로서 하나님과 대좌하게 되는 존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신앙 표지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유일한 신앙의 표지로 부각된 왕위계승, 성전 중심, 통일왕국의 잠정적 지속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이 눈에 보이는 표면역사의 찬란함 강조일까. 심층 관점에서 보는 성전, 왕위, 통일왕국은 환상과 눈에 보이는 소망을 넘어선 소망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 구원사건으로서의 계시 절정이다.

 

 역대기를 표층 차원에서만 이해하면 그것은 잃어버린 포로시대에 옛 향수인 통일왕국과 성전을 그리워하는 기대와 소망, 이를 근거로 한 목표설정의 채근으로만 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패턴이 반복될 경우 나타나는 현상은 인간적 목표 실현을 향한 종교적 소비의 창궐 뿐이다.

 

 종교적 소비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만약 역대기가 표면 역사에 나타난 포로 시대 비참을 극복하기 위한 정체성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그 기록 목적 역시 자연스럽게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집중하게 된 성전 중심의 향수와 목표설정에 매달리게 된다. 그런데, 제의 중심, 중교 중심의 목적성이 표면 역사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복권의지에 집중된다면 표면 역사에서의 실제 혁명적 변화의 갈망을 내세나 타계를 갈망하는 종교적 주제의 관점으로 수평 이동시키는 결과만을 낳고 만다. , 종교적 향수가 보이는 역사, 땅의 역사에 대한 좌절된 기대에 대한 환상적 투영에만 매달리게 될 때, 성전 중심과 제의 중심의 논지는 보이는 역사에 대한 실제 욕구를 보이지 않는 역사, 영의 역사에 투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영의 신비를 욕구와 원죄성에 연루된 인간 욕구의 차원으로 도구화하는 종교적 영리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 통치에 나타난 성전건축과 제의 중심의 집중은 어떤 핵심을 쫓고 있는가. 그것은 결론으로서의 잠정적 심층인데, 그 심층엔 구원 신비가 담겨 있다.

 

2) 솔로몬 통치의 심층 - 보이는 것을 넘어선 소망, 그 구원 실재에 대해서.

 

솔로몬 통치에 있어서 열왕기서에 있는 내용과는 다르게 생략되어 있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역대기는 솔로몬에 관한 내용을 다룸에 있어 그의 실수나 열왕기상 11장에 나타난 반란과 반역의 기록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

  둘째, 열왕기상 2장에 나온 솔로몬 통치를 위한 다윗 유언과 그에 따른 솔로몬의 집행, 두 창기의 분쟁기사, 행정관료 명단 임명사건, 솔로몬의 왕국 이야기와 그의 지혜, 시에 관련된 기록들이 생략되는 등 솔로몬의 성전건축과 관련된 내용 외에 이전 왕위 계승과 왕권 강화, 중앙집중제로 상징되는 솔로몬의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내용들이 철저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점이다.

 

 역대기가 다윗 통치에서 성전 중심과 제의 중심, 율법 중심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제 솔로몬의 통치에서는 전체 아홉 장의 내용 중 여섯 장이 성전건축과 관련된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대한 열망을 단순히 보이는 성전의 건축열망에만 매달려선 곤란하다는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스도론의 관점에서 예수는 보이는 성전의 철저한 해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인가. 보이는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을 중요시하려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 진정성의 고조인가. 그 또한 아니다.

 

 보이는 성전의 재건욕구는 표면역사에서의 정치적 강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때, 성전 중심의 기록 의도는 정치적 타협이지만, 그 속내는 민족의 독립이란 테마를 잊을 수 없는 피식민지 주민의 정치적 욕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유대이즘, 시오니즘의 근원적 욕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성전은 보이지 않는 성전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진정성으로만 읽어야 하는가. 그 또한 원죄성의 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의 진정성을 품으면 품을수록 그 진정성은 종교적 환상을 요구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보이는 소망의 연속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정치적 욕구는 배제되었지만 여전히 종교적 욕구, 내세에 대한 욕구는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역대기는 과연 이러한 악순환만을 조장하는 책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열왕기서에서 밝혀진 바 있듯 솔로몬이란 존재 자체는 다윗으로 상징되는 중심성을 받아들이기 위한 인간 실존의 철저한 공허와 생명의 역동성이다. 역대기는 솔로몬이란 공허의 발견으로 점철된 열왕기서의 결론적 상태로 솔로몬의 행위전반을 표현하는 성전을 다루고 있다. 이 성전은 보이는 것을 발판으로 했으나 보이는 것 안에서는 이뤄낼 수 없는, 보이는 세계 안에서의 공허를 발견케 하는 발견태로서의 생명, 완전한 부활을 보게 해주는 의미로서의 성전이다. 이 성전이 보이는 세계에서의 구원 사건을 철저함으로 일으켜낸다.

 

 구원은 우리 안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종교적 환상과 기대, 혹은 정치적 메시야에 대한 열망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하지만 우리의 구원 역사, 그 한 복판으로 뚫고 들어오는 생명의 역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대두된다. 다윗 통치에서부터 이어져 온 율법 중심에 대한 열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문제다.

 

3) 제의, 율법의 심층 - 스스로 있는 자의 말씀하심.

 

  역대기상 9장에서는 특별히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의 상세한 업무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앙공동체임을 강화하고자 하는 율법학사이자 역대기서의 기록자로 추정되는 에스라의 기록목적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신앙공동체 회복의 조건을 실패의 원인이 율법준행의 성실성 여부에서의 탈락으로 보는 것이 정당한 그리스도론적 역대기 묵상일까.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제대로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발생했다고 보는 시각은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잘못된 접근이다.

 

 절반은 맞았다는 의미는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하심의 기록이란 사실의 긍정이란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는 율법은 그것의 내용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율법은 바로 율법을 말하고 있는 화자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이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 율법은 스스로 있는 자의 존재 드러냄, 말씀하는 그 말씀의 주체가 하나님이란 사실의 발견과 반응의 모든 것이다. 이 발견과 반응에는 필연적으로 안의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의 없음인가. 바로 사랑의 없음이다. 이때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아무 능력도, 근거도 없음을 역설적으로 스스로 있는 자의 말씀하심 앞에 노출됨으로써 인지하는 것이다.

 

 역대기에 나타난 다윗-솔로몬 통치에서의 잠정적 결론 상태는 바로 스스로 있는 자의 말씀과의 반응 근거, 그 절정으로 제시된 성전, 제의, 그리고 율법이다.

 

 십계명의 절정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있는 자’, 그 말씀하시는 말씀주체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하면 할수록 다른 신을 쫓는, 아니, 그 자체가 다른 신일 수밖에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십계명 중 바로 이 첫째 되는 계명, 신약시대 예수가 가장 으뜸 되는 계명으로 밝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절정의 감각은 말씀주체 앞에 서는 순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철저한 없음으로서의 다른 신인 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나타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근거가 무너지는데, 어떻게 그것이 성전이며, 제의이며, 율법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 사건이 성취되었기에 가능하다.

 

4) 유다 왕국의 심층 - 십자가와 부활의 점강순환漸强順換

 

  역대기하 10~36장에서 걸쳐 기록된 남왕국 유다 왕들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철저히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가 배제됨과 동시에 유다 왕들의 묘사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철저성을 부각시켰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론의 심층으로 본 역대기에서 나타난 유다 왕국의 연대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서 유다 지파의 예표로서 제시된 그리스도의 역동성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역동성은 철저하리만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이 극적 대비를 통한 점강순환의 깊이를 지향한다.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 그리스도가 출현한다는 이 예고가 결국 표면 역사에서도 예수의 탄생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우리는 신약 복음서의 기록으로 확증하고 있다.

 

 역대기 기록자는 당대 시대상황의 한계, 피식민지 주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포로됨을 역사의 단순회귀나 보이는 세계에서의 복권열망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성전과 제의, 그리고 율법은 인간 안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인간의 심연, 그 깊은 곳으로 파고든 하나님 사랑의 절정을 통해 새롭게 열렸음을 나누고자 했음을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이란 철저적 단절과 철저적 생명출현이란 통합적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안에서, 우리 안에서의 십자가와 부활은 점층적으로 그 깊이를 더해가야만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며, 성전을 종교적 환상이나 정치적 타협에 내어 던지는 일을 막는 길이며, 옛 자아로서의 의 극단적 공허와 새 몸으로서의 의 극단적 부활을 긍정하는 구원의 길이 되어줄 것이다. 역대기의 기록 역시 우리에게 이러한 그리스도론의 지평으로 읽혀지길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참고문헌

 

Wurthwein, E.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Oxford and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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