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란 조선시대 세무직 공무원을 뜻하는 명칭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세리는 공무원이 아니라 세금징수청부업자를 말합니다.
처음 성경을 번역할 때 서양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사람들을 위해 현지화 번역이 많은데 세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징세청부업자 또는 조세청부업자인 이들은 정부로부터 세금징수권을 위임받아 수익을 얻었던 자들입니다.
고대로마시대에는 Publicani, 중세영국은 In fee-farm, 현대 영어로는 Tax Farmer라고 합니다.
체계적인 행정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광활한 영토 각지에 공무원을 파견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로마제국처럼 영토가 넓은 나라는 모든 지역에서 세금을 걷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과 예산이 필요했습니다.
로마는 세금 징수에 들어가는 인력과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에 세금을 걷는 권리를 특정인에게 위임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로마 정부는 징세청부업자에게 거액을 받고 특정 지역의 세금 징수 권리를 위임함으로써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일시불로 받아 즉각적인 재정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금 징수가 어려운 지역이라면 돈을 거두는데 수반되는 부담을 업자에게 넘김으로써 로마 정부는 큰 리스크 없이 재정을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징세청부업자는 로마 정부에 돈을 주고 지역의 징세권을 사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사렛에서 매년 40억원의 세금을 거둘 수 있는데 빌라도는 세리에게 나사렛의 세금을 3년 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위임하는 대신에 100억원을 미리 받습니다.
빌라도는 3년을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100억원을 한 번에 받아서 좋고, 세리는 3년을 기다리는 대신 20억원을 남기게 됩니다.
세리는 세금 징수의 리스크를 짊어지게 됩니다.
만일 나사렛에서 흉년이 발생하여 백성들의 수입이 대폭 감소해버리면 정부는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세금을 줄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징세청부업자에게 나중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일정 기간에 한정하여 징세권을 사온 것이기 때문에 경제력이 되살아나는 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나사렛의 상황이 나쁘든 말든 세리는 빌라도에게 바친 금액을 백성에게 거두지 않으면 당장 큰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로마 정부는 세리가 얼마를 걷든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뜯기는 세금은 최소한이 40억원이고 실제로는 상한선이 없었습니다.
만일 세리가 나사렛 사람들을 쥐어짜 60억원을 걷었더라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징세권을 가진 세리가 자기 권리를 합법적으로 행사했을 뿐입니다.
어차피 3년 뒤면 징세권을 다시 살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나사렛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든 말든 알바가 아닌데다 얼마를 쥐어짜든 법적으로 보호받기까지 하니 세리들은 온갖 잡세를 만들어 백성들을 쥐어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당시 세리들은 120%~200%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탐관오리의 횡포는 불법이라 처벌받기라도 하지 세리는 합법적인 징세라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로마정부의 징세권을 공급자, 예비징세청부업자를 수요자라고 본다면 당연히 징세권 매수 희망자가 많아질수록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로마정부는 당연히 돈을 가장 많이 내는 자에게 징세권을 팔 것이고 그 징세청부업자는 그만큼 더 많은 본전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더욱 쥐어짜게 됩니다.
만일 귀족같은 권력이 있는 자가 자기는 못내겠으니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대응 방법이 없습니다.
징세업자는 무조건 일정액 이상의 세금을 걷어야 이득을 볼 수 있다보니 안낸만큼의 부담은 고스란히 약자들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세리(징세청부업자)들은 유대인의 혐오와 증오를 한몸에 받는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로마시대의 독특한 세금제도는 루이 16세 통치 하의 프랑스 왕국까지 이어집니다.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라부아지에라는 화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의 업적은 현대의 미터법 제정, 질량보전의 법칙이 있습니다.
라부아지에의 또다른 직업은 징세청부업자였습니다.
라부아지에는 어지간한 귀족 이상의 어마어마한 소득을 올렸는데 한 해 200억원(현재기준)이 넘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소득을 바탕으로 과학 연구를 수행했는데 악랄한 징수 수법과 막대한 소득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아낌없이 연구에 쏟았기 때문에 의외로 재산이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매우 검소하게 살긴 했는데 징수 수법이 교활하고 값비싼 도구를 마구 써가며 실험을 한 것은 사치로 비춰졌습니다.
라부아지에가 특히 미운털이 박힌 이유는 그가 프랑스 수도인 파리를 드나드는 통행세를 도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부아지에는 통행세 징세에 질량보존의 법칙을 응용했습니다.
파리 전체를 성벽으로 봉쇄하고 성문에서 통행세를 걷으면 확실하게 세금을 걷을 수 있다는 이론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파리라는 도시에서 돈은 혼자 소멸하거나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파리를 출입하는 사람이 없다면 파리 내부의 돈의 양은 일정하다..그러므로 파리로 들어오는 돈의 양은 파리 전체의 수입, 파리에서 빠져나가는 돈의 양이 파리 전체의 지출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파리 전체를 감시하는 것보다 성문만 감시하는 것이 월등히 편리했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이었습니다.
현대 경제에서도 외화의 송금을 감시하고 과세하는데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라부아지에는 이런 방법으로 통행세 탈세를 원천 봉쇄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그에 비례하여 파리 시민들의 분노도 동반 상승했습니다.
이러니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임금과 귀족 다음으로 단두대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세금을 거두는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니고 오히려 정부의 공무를 대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액수의 세금만 거두는 것으로는 죄를 묻지 않겠다고 했으나 징세청부업자 중에서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 없다보니 라부아지에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게 됩니다.
그의 죽음에 수학자 라그랑주는 목을 베는 건 한순간이지만 똑같은 머리를 다시 만들려면 100년도 더 걸릴거라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동양은 서양과 같은 징수청부업자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동양은 일찍부터 중앙집권체계가 자리잡아서 정부에서 직접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중국의 경우 세금을 낮추어 백성들 고충을 덜어주는 것도 황제 마음이고 사치하느라 부족한 세수를 위해 증세하는 것도 황제 마음이었습니다.
법에 따라 세금을 거두면 불만이 적은데 현지인들 반발이 두려워 총알받이용으로 징세청부업자를 고용할 필요가 있던 서양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조선의 경우 향리, 아전이 징세 실무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무보수라 온갖 잡세를 만들어 세금을 거두고 중앙에 할당량을 바치고 남은 돈은 착복했기 때문에 서양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중앙정부도 관습이라고 눈감아줬으니 조선이 망할 때까지 시정되지 않았고 민란이 발생하면 향리, 아전이 제일 먼저 잡혀 죽었습니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세금 걷으면서 삥땅치는 정도로 알았는데 이런 비리사업이었네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