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간집 花間集>
-온정균 외 지음
<화간집>은 중국 오나라 후촉의 조숭조가 편찬한 사선집(詞選集)입니다.
이 사선집에는 만당(晩唐) 최대의 사인(詞人)인 온정균을 비롯하여 위장, 구양경 등 18명의 작품 500여 수가 실려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사(詞)란 무엇일까요?
아는 분은 아실 테고, 모르는 분은 모르실 테니, 아는 분은 패스하고 모르는 분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는 악보에 가사를 메운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래 가사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사를 먼저 쓰고 거기에 멜로디를 붙인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악보에 시인들이 가사를 붙인 겁니다.
그러니 내용이 쉽고,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되지요.
이건 동서나 고금이나 똑같은 건가 봅니다.
노래 가사가 사랑타령인 거 말이에요.
에효.... 그놈의 사랑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며칠 동안 이 <화간집>을 읽었습니다.
아니, 그냥 읽은 게 아니라 일했고, 어젯밤 늦게 일을 다 마쳤습니다.
일을 하다가 세 편의 <사>를 따로 저장해 두었고, 내 나름대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행복한 책방에 소개하기 위해서요.
아, 이 투철한 책방 사랑에 어떠한 보상이 따를런지...
한 편은 장필(張泌)의 사입니다.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사입니다.
홀로 싸늘한 계단에서 달빛을 바라보네.
진한 이슬 향기 꽃이 핀 작은 뜰에 퍼져 있네.
수놓은 병풍 앞에서 근심을 지고 있는데 한 줄기 등빛이 비껴 흐르네.
사랑이 끝나고 난 뒤
세상에는 그대의 집까지 가는 길이 사라져버렸네.
마음과 꿈으로만 하늘 끝까지 그를 찾아 헤맨다네.
浣溪沙 其三
獨立寒堦望月華 露濃香泛小庭花 綉屛愁背一燈斜
雲雨自從分散後 人間無路到伷家 但憑魂夢訪天涯
어떻습니까?
아름답지 않나요?
특히 저는, 사랑이 끝난 뒤 연인의 집까지 가는 길이 사라져버렸다는, 이 대목에서 감탄을 했지요.
사에는 이렇게 안타까운 이별 노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청춘 남녀가 만나면 기어이 사단이 나고야 만다는(!), 그렇지요, 남녀상열지사에 대한 노래도 있답니다.
구양형(歐陽烱)의 사입니다.
함께 만나 말을 잊고 구슬 같은 눈물만 흘린다네.
술이 오르자 다시 기쁨을 나누었네.
봉황이 그려진 병풍 앞에 원앙을 수놓은 베개를 베고 금빛 이불에 누웠다네.
난초와 사향의 은은한 향내 속에 가파른 숨소리가 흘러나오고
비단 옷의 촘촘한 올에 피부가 비쳐나는데
이때에도 여전히 박정하다고 원망하네.
浣溪沙 其三
相見休言有淚珠 酒闌重得敍歡娛 鳳屛鴛枕宿金鋪
蘭麝細香聞喘息 綺羅纖縷見肌膚 此時還恨薄情無
아마도 떠났던 애인이 다시 돌아온 모양입니다.
애인을 다시 만난 기쁨 반, 원망 반.
그동안 왜 이리 무심했냐고 여인이 눈물을 흘리겠지요.
그리고 술상이 차려지고 몇 잔의 러브샷을 날리다 보면...
결국엔 아까부터 깔려 있던 이부자리 쪽으로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어느새 촛불은 후욱~ 불어 꺼지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네, 미성년자 관람불가 장면입니다.
하지만 운우의 정을 나누다가도, 여인은 무심했던 애인을 탓하며 한번씩 앙탈을 부리나 봅니다.
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스킬이지요.
내친 김에 한 편 더 감상해 보실까요?
이번에는 피 끓는 청춘남녀의 사랑,
역시 구양형의 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사랑에 선수인 듯하네요.
배 젓던 노를 멈추었네.
무궁화울타리 너머로 대나무 다리가 놓여 있네.
물 위에서 노닐던 남자와 모래사장에서 머물던 여자가
서로 돌아보다가
웃으며 파초를 가리키더니 둘이 함께 숲에 있네.
南鄕子 其二
畵舸停橈 槿花籬外竹橫橋 水上遊人沙上女 回顧 笑指芭蕉林裏住
네, 그렇습니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원나잇스탠드입니다.
근데 우리 세대에도 흔치 않는,
아니, 요즘 세대에는 흔한가?
암튼, 내 청춘 때에는 흔치 않았던, 아니 극히 드물었던,
그 말로만 듣고 영화로만 보았던 원나잇스탠드를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에 저리도 뻔뻔히?
게다가 노래 가사로까지?
나는 도대체 세상 어찌 살고 있는 건지.... 에고에고, 부러워라... 잉? 이건 아닌가?
(그런데 우리의 오이<천사>가 여기까지 읽고 나서,
근데 원나잇스탠드가 뭐예요?라고 그 독특한 억양으로 에코동에게 물어보는 건 아닌지...
그럼 에코동은 글쎄 그게 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걸,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해 주는 건 아닌지...)
암튼 하늘 푸르게 쨍쨍쨍한 12월 첫번째 일요일 오후
별 할일없는 아줌마가 오늘도 책방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걸
이 야리꾸리한 글로 대신합니다..
첫댓글 이거 언제 발간되나요. 딱 제 취향입니다. 눙치는 맛이랄까요. 싸늘한 계단의 달빛이라. 싸늘한 풀밭도 아니고, 숲도 아닌 계단에 앉아 느끼는 이별의 서정이 느껴집니다. 그러네요. 1500년전이나 2009년이나 사랑노래는 어찌 이리 감흥이 비슷한지요. 구매게이지 만땅입니다.
이거 참... 이거 번역한 이가 번역이 영 내 맘에 들지 않아서 권해주고 싶지가 않아. 천지인에서 <송사 노래하는 시>라는 사집이 나왔던데 이건 좀 어떤지 모르겠네. 또 사인의 최고봉은 온정균인데 이 <화간집>에는 500편의 사 중에서 100편을 고른 거라서 온정균의 사는 별로 없어. 따로 <온정균 사집>을 냈기 때문에. 이것도 좀 아쉽고 말이야....
한시를 보다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나지. 중국 한시고 우리나라 한시고 간에, 한문학자들이 한시를 번역하니까 시의 맛이 영 안 살지. <글맛>을 아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번역에 참여하면 좋을 텐데....
추운 겨울에 한시 왠지 어울려요. 온정균이란 사람을 찾아봐야겠네. 화간집이란 제목도 맘에 드는데, 다른 시도 올려 주세요.
여백의 미가 부족한 제게 필요한 것들이군요, 원나잇스탠드에 대한 에코동과 오이의 대화는 그들을 너무 무시한 처사가 아닌가 싶고요, 원나잇스탠드에 관한 디테일은 제가 얼마든지 알려드릴 수 있답니다, ㅋㅋ, 궁금하신 분은 돈만 내세요, 여러가지 버젼가능합니다, 헐헐~
흠흠... 아니, 잘 읽고 있는데 마지막 엉뚱한 대목에서 내가 왜 등장한고야~~~~~~?
충분히 그럴 수 있게 하는 대목이지.......암
아니 난 왜 인제 이글을 잼나게 읽게 되는거지? ㅎ
꿀을 가지게 된 효과라고나 할까?
꿀을 바르고픈 욕망에 지쳐 있기 아이다 미쳐있기 때문이라 아뢰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