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7.
마을 청년 유빈이네 집에 초대받았다.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유빈 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청년이지만, 최선웅 선생님의 주선 아래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라 말을 놓기로 했다. 존댓말이 불쑥 나올 때면 최선웅 선생님께서 "유빈아~"라고 불러보게 하셨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덕분에 더 정겨운 자리가 된 것 같다.
집에 들어가자 유빈이가 강아지를 보여줬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작은 강아지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말들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작은 생물체를 보고 있자니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스며들었다. 유빈이가 선생님들 집에 마당이 있냐고 물어봤다. 마당이 있으면 데려가서 키우라고 했다. 마당... 마당... 마당...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본 적 없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슬픔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 슬픔도 잠시, 유빈이가 끓여준 불닭볶음면이 식탁 위에 등장하는 순간 온 신경이 혀 뒤쪽 끝으로 향했다. 유빈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산 불닭볶음면이라고 했다. 얼른 식사송을 불렀다. 그리고 불닭볶음면을 한 젓갈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몹시 맛났다. 입 안을 온통 자극하는 그 짜릿한 매운맛이 오랜만이라서 맛나기도 했지만 '내가 누구라고 불닭볶음면, 그것도 치즈를 4장이나 추가한, 을 끓여 준다는 말인가' 하는 감동이 맛을 더한 듯했다. 거기에 매운맛을 중화시키기 위한 파스타까지 함께 있어 더욱 풍성한 점심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유빈이의 복싱 대회 영상을 봤다. 복싱 영상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사람 두 명이 서로 치고받는 복싱 영상이 개인적 취향에 그리 맞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옆에 선수가 있어서 그런지 경기를 몰입해서 보게 됐다. 옆에 앉은 유빈이와 티비 화면 영상 속 유빈이가 다르게 보였다. 사람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꼈다.
점심을 다 먹고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의 여행 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고 유빈이의 방에 들어가 옛날 호숫가마을도서관 활동 수료증을 구경하기도 했다. 6학년 졸업 여행 수료증도 있었다. 이번에 6학년 졸업여행을 담당하는 최정윤 선생님이 관심을 보이며 혹시 이번에 졸업 여행에 가는 아이들과 한 번 만나 조언을 구할 수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유빈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맞는다면 좋다고 했다. 지금 6학년 아이들과 한때 6학년 졸업 여행을 다녀온 유빈이가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시간이 맞는 날이 있었으면!
점심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유빈이네 집에서 나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유빈이가 준 짱구 키링을 달랑달랑 흔들며 걸었다. 옆에 이주은 선생님의 손에는 초코비 공룡 키링이 달랑거렸다. 최정윤 선생님, 최선웅 선생님 손에도 유빈이가 선물해준 키링이 있었다.
다정한 수요일 점심이었다.
유빈아 고마워!
영어 공부 파이팅!
첫댓글 유빈, 초대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점심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