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건으로 면회가 미뤄지면서 그나마 12월 들어서 영내면회만 가능하여 영내면회라도 가려했으나
조금 기다리면 외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연락에 하루하루 미뤄진 것이 해가 바뀌고 말았네요.
크리스마스 전에 과자박스만 소포로 보내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1월 초에는 첫휴가가 2월 1일부터 5일까지로 결정되었다 하여 휴가전에 면회는 못가나보다 하였는데 1월부터는 외박을 제외한 외출은 가능하다기에 어차피 늦었으니 중순경 생일 바로 전주에 가기로 예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8일(토요일)부터 외박이 가능하여 신청하였는데 허락이 되었다고 기분이 들떠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내일 면회오라하니, 원래는 외출을 생각하고 있었고, 형님댁 내외분과 같이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면회가면 음식준비는 형수님이 하시고 나머지는 제가 하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외박으로 바뀌었고 그것도 당장 내일.... 계획을 변경할 수 밖에요.
면회는 이것 저것 준비해 가지고 가서 부대내 또는 부대 가까운 곳에 가서 준비해 온 음식을 먹으면서 보고싶었던 자식 얼굴을 보고 오는 것이 예전 저희들의 모습이었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온 터였지요.
형수님이 고맙게도 함께 가자고 한 것은 저의집 형편을 생각하여 음식을 만들어 가야하니 꼭 같이 가자고 두달 전부터 하시더군요.
선하고 정이 남달랐던 관석이 엄마는 아들 입대 1년전에 어린 애들을 뒤로 한 채 5년 동안의 투병생활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만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애들은 졸지에 "엄마없는 하늘아래"의 처지가 된 것이지요.
쉰이 넘는 저에게도 어머니가 생전에 계셔서 언제든지 뵙고 싶으면 달려가 "엄마"하고 부르는 대상이 있는데...
엄마없이 면회를 가게 되어 그 빈 마음의 공간을 생각하니 그만 가슴이 "덜컹" 하더군요.
형수님께 사정 이야기를 하고 저와 늦둥이인 중학생 딸과 둘이서만 가기로 하였습니다.
관석이 한테 전화왔을때 "누구하고 갔으면 좋겠니?"하고 물으니 " 아빠 혼자 오세요, 아빠하고 술 마시고 싶어요" 라고 하길래 애가 쌓인 것이 많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할 것은 별로 없고 간단하게 입을 옷과 비상시 필요한 물건만 준비하여 아침 7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성산대교를 넘어 가는데 낯선 전화번호 벨이 울려 받아보니 관석이가 부대로 오지 말고 버스터미널에 나와 있다고 그리로 오라하데요. 일 때문에 밖에 나와 있다가 부대로 복귀하지 않아도 된다기에 선임병과 같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부순환도로에 진입하니 토요일 아침이라 차량 소통은 원활하여 이대로라면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구리시를 지나 남양주에 진입하니 반갑지 않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게 아니겠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구나" 하고 강원도 산길을 생각하니 긴장이 되더군요.
포천의 일동을 지나 막걸리로 유명한 이동, 간간이 차량 정체가 있었을 뿐 교통은 원할했지만 눈은 멈추지 않고 내려 도로는 약간 미끄러운 상태, 가는 길에 간간이 분사 당하면 앞유리 창이 얼어 뿌옇게 되고...
백운계곡을 지나 산길에 접어드니 이게 웬걸 가파른 경사에 꼬불꼬불, 눈은 그쳤지만 도로가 미끌, 잘못하다간 차가 뒤집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바짝 긴장이 되더군요. 큰 산을 넘어 가게 되더군요.
산을 한참 넘어서니 목적지가 거의 온 것 같아 파출소에 들어가 물어 드디어 터미널에 도착~~~.
오는 도중에 전화로 기다리는데 PC방에 있겠다고 했으니 PC방에 가서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PC방에 가보니 모두 외출, 휴가 군인들로 가득하였고, 마치 작전을 하는 병사들처럼 두드리는데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구석에서 아들을 찾아 밖으로 나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 씩씩하고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무척 반갑더군요.
밖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헌병대에 동기도 같이 외박 나와서 좋아라 하더군요.
춘천으로 향하면서 차안에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데 맞선임(바로위 고참)이 생년월일이 같고, 밖에 나오고 싶어 참느라 힘들었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시간 가는줄 모르게 춘천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차안에서, 셋이서 의논하여 다음날까지의 일정을 만들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자고 하고 춘천에 왔으니 점심은 막국수, 닭갈비로 하기로 하였으나 식당이 별로여서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에 깐새우로 먹는데 꼬맹이가 더 좋아하더군요.
사람구경 시켜줄려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니 벌써 어둑어둑,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서면서 시내구경 시켜줄 겸 이곳 저곳 드라이브를 하다가 강원대쪽으로 가서 효자동에 모텔을 정해 놓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나와서 애들이 좋아하는 갈비집으로 직행~~~
술을 곁들여 저녁을 먹는데 그동안 마음 고생한 것이며 특히 잠자리에 들때면 엄마 생각으로 몇 시간이고 눈물이 나와 잠을 설칠때가 많았고, 아빠보다 엄마 생각이 몇배나 더 많았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진심어린 아들의 말을 들을때 아비로서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그냥 주루룩 ....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없는 그리움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염려하던 "덜컹"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식사후에 노래방에 가서 목청껏 떠들고 나니 기분이 전환되는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호프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특히 엄마가 안계신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자고 다짐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셋이서 마져 못한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밤 늦게까지 보냈습니다,
다음날, 아침겸 점심으로 갈비탕으로 해장을 하고, PC방으로 직행~~
몇시간 동안 애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나서 평소에 전화왔을때 피자가 제일 먹고 싶다했으니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먹으니 짧기만한 겨울의 낮시간이 저물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귀대의 시간이 점점 다가와 부대쪽으로 갈 준비를 하니 '시간이 왜이리 빨리가지'라고 독백을 하는 아들의 푸념섞인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습니다.
군복으로 갈아 입히고 부대로 향하는데 전날 같이 외박 나왔던 동기와 만나서 같이 귀대하기로 서로 전화로 연락하여 어제 만났던 터미널로 직행~~.
어두컴컴해서야 목적지에 도착하여 작별인사로 굳게 포옹을 하고 부디 몸건강하게 복무 잘 하라고 부탁하면서 휴가때 보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다음날 저녁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하는 말이 "아빠! 외박 나갔던게 꿈만 같았어요. 너무 좋았어요"하면서
기분이 전과 다르게 좋아 보이게 들렸습니다.
2011년 1월 14일
15사단에서 근무하는 송관석 아빠올림.
첫댓글 관석이 아버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옷깃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찡하고 서러움이 복 받치네요...
마음 같아서는 얼굴 뵙고 쓰디쓴 쐬주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관석이도 가족도 그리고 관석이 아버님도 아주 많이 힘드실것 같은데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내놓고 표현하지 못했을 관석이도 대단하고 관석이 큰 어머님 생각 하시는 것도 감사하네요...
관석이 아버님~~힘드시겠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관석이를 위해서라도 용기 내시고 항상 건강하셔서 올해는 좋은 일만 가득가득 하시길 빕니다~
태영이 아버님 감사합니다. 엄마역할까지 할려니 힘들긴 하지만 잘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래를 보면서 이것마져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애들 엄마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투병생활을 할때는 건강한 사람이 부러웠고, 이 세상에 없을 때는 아파도 계속 옆에 있어만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갖게 되더군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편안한 주말 되시구요. 태영이 아버님 행복하십시요 ♥
한편의 소설과 같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얼마나 보고 싶던 아들(관석)입니까!!! 가슴속의 어머님이 관석이 사랑으로 지켜주실겁니다..가족과 떨어져 군입대후 처음 가족과 특히 아버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애틋했을지 가슴이 아립니다.. 곧 2월이 면 휴가도 나온다죠.. 먼길 가족분들 모두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관석이 아버님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건이 어머님 감사합니다. 면회 일지만 쓰려다가 앞뒤가 안맞을 것 같아 가족사 이야기까지 나와서 한편으로는 죄송하구요. 돈의 가치는 물론 중요하지만 꾸어볼때 그 가치의 소중함을 더 알 수 있듯이, 애들 엄마도 없구나니 소중함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건이 어머님!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 건강하십시요.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숙연해져서~~. 엄마의 빈자리 만큼 관석이는 성숙할거라 믿습니다.엄마가 하늘에서 늘 관석이를 지켜주실겁니다.관석이 아버님 !용기 잃지 마시고 늘 ~건강하시고
관석이도 여동생도 행복한 일만 가득가득 생기기를 두손모아 기원드립니다.먼길 다녀오시느라 애 마니 쓰셨습니다
완수 어머님 감사합니다. 행복의 시작과 끝은 건강인것 같습니다. 옛 말에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란 글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관석이 엄마도 성당에 다녔습니다. 완수 어머님!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바쁘관계로 이제서야 글을 봅니다. 가슴이 너무 미어 옵니다 관석이가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을까?
정말로 힘들고 고된 군생활. 엄마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던데...관석이 아버님 면회 가실때
마음이 많이 무거웠을텐데...관석이가 잘 이겨 낼거예요. 그동안 엄마의 모습을 잘 되 세기며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릴테니까요. 힘 내세요. 관석이 아버님의 희망인 관석이와 관석이 여동생을
위하여 행복의 날들만 기다릴테니까요. 추운날씨 건강하시고요. 또 관석이 휴가 나오면 좋은 시간 되시길..
명훈이 어머님 감사합니다. 면회갈때 마음은 "그랬으면( 관석이 엄마랑 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관석이 엄마도 얼마나 좋아할까.관석이도 엄마보면 제일 좋아 할텐데 ...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안타까울 수 밖에요...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명훈이 어머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런 일인줄도 모르고 가볍게 관석 아버님의 글을 기다렸던 제가 너무나 싫습니다.
저도 여동생을 비슷한 시기에 먼저 보낸 아픔이 있어 관석 아버님의 글이 예사로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어떤 말이 어떤 글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모쪼록 용기 내시고 건강 챙기시길...
정인이 어머님 감사합니다. 답글을 주실때 한단어,한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보시는 정인이 어머님 대단하신 분이시란걸 알았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것이 순리라지만 가능하면 순서대로(부모보다 늦게), 최소한 자식들을 모두 시집 장가는 보내고 가야 부모의 도리라지만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앞으로 살다보면 "덜컹"하는 일이 많겠지만, 그래도 용기 잃지 않고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사롭지 않으신 정인이 어머님! 늘 행복하시고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