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김 여인의 눈은 휘둥그레지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막내딸과 봉고차를 번갈아 바라보며 넋이 나가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선영아! 너..................“
“엄마! 어서 타봐!“
선영이는 엄마의 그런 표정을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김 여인을 차에 태우려고 한다.
“너............ 솔직하게 말해! 이 차 작은 언니가 사 준 것이 맞지?“
“응! 그것이 어때서?“
너무나 태평스러운 선영이의 대답이다.
“너............. 내가 그토록 말을 했는데 기어이...........“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이 차를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아 나갈 테니까 너무 걱정을 하지 마세요.“
“아 이구! 내속으로 어찌 저런 물건이 나왔을꼬?“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서 한 바퀴 돌아옵시다.”
“난 싫다! 세상에 너는 그래 네 언니가 불쌍하지도 않니?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하고 사는 네 언니의 모습이 가엽지도 않다는 말이냐?“
“엄마!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언니를 호강 시켜주면서 데리고 살 거니까 걱정을 하지 마세요.“
“그래! 그 터진 아가리로 말은 잘도 한다. 그때까지 네 언니는 두 손 두발 다 묶어놓고 있다더냐?“
김 여인이 무어라하든 선영이의 귀에는 닿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선영이는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기어이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서 차에 태운다.
“아버지! 이 차 제가 산 거에요. 어떠세요? 좋지 않으세요?“
“으응! 좋아!“
“아 이구! 이 차를 어떻게 네가 산 것이냐? 응?“
“그럼 이 차를 누가 샀어? 내가 운전면허를 따고 차도 내가 사고 그럼 내 차고 내가 산 것이지.“
선영이는 엄마에게 혀를 쏙 내민다. 김 여인은 그런 선영이를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이 원망스럽다. 남편이 차에 탔으니 타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 여인은 선영이가 하자는 대로 차를 탈 수 밖에 없다. 선영이는 능숙하게 운전을 해 나간다. 언제 그렇게 연습을 했는지 하나도 불안하지가 않은 것이다.
“너 언제 운전 연습을 그렇게 많이 했어?”
김 여인의 음성은 부드러워진다.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날 때마다 운전연습을 시켜 달라고 하면 다들 못한다고는 안하지 뭐!“
“암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안 하고는 못사는 사람이지?”
“엄마! 기왕에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인데 뭐 하러 참아 가면서 그렇게 살아? 난 절대로 나를 희생해 가면서 참고 어쩌고 하는 것은 하지 않을 거야!“
“그래! 다 좋은데 제발 언니들에게 뭐 해달라는 소리는 하지 마라! 더구나 둘째 언니에게는 그런 소리를 절대로 하지 마! 응?“
“엄마! 언니도 다 해줄만 하니까 해 주는 거야. 너무 그렇게 일일이 신경을 쓰고 그러지 말아요.“
김 여인은 어이가 없다. 어떤 말을 해도 도통 먹혀들지가 않는다.
“아버지! 방에만 계시다가 나오시니까 좋지요?“
“엉! 좋아!“
“거봐! 아버지가 저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봤어?“
아버지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신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새삼 가슴이 아파오는 김 여인이다. 선영이 자신이 돈을 벌어서 산 차라면 얼마나 고맙고 기쁘겠는가? 허지만 또 다시 그 불쌍한 둘째의 주머니를 털어서 마련한 것이 아닌가? 김 여인은 마음이 다시 착찹해진다.
“저......저봐!”
어눌한 음성으로 손으로 무엇을 가르키며 좋아하시는 남편이다.
“그렇게 좋으세요?”
“엉! 시원해!“
그것은 당신의 가슴이 시원하다는 뜻일 게다.
“아버지! 언제든지 나오시고 싶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그럼 제가 언제나 모시고 이렇게 드라이브를 시켜 드릴게요.“
아버진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고 있다. 선영이는 마냥 흥겹기만 하다. 이제 엄마도 어쩔 수 없이 더 이상은 야단도 잔소리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언니들 셋 중에서도 그래도 둘째 언니가 제일 만만하다. 매사에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둘째 언니를 설득하기란 수월하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는 단 한마디에 자신의 말에 그냥 넘어가는 언니다. 계약금을 타 내기 위해서 밖에서 언니를 만나서 아버지를 태워드리는 것이 제일 커다란 목적이라고 말을 하자 아무런 소리도 없이 선뜻 돈을 주는 언니다.
다소 양심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혀 아버지를 드라이브를 시켜드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번 병원에 모시고 갈 때도 몇 사람이 매달려야 겨우 택시를 잡고 태워드릴 수가 있다. 대부분의 택시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세우지도 않고 그냥 가 버리기가 일쑤다. 선영은 잠시도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없다. 무엇을 하는지 차를 끌고 나가서는 늦은 밤중이라야만 집에 돌아온다.
“도대체 무엇을 하러 매일 한 밤중까지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어? 차의 기름값은 어디서 공짜로 준다던?“
밤늦게 들어오는 선영이를 향해서 김 여인은 잔소리를 한다.
“말해봐! 돈이 어디서 나서 매일 차를 끌고 다니는지 말해 봐!“
“어이구! 우리 엄니 또 잔소리 시작이시다.“
선영이는 제스처를 쓰면서 자신의 방으로 얼른 피해버린다. 김 여인은 선영이를 따라서 들어온다.
“낮에 큰 언니가 왔었는데 너 때문에 화가 잔뜩 났던데 무슨 일인지 말해!”
“난 몰라!”
“몰라? 정말 몰라?“
“엄마! 큰 형부는 사람이 입이 어찌 그리도 가볍지? 형부하고 비밀로 하기로 약속을 했으면 지켜줘야지 무슨 남자가 그것을 고새 못 참고 마누라에게 말을 했단 말야?“
선영이는 큰 형부의 입방정이 얄밉다.
“도대체 너 왜 그렇게 하고 다니니? 네 능력이 아니면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온 집안에 분란을 만들고 다니고 있느냔 말이다.“
“엄마! 처제한테 그만한 용돈을 준 것이 뭐가 분란을 일으키는 거예요? 언니 시누이 시집 갈 때는 그렇게 바리바리 해서 보내고 나한테 그 정도의 용돈을 준 것이 무슨 큰일이나 된다고 그 난리에요?“
“어떻게 그 집 시누이하고 너를 비교하니? 응?”
“다 같은 동생인데 뭐가 어때요?”
“너 정말 그러다 큰 언니도 그 집에서 못살고 나올 것만 같아서 내가 정말 불안해서 죽겠다. 제발 이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네 앞가림은 네가 하고 다닐 수가 없니?“
“나도 졸업을 하면 그러라고 해도 안 그래요. 이제 금년만 지나면 졸업을 하니까 그때는 내가 언니들을 도와주고 살 거예요.“
“제발 그랬으면 원이 없겠다. 아니, 도와주는 건 그만두고 네 앞가림이나 하고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고 살지 말아라!“
김 여인은 방을 나가 버린다. 말을 해야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끓어오르는 화를 누룰 수가 없다. 큰 딸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법도 없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안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를 지르면서 성질을 피운다.
동생이 형부에게 용돈을 달래서 가져간 것을 무슨 커다란 일이라도 벌어진 양 한참을 소란을 피우다 간 것이다. 김 여인은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다. 집에서 가져다 쓰는 돈이 적지 않다. 집안 사정이야 아랑곳도 없이 무조건 손을 내미는 막내딸이다. 주지 않으면 제 오라비들을 찾아 갈 것이 뻔해서 실랑이를 하면서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김 여인은 자리를 펴고 눕는다. 남편이 자꾸만 김 여인을 건드린다.
“그냥 좀 놔 둬요!”
“왜? 어디 아파?“
“아니에요!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그래요.“
“약 먹어!”
판토 한 병을 내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김 여인은 약을 받아들고 뚜껑을 열고 마신다. 남편은 밥을 달라는 시늉을 한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주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구! 내가 점심을 드리지 않았네요. 시장 하시죠?“
김 여인은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나간다. 막내딸 때문에 남편의 끼니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아침을 먹었다는 기억이 없다. 새삼 서러움이 북박쳐 오른다. 며느리가 둘씩이나 되도 잘 오지도 않는다. 병든 시아버지의 수발이라도 맡길까봐서 평소에는 잘 오지도 않는 며느리들이다. 그런 며느리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기보다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김 여인이었지만 새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내가 어쩌다 이러고 살고 있을까?”
자식들을 다 키워놓으면 말년에는 호강을 할 줄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병이 들고 나니 새삼스럽게 산다는 것이 더 힘이 들어지고 자식들에게도 소외를 당하는 것만 같아서 더 서러워지곤 한다. 가까스로 점심상을 챙겨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밥을 먹으려고 했지만 밥이 넘어가 주지를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주는 대로 밥을 먹는다.
“맛있어요?”
“엉!”
“많이 잡수세요.”
“당신은 왜 안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아요.”
남편의 밥 먹는 모습을 멀건이 바라보고만 있는 김 여인이다. 그래도 살려고 밥을 먹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렇게 건강한 줄만 알았던 남편이었다. 평소에 감기 한번 앓아눕는 적이 없던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런 남편의 건강을 철썩 같이 믿고 오직 자식들에게만 온갖 신경을 쓰며 살아온 세월들이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자식들만 잘 키우면 되는 것인 줄 알고 살아왔던 세월들이다.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왜 울어? 또 아퍼?“
밥을 먹다말고 아내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 묻는다.
“아니에요. 눈에 무엇인가 들어가서 그래요.“
김 여인은 얼른 일어나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화장실로 간다. 참고 있었던 눈물이 장소가 바뀌었는지 알고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김 여인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실컷 울다 나온다. 조금은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자식들 3회"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고운 미소 가득히 지을 수 있는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