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시의 분류
8-4-1. 형식상의 분류
8-4-1-1. 정형시(定型詩)
정형시는 한시(漢詩)의 5언(五言), 7언(七言) 절구(絶句)나 우리나라의 시조와 같이 전통적으로 시의 형태가 정해진 것을 말합니다.
읍호개성하폐문(邑號開城何閉門-읍 이름은 개성(성문을 연다)인데 왜 문을 닫느냐)
산명송악기무신(山名松嶽豈無薪-산 이름은 송악(소나무가 많다)인데 왜 땔나무가 없다 하느냐)
황혼축객비인사(黃昏逐客非人事-황혼에 손님을 내좆는 비인간적인 처사는)
예의동방자독진(禮義東方自獨秦-예의를 중시하는 동방에서 진시황만큼도 못한 호로자식이다)
--김삿갓의 한시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의 시조
서구의 시는 19세기까지는 정형시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정형시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상과 감정을 시에다 표현하는 자유시의 경향이 생겨 오늘날에는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형시를 쓰고 있습니다.
정형시에는 1행의 어구 수에 대하여 한 편의 시 석의 구성과 배열과 길이에 대하여 발음상의 리듬에 대하여 여러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8-4-1-2. 자유시(自由詩)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시 운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자유 운문시 운동으로서 상징주의 시인이 이것을 다루었습니다. 상징주의의 시인은 암시(暗示)를 존중하기 때문에 정형시보다도 독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비정형의 시를 창작했습니다. 그러나 각운이나 연의 분절(分節) 등은 예전 것 그대로를 답습(踏襲)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개혁을 계기로 하여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좀더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시파가 일어나게 되었고 운문 법칙을 배격하고 정신의 약동(躍動)대로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길은 바람조차 붉게 물들고
언덕은 마침내 높이를 어둠에 감춘다
불빛들이 눈을 뜨는
마을로 돌아가는 자동차의 속력이
드디어 안도감으로 뒷자락을 숨기면
평화는 깃발이 없어도 넉넉하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도
묵언(黙言)으로 잦아들면 아내의 목소리에
높은 볼륨이 앞장서는 불빛
하루를 마감하는 밥상머리
토장국 냄새가 숟가락의 횟수를 자극하는
사는 일 그렇게 한편의 풍경화를 그리면
문을 두드리는 비림조차 정겹다
--채수영의 「황혼이 내리면」전문
8-4-1-3. 산문시(散文詩)
산문의 형식으로 창작된 시를 말합니다. 즉, 시적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는 산문 또는 시적 산문을 말합니다. 보들레르에 의해 산문시라고 하는 장르가 의식적으로 생각되어지고 실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원래 시와 산문은 서로 대립된 관념이며 그 두 개를 합친 개념을 말하라고 한다면 명확한 댑을 내리기가 무척 곤란합니다.
그러나 보들레르 시대와 같이 시와 운율을 결부시켜 생각했던 무렵에는 산문시란 음률이 있는 산문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문으로써 다룬 주정적 주제’라고 단언할 정도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시적인 운율을 빌어 쓴 산문이 산문시라고 하는 견해는 의외로 많으나 이와 같이 산문과 운율을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요컨대 시적 정신을 산문에 의해서 추구한 것이 산문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새로운 시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 아마 대웅전이 있었나보다. 대웅전 복판에서 부처님을 받들고 있었던 대석이 질경이 풀밭에 놓여 있다. 반쯤은 깨어져 있다. 연꽃무늬를 가로 지르며 금이 가 있다. 돌이끼가 푸릇푸릇 피어 있다. 이따금 직박구리 몇 마리 끼익끼익 울면서 부도 쪽으로 스쳐간다. 부도탑 옆 뽕나무 가지엔 오디 열매가 까아맣게 익고 있다. 오디 열매를 따먹은 직박구리 푸른똥이 구름무늬 탑신에 붙어 있다.
--이건청의 「폐사지에서」전문
8-4-2. 내용상의 분류
8-4-2-1. 서정시(抒情詩-lyric)
서사시(敍事詩), 극시(劇詩)와 더불어 시의 3대 부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래 그리스에서 일곱 줄 악기인 리라에 맞추어 불렀던 노래를 가리켜 하던 말이었으나 뒷날 시인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정서나 경험을 노래한 시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신라시대의 향가(鄕歌)나 근세조선의 시조가 훌륭한 서정시입니다. 현대에 있어서 서정시의 성립은 사회의 복잡화와 비합리성에 대한 시인의 각성(覺醒)과 자의식의 과학적인 분석 또는 음유(吟遊) 시인의 문화의 열망 등에 의하여 아주 곤란하며 정서의 자연적인 흐름에 의한 서정은 거의 모습을 감추고 정서화한 비평을 내포(內包)한 것이 오늘날의 서정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늘
깊은 산속 깊은 물소리 더불어
초록빛으로 살아야 하거늘
그러나 나는 늘
회색빛 도시 후미진 골목에서
연꽃 향기 찾는 일로 지쳐있거늘
누구나 늘
이승에서 흘린 눈물 거두어
산 그림자로 묻어두려 하거늘.
--졸시 「여백시 . 53」전문
8-4-2-2. 서사시(敍事詩)
고대와 중세에는 대대적으로 서사시가 창작되었으나 현재는 별로 많이 창작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실 또는 가공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시이며 사건과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웅대한 사건이나 영웅적인 행위를 노래하는 것을 말하며 그 주체는 민족의 역사를 통한 건국과 전쟁 그리고 영웅 등의 장시(長詩)가 대부분입니다. 서사시의 특색은 서정시의 정서 및 내면성에 대하여 외면적 행동 묘사에 중점을 두고 인물과 집단의 운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서사시는 호머의「일리아드」와「오디세이」 그리고 버질의 「아에네이드」처럼 주로 전쟁에 관한 것이 많고 김용호의 「남해찬가」와 같이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부각시켰습니다.
이종의 확장된 직유로서 ‘때 처럼(as when)'으로 시작되는 장황한 설명에 의해서 어떤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비유를 ’서사시적 지유(epic simile)'라고 하는데 서사시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이 기법이 호머의 서사시에서 자주 인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신화와 역사 혹은 성서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이 기법은 두드러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밀턴의「실락원」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8-4-2-3. 극시(dramatic poem)
극시는 전편이 개개의 인물의 운문체 대사로 구성합니다. 사건 구성에 있어서 서사시와 비슷하고 대사에 있어서는 서정시와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괴테 등이 극시의 대표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