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의 한계
웬일인지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은 누가, 어디로, 왜(여기에 가톨 릭은 '언제'를 추가함) 가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 사람들과 사회와 미래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슬람교도는 그리스도인을 지옥에나 가라고 저주하고,
그리스도인은 유다인에게 너희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다인은, 프란치스코회 수도복을 입고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나에게 침을 뱉는다.
한 분이신 사랑의 하느님을 믿고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서구세계에서 생겨난 유일신 종교들은 대체로 서구세계의 토론 방식과 조직 모델 위에 서있다.
우리의 토론 스타일은 이기든 지 지든지 둘 중 하나로 판가름나게 되어있다.
종교의 언어로 말하면 구원받든지 못 받든지, 은총 안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둘 중 하나다.
서구인들은 분명한 것을 좋아하고 강한 주체성을 좋아한다.
유일신론에는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어 보인다.
유일신을 믿는 이들은 모든 것을 자기네가 설명하는 한 분 하느님 안에 귀속시키려 한다.
유럽은 실재하는 공동체보다 그리스도교계 christendom라는 개념을 더 좋아한다.
분명한 주체성을 선호함으로써 서구세계는 여러 차원에서 고도로 역동적인 문명을 창출했고
그것은 결코 나쁜 결과라 할 수 없다.
토착민들과 동양 사람들에게도 교사와 현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중앙 통제부를 따로 두고서 책이나 사무 실 또는 역할 등으로 메시지를
다스리려는 경향이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의사, 무당, 은수자, 깨달은 사람, 구루를 찾아가고, 신전, 의식, 제의 등에 의지했다.
그렇게 하여 최소한 서양에서와 같은 변화된 사람들이 나왔다.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인처럼 성령의 열매 갈라 5, 22-23 를
받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실제로 많은 신전에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드나드는 것을 매일같이 볼 수 있는데,
주일이나 안식일 제의때 말고는 거의 문을 닫는 그리스도교 성당이나 유다교 회당들과는 크게 달랐다.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서로 '어울리는harmonizing' 사람들을 만드는 종교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종교들에서는 평화 운동, 비폭력, 국외자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겸손, 대화 등 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 가운데도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질서, 일관성, 조직, 멤버십 요건의 명료화와 단속에 있었다.
물론 그것이 모두 나쁜 건 아니지만 모두 좋은 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을 지키고 강화하느라고 어울림에 바탕을 둔 종교들이 유지해 온 본질적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위의 세 종교에 속한 신자들은 자기네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교회와 신학 학파가 있는 그리스도교 유럽에서 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사실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2천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간에 인종주의,
뿌리 깊은 사회적 불평등, 반反셈족주의 등이 심각한 문제로 폭넓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서구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성숙하지 못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는 대개 그리스도교 문화가 사회 불의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중국은 여기에 해당 되지 않는 특별한 경우다.)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들에서는 명백한 가톨릭 정체성을 가졌음에도, 처음부터 최소한의 사회정의도
지켜지지 않았다.
북미의 프로테스탄트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 대량 학살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성차별은 사회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고 아직도 많은 기성교회에 그 잔재가
완강히 남아있다.
유일신을 믿는 일반 '신자들'은 여전히 엘리트주의, 계급차별, 고문, 동성애 혐오증, 가난, 지구환경
파괴 등을 문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의 구원교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이러한 것을 열거하는 이유는 다른 뜻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나치게 개인 구원에만 매달려 있고
기껏 '자기'의 개념을 넓힌다 해도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직시하자는 것이다.
서구에서 개인은 공동선이나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에 별 관심이 없는 외톨이로 개체화되었다.
그렇게 극도로 개체화된 인간들이 세계를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고, 남을 공격하여 정복하는 그리스도교를
퍼뜨린 것이다.
'가톨릭'이란 말은 보편적(universal, 그리스어로 '전체에 따라서'라는 뜻인 '카타-홀론')이란 뜻이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부분의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 그리스 정교회는 보편적이라기보다
훨씬 더 지역적이고 인종 편향적이다.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도 자기들과 자기네 문화를 개혁하기보다 여전히 항거에 너무 열중하고 있다.
이 두 그룹에서는 사회적 죄와 제도적 악에 대한 관심이 중심 과제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기성교회는 영성을 상실했고, 이제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 다른 곳에서 영적 목마름을 해소하려고
각종 마음수련 모임이나 자기계발 도서들을 찾아 헤매고 있다.
최근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44퍼센트가 교회 아닌 다른 곳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것으로 되어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를 떠난 이들을 모두 모은다면 로마 가톨릭 다음으로 큰 교파를 이룰 것이다.
역사상 이런 일이 또 있었던가?
과연 어느 문명이, 그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전통과 종교에서 소외당하는데 계속 번창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