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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학당] 진여와 열반 30강-해심밀경解深密經의 무성교無性敎(반야부)의 종지 풀이(0:08-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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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바라밀, 6바라밀을 잘한다는 게 그러니까 엄청난 게요, 공성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공성이라는 거는 사실은 청정광명의 공성이기 때문에 텅 빈 중에 반드시 알아차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 알아차리는 자리가 뭘 알아차리느냐? 6개의 진리를 알아차려요. 그래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의 6바라밀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얻었다.’ 그러면 공적영지를 얻은 거예요, 공적영지(空寂靈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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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바라밀을 원만히 계발하는 건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예요. 그게 이제 이 지혜를, 보세요, 공적, 공적이 선정이고, 공적한 중에 영지를 얻었다가 선정·지혜 정혜쌍운(定慧雙運)이죠. 그런데 이제 그러면 이 지혜를 가지고, 이 지혜를 가지고 6바라밀의 총체적 복덕을 쌓아가는 게 복혜쌍운(福慧雙運)입니다. 반야·방편쌍운이라고도 부르고요. 보통 복혜쌍운 뭐 이렇게 복혜쌍수 이렇게 부르죠. 여기는 정혜쌍운. 공부는 이게 다예요. 여러분이 만약에 참나 찾으셨으면요, 참나에 안주하셨으면 죽어라고 하셔야 될 일이 그다음에 뭐예요? 6바라밀 능력 계발이요. 원래 자량위(資糧位) 때부터 해왔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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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량위 때부터 6바라밀 공덕을 쌓다 보니까 견성한 거예요. 견성했으면 쌓던 복덕을 또 더 잘 쌓아가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그때부터는 ‘바라밀’이라고 불러주는 거예요. 견성, 아까 1지 견성은 아닙니다. 제가 말한 가행위(加行位) 때 이미 견성하거든요. 1주 견성이요. 1주 보살의 견성, 아직 6바라밀은 다 안 나오지만 공적영지 깨달은 것만 해도 공적한, 고요하고 영지 알아차리는 정혜쌍수, 요게 수심결에 잘 나오죠. 공적영지 깨닫는 게 정혜쌍수거든요. 이때 이 영지 자리는, 영지는요, 그냥 알고 있어요, 이미. 알고 있는 자리예요. 알고 있는 자리. 이미 알고 있습니다. 뭘요? 3공을요, 아공·법공·구공을 그냥 알고 있어요. 텅 빈 중에 알아차리는 자리를 이제 확보한 거죠. 그런데 이때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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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지는 게 아공, 아공·법공까지는 알아지는데 구공 공부는 실제 해봐야 되니까, 해보면서 알아집니다. 이게 달라요. 그래서 아공·법공까지는 여러분, 저기 산속에 있어서 암자에서도 방 안에 홀로 계실 때 여기까지 1주 견성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1지 견성은요 그런데 사람들하고 부딪혀 봐야 돼요. 그래서 예전에 절에서 1주에서 1지 갈 때 만행(萬行)을 시키는 거예요. 돌아댕겨 봐야 돼요. 부딪혀봐야 내 보시 실력, 내 안에 탐욕이 얼마나 있고, 남한테 나누기가 얼마나 힘든가 해봐야 해요. 지계, 얼마나 세상에 유혹이 심하고 그걸 내가 이겨낼 수 있는가 해봐야 해요. 그렇죠. 나가서 바로 깨지죠. 절에서는 고요한데.. 제가 군대에 3년 있으니까, 여성들을 거의 안 보잖아요. 물론 주말에는 왔다 갔다 했습니다만, 3년간 ‘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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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되는 거 아니야 이거’ 그래가지고 신촌 갔더니 하나도 안 바뀌었더라고요.‘내 안에 다 있었구나’ 이게 자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다 일어나가지고, ‘하나도 안 바뀌었구나.’ 흙탕물을 잠깐 가라앉혀 놨던 거지 휘저으니까 그냥 확 올라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걸 다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공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탐진치 속에서 공부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도 여기 지금 강남에서 하잖아요. 이 밖에 가면 지금 탐진치의 천국이죠. 여기 앉아서 도 닦는다고 하지만 이게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거지 진흙 떠나서 어디서 피워요. 그러니까 이 탐진치 세계에 뛰어들어서요, 보시, 내가 받고 싶은 거 남이 나처럼 느껴져서 둘이 아닌 마음, 벌써 그게 참나를 깨달았으니까 가능한 거죠. 공적영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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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얻으면 ‘바라밀’이라고 안 한다니까요. 그냥 남한테 베풀어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참나의 작용이겠죠, 근원은. 하지만 그 정도는 약하다는 거예요. 의식적으로 해야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거는요 아직 그냥 ‘6행위’라고 하지, ‘대승기신론’에서도 그 ‘행위’라고 부르지 ‘바라밀’이라고 안 불러요. 바라밀이라고 언제 부르냐면 지관쌍운 얻은 뒤로요. 견성한 뒤로. 그러니까 이때 견성을 ‘초견성’이라 그래요. 1주 견성을 ‘초견성’이라고 합니다. 초견성 한 뒤로 그때부터 뭐가 돼요? 바라밀 공부가 시작돼요. 이때부터는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참나의 작용이에요. 에고가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때 내 거 남한테 나누는 것도요 이 선정에서 아공·법공을 얻었으니까 뭘 얻은 거예요? 반야바라밀을 얻었잖아요. 벌써 반야바라밀이 구공까지 원만하지는 않아도 이미 얻었거든요. 이미 얻은 반야바라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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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자리에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줄 알고 베푼단 말이에요. 이게 ‘대승기신론’에 그대로 쓰여있죠. ‘반야경’에 있던 거잖아요. 본래 나와 남이 없는 줄 아니까 탐욕이 없어서 베푼 게 보시바라밀이에요. 그래서 보시바라밀은 사실은 뭐라고 나와요, ‘반야경’에서? 반야바라밀이라고. 그렇잖아요. 반야가 전제돼 있으니까. 선정과 지혜가 이미 전제돼 있다니까요. 선정과 지혜 즉, 참나의 작용으로써 나오는 게 뭐예요? 참나 자리는 원래 더럽혀짐이 없으니까 밖으로도 죄 짓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계율을 지킵니다. 참나 자리에서는 에고가 없으니까 이기적인 분노가 없어요. 그래서 남한테도 내가 인욕해 줄 수 있는 겁니다. 진실을 수용해 줄 수 있는 거예요. 에고는 빡쳐도 참나의 입장에서 반야바라밀이 51% 이상 승하면 참아지는 게 있는 거예요. 왜? 진실을 아니까 수용되는 게 있어서 참아지는 겁니다.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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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정진하고, 마찬가지로 깨어있고, 마찬가지로 반야를 더욱 밝혀가는 거. 그래서 이 6바라밀의 이 능력치를 쌓아가는 거예요. 자, 견성을 했으면요, 우주의 진리가 6바라밀이라는 걸 이제 알아야 해요. 초견성을 하고 난 뒤에, 이 지혜로 아공·법공에서 구공까지 먹어요. 다만 원만하지가 않다는 거예요. 아공·법공을 알면요, 구공도 알 수 있어요. 뭐가 진리인지 알 수 있어요. 그렇죠. 6바라밀이 진리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6바라밀을 여러분 삶에서 구현해 내는 작업이 이제 남은 작업인 거예요. 그러니까 초견성에서 정혜쌍수를 얻으면 공적영지 얻은 겁니다. 그다음 공적영지로 뭘 해야 해요? 이게 제가 얘기하는 정신계의 석사 자리예요, 석사. 초견성이면 석사예요. 그럼 박사는요 ‘내 본성이 6바라밀’이라는 논문을 써야 해요. 이거 그럼 무수한 실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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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해요. 실험을 해봤더니 즉, ‘내가 복원해 봤더니’라고 해야 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뭐예요? 우주 법칙이 뭔지는, 여기 좀 SF적이지 않아요, 이거? SF영화 이런 거에 앞으로 지구 로고로 써도 멋있겠죠. 온 우주에다가도 얘기해야 돼요. 은하계에 ‘참나, 텅 빈 공적영지, 청정광명심이 우리 안에 있다.’ 그거 깨달으면 초견성. 그다음은요, 이걸 깨닫고 나면 우주 법칙이 나와요. 6가지 우주 법칙을요,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능력을 개발하는 게 그다음에 이어지는 모든, 10지 보살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저거밖에 없습니다. 초견성 때 이미 공적영지는 찾았어요. 그다음 할 일은 뭔데요? 6가지 우주법칙, 우주를 굴리는 법칙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래서 1지 보살 정도 되면요, 그 탐구가 어느 박사 학위를 받아요. 우주는 6가지 법칙으로 굴러간다는 걸 발표해요, 당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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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통해. 그다음 1지부터 10지까지는 뭐 해요? 점점 더 보시의 능력을 더 계발하고, 보시의 역량, 지계의 역량, 인욕, 정진 그거의 역량을 더 계발할 뿐이지 더 나아지는 건 없어요. 다른 법칙을 찾아내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유식학에서도 견도위(見道位)를 통달위(通達位)라고 그래요. 이미 통달해 버렸다. 알 거 다 알았다 예요. 1지에서 알 걸 다 알아요. 왜? 우주에 다른 법칙이 없으니까. 우주의 선악 판단 기준은 6바라밀밖에 없으니까 우주를 굴리는 법칙은 6바라밀밖에 없으니까, 통달위에요. 그다음에 유식학에서 뭐라고 하냐면 그럼 1지부터 10지까지는 뭐가 나아지냐? 연륜이 깊어질 뿐이다. 운전면허증 언제 나와요? 1지에. 그럼 1지부터 10지는 무슨 구분이에요? 운전 실력의. 7지 정도 되면 이제 막 눈 감고도 달린다, 뭐 이런. 7지 정도 되면 이제 막 눈 감고도 달린다, 뭐 이런. 이렇게 운전 실력이 점점점점 좋아지는 겁니다. 연륜이 깊어져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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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8지부터는 부처라고 불러요, 부처. 그래서 우리가 흔히 부처라고 아는 분들은 이제 7지, 8지 이상들을 부처라고도 그냥 불러요. 왜냐하면 그때부터는요, 6바라밀이 삶을 지배하거든요. 그러니까 불성이 지배하니까 부처라고 하는 거죠. 그냥 뭐 쏘는 거 아니에요. 7지, 8지 되면요, 특히 8지가 되면 아집이 제압돼서요 6바라밀이 그 사람을 끌고 가요.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거예요. 이 사람의 에고성이 6바라밀을 못 막아요. 멋지지 않아요. 내 에고가 막 엄청 발악을 해도 그래도 6바라밀을 못 이겨요. 그래서 8지부터 부처라고 하는 거예요. 6바라밀이 끌고 가요, 그 사람을. ‘막 타락해야지’ 해도 막 6바라밀. ‘막 살거야!’ 하면서 막 쓰레기 줍고 있고. 6바라밀. ‘막 살거야!’ 하면서 막 쓰레기 줍고 있어요. 이렇게 강남에 와 가지고 쓰레기 줍고 있고. 이해되시죠? 아, 미치겠네요. 이게 거의 저주받은 상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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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6바라밀에 끌려가는 경지이기 때문에 8지부터 부처라고 화엄경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있지 자기 뜻대로 못 살거든요. 그 아래는 자기 뜻대로도 산다는 얘기죠, 8지부터는. 그런데 7지를 왜 자꾸 쳐주냐? 7지는 그렇게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7지부터는 이미 아집을 초월해요. 다만 8지는 노력을 안 해도 초월한다는 거고 7지는 최소의 노력으로 초월해요. 그러면 7지도 결국은 초월한 거죠. 다만 의도적인 노력이 있다는 거예요. 힘을 좀 쓴다는 얘기고 8지는 힘을 안 써도 그냥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8지부터는 부처라고 하고, 7지는 이미 8지에 준하는 존재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7지부터 보통 부처니 성인이니 이런 말을 한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되셨죠. 이게 멋있어서요. 이거 기억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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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F영화 보다가 이런 로고 막 쓰는 거 나와요. ‘발레리안’인가? 천계의 도시, 거기에 이런 로고 비슷하게 씁니다. 우주적이잖아요. 이런 거요. 동그라미 있고요, 저는 막 다 이걸로 보여요. 이런 거 보십시오! 영화에 나옵니다, SF영화에. 그러니까 앞으로 우주인 만나도 당당해지시라고요. 우주에 다른 진리 없으니까, 우주에 다른 진리 없으니까 너 초견성했냐? 6바라밀 얼마나 공부했냐? 그다음부터 그게 다예요. 6바라밀 얼마나 팠냐? 한 1지 팠다, 한 2지 팠다, 3지.. 그러니까 예전 어른들이 1지 보살만 되라고 한 거예요. 그러면 바로 부처니까. 이미 견성했으면 부처잖아요. 이미 부처인데, 부처로서 소양교육을 받고 있는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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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 부처냐, 2지 부처냐, 3지... 이런 관점에서 선불교가 나온 겁니다. 견성만 하면 바로 부처다. 다만 1지, 2지, 3지는 그냥, 뭐죠 좀 부처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 소양을 익히는 정도로 파악한 거예요. 왜냐하면 견성 자체로만 보면 이미 1주에 하니까. 이런 이론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바로 또 진도 나갈게요. [* 해심밀경解深密經의 무성교無性敎(반야부)의 종지 풀이: 3세기경 경전, 제2전법륜의 가르침인 ‘무성교’는 제3전법륜의 가르침인 요의교了義敎에 비해 ‘궁극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본다.] ‘해심밀경’ 깊고 어떤 은밀한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담은 경인데요, ‘해심밀경’은요 3세기 때 경전입니다. ‘제2전법륜의 가르침인 무성교는 제3전법륜의 가르침인 요의교에 비해 궁극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는 경전입니다.’ 궁극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는 경전입니다.’ 시작부터 좋지 않죠. 갑자기 급정색하시네요. ‘제1전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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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유식학에서 주장하는 건데요, ‘전법륜’ 전이 이게, 굴릴 전(轉) 자거든요. 굴렸다, 법륜(法輪)을 굴렸다. 그래서 원래 이 법륜이 수레바퀴니까 수레바퀴를 잘 굴린다고 해서 ‘전륜성왕’ 그러죠. 전륜성왕은 UFO를 말하고요, UFO 같은 비행체를 잘 굴렸다고 해서 ‘전륜성왕’ 그럽니다. 비행체 타고 나라를 한 번에 한순간에 왔다 갔다 하면서 다스려요. 그래서 그 왕이 아침에 딱 일어나서 왕궁에서 나오면 하늘에 비행체가 떠 있어요, 륜(輪)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륜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거의 UFO예요. 그걸 타고 사해(四海)를 다스려요. 그래서 그게 전륜성왕인데, 거기에 상응해서 정치적으로는 전륜성왕이 짱이죠. 그럼 이 종교적으로는 부처님이 짱이죠. 그리고 전륜성왕과 부처님은 ‘32상호’가 같아요. 모습이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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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쪽은 뭘 굴리냐? 대신에 법륜을 굴려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부처고, 실제로 금륜·은륜·동륜 같은 비행체를, UFO를 굴려서 전륜성왕이고, 그쪽은 왕이고 이쪽은 이제 교주고. 그 차이죠, 스승이고. 그래서 ‘전륜’이라는 말이 ‘법륜을 굴리다.’ 이런 건데요, 첫 번째 굴린 게 뭐예요? [7) 제1전법륜의 가르침인 ‘소승교’는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유교有敎’이며 제2전법륜의 가르침인 무성교無性敎는 ‘아공법공我空法空’의 ‘공교空敎’이다.] 이게 소승교죠, 소승교. ‘아공법유’의 가르침. ‘아공법유’ 뭐죠. ‘나는 없지만 만법은 있다.’ 그건 뭐냐면요, 나라는 건 없지만, 나를 구성하는 5온은 있다는 거예요. 색수상행식·지수화풍은 있다는 거예요. 그 법들은 있지만, 그 법들을 내가 묶어가지고 ‘나’라고 여겼잖아요. 그 에고는 없다는 거예요. 그런 에고. 그런데 이 에고가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어떤 에고냐. 영원한 에고는 없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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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독자적인 불변의 에고는 없다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그래서 ‘영원한 에고가 없다.’ 이게 결국 이게 참나거든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참나 비판은 두 가지입니다. 참나를 영원한 에고로 보면 없어요, 진짜로 그건. 이 참나를 청정광명심이라고 보면 있어요. 지금 아까 달라이 라마 같은 분도 헷갈리신 게 참나를 부정해야 한다는 데 빠져가지고 정광명을 부정하고 있잖아요. 정광명이 지금 헷갈리시면 안 되는 게, 부처님이 부정한 참나는 ‘정광명’이 아니라 ‘영원한 에고’를 부정했어요. 영원한 에고가 있냐? ‘무상·고·무아’인데 없잖아요, 영원한 에고가. 영원한 에고는 없다는 거예요. 독자적인, 독자적인 불변의 에고는 없다는 게 ‘아공 사상’이잖아요. 그런데 법은 있다. 5온은 있다는 거예요. 5온이 연기해야지 그 5온에 대해서 집착해서 나라고 생각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5온을 집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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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나의 몸뚱이·느낌·생각·의지·식별 능력을 집착해서 이걸 묶어서 ‘나’라고 여긴 그건 허상이지만, 그 자체는 있다. 법들은 있다. 이게 ‘아공법유 사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승교를 ‘유교(有敎)’라고 그래요. 유, 있을 유(有) 자. ‘만법이 있다’라고 가르친다. ‘나는 없지만 만법은 있다’고 가르친다. 제2전법륜, 제2전법륜의 가르침은 무성교, ‘무성교(無性敎)’ 자성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여기서는 아공·법공의 가르침으로써 유교가 아니라 공교(空敎)다. ‘공하다’라고 가르친다. ‘자성이 없다’고 가르친다. ‘만법에도 자성이 없고, 만법도 독자적인 불변의 법은 없다’고 가르친다. ‘만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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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하다, 무자성이다’라고 가르친다. 여기까지가 이제 중관학파를 얘기한 거고요, 소승불교 중관학파를 다 비판하고, 제3전법륜 때 뭐가 나왔다는 거겠어요? ‘해심밀경’이요. 제3전법륜 때 뭐가 나왔다는 거겠어요? ‘해심밀경’이요. 이해되시죠? 이때 제3에 나온 게 이 ‘무성교’는요, ‘요의교(了義敎)’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진짜 요의교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요게 지금 이제 ‘해심밀경’의 가르침, 유식학의 가르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이 차이가 있군요. ‘요의교냐 아니냐?’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이 전법륜만이 ‘요의교’라는 겁니다. 요의교고, 이게 유교·공교면 뭐라고 주장할까요? 우리가 ‘중도교(中道敎)’라는 거. 다 자기들이 ‘중도’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반야 쪽은 아까 왜 자기들이 중도관이라고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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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속제관과 진제관, 이 사이에 중도라는 입장이잖아요. 그러면 여기는 유(有)와 공(空)의 중도라는 겁니다. 소승교는 만법이 있다고 그랬고, 중관학파는 만법이 공하다, 무자성이라고 그랬고, 있다고 그랬고 무자성이라고 그랬는데 공에만 집착했다는 거예요. 중도 실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서 요의교가 아니다. 요의교는요, 궁극의 가르침이에요. 그러면 이 무성교는요 이 무성교도 맞긴 하지만, 이거는 뭐라고 그러냐면 이건 방편이라는 겁니다. ‘밀의(密義)’라고 그래요. 은밀한 의미가 있다. 요의가 아니다. 은밀한, 이 말은 은밀한 의미를 숨겨두고 있다는 겁니다, 이거는. 방편으로만 가르친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거를 그 ‘미료의(未了義)’라고 그럽니다, 미료의. ‘료(了)’는 궁극의 깨달음이에요. 궁극의 깨달음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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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요의교가 아니다. 방편으로의 가르침이다. 은밀하게 숨겨둔 가르침이다. 은밀하게 뭔가 감추고 있는 게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만 공하다는 얘기만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요 자성청정심, 청정광명심을 말할 때 ‘청정광명심이 공하다’라고만 얘기했다면요그거는 진짜 진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불공의 측면을 얘기 안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근데 공하다는 것만 강조한 거죠. 숨겨둔 의미가 있는 거죠, 아직. 그러니까 은밀한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아직 그거는 궁극의 가르침은 아니라는 거예요.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겁니다. 그걸 주장한 거예요. 유식학이 중관학파의 주장에 이제 반대하고 나온 거예요. 그래서 유식학파가 등장할 때, 부처님이 이제 이거 사실 역사랑 안 맞는 얘기죠. 왜냐하면 부처님 사후에 다 나온 건데, ‘반야경’이나 ‘해심밀경’이나 다 사후에 나온 건데, 부처님 때 첫 번째 법륜을 굴리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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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교를 가르쳤더니, 소승 수행자가 아라한들이 나왔죠. 그러니까 이제 대승을 가르쳐야겠다 해서 그다음에 두 번째 법륜을 한 번 굴리셨는데, 그때는 ‘반야경’을 가르쳤다는 거예요. ‘일체가 공하다.’ 갑자기 공하다라고만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공·법공을 얘기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제 그다음에 ‘반야경’ 가르치고 여기서 이제 중관학파가 나왔죠. 그다음 ‘해심밀경’을 가르쳤다는 거예요. 이제야 궁극을 얘기했다는 거예요. 사실은 여기서 무자성이었으면 이건 뭐겠어요? 자성이 있다는 거예요. 자성이 있다는 거예요. 자성이 있다 사실은. 자성이 없는 건 아니다. 있다. 다만 방편으로 없다고 한 거다. 그러니까 아집·법집을 깨려고 아공·법공을 얘기한 거지 공에만 집착하면 안 된다. 사실은 자성이 있다. 이렇게 유식학이 나온 겁니다. 이해되시죠. 자성이 있다. 그런데 재밌는 거는 이 세 법륜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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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얘기 안 하려고 그랬는데 또 나오네. 티베트불교가 유식학의 이 세 법륜설을 그대로 따른다는 겁니다, 중관학파 입장에서. 그럼 중관학파는 좋을, 법륜 지금 그게 아니잖아요. 이해되세요? 이 이론에서는 중관학파는 방편이고, 유식학이 진짜라는 걸 얘기하는데, 이 세 법륜설을 따른다니까요, 달라이 라마는. 이걸 그냥 무시하면 될 건데 이걸 따르면서 얘기합니다. 그럼 어떻게 얘기하겠어요? 부처님이 처음에 법률을 굴렸을 때 소승을 가르쳤더니 한계가 있어서 그다음 전법륜에서 여기서 ‘요의교’, 여기서 요의교라는 거예요. 여기서 궁극을 다 가르쳤다는 거예요. 달라이 라마, 중관파의 입장은. 그러면 세 번째 이 전법륜은 뭡니까? 여기서 진실을 가르쳤다는 거예요, 공하다고, 무자성이라고 했더니 얘들이 충격을 먹고 막 자성이 없다는 거를 못 받아들이고 해서 달래려고 자성이 있다고 가르쳤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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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과 여래장이 있다고. 즉 불성이 있다고 가르쳤다는 거예요. 이게 다 세 번째 법륜에 해당됩니다. 이거는 달래려고 한 말이었다는 거예요. 애들이 너무 망연자실해 하고, 막 공하다는 걸 못 받아들이고 그래서. 웃기죠. 두 학파가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죠. 그런데 저는 굳이 왜 이 이론을, 유식학 이론을 갖다 쓰면서 왜 여기다 굳이 이렇게 좀 황당한 주장을 하는지 이해는 안 돼요. 옹색하잖아요. 애들이 못 받아들여서 어쩔 수 없이 방편을 썼다. 이 주장이 달라이 라마 책마다 나옵니다. 어떤 책을 보시든 나올 거예요. 이 세 법륜설에 대한 중관파식 입장. 서로 딴소리 하는 거죠. 이해되시죠. 여기까지. 그래서 한번 알아두세요. 세 개의 전법륜. 요게 이제 아무튼 법상종의 ‘삼시교 사상’입니다. 세 번의 전법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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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었다. 이게요 삼시교 막 오시교 화엄종은 막 오시교, 이 부처님 경전을 체계화하려다 보니까 다양한 의견이 나와요. 그런데 이게 재밌는 거예요. 중관과 유식이 같은 법륜설을 주장하면서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방식이요. 그런데 이 ‘해심밀경’에서요, ‘해심밀경’이 본격적으로 이제 유식30송 앞으로 들어갈 텐데 본격적으로 유식설을 전개하기에 앞서서 ‘해심밀경’이 이 부분을 왜 가져왔냐면 이 부분이 앞에서 한번 소개해 드렸어요, 지난 시간에. 이 ‘해심밀경’의 이 부분이요, ‘무성교’ 반야경의 종지(宗旨)를 설명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중관파랑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는 게 포인트예요. ‘반야경’의 종지를 설명합니다. 뭐라고 하는지 볼까요. 이게 다예요, 원문이. [“①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자성’이 없으며, ②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으며, ③ 본래 고요하며 자성이 열반이다.” 一切諸法 皆無自性 無生無滅 本來寂靜 自性涅槃] ‘일체제법’. 이거 지난 시간에 본 건데요. ‘일체제법 개무자성’ 일체의 모든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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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무자성, 자성이 없다. 여기까지 하나 있고요. 무생 뭐죠? ‘무생무멸, 본래적정, 자성열반’ 맞죠. 요게 다예요. 이 구절이, 지난 시간에 우리가 했었거든요. 이렇게 한 그룹으로 오고요. 요거 하나, 요거 하나 보자고요. 이게 이제 지난 시간에 공종·상종·성종할 때, 상종의 입장, ‘반야심경’의 사상이 상종에서는 또 똑같이 주장되고 있다. 이거 자체는 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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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합니다. 다만 이 반야부의 종지를 풀이할 때요, 어떻게 다르게 풀이하는지 보세요. 괄호 열고 설명해 놓은 게요, 경전에 기반해서 그대로 제가 풀어놓은 거예요. 제 의견이 아니라 경전에 기반한 의견입니다.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자성이 없다, 이거잖아요. ‘일체제법이 개무자성’, 자성이 없다. 그러면 이거는 요의예요? 미료의예요? 유식학에서 보면 이거는 미료의죠. 궁극의 뜻은 아니에요. 궁극의 뜻은 ‘자성이 있다.’ 예요. 그런데 먼저 아집·법집을 깨려고 자성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자성이 없다. 그리고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다. 그래서 본래 고요한데, 자성이 등장하잖아요. 자성이 열반이다. 이거를 이해하실 때, 유식학은 그러면 어떤 주장이냐? 3무자성·3자성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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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합니다. 세 무자성과 세 자성을 같이 주장해요. 요게 궁극의 뜻이고요. 이거는 방편으로써 쓰는 겁니다. 이게 료의예요. 근데 이거는 ‘반야경’하고 중관학파랑 통하죠. 그런데 중관학파랑 통하면서 달라요. 그러면서 우리가 진짜 ‘반야경’을 잘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실제로 유식학 하는 분들이 ‘반야경’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알아두셔야 해요. 먼저 세 무자성, 세 자성 할 때, 세 자성을 먼저 볼게요. 이것만 아시면 돼요. 진짜 어렵지 않습니다. 실이 있어요. 실을 엮어서요, 밧줄을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누가 이걸 뭐로 봤어요? 뱀으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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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실인데 밧줄이 됐는데, 여기는 뱀이 아니죠. 망상의 세계입니다. 그렇죠. 여기는요? 연기의 세계, 경험의 세계입니다. 여기는요? 이제 진실의 세계죠. 이것도 진실인데 이게 궁극의 진실의 세계예요. 그렇죠. 뱀인 줄 알고 봤더니 뱀은 없었어요. 이건 가짜예요. 망상의 세계는 아예 가짜입니다. 이건 둘 다 진짜예요. 밧줄도 있었고, 밧줄은 실로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그렇죠. 저것만 아시면 돼요. 세 자성이라는 건요, 저 이 궁극의 자성을요,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합니다. 원만하여 진실한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이라고, ‘원성실성’ 그냥 이렇게도 얘기하고요, ‘원성실자성’ 이렇게 일단 자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성이라고 붙여볼게요. 원만하여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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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어진 자성이에요. 뭐겠어요? ‘진여’요, 진여 그 자체. 진여 그 자체입니다. 우주는 진여로 이루어져 있어요. 진여가 본질이에요. 그렇죠. 본질은 ‘진여’예요. 그런데 현실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뭐예요? 밧줄이죠. 그럼 이거를요, ‘의타기’ 이것도 멋있어요. 연기를요, ‘의타기’라고 바꿔봤어요. 똑같이 안 씁니다. ‘연기’를 바꿨어요, ‘의타기’. ‘인연해서’가요, 어떤 조건으로 인해서 일어났다잖아요. 그걸 풀어놓은 거예요. ‘의타기성(依他起性)’ 나 아닌 다른 타자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품. 그러니까 상호의존성이죠. 상호의존성이죠. 이것이 있으려면 저것이 있어야 돼요. 저것이 있으니까 이것이 있다죠. 그러니까 이것은, 저것이라는 타자에 의지해서 그걸 조건으로 삼아서 일어난 거예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은 연기하는데, 시공간 안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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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하는데, 반드시 타자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어요. 그건 ‘연기성(緣起性)’이죠. 그러니까 불변의 존재는 없다는 얘기죠. 다 변화 속에서 적으로 인해서 내가 정립된다니까요, 오히려. 타자가 있어야 돼요. ‘의타기성’ 요게 연기의 세계입니다. 경험의 세계, 진실의 세계라면 여기가. 연기는 너무 풀어놓은 거죠. 경험의 세계. 근데 망상의 세계가 있어요. 분별 망상의 세계. 변, 두루 변(邊) 자입니다. 계산할 계(計). 두루 따져서, 두루 따진다는 거는요 언어화한다는 거예요. 네 거 내 거. 이렇게 개념화한다는 거. 언어화 개념화해가지고, 변계소집, 집착하는 바가 있는,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 그러면요, 여기서는 이미 언어화했다는 얘기죠. 두루 따져가지고 집착을 해요. 아집·법집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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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런 집착이 일어나려면 계산을 할 때 개념화를 해야 해요, 언어로. 그렇죠. 그게 망상입니다. ‘분별 망상’ 펜을 펜이라고 하는 순간 나 밖에 펜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중관에서 확실히 나와가지고 유식으로 가자고요. 유식의 세계는요, ‘원성실자성’인 이 진여, 진여가 본질이고요. ‘의타기성’의 핵심은 뭐예요? ‘의타기성’의 핵심은 8식이라는 아뢰야식입니다. 8식이 7식·6식을 통해서 우주를 표현해내요. ‘의타기성’이 단순히 연기만 얘기하는 게 아닌 게 아뢰야식에 의존해서 7식이 존재하고, 7식에 의지해서 6식이 굴러갑니다. 아시겠죠. 8식·7식·6식이 서로 또 의지해요. 7식이 8식에 의지해서 에고라는 게 나오죠. 아뢰야식에 의지해서 에고라는 게 나오면 아뢰야식은 또 에고에 의지해서 업을 쌓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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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을 저장해 갑니다. 또 7식에서 6식, 6식은요 의식만 말하는 게 아니라 6식에는 5식이 포함된 겁니다, 5감까지. 안·이·비·설·신·의 6식을 말해요. 존재하는 모든 의식이 지금 8·7·6식이죠. 이게 서로 인연이 돼가지고 우주를 굴려요. 그래서 이 의타기성엔 단순히 연기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중관이나 기존 소승불교랑 구분해야 되는 게, ‘만법유식’사상이 들어있어요. ‘만법은 의식일 뿐’이라는 게 먼저 들어 있어요. 내 의식에서 펼쳐지는 거다. ‘내 의식 안에서 연기하면서 펼쳐진다’는 얘기가 전제돼 있는 거예요. 이게 달라요. 그러니까 이 모든 의식의 불변의 본질은 진여고, 여기는 생멸의 세계입니다. 생멸의 세계에서는 8식·7식·6식이 서로 인연하면서 우주를 펼쳐요. 그런데, 여기에 아집·법집이 붙는 겁니다, 이름을 붙이면서. 이름 붙이는 순간, 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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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존재 같아요, 이 펜이. 자, 여러분, 지금 이 펜 알아차려 보세요. 지금 여러분 의식 안에 5감의 대상으로서만 있는 겁니다. 펜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거는 이제 여러분 밖의 존재가 돼요, 완연한. 그래서 ‘변계소집’이라는 게 이름 붙이는 순간 딱 아집·법집이 딱 붙어가지고, ‘나는 따로 있고, 이 존재는 따로 있고’가 돼요. 실상은 뭐겠어요? 아집·법집이 아니라 실상은 가아(假我)·가법(假法)이에요. 지금 내 의식에서 의식의 작용, 연기 작용으로 뭐가 있어요? 바라보는 내가 있고, 바라봐주는 펜이 있는 거예요. 임시의 자아와 임시의 법이 있는 거예요, 인연이 구르다가. 그런데 이거를 ‘나, 너’ 나눠버리면 아집·법집이 생겨요. 언어화하기 이전에는 지금, 인식 주체와 인식 객체가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 가아는 견분(見分), 보는 쪽·주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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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법은 상분(相分), 보여지는 것들. 이것만 있어요. 의식의 작용이 굴러가다가 밧줄을 만든 겁니다. 그런데 본질은요, 여기에는 아공·법공, 아도 법도 없어요. 진여만 있으니까. 다 아셨어요. 뱀·밧줄·실만 이해하시면 돼요. 유식학의 제일 어려운 거 아셨습니다. 이해 안 되실 거 없죠. 원성실성, 언어만 입에 좀 굴리시면 돼요, 이제. 어디 가서 얘기할 때, 막 “변.. 됐고 뭐가 있어. 그런 게. 막 망상.. 막 그런 게 있어.” 언어를 알아야 잘난 체를 할 수 있습니다. ‘변계소집성’ 두루 변(遍) 자입니다. 두루 따져서, 내 의식 작용을 다 따져서 이름 붙여놓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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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이건 뭐, 이건 뭐. 그리고 나와 남을 찢어서 집착해요. 그런데 실상은 언어화 이전에 딱 알아차리면 알아차리는 주체인 나와 알아차려지는 대상들이 있을 뿐이죠. 언어로 표현하기 이전에. 그게 가아·가법 그럽니다. 견분과 상분이 있어요. 한 의식 안에서 보는 쪽과 보여지는 쪽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는 거예요. 본체는 뭐예요? 아예 그것도 없는, 그냥 ‘원성실자성’ 불변의 진여 자체, 이 ‘원성실자성’을 그려놓으면요, 뭐가 되냐면 이거예요. 무분별지혜가 진여를 알아차리고 있는 모습이에요. 이게 ‘원성실자성’이에요. 그래서 성품으로, 자성으로 말하면 ‘원성실자성’, 지혜로 말하면 ‘무분별지’ 그래서 중관이나 유식이나 똑같습니다, ‘무분별지’에 대한 강조는. ‘무분별지’ 보여지는 지혜는, 진리는 진여의 진리. 그러니까 ‘원성실자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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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지’이자 ‘진여’이자 이 ‘자성청정심’인 거예요. 됐죠? 그래서 이게 지금 유식학이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자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자성이 있어, 왜 없어 자성이? 왜 무자성에만 빠져가지고 자성을 못 세워? 자성이 있어!” 이 얘기 한 겁니다. “그런데 ‘반야경’에는 자성이 없다고 그랬잖아.” “그것도 설명해 주지, 왜 자성이 없다고 했는지. 우리 설명 들으면 중관파 너희들보다 훨씬 치밀해.” 보세요! 변계소집자성 차원에서 보세요. 이 뱀은 자성이 있어요? 없어요? 망상인데 무자성입니다. 그런데 뭐가 망상이라서 무자성이에요. ‘상무자성(相無自性)’ 무자성인데요, 무자성한 이유가 다 달라요. 그러니까 유식학이 훨씬 치밀합니다. 유식학이 훨씬 치밀해요. 유식학을 아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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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파의 문제점이 드러나요. ‘상무자성’ 이건 망상이라서 자성이 없는 거예요. 망상이라는 얘기는, 이런 상이 없다니까요, 망상이라서. 실존하지 않다는 얘기예요. 실존하지 않아서 자성이 없다는 거예요. 뱀은요, 없어서 자성이 없는 거예요. 그럼 이 연기의 세계는요? 의타기성은요? 보세요. 다른 곳에서 다른 거 아니까 하니까 실제로는 생겨나는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생무자성(生無自性)’이에요. 스스로 생겨난 게 없어요. 의식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뿐이지, 독자적으로 뭐가 생겨난 게 없다고요. 이게 ‘생무자성’이에요. 이게 ‘연기공(緣起空)’이 여기에 해당돼요. 연기하니까 공하다. 즉,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요소가 스스로 생겨난 적이 없다. 인연 따라 발생했을 뿐이다, 나의 의식의 작용으로. 이것만 달라요. 나의 의식의 작용으로, 생무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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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이거는요? 진실의 세계는요? 여기는 ‘아’니 ‘법’이니가 아예 없거든요. 이게 승의의 무자성입니다. 제가 왜 승의공(勝義空), 연기공 했는지 아시겠죠. 이거예요. 궁극의 무자성이에요. 거기에는 원래 나와 남이 없어요. 유식학이 더 대단하죠. 무자성을 3개로 풀어버렸어요. 망상이라서 무자성, 뱀은. 밧줄은 있잖아요. 그런데 스스로 존재할 수는 없죠. 서로 연기에서 존재하니까 스스로 생겨난 게 없다는 의미에서 ‘생무자성’. 그다음 ‘승의의 무자성’은 원성실성 그 자리에서 진여의 자리에는 나니 남이니가 애초에 없기 때문에 무자성. 됐죠. 그럼 유식학이 오온개공을 풀면 다르게 풀겠죠. 여기 바로 들어가 볼까요, 옆에? 오온개공부터 한번 풀어보고 이리 올까요.
[*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유식학적 분석
‘5온’은 본래 ① ‘이름을 지어 집착하는 형상’이니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자성이 이름으로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어서 자성이 없으며{상무자성相無自性}, ② ‘의식의 전변’인 ‘연기’에 의해 존재하는 ‘인연의 화합물’이라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니,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자성을 지니고 스스로의 힘으로 발생하지 않으니 자성이 없으며{생무자성生無自性}, ③ ‘공성의 진여’는 일체 법의 자성(불변의 본질)이 되어 두루 존재하니 차별상(의타기자성, 가아假我ㆍ가법假法)이나 오염상(변계소집자성, 아집我執ㆍ법집法執)의 독자적인 불변의 자성이 없다{승의무자성勝義無自性, 아공我空ㆍ법공法空}. 그래서 생멸이 없고, 본래 열반적정이다.]
오온개공의 유식학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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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거 여러분 이해하실 수 있는 지금 자격이 됐어요. ‘5온은 본래 이름을 지어 집착하는 형상이니,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자성이 이름으로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어서 자성이 없으며.’ 5온이라는 이름만 있지, 영원할 것 같은 5온이라는 개념만 있지, 실체는 없다는 거예요. 영원한 5온이라는 실체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무자성.’ 오온개공은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의식의 전변인, 의식이 굴러가지고 이루어진 연기에 의해 존재하는 인연의 화합물이기 때문에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니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자성을 지니고 스스로의 힘으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생무자성.’ 그래서 ‘오온개공’ 이 말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3측면에서 오온개공을 설명해요. 5온이라는 이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상무자성’ 5온은 연기할 뿐이니까 ‘생무자성’ 그다음 5온은 공성의 진여자리에서는 일체법의 자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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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공성의 진여는 일체법의 자성이 되어 두루 존재하니 차별상과 오염상이 없다. 차별상은 뭐예요? 의타기성. 차별상은요 가아와 가법을 말해요. ‘아’와 ‘법’이 펼쳐지는 거. 그다음에 오염상은요 무지와 아집이 붙는 거, 집착이 붙는 거. 그럼 ‘변계소집자성’과 ‘의타기자성’이 없어서 지난 시간에도 차별상을 제가 뭐라고 했죠? 유의, 유의, 차별상을. 기억하세요? 지금은요, 차별상을 밧줄이 존재하잖아요. 그러니까 차별상은 있죠. 그런데 오염은 아직 안 됐죠. 뱀으로 보인다는 건 오염상(汚染相)이죠. 오염상은 뭐였죠? 지난 시간에? ‘유루’ 차별상은 ‘유위’ 유위 자체는 무루(無漏)일 수 있어요. 번뇌성이 없을 수 있어요. 작용이 있다는 얘기만 있는 거죠. 차별상은 시공간 안에 작용이 있다. 오염상은 무지와 아집에 오염됐다. 탐진치에 오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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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눠드렸죠. 그거를 유식하게 말하면 어떻게 돼요? 유식하게 말하면 ‘의타기자성’이 차별상이요, ‘변계소집자성’이 오염상입니다. 그래서 ‘변계소집자성’이 붙어버리면 ‘의타기자성’도요 ‘유루’의 ‘의타기자성’이 돼요. ‘변계소집’이 붙어버리면, 무지·아집에 빠져버리면. ‘유루’의 ‘유위’작용이 돼요. 여기까지요. 이런 차별상이나 오염상의 독자적 불변의 자성이 없다. 원성실성의 자리에는, 공성의 진여자리에는요, 이 자리는, 보세요, 이 원성실성은 모든 만법의 자성이 되는 자리예요. 왜냐하면, 보세요, 자성이 본래 열반이라고 그랬잖아요. 자, 이거 기억해 보세요, 반야심경. ‘5온은 모두 공하다’ 할 때, 5온의 독자적인 자성은 없다. 다만 5온은 공성을, 즉 열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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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를·원성실자성을 불변의 본질로 삼는다. 자성으로 삼는다. 이거 기억해 보세요. 그러니까 이 ‘원성실자성’은 모든 것의 본질이 돼줘요. 모든 것의 본질이 돼준다는 건 특정상이 없다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특정한 차별상이나 오염상이 없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아’와 ‘법’이 없다는 소리를 이렇게 해본 겁니다. 왜 이렇게 설명했냐면요, 그전에 글을 보시면 알아요. 그런데 이거 먼저 보고 들어갈게요. 요 글이 더 쉬워서 그래요. 제가 풀이해 놓은 거니까. 그래서 아공·법공의 세계예요. 자, 보세요, 상무자성은 아집·법집의 세계고요, 상무자성은 변계소집자성의 영역이죠. 망상이 없다는 얘기고요, 거기는 아집·법집의 세계고요. 의타기자성은 가아, 가법의 세계고요. 생무자성에 해당되고요. 원성실자성은 승의무자성에 해당되면서 아공·법공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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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뭐라고 돼 있죠? [그러나 동시에 ‘불변하는 본질’인 ‘자성’을 지니니, ①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두루 따져서 집착하는 자성) ②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다른 것에 의지하여 발생하는 자성) ③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진 진실한 자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성을 지님이 궁극의 가르침이요(구족具足, 요의, 중도의 입장), 자성이 없다고 함은 방편적 가르침으로 궁극의 가르침 아니다(구공俱空, 미료의未了義, 공성의 입장).] 그러나 동시에 불변하는 본질인 자성을 지니니. 무자성이지만 자성이 있다는 얘기죠. 자성을 지니니, 변계소집자성, 두루 따져서 집착하는 자성이 있고요, 의타기자성, 다른 것에 의지하여 발생하는 자성이 있고요, 원성실자성 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진 진실한 자성이 있어요. 이러한 자성을 지니니 궁극의 가르침이요, 이게 구공의 가르침 아니에요. 이게 궁극의 가르침이고, ‘요의’ 중도의 입장이고요, 자성이 없다고 하면 공성에 치우친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거는 ‘미료의’ 궁극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거 바뀌었네요. 구공(俱空)과 구족(具足)을 바꿔주세요. 바꿔야 말이 돼죠. 그러니까 이때 구공은 제가 얘기한 구공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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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구(俱)자예요. 보세요! 그래서 이 ‘반야경’ 쪽의 가르침은요, 구공만 강조했다는 거예요. 이게 함께 구(俱) 자, 아공·법공 모두 공하다는 것만 강조했고, 지금 이 ‘해심밀경’을 포함한 유식학의 입장에서는 뭐라는 거예요? 이쪽이 중관의 입장이라면, 중관파의 입장이라면 유식학의 입장은 구족(具足)을 강조한다는 거예요. 갖춰져 있다. 자성이 갖춰져 있다. 자성이 있다. 이쪽은 공하다. 그러니까 지금 구공과 구족이 바뀌어야 되죠. 그래서 공성은 바로, 보세요. [‘공성’(무자성)은 바로 ‘진여眞如’(무루로서 참되고 무위로서 상주불변함)를 은밀히 나타낸 것이니, 드러내어 나타내면 ‘원성실자성’이다. 원성실자성인 진여는 만법의 공통된 자성이니, ‘만법의 자성’인 원성실자성과 ‘만법’인 의타기자성은 섞이지 않되 분리될 수도 없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한 것이다. 5온이 공성(무자성)이고 공성이 5온이며(구공俱空, 미료의未了義), 5온이 진여(원성실자성)이며 진여가 5온이다(구족具足, 요의了義 )!] 공성·무자성은 바로 진여를 은밀히 나타낸 것이다. 진여라는 거는. 여기까지 이해되세요? 지금? 이거 여기 지금 유식학만 가지고 얘기할 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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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원성실자성, 의타기자성, 변계소집자성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자성이 있다고 얘기한 거잖아요. 그럼 이거는 우리가, 우리끼리 말하면 이게 구공이죠. 그런데 이게 이때 구공이라는 거는, 공 안에 진리가, 자성이 구족돼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갖출 구(具)자니까. 이 3무자성은요, 함께 구(俱)자 써서 함께 구(俱)자라는 거는 아와 법이 다 없다는 얘기거든요. 아와 법이 다 없다. 공을 강조하고 있다고요. 모두 공하다는 얘기만 하고 있고요. 그래서 다 무자성이다. 이쪽은 그런데 자성이 꽉 차 있다. 그래서 이 우주가 펼쳐진다는 겁니다, 이 자성으로. 그러니까 공만 얘기해 가지고는요 왜 우주가 이 모습으로 있는지 설명을 못 해요. 8식·7식·6식 나오고, 막 망상이 거기에 더 보태고 해서 이 우주가 굴러가는 거거든요. 본질은 진여지만 왕성하게 이 우주를 창조해내고 있는 아뢰야식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우주는 누가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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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이요. 유식학과 상종과 성종의 차이는 이겁니다. 상종은요, 요 8식이 주범이에요, 우주를 만들어내는. 왜? 생멸의 세계의 책임자는 8식이잖아요. 그러면 이 진여는요 불변의 세계거든요. 보세요. ‘진’은 참되다는 뜻이니까 무루예요. ‘여’는요, 항상 똑같다는 거니까 무위예요. 무루·무위의 세계가 여기 유위·유루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못 만든다고 봐요, 유식학은. 유식학도 언어에 걸려 있는 거예요. 유식학의 이런 짓이 ‘변계소집자성’입니다. 이름에 걸려가지고 무루·무위면 유루, 여기는 유위고 여기는 유루잖아요, 유위·유루의 세계를 못 만든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뢰야식만이 우주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유식학이고, ‘대승기신론’을 포함한 이 성종·화엄종은 어떻게 봐요? “뭔 소리야. 무루·무위의 진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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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루·유위의 현상계를 만들어내는 거야! 이게 한마음이야. 한마음은 한마음의 본체와 작용으로 우주가 굴러가는 거야!” 이게 ‘대승기신론’입니다. 다 치고 나가 버려요. 그래서 유식학자들은 못 받아들여요. “그래도 무위인데, 무위인데..” 언어에 걸려가지고요 유식학이. 그러니까 중관이나 유식학자들은 아직도 논리에 너무 걸려 있습니다. 성종에 오면서 다 논리 무시해요.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선사가 유식학자랑 문답을 하는 게 ‘종경록(宗鏡錄)’에 나오는데, “무위에서 어떻게, 불변하는 무위에서 어떻게 변화하는 유위의 세계가 나오냐?” 하니까 그 선사가 선문답을 날려버려요. “푸른 하늘에~” 막 이러면서 “파도가 치는구나!” “그래서 신기한 거다. 진여는, 본체는 불변이지만 작용은 만변한다.” 이러고 한마음으로 싹 설명해 버리는 방식이 ‘성종’입니다. 상종(相宗)과 성종(性宗) 차이 알겠죠. 공종(空宗)은요 공하다는 데 포인트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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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종은요 현상계가 어떻게 생멸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포인트를 둡니다. 성종은요 텅 빈 진여자리에서 자성이 있다가 이 자성에서 온 우주가 펼쳐지는 걸 원만하게 설명하는 건 성종입니다. 그래서 선불교가 다 성종이에요. 선불교니 대승기신론, 화엄경. 여러분이 아는 재미있어 하는 불교들은 다 성종입니다. 공종과 상종은 뭔가 하나에 치우쳐 있어요. 이해되시죠. 언어에 걸려 있어서 그래요, 언어에. 그래서 그 성종은 언어에 안 걸립니다. 참나는요 다 할 수 있어요. 참나의 본체가 고요하고요, 참나의 작용은, 본체는 고요하고 이 작용은 유위의 세계고요. 그래서 대승기신론에 가면 그 한마음에 진여문이 있고, 생멸문이 있어서 한마음이 다 해결해 버려요. 한마음이, 진여도 텅 비어 있다가 움직여서 진공묘유(眞空妙有)로 우주 만물을 다 만들어내 버려요, 생멸의 세계를. 그러고도 한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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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좀 넘어서 있죠. 그게 성종입니다. 성종이 우리랑 같아요. 공종·상종은 뭔가 좀 너무 한 쪽에 치우쳐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도 이제 유식학의 핵심을 다 얘기 드렸어요, 지금. 그래서 공성은, 무자성은 바로 진여, ‘무루로서 참되고 무위로서 상주불변함을’이 진여인데요 이 진여를 은밀히 나타낸 거예요, 공성은. 그래서 ‘밀의’라고 하는 거예요. ‘료의’ 선명하게 드러낸 게 아니고 은밀하게 표현한 겁니다, 공성은. 진여가 있다는 거를요 텅 빔이라고 해서 표현한 거예요. 즉, ‘참나가 있는데 텅 비었다’라고 말하니까 좀 이상하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자리는 텅 빈 자리입니다’라고 하면 “그건 은밀하게 표현한 거지, 만법이 거기 못 들어가고 오염들이 오염상이 못 들어간다는 얘기를 한 거지 하나님이 없다는 얘기를 한 건 아니다.” 이 소리랑 같아요. 그러니까 “차별상, 유위의 세계가 거기는 없고, 참나의 세계·정광명의 세계에는 없고, 유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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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집과 법집이 거기는 없고, 아집과 무지가 없고, ‘나’니 ‘남’이니 하는 그런 차별상마저도 거기는 없어. 거기는 원성실, 원만하고 참된 세계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원만하게 이루어진 그 진실한 세계가 있다. 그러니까 거기가 진여·자성이다. 거기가 자성자리다. 자성이 왜 없냐? 자성청정심이다. 이렇게 나가버린 거예요, 유식학은. 자성이 있다고 나간 거예요. 그러니까 불공(不空)의 측면을 드러낸 거예요. 공만 있는 거 아니다. 공이 오히려 방편이었다. 그래서 드러내어 나타내면 ‘원성실자성’이고요, 은밀하게 말하면 ‘승의무자성’이 되는 거예요. 그걸 유식학은 다 해결해 버려요. 무자성까지 다 제시해 버리잖아요. 은밀히 말하면 이렇게 하고, 드러내서 말하면 이렇게 돼죠. 그렇죠. 원성실자성인 진여는 만법의 공통된 자성이니, 만법의 자성인 원성실자성과 만법인 의타기자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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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이지 않되 분리되지도 않는다. 자, 이제 심오한 데까지 가볼까요. 이 두 개를 갖고 놀아볼까요. 무위의 승의무자성은 유위의 의타기, 무자성에서 놀면 안 되죠. 여기서 놀아야죠. 무위의 원성실자성이 아뢰야식을 통해 표현되면 의타기자성이 되죠. 이게 만법이에요. 만법은 지금 의타기자성이죠. 5온의 세계는, 5온은 의타기자성이죠, 지금. 5온은 인연 따라 이루어진 거죠. 5온의 본질이 ‘승의무자성’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오온개공의 제일 핵심은 5온의 본질이 승의무자성인데 다른 말로 뭐라고요? 원성실자성이요. 5온이 사실은 원성실자성이다. ‘5온이 그대로 진여’라는 얘기를 한다는 거죠, 유식학적으로 보면. 원성실자성인 진여가 만법의 공통된 자성이니까 5온도 결국은 그 자성이 뭐겠어요? 진여죠. 원성실자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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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진여죠. 자성이죠, 만법의. 그래서 이 둘은 섞이지도 않되 분리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색불이공 공불이색, 만법인 색은 공인 진여와 다르지 않다. 동시에 만법인 색이 그대로 공인 진여, 원성실자성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라고 한 것이다. 유식학적으로 풀어본 거예요, 제가. 별짓 다 하죠. 유식학으로도 풀어보고, 중관으로도 풀어보고, 반야경 본래의 의미로도 풀어보고 다 한 겁니다. 그래서 5온이 공성이고, 결론적으로 5온이 공성이고 무자성이고, 공성이 5온이며, 이건 아직 미료의 차원이고요, 5온이 사실은 진여고, 진여가 5온이다. 이게 료의 차원의 주장이다. ‘5온이 그대로 원성실자성 진여다!’ 이게 유식학이 바라본 ‘반야심경’의 본지입니다. 전혀 다르죠. 공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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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앞으로 와볼게요.
[①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자성’(독자적 불변의 실체)이 없음.
(‘상무자성相無自性’은 실체가 없으니 자성이 없으며, ‘생무자성生無自性’은 스스로 생겨나지 못하니 자성이 없으며(발생하는 실체가 없음), ‘승의무자성勝義無自性’은 아공ㆍ법공으로 드러난 ‘공성의 진여’는, 일체의 법에 두루 하니(일체의 법의 공통된 본질이 됨){모든 곳에서 빛이 나는 의식} 자성(특정한 자성)이 없음 {특성이 없음})
②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음
(진여眞如{무루ㆍ무위}의 자성인 ‘원성실성圓成實性’은 항상 일체 법의 ‘법성法性’으로 안주하는 ‘무위법’이라 생멸이 없음{무한함})
③ 본래 고요하며 자성(불변의 실체) 이 열반임
(‘승의무자성’은 일체의 잡염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임{4대ㆍ5온ㆍ이원성 없는 열반})]
이건 오늘 하고 가야죠. 따라서 일체, 보세요. 일체의 모든 법이 자성이 없다, 무자성이라는 얘기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는 거예요. 해심밀경은 세 가지로 풉니다. 먼저 ‘상무자성’, 실체가 없으니 자성이 없으며, 뱀이잖아요.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요, 5온은 일체법은 ‘생무자성’ 스스로 생겨나질 못하니까 자성이 없으며. 발생하는 애가 없다고요, 그냥 의식의 변화일 뿐이지. 여러분 의식이 변한 것뿐이에요, 이 펜은. 독자적으로 이 펜이라는 게 여러분 의식에서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고요. 여러분 의식의 연기 작용 속에서 그냥 등장한 거예요. 따로 독자적인 펜이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의식과 별개로 새롭게 생겨난 게 없어요, 의식의 작용일 뿐이지. ‘승의무자성’은요, 아공·법공으로 드러난 공성의 진여는요 일체 만법에 두루 하니, 자성이 없습니다.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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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에 두루 한다는 건 모든 만법의 자성이 돼주니까 특정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참나가 왜 텅 비어 있겠어요? 모든 게 돼야 되니까요. 모든 게 돼야 하는 존재는 텅 비어 있어야죠. 특정상을 갖고 있으면 모든 게 못 되죠.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다 하는 건요, 이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다는 걸 ‘해심밀경’이 어떻게 푸냐면 ‘진여의 자성인 원성실성은 항상 일체법에 법성, 자성으로 안주하는 무위법이라 생멸이 없다.’ 수준 높게 풀죠. 단순히 연기로 안 풀어요. 원성실자성, 그 진여자리는 만법의 법성이 돼 있는데 거기는 무위, 조금도 변함이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생멸이 없다라고 푸는 겁니다. 이걸 연기공 푸는 분들은요 만법은 자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생멸이 없다는 걸로 풀려고 해요. 그게 아니고 진여 차원에서 풀고 있습니다, ‘해심밀경’은. 마지막, 본래 고요하여 ‘승의무자성’은 일체 잡염, 오염상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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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요하다는 얘기고, 그래서 만법의 자성이 된다. 자성이 되는 열반자리다. 요거를요, ‘께왓다경’에 비교해 보면 어때요?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자성이 없다’ 이런 거는 독자적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얘기는 ‘모든 곳에서 빛나는 의식이면서 어떤 특성도 없다’ 하는 거랑 통하고요. 생멸이 없다는 거는 ‘무한하다, 그 의식 자리가.’ ‘청정광명심이 무한하다’는 말과 통하고요. ‘본래 고요하여 자성이 열반이다.’ 하는 거는 ‘4대·5온·이원성이 없는 그 열반 자리가 청정광명심이다’ 하는 거랑 통하죠. ‘께왓다경’이랑 비교해 보자면요. 그러니까 지금 계속 비교해 보면 말이 되죠. ‘께왓다경’에 나온 말들이요 지금 ‘해심밀경’에 와서도 다 통합니다.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모든 곳에서 빛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모든 곳의 자성이 되는 그 자리다, 거기가. 모든 것의 본질이 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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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한하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생멸이 없고요. 그 자리는 4대·5온·이원성이 없는 열반의 자리라고 했으니까 그 자리에 어떤 오염상도 없고, 고요하고 열반 그 자체죠. 그렇죠. 그래서 그 자성이 열반인 자리라는 거죠. 자성이 없는 게 아니죠. 오히려 자성이 열반이라는 거죠. 만법의 자성이 되고 있다는 얘기죠, 그 자리가. 어떠세요. ‘께왓다경’하고도 한번 비교해 보고, ‘반야심경’하고도 비교해 보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게 나온 것 같은데요. 이제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되는 게, 이게 계속 반복됩니다, 유식30송 내내. 그래서 이제 이것만 알면 돼요. 새 개념이 지금 등장할게요, 8식, 이제 6식, 7식 이름들이요. 8식, 아뢰야식. 7식, 말라식. 6식, 의식과 5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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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식·7식·6식·5식 얘기 좀 유식30송 초반부에 하다가 뒤에는 3무자성과 3자성 얘기만 하고 끝납니다. 그러니까 유식30송 한 10개 이상 살펴볼 건데, 30송 중에서 핵심만. 오늘 나온 얘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만 아시면 돼요. 중관파도 처음에 짜증나셨죠? 보다 보니까 또 다른 의미로 짜증이 나죠. 이제 이해가 돼서 나는 짜증. 처음엔 이해가 안 돼서, “얘네들이 뭔데 자꾸 이렇게 힘들게 하지? 나를.” 이런 게 아니라, 나중에는 “이놈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 이렇게 되잖아요? 유식학도 이제 곧 이해가 되실 겁니다. 3자성과 3무자성만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원성실자성’이라든가 ‘승의무자성’이라는 게 진여와 열반의 세계이기 때문에 만법의 자성을 공의 측면에서 ‘무자성’, 자성의 측면에서 ‘원성실자성’ 이렇게 얘기합니다. 유식학이 훨씬 원만하게 얘기하고 있다. 다만 유식학은 언어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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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가지고 변계소집자성에 빠져서 무위는, 무위에서 유위가 나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원만하게 설명을 못한다. 그래서 상종이라고, 상에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이 공과 상을, 공·상을 원만하게, 공에서 상이 나온 걸 원만하게 설명을 못하니까 한쪽은 공만 강조하고, 한쪽은 공하고 별개로 상만 강조하죠. 그러니까 성종이 등장해서 통합시킨 겁니다. ‘대승기신론’이 등장해서 이걸 통합적으로 설명하면서 한마음, 한마음이 본성이고요, 그 성종의 핵심이에요. 한마음, 자성청명심의 한쪽 측면은 진여문 ‘공’이요, 한쪽 측면은 생멸문 이게 ‘상’이다 해가지고, 성종 안에서 공과 상을 회통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원효 스님도 ‘대승기신론’을 강조했던 게, 선불교도 ‘대승기신론’을 강조하고, ‘육조단경’도 ‘대승기신론’을 따르는 게 성종의 입장에서 다 하나가 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종의 입장이 제일 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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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는, 청정광명심은 ‘공’하면서 온 우주를 만들어내는 주체입니다. 이렇게 설명하시면 이건 성종입니다. 이해되시죠. ‘공’이라는 거에 강조하면, 청정광명심은 공합니다. 여기에만 포인트를 자꾸 두면 어떻게 돼요? 그래서 만법도 다 본래 공합니다. 공종. 같은 얘기예요. 청정광명심은 공하기 때문에 청정광명심의 나툼인 만법조차도 모두 공입니다. 공종. 청정광명심은 공이기 때문에 이 현상계는 아뢰야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뢰야식이 8식·7식·6식을 통해 온 우주를 나투고 있는 겁니다. 본질은 물론 공합니다. 그러면 상종. 성종, 청정광명심이 본래 공하면서 본래 생멸작용을 일으켜서 온 우주를 굴리고 있습니다. 다, 아뢰야식 또한 청정광명심일 뿐입니다. 요게 성종. 이 3개 구분되시죠? 이 3개랑 3무자성·3자성만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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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홍익학당] 진여와 열반 30강-해심밀경解深密經의 무성교無性敎(반야부)의 종지 풀이(0:08-1:00:01)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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