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스물네번째 등정
1.산행일시 : 2004. 12. 11 (토요일)
2.산행구간 : 미시령→상봉→신선봉→큰새이령→마산→진부령
3.산행일정
07:20 미시령(산행시작)
08:19 상봉(1,239m, 08:25)
08:48 화암재
09:07 신선봉(1,204m, 09:15 출발)
10:13 큰새이령(大間嶺)(10:25 출발)
11:38 병풍바위(1,058m)
12:00 마산(1,052m, 12:10 출발)
13:40 진부령(KPS 백두대간종주등반기념비)
4. 교통
◉ 갈 때
◆ 강릉 →속초 : 버스(05:50 출발, 요금: 5,900원)
◆ 속초 →미시령 : 택시(요금: 17,000원)
◉ 올 때
◆ 진부령 →홍천 : 버스(14:35 출발, 요금: 7,900원)
◆ 홍천 →동서울 : 버스(16:45 출발, 요금: 7,800원)
5. 산행기
이제 발길을 멈춰야 한다.
북녘 땅 백두산 병사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한반도의 등줄기,
1625여km 중 고작 680여km를 왔을 뿐인데....
더 이상 갈 수 없는 철조망 너머 나머지 940여km의 백두대간은 언제쯤 밟을 수 있을까?
남은 삶을 다 하기 전에 북녘의 대간길도 밟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혼자 대간길에 나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오로지 홀로 산행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혼자 생활함으로서 산중에서뿐만 아니라 산행준비부터 산행 후까지 모든 것을 도움도 없이 혼자 해야만하였다.
산행에서 먹을 도시락 및 간식준비부터 산에 다녀온 후 세탁까지도...
어쩌다 회사 체육의 날 행사로 소풍 삼아 야트막한 동산을 올랐을 뿐 30년 가까운 세월을 산과 멀리하며 살아왔는데 재작년 삼랑진양수지점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인근 영남알프스에 푹 빠져 자주 산을 찾다가 지리산 종주를 하려고 계획한 것이 백두대간 길로 빠져버렸다.
한편 이 나이까지 살아오는 동안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 없고 이루어놓은 것도 없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며 무엇인가 삶의 변화를 주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힘들겠지만 도전해보자고 생각한 것이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지키기로 하였다.
첫째, 남의 도움 없이 홀로 산행하자.
처음 시작할 때 나와 의기투합하여 함께 가겠다는 사람이 있었다면 굳이 혼자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 않았을 텐데 같이 산행할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에 홀로 가게되었고 그러다가 끝까지 혼자 가보자고 한 것뿐이다.
둘째, 마루금을 성실히 밟고 가자.
‘지리산 종석대’는 철조망 울타리에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어 갈 수 없었고, ‘대청봉에서 희운각’ 구간도 출입통제를 하는 구간인데 중청산장에서 빤히 보이는 지점이라 소청으로 우회하였다.
하지만 점봉산에서 내려와 한계령 휴게소로 가는 구간에서는 대다수의 대간꾼들이 하듯이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대간 능선을 고집하기도 하였고, ‘삽당령’ 날머리에 잘못 내려와서는 다시 되짚어 올라가서 마루금을 제대로 밟고 내려오기도 하였다.
셋째, 반드시 남에서 북으로 진행하되 한땀 한땀 이어가자.
어떤 일이 있어도 역종주 하지 말고 땜방 종주를 하지 말자고 했는데 산불경방기간 때문에 ‘육십령 - 신풍령’을 건너뛰고 다음구간을 진행하다가 경방기간이 끝난 후에 잇게되었다.
넷째, 낮에만 운행하되 일찍 시작해서 일찍 하산하자고 했는데 “육십령 - 빼재”구간을 당일에 종주 하고자 육십령에서 사갓재까지 야간운행을 한 것을 빼고는 충실히 지켰다.
2003년 2월 7일 지리산 천왕봉을 밟은 후로 1년 10개월,
그동안 사업소를 세 번 이동하였는데 17번째 등정인 피재까지는 삼랑진양수지점에서 18번째부터 21번째인 구룡령까지는 삼천포사업소, 구룡령에서 마지막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졸업은 영동사업소에서 맞게되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34개구간으로 나누어 24회 등정으로 완주하였다.
‘중산리 - 고기리’, ‘피재 - 삽당령’구간은 2박 3일로, ‘사치재 - 육십령’, ‘갈령 - 버리미기재’, ‘벌재 - 고치령’, ‘고치령 - 화방재’, ‘구룡령 - 한계령’, ‘한계령 - 미시령’구간은 1박2일로, 나머지구간은 주로 토요일이나 공휴일을 택하여 당일 산행을 하였다.
비용은 이것저것 따져서 어림잡아 1구간 당 10여 만원은 소요된 것 같다.
10만원×34구간 = 340만원(?), 만만치 않은 비용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등산을 한 것은 지금부터 따져봐도 2년 3개월, 경력이 일천하기 그지없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스스로 체득하여 나만의 노하우도 갖게되었다.
이제는 산에 대해서 남들과 어느 정도 대화가 될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초보 산꾼이다.
백두대간을 처음 시작하던 지리산에서의 2박3일은 겨울진눈깨비에 옷과 신발이 흠뻑 젖어 호된 신고식을 치렀는데 오히려 첫걸음에 고생한 경험으로 그 후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올해 들어서는 우중산행은 거의 없었으니 좋은 날씨를 허락한 것도 감사하다.
그 동안 발가락에 물집 몇 번 잡힌 것 외에 별 다른 부상은 없었고, 또 남들이 자주 호소하는 무릎통증도 없이 건강하게 마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아쉬운 것은 산행구간을 짧게 나누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유유자적하며, 산을 느끼고 자연과 하나가되는 산행을 했어야하는데 들머리 접근여건 등을 고려하여 구간을 길게 잡는 바람에 조급하게 쫓기듯 바쁜 걸음을 한 것이 후회스럽다.
수양이 덜 된 탓인가?, 이상하게 대간길에만 들어서면 극기훈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계를 자주 보게되고, 이를 악물고 고통을 인내하며 미련하게도 빨리 가려고만 한다.
천천히 느긋하게 가자고 다짐하고는 “천천히, 여유롭게”를 입으로 뇌까리며 가는데도 어느새 발걸음이 빨라지곤 한다.
다음에 또 다시 백두대간이나 정맥을 밟을 기회가 생긴다면 텐트와 침낭을 챙겨서 가련다.
가다가 힘들면 쉬었다가고 머무르고 싶으면 야영도 하면서 밤하늘의 별들도 헤아려보고, 숲을 스쳐 가는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도 들으며 푸근한 산 속에 파묻히고 싶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세속에서 훌쩍 떠나....
5시 50분에 강릉을 출발한 버스는 1시간이 채 안되어 속초에 도착한다.
터미널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올라 여명이 밝아오는 설악으로 향한다.
미시령 고갯마루 입산통제소에는 이른 시각이라 서인지 감시원이 보이지 않는다.
감시원이 볼세라 서둘러 산행준비를 하고는 입산통제소 건너편 주유소 절개지 위를 따라가는 능선을 오른다(07:20).
가을 같은 날씨는 방풍쟈켓을 벗고 산행을 해야할 정도로 푸근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하고 거세기로 소문난 미시령 바람도 마지막 대간길을 축하라도 하려는지 잔잔하기만 하다.
호흡이 거칠어질 무렵 널찍한 공터가 나타나며 우측으로 화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보이고, 샘터로 추정되는 우묵하게 파인 곳은 물이 마른 채 낙엽으로 덮여있다(07:52).
오름길을 이어가 전망바위에 오르니(08:02 - 08:07) 미시령 계곡 건너편으로 너덜을 뒤집어 쓴 황철봉과 그 너머로 대청봉 중청봉이 근엄한 모습을 나타내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니 울산바위와 속초시, 동해의 푸른 바다가 가깝게 다가온다.
완만한 오르막길에 너덜지대을 지나가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이어서 노적가리 모양으로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이 우뚝 서 있는 상봉(1,239m)에 당도한다(08:19 - 08:25).
저 멀리 군사시설물이 아스라이 보이는 곳이 향로봉이며 능선 아래로는 실금같은 도로가 백두대간 따라 이어진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갈 수 없는 휴전선 남쪽의 백두대간이다.
화암재로 가는 가파른 암릉에는 밧줄이 등장하고 북쪽 응달에는 얼마 전에 내렸던 눈이 얇게 깔려있는데다가 군데군데 얼음도 얼어있어 내리막길이 수월치가 않다.
사거리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 내려선다(08:48). 표지판이나 이정표는 없지만 이 곳이 화암재다.
오름길에 좌우 갈림길이 나오고 등로 바닥에 신선봉 갈림길이라고 적은 녹색코팅지가 돌에 눌려져있다. 어느 선행자의 사려 깊은 배려에 머리가 숙여진다(09:00).
신선봉은 대간길에서 동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서 5분쯤 진행하니 커다란 바위 너덜로 이루어진 작은 봉우리가 셋이 나타나는데 그 중 가장 높게 보이는 가운데 봉우리에 올라선다(09:07).
정상에 올라서니 건너편 상봉 너머로는 설악산과 동쪽으로는 하늘과 맞닿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정상 바로 밑에는 헬기장이 옹색하게 자리잡고 있다.
신선봉에는 “금강산 신선봉”이라고 쓰여진 나무판자가 바위면에 붙어있다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
좌우 봉우리를 옮겨가며 찾아보지만 서쪽 봉우리에는 군사용 진지만 보일 뿐 신선봉 정상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아무런 표지물도 발견하지 못한 채 갈림길로 되돌아온다(09:20).
지도상에 ‘큰바위’로 표기된 암봉을 지나 능선을 따라 평탄하게 가던 직진길을 나뭇가지를 꺽어 막아놓아 지도를 보니 ‘길주의’지점이다. 여기서 대간길은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09:33).
어느덧 내리막은 완만해지며 울창한 관목사이를 지난다.
널찍한 공터에 헬기장이 나타나고(09:57) 내리막길을 조금 더 이어가며 큰새이령(大間嶺)에 도착한다(10:13).
샛고개라고도 불리는 대간령은 과거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길목으로 고갯마루에는 옛 집터의 자취인 듯 무너진 돌담이 보이고 그 돌무더기 사이에 각목에 나무판대기를 잘라 투박하게 만든 이정표가 대간령임을 알려주는데 그나마 방향표식 중 신선봉 방향은 떨어져 없어진 채 마산방향만 남아있다.
아마도 신선봉 방향은 출입금지 구간이라 일부러 떼어버린 것 같다.
이곳 대간령까지 설악산국립공원이며 신선봉 오르는 길목에는 자연생태계보존지역이기에 출입금지한다는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안내판이 서 있다.
새벽에 강릉터미날에서 간식용으로 구입한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고는 대간령을 떠난다(10:23).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을 힘들게 오르며 첫 번째 암봉에 올라서고(10:41) 다시 조금 더 진행하면 너럭바위와 함께 멋진 바위봉을 지나고 이어 바위너덜을 오르니 두 번째 암봉이다(10:50)
암봉을 뒤로하니 완만한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길 주변에 군데군데 참호가 보인다.
안부에 다다르고 병풍바위봉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랜만에 산을 찾은 탓인지 산행한지 고작 4시간 지났는데 오르막에서 허벅지 근육이 뭉치면서 걷기가 힘들어진다.
길가에 평평한 바위가 보여 주저앉아 등산화를 벗고는 허벅지를 주무르고 나서 다리를 올린 채로 한참 동안 누워있으니 뭉친 근육이 서서히 풀린다.
모처럼 사용하지 않던 근육에 과부하가 걸린 탓에 천천히 가라는 신호인 것이다.
떠드는 소리가 들리며 20여명쯤 되는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내려온다.
어디서 오냐고 하기에 미시령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자기들도 오늘이 대간 졸업날이고, 아침에 미시령에서 출발하려는데 관리공단 직원이 입산을 제지하는 바람에 진부령에서 역종주 한단다.
아침 일찍 출발한 탓에 관리공단 직원을 만나지 않은 것 같다며 나보고 운이 좋다고 한다.
지루한 오르막에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많은 표지기가 보인다.
병풍바위를 우회하는 길이다. 직진의 오르막을 몇 걸음 더 가니 병풍바위봉에 도착한다(11:38).
건너편 산너머로 알프스스키장이 있는 홀리 마을이 보이는데 관광지 개발 탓에 건물들이 마치 도시를 옮겨놓은 듯 하고, 멀리 칠절봉에서 향로봉에 이르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은 언젠가는 밟아야할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다시 오르는 듯 하더니 좌우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마산’방향으로 몇 걸음 더 걸으니 정상부에 돌탑과 국기게양대 기초대 그리고 쇠파이프를 잘라 매달아놓은 빨간 종이 서있는 대간길 마지막 봉우리 마산(1,052m)에 오른다(12:00).
근처에 넓은 공터와 철구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군부대 주둔지였던 곳인가 보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끝났다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종을 힘차게 세 번 울린다.
처음 종소리는 건강하게 백두대간을 마치게 된 것에 대한 감사.
두 번째 종소리는 화목한 가정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
세 번째 종소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격려와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
완만하게 고도를 낮추던 능선길은 작은 나무이정표가 매달려 있는 갈림길지점에 이른다. 능선을 따라 직진하는 길은 스키장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고 대간길은 우측 사면으로 내려가야 한다.
급한 비탈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잘려진 대간 마루금 아래로 스키장이 나타난다.
진부령알프스리조트 스키장이다. 이젠 주 5일 근무가 보편화되었는지 토요일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즐기고 있다.
스키장 절개지 가장자리를 위태롭게 내려가 스키장 리프트 옆을 지나 전나무 숲으로 들어가 산책로를 따라가면 커다란 시계탑이 이색적인 콘도 뒤편 공터에 내려선다(12:45).
야트막한 둑을 넘으면 포장도로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50m 가량 가면 오른쪽으로 임도가 나타나며 이 임도를 따라가다가 군부대 훈련장을 통과하여 군부대 정문에 이른다.
군부대 앞 도로를 지나 초소에서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오르는 산길을 가다보면 야산을 넘게되고 비닐하우스 밭이 보이는 시멘트도로에 내려선다(13:01).
시멘트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외딴집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자 시멘트포장길이 끝나며 좌측으로 임도 갈림길이 열린다(13:17).
임도를 따라가면 잠시후 사슴목장인 진부령관광농원이 나오고 농원 건물을 지나면 시멘트도로로 연결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우측에 표지리본을 보고 널찍한 임도로 들어서면 이동통신 안테나와 더불어 SK텔레콤 기지국이 나타난다(13:30).
길은 평탄한 숲 속 오솔길로 이어지고 숲을 지나니 도로 절개면 아래 아스팔트도로가 나타난다.
포장도로 절개면의 가파른 비탈에는 가느다란 로프가 걸려있지만 불안하여 스틱에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도로에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조금 50m 쯤 내려가니 도로 옆에 높이가 2.5m는 됨직한 우리회사 백두대간종주등반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뛰어가 반갑게 얼싸안고 입을 맞춰본다. 이런 곳에서 KPS 백두대간종주등반기념비를 만나다니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에 갑자기 콧등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한전기공에 몸을 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자랑스럽고 감동적인데 하물며 2,000길 백두대간을 따라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남달리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떨어져서 까만 대리석에 “창사10주년기념/백두대간종주등반기념비/한전기공주식회사”라고 새긴 비석과 그 옆에 “백두대간 보존회원”라 새긴 비석에는 가나다순으로 28명의 눈에 익은 이름들이 새겨져있다(13:40).
비석 뒷면에는 “조상 대대로 물려온/ 조국강산/ 나라도 겨레도/ 하나이기에/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리다”라는 한전기공백두대간종주등반대의 염원을 새겨놓았다.
여기까지 나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한 배낭, 스틱, 지도, 나침반 등을 비석 앞에 벗어놓고 기념사진을 찍고 일어서려다가 아쉬움에 다시 주저앉아 카메라 쥔 팔을 뻗어서 셀프로 대간 졸업사진을 박는다.
아스팔트도로를 돌아 시멘트 계단을 내려와 해발 520m 진부령 고갯마루에 내려선다.
길가에는 강원도의 상징인 곰 조각이 있고 건너편에는 큼직한 진부령 표지석과 그 뒤 향로봉 전적비가 있다.
“진부령 문화 스튜디오” 옆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수많은 표지리본들은 북녘 대간길을 이어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하는 백두대간 종주자들의 아쉬운 마음의 표현이리라.
34일 간 줄곧 외롭게 홀로 걸어왔는데 이 자리에 서 있는 이 순간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진부령 표석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는 스틱을 접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어서 빨리 우리 민족이 하나되어 “홀로 가는 백두대간”이 북녘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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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이하셨습니다
대단한 분이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