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운경 제3권
[무상(無相)에 머문다]
선남자야, 보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무상(無相)에 머문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외상(外相)을 없애는 것,
내상(內相)을 없애는 것, 희
론의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경계의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거동하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처소를 향해 가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조작하는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식의 모습을 없애는 것,
모든 식이 인식하는 대상의 모습을 없애는 것이다.”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무상에 머문다면, 부처님께서 무상에 머무신다는 것은 또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곧 대답하셨다.
“여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다. 왜냐하면 지혜로써 생각하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각하려고 하면 마음이 미쳐 날뛰듯 어지러워질 것이다.
모든 중생이 다 함께 헤아려 생각한다 해도 여래의 이 언덕 저 언덕의 일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여래의 경계는 깊고 넓고 불가사의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수량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보려고 집착하기만 하면 마음이 항상 전도되고 마니, 숫자로 헤아려 생각하고 헤아릴 것이 아니다.”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의문이 있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물으려고 하는 것에 따라 내가 지금 분별해서 해설하겠으니,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모두 허락하셨다.”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소(我所)에 집착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법이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곧 대법주(大法主)이신데 어떻게 자신을 칭찬하고 기리실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너를 위해 말해 주겠다.”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여래가 교만해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구하지 않고 명예를 구하지도 않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도 않으며, 허망하게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아첨하거나 속이지도 않는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단지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수행하는 법을 얻게 하려고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또 무엇 때문인가?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처소에서 깊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마음으로 깊이 환희하는 법기를 감당할 만한 이들은 오랫동안 안온하게 좋은 이익을 획득하고 항상 즐거움을 누리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곧 하늘 가운데 존귀한 분이며, 자재한 법왕이신 것을 중생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모른다.
왜냐하면 하열한 중생들은 업행(業行)이 비루하고 지혜가 적고 믿음이 적어 항상 선하지 않은 짓을 하고 온갖 악을 품으므로 여래에게 큰 위덕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여래가 스스로 진실한 덕을 칭찬하고 찬탄해 저 중생들로 하여금 믿고 받아들여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치료법을 잘 아는 의사와 같다.
그 의사가 있는 곳에 온갖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고, 이 의사 외에는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는데, 모든들 이 의사에게 큰 위덕이 있는 줄을 모른다고 하자.
이때 훌륭한 의사는 모든 병자가 처방할 약을 알지 못하고 또한 먹지 말아야 할 음식도 모르는 것을 보고는
‘내가 치료해 그 병의 고통을 없애 주겠다’며 대자비를 일으킨다.
이때 이 훌륭한 의사는 여러 사람 앞에서 스스로 자기의 덕을 칭찬하며
‘나는 이 병을 잘 알고, 병의 원인을 알고, 병에 따라 처방하는 약을 잘 안다’고 말한다.
이때 중생들은 그 훌륭한 의사를 믿고 공경하게 되어 믿는 마음으로 인해 곧 그에게 의지한다.
이때 훌륭한 의사가 약간의 약을 처방해 주면, 모든 사람은 그 약을 먹고 병이 모두 없어져 낫게 된다.
선남자야, 이때 그 의사는 스스로를 칭찬한 것이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래 세존은 대의왕(大醫王)과 같아 능히 중생이 번뇌하는 병을 치료하고, 또 번뇌가 일어나는 곳을 알아 큰 법의 약을 두루 그들에게 주지만,
중생들은 어리석고 번뇌에 가려 여래가 대의왕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곳곳마다 중생 앞에서 항상 스스로를 칭찬하는 말을 하니, 이때 중생이 문득 믿음과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여래에게 귀의한다.
그러면 성주세존(聖主世尊)은 의왕처럼 대법의 약으로 중생들 번뇌의 병을 없앤다.
무엇을 대법의 약이라고 하는가?
탐욕은 부정(不淨)으로 치료하고, 성냄은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치료하고, 어리석음은 인연법(因緣法)으로 치료하니,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약으로 모든 번뇌의 병을 일일이 다스린다.
선남자야, 여래는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익이 있는 줄 아는 까닭에 스스로를 찬탄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무상(無相)에 머무는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