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시창작방1, 2』, 『시창작방3』에 올라 온 총 79편의 작품 중 변수남 작가의 <무슨 꽃 되려느뇨>, 노수현 시인의 <뒷짐>, 이하재 시인의 <까만 별이 눈물처럼> 등 총 3편을 추천한다.
무슨 꽃 되려느뇨
변수남
꽃이 피면서 말로 긔별하던가요?
향기가 나면서 웃음으로 유혹하던가요?
말도 웃음도 못내 없었드랬는데
꽃 아래 맴그림 까닭 있어 그러셨나요?
꽃을 보면 언마음에 새순이 돋는다셨지요
청정한 샘물도 막 솟고 그런다셨지요
봄바람 불어오니 나 또한 꽃이 될려오
꽃이 될 거라 작정하니
세상살이에 구겨지고 옹졸해지는 사람에게
굴뚝다리미 옷감 잡아주는 희망꽃 될려오
매화꽃이든 살구꽃이든 호박꽃이든
그런 것은 가리지 않을려오
나비도 친구 되고 벌들도 윙윙 대며
빗장으로 닫힌 시름 열어줄 만한 꽃이라면
통꽃이든 갈래꽃이든 가리지 않을려오
꽃에는 다 언마음 녹여줄 마법 있으니
화자의 순수한 세계의 도래에 대한 소망을 ‘꽃’이란 사물을 통해 의지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화자는 개화(開花)의 계절에 변화하는 자연과 더불어 자신의 소망도 한껏 높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 ‘언마음’을 녹이고 새순마저 돋게 하는 꽃의 존재는 이윽고 화자와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결국 화자는 ‘옹졸’이나 ‘시름’ 같은 부정적 기운을 바꾸어 줄 존재로 탈바꿈하고 싶어 하며, 그것이 어떤 형태와 모양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구조는 순환적 형태를 취한다. 즉, ‘외물의 변화 -> 화자 변화의 동인 -> 세계의 변화 갈망’의 과정을 통해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이 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다른 문체(style)이다. 여성적 화자의 목소리를 입은 각 문장의 종결은 ‘~요’, ‘~오’로 맺음으로써 넌지시 묻거나 간절한 소망을 발하는 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 ‘긔별’, ‘맴’과 같은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고전적, 전통적인 시상에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작가의 영특함이 빛을 발한다. ‘~요’처럼 뒤로 한발 빼는 듯한 표현, 즉 여성적 태도에, ‘~오’와 같이 남성성의 상징과도 같은 ‘의지’의 표현을 반복해 교묘하게 결합함으로써 화자의 ‘소망’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계절의 순환을 말할 때 우리는 보통 ‘봄’으로 시작하며, 이를 자연스럽게 이 계절의 상징인 ‘꽃’과 연결하기도 한다. 요컨대, 생명의 소생을 상징하는 계절적 특징을 화자의 내면에 가져와 세상을 변화시켜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시로서 발상과 표현방법 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다. 다만 시에서 반복이란 게 항상 점층적 효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서 좀 더 집약과 생략이 있어도 되겠다는 의견을 보태본다.
뒷짐
노수현
날이 가면 갈수록
시선이 하늘에서 멀어지고
자꾸만 바닥으로 치닫는다
바닥의 균열이 보이고
멀어졌다 다가오는 그대의 그림자도 보인다
굳건하던 무게중심이 언제부턴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두 손등이 자꾸만 자꾸만 뒤로만 향한다
손등이 부딪히고 왼손이 오른손을 잡는다
균열된 바닥을 뒷짐지며 노려보지만
바닥은 도무지 바닥을 치고 올 생각을 안한다
뒷짐이 바닥을 친 시선처럼 자유로워지면
다가오는 그대의 그림자도 용서를 구할 테다
가끔은 뒷짐을 풀고 하늘을 우러러 볼 터이다
존재론적 하강의식을 상승으로 바꾸어보려는 인간의 행동변화를 통해 화자 자신의 인지 부조화의 극복을 해보려는 소망을 담은 작품이다. 화자는 시간에 흐름에 따라 자꾸 하늘로부터 땅으로 추락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아가 무게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몸통을 기준으로 양쪽에 자리한 팔을 뻗어 둘의 연합의 힘으로 대신해보려는 자연스런 동작까지 취한다. 그러나 바닥까지 치고 내려간 존재감이란 게 균열된 곳을 노려본다고만 해서(부정한다고만 해서) 저절로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리는 만무하다. 레온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이론’에서 이를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행동 사이에 일관성이 깨졌을 때 느끼는 불안정한 심리적 상태로 정의한다. 올곧게 하늘을 우러르고 싶은 의지나 신념과는 반대로 바닥으로만 치닫는 화자의 현재 상태가 그걸 증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대의 그림자’이다. ‘그대’를 타인으로 해석할 수동 있지만, 전체 시상에서 ‘그대’와의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걸로 보아 이는 화자 자신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인지부조화 이론에선 해결을 위해 신념 변경, 행동 변경, 합리화 등을 제안하는데, 다행히 화자는 뒷짐이 자연스러워지면 ‘그대(자신)’을 용서할 것이라고 하며 하늘을 의지를 갖고 우러러 보는 행위, 즉 행동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무게중심잡기보다는 지향점이 중요하다는 주제가 처음 시인이 의도했던 전체 그림에서 다소 벗어낫다는 의견, 그리고 시의 뒷부분에서 행동 변경을 향한 전환 부분이 다소 급작스런 면이 있으므로 추가 요소가 삽입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보태본다.
까만 별이 눈물처럼
이하재
그녀의 얼굴에
하얀 반달이 환하게 피었다
국민연금이 올랐다고 싱글벙글
월 295,930원 받던 국민연금을
월 306,580원 받게 되었다고
한 달에 10,550원 올랐다고
고까짓 만 원 올랐는데
고맙게 만 원이나 올랐다고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다
고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제 몸보다 억센
대걸레에 질질 끌려다닌 세월은
곧은 허리를 휘어 놓고
검은 머리를 희게 하고
반듯한 얼굴을 우그려 놓고
꼿꼿한 다리를 오그려 놓았다
그녀의 얼굴에
까만 별이 눈물처럼 번졌다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현대인의 긍부정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아내의 에피소드를 통해 표현해낸 작품이다. 시에서 아내가 기뻐하는 이유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는 관찰자로서의 화자 표현대로 ‘고까짓’ 정도의 미미한 수준인데도 아내는 이 작은 ‘횡재’를 만끽하기 위해 중국집에 간다. 그러나 화자에겐 사실 ‘만 원’을 더 수령하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고초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인식된다. 오랫동안 계단 청소를 하면서 건강했던 신체를 망가뜨린 억센 노동의 대가치고는 너무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미상관으로 시상 마지막에 표현된 ‘까만 별’은 첫 구의 ‘하얀 반달’과 정 반대의 이미지이지만, 한편으론 동일한 아내의 표정에 대한 화자의 심리적 변화가 반영된 표현으로도 읽힌다. ‘웃지만 웃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 표정 해석은 인생 전체를 집약한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이라던 찰리채플린의 명언이 아니라도 인생은 충분히 희비극의 요소를 모두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편, 시인의 ‘그녀’를 향한 연민의 감정이 대상에 가까이 밀착되지 않고도 충분히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이유는 절제력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할 말은 많지만 다 하지 않는 절제가 이 짧은 시 안에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들을 품으면서, 또한 독자들에게도 각자의 삶을 되짚어보게 하는 여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한 경험과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적 특성을 살피면서 공감을 자아내는 작품을 보여주는가 하면, 때론 호탕한 웃음으로, 때론 씁쓸한 미소로 삶을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노련미를 발산하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