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념으로서의 홍익인간(弘 益 人 間)
정 영 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1. 머리말
홍익인간은 한국의 교육기본법이 정하고 있는 교육의 이념이다. 말하자면 교육활동 전반을 지휘하고 방향지우는 최고의 원칙이자 지침인 셈이다. 그러나 이 이념이 한국교육에서 얼마나 유념되고 있고 실천되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교육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마치 교육이념이 잘못되어 교육의 파행이 생겨나기라도 한 것처럼 홍익인간에 대한 공격이 되풀이되었다. 홍익인간은 교육현장에서 살아숨쉬는 이념이 아니라 장식장 구석에 넣어놓고 그 존재조차 잊은 낡은 골동품처럼 대접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이념의 의의가 중요하고 현대의 교육현실과 관련해서도 의미가 크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인간의 복지와 존엄을 국가와 정치 및 교육의 최고목적으로 간주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를 촉구하는 홍익인간이념의 취지는, 공동체와 사회를 인간성 넘치고 사랑과 이해로 묶어주는 덕목으로서 중요하며, 교육현장의 비인간화와 개인주의화 현상에 대해 반성과 교정을 촉구하는 지침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 논문은 (1) 홍익인간교육이념의 유래와 사상적 지향 및 (2) 그것이 교육이념으로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고, (3) 21세기 한국교육과 관련하여 그것이 가지는 의의를 검토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들 문제는 홍익인간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과 교육의 현장에서 살려내는 과제와 관련하여 먼저 살펴져야 하는 주요한 주제들이 아닐 수 없다. ....(중략)
2. 홍익인간의 유래와 사상적 지향
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홍익인간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문건은 고려말 편집된 사서인 <삼국유사>(1281)와 <제왕운기>(1287)이다. 이 두 책은 동국사의 첫머리를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서술하면서 그 건국과정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홍익인간이념을 거론한다. 두 문건의 원문을 주요부분만 간추려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천제 환인에게 서자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數意天下) 인간세상을 탐하였다(貪求人世).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遣往理之). 환웅이 삼천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니 이가 곧 신시요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부른다. 풍백과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에 머무르면서 다스렸다(在世理化). ...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요, 당요가 즉위한지 50袖?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처음 일컬었다. ...”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 都平壤城 始稱朝鮮 ...) (<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古朝鮮)
<제왕운기>
“처음에 누가 나라를 열었던고 / 석제의 손자요 이름은 단군이라네 (본기에서 이르기를, 상제 환인에게 서자가 있었으니 이름이 웅이었다 한다. 환인이 일러 말하기를, 지상으로 삼위태백까지 내려가서 홍익인간해보겠는가 하였다. 그리하여 환웅이 천부인 세 개를 받아 귀신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니, 이 분을 단웅천왕이라 부른다. ... (단웅의 손녀가 단수신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이다. 조선 땅에 자리잡고 왕이 되었다. 신라, 고구려, 남북옥저, 동북부여 및 예와 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 (初誰開國啓風雲 釋帝之孫名檀君 (本紀曰 上帝桓因有庶子 曰雄云云 謂曰 下至三危太白 弘益人間歟 故雄受天符印三箇 率鬼三千 而降太白山頂 神檀樹下 是謂檀雄天王也 ... 生男名檀君 據朝鮮之域爲王 故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夫餘穢與貊 皆檀君之壽也 ...) (<帝王韻紀> 卷下 前朝鮮紀)
이 두 인용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홍익인간은 천제 환인이 지상의 인간세상과 관련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는 점이다. 이 홍익인간 이념은 환인의 아들 환웅에게 제시되었으며, 환웅이 신시를 연 이념으로 계승되었고, 단군의 조선 건국에서도 기본적 관심사로 계승되었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환인의 이념이 아니라, 상고시대의 한국인들이 염원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말하자면 홍익인간하는 공동체와 국가와 삶의 모습를 소망하던 원시 한인들의 꿈과 바램이 신화 속에 반영되어 전승되다가 [고기]와 [본기]를 거쳐서 일연과 이승휴에 이르러, 위와 같은 문건 속에 정리되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홍익인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전후의 문맥으로 볼 때는,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밑으로 내려와 신시를 열고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여 사를 주관하면서 ‘재세이화’하였다 한 침화治化활동이 홍익인간을 실천한 것이라 짐작할 수 있지만, 홍익인간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의 사회나 공동체-인간생활을 이상시하는지를 더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홍익인간이 어떠한 행동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지 하는 것은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바는 현재로서는 ‘홍익인간弘益人間’ 한문의 자의를 해석하여 접근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홍익인간의 의미를 [천부경][삼일신고] 같은 대종교 경전이나 <환단고기> 같은 재야사서의 내용, 또는 [홍범구주] 같은 중국 고대문헌을 통하여 찾아내려 하기도 하지만, 이들 문헌들이 단군시대에 이루어진 문건이거나 그 시기의 역사와 사상을 전해주고 있다는 사료검증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이들 문헌을 토대로 홍익인간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 홍익인간 연구에서는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업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는 “널리 (또는 크게) 인간을 이롭게 하라”로 해석되고 있는 홍익인간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일단 목적어 또는 대상인 ‘인간’이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하는 것과, 술어에 해당하는 ‘홍익’을 어떻게 해석할지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다.
우선 여기서의 ‘인간人間’은 오늘날 ‘인간’이라 할 때 의미하는 ‘사람’과는 다르고,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른 개념으로의 인간사회에 가까운 용어로 보면 될 것이다. 혹자는 사람과 자연을 아우른 개념으로의 ‘누리’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인간’ 용어의 의미상 핵심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며, 거기에 관계 또는 결합을 뜻하는 ‘간間’이 덧붙여져서 전체적으로 사회-공동체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환웅이 굳이 지상에 뜻을 둔 것은 거기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가 신시에서 처결한 곡식, 질병, 명령, 선악, 형벌 같은 일들은 인간사회의 복지나 질서에 관련된 일이었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굳이 인간이 되고자 염원하여, 그중 곰이 고행끝에 사람의 모습(人形)과 몸(人身)을 얻었다 한 것도 홍익인간의 ‘인간’이 ‘사람’에 촛점이 있음을 알게해주는 것 같다.
여기서의 ‘인간’ 개념에서는 남을 대립시킬 때는 자기보다 남과 이웃-공동체가 우선된다. 홍익인간이 이타주의로 해석되는 소이이다.
‘홍익弘益’과 관련해서도 논의할 것이 적지 않다. 먼저 ‘익益’은 ‘돕는다’, ‘이롭게한다’, ‘더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봉사와 자선, 사랑, 협동 같은 행위를 가리킨다. ‘인간’을 합하여 해석하면 인간을 돕고 사랑하고 이롭게 해주는 행위를 지시한다.
그런데 ‘홍弘’의 의미는 좀 복잡하다. 이 홍弘은 ‘넓다’는 의미와 ‘크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넓다’할 때의 의미는 범위의 광범함과 상태가 고르고 평등하다는 의미로 연결되는데, ‘크다’할 때의 의미는 양적인 크기의 차원에서 규모가 있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볼 때 홍익인간은 인간을 고르고 평등하게 이롭게 해준다는 의미와, 인간에게 베풀고 제공하는 복지의 총량을 크고 많게 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그런데 이 두가지 의미는 정치적으로 매우 다른 방향의 지향성을 가진다. 전자가 평등이라는 가치와 연관된다면, 후자는 생산성이나 효율성으로 연결된다. 전자의 정치적 지향이 사회주의로 나아간다면, 후자는 자유주의와 친화력이 있다 할 수 있다. 일찌기 조소앙 등 사회적 민족주의자들은 홍익인간의 의미를 평등-균등의 의미로 해석하였는데, 위와 같이 본다면 그같은 해석은 일면만을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나. 홍익인간의 사상적 지향
홍익인간의 자의를 이 정도로 분석한 토대위에서 이 이념이 지향하는 바의 가치나 사상을 추출해보기로 하자.
홍익인간에서 우선 두드러지는 것은 인본주의 정신이다. 그것은 말그대로 인간을 돕고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단군신화 전체에서 인간은 보살펴져야 하는 고귀한 존재로 부각된다. 홍익인간은 인간의 행복과 존엄성 및 목적가치로의 지위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속성을 지닌다.
이를테면 인간을 신의 영광을 구현하기 위한 존재로 간주하고 신의 권능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신본주의나, 물질과 돈을 최고가치로 생각하여 인간을 수단시하는 물질만능주의-유물주의 사고는 홍익인간 이념에 의해 거부된다. 특정인이나 소수의 인원이 자원을 독점하여 다수를 소외시키는 체제나 인간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제도-질서 역시 반홍익인간적이다.
또 인간의 삶에 현실적 이익을 주는지의 여부보다 특정 관념-이데올로기에의 합치여부를 판단기준으로 삼는 교조주의-공식주의 역시 홍익인간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인간을 객체화-사물화-간접화-일차원화-규격화-표준화-획일화하는 ‘비인간화’는 홍익인간에 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홍익인간 이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제도와 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이 누리는 문명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전반에 대하여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인지를 묻는다. 홍익인간의 인본주의는 정치적으로 볼 때는 백성의 행복을 국가와 정치의 궁극목적으로 간주하는 민본주의로 연결되어 가며, 그것은 다시 구성원의 자치원리로의 민주주의에로 발전해간다.
홍익인간의 인본주의는 특히 현세에서의 복지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그것은 인간에게 구체적인 이로움과 도움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홍익인간 관념은 ‘탐구인세’나 ‘재세이화’ 같은 문귀와 어울리면서 내세주의 아닌 현세주의를 강하게 지향한다. 환웅이 지상에서 처리한 일들에는 주형, 주선악 같은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일 만이 아니라 주곡-주병 같은 실질적 문제에까지 미친 데서 보듯이 홍익인간의 현세주의는 실질적 복지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와 어울린다.
홍익인간은 또 타인과 공동체에 대해 사랑하고 봉사할 것을 촉구하는 이타주의적 삶을 촉구한다.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은 좁게는 이웃과 국민-민족일 수 있지만, 국가나 민족의 벽을 뛰어넘어서 인류에 대한 사해동포주의로까지 나아가는 개방성을 가진다. 단군신화에서 가家- 국 國- 족族- 후손後孫 같은 단위는 보이지 않고 인人- 인간人間 같은 보편적 표현만이 보이는 것은 이같은 포용성과 개방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홍익인간은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주의를 거부하고, 편협성과 독단성을 배척하며, 타인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나를 낮추는 겸양-관용-포용의 덕으로 통한다. 부정부패나 독점-독선 같은 반공동체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화합과 공존의 윤리를 지향한다.
물론 홍익인간이 지향하는 인본주의와 사랑, 봉사의 윤리는 시대와 장소의 상황여건과 과제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독재와 전체주의가 인간을 구속하던 시기의 홍익인간은 민본주의와 민주주의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고, 종교가 신의 권위를 빙자하여 인간을 억압하던 때의 그것은 인본주의로 나타날 것이다. 물질이 인간가치를 종속시키는 물질만능주의 세태 속에서는 인간주의-인격주의로 해석될 것이고, 전쟁과 폭력이 인간생명을 위협할 때는 반전-평화의 논리로 나타날 것이다. 비능률과 비합리성이 사회의 활력을 잠식하면서 인간을 빈곤에 빠뜨릴 때의 홍익인간은 능률과 합리성을 향한 개혁이데올로기로 옷을 바꾸어 입게 될 것이고, 소수가 사회 내부의 자원을 독점하는 가운데 불평등과 소외가 공동체를 분열시킬 때는 평등과 공존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인성이 사막화하여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이리 상태로 바뀔 때의 홍익인간은 이타주의와 사랑-봉사-양보의 윤리로 재해석돼야 것이며,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의해 민족이 분단되고 고통받을 때의 그것은 통일과 화합의 논리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또 제국주의가 민족의 안전을 위협할 때의 홍익인간은 민족의 자주독립을 요청하는 논리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며, 세계인류가 화합된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때의 홍익인간론은 인류공영의 사해동포주의와 세계시민론으로 번역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홍익인간 교육이념의 제정과정
가. 교육이념의 제정과정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술된 홍익인간은 이후 600년 이상을 잊혀져 있었던 것 같다. 조선조를 통하여 1900년대 초까지 홍익인간을 거론한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조선조의 사서들도 동국사의 시작을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서술했었다. 그러나 그들 사서가 홍익인간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하나는 조선조의 단군건국 기사가 유교적 합리성에 의고하여 환인과 환웅은 탈락하고 단군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홍익인간은 환인과 환웅의 이념이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조의 사대모화사상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사대모화사상은 민족적 고유성에 대해 비하하고 유교적 의의가 있는 부분만을 취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유의 이념인 홍익인간이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규원사화>(1675) 같은 선가계 사서에서도 거론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한말의 신채호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에게서도 크게 주목되지 않았다. 이들 사학자들에게는 단군의 자손으로의 민족정체성을 시급히 정립하는 것이 중요 관심사였지만, 그러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까지 주목하지는 않았다. 홍익인간이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근대의 문건은 대종교의 경전인 [신사기]이다. 이 경전에서는 환인-환웅-단군 삼신의 사적을 기술하는 가운데, ‘홍익인세’라는 표현을 쓰고있다.
홍익인간은 1920년대의 신민족주의자들에게 와서야 본격적으로 주목되고 인용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과제는 사상적, 계급적 대립을 통합할 민족적 지도이념을 정립하는 것이었는데, 외래사상 아닌 토착적-고유적 유산 속에서 통일이론을 찾아가던 국학운동가들에게 발견된 것이 바로 홍익인간이었다. 조소앙과 안재홍, 정인보 같은 신민족주의적 국학자들은 홍익인간 이념을 사상적 계급적 대립을 통합하여 통일민족국가를 성사시킬 수 있는 지도원리로 재해석하고, 이 이념을 일반에게 적극 보급하였다.
조소앙은 홍익인간을 통일국가건설과 세계일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최고 공리라 규정하였는데, 그는 홍익인간을 특히 균등사상의 측면에서 해석하였다.
안재홍도 홍익인간 이념을 다사리-만만공생-대중공영-민주주의-민생주의 같은 현대적 정치원리로 재해석하여 ‘새시대창건의 지도원리’로 삼았다. (정영훈, [홍익인간이념의 유래와 현대적 의의], 정영훈 외, <홍익인간이념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15-18쪽 참조.)
정인보도 홍익인간을 우리민족이 인간세계를 열고 나라를 세운 최고의 준칙이었으며 ‘조선의 조선됨이 그 근본되는 연원’이자 ‘겨레의 줏대되는 정신’이라 강조하고, 공익을 사적 이익에 앞세우던 이 전통을 잊고 실천하지 않은 데서 망국이 초래되었다고 보았다. (정인보, <조선사연구>(하), <담원 정인보전집> 4, 182-184쪽 : 정인보, [병자와 조선], <담원 정인보전집> 2권, 363-369쪽.)
이 홍익인간이 한국교육의 지도이념으로 처음 채택된 것은 해방후 미군정 하에서 교육문제를 자문하던 조선교육심의회에서였다. 이때 교육이념으로 제정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백낙준과 안재홍이었다. 그 중에서도 홍익인간 이념을 맨처음 제안한 것은 백낙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는 홍익인간 이념은 그 유래가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보다 훨씬 옛적부터 전해온 것이며, 우리민족의 이상을 가장 잘 표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손색이 없다고 강조하였다.(백낙준, <한국교육과 민족정신>, 문교사, 1953, 25쪽.) 그는 홍익인간을 영어로 ‘maximum service to humanity’라 번역하였다. 학자에 따라서는 ‘the greatest service for the benifit of humanity'라 번역하기도 한다.
그들의 주창하에 조선교육심의회 제4차 전체회의(1945.12.20)에서는 교육의 근본이념을 “홍익인간의 건국이상에 터하여 인격이 완전하고 애국정신이 투철한 민주국가의 공민을 양성함”에 두기로 결정하였다. (홍웅선, <광복후의 신교육운동>,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1, 16쪽 ; <동아일보> 1945.12.25일자.)
홍익인간 이념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교육법이 제정되면서 교육이념으로 정식 결정되었다. 1949년 12월 31일 정식 공포된 교육법에서는 그 제1조에서 교육의 기본이념을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의 자질을 구유케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법 제2조에서는 제1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두 7가지의 교육방침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교육부문에서 홍익인간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제시된 것이라는 차원에서 의의가 있으므로 여기서 인용해둔다.
(1) 신체의 건전한 발육과 유지에 필요한 지식과 습성을 기르며, 아울러 견인불발의 기백을 가지게 한다.
(2) 애국애족의 정신을 길러 국가의 자주독립을 유지발전하게 하고, 나아가 인류평화건설에 기여하게 한다.
(3) 민족의 고유문화를 계승앙양하며, 세계문화의 창조발전에 공헌하게 한다.
(4) 진리탐구의 정신과 과학적 사고력을 발양하여 창의적 활동과 합리적 생활을 하게 한다.
(5) 자유를 사랑하고 책임을 존중하며 신의와 협동과 경애의 정신으로 조화있는 사회생활을 하게 한다.
(6) 심미적 정서를 함양하여 숭고한 예술을 감상 창작하고 자연의 미를 즐기며 여유의 시간을 유효히 사용하여 화해명랑한 생활을 하게 한다.
(7) 근검노작하고 무실역행하며 유능한 생산자요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건실한 경제생활을 하게 한다.
고 정하고 있다.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이념으로 채택한 동기를 <문교개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란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인仁 ,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인류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문교부, <문교개관> (1958), 4-5쪽.)
나. 단군민족주의와 홍익인간이념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정신사 속에 하나의 유력한 흐름으로 오랫동안 존재해오면서 홍익인간이념이 교육이념으로 제정되기까지 크게 영향을 끼쳤던 ‘단군민족주의’라 불리는 사상-의식 흐름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군민족주의란 단군을 민족의 공동시조로 상정하면서 그 이름 밑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민족적 단결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던 일련의 사상-의식 및 사회문화적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군민족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할 것.
(1) 정영훈, [단군과 근대한국민족운동], <한국의 정치와 경제> 8집, 정신문화연구원, 1995,
(2) 정영훈, [한국사 속에서의 단군민족주의와 그 정치적 성격], <한국정치학회보> 29집2호, 1995,
(3) 정영훈, [근대한국 민족교육에서의 단군], <정신문화연구> 1986년 봄호, 정신문화연구원.
이 단군민족주의 의식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단군 관련 기록을 전해준 [고기]나 [본기] 이래 우리정신사 속에서 그 존재가 뚜렷이 찾아지고 있다. 이 단군민족주의적 의식을 견지하였던 흐름을 학계에서는 선가仙家 또는 도가道家- 낭가郎家로 부르거니와, 단군민족주의는 보편주의적 유교-성리학과 사대모화-소중화사상의 영향 하에 전반적으로 몰민족-탈민족의 세계관에 침닉되었던 조선조-중세기를 통하여서도 단군으로부터 기원하는 동이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각성시켜 왔다.
단군민족주의는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널리 부활하여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제고하는 과제를 주도하게 된다. 가령 한말에 들어 ‘단군의 자손’ 의식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게 된 것과, 단기-단군건국년호가 민족언론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 단군교-대종교라는 단군을 국조로 숭앙하는 종교단체가 창립된 것, 단군의 자손의 역사적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민족주의사학-국학이 대두된 것 등은 한말에 부활한 단군민족주의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도 특히 대종교나 민족주의사학-국학자들은 한말-일제기를 통하여 단군민족주의적 의식을 체계화하고 보급시킨 주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근대사를 통하여 한민족은 이 단군민족주의를 매개로 해서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단결-결속을 공고히 하며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의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한민족이 중세기 이래의 소중화의식에서 탈피해서 민족적 자각과 공동운명의식을 분명히 수반한 ‘근대적 민족’으로 발전한 것은 단군과 단군민족주의에 힘입은 바 크다 해야 할 것이다.
이 단군민족주의는 일제기를 통해서는 식민당국에 의해 금지당하고 탄압되었지만, 해방과 함께 다시 대중적으로 부활하여 자주적 통일민족국가를 향한 민족적 동력원으로 대두되게 된다. 그리고 비록 국내외적으로 강화된 냉전을 극복하여 통일을 이루어내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남쪽의 반공적 대한민국에서나마 국가의 제도 의례 속에 편입되게 된다. 가령 개천절이 국정공휴일로 제정된 것과, 단기가 공식년호로 지정된 것, 그리고 홍익인간이념이 교육이념으로 제정된 것 등이 그것으로, 이 세 가지는 해방후 대한민국에서 단군민족주의가 제도화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중 단기년호는 5.16후 군사정권에 의하여 서기로 바뀌게 된다.
특히 신시-고조선의 건국이상인 홍익인간 이념이 교육이념으로 채택된 것은, 분명한 민족정체의식에 토대해서 통일되고 번영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고 나아가 인류공영에 기여하고자 하던 단군민족주의의 오랜 지향이 반영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앞에서 홍익인간이념을 교육이념으로 처음 제안한 것이 백낙준이었음을 말하였지만, 백낙준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기독교인으로서, 서구적 교양을 갖고 있던 그가 홍익인간이념을 중시했다는 것은 해방후만 하여도 단군민족주의가 종교를 초월해서 공유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정부수립 후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은, 홍익인간 교육이념은 범종파적 범이데올로기적 합의에 의해 채택된 것이며, 정부수립 후에도 큰 반대없이 교육이념으로 결정될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안호상, <한뫼 안호상 20세기 회고록>, 민족문화출판사, 1996, 248쪽.)
4. 21세기 한국교육과 홍익인간이념
가. 홍익인간 교육이념에 대한 도전들
앞에서 홍익인간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폈지만, 교육이념 제정후의 현실은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어 역할을 할 수 있을만큼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 방면에서 반대하고 거부하는 압력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같은 거부움직임은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으로 제정될 때부터 존재했었다. 홍익인간이념을 공격해온 세력은 공산주의자들과 서구주의자들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시즘의 계급중심적 유물사관을 유일의 과학으로 간주하고, 홍익인간이 과학 아닌 신화에 토대된 반동적인 관념이라 규정하고 ‘민주건국’이라는 시대과제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부하였다. 가령 백남운은 우리 교육이 입각해야 할 ‘민주교육’의 기본원칙으로 (1) 일제식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말살할 것, (2) 민주주의정신을 부식할 것, (3) 과학사상을 발양할 것 등 3원칙을 들고, 홍익인간 이념은 이들 세원칙에 모두 위배되는 반동적-비과학적 이념이라 공격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 홍익인간이념은 일제의 소위 ‘조국정신肇國精神’이라는 ‘팔굉일우八紘一宇’와는 달리 중국문헌 아닌 우리문헌을 인용한 것이고 내용 역시 침략성을 내포하지 않은 평화적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일제의 신칙神勅이라는 ‘조국정신’의 한 유형으로 과학사상 아닌 신화전설에 근거하고 있으며, 복고주의 반동사관에 토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홍익인간이념을 “현하 조선의 민주적 건국정신과는 본질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라 규정하였다. (백남운, [조선역사학의 과학적 방법론](1946.7), 하일식 편, <백남운전집>4권, 이론과 실천, 1991, 127-128쪽) 이같은 관점은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된 북한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었다.
미국과 서양으로부터 학문적-종교적 세례를 받은 이들도 홍익인간을 공격하였다. 그들은 우선 홍익인간이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 포괄적 관념이라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그리고 홍익인간이 실증되지 않은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 배후에 존재하는 민족주의적 논리에 대해서도 그것이 편협한 자긍심을 형성하여 세계시민의식을 제약하고 독재정권에 봉사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러나 홍익인간 교육이념에 대한 비판의 배후에는 해방 이후 우리 지식사회에 두드러진 모종의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해방후 남한의 지식계-학계에는 국가 전반이 정치-경제-군사-문화적으로 미국에 대한 의존이 커지는 가운데, 서구-미국적 사고방식과 학문을 진리성과 객관성-합리성의 기준으로 상정하고, 서구화-미국화를 근대화이자 진보요 발전으로 간주하는 풍조가 팽배되어 있었다. 그같은 풍조에는 고유적-전통적 유산을 후진적이고 시대에 뒤진 어떤 것으로만 보아, 극복되어져야 할 것으로 간주하는 편견이 수반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마치 중세기의 사대모화주의자들이나 근대기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들이 배워온 지식-이론들을 상대적인 자리에 놓고 살피는 겸허함과, 고유적-전통적인 것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평가해주는 균형감각이 취약하였다. 우리 지식계와 학문의 폐단으로 사대성과 타아준거성이 자주 거론되거니와, 홍익인간 이념을 비판-배척하는 풍조의 배경에도 우리 학계-지식계가 부지불식간에 빠져든 그같은 폐단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인 것 같다.
해방후 교육이념 제정작업 과정에도 미국에서 듀이(J.Dewey)에게 사사한 바 있는 오천석 같은 이는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제정하는 것을 반대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천석은 듀이의 실용주의-진보주의 이론에 토대하여 한국교육의 문제를 설명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했었는데, 필자가 본문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문제는 오천석에게서도 전형적으로 찾아지는 것 같다. 해방후 오천석은 안재홍-안호상-백낙준 등의 민족주의교육 계열과 대립하여 민족주의보다 민주주의-자유주의-세계주의를 더 중시하는 교육이론을 전개했는데, 해방후 남한의 교육학계에는 오천석계의 세력이 더 컸다 할 수 있다.
홍익인간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교육이념으로 부적합하다는 견해도 미국식의 엄밀과학에 익숙한 눈으로 판단한 결과이다. 이같은 포괄성은 단점 아닌 장점일 수도 있다. 최고이념은 포괄적-추상적으로 설정하고 하위 목표나 방법의 차원에서 그를 현실상황과 세부 실천과제에 맞추어 구체화시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홍익인간이 한없이 막연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목적가치로 간주하면서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봉사를 촉구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 위에서 소외, 착취, 독점, 독재, 독선, 빈곤, 질병, 침략, 전쟁, 폭력, 이기주의 같이 인간의 존엄과 복지에 반하는 모든 비인간적-반인간적인 것들에 대하여 반대하는 적극적인 메시지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이 신화에서 유래하는 것 역시 거부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신화란 본래 고대인들의 세계관과 바램의 산물이며, 홍익인간을 우리 상고시대 조상들이 사회와 국가와 인생사에서 구현하고자 하던 가치덕목이자 이상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교육의 이념으로 채택된다 하여 문제될 것이 없다.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정한 민족주의적 문제의식을 위험시하고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러나 민족주의적 의식은 민족이 세계질서를 설명하는 단위로 지속되는 한 의의를 인정받을 것이며, 거꾸로 탈민족주의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세계주의 역시 불완전하고 불안한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홍익인간은 21세기의 한국사회와 교육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 같다. 현대 한국교육에 부과된 과제는 여러 각도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익인간 이념과 관련하여 볼 때, 다음의 네 가지가 특히 부각되는 것 같다.
나. 21세기 한국교육과 홍익인간이념
첫째로, 교육의 인간성회복이라는 과제이다.
오늘날 교육현장을 인간화하는 문제는 한국교육의 중심주제가 되고 있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사이에 교육의 목적과 내용 및 한국교육이 가지는 정치적 사회적 성격과 관련된 논란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교육이 출세의 수단화하고 학교가 입시경쟁을 위한 학원화하는 현실은 교육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까지 자주 진전되기도 한다. 교육이 사회전반의 비인간화를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계제에 홍익인간은 교육의 현실과 기능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과 검토를 촉구하는 기준과 논거가 되어 준다. 홍익인간 교육이념은 우선 교육에서 인간이라는 가치를 강조해준다. 교육 자체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점을 각성시켜주고 있고, 그러한 덕성과 능력을 갖고있는 인간을 기르는 데 본래의 기능이 있음을 주지시켜주고 있다. 홍익인간 이념은 21세기 한국교육이 처하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고 진단하며 방향을 찾게하는 지표로 의의가 크다.
둘째는, 우리사회를 도덕적으로 정화하고 인간미 넘치는 공동체로 바꾸는 과제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산업화 다원화 세속화의 진전과 함께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심화되고, 분열적이고 상호적대적인 가치관이 팽배되고 있다. 부정부패와 갖은 범죄들이 사회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으며, 공동체윤리의 측면에서 획기적인 결단과 전환이 없이는 성숙한 사회로의 도약이 불가능하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인성교육이 교육현장에서 자주 요구되는 것은 이같은 상황과 관련이 있다. ‘난사람’과 ‘든사람’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호혜와 상생의 삶을 사는 ‘된사람’을 육성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같은 교육적 과제는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교육의 기본지침을 부각시켜주고 있다. 홍익인간은 오늘날 한국사회와 교육에 부과되고 있는 이같은 과제에 대하여 지침과 처방을 주고있다. 그것은 나와 가족의 좁은 범위를 넘어서 이웃과 공동체의 존재를 알리고 있고, 그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삶을 촉구하고 있다. 민족의 존재를 각성시켜서 사회 전반을 윤리적으로 정화하고 동포애적 결속을 촉진할 것이다. 우리사회를 도덕적으로 정화하는데 교육이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는 홍익인간 교육이념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한다. 홍익인간을 사회와 교육현장에서 윤리규범과 덕목으로 실천하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세번째는, 세계화시대에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제와 관련된 의의이다.
오늘날 세계는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고 국경을 넘어선 교류와 소통이 확대되면서 국가단위의 정체성이 해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성급한 이들은 민족의 해체를 전망하며, 민족을 넘어선 개개인을 단위로 한 범지구차원의 새로운 공동체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화가 진전되더라도 민족 단위의 정체성은 유지될 것이다. 세계화의 본질이 세계를 민족간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 하나의 화합된 공동체로 진전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자본주의 선진국(미국)의 패권논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엄존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고려하면 비록 세계로 나아가더라도 민족적 정체성은 분명히 견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같은 시기에 한국교육이 추구해야하는 과제는 세계인을 향해 개방적-포용적이면서도 민족적 정체성-자주의식은 분명히 견지하는 건강한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일일 것이다. 이같은 과제와 관련하여 부각되는 교육자료가 홍익인간 이념이다. 홍익인간의 윤리적 지향은 세계시민으로의 그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민족고유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민족적 정체성도 견지해주고 있다. 자신이 홍익인간 이념을 가지고 역사를 시작한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것은,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지구촌시민의 자질과 함께 민족적 정체성을 아울러 갖게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네번째는, 남북의 분단과 대결을 종식시키고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있는 한민족 성원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하는 과제와 관련된 의의이다.
남북분단과 대결은 오랫동안 한민족의 역량을 소모시키고 민족성원의 복지를 저해해왔으며, 세계 속의 한민족의 위신을 추락시켜왔다. 분단극복이 21세기 한민족에게 부과된 우선적 과제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최근에는 남북의 통일을 넘어서, 전세계 140여 개국에 흩어져 살고있는 재외동포를 포함한 7500만 명의 한민족 성원 모두를 상호협조하는 하나의 공동체나 네트워크로 통합해야 한다는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 이 지구촌 한민족공동체론은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민족적 생존전략으로서 힘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민족공동체론에 대해서는 정영훈, [한민족공동체의 이상과 과제], <근현대사강좌> 13집, 한국현대사연구회, 2002, 9-41쪽 참조.)
이 같은 민족통합 과제는 한국교육에 대하여 민족적 동질성을 확대하고 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을 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기여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민족의 통합은 홍익인간 하는 공동체를 추구하였던 고유적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완성될 수 있으며, 그같은 윤리덕목을 구성원들이 실천함으로써 앞당겨질 수 있다. 통일은 반만 년 역사의 단일민족이라는 전통적 민족의식과 홍익인간의 이상을 가지고 공동의 민족사를 추구한 태초의 염원과 결정을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또 대결과 상쟁이 아닌 희생-봉사-양보-화해-협력의 덕목을 요구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성원 모두가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이같은 일의 주요부분은 교육부문이 맡아야 할 일들이다. 홍익인간은 통일을 위하여 민족동질성과 공동체의식을 강화해야하는 한국교육의 과제와 관련하여 그 실천원리이자 교육자료로서 의의가 크다는 생각이다.
5. 맺음말
홍익인간은 태초의 한국인들이 공동의 역사를 시작할 때, 공동체와 국가와 인생 모습에 대해 갖고 있던 관점을 표현한 용어였다. 홍익인간 하는 사회와 국가와 삶을 추구하였던 고대인의 꿈과 포부가 이 말에 담겨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행복하게) 해주는 사회와 국가를 열망하고, 그같은 과제에 기여하는 숭고한 삶을 살고자 하였던 태초인들의 희망과 결의가 이 홍익인간 용어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좀 거칠게 표현한다면 한국인은 홍익인간 하는 공동체와 삶을 꿈꾸었고, 홍익인간을 생활규범으로 삼을 것을 약속했던 사람들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건국신화에 그렇게 제시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특히 현대로 와서는 새국가(대한민국)의 출발과 함께 그렇게 합의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홍익인간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함에 있어, 특히 그 공동체의 결성과정과 집단적 목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반드시 거론되어야 하는 요소인 것이다. (정영훈, [한국인의 정체성과 홍익인간이념], <단군학연구> 6호, 단군학회, 2002.6.)
생각해보면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정한 해방후 교육지도자들의 선택은 매우 현명하고 적절한 것이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의견에 쫓겨다니다가 외래의 개념이나 사상을 취하여 정하였다면 한국의 교육법은 국적불명의 초라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홍익인간 교육이념은 그에 대한 반대의 소리가 높은 가운데도 아직까지는 한국 교육의 기본이념으로 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건재’가, 교육의 현장에서 지침이 되고 원리가 되며 실천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홍익인간은 한국인의 과거의 꿈과 목표를 설명하는 말로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현재상황과 실제를 설명할 수 있는 용어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홍익인간을 꿈꾸었던 사람들로의 한국인에 그치지 않고, 현재도 꿈꾸고 있고 그를 실천해가고 있는 사람들로 규정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가 어떤 시대이든 만약 그곳에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인간’이 결여된다면 21세기는 투쟁과 갈등만이 넘치는 삭막한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홍익인간은 그같은 상황에 대해 우리 상고인들이 제시한 처방이었다. 세계화시대의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나 통일을 앞당기는 데에 교육이 기여해야 한다는 과제들과 관련해서도 홍익인간은 그 교육사업의 원칙이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
한국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중요과제의 하나는, 홍익인간을 죽어있는 장식품이 아닌 실천되는 지표이자 교육자원으로 교육현장에서 살려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출처: 국익수호연합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