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4:36-41 잠잠하라 고요하라
아이작 뉴턴은 1642년 영국 동부지역 울즈소프(Woolsthorpe) 마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겨우 말을 배우려고 할 때 어머니는 재혼했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사과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 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열망하던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습니다. 그의 꿈은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흑사병이 창궐하여 그 지역의 모든 대학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낙심한 채 고향에 내려가 사과나무 아래 주저앉았습니다. 그때 사과 한 개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그는 그 사과가 마치 자기 처지와도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긴 한숨이 나왔고, 더욱 낙심에 사로잡혀 속으로 말했습니다.
"사과야, 너는 왜 떨어져야만 하느냐? 너는 도대체 무슨 낙심이 있기에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야 하느냐?”
이 의문이 바로 인류 과학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기회가 되었고 낙심과 절망의 현장이 도리어 진리를 발견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이작 뉴턴에 얽힌 일화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그가 난롯가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하녀를 부르더니 “난롯불이 너무 뜨거우니, 불 좀 낮추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난로는 장작을 사용해서 불을 지피기 때문에 당장 줄이기는 힘들었습니다. 요즘의 전깃불이나 가스 불처럼 쉽게 조절되는 것이 아니지요.
하녀는 잠시 뉴턴을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의자를 조금 뒤로 물리시면 되지 않겠어요?”
여러분, 불을 낮추는 것과 의자를 뒤로 물리는 것, 어느 편이 더 쉽겠습니까? 뉴턴은 매우 중요한 것을 생각하느라고 의자를 뒤로 물리면 된다는 사소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도 뉴턴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오버랩(overlap)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편으로 건너가자 지시하셔서 12제자가 배에 예수님을 모시고 큰 호수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건너는 도중 큰 광풍이 일어나 물이 배에 가득하고 큰 위험에 처했습니다. 어부 출신이 많았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기술, 힘과 능력으로 해결해보려고 온갖 수고를 다 했습니다. 결과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배와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기 위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막 4:38)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광풍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애쓴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고생했다. 많이 놀랐지.” 위로나 격려는커녕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 4:40)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진짜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메가톤급 바람이었구나! 이 정도면 무서워할 만하지, 사람이 어떻게 이기겠니!”라고 풍랑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현대 의학으로 고치지 못한 큰 병에 걸렸구나! 메가톤급 병이구나.” 병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이 문제 삼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광풍을 만나 위태로운 상황에서, 홍해 앞에서, 거칠고 힘든 광야에서, 심히 답답하고 두려운 일과 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서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너의 믿음을 보여라.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왜 죽은 믿음이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며 믿음을 요구하시고 찾고 계십니다. 바람과 풍랑이 있어 두려운 게 아니라 믿음이 없어 두려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정말 보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 믿음임을 아시고 믿음을 말과 행동으로 들려주시고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능하신 주님보다는 큰바람과 큰 파도만 보고 거기에 매몰되어 무서워 떨고 있습니다. 불치병이라는 말에 무서워 떨며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습니까” 원망 섞인 소리로 하나님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원망이겠죠. 왜 나에게 이런 환경과 질병을 주셨습니까? 왜 가만히 계십니까? 해결해 주시든지 고쳐주시든지 해야죠. 오직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예수님! 주무시면 죽습니다. 빨리 일어나세요.” 이런 말이 예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죠. 아니면 예수님은 죽지 않으신다고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저편으로 건너가자 해서 배를 타고 건너는 중에 일어난 것이니 책임져 주실 것이야!” 아니면 예수님 옆에 누워서 예수님 몸을 꼭 붙잡고 있든지, 밧줄로 함께 묶든지 해야지요. 살아도 같이 살게요.
성도 여러분! 어떤 생각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눌려 그 무게에 힘들어 숨조차 쉬기가 어렵습니까? 그 생각에 갇혀 전혀 다른 생각을 못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잡기 위해 덫과 함정을 두지 않습니다. 마귀 짓입니다. 여러분을 잡고 넘어뜨리기 위해 어둡고 잘못된 생각의 덫을 설치한 것입니다. 어디에요? 마음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생각도 말씀도 내 마음에 밭에 들어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하시나니” (빌 2:13)
옥토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악과 먹지 말아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마귀는 하나님같이 된다. 먹으라 합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지키고 다스려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하나님의 준 생각과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까? 마귀가 뿌린 가라지 같은 생각이 나를 매몰시키고 있습니까? 이기기 위해 기도가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 7)
우리가 기도하면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주님이 평강, 샬롬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깨어 기도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마음 나의 생각
예수님께서 메가톤급 바람과 파도를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죽도로 내버려 두셨을까요? 무관심이셨을까요?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막 4:39)
바람을 꾸짖고 바다와 파도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권위를 가지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메가톤급 잔잔함, 고요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아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셨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셨습니다. 나병 환자에게 깨끗함을 받으라 명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금과 은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명하였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권세이고 예수 이름의 권세입니다. 어떤 권위를 가지고 권세를 사용할까요? 말씀입니다.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 2:10)
가장 큰 권세를 가지신 통치자이십니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의 권세를 가지시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3)
예수님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 만물과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만물이 주님의 권세 아래 있으며 그 다스리심을 받고 있습니다. 복종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영적 세계, 모든 사람, 만물, 죽음까지도 모두 예수님의 이름에, 예수님의 권세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라 고백하며 복종합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 1:21-23)
모든 것이 다 예수님께 복종합니다. 그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나하고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유기적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머리이고 우리는 몸입니다. 만물이 발아래에 복종합니다. 발은 몸에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예수님 권세 내 권세이니 이 권세를 잘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새벽마다 “연산동, 산정동에서 목포 시내에서 하늘비전교회로 오라” 명하고 선포합니다.
“오늘도 좋고 내일은 더 좋다. 나의 미래는 찬란하다.”
“나는 기도의 종, 말씀의 종, 신유의 종, 성령임의 도구다”
“나는 주님께 쓰임받은 종, 후원받은 종이다.”
"내 육체는 힘을 얻고 정상이 될지어다. 강건하고 나음을 받을지어다. 불편함을 주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협력, 동참할지어다"
부요를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로 부요하게 하셨으니 나는 부요하다.”
“아버지가 부요하고 풍성하니 나도 부요하고 풍성하다.”
나음을 선포하십시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에게 나음을 주었으니 나는 치유 받아 건강하다.”
“고쳐주는 것, 건강한 것이 주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병에서 고침 받았다.”
현장에서 그 기적을 목격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막 4:41)
제자들은 주님의 권세에 놀랬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시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 비전 가족 여러분!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 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했는가? 기적만 보지 마시고 병 고침만 보지 마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병을 고쳐주신 분이 누구신지? 나에게 응답하시고 복을 주신 분,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이십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만 의사의 의사가 되십니다. 나를 위해 오셨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메시아, 구세주이십니다.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인께 순종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파도야 잠잠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