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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켈러의 「눈으로 세상을 3일만 볼 수 있다면」---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 첫째 날 첫 번째로 나를 이 만큼 가르쳐 준 나의 사랑하는 애니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손끝 촉감으로만 알던 선생님의 인자한 얼굴, 아리따운 자태를 몇 시간이라도 뚫어지게 바라보고서 선생님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아주 깊숙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두 번째는, 다정했던 내 친구들을 찾아가 웃움 짓는 그녀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다음엔 푸른 들로 산으로 나 홀로 산책을 나가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르른 나뭇잎사귀들, 들밖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의 행렬,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을 붉게 태우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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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집 입석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에 나선다.
포장도로를 따라 50여m 올라가다가 좌측 산으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부부팀인 상훈아우, 수근아우, 영홍아우 그리고 서울 하이맛 선배님이 선발로 올라섰고 상택아우는
선발로 나섰다가 후미를 챙기느라 중간을 맡았고 대구의 재형아우와 서울의 봉현아우 그리고 시인
마뇽 선배님과 필자가 후미에서 오른다.
<대구 미녀삼총사가 앞장서서 들머리로 들어섭니다.>
시인마뇽 선배님은 전에 산행을 하며 여러 차례 다친 적이 있고 아직도 완쾌가 아니어서 산행을 나서
면서도 걱정이 된다고 하시어 후미에서 시간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에 임한다.
처음부터 가팔게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으로 산나물의 하나인 참취가 곳곳에 보였고 나뭇잎은 제법
자라 산이 온통 푸르게 변하고 있었는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찾아들고는
했는데 이제는 고온 현상으로 한 여름의 더위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기온이 높다.
해발이 낮은 산 아래쪽으로는 진달래가 이미 졌고 철쭉이 만개하였는데 점점 고도를 높이며 꽃 몽우
리를 가꾸는 철쭉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꽃 몽우리를 만들지 못한 철쭉도 많다.
성모의 집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들머리에서 약1.1km지점 능선 쉼터와 1.6km지점 능선 쉼터
그리고 북봉을 지나 정상으로 이어지는데 1.6km 능선 쉼터까지는 가팔키는 하지만 등산로는 좋은
편이어서 오를만 하며 이후 북봉까지 약700m정도는 날카로운 돌들이 돌출되어 있는 암릉길로 수차례
우회도로를 지나간다.
<후미팀이 경사진 길을 오릅니다.>
정상을 오르는 등로 주변 수림은 저지대에서는 참나무 종류가 숲을 이루지만 고도를 높이며 철쭉의
분포가 넓어지며 때로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때로는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능선 쉼터를 올라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올라 거친 길을 지나며 우측으로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좌우 발아래는 채석장의 흉물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며 좌측으로 김천의 명산인 금오산이 뒤로는
백마산이 뿌연 황사속에 형체를 드러내고 우측으로는 넓은 농지가 눈에 들어오는데 날씨가 좋으면
성주읍내가 모두 보인다는데 황사로 인해 성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상택아우의 설명이다.
시인마뇽 선배님과 성봉현, 권재형 아우를 후미에 두고 임상택 아우와 먼저 올라 북봉에 도착했다.
약400m정도 떨어진 정상에서는 선발로 간 우리팀이 이미 도착해 파이팅을 외치며 후미를 부르고
우리 팀과 반대방향인 보손지 코스로는 부산백두산악회 대원들이 땀을 흘리며 북봉으로 올라선다.
<북봉입니다. 이곳까지 올라 오느라 땀 좀 뺐습니다.>
북봉에서 상택아우와 인증 사진을 찍으며 후미를 기다려 합류하여 간단히 기념촬영을 하고 정상으로
향한다.(들머리에서 2.26km, 1시간40분소요, 해발782m, 현재시간 12시14분)
북봉에서 2~3분 거리에 부산에서 왔다는 3명의 대원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나무 전망 쉼터를 내려
서니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북봉에 가려 금오산은 보이지 않지만 능선을 타고 내려선 곳 아래는 칠곡의 북삼면이 평화스러운
풍경이 펼쳐지고 능선 너머로 희미하게 구미공단이 보이며 남으로는 가야할 정상과 정상에서 좌측
으로는 선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선석산 정상이 늠늠한 모습으로 보인다.
<소나무가 있는 쉼터를 내려거 임대장이 보손지 방향을 조망합니다.>
조망을 마치고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한 차례 V계곡으로 지나는데 이곳에서 시인마뇽 선배님의 암릉
길 트라우마로 인해 제법 시간이 지체된다.
근 10년 전 시인마뇽 선배님이 혼자서 춘천 용화산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용화산 정상에서
사여령으로 이동하는 도중 암릉지대에서 낙상을 하여 갈비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는데 이후 암릉
길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노력을 했음에도 트라우마는 아직도 남아 있으므로 매우 신중을 기하며 안전에 만전을
기하므로 시간이 지연된다.
<정상 전 암봉으로 고속도로에서 보면 대단히 멋있어 보였습니다.>
<암봉에서 바라본 북봉과 금오산의 풍경입니다.>
<정상석이 2개인데 작은 건 옛날부터 있던 것인가 봅니다.>
어렵사리 V계곡을 지나 바위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정상으로 이동하고
정상에서 오랜 시간 후미를 기다리던 선발진의 환영을 받으며 정상으로 올라선다.
성모의집 들머리에서 영암산 정상까지 산행거리 2.61km, 산행소요시간 2시간17분, 해발 797
m, 현재시간 12시40분이다.
영암산(鈴岩山) 정상에서
영암산은 암봉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봉(784m)은 나무가 많은 흙으로 된 봉우리로 별다른 특색이 없으며 북봉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중봉이 있는데 북봉에서 정상까지 능선은 암릉 길로 양방향 수 십 길의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남봉에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작은 정상석과 2014년4월 세운 대형 정상석이 있는데 정상석
하단부에는 영암산의 유래를 적고 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정상에 올랐으니 인증 샷은 당연히 있어야겎지요?>
영암산의 유래
영암산은 성주군 초점면, 칠곡군, 김천시의 경계지역에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정상은
초전면 용정리 산58-8번지에 위치한다.
현재 산 이름은 영암산이나 옛 성주읍지인 경산지나 성산지에는 매달린 방울을 뜻하는 현령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말로는 방울암산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아마도 지금의 영암산은 방울 령
(鈴)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전해오기로는 방울암산이라 한 것이 성주쪽에서 보면
3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부가 흡사 방울을 닮았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바위가 많아서
바우암산, 바위가 있는 금오산 남쪽에 있다하여 바우남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영암산은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갈라진 수도지맥에서 분기한 영암지맥이며 초전면을 대표하는
산으로 면민과 면 산악회의 의지를 담아 이곳에 정상석을 세워 널리 알리고자 한다.
위에서 거론한 것과 같이 영암산의 정상부는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날 도면상에는
북봉이 784m로 기록되어 있고 남봉이 782m롤 기록되어 있으므로 칠곡이나 김천 사람들은 북봉을
정상이라 하고 성주 사람들은 남봉을 정상으로 여겨왔는데 성주 사람들이 남봉에 정상석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요즘은 위성이 발달하여 고도측정을 스마트폰으로도 할 수 있는 시대로 북봉이
남봉보다 높다는 것은 잘못알고 있는 것이며 필자가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값은 북봉이 784m, 남봉이
797m이나 최근 지도를 보면 북봉이 784.7m, 남봉이 791.7m로 남봉이 조금 더 높다.
<이 부부는 싸우고 산에 왔나? 너무 떨어져 찍은 거 같은데..... >
---헬렌켈러의 「눈으로 세상을 3일만 볼 수 있다면」---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 둘째 날 다음 두번째날이 되면 먼저 이른 새벽 먼동이 트는 태양의 웅장한 장면을 보고, 아침이 되면,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면서 하루를 지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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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정상석 앞에 일행이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한다.
모두 미소 띤 얼굴이지만 일행들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선발진이 후미를 기다리느라
30~40분은 정상에서 기다려야 했으니 지루함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선발진은 단체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먼저 내려섰고 나중에 올라선 후미대원들이 정상석
주변을 서성이며 주변을 조망해 본다.
<영암산을 내려서며 본 가야할 선석산의 풍경입니다.>
북봉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금오산이 제대로 모습을 보이고 백마산과 고당산이 옅은 노랑 물감을 뿌린
듯 보이고 성주시내는 모습을 감추었으며 가야할 선석산은 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증 사진도 찍고 조망도 마치고 앞서 내려선 선발진의 뒤를 따라 정상을 내려선다.
영암산 정상에서 선석산 정상 구간
영암산과 선석산은 동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가운데 V계곡을 두고 이정표에 의하면 2.8km의 거리를
두고 있다고 표기하지만 실제로는 약3.2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거대한 산들이 3.2km 거리에 있다면 가까운 거리인데 산의 형태는 서로 다르다.
영암산은 정상부가 암릉과 암봉으로 이루어진 반면 선석산은 전형적인 흙산으로 서로 마주보고 조화
를 이루고 있다.
<로프와 철사다리가 함께 공존하는 구간, 사다리가 없을 때 로프를 타고 암릉을 올랐다네요>
<영암산을 내려서는 암릉구간을 멀게 잡았습니다.>
특히 영암산 정상에서 300~400m는 아주 거친 암릉으로 매우 조심해야 하는 구간으로 벼랑과 수직
암벽이 연속 이어지는데 다행스러운 곳은 위험한 곳곳에 계단을 만들어 안전사고에 대비한 지자체
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는데 계단 주변으로는 계단을 설치하기 전 사용했던 로프가 그대로 있었는데
전에는 로프에 의존해 영암산을 올랐다며 당시의 상황을 상택아우가 자세히 설명한다.
<어느곳으로 갔냐고요? 당연히 암릉구간이지요.>
<로프를 타는 성봉현씨, 작품을 만들려 했는데 생각보다 ........ >
암릉지대를 지나며 때로는 우회도로가 있지만 로프에 의존해 직벽 타는 재미도 좋아 스릴을 느끼며
20여분 암릉길을 내려서고 정상적인 등로를 따라 한동안을 더 내려서니 우리 일행이 한곳에 모여
있었으니 도면에 나와 있는 돌문이고개로 이곳 3거리 안부에는 평상을 설치해 놓았는데 이곳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다.
<산다는 게 먹자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먹을 때가 좋습니다.>
대구팀과 함께 산행하는 날 식사시간이 되면 산상의 만찬이 시작된다.
산에서 구경하기 힘든 장어부터 쌈채소, 갖가지 전, 그리고 젓갈 없는 것 빼고는 모두 있었으니
신나게 먹기는 잘 먹지만 달랑 밥만 준비한 게 미안한 맘 금할 길 없다.
암튼 미안한 것은 뒤로 미루고 술 한 잔 곁들여 건하게 잘 먹고 돌문이고개를 떠난다.
돌문이고개에서 선석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좋다.
<철쭉이 피기 시작하는 등로 옆 기쁜소식의 꽃말을 가진 구슬붕이가 보입니다.>
등산로 주변으로 철쭉이 꽃을 피워 눈이 즐겁고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시원스러운
길을 지나고 때로는 좁은 공간으로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 금오산과 지나온 영암산을 보기도 하면서
이동을 한다.
배는 부르고 마신 술로 취기를 느끼며 숲에서 한잠 자고가고 싶은 충동이 자꾸만 일지만 앞서간 일행
들을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종 자태실이 갂다 오기는 너무 멀어 못갔습니다.>
그런 중에도 용봉리 갈림3거리를 지나고 세종대왕 왕자태실 갈림3거리를 지난다.
이정표에 의하면 왕자태실은 2.7km 지점이란다.
0.5km이내에 있다면 갔다 올 수도 있겠지만 너무 멀어 갈 수가 없어 안타까워하니 산행 후 차량으로
잠시 들리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많은 일행에게 불편을 초래시키며 왕자태실을
갈 수 없는 입장이니 나중에 시간이 되면 찾아보기로 하고 3거리를 떠난다.
<선석산을 오르는 도중 금오산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드뎌 선석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선발진이 선석산을 올라 기다리는 동안 후미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심정으로 정상으로 이동했고 돌문이고개에서 출발하여 약1시간10분이 지난 후에야 신석산 정상에
올라선다.
성모의집 들머리에서 신석산 정상까지 산행거리 5.8km, 산행소요시간 4시간40분, 해발 742m,
현재시간 15시04분이다.
선석산(禪石山) 정상에서
선석산!
선석산의 원래의 이름은 서진산이었다고 한다.
서진산(棲鎭山)의 유래는 호랑이와 관련이 있는데 서진산의 한문표기를 보면 서(棲)는 ‘살다,머물
다’라는 뜻이고 진(鎭)은 ‘누르다, 눌러안다.’라는 뜻으로 금오산에 살던 호랑이가 포수에게
쫓겨 이곳 산에 머물어 살았다는데서 서진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글에서 설명한 바 같이 서(棲)자와 흡사한 누(樓)자로 오기했던 정상석입니다.>
정상 중앙에 한 키를 훌쩍 넘기는 정상석이 있지만 몇 년 전 산행사진을 보면 영암산에서 오르며
현재의 정상석 이전에 작은 정상석이 있었는데 당시 정상석에는 서진산(棲鎭山)을 누진산(樓鎭山)
산으로 잘 못 표기를 하여 누진산으로도 불리었다는 것으로 지금은 잘못 표기된 정상석은 철거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서진산에서 이름을 바꾼 선석산!
산 이름을 보면 우뚝 솟은 돌 위에 신선이 좌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선(禪)이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무아지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정신집중의 수행방법을
말하는데 산 이름에 대한 유래가 사뭇 궁금해진다.
<선석산 정상에 오르자 미녀삼총사는 함께 사진도 찍지않고 내려섰습니다.>
성주군 홈페이지에서 말하는 선석산의 유래는 선석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선석사는 신라 효소왕 1년인 692년에 의상대사가 10개의 사찰을 창건할 때 지은 절로 창건 당시에는
신광사라 하였는데 이후 선석사로 사찰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신광사의 절터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고 현 선석사 서측이라고 하는데 1361년 나옹대사가 주지로
오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고 하는데 이때 절터를 닦는데 편편한 큰 바위가 나왔다 해서 절
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뜻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라 했으며 그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로 돌출되어 있다고 한다.
선석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품고 있어 정상 남쪽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는
세종 아들들의 태실을 묻은 왕자 태실이 있다.
세종이 아들들의 태실묘를 이곳에 정하고 유서 깊은 선석사를 능사로 지정해 나라에서 사패 또는
물질적으로 지원을 하여 태실묘를 관리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선석사의
태실법당이 그 반증이다.
<선석산 정상석에서 대구 미녀삼총사 대표로 찍었습니다.>
우리가 걸어서 아는 바와 같이 선석산은 바위가 거의 없는 육산으로 능선도 날카로움이 없는 평편한
지대가 많고 넓으며 경사가 완만해 등산을 하면서도 뒷동산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이는 산세가 완만하다는 점도 있겠으나 그보다 명당을 걸으며 명당의 기를 받으므로 힘든 줄 모르고
즐거운 산행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헬렌켈러의 「눈으로 세상을 3일만 볼 수 있다면」---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 세째 날 마지막 날에는, 일찌감치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온갖 모습들을 바라보고, 아침에는 오페라 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멋진 영화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 쇼윈도우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다시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돌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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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산 정상은 널찍하지만 주변을 가꾸지 않아 넓은 정상이 쉼터가 될 수는 없다.
후미가 정상에 올랐을 때 선발진은 이미 하산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산행은 선석산에서 비룡산을
경유해 하산하는 것으로 잡았으나 시간이 지연되어 선석산에서 바로 신유장군 유적지로 하산하는
것으로 변경하여 모두 정상을 내려섰고 총무 대박만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룡산을 경유하기로 하고 선석산을 떠납니다.>
후미끼리 인증사진을 찍고 주변도 돌아보지만 신유장군 유적지가 있는 남계리마을과 우측으로
비룡산이 보일 뿐 지나온 방향으로는 숲이 우거져 조망일 할 수가 없다.
후미팀도 일부 하산 한 후 일행에게 미안함을 감수하고 대구의 권재형과 성봉현 그리고 필자 3명이
원래 계획대로 비룡산을 경유하기로 하고 대박 총무에게 후미를 부탁하고 선석산을 떠난다.
선석산에서 비룡산 정상 구간
선석산 정상에서는 3개의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북쪽은 우리가 지나온 길로 영암산과 이어지는 길이고 동쪽으로는 남계리나 시묘산으로 하산하는
길이며 남쪽으로는 10분을 내려서면 3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남동으로는 비룡산으로, 남서로는
불광교 방향으로 세종의 왕자태실로 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쪽으로 들어섰으며 선두에 선 권재형 아우는 그동안 맘 놓고 달리지 못했던
내면에 쌓인 답답함을 산화시키려는지 폭발적인 속도로 질주했고 맨 뒤 성봉현 아우는 몸 상태가
몹시 안 좋은 듯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른다.
<용바위라고 하는데 용머리를 닮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정상에서 시작된 남쪽 능선길 은 노송이 우거진 등로로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었다.
정상을 출발해 200여m 이동하면 안내판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용바위라고 하며 안내판에는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한 바위로 용의 머리를 닮아 예로부터 용바위라고 불렸다는 이 바위에서는
가야산과 낙동강이 잘 보인다고 하는데 짙은 황사로 주변 조망은 이미 포기한 상태다.
노송 주위로 여러 개의 바위가 산재해 있는데 어떤 바위를 용바위라고 하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용의 머리에 비교할 만 한 바위는 없는 듯 했다.
주마간산 격으로 용바위를 둘러보고 다시 속도를 내고 단거리 육상선수 같이 모습을 감추더니 잠시
후 모습을 나타낸 곳은 용바위에서 약25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태봉바위다.
등로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난 지점에 위치한 태봉바위는 왕자태실이 있는 태봉을 조망하는 전망
바위로 이곳에서 태봉이 명당자리임을 살펴보았다는 설이 있어 태봉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태봉바위에서 계곡아래를 보면 세종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을 보면 정말 명당으로 풍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명당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당이다.
태봉을 가운데 두고 돌문이고개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남으로 분기한 546봉 능선이우백호가 되어
태봉을 감싸고, 신석산에서 비룡산으로 분기한 능선이 불광교3거리에서 남으로 가지 친 능선이
좌청룡이 되어 태봉을 감싸고, 태봉 앞 흐르는 계곡수가 저수지를 만들며 태봉으로 집중된 정기를
보호하고 있는 형국이니 참으로 명당중의 명당이라는 재형아우의 설명이다.
<태봉바위 전망대에서 태봉을 바라보는 첫하며 채미씨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봉바위에서 태봉을 바라 본 풍경입니다.>
태봉에는 세종 왕자의 태실뿐이 아니고 세종대왕의 원손인 단종의 태실도 이곳에 있다고 하는데
이곳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어봐야 확실한 사항을 알 수 있겠지만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애들이
이조백자인 태실 항아리가 탐이나 관리가 어렵다는 핑계로 전국의 태실을 모두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이전하며 태실항아리를 모두 훔쳐갔으니 아마도 그 피해를 이곳 태봉에 있는 왕자태실도
빗겨가지는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태봉 좌측으로는 태실 보호사찰로 지정했던 선석사의 모습이 보이고 태봉 앞으로는 인촌지의 모습이
보이고 인촌지 너머 들판으로는 비닐하우스가 대부분의 농지를 덮고 있는데 이곳이 전국으로 판매
되는 승주참외의 본산지인 것이란다.
<태봉과 비룡산 갈림3거리입니다.>
태봉바위를 뒤로하고 300여m를 지나면 노송이 있는 3거리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왕자태실묘와
비룡산이 분리되는 능선으로 이정표에는 선석산0.63km↔불광교1.16km →비룡산1.85km가 표기되어
있으며 비룡산을 가기위해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좌향하여 진행을 한다.
비룡산으로 가는 길은 선석산을 오를 때보다 더 좋고 상쾌했으며 주변 좌우로 높게 자란 나무에는
연한 연두색의 잎새가 돋아 난다.
<비룡산으로 이어지는 길로 걷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땅위에 있는 작은 나무들도 연한 잎새를 키우고 고도를 점점 낮추며 철쭉이 화려한 자태로 등산로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가 하면 노송 숲을 지나며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기운을 북돋으며 가다보면
대흥사로 갈리는 3거리를 지나 조금씩 고도를 높이다보면 바위 전망대에 도착한다.
앞서간 재형아우가 전망대에서 기다리다 전망대를 인계하고 비룡산으로 향한 후 뒤이어 오는
성봉현아우를 기다리며 사방을 조망한다.
<전망대에서 본 서진산의 풍경입니다.>
<전망대에서 본 금오산의 풍경입니다.>
<전망대에서 본 북삼면과 뒤로 구미가 보입니다.>
지나온 선석산 정상이 보이고 우측으로 시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금오산이 황사를 뒤집어
쓴 채 뿌옇게 모습을 보이고 그 아래 북삼읍내가 있으며 그 너머로 구미 시내가 형체만 보일 뿐이며
반대 방향으로는 위치상으로 가야산이 보여야 하는데 오늘은 가야산이 박무속에 숨이 아쉽게도
가야산은 볼 수가 없다.
<전망대에서의 성봉현씨 인증샷입니다.>
<지도....>
주변을 조망하는 사이 뒤이어 봉현아우가 모습을 나타낸다.
선석산을 출발하면서 뒤 처져있는 봉현아우가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점심식사를 많이 하여 몸이
무겁다고 둘러댔지만 축지법을 쓰는 듯 준족을 지닌 아우가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은 듯 했다.
잠시 전망대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함께 비룡산으로 향한다.
<비룡산 정상으로 산불감시초소와 작은 정상석이 보입니다.>
전망대에서 비룡산은 지척으로 약3분여만 경사진 길을 치고 오르면 되는데 우리가 비룡산에 올랐을
때는 재형이우는 이미 땀을 식힌 상태였다.
성모의집 들머리에서 비룡산 정상까지 산행거리 8.6km, 산행소요시간 5시간29분, 해발 581m,
현재시간 15시52분이다.
비룡산 정상에서 두만지 날머리 구간
비룡산(飛龍山)!
한문을 직역하면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의 산이라고 풀어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산 이름만 보면 산이 날렵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 엿보이는 산이나 막상 정상에 서면 산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특별한 점이 없다.
<정상석과 뒤로 금오산이 보입니다.>
비룡산은 칠곡군 약목읍과 기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정상은 10평도 되지 않는 공간이며
남으로는 소나무 아래 벤치를 설치해 쉼터로, 동으로는 하산 길과 산불감시초소가, 그리고 북으로
는 바닥에 낮게 정상석을 세웠으며 뒤로는 큰 나무를 베어내 전망이 좋아 금오산을 조망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잠시 조망도하고 인증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산불초소 옆 하산 길에는 이정표를 보면 두만지2.2km↔서진산(석석산)2.5km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칠곡에서는 선석산을 서진산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원래 서진산이었는데 산 아래 승주 땅에 명찰인 선석사가 있다고 하여 사찰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바꾼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권재형 아우와 비룡산에서 추억을 담습니다.>
다른 사람의 산행기에서는 이러한 산명 변경에 대해 부정하는 글을 쓰면서 그렇다면 속리산은
법주산으로, 가야산은 해인산으로, 설악산은 신흥산으로, 우리나라 각처에 있는 명산들의 이름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지론으로 선석산 보다는 서진산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문제는 정상이 있는 곳이 성주군과 칠곡군의 군계를 구분하는 지점으로 성주군에서는
성주땅에 선석사가 있으므로 아무런 이의가 없겠지만 칠곡군 입장에서는 함께 공유하는 산이 마치
몽땅 성주의 산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석산이 맞던, 서진산이 맞던 우리의 당면 과제는 비룡산을 무사히 하산하여 일행들과 합류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성봉현 아우와.......>
비룡산 정상에서 5분여 휴식을 취하고 정상을 내려선다.
서진산 정상에서 비룡산으로 오를 때 느끼지 못했던 경사가 하산 때는 상당했는데 가파른 내리막을
지그재그로 10분을 내려서면 길도 완만하게 바뀌며 샘터를 만난다.
먼저 내려선 재형아우가 샘터가 있다며 샘물이 시원하다며 물을 마시니 우리도 덩달아 샘물을
마셨는데 물은 차고 시원하며 무취의 약수 같아 연거푸 마셔 배를 채우니 일행 3명이 모두 물배를
채우고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산행을 시작하던 처음부터 이제까지 능선으로만 산행을 이었는데 샘터를 지나며 계곡으로 진행하게
되며 계곡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산은 이어지고 행여나 계곡 주변에 귀한 야생화나 만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내려섰지만 그런 행운은 찾아주지 않았다.
<정상 아래 있는 1약수터로 물맛이 좋아 마시고 갈증을 풀었습니다.>
<옛날 절터인 것 같은 분위기의 제2약수터입니다.>
샘터에서 10분을 내려서 또 다른 샘터를 만났는데 이곳은 평지처럼 된 공간이 있고 꽃을 피운 복숭아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아 예전에 무허가 사찰이 있었던 것 같았다.
2번째 샘터를 지나 등로는 아주 양호하였고 산행이라기보다 들길을 걷는 정도의 길을 따라 10분
걸리지 않아 사방댐에 도착하고 사방댐을 벗어나 첫 번째 민가를 만나고 민가 앞 이정표에는
이전 거론했듯이 선석산이 아닌 서진산으로 표기하였다.
민가를 지나며 길은 포장도로로 바뀌었고 주변 논에는 농사일로 분주하게 트랙터를 모는 농부가
보이고 멀게 보이던 두만지가 점점 가까워진다.
<사방댐을 지나 멀리 두만지를 보며 마을길을 내려섭니다.>
<두만지 둑방을 지납니다, 일행들을 만나러...... >
이내 3거리에 도착하며 두만지 푸름 물을 보며 마음으로 목욕을 하고 일행에게 전화를 하는 사이
내려선 비룡산을 보니 원뿔 형태로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비룡산은 정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위용을
다시 느껴 본다.
성모의집 들머리에서 두만지 날머리까지 산행거리 10.71km, 산행소요시간 6시간10분, 해발
132m, 현재시간 16시37분이다.
에필로그
산행을 하면서 일행이 행동을 통일해야하는 게 정상입니다.
차량을 회수하기 위해 상택대장과 상훈아우가 먼저 하산을 한 것은 필연적이었지만 나머지 10명은
함께 행동을 해야 옳았습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처음에는 당연 함께 행동하려 했는데 갑자기 원안대로 비룡산으로 산행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충동을 자제하지 못한 게 이런 결과를 초래합니다.
<아름답게 단장된 공원에 꽃들이 보이고 더 예쁜 꽃3송이는 어디 숨어버렸나요?>
대구 미녀 3총사가 정상에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하산하지고 했더라면 상황은 바뀌었을 것입니다.
비룡산으로 갔으면 하는 충동은 시묘산 방향으로 하산을 하는 것이나 비룡산으로 하산하는 것이나
크게 거리가 차이가 나지 않고 도착지점도 신유장군 유적지 앞이었다는 점이 자제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암튼 여러분에게는 미안하였지만 원안대로 산행을 하고 비룡산의
정기를 받아 무사히 하산했음이 그래도 조금 낳은 점입니다.
왜관으로 자리를 옮겨 아우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으니 또한 좋았지만 괜시리 부담만 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쉬운 건 차성섭회장 내외가 집안일로 참석하지 못했고 내가 좋아하는 기경환 아우의 얼굴을 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대구 아우들에게 미안하게 또 거한 저녁을 대접받습니다.>
하지만 각자 정해진 일상이 있으니 상황에 따라 대처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 아니겠습니까?
융숭한 대접에 감사하고 가을 서울에 오면 다 갚지는 못해도 반쯤은 갚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산행과 무관한 헬렌켈러의 수필을 음미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연이 준 선물에 대한 감사함이나 부부로 만남의 감사함, 내게 가정이 있고 함께 산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튼튼한 육신으로 남의 도움없이 산행을 할 수 있는 건 크나큰 행운이며 감사입니다.
오늘 함께 산행할 수 있어 감사하고 건강한 모습과 밝은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함께해준 대구 참사랑,
그리고 선배님과 아우님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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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기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차오름은 왜일까요?
서울 대구 교류 산행 했는지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우리들의 얼굴에 주름도 늘어나고 우리들의 가슴속에 추억과 우정도 늘어나고
형님의 산행기에 대한 감동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가지 바라옵건데 우리 모두들 건강도 좋아져서 오래도록 함께할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상택아우 반갑네
대구 갈 때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아 정말 미안해
좋은 산 선정해 즐거운 산행 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어
사업 잘 영위해 나가고
자잔거, 산행 잘 하면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보자구~~~
요즈음 일상이 좀 바쁜가 봅니다 카폐에도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선배님의 산행기를 접할때마다 이 많은 자료들을 발취하고,조사하고 넘 고생하신것이 보입니다
덕분에 잘 읽고, 다시 그날들을 되새깁니다
산행에서 비룡산을 접하지 못했는데 선배님이 다녀오신 자료를 상세하게 묘사를 잘 해 놓으셔서 읽으니 다녀온것 같습니다
선배님들도 즐산 안산 하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어 가을에 만나는 날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산행기 수고하심에 감사를 드리구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몸이 불어서 고생했습니다-가을에는 살좀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카페에 모처럼 들렀습니다. 뭐가 그리바쁜지....
선배님 산행기를 읽으며 다시한번 행복했습니다.
감사할줄 모르고 헐떡이며 살았습니다. 글을 읽으며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선배님들이 산행하는 방법과 내가 산행하는 방법이 다른것 같아요 사진과 함께 산행기를 읽으면 똑같이 눈으로 보고 산행했던 곳인데 미처 보지못하고, 생각지못하고
스쳐지난 그날의 즐거움과 행복했던 감정이 되살아 납니다.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사랑 회원님들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들 하시고 다음 산행때에는 제가 부족했던 부분들 새기면서 감사하게 산행하겠습니다. (박상훈부부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