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법논리와전략
『제15장 : 낯설게하기와 전경화의 시적 적용』… 저자 / 문광영 교수
시란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온 우주와 신(神)의 말씀을 받아쓰는 사람이다. 시인만큼 자연과 인간을 깊게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음까? 또 시인만큼 깊은 감동을 주는 사람 어디 있을까?
시인의 힘은 언어에 있다. 시인의 언어란 그야말로 삼라만상의 정령을 불러내고 온 우주의 생기를 풀어낸다. 시인의 언어란 단순한 부호가 아니다. '하늘' 하면 저 하늘이 지닌 모든 신비를 담아내고, '땅' 하면 그 땅이 거느리고 있는 촘촘한 비의 드러낸다. 따라서 시인이란 존재는 영원한 것이다. 바로 시인이를언어로 부르는 하늘에 낭자한 별꽃들은 쏟아지고, 땅에는 초록빛 영혼들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시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진정 맛깔스런 시를 쓸 수 있다. 또한 시인은좋은 시를 볼 줄 아는 눈높이가 있어야 한다. 등단한 시인만도 18,000여 명, 문제는 작품성이다. 시인조차도 '시적인 것', '예술미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쓰는 우둔한 시인들이 대단히 많다. 일부 시집을 읽다보면 치기어린 감상조의 배설시, 빈곤한 내용의 푸념시, 초점 없는 막연한 관념시 등 함량 미달의 작품들을 종종 볼수 있다. 키치(kitsch) 시대라 그럴까.
시는 삶의 과즙이다. 자신만의 고뇌와 생각, 삶의 불꽃과 소중한 영혼들이 묻어 있다. 시편마다 그런 정신적 체취의 깊은 단맛이 우러나와야 하고, 생선회처럼 신선한 감칠맛이 있어야 한다. 좋은 시는 무언가 참신하고, 즐거움을 주거나,어떤 깨달음이나 통찰의 세계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만약 내가 쓴 시가 이러한성분들이 하나라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한 작품이다.
시란 꼬물거리는 구더기에서 불경의 활자를 상상하고, 풀꽃 속에서 우주를 노래하는 감흥의 세계이자, 남다른 세계 해석의 정신적 산물이다. 그래서 시인은예술가로서 세계 존재를 사랑하고, 의미 있게 해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 하면 시인은 견자(見者)이고 광인(狂人)이며, 선사)는 물론 철인(哲人)의 눈높이를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고 깊은 시안 을 지닌 언어 마술사, 투철한 자기 도전의 예술가적 기질을 지닌 자만이 진정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나아가 시가 문학의 꽃이듯이, 시를 모르면 수필 쓰기나 소설 쓰기도 불가능하다.
30여 년 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해 왔고, 더불어 70여 명의 작가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문예창작을 강의해 오고 있다. 그동안 시인, 수필가, 소설가 등 대략 80여 명의 유수한 작가를 배출시켜 왔고 그들 나름대로 독창적인 작품집들을 내놓아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좋은 시편들에는 저마다 독특한 시 작법의 논리와 치밀한 전략들이 숨어 있다. 본 『시 작법의 논리와 전략은 필자의 강의안을 정리한 것들이다. 모두 27장까지 차근차근 정독하고 실전에 적용한다면 훌륭한 작가로 발돋움할 것이다. 그리고 예시된 작품들은 가급적 최근 작품들을 수록하려 했고, 또 재미있는 작품들을 골라 넣으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아마도 시를 막 배우기 시작한 분들, 혹은 시론적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시인들에게는 큰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수많은 시인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동원되었고, 또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 이론가와 비평가들의 글이 참고가 되었다. 이 가운데 정말로 존경스러운 김춘수, 조향, 오규원, 김준오, 오세영, 이승훈 선생님들의 힘이 컸고, 이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제15장 : 낯설게하기와 전경화의 시적 적용』… 저자 / 문광영 교수
1.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의 시적 적용
1) 엉뚱한 비유로 낯설게 처리하기
시는 낯익은 세계인가? 아니면, 낯선 세계일까? 예술의 목적은 일상의 습관 같은 자동화되어 낡아버린 일상적인 사물을 낯설게 함으로써 제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는데 있다. 그리하여 예술은 생의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 필시 시라는 장르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라 한다면 시도 낯선 세계를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곧 이와 같은 낯설게하기 379)의 시 기법은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지럽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케 한다.
379) 러시아 혁명 직후 일군의 러시아 문학 이론가들은 1916년 페트로그라드에서 결성한 'OPOJAZ'라는 시어연구회를 결성한 바 있다. V. Shklovsky, B. Eikhenbaum, 루나찰스키를 비롯한 이들 구성원들은 문학이 갖는 거대한 관계망, 예컨대 역사라든가, 사회라든가 하는 그물처럼 얽힌 망들을 깡그리 무시한다. 그리고 이들은 오직 문학만이 갖는 독특한 성질, 곧 문학의 본질, 목적을 규명하는 일에 골몰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이 찾아낸 결론은 V. Shklovsky의 '낯설게하기'라는 명제였다. 그리고 그 대척에 '자동화'라는 라는 일상적 삶의 특성을 열거하였다. 그리니까 이 두 개념이 형식주의 미학의 합리적 핵심이다. 문화언어로서 낯설게하기는 일상어의 상대편에서 오브제 언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곧 직접적인 표현을 쓰는 일상어와 달리 시어는 의도적으로 꼬이고 낯익은 껍질 벗기기, 어리둥절하게 비스듬한(obligue), difficult, 축소된(attenuated), 비틀린 일그러진(torturous)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의 주의를 끌게 하고, 상상력을 자극시켜 계속 다양한 일들을 경험케 한다. 권택영,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문예출판사, 1995), pp.13~31. 참조나병철, 소설의 이해 (문예출판사, 2006), p.448, 참조
쉬클로브스키(V. Shklovsky)의 '낯설게하기는 하나의 생소화하기의 기법으로 시의 문학성을 형성케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각의 자동화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 사물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퇴색되어 있다. 시인은 바로 이러한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데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지각을 회복시켜 주고 우리가 사물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갖도록 하게 한다. 예컨대 '낙엽'을 '갈색의 마른 잎'이라고 표현하면 낙엽에 대한 자동화된 상투적인 지각만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하면 낯설게 지각되는 대신 풍성한 정서적, 심리적 의미들을 얻게 되는 경우이다.
어머니가 갓난 내 불알 두 쪽
바라보신다
아무도 물어가지 못하게
가장 쓰고 떫은 것으로
채우셨으나
아,
지금 내 몸이 너무 달다
이안 <홍시> 전문380)
이안의 시 <홍시〉, 착상이 너무 재미있다. “홍시”가 “내 불알 두 쪽으로”낯설게 치환되어 있다. 그것이 '동화' '투사'인지는 모르겠으나 물아일체냐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런 낯선 치환에서 시의 맛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라는 존재도 너무 오래 쓰고 떫게' 살아온 것 같다. 오늘 밤엔 이 화자의 달디단 몸의 기운이 전이되어 홍시처럼 내 몸도 '달게' 달아오르는 듯싶다.
이과수 폭포는 한 생애의 두려움이다.
지상의 물이란 물은 죄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중략>
칼새는 폭포수 뒤에 둥지를 짓고
겁도 없이 물벽을 향해 꽂힌다.
한낱 구경꾼인 나는
새 한 마릴 보고도 놀라는 애벌레,
그렇다.
용기는 죽음을 이기고 산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다.
칼새는 그래서 악마의 목구멍을
몸으로 찌르고 산다.
작은 것이 작지 않다.
작은 철학이 물벽을 뚫고 살아가니까
칼새는 어떤 말보다 눈물보다
저를 이기는 칼이니까 칼새다.
이운룡 <철학자 칼새> 전문
380) 《시작》(2002, 겨울호)
현대시에서 '낯설게하기'는 일상적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인식에 충격을 가하고 시의 표현을 새롭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우선 "철학자 칼새"라는 시 제목부터 낯설다. 게다가 중심 소재인 "폭포"를 "악마의 목구멍”으로 본 착상도 무척 '낯설게하기'로 이루어진다. 화자는 칼새가 폭포를 뚫고 들어가는 장면을 본다. 들어가 보지 않은 자는 저 폭포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부딪치고 으스러지는 "악마의 목구멍" 같은 "물벽을 뚫으며 뛰어드는 칼새만이 "저를 이기는 칼이 된다는 것이다
토마토
유기산과 비타민 A, C가 풍부해 여드름 많은 문장과 지성피부를 가진 문장에 좋다.
수박
이뇨작용을 하여 과잉된 자의식의 부기를 확실히 빼준다. 속껍질 간 것을 냉장심장에 넣었다가 팩으로 사용하면 문장에 윤기가 생긴다. 냉찜질이 필요한 시에 좋다.
레몬
산도가 높으므로 물 빛 소리를 10대 3대 1의 비율로 섞어 사용하면 좋다. 문장들은 잠자는 동안에도 피지를 분비한다. 피지를 없애려면 문장의 피부온도를 낮추어야 하는데 레몬즙이 효과만점이다.
자두
각종 과일산이 풍부해 상상력을 자극한다. 행간의 모공수축으로 인한 긴장유발 및 문장의 각질제거 효과도 있다. 여백은 낱말들을 통해 문장의 피부수분밀도를 조절한다. 날씬한 시를 원하는 뚱뚱녀에게 좋다.
함기석 <뷰티샵 낱말과일들> 부분381)
위의 시는 과일 소재를 들어 시 문장을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가에 대해 남다른 착상, 낯선 비유로 재미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한 마디로 '낯설게하기'의 시적 언어를 살려 쓴 것이다. 시인마다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고심초사하는가. 군더더기 같은 문제가 있는 시나 병들어 있는 시를 어떻게 치유하고, 시에 자양분을 주기 위해 어떤 비법들이 있는지, '뷰티샵 낱말과일들'이 해답을 주고 있다. 토마토는 여드름 많고 지성 피부를 가진 문장에 좋고, 수박은 문장에 윤기를 살리고, 냉찜질이 필요한 시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깔끔한 시를 위해서 레몬은 피지가 있는 문장을 없애는데 필요하며, 자두는 과일 산이 많아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각질이 있거나 뚱뚱한 문장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오렌지는 폐활량이 적은 문장에, 그리고 딸기는 비타민 C가 많아 문맥에 발랄한 봄기운을 넣을 수 있고, 악취 제거에 즉효약이라는 것이다. 그 착상이 기발하여 재미가 있고, 과일에 빗대어 쓴 시론이 새로움을 더해 준다. 여기에 과일맛과 같이 싱그럽고 시론의 명심보감과 같은 깨달음도 녹아 있다. 이제, 위의 시를 읽고 난 시인들은 맛과 향기를 느끼며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381) (현대문학) (2006년 2월호)
2) 낯선 인식, 탈자동화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언어
시에서는 무엇을 전달하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낯설게하기'에 있다는 것이다. 낯설게하기란 의사소통을 늦추고 방해하기 위하여 재배열되고 교란된 작품의 형식을 말한다. 곧 시의 언어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는 일상어와 달리 의도적으로 꼬이고 교란되고 거칠게 되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게 변형된 것. 독자의 주의를 끌어야 되고, 상상력을 자극시켜야 하고 계속 다양한 일들을 경험케 해야 한다는 것. 바로 낯익은 껍질 벗기기. 어리둥절하게 비스듬한(obligue), 어렵게(difficult), 축소된(attenuated), 비틀린, 일그러진 (torturous) 언어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은 망나니지만
모태 신앙이다
방금 여치의 목을 딴
두 팔로 경건히
기도 올린다
반칠환 <사마귀> 전문382)
시 <사마귀>도 대상을 낯설게 보고 낯익은 껍질을 벗기고 어리둥절하게, 그래서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장석주 시인은 시 <사마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마귀 하면 '장자'의 '당랑거철우화가 먼저 떠오른다)'이란는 것. 제 분수도 모른 채 도끼를 쳐들고 수레에 맞선 사마귀라니! 제 처지도 모른 채 날뛰는 자의 분별없음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한다. 한 시인이사마귀의 직업이 망나니라고 폭로하기 전까지 그의 직업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 사마귀가 곤충의 목을 따는 포식자니 그럴듯하다. 철학자는 사마귀에게서 도끼를 휘두르는 무뢰한을 보고 시인은 여치의 목을 따고 두팔로 기도하는 모태 신앙의 경건함을 읽어내고 있다.
382) 반칠환, 시집 『전쟁광 보호구역 지혜, 2012)
3) 익숙한 대상의 틀을 벗어나는 생명적 시선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시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 <소를 웃긴 꽃> 전문383)
383) 윤희상, 시집 「소를 웃긴 꽃」(문학동네, 2007)
동심적 발상으로 간명, 상큼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이 시의 중심축은 '소'와 '꽃'이다. 화자는 소가 웃은 이유가 소의 발밑에서 '꽃'이 피어간지럼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논리체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꽃 위에 잠시 뜬" 소를 상상해 보라. 온몸에 전율이 일지 않는가. 게다가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재치가 있는 표현에서는 화자의 능청스러운 태도마저 느껴진다. 이렇게 대상을 익숙하게 보는 시선을 벗어나 낯설게 생명적 상상력으로 보면 참신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유월이었다 줄장미가 담장 가득 홍홍거리고 있었다. 텅 빈 골목에 줄장미들과 나뿐이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자꾸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누군가 자꾸 등을 툭툭 쳤다. 누군가 자꾸 휘파람을 불었다. 바람 한 점 없는데, 시끄러웠다. 턱턱 부딪쳤다. 가만히 보니 장미 송이 속에서 가이없이 넓은 신작로가 넝쿨처럼 뻗어 나오고 있었다. 그 길에 겨자씨보다 작은 것들이 휘파람을 불며, 퉁소를 불며, 가야금을 퉁기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혼미한 햇빛이 흐느적, 걸어 나오고 장난꾸러기 악대 같은 것들이 우우우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상한 향기를 뿜으며,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것들이!
이경림 <향기> 전문 384)
우리들이 사물(대상)과 접할 때 그 지각작용은 자동적이며, 습관적이다. 위의 <향기>라는 시를 보면 "장미", "바람"등이 모두 의인화, 생명적으로 노래되면서 역동성이 드러나고 있다. 화자는 이를 '향기'로 보고 있다.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이성선 <백담사> 전문385)
'백담사'라는 산사의 풍경이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절 마당을 쓰는데, "큰 산 작은 산이 / 빗자루에 쓸려 나가고,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는 낯선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시적 허용의 맛을 만끽하게 한다. 자연의 익숙한 풍경을 낯선 풍경으로 바꾸어주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신선함,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시켜 준다.
324) 이경림, 시집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창작과비평사, 1997)335) 이성선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세계사, 2000)
길가 축대를 기어오르다 말고 담쟁이가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석양이 비껴가는 넝쿨 끝에서 이 계절을 기억해 둬, 기억해 두라구!
창의 방충망까지 타고 올라와 내 책상을 들여다 보던 이파리들, 수줍게 발개지며 달라붙던 어린애 이빨 같던 것들.
인간은 자기 집을 소유할 권리가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준 집, 빚에 몰려 급히 팔아버린 집, 매매계약서에 도장 꽝 찍고는 다시 안보려고 멀리 돌아 지나다니던 담쟁이의 집.
최정례 <담쟁이의 집> 전문386)
시의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낯설게 장치하기 - 자동화된 지각에서 비자동화된 지각으로 바꾼다면 새로움과 경이감을 줄 수 있다. 시 <담쟁이의 집>에서 "이파리"를 "수줍게 발개지며 달라붙던 어린애 이빨로 본 한 부분만을 낯설게 제시해도 시적 상상력을 촉발시켜 생동감을 갖게 해준다.
어떤 사물, 현상, 사람까지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나 선입견, 고정관념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고, 난생 처음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해서 다음의 시를 보면 상식을 무너뜨린다. 절간의 스님만이 좌선하는 것이 아니다. 시적 상상력의 세계에서는 석쇠도 동물도 참선할 수 있다.
벌겋게 달군 불 위에서 너는 좌선중이다
살이 노랗게 익어 갈수록 투명해지는 무아지경,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끼니 때마다 그렇게 살신
공양하는 네 일과는 생지옥이다
때로 찬물에 던져 넣으면 기절초풍하듯
몸을 식히고
고문이 끝나면 널부러지는 너는 억울한 양심범이다
철쑤세미로 아무리 문질러도 떨어지지 않는 절망과
진득진득한 미련에 가슴 한복판 구멍이 뻥 뚫릴 때까지
제멋대로 달아오르는
도심을 불싸지르는 연쇄 방화범처럼
온갖
법망을 피하는
너는 안하무인이다.
불길이 관통한 소리 없는 주검쯤은.
이숙이 <석쇠> 전문387)
386) 2015 오늘의 좋은시 (푸른사상)
시 <석쇠>도 낯설게하기의 수법이 적용되고 있다. 시인이 구사하는 상징이나 알레고리는 물론 사물을 비틀어버리는 감성이나 어조가 시 전반에 증폭시키는 탄력적인 긴장을 보여주면서, '석쇠'라는 사물의 비극성을 토로한다. 불에 달구어진 석쇠 위의 생선을 제재로 하였지만, '생선'이란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좌선', '무아지경', '살신공양의 1단계, 찬물에의담금질, 고문, 양심범 등의 2단계, 절망, 미련, 연쇄방화범, 법망 등의 3단계로 상상력의 저변을 저인망식으로 훑어가는 비극적 이미저리의 전개를 통해 석쇠에 대한 시인의 특별한 인식을 극대화하고 있다.
4) 선(禪)적 사고 낯선 언어의 의미
낯설게하기는 표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인식능력을 신장하여 철학적 형이상학적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선승(禪僧)같은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새로운 관점과 감성의 언어로 생명의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선(禪)의 첫걸음도 일상성과 타성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선에서는 본질적으로 진리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언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승들은 입을 여는 순간에 진리는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했다.
불가의 진리를 전하는 방법으로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마하가섭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었다는 데서 유래한 '염만이화시중(華示衆)의 미소'라는 말을 통해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진리를 전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묵언(言)을 수행의 한 과정으로 실천한다.
그러나 선에서도 깨우침을 전하는 방법으로 언어를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언어를 떠난 방법이 너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선승들이 전하는 오도송(悟道頌)고도의 언어로 표현된 선시(禪詩)가 된다.
어느 날 동산(洞山) 스님에게 제자가 질문을 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스님이 대답했다. “마삼근(麻三斤)이니라." 이 선문답에는 제자에게 깨우침을 주려는 스승의 마음이 들어있다. 그러나 선은 지식의 전수 감은 가르침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정신의 경지이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고 가리키는 것'으로 방법을 삼는다. 그래서 제자가 스스로 체험을 통해서 마음 속 자명종의 울림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선문답에는 선명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설명의 생략'은 선문답을 화두(話頭)로 만든다. 제자들은 선정(禪定)을 통해서 그 화두의 의미를 탐구하고 해결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설명의 생략'은 시의 구조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설명이 들어가는 순간에 시는 사라지고 산문(散文)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문답이 퍼포먼스(performance) 같은 행위와 결합될 때 그 구조가 다양해지고 상상력의 폭이 확장된다.
387) 이숙이, 시집 「바다로 가는 소금 (동학사, 1998)
2. 전경화(foregrounding)의 시적 적용
문학에 있어 전경화(前景化, foregrounding)388) 언어학에 있어서 하나의 탈선(線deviation)이다. 즉 규칙과 인습에 대한 위반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탈선에 의해 시인은 언어가 지니는 일상적인 의사 전달 기능을 초월하고, 독자를 각성시켜서 독자를 상투적인 표현의 관례에서 이탈시킴으로써 새로운 지각작용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389) 일종의 의미론상 탈선(sementic devation)인 시적 은유는 이러한 전경화의 유형으로서 가강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388) 전경화(foregrounding)란 프라그 언어학파의 티냐노프(Y,N, Tynyanav)가 처음 사용했고, 무카로브스키(J. Mukarovsky)와 함께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쉬클로브스키(V,E, Shiklovsky)의 '낯설게 하기 개념을 발전시켜 사용한 개념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준어법은 모두 자동화되어 있다. 시적 언어는 이렇게 자동화된 일상적 언어를 미학적인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표준적 언어의 규범에 대한 고의적 위반이다. 이렇게 비자동화된 언어적 요소들은 작품의 건강 그에서 미학적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를 전경화라 일컫는다. 김용직, 「문예비평용어사전 (탐구당, 1985) pp.224-225,
389) 김윤식, 문화비평용어사건 (일지사, 1983) p. 251,
검고 칙칙한 지하로
살찐 쥐 한 마리 걸어간다
누군가 검붉은 침을
아직 불이 살아 있는 담배꽁초를
그의 목덜미께로 뱉고 던진다 후경화(backgrounding)
쥐는 동요하지 않는다
전방 500미터 화물열차가
씩씩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는 동요하지 않는다
선로를 가로질러 태평하게 저 갈 곳을 가는
그는 나보다도 서울을
잘 살고 있다
한 무리의 쥐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전경화(foregrounding)
이재무, <신도림역> 부분390)
390) 이재무, 시집 오래된 농담 (북인, 2008)
위 시에서 소시민인 화자는 신도림역에서 열차(전철)를 기다리고 있다.무심히 선로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살찐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쥐를 향해 "검붉은 침을 뱉어도, "불이 살아 있는 담배꽁초를 / 목덜미께로뱉고" 던져도 동요하지 않는다. 아니 "전방 500미터 화물열차가 /씩씩거리며 달려오고 있는데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선로를 가로질러 태평하게 저갈 곳을 가고 있다. 무심한 샐러리맨처럼, 소시민인 나보다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용케도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받쳐주기라는 배경화(背景化,backgrounding)이다. 그러나 마지막 행 “한 무리의쥐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는 드러내기의 전경화(化, foregrounding)에 해당한다. 곧 위 시에서 "한 무리의 쥐들은 곧 '전철을 타는 서울 시민들'로 은유적으로 치환된 의미론적으로 탈선, 왜곡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여기에서 '서울 시민을 쥐로 본' 은유에 의해 전경화된 마지막 연과 일상적어법에 의해 쓰여진 '선로 위의 쥐'를 묘사한 배경화의 연 사이에는 이미지의 전위차가 생겨 텐션(tension)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데서 시의 미학이 탄생하고 독자들은 시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된다.
위의 그림에서 F는 전경화된 시적 어법이고, B는 배경화된 표준적 어법을 뜻한다. 시적 어법이 미적 기능을 띠는 것은 시적 어법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B처럼 뒤로 물러나 받쳐주는 배경화의 일상적 표준적 어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곧 이 둘의 관계는 '전경 / 배경'의 관계로 시 속에 존재하며, 이러한 관계가 바로 시적 언어의 구조적 특성을 드러낸다. 한 편의시가 미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이렇게 두 어법이 긴장(tension)관계를띠기 때문이다. 391) ㅣ렇게 전경화되는 요소들, 곧 시 속에서 특수한 미적기능을 맡는 요소들은 <신도림역>에서 말한 은유 한 가지가 아니라, 리듬이나 상징, 반어 등 다양하게 드러난다.
시에서 은유, 리듬, 상징, 반어 등으로 미적 기능을 이루는 일군의 중심적 요소는 '지배소(dominant)'로서 전경화되고, 나머지 요소들은 후경(後景)으로 물러난다. 티냐노프(Y. N. Tynyanov)는 이처럼 문학작품이란 여러가지 요소들이 갈등관계 속에서 전경화와 후경화를 역동적으로 실행하며이루어지는 체계라고 설명한다. 한편의 작품은 이 지배소를 통하여 문학이되고 문학적 기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 티냐노프는 시대에 따라 전경화된 요소와 후경화된 요소 간의 종속관계가 뒤바뀜으로써 문학은 진화한다고 설명한다. 자동화된 요소와 낯선 요소들 간의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작품의 미적 질을 보장하며 이로써 문학은 발전한다는 것이다. 392)
391) 이승훈, 시작법」(문학과비평사, 1988) p. 274.
392) 국학자료원, 문학비평용어사전」(2006)p. 136.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없었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움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나희덕 <어떤 출토出)> 전문 393)
위 시는 고추밭에서 발견한 늙은 호박을 통해서 순환, 상생하는 자연의섭리를 노래하면서 이에 대한 경이로움을 나타낸 시이다. 이 시의 지배소(dominant)를 이루고 있는 것은 고추밭에 있는 '늙은 호박이 소신공양으로이어지는 젖의 이미지들이다. 이들 이미지는 의인화를 통해서 일상언어의규범으로부터 일탈을 보여준다. 곧 늙은 호박은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이고, 그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거룩한 호박은 희생의 결정체로 “한 움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로 전경화는 이루어진다. 화자는 호박의 희생을 고귀한 것으로 보고 비유적 이미지로 처리하여 효과를 얻고 있다. 독자는 늙은 호박이 수도자이자, 부처님이고, 호박의 몸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둥근 사리가 희생적 사랑의 결정체이자 또한 생성의 생명체라는 시적 인식을 갖게 한다.
393) 나희덕 시집 「피어라, 석유! (현대문학, 2004)
시에서 전경화는 텐션을 유발하는 시의 미학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지배소'라는 중심이미지를 잡아 시의 행간과 행간 사이의 낯설게하기나 전경화 장치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일상 어법의 산문적 진술은 화자가 대부분의 상황을 직접 진술하기 때문에 행간 사이에 긴장감이 없다. 하지만 지배소를 통한 적절한 전경화 장치의 시는 생략과 침묵, 낯설게하기를 통해서 연 혹은 행간 사이의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 시인은 그 생략과 침묵을 통해 무수한 의미들을 숨겨 놓는다. 또한 시인은 유능한 독자가 수용적 읽기를 통해 반응을 심화해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적 긴장감을 줄 수 있도록 행간에서 모두 말하지 않거나, 전경화 장치를 통해 텐션의 미학을 주어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급 독자는 시인이 설명하지 않고 행간 사이에 감추어놓은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시의 묘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모래밭처럼 찌던
시가(街)를 벗어나
길경꽃 빛 九月의 기류(氣流)를 건너면
은피라미떼
은피라미떼처럼 반짝이는
아침 풀벌레 소리
김종길 <여울> 부분394)
394) 김종길, 시집 「천지현황 (미래사, 1991)
일상언어의 규범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은 단순화의 거부이며 습관적인 언어행위의 배격이다. 위의 참신한 감각의 시 <여울>은 리듬 부분에서 보여주는 전경화다. 일상언어에서 아침의 풀벌레 소리는 "피라미떼처럼 반짝이는"이라는 진술은 맞지 않는다. 일상언어에서는 소리가 반짝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일탈, 일상으로부터의 탈선(sementic devation)이다. 이러한 진부한 것으로부터의 탈선을 통하여 시인은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고 상큼한 아침 풀벌레 소리를 매우 구체적이고도 감각적 이미지로 전해준다. 여기서 일탈, 곧 전경화를 통해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것은 전체 문맥에서 특히 그 부분을 앞으로 돌출시킨다는 의미이다.
시는 불완전한 언어를 사용하여 사물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독특한 방식으로 언어를 조립하여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여기서 독특한 방식이란 일상적 언어사용법에 대한 일탈(deviation)로 설명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일상언어란 사물을 지시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반면에 시적 언어는 지시와 전달이라는 일상언어에 의존하면서도 그 규범의 일탈을 통하여 독특한 언어 구조물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의 언어는 단순해 지기를 거부하고 언어행위가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습관적 언어 행위는 지루하며 생명력이 결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