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쿠데타 | * 혁명(革命) :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국가체제나 정치체제를 바꾸는 일 * 쿠데타 :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 |
프랑스 혁명 (1789) | 원인 | * 구제도의 모순(앙시앵 레짐 = 오래전부터의 제도) : 모순(矛盾. 앞뒤가 맞지 않음. 잘못됨) → 제1신분(성직자) · 2신분(귀족)은 특권(대토지 소유, 세금 면제, 관직 독점 등)을 누리고, 제3신분(상인· 수공업자 · 농민 · 노동자 등의 평민들. 전체 인구의 98%)만이 국가의 부담(세금, 정치 참여 못함 = 참정권 박탈)을 짐. → 특권(권리는 누리고, 의무는 적게 지고) · 모순(의무 많이 지고, 권리는 적고) → 신분제 사회의 특징이, 신분이 높으면 권리는 많고 의무는 적고, 신분이 낮으면 의무는 많고 권리는 적고 ⇒ 구제도의 모순은 불평등이었다. 제3신분이 제1~2신분의 특권(특별한 권리)에 반기(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나 표시)를 든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 구제도의 모순(잘못된 제도)을 없애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자! → 대한민국의 숟가락? * 국가 재정 악화 : 태양왕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의 루이 15, 16세의 호화로움의 바탕에는 제 3신분인 평민들의 고통이 있다. → 호화로운 궁정 생활(왕실의 사치) + 미국 독립전쟁 지원(미국 독립전쟁 참전) + 흉년으로 농민 궁핍(1788부터) → 재정 부족(악화), 재정(돈) 위기 → 성직자와 귀족에게 과세(세금 매김) 시도 →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 재정 개혁 실패 → 당시 국왕이었던 루이16세는, 부족한 재정을, 제 3신분에게 부담시킴 → 제3신분의 불만이 심해짐(왕비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민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배고픔이 뭔지도 모르는 여자). ⇒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됨 * 시민계급의 성장 → 시민계급(부르주아지. 유산계급. 자본가계급) → 도시의 상공업자가 중심 → 산업발달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성장함 |
시민 계급 성장 | * 시민 계급의 성장 배경(계몽사상 + 상공업의 발전) → 상공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 + 계몽사상과 미국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의식이 성장함 → 구제도의 모순 비판,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건설을 추구(달성할 때까지 좇아 구하다)함 * 시민계급 : 중세적인 영주제 농업 경제가 자본주의적 경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성장한, 도시의 금융업자, 대상인, 대제조업자, 농촌의 부농 등을 말한다. 이들은 구제도에 가장 큰 불만을 가졌던 세력으로,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 시민계급 : 중세 봉건 사회의 귀족이나 성직자 · 농민과는 달리, 도시의 상업 발달과 함께 세력을 형성하였고 봉건적 지배에 저항하여 시민혁명의 주축이 되었던 계급을 말하다. ▶ 시민 계급은 상공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계몽사상 확산에 이바지함 |
프랑스 혁명 (1789) | 전개 | 당시 국왕이었던 루이16세는, 부족한 재정을, 제 3신분에게 부담시킴 → 제3신분의 불만이 심해짐 → 재정은 궁핍한데, 귀족도 시민도 세금 납부를 거부하니, 루이16세는 삼부회를 소집함(1789.5) → 삼부회(三部會)는 성직자와 귀족, 평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프랑스의 신분제 의회로, 왕의 주도로 국민대표에게 협력을 요청하던 자문기관이었다. → 투표방식을 놓고 대립, 왕은 제1~2신분인 성직자와 귀족들의 편이었다. 또한 성직자 대표와 귀족의 대표는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대체로 모든 의사결정이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 평민대표들은 모든 대표들이 머릿수대로 표결을 하자고 요구함 → 왕과 성직자, 귀족들이 반대 → 그러자 평민대표들은 별도로 그들만의 ‘국민의회’를 결성함(왕은 국민의회의 구성을 인정함, 평민들의 기세에 못이겨. 테니스코트의 서약) → 진보적 사제(성직자)대표와 일부 귀족의 대표들이 국민의회에 동참(제헌 국민의회 구성) → 왕당파(루이16세 추종세력. 보수귀족들)의 무력 탄압 시도, 루이16세가 국민의회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려 한다는 소문 → 성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유, 왕이 마음대로 시민들을 죽이고 가두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 표시 :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상징적 건물) → 이는 왕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바스티유 감옥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베르사유 궁전과 파리를 장악함(프랑스 장악) → 국민의회(주로 평민들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는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789.8)’을 발표함 . ‘인간은 자유롭게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고,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 봉건제 폐지, 입헌 군주제 헌법 제정(군주가 헌법에서 정한 제한된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는 정치 체제. 헌법 아래 왕이 존재. 왕은 헌법에 근거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체제) → 입법의회(프랑스 혁명 중인 1791년 10월 소집된 의회. 국민 의회가 제정한 헌법에 따라 입헌 왕정 하에서 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의회이다) 구성 → 기요틴(기요탱이 만든 단두대)에서 처형된 루이 16세 →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국민이여, 나는 죄 없이 죽는다!” “나의 죄상을 조작한 사람들을 용서한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무고한 피가 뿌려지지 않도록, 신이여, 돌봐주소서.” → 과연 루이 16세는 그의 말처럼, 죄가 없고 무고(誣告.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했는가? ◆ 인권선언의 내용(프랑스 혁명의 기본 정신) : 인간의 자유와 평등, 국민 주권, 언론·출판·신앙의 자유, 법적 평등, 재산권 불가침. ◆ 베스사유 궁전은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곳이고, 바스티유 감옥은 절대왕권에 불복하던 사람들을 가두던 곳이었다. 또한 구체제, 구제도의 모순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
프랑스 혁명 (1789) | 국민의회 ⇓ 입헌의회 ⇓ 국민공회 ⇓ 총재정부 | 입헌의회의 구성(1791). 온건파인 지롱드파가 주도권 장악 → 프랑스 혁명이 두려웠던 나라의 왕들이, 대(對) 프랑스 동맹을 결성함(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연합군) → 이들이 프랑스를 공격함(혁명의 저지를 위해) → 이에 입법의회는 이들에게 선전포고(1792. 4.)로 대항하였으나, 초기에는 패전을 거듭함 → 전국에서 의용군이 구성됨(라인 강 수비대, 이들이 부른 노래가 프랑스의 국가가 됨), 루이 16세의 국외 도피 시도 → 전세 불리로 물가 상승과 식량 부족이 심화되자 파리 민중들이 왕궁을 습격하여 왕권 정지, 입법의회 해산, 국민공회 구성, 왕정 폐지와 공화정 선포, 모든 남자 시민에게 투표권 부여 주장 → 국민공회 소집 → 급진파인 자코뱅파 주도권 장악(로베스피에르) → 국민공회는 ‘왕정 폐지, 공화정 수립 선포’ , 루이 16세 처형함(1792.9) → 왕정의 폐지로, 프랑스는 공화국이 됨(제1공화정 수립) → 자코뱅파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혁명에 반대하는 세력 처형) → 국민들의 불안과 반발 → 로베스피에르 처형, 온건파인 지롱드파 주도권 장악으로 → 공포 정치 종결 → 온건파의 주도로 새 헌법 제정(의회가 선출한 5명의 총재가 공동으로 나라를 이끌어 간다) → 총재정부의 수립(1795년 테르미도르의 반동부터 1799년 나폴레옹의 쿠데타까지 존재한 프랑스 정부. 다섯 명의 총재로 구성되었다) → 나폴레옹 등장 → 테르미도르의 반동(反動)은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라고 부르며,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 때부터 사용된 달력(혁명력)의 11월을 나타내는 말이다. 결국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란,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를 기요틴에 처형한 사건을 말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발로 해석해야 할까?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실질적으로 끝나게 되고, 시민혁명은 종말을 고했다. * 공화파 : 지롱드 파(상공 시민 계층 중심의 온건파)와 자코뱅 파(소시민, 자영 농민, 노동자 중심의 혁신파) * 혁명을 통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정치체제를 바꾼 프랑스에 왕보다 권력이 강한, 황제가 등장했다. * 왕정(王政) ↔ 공화정(共和政) * 공화제(共和制)는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정체이다. 공화제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이념을 공화주의(共和主義)라고 하며, 공화제를 채택하는 국가를 공화국(共和國)이라 한다. 공화제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는데, 민주정치의 공화제와, 과두정치(소수의 권력자가 공동으로 집권)의 공화제이다. * 왕정은 주권이 왕(군주)에게 있는 것이고, 공화정은 주권이 개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왕의 뜻대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왕정이라면, 개개인 여러 사람들의 뜻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공화정이다. |
나폴레옹 시대 | 등장 | * 혁명을 통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정치체제(정부형태)를 바꾼 프랑스에, 왕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황제가 등장했다. 그가 나폴레옹이다. |
배경 | * 장기화된 대외 전쟁(대 프랑스 동맹)과 정치적 혼란 : 불안정 → 부유한 상공업자와 부농은 안정 기대 * 총재정부의 부패와 무능 : 불안정, 불안 * 제1· 2차 대(對) 프랑스 동맹 결성(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의 시민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유럽 각국의 왕들이,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동맹이다) * 1차 동맹은 프로이센(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 등 * 2차 동맹은 오스트리아,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등 ⇒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전쟁을 끝내고(불안과 불안정 해소), 국정을 안정시킬 지도자를 찾음 ⇒ 이 때 등장한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음. | |
집권 | 대중들의 지지에 자신감을 가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함(1799) → 통령정부 수립(프랑스 혁명 시기에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성립돼 5년간 존속한 정부. 통령은 프랑스 통령정부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 사실상 나폴레옹의 권력 독점(나폴레옹은 제1통령이 됨) → 나폴레옹의 정치(대외 혼란 수습 - 대 프랑스동맹 격파, 내정개혁 - 중앙집권적 행정제도 마련, 새로운 시민사회의 규범 마련 : 나폴레옹 법전 편찬) → 나폴레옹 법전(법 앞에서 평등,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 보장, 신앙의 자유 보장, 프랑스 혁명 정신 반영,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줌) : 나폴레옹 자신은 프랑스 혁명 정신의 계승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 ⇒ 이러한 나폴레옹의 노력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됨(1804) ⇒ 시민들이 힘을 모아 없앤 왕정을 시민들이 힘을 모아 왕보다 센, 황제를 다시 세운 것이다. 나폴레옹의 교활함에 시민들이 속은 것이라고 할까? 아니면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까? * 통령정부 : 프랑스 혁명기에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이루어져 1799년부터 1804년까지 존립한 정부. 임기 10년의 집정관(통령) 세 명을 두었는데, 제1 집정(통령)이었던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폐지되었다. * 왕정(王政) ⇒ 공화정(共和政) : 국민의회, 입헌의회, 국민공회, 총재정부, 통령정부 ⇒ 제정(帝政. 황제가 다스리는 군주 제도의 정치) | |
제정 | 국민투표로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함 →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을 물리치고 유럽을 장악함(영국을 제외하고) →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영국은 유럽 여러 나라들과 또다시 프랑스에 반대하는 동맹을 맺게 돼.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에 대항하는 나라들을 차례로 물리쳤어 → 대륙 봉쇄령 선포(1806. 영국에 경제적 타격을 주기 위하여 유럽 대륙과 영국의 무역을 금지하도록 한 명령. 대륙 봉쇄령은 영국에 경제적 타격을 주고 유럽 대륙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 그러나 정작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영국에서 공업 제품을 수입하던 대륙의 모든 국가, 특히 러시아였어.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무역을 계속했지. 러시아의 불복(不服. 따르지 않음) 화가 난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1812년 러시아 원정을 떠났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어.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의 동맹군은 1814년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시키고, 그를 엘바 섬으로 귀양 보냈다. → 러시아 원정의 참패와 유럽 연합군에 패배로 나폴레옹은 몰락함 → 러시아 원정 실패, 국민 해방군의 파리 점령 → 엘바섬 귀양 → 부르봉 왕조 부활 → 100일 천하(워털루 전투 패배)→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 * 파랑· 빨강· 흰색의 세 가지 색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해. 이 삼색기는 이후 프랑스의 국기가 되었다. | |
의의 | 나폴레옹의 정복전쟁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 정신(자유, 평등, 박애) 이 유럽 전 지역에 전파됨 → 유럽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을 촉진함 → 빈 회의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이 만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