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적 관점에서 보는 질병과 의약
1. 병의 고통
2. 몸의 부위
3. 발병의 원인
4. 약물
5. 무 와 의
6. 전통의학의 수립
7. 신농본초경
8. 황제내경
1. 병의 고통
생로병사는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 중에서 질병은 가장 고통스러워 사람들마다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지금도 환경위생. 질병의 예방. 의료기술과 설비. 약물의 제조에 관하여 수많은 인력과 연구경비를 투자하고 있어서, 그 놀라운 수준은 몇 세기 전 사람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이니 상고시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와같이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질병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런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효과적인 약물이 없었던 고대에는 단지 환자가 뒹굴면서 신음하는 모습을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이 낫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손 쓸 방법이 조금도 없었으니 그 번뇌는 지금 우리들보다 훨씬 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자가 있기 이전의 시대에는 오늘날 미개한 부락의 상황에 비추어 연구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추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고대의 의학에 관하여 말하려면 문자가 있었던 상대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질병은 상나라 사람들이 점을 쳐 의문을 판결했던 항목 중 하나였으므로 복사로부터 그 당시의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상왕이 질병에 대하여 점친 것이 단지 초기에만 성행하고 있어, 우리들로 하여금 그들의 질병에 관한 지식에 어떠한 진전이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갑골문은 질자는 두 가지 서사방법이 있다. 조기의 질자는 한 사람이 침상에 누워 땀이나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다. 후기의 질자는 한 사람의 몸에 화살이 박혀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와같이 두 종류의 서로 다른 표현은 서로 다른 병의 원인을 표명하고 있다. 전자는 보이지 않는 내재적인 요소로 일어났고, 후자는 알 수 있는 외래적인 사고로 생겨났다. 이 두 자가 합쳐져 오늘의 질자가 되었다. 질병은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이므로 병이 나면 빨리 효과적인 치료를 해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질자에는 미워하다. 재빨리라는 두 가지의 인신의를 갖고 있다. 이것은 상대에는 이미 병이 들면 죽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자연히 치유되기를 바라며 방임하던 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2. 몸의 부위
상나라 사람들의 질병에 대한 이해는 매우 유한하였으므로 환자가 통증을 느낀 신체 부위로 점을 쳐서 물어보았다. 병이 생기는 신체 부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갑골문의 치(齒)자는 이가 입안에 있는 모양이다. 신(身)자는 신체의 돌출된 복부를 그리고 있다. 임신을 하면 복부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므로 신이 있어야 임신을 할 수가 있다. 지(止)는 발가락의 모양이다. 목(目)은 눈의 상형이다. 수자는 머리카락이 있거나 머리카락이 없는 머리 모양이다. 천(天)은 정수리로 두부를 돌출되게 그리고 있다. 굉(肱)은 팔꿈치가 있는 팔 전체의 상형이다. 자(自)는 코의 상형이며, 구(口)는 입 모양이다. 언(言)은 관악기를 가차하여 발음기관을 표현해내고 있다. 설(舌)은 혀를 내밀고 있으며 침이 떨어지는 모습의 상형이다. 골(骨)은 소 견갑골의 상형이다. 그밖에 부위가 분명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 병에 관하여 점쳐 물어보면서 단지 발병의 부위만을 언급하고 병의 징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은니, 당시에는 아직 같은 부위의 다른 증상을 판별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며, 치유효과도 크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녁(疒)을 의부로 삼은 형성자가 크게 증가하여 30여 개나 된다. 대개 그 당시 이미 병의 증상에 대하여 상당한 이해가 있었으므로, 서로 다른 병의 증상에 각기 다른 명칭을 부여했을 것이다. 상대 사람들이 단지 병이 난 부위만을 지적한 것과는 다르다.
3. 발병의 원인
병의 원인에 관한 진단의 정확성 여부가 증상에 대하여 약을 쓸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 만일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약을 쓴다면 어쩌다가 우연히 치료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이다. 갑골 복사로부터 상나라 사람들이 병이 생기는 원인을 네 가지로 보았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귀신이 해를 끼친 것이다. 예를 들면 “상제께서 왕에게 병이 생기게 하였습니까?” “상하 뭇 신령들께서 왕에게 병이 생기도록 하시지 않았습니까?” “병이 생겼으니, 황윤께서 병이 나도록 하셨습니까?” 라고 하여 병을 내릴 수 있는 신령은 상제. 자연계의 뭇 신들과 선조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귀신들은 전부 재앙을 내려 병이 나게 할 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갑작스런 기후의 변화이다. 예를 들면 “바람에 의하여 병이 생겼습니까?” 라고 하여, 상나라 사람들은 몸이 쇠약해도 기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병이 생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세 번째는 음식을 조심하지 않아서 병이 생긴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고(蠱)라는 벌레가 이에 병이 생기게 하였습니까?”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고(蠱)자는 그릇 속에 작은 벌레들이 들어 있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 채소 속에도 벌레가 들어 있고,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생기는 것은 고인들이 흔히 보아왔던 일이다. 고인들은 회충. 토사. 치통 등이 음식을 조심하지 않아서 작은 벌레를 삼켰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상상을 쉽게 할 수가 있었다. 네 번째는 꿈으로 병이 생긴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많은 귀신들이 꿈에 보였는데 병이 생기겠습니가?” “왕께서 어린아이 꿈을 꾸었는데 병이 없으시겠습니까?”라고 하여, 상나라 사람들은 꿈은 정령에 의하여 꾸게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정령은 재해를 내릴 수도 있었으므로 꿈 때문에 질병이 생길 수도 있다고 믿었다. 미개화된 종족에서도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이와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다.
갑골문의 몽(夢)자는 한 사람이 침상 위에 누워 있으며, 눈은 도리어 크게 뜨고 있어 마치 무엇을 쳐다보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또 다른 자형은 눈 부분이 생략되었으며 침상 위의 사람은 생략되었으며 침상 위의 사람은 단지 눈썹과 몸만이 남아 있다. 갑골복사에는 꿈에 관하여 점친 일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서, 상나라 사람들이 꿈의 계시를 아주 중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꿈은 아주 기묘한 경험이며 각종 불가사의한 정경을 모두 꿈꿀 수가 있었다. 특히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꿈 속에서는 완연히 살아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러므로 고인들은 정령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복사로부터 꿈에 다귀, 부을, 태갑 등과 같이 친근하거나 혹은 소원한 신령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꿈 속에서는 죽은 대호. 흰 소. 살아있는 사람 등 수없이 많은 것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꿈이 신령의 계시라고 여겼기 때문에 점을 쳐서 도대체 화인지 복인지를 알려고 하였다. 심지어 상왕이 꿈을 꾸면서 오줌을 싼 것도 정중하게 점을 치고 있어, 상나라 사람들이 꿈을 중시하였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꿈을 꾼다고 하여 반드시 질병이나 재해가 생기는 것만은 아니며, 어떤 때는 귀신의 지시로 아주 커다란 이익을 얻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기) 은본기에 상왕 무정이 집을 짓고 있는 부열을 꿈에 보고, 그를 심방하여 재상으로 발탁한 뒤로 상황조가 크게 다스려졌다고 하였다. 이것은 상나라 사람들이 꿈을 믿었다는 좋은 예증이 되고 있다. 미개화된 수많은 민족들은 수렵이나 이주 등과 같이 결정을 내려야 할 중대한 사정이 생기면 신령에게 꿈으로 지시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꿈은 항상 꾸어지는 것도 아니고 꿈꾼 일을 반드시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꿈은 어떤 사람들은 굶거나 약물을 복용하여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쉽게 꿈꾸도록 하기도 한다. 갑골문에서 몽과 질은 모두 침상 위에 누워있는 것으로 뜻을 나타내고 있다. 상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땅 위에서 잠을 잤으며, 침상은 각종 사망의식과 관련된 물건이다. 이로 인하여 병이 중하면 침상에 누워 죽기를 기다리며, 정당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죽는 것을 면하려는 습관이 있었다. 옛날에는 의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률이 아주 높았다. 일단 병이 나면 가장 나쁜 결과를 예측하여 병자를 임시로 만든 침상 위에서 자도록 하였다. 옆에 있는 사람이 침상을 보기만 하면 곧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으므로 침상 위에서 잠을 잔다는 것으로 질병이란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몽자의 창의 또한 정신을 황홀케 하고 침상 위에 누워 정령들의 세계에 들어가 지시를 얻으려고 준비하던 습관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상대 이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은 꿈이 어떤 조짐을 계시한다고 믿어왔다. B.C 3세기경의 저작인 [춘추좌씨전]에는 많은 꿈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무서가 꿈의 길흉에 관한 점을 쳐 주로 영험을 얻고 있다. 비록 그것은 저자가 영험스런 이야기를 선택하여 서술하였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 당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꿈에 대해 깊이 믿었다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런 전통이 깊고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기] 단궁상편에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내 어젯밤 꿈에 두 기둥 사이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다....내 곧 죽으려나 보다’ 말을 하신 뒤에 7일간 병석에 누우셨다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괴력난신을 말씀하지 않으셨던 공부자께서도 꿈의 정조를 믿으셨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과 질병의 원인을 진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나라 사람들은 그것은 귀신이 해를 입힌 것이거나, 돌별한 기후. 음식을 조심하지 않았거나 꿈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귀신과 꿈처럼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요소들이 일으키는 병에 대해서는 귀신에게 기도와 제사를 지내는 방법 외에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미개화된 씨족의 방법과 별차이가 없었다. 상나라 사람들이 내과 질병에 대한 치료는 복사로부터 두 가지 방법을 살펴 볼 수 있다. 하는 고(告)이고 다른 하나는 어(御)이다. 갑골문의 고(告)자는 구덩이에다 표식을 꽂아놓은 형상으로 행인에게 잘못하여 그 구덩이 속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를 표현하고 있다. 고는 비교적 소극적인 방법이다. 선조에게 병세를 보고하고 선조께서 도와 주시기를 바라는 것으로 대개 가벼운 병세에 쓰이던 방법이다. 갑골문의 어(御)자는 한 사람이 어떤 물건 앞에 꿇어앉아 청원을 올리는 상황이다. 그 자형은 어가한다는 자와 서로 같아서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어는 질병을 낫게하는 적극적인 방법이며 귀신에게 재화의 근원을 제거하게 해달라고 기구하는 것이다. 원시 씨족의 방법을 살펴보면, 어의 구체적인 방법은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하며 춤을 추는 것이다. 기후나 음식물처럼 귀신이 일으키는 병과 관계를 없는 것들에 대해서 상나라 사람들은 약물을 이용하였다.
4. 약물
점을 치는 것은 의문을 풀기 위해서이다. 만일 병이 생기는 원인을 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서 치료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복사에는 화살이나 돌에 의해 생긴 외상에 관한 대책은 점치지 않았으니 이미 일정한 치료법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인류가 약물을 사용한 것은 귀신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알기 전이었을 것이다. [회남자] 수문편에는 신농씨가 일찍이 백초를 맛보아 약초를 발견했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 언뜻 보기에 이런 전설은 마치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리나 사실 이 말에는 상당한 이치가 있다. 필리핀의 산림 속에는 구석기시대 사람들과 흡사하게 살며 산의 동굴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병이 나면 병세의 발전에 맡길 수밖에 없으며 신에게 비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나 뱀에게 물린 상처는 약초를 사용하여 치료할 줄 알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던 외상은 증세가 분명하게 경험으로 여기에 어떤 약초를 사용하면 필연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증상에는 약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고대에는 생산조건의 차이 때문에 야외에서 일을 할 때 쉽게 상처를 입고 벌레나 뱀에게 물렸으므로 외상을 치료하는 의료지식도 비교적 풍부하였다.
상나라 사람들이 약을 사용할 줄 알았다는 것은 아래의 몇 가지 현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맹자] 등문공상편에는 상대의 문헌인 [설명]을 인용하여 ‘가령 약을 복용하였으나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하지 않으면 그 병은 쉽게 치료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내복약에 대한 상당한 경험 후의 지식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갑골 복사에서는 제1기 이후에는 거의 병을 낫게 해달라며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리겠다는 복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상나라 사람들이 기도를 해봐야 병에 효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약물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하북 고성의 초기 상 유적인 집 안에서 껍질을 벗긴 30여 알의 식물종자가 발견되었다. 그 중에는 복숭아 씨가 있었다. 이들은 약재로 쓰기 위하여 저장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두 가지 물건은 모두 한 대에 편집된 [산농본초‘에 보이며 유사한 치료효과를 갖고 있다. [본초]에서는 복숭아 씨가 ’어혈. 혈폐. 징하. 사설에 주로 쓰이고 작은 기생충들을 죽인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역래로 어혈(피가 순하게 돌지 못하고 한데 뭉친 악혈). 월경곤란. 충수염. 변비에 사용되었다. 이것을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가 있으므로 식용 가능성은 적고 약재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본초]에는 산앵도 씨에 대하여 ’시고 독이 없으며 수종으로 배가 부른 것을 치료하며 복수를 토해내고 얼굴과 사지의 부기를 다스리며 소변이 잘 나오도록 한다.‘라고 하였으며, 역래도 그들은 서로 비슷한 치료효과가 있으며 모두 집 안과 문화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상나라 사람들은 복숭아의 과실과 씨의 효용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었으며, 이미 의도적으로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고 씨의 알맹이를 저장해 두었으니, 이는 약용을 제외하고는 그밖에 더 좋은 해석을 할 수가 없다.
상나라 사람들은 외상의 치료에 관하여 이미 상당한 자신을 갖고 있었으며, 또 효과적인 외부약물도 있었다. 돼지는 중요한 가축이며 육식 공급원이었다. 상나라 사람들이 거세는 효과가 뛰어난 양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반드시 외복약으로 염증을 방지하고 죽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에는 신체의 부분적인 기관을 잘라 징벌하고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는 형법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에는 코를 베는 의형, 다리를 자르는 월형, 심지어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까지 있었으니, 징벌의 목적을 이루려면 형을 받은 사람이 일할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했다.
만일 당시에 효과적인 소염제와 지혈제가 없었다고 한다면 신체기관을 잘라 버리는 형벌을 시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주의 동기 하나에도 월형을 받은 사람 이 문을 지키게 한 장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로써 상대에 이미 외과수술을 하고 소염과 지혈을 할 수 있는 약물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5. 무(巫)와 의(醫)
후대에는 약물로 병을 치료하는 사람을 의사라고 하며, 춤을 추고 기도하는 등의 심리적인 치료를 위주로 하는 사람을 무당이라고 부른다.
상대에는 단지 무가 이 일을 하였다. 무는 항상 약물을 보조로 하는 무술을 행하였으며, 때로는 자기도 약을 먹고 정신이 황홀한 상태에서 무술을 행했다. 그러므로 어떤 약물과 질병의 관계를 발견하고 대대로 전수하였다. 따라서 전설에 나오는 조기의 명의들은 모두무의 신분을 갖추고 있었다.
갑골문의 무(巫)자는 두 개의 I형의 교차된 기구의 모양이며, 아마 무술을 행하는 도구였을 것이다. 무(巫)자는 서(筮)자의 일부분이다. 서자는 두손으로 점치는 도구를 들고 점을 치는 형상이다. 죽(竹)은 바로 이 도구의 재료이나, 무. 서의 의미가 점을 치는 도구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전의 의(醫)자는 세 부분으로 만들어졌다. 예는 상자 속에 활촉이 들어 있는 모양이며, 수는 손으로 도구를 잡고 있는 모양이다. 유는 술항아리의 모양이며, 술은 마취. 소독. 약효를 빠르게 하거나 심정을 격려해 주는 약제이다. 손에 잡은 도구를 외과용 수술기구일 것이다. 화살은 몸에서 빼낸 활촉이거나 곪게 만든 뾰족한 형상의 물건일 것이다. 전쟁이 격렬할 때에는 화살에 맞는 일은 흔한 상처였으므로 이런 것들을 취하여 의사라는 의미를 표현해 내었다. 갑골문에는 읽을 수 없는 자형으로 눈. 발 혹은 몸에 활이 꽂힌 형태의 글자가 있다. 화살에 맞아 생긴 상처는 병의 원인이 명확하므로, 벌레에 물린 것 외에는 아마도 진정한 의술이 발전된 최초의 항목 중 하나였을 것이다.
갑골문에는 비록 의(醫)자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상대 중기의 유적에서는 약초가 저장된 게 발견되고 있으니, 상대에는 반드시 약물을 자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직책은 대개 무(巫)로 충당되었을 것이며, 무와 의사의 직책이 나뉘게 된 것이 대부분 심리치료를 위주로 하였다. 그러므로 [설문해지]에 ‘옛날에는 무팽이 처음으로 의사가 되었다.’고 하였다. 중국 초기의 명의는 모두 무의 신분을 갖추고 있었으니, 예를 들면 무함. 무상 등과 같다. 이로 인하여 의(醫)의 무(巫)는 통상 연용되었다. 어떤 때는 의사의 직책에 편중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의 일에 편중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관자] 권수편에 ‘임금께서는 거북점과 시초점으로 일을 판단하였으며 무의를 잘 등용하였다’고 하였으니, 이곳의 무의는 사실 단지 무의 일을 가르키는 것일 따름이다. 옛날에 무가 병을 치료할 때는 항시 약물로 기도를 보조하는 무술을 수행하였다. 질병에 대한 반응과 치료 경험이 다른 사람보다 풍부하다보면 심리치료가 비록 완전히 속이고 미혹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약물을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약효과 나타나게 되는 것과는 달랐다. 그러므로 동주시대에 오면 무와 의사의 분업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 [사기] 편작열전에는 ‘무를 믿고 의사를 믿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게 되었다.
서주의 의술이 어떠했는지 문헌이 결핍되어 있어 알아보기가 어렵다. 춘추시대는 이미 무와 의사의 직업에 분화가 생겼다. 병이 있으면 비록 무를 불렀으나 주로 길흉을 점치는 것에 한하였으며, 병세를 보고 약을 쓰는 일은 이미 의사가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좌전]에는, B.C 581년에 진후가 꿈에 머리를 길게 땅까지 내려뜨린 귀신이 문을 부수면서 강제로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에 깜짝 놀란 진후는 상전의 무당을 불러 해몽하게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진후가 병이 나자 곧 진(秦)나라에서 의사를 청해와 치료하도록 하였다. 또 B.C541년도에 또 다른 진후가 병이 나자, 점쟁이를 불러다 어떤 귀신이 재앙을 일으키는지 점쳐 보도록 하였다. 어떤 귀신이 재앙을 일으키는지 알게 되자 진나라에서 의사를 청해와 병을 치료하도록 하였다. 다만 이 이야기로부터 그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귀신이 병을 생기게 만든다고 믿고는 있었으나,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6. 전통의학의 수립
전국시대는 대개 중국 전통의학의 이론과 연구가 수립된 시대이다. 열국 중에서는 진의 의학이 가장 발달하였다. 위에서 인용한 두 이야기에도 모두 진의 임금이 진의사를 초빙한 예가 있다. 그것은 절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진나라의 의학이 확실히 발달했었다는 구체적인 반영이다. 다시 한 가지 예를 들면 [사기] 자객열전에 형가가 연 태자의 부탁을 받고 진나라 조정에서 진왕을 찌르려 할 때, 시의가 의대로 형가를 습격하여 진황을 구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진나라에서는 의사가 조정에 시봉하면서 진황을 구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진나라에서는 의사가 조정에 시봉하면서 긴급한 병을 예방하던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주례]는 전국 말기에 어떤 사람이 이상적인 정부의 조직방안에 대해서 쓴 것으로, 이곳에는 무와 의의 직무가 아주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게다가 의사 직책을 의사. 식의. 질의. 양의. 수의의 다섯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미 위생행정과 음식물의 영향에 주의하고 있으니, 그 당시로서는 아주 발달된 것이었다. [예기] 곡례하에 ‘부모에게 병이 있어 약을 먹게 되면 자식이 먼저 이를 맛본다. 의사는 삼세가 되지 않으면 그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당시 의사의 선택도 신중하였으며, 의사의 훈련 또한 엄격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의학도서의 수집과 연구는 의사의 직분 중 하나이며, 의술의 교육과 훈련이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나라는 의사의 배양과 의술의 연구를 상당히 중시하였다. 진시황이 분서의 영을 내릴 때도 의학서적은 그 수난을 면하였다. 근년에 호남. 장사 마왕퇴에서 고대의 의학저작이 발굴되었으니, 이는 전국 시대의 의학성취를 반영하고 있다. 최초의 사본은 진. 한 사이의 [오십이병방]이다. 이 책에서는 2백 43종의 약재 명칭과 2백여 종의 약방문이 언급되어 있으며, 내복. 수술. 돌침과 뜸. 안마 등의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한대에 편집된 의학의 명저 [신농본초]와 [황제내경]이 모두 전국시대의 의학을 기초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상고시대에 인류의 수명을 결코 길지가 않았다. 예를 들면 구석기시대의 북경인은 22명중에 15명이 14세 이전에 죽었다. 주대에 와서도 50세 이상을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 그때는 훌륭한 의술이 없어서 병을 고칠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장수를 바랄 수가 없었다. 춘추시대 이래로 의학의 연구에 성과가 있게 되었으며, 약물은 확실히 병의 고통을 경감시티는 효과가 있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도 장생의 길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불사의 사상은 춘추시대에 벌써 중시되고 토론되었다. 동기에 주조된 명문에서도 이런 관념이 변화된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서주시대는 단지 자자손손 영원히 보배로 사용하라는 말을 하였으나, 춘추시대에 오면 만년장수 혹은 장생불사의 기구로 바뀌에 되었다. 전국시대에 와서는 불사약을 제련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도 있었다. 만일 당시의 약물에 어떤 치료효과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갑자기 약물의 힘을 빌려 장생불사하겠다는 환상을 갖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진시황이 동남동녀를 해상에 파견하여 신선을 찾아 장생의 비방을 얻으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진시황은 당시 의료기술이 가장 발달하였던 지역에서 생활하였고 아주 총명한 사람이었으니, 우리는 이 사건을 제나라 방사에게 무지로 미혹되었다고만을 볼 수 없다. 당시에는 확실히 의료효과가 탁월한 약물이 아주 맣았으며, 진시황은 이세상에 사람을 죽지 않도록 만드는 약이 있다고 믿었으므로 사람을 파견하여 찾도록 하였을 것이다.
7. 신농본초경
[신농본초경]은 앞에서 언급하였던 책으로 중국 조기의 두 권의 중요한 의학저술 중 하나이다. 전설 속의 신농은 백초를 맛보고 약물학을 창시한 사람이며, 이 책은 약물의 치료효과를 강구한 책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준국시대의 지리저작인 [산해경]에는 각지의 특산 약물과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은 음양오행과 약성간의 관계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한대는 음양오행학설이 모든 영역에 범람하였다. 만일 이 책이 한대의 저작이라고 한다면 음양오행학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기본적인 재료는 서한 이전에 씌어졌을 것이다.
본초경에 수록된 약재는 3백65종에 2백52종의 식물, 67종의 동물, 46종의 광물을 포함하고 있다. 거기에 수록된 종류의 수목은 1년 365일에 부합시킬고 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많은 약물들이 수록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최초의 약방서인 [오십이병방]에 기재된 243종의 약재 중에서 반이 본초에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에서는 치료효과가 확실한 약물만을 선록하였으며, 한초의 모든 약학지식을 포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약물의 성능과 복용 목적에 근거하여 삼품으로 나누고 있다. 상품은 1백20종으로 주로 오랫동안 복용해도 즉각 효과가 보이지 않는 보약이다. 중품 1백20종은 보양과 치료효과를 겸한 약물이다. 하품 1백25종은 주로 질병을 치료하고조속한 효과를 보게 하나 오래 복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병의 증상은 1백70여 종을 언급하고 있으며, 내과. 외과. 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 각 방면의 질병을 포함하고 있다. 책 속에 표현된 지식은 장기간 누적된 경험으로 얻은 성과가 분명하다. 후세에 임상실험을 해보니 지식은 장기간 누적된 경험으로 얻은 성과가 분명하다. 후세에 임상실험을 해보니 그 기록은 대체로 정확하였다. 분류의 품목은 보약이 상품이고 치료약이 하품으로 되었으니, 당시에 이미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약물이 얼마만큼 효력이 있든지 항상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황제내경]에서는 ‘이미 병이 생긴 것은 치료하지 않고, 아직 병이 나지 않을 적에 치료한다’고 하였다.
건강한 몸은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동주시대에는 신체운동과 호흡운동을 결합한 보건방법이 있었다. 장사 마왕토의 한 서한묘에서는 각종 운동자세와 치료할 수 있는 병명을 적은 백화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보건과 물리치료라는 두 가지 목적을 겸하고 있다. 근골을 활동시키는 것은 노화방지의 좋은 방법이니, 그때 사람들은 벌써 그 이익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유익한 심신의 보건운동은 도리어 신선가. 방사들이 이용하여 이를 신화하였으며, 이것으로 장생의 길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곡식을 먹지 않고 호흡으로 장생불사한다는 허황산 신화와 문학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8. 황제내경
[황제내경]은 황제의 이름을 기탁하고 있다. 그것은 황제가 그의 신하에게 명하여 약수가 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 약초를 기록하게 하였으므로 비로소 약물로써 병을 치료하는 의학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책은 소문과 영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소문은 주로 의학이론을 천명하고 있으며, 장부의 생리기능. 발병의 병인. 병세의 증상. 맥락의 맥복 및 치료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영추는 주로 혈에 침을 놓는 침구기술과 의술로 다스릴 수 있는 병명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장부. 골맥. 경락. 영위(영은 동맥혈, 위는 정맥혈로 몸을 보양하는 혈기). 음양의 상황과 병리의 추론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진한시에 성행한 음양오행학설을 크게 다루고 있다. 그것은 음양의 변화 관계로서 질병의 병리 전기를 설명하고 진단의 총강과 치료의 원칙을 확정하고 있다. 오행의 상생. 상극의 규율로 인체 각 부분의 연계와 인체와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천명하고 있다. 아울러 오행의 상생. 상극의 관계로 구체적인 치료방법을 확정하고 있다. 이 책은 인체의 생리와 병리현상에 관하여 깊이 있게 들어가 천술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질병의 진단, 치료와 예방을 규율을 총결하여 비교적 계통적인 이론체계를 형성하고 있고, 중국의학에서 말하는 음양오행 조화의 기초와 특색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